사회주의노동자연합
연합소개 문서고 주장과 쟁점 투쟁의 현장
 
항목별 검색
자본주의는 어디로
투쟁의 방향타
혁명당을 건설하자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문화도 투쟁이다
한국노동자운동
세계노동자운동
기타

Category
자본주의는 어디로 : 노해연-47호] 자본주의와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대재앙
 정책위  | 2008·05·12 11:42 | HIT : 2,330
 FILE 
  • 노해연_47호]_자본주의와_지구온난화로_인한_환경대재앙.hwp (30.0 KB), Down : 305
  • 자본주의와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대재앙



    ‘자연재해(이상기후) 최악의 해.’ 2005년을 돌아보면서 모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는 말이다. 그만큼 올해에는 자연재앙이 많았다. 8월 말 미국 뉴올리언스의 흑인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강타한 ‘미국판 쓰나미’ 허리케인 카트리나, 10월 파키스탄 대지진, 같은 달 과테말라 등 중미를 뒤흔든 홍수와 산사태가 대표적이다. 그밖에도 한 달 간 지속돼 1,200명 정도의 목숨을 앗아간 인도의 폭우, 1940년대 이래 최악이었던 포르투갈의 가뭄, 국토의 절반이 넘는 지역에서 농산물을 망가뜨린 프랑스의 극심한 가뭄, 시도 때도 없이 계속된 중국의 무시무시한 홍수 등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12월 말 하루 40cm나 ‘눈폭탄’을 쏟아 부은 폭설, 3월의 ‘100년만의 폭설’, 여름 폭우로 인한 수해 등이 있었다. 이런 자연재앙은 대단히 끔찍했다. 카트리나는 1,300명 정도를 사망시키고, 7,000여 명을 실종시켰으며, 100만 명의 이재민을 낳았다. 파키스탄 대지진은 8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350만 명의 안식처를 빼앗아 버렸다.
      그런데 이런 끔찍한 자연대재앙이 최근 들어 더욱 자주, 더욱 무시무시한 형태로 일어나고 있다. 더구나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이런 대재앙을 낳는 ‘원인’이 더욱 더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재앙은 왜 일어날까? 이런 자연재앙은 단지 천재(天災)일 뿐인가 아니면 인재(人災)인가? 천재라면 왜 유독 가난한 노동자계급과 민중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치는가? 하늘이 이들을 버린 것인가? 인재라면 누구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 것인가? 어떤 요인 때문에 이런 재앙이 발생하는가? 이런 재앙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지구온난화가 낳을 끔찍한 재앙

    모든 자연재앙이 하나의 원인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잇달아 일어나는 거대한 자연재앙이 ‘지구온난화’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거의 틀림없는 사실이다. 지구의 역사에는 지구온난화의 재앙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기록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억 5천만 년 전 대규모 지각 변동과 화산 폭발로 지구 기온이 갑자기 6℃ 상승했다. 그런데 이것이 지구 생물 종의 90~95%를 소멸시켰다(‘페름기 멸종’). 유엔환경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20세기 동안 지표 온도가 0.6도 상승했는데, 이렇게 사소해 보이는 기온 상승 때문에 기후 재난 피해자 수는 1970년대 7억 4천만 명에서 1990년대 20억 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2,500명 정도의 기후과학자들로 이루어진 세계 공식 기구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간 위원회(IPCC)>에 따르면, 지금 추세대로 간다면 21세기에는 지구 온도가 평균 5.8도나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만큼 지구온난화로 인한 더 무시무시한 재앙이 우리 앞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지구 온도가 상승하면 빙하와 남북극의 빙산이 녹아 해수면이 높아진다. 이로 인해 저지대의 섬들은 물론이고, 네덜란드,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들도 물에 잠길 수 있다. 이미 태평양에 있는 일부 섬의 주민들은 높아진 해수면을 피해 내륙으로 이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구온난화는 살인적 무더위, 강한 돌풍, 폭우, 산사태, 허리케인(태풍), 폭설, 극심한 가뭄 등 온갖 기상 이변을 낳아 수많은 생명과 재산상의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날씨 변화의 핵심 동력인 물의 흐름을 빠르게 하여 날씨를 미쳐서 날뛰는 짐승처럼 더욱더 예측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끔찍한 질병이 더 기승을 부리게 만들 것이다. 설사처럼 이미 해마다 2백만 명의 아이들을 죽게 만드는 질병을 악화시킬 것이다. 또한 거의 사라졌던 죽음의 질병을 소생시킬 수도 있다. 가령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가 14세기 유럽인구의 3분의 1인 3,40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흑사병 창궐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흑사병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했던 어느 연구자는 “날씨가 보다 더 따뜻해지면, 보통 때보다 주위에 박테리아가 많아지고 인간에게 전염병이 전파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어느 연구단체는 기온 상승과 흑사병 창궐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구소련 지역(여기서는 흑사병이 주기적으로 발생해 왔다)에서 입수해서 분석을 마쳤다.
