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문패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진짜 노동조합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많은 노동조합들이 이명박의 노동조합 죽이기 공격에 움츠러들면서 노동자들의 권리보장은커녕 노동조합이라도 지켜내는 것조차 힘겨운 상황과 마주치고 있다. 집중포화를 맞고 심각한 후퇴와 고난의 시기를 거치고 있는 공무원 노동조합이 그 단적인 사례다.
탄압이 겨냥하는 노림수
정부는 공무원 노동조합에 대해 불법노조로 낙인을 찍어 설립필증을 반려하고 사무실을 패쇄하고 조합비를 원천공제하지 말도록 지시함으로써 노동조합을 마비시키려 했다. ‘규약이 총회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 ‘해고자들이 조합원 신분을 가진다는 점’, ‘정치적 지위향상, 조국통일 등의 정치활동을 하려 한다는 점’이 정부가 공무원 노조를 불법이라고 몰아붙이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이를 통해 정부가 노리는 것은 법의 테두리에 갇힌 껍데기 노동조합으로 공무원 노조를 길들이고,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다. 투쟁으로 돌파하는 대신 정부의 주문대로 응해서 합법노조가 되겠다는 갈망에 사로잡히게 되면 덫에 걸리게 된다.
이것은 상당부분 먹혀들고 있다. 공무원 노동조합은 해고자들의 조합원 신분을 배제시키고 정치적 지위향상이란 문구도 삭제한 규약안을 총투표에 부치면서, 설립필증을 받아 합법화한 노동조합에서 질기게 싸워나가자고 가결 선동에 대대적으로 나서고 있다. 해고자를 청산하고, 정치적인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고서야 조합원들은 합법적인 노동조합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으로도 노동조합 설립필증이 교부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한 번 맛을 본 정부가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또 몇 가지 조건을 내걸지 누가 알겠는가?
노림수의 확대
노조설립필증을 가지고 장난치는 정부의 의도는 분명하다. 노조를 자신의 입맛대로 길들이면서 껍데기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만약 길들어지기를 거부하면서 진짜 노동조합을 지키려 한다면 불법 딱지를 붙여 탄압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공격은 비단 공무원 노동조합만이 부딪히고 있는 문제는 아니다. 최근 철도 노동조합 또한 불법파업의 멍에를 쓰지 않기 위해 합법적인 절차에 의존하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합법적인 파업을 조직해냈다. 그러나 파업에 돌입하자마자 자본가들은 불법파업이라며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자본가들과 정부는 대규모 인원감축와 외주화, 임금삭감 계획으로 채워진, 정부의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에 전면적으로 반기를 들었다는 점, 노동조합이 해고자의 복직 요구안을 제기했다는 점을 불법 파업의 근거로 들었다. 공무원 노조 불법 규정과 기본적으로 똑같다. “해고자들의 복직을 포기하고”, “대규모 인원감축와 외주화, 임금삭감에 맞선 투쟁”을 포기해야 ‘합법’ 문패를 달아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투쟁을 포기하는 노동조합이라면 문패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철도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이 만에 하나 합법주의의 포로가 되어 껍데기 문패에 집착하는 순간, 철도 노동조합은 어떤 의미 있는 요구안도 제시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 와중에 철도 노동조합이 2009년 11월말에 제출한 노동조합 최종안(사측의 거부로 없던 일로 되었다)에 2010년 노사평화 선언(2010년 쟁의행위 중단 포함)이 담겨있었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나면서 문제가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
진짜 노동조합
결국 이 모든 것들은 민주노조 말살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거부하면 불법으로 규정해 탄압하고, 거부하지 않으면 길들여서 민주노조의 성격을 지워버리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무원과 철도 현장의 활동가들을 포함하여 전국의 전투적인 활동가들 모두에게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사활적인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불법 규정을 겁내지 않고 정부와 맞장뜨는 전면전으로 함께 전진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씩 고개를 숙이고 민주노조의 심장을 스스로 도려낼 것인가, 양자 택일의 문제 앞에 우리는 놓여 있다.
공공부문 현장 활동가들은 현장에서 활력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는 활동가들의 망을 적극적으로 짜고, 이 활동가들이 현장의 노동자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합법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현장전략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나가야 한다. 한편 단사를 넘어서는 계급적 시야를 현장 노동자들 속으로 끊임없이 퍼 나르는 활동기풍을 세워나가면서 정부의 공세에 맞설 수 있는 노동자 정치총파업의 부대로 전진해나가야 한다.
이것은 지금 당장은 작더라도 장기적으로 의미 있는 진지를 현장에서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보다 진지하게 활동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적들은 불법의 올가미를 가지고 우리를 포위해오고 있다. 이에 맞선 반격의 한 걸음을 어디에서부터, 누구와 함께 조직해 나가야 하는가?
김상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