      뿐만 아니라 지구온난화는 가뭄, 폭설, 폭우 같은 이상 기후로 농작물 생산을 망쳐 지구 곳곳에서 어마어마한 굶주림과 가난을 불러올 수 있다. 이런 굶주림과 가난은 인구의 대이동을 낳을 수 있으며, 이는 나라 간, 지역 간 갈등을 격화시켜 결국엔 야만적 전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구온난화의 원인 - 자본주의

    그렇다면 환경대재앙의 원인인 지구온난화는 왜 일어나는가? 대기 중의 온실가스(주로 이산화탄소)가 늘어나는 것을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손꼽을 수 있다. 농작물을 키우는 온실은 안으로 들어온 햇빛 에너지를 일부만 방출하고 내부로 흡수해서 내부를 따뜻한 상태로 유지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동안 대기에 있던 가스는 지구로 들어오는 에너지의 일부만을 방출하여 지구를 생물이 살 수 있는 온실 상태로 유지해 왔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석탄, 석유,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 사용 증가로 대기 중의 온실가스(주로 이산화탄소)가 급증해 지구의 온도가 크게 상승했다. 온실가스는 대부분 세계의 주요 공업국들에서 배출된다.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범죄자는 단연 세계 최대 자본주의 열강인 미국인데, 세계의 모든 이산화탄소의 4분의 1을 배출한다. 유럽은 전체 배출량의 20%를 차지하는 두 번째로 큰 원인제공 국가이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발전소, 석유·석탄·가스·기업들, 자동차·도로 건설과 그 연관 기업들, 그리고 이들 기업을 비호하는 자본가정부들이 화석연료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해 지구를 온난화하고 자연재앙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주범들이다. 다른 한편으로 지구를 파괴해온 자들은 다름 아니라 비정규직을 무차별적으로 확대하고, 정리해고를 남발하며,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노동과 살인적 노동탄압으로 노동자를 마구 짓밟아온 자본가들이다. 이윤증식에 눈이 먼 자본가들은 오른 손으로 노동자를 착취하고, 왼손으로는 자연을 파괴해 왔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노동자와 자연 모두 이윤증식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파괴해도 좋은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세계 최대의 석유업체인 엑슨모빌을 비롯해 지구온난화를 야기하는 화석연료 자본들과 그들로부터 공식, 비공식적으로 자금을 지원받는 일부 학자들은 지구온난화가 자본주의 사회가 내뿜는 온실가스 때문이 아니라 태양 표면의 폭발이나 흑점의 변화 등 자연현상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태양의 활동이 지구의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온실가스 배출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지배적 견해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눈이 멀어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어리석은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가들이 환경재앙을 막을 수 있을까?

    석유나 석탄 등의 화석연료에 기초한 산업 활동이 대기 중의 온실가스를 증가시켜 기후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는 19세기 말부터 있어 왔다. 이런 우려는 먼저 과학자들 사이에서 퍼져 갔고 나중에는 대중에게까지 확대됐다. 이런 아래로부터의 우려와 압력을 반영해 1979년에 제1차 ‘세계기후회의’가 열렸으며, 1988년에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위원회’(IPCC)가 설립되어 1992년의 리우 회의와 1997년의 교토 회의, 2005년 12월의 몬트리올 회의로 이어졌다.
      하지만 세계 온실가스의 4분의 1을 배출하는 미국은 이런 우려가 석유자본이나 발전소자본, 자동차산업자본에 미칠 타격이 두려워, 나아가서 이런 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삼아서 자본을 운영하고 있는 대부분의 산업자본에게 미칠 영향력이 두려워 지구온난화를 예방하기 위한 교토의정서, 기후변화협약을 계속 승인하지 않고 있다. 이는 건강을 이유로 흡연에 반대하면서도, 담배회사 자본을 위해 담배생산 금지에는 한사코 반대하는 태도의 연장선에 있다.
      미국은 얼마 전에 열렸던 몬트리올의 기후 당사국 총회에서도 교토의정서 체제 강화방안에 반대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런 미국이 한국 등을 포함시켜 아태 기후 파트너십을 만들었다. 이것은 미국이 교토의정서 체제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서 온실가스 배출을 절대 줄이지 않겠다는 반동적 의지의 표현이다. 물론 미국 부시 정부도 세계 여론을 고려해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구체적인 계획도 세운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입장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대적으로 줄이려는 것이 아니라 경제 성장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만 줄이려는 것이다. 가령 경제가 5% 성장했어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3% 늘었다면, 온실가스 배출은 과거에 비해 늘어난 것이지만(절대적 증가) 경제성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든 셈이 되고, 이것은 허용된다(상대적 감소). 이런 거대한 속임수 덕분에 미국은 앞으로 10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을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13%나 늘릴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인류를 위해 온실가스 감축에 충실하려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위원회’(IPCC)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60~70% 감축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교토의정서는 공업국들이 2010년까지 5.2% 낮춘다는 내용만을 담고 있다. 2005년 12월에 채택된 몬트리올 액션플랜은 온실가스 감축의무 대상국을 확대하고, 감시위원회를 본격 가동하기로 했다. 하지만 초국적 기업과 자본주의 강국들의 반발, 교묘한 속임수와 회피 등을 고려한다면 큰 효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영국 블레어 자본가정부는 입버릇처럼 내뱉는 미사여구와 달리 실제로는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해 왔다. 일본도 배출량을 6% 줄이는 대신 11%나 증가시켰고 인도는 자그마치 50%나 늘렸다.
      교토의정서 체제의 또 다른 대표적 맹점은 ‘배출권 거래제’이다. 이것은 각국별로 온실가스 배출 감축 의무와 연간 배출허용량을 정한 뒤 할당량만큼 감축할 수 없는 기업이나 국가는 감축 목표를 초과달성한 기업이나 국가로부터 배출권을 사들여 목표를 달성하도록 허용한 제도다. 그런데 이산화탄소 1톤을 배출할 권리를 사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원래 12유로에서 7유로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런 정도라면 기업에 별 부담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산화탄소를 마구 뿜어대는 강대국의 초국적 기업들도 다른 나라나 기업들로부터 배출권을 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배출권 거래제는 교토의정서 체제로는 절대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자본과 정부가 말로는 환경을 부르짖기도 하지만 행동으로는 환경을 마구 파괴하는 것은 거센 자본주의 경쟁압력 때문이다. 자본이 고도로 집중되고, 평균이윤율이 하락하며 과잉자본이 넘쳐나면 날수록 자본 간의 경쟁은 더욱 첨예해진다. 이런 피 튀기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본과 정부는 ‘환경보호’에 대한 립서비스는 할 수 있지만, 행동에서는 온몸으로 환경파괴에 앞장서지 않을 수 없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 기반해 사적 이윤을 위해 생산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대재앙을 뻔히 예견하면서도, 타이타닉호가 빙산을 향해 돌진했듯이 대재앙을 향해 무한 질주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심각해지는 환경파괴의 대재앙 앞에서는 국제적 단결이 절실하지만, 자본주의 체제는 이것을 불가능케 만든다. 중국, 인도, 브라질 등 거대한 인구를 갖고 있는 후발 자본주의 나라들은 이산화탄소 배출의 새로운 주요 원천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국가들은 ‘온실가스 배출 감축’ 시도는 후발 자본주의 나라들의 산업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고, 또한 세계경쟁에 합류하지 못하도록 묶어놓는 족쇄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발하고 있다. 그들은 선발자본주의 나라들이 이제껏 환경파괴에 앞장선 뒤, 후발자본주의 나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 지구적 환경보호는 오직 세계적 협동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후진국에 대한 선진국의 경제적 지원, 환경파괴의 길이 아닌 자연환경과 조화로운 인류 문명의 건설을 위한 전 지구적 협동이 유일한 대안이 된다. 이런 대안이 없다면 몇몇 주요 자본주의 나라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그 나라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본 간의 무한대의 경쟁, 그것도 격화되는 경쟁체제가 바로 자본주의 체제이다. 이 체제는 그 본성상 협동과 협력이 아니라 경쟁과 대립, 갈등을 양산한다. 이런 적대적인 경쟁체제 하에서는 온실가스의 확대는 불가피하며, 만약 온실가스의 확대가 수많은 재앙들, 심지어는 정상적인 자본 축적을 위협할 정도의 재앙을 불러일으킨다면 그 해결책은 또다시 전 지구적 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 마치 ‘대량살상무기 파괴’나 ‘테러근절’을 내건 기만적인 전쟁처럼, ‘지구환경보호’를 내걸고 선발 자본주의 나라들이 후발 자본주의 나라들을 군사적으로 공격하여 전쟁을 야기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환경위기의 해결이 가능하다면, 다른 모든 문제와 마찬가지로 인류가 치러야 할 대가는 이처럼 엄청난 것이다. 오직 낭비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만이 대재앙을 모면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될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대공황(이것은 제1,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에서 이미 충분히 증명된 바 있다. 둘 중 하나이다. 만약 환경위기를 어느 정도 해결하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능하다면(만약 환경위기가 자본의 축적 자체를 가로막는 단계에까지 이른다면, 반면 그것이 자본의 이윤축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환경문제에 대한 대중적 압력이 높아진다면 이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환경산업이 자본가계급의 새로운 산업분야로 떠오를 것이다), 그것은 전쟁과 같은 야만적인 수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것조차도 불가능해진다면, 인류는 자본주의 체제를 제 때에 극복하지 못한 결과, 엄청난 대재앙에 신음하면서 야만적 수준으로 퇴보할 것이다.  
      결국 다음이 분명해진다. 자본가계급, 그리고 이들이 서로 얽혀서 구성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인류를, 더 나아가 지구 전체를 위협해가고 있는 환경재앙을 극복할 수 없다. 수단이 부족해서인가? 그렇지 않다. 비록 온실가스의 확대라는 부작용을 낳기는 했지만, 산업문명의 발달을 통해 인류는 온실가스를 적정 규모로 줄이면서도 인류 문명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기술력, 과학을 이미 획득하고 있다. 수단은 이미 충분하다. 문제는 자본가계급이 이 수단을 사용할 의지도, 양심도, 능력도 없다는 점이다. 이윤논리와 무한대의 경쟁논리가 그것을 가로막는다. 이 논리 대신, 전 세계의 협동, 그리고 이 협동의 연장선에서 자연과의 공존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들, 한마디로 그 본성상 단결과 연대를 통해서만 해방될 수 있고 이윤과 경쟁의 논리를 온 몸으로 거부할 수 있는 사람들인 노동자계급만이 인류 앞에 닥친 거대한 위험을 전쟁과 같은 야만적인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서도 적절하게 해결할 수 있다.      


    재생가능한 에너지 개발

    화석연료 사용이 지구를 온난화하는 만큼 화석연료 사용을 대폭 줄여야 한다. 화석연료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이 바로 발전소(화력발전소)다. 따라서 발전 방식을 바꾸어 바람, 파도, 조수, 태양의 힘으로 움직이는, 이른바 재생가능 에너지 발전 방식으로 크게 바꾸어야 한다. 누군가는 재생가능 에너지 발전기술이 아직 너무 미약하지 않은가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이런 기술은 꽤 많이 발전해 있다. 재생가능 에너지 개발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의지의 부족, 다시 말해 잘못된 사회체제에 있다.
      태양에너지는 모든 에너지의 근원이다. 의식주 생활 모두가 태양에너지와 직, 간접적인 관련이 있다. 석탄, 석유 같은 화석연료도 오래 전에 태양에너지를 받아 생겨난 동식물이 변형된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태양에너지만 있으면 모든 형태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태양에너지는 고갈되지도 않으며 기후 변화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1년 동안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에너지의 양은 전 세계 인류가 해마다 소비하는 에너지의 1만 5천 배나 된다.
      태양열 발전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독일은 날씨가 좋지 않지만 3백 메가와트급의 태양열 발전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여러 선진국들에서 태양열을 이용한 가정 난방 장치가 널리 쓰이고 있다. 특히 땅이 넓어 전선망으로 연결하기 어려운 몽골의 외딴 지역에서는 태양열 발전기가 아주 유용하다. 많은 과학자들이 햇빛을 전기로 바꾸는 실험에 열중하고 있고, 나날이 그 기술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태양열 발전이 화력발전보다 조금 비싸지만 머지않아 충분히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더 나아가 화석연료에 쏟아 부어지고 있는 막대한 지원금을 태양에너지 개발에 돌린다면 태양에너지 이용은 보다 더 빨리 실현될 수 있다.
      조력 발전은 밀물과 썰물을 이용하는 발전 방식인데, 이것도 거대한 잠재적 에너지 원천이다. 이것은 날마다 완전히 예측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계획하고 저장 기술을 활용하기가 비교적 쉽다는 큰 장점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조력 댐이 벌써 10년째 막대한 양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이외에도 재생가능 에너지로는 바람을 이용하는 풍력 에너지, 파도의 힘을 이용하는 파력 에너지, 땅에서 나오는 고온을 이용하는 지열 에너지 등이 있다.
      이런 재생가능 에너지를 실제로 개발하려면 화석연료가 받고 있는 거액의 보조금을 재생 가능 에너지원으로 돌려야 하고, 군대와 전쟁에 소모되는 막대한 자금을 재생가능 에너지로 돌려야 한다. 그리고 석유자본이나 화력발전소 자본 등의 화석연료 기업의 이윤에 충분한 세금을 매겨 재생가능 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한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최소한의 개량조치조차도 자본주의에서는 쉽지 않다. 현재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이 화석연료 자본가들은 자신의 이윤을 보존하기 위해 엄청난 힘을 동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화석연료의 대안을 생각할 때 핵에너지는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핵에너지는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들어가는 장기적인 비용을 계산할 때 비용 측면에서 다른 재생가능 에너지보다 훨씬 비싸며,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사고나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사고에서 알 수 있듯이 커다란 사고의 위험성이 높고, 폐기물의 독성이 사라지는 데 수십만 년이나 걸린다는 점에서 대안이 될 수 없다. 만약 우리의 후손들에게 문제를 전가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지구란 현 세대의 소유물이 아니며 미래의 인류 전체와 함께 공유해야 할 공동재산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면, 핵에너지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오직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전체 인류의 이익, 역사의 이익, 후대에 대한 책임감을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탐욕스러운 자본가들만이 양심에 거리낌 없이 약탈을 자행할 수 있다. 더구나 핵에너지는 언제든지 핵무기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도 있다.


    교통 혁신

    발전소 다음으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영역이 교통 분야이다. 한국의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GM대우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금호타이어, 한국타이어, 나아가서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기업 등 교통 관련 기업들은 오직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이들은 온실가스 감축에는 별 관심이 없으며, 더 많은 자동차를 생산하고, 더 많은 자동차 타이어를 공급하며, 더 많이 비행기를 운항하는 데에만 온통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새로운 큰 시장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가 최대의 관심사이지, 온실가스 감축은 하등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이런 자본가들이 ‘친환경개발’을 모토로 내세우기도 한다. “현대, 기아, GM대우 등 5개 자동차회사 대표와 산업자원부는 2012년까지 연비를 15% 이상 개선하고 친환경자동차 개발 투자와 지원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자동차연비개선을 위한 협약식’을 갖고 국가적인 에너지절약에 동참키로 했습니다. 업계는 이를 통해 연간 3,130억 원의 에너지 절감과 35만 톤의 이산화탄소 감축효과를 기대했습니다.”(2005년 12월 13일자 한국경제 TV뉴스)
      하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입바른 말일 뿐이며 속임수일 뿐이다. 이런 기업들의 총투자비 가운데 ‘친환경개발’에 들어가는 비율은 3%도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도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자본가들이 일본 도요타 자본가 등 다른 자본가들과의 이미지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친환경 자동차 개발에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 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97년에 사상 최초로 도요타 자동차가 기존의 내연기관(엔진)과 전동기(모터)의 이중 동력원을 가져 유해가스 배출량이 기존보다 1/10가량 축소된 ‘하이브리드 카’인 ‘프리우스’를 생산했다. 이 차는 일본 열도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년 만에 5만대에서 30만대로 판매량을 늘렸을 정도다. 그래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경쟁적으로 ‘친환경차’ 개발에 뛰어든 것이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자본가는 중국, 인도, 미국, 유럽 등지에서 여전히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이상 기존 생산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꿀 의사는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교통 분야에서 온실 가스를 감축하려면 과감하고 강력하게 사회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에너지원을 환경친화적으로 재편하는 작업과 나란히 1인당 배기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대중교통 시스템을 아주 편리하게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이것은 장기적으로는 주거지를 직장, 학교에 근접시켜 일상적인 출퇴근, 등하교에 따르는 에너지 낭비 문제를 해결하는 전반적인 도시 재정비 사업을 요구한다. 이 도시 재정비 사업은 환경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조건을 열악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도시를 제거하고 자연친화적이고 쾌적하며 산업과 농업이 어우러지고 적정 인구수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새로운 유형의 도시를 요구한다. 그렇게 되면 돈 낭비, 시간 낭비는 물론 하루 2~3시간 이동에 따른 육체적 피곤함과 정신적 스트레스도 말끔히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은 인류의 쾌적한 삶과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가치로 삼을 뿐, 이윤 축적을 최상의 목적으로 삼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사회를 건설하지 않고서는 백일몽에 불과하다.
      만약 교통의 혁신을 위해 자동차공장, 항공사, 도로공단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게 된다면 노동해방 사회는 그들에게 새로운 분야, 가령 친환경적인 산업 분야에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말끔하게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노동해방 사회는 산업구조를 노동자들의 이익, 사회의 이익을 위해 변동시켜 나갈 테지만, 그것은 어떤 노동자들도 피해를 입지 않는 합리적인 방식으로 진행시킬 것이다. 재교육 및 기존 생활수준, 노동강도 등의 보호가 확실하게 이뤄질 것이다.
      재생가능한 에너지 개발, 교통혁신에 이어 기후 변화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세 번째 방안은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 적절한 단열재를 사용하고, 오래된 건물도 단열을 강화하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강제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조치들은 화석연료를 사용해 막대한 이득을 남기고 있는 석유산업, 발전소, 자동차 자본가들의 거센 저항을 살 것이다. 가령 인구가 110만 명 정도에 이르는 울산에 아주 싸고 편리한 경전철을 체계적으로 건설하고, 그 대신 자동차 운행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고 해 보자. 당장 현대자동차 자본가들이 거세게 반발할 것이며, SK 같은 석유회사들도 곧바로 가세할 것이다. 다수 노동자, 민중에게는 이익인 것이 자본가들에게는 생각만 해도 두려운 해악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런 규제는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의 반발까지 초래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의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대재앙을 막으려면 발전산업과 교통산업 등 경제, 사회 전반을 노동자계급이 통제하는 사회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의, 석유산업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삶을 보호할 수 있기 위해서도 그것은 선결 조건이다. 자본가들에게 자기 산업의 축소나 폐쇄는 곧 자본의 종말이기에 자본가들은 그런 발상을 도저히 가질 수 없다. 심지어 사창업이라도 자기 이윤에 손해가 된다면, 그것의 폐쇄에 저항하는 것이 자본가들이다.
      그러나 노동해방 사회에서는 단 한 명의 노동자의 생존권이라도 전체 노동자들이 함께 보호해주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전혀 없다. 그렇기에 노동해방 사회에서라면 노동자들의 사회적 전환배치에 대해 그 어떤 노동자도 저항할 필요가 없다. 노동해방 사회에서 군수산업을 폐지한다면 오히려 군수산업 노동자들이 환영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살상무기를 만드는 노동에서 벗어나서 노동자계급을 위한 생산적 노동으로 이전하는 것을 반대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역으로 전체 노동자계급이 그들의 삶을 책임질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노동자들은 자기 노동이 전체 노동자들에게, 사회에게 갖는 중요한 가치들을 자각하면서 노동에 대한 참된 자부심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들은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이윤추구 때문에 뒷전으로 밀리는 재난방지

    크게 볼 때 인간의 역사는 자연에 대한 이해와 통제의 능력을 강화해온 역사였다. 원시 시대에 인간은 산사태가 난 것을 산신령이 노한 것으로, 강의 범람을 강의 신이 공격한 것으로 여기고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으나 과학과 이성이 발달하면서 산사태와 강의 범람의 원인을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대비할 수 있었다. 지금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해 있기 때문에 자연재앙은 (완벽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정확히 예측할 수 있고, 어느 정도까지는 사전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 2004년 12월 동남아에서 20만 명 정도를 삼켜버렸던 동남아 쓰나미도 과학자들은 정확히 예견했고 철저히 대비하라고 눈물겹도록 호소하기까지 했다. 2005년 8월 말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카트리나에 대해서도 과학자들은 내다봤고 정부의 대비를 강력히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남아 자본가정부나 미국 자본가정부 모두 자본가들의 이윤추구를 뒷바라지하거나 야만적 침략전쟁을 계속 밀어붙이는 데 집중했을 뿐 재난방지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결과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해는 돌이킬 수 없는 대재앙이 되어버렸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미국 사회에 돈이 없는 게 아니다. 다만 돈이 자본가들의 호주머니로 계속 굴러들어가 다수 사회구성원들을 위해 사용되지 않았을 뿐이다. 250억 달러 정도만 투자했으면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이 돈은 큰 게 아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부시가 부자들에게 세금을 감면해 준 게 1,973억 달러다. 이건 카트리나를 8회 대비할 수 있는 거금이다. 2004년 한 해 동안 세 개 석유회사(엑슨, 셸, 셰브론텍사코)의 이윤증가액은 580억 달러였다. 그 절반만 사용했어도 뉴올리언즈의 재앙은 막을 수 있었다. 더 중요한 사례가 있다. 이라크를 점령하는 데는 한 달에 50억 달러나 든다. 지난 4년 동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점령하는 데 들어간 돈은 적어도 3,000억 달러는 넘는다. 이 비용이면 뉴올리언스를 12회나 지킬 수 있었다. 이런 사례들은 뉴올리언스 재앙이 사실은 이윤증식을 지상명령으로 삼는 자본주의 체제 때문에 발생한 ‘자본주의 재앙’임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노동자해방을 향한 계급투쟁

    자본주의는 화석연료를 마구잡이로 사용해 지구를 온난화하고 끔찍한 자연재앙을 계속 낳고 있다. 자본가들과 그 정부 관료들은 자기 입으로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약속하는 순간에도 이윤증식의 화신이 되어 화석연료를 쉴 새 없이 시뻘겋게 태우고 있다. 더 나아가 자본가정부는 갈수록 커지는 자연재앙의 위험성에 철저히 대비하는 게 아니라 전쟁, 기업 지원에 혈안이 되어 재난대비 예산을 감축함으로써 재앙을 키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과 그 정부에게 다른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본주의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오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탄생했는데, 낡고 쇠퇴해가며 마지막 발악을 하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자본주의가 낳는 끔찍한 재앙들은 ‘야만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으려거든 노동해방 사회로 과감하게 나아가라’는 선배 노동운동가들의 말을 더욱 강력하게 입증해준다. 더 이상 비참한 임금노예로 살아가지 않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대재앙으로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동자계급은 노동해방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
      노동자가 주인되는 해방세상을 건설하고자 한다면 노동자계급은 임금인상, 고용안정, 정규직화, 노동법 개악 저지, 노동3권 쟁취에만 투쟁의 범위를 한정해선 안 된다. 노동자계급은 세계 자본가계급에 맞서 국제적으로 단결하고, 수많은 피억압 인민을 진두지휘할 수 있을 때 완전한 해방을 쟁취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환경문제를 포함해 자본주의가 낳는 모든 사회적 모순에 대해 냉철하게 이해해야 하며, 이런 모순을 깨뜨리기 위해 선두에서 온몸으로 투쟁해야 한다.
      하지만 환경문제처럼 여러 계급이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문제에서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조직적 독립성을 지키는 것에 더욱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본가계급의 입에 발린 말에 절대 현혹당하지 말아야 하며, “전 인류를 위협하는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모든 계급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소부르주아의 계급협조 사상에 조금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이런 문제일수록 더욱 날카롭게 노동자계급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자본가계급과 그 정부에 대한 비타협적 투쟁 없이 쟁취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자계급이 앞장서서 노동해방을 향해 가열차게 진군할 때만 자본주의가 낳은 환경대재앙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 한마디로 노동자계급의 구호는 “자본주의의 철폐 없이는 환경문제의 해결도 없다.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투쟁만이 해결책이다! 이것을 몰계급적인 환경문제 해결로 치환하는 모든 입장을 반대한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환경문제는 결국 인간이 자연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인간이 자연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인간들 내에서 인간이 서로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가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만약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이윤을 위해 타인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적대적 계급사회라면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도 적대이고 파괴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다.
      만약 인간 사회가 소수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다수의 장기적 이익을 희생하고 파괴하는 야만적 체제라면 자연과 맺는 관계도 동일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선결적인 것은 자본주의 체제를 노동자계급의 공동체적 체제로 대체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단호한 계급투쟁, 노동해방투쟁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이것에 종속시키지 않고 제기하는 환경운동이란 사실상 유일한 해결책(노동자의 계급투쟁)을 도외시하고 헛된 망상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신문방송에서 널리 울려 퍼지는 지구온난화와 대재앙에 대한 공포의 목소리, 재앙으로 쓰러져가는 노동자민중의 비참한 모습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노동해방을 향해 더욱 단호하고 더욱 과감하게 투쟁하라![끝]
    35 자본주의는 어디로  조돈문_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계급 계급의식 08·02·09
    34 자본주의는 어디로  미상_북한 국가자본주의의 역사와 전망 08·02·11
    33 자본주의는 어디로  정성진_케인스주의 비판 및 한국경제 관련 자료 08·02·25
    32 자본주의는 어디로  경제민생점검회의_2006년 경제 운용방향 08·02·25
    31 자본주의는 어디로  장석준_신자유주의와 사민주의, 케인스주의 간의 관계 08·02·25
    30 자본주의는 어디로  노해연_중국이 보여주는 자본주의와 노동운동의 장래 08·02·25
    29 자본주의는 어디로  샤이크_복지국가에서 누가 "복지"를 지불하는가? (영문) 08·02·25
    28 자본주의는 어디로  노해연_왜 노동자와 자본가는 끊임없이 대립하는가 08·02·27
    27 자본주의는 어디로  노해연_임금 투쟁 일반론 08·03·19
    26 자본주의는 어디로  노해연-54호] (교육자료) 임금의 비밀과 임금투쟁의 원칙 08·05·11
    25 자본주의는 어디로  노해연-53호] 자본주의와 고용불안 08·05·11
    24 자본주의는 어디로  노해연-53호] 부동산 폭등 - 발광하는 자본주의 암세포 08·05·11
    자본주의는 어디로  노해연-47호] 자본주의와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대재앙 08·05·12
    22 자본주의는 어디로  노해연-47호] 황우석 사기의 진짜 주범은 자본의주다 08·05·12
    21 자본주의는 어디로  노해연-22호] 시장개방문제에 대한 노동자의 태도 08·05·12
    123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GGAMBO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4동 241번지 2층ㅣ전화 02-794-1917ㅣ이메일 swl@jinbo.net
    No copyright, Just copyleft! 홈페이지에 공개된 모든 자료는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