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가들은 왜 사회주의를 두려워할까?
[편집자] 이번 14호부터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기획연재를 싣습니다. 사노련 사건으로 사회주의가 공론화되면서 “사회주의가 정확히 뭐냐?”, “사노련이 말하는 사회주의는 다른 데서 말하는 사회주의와 어떻게 다르냐?” 하는 질문들을 받고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순서로 10회에 걸친 사회주의 연재를 통해 이런 질문과 궁금증에 대답하고자 합니다. 많은 노동자 동지들이 사회주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호에서는 연재에 들어가기에 앞서 사회주의에 대한 총론적 차원의 글을 먼저 내보냅니다. 다음호부터 제1회, 시작합니다.
1. 취업계약에 담긴 비밀 - 착취는 무엇이고 왜 발생하는가?
2. 왜 많은 노동자들이 잔업, 특근을 바라는가? - 강화되는 착취의 올가미, 실업 문제
3. 왜 노동자는 월요일을 싫어하는가? - 노동의 소외
4. 월가의 파산, 예고되는 대공황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 - 시장경제냐 계획경제냐
5. 노동자가 공장, 사무실, 철도를 소유 운영한다면? - 착취의 폐지
6. 왜 경찰은 악질 사장은 보호하고, 노동자 파업에는 투입되는가? - 자본가국가의 실체
7. 노동자가 국가를 스스로 운영할 수는 없는가? - 노동자 권력
8. 인간본성은 이기적인가? 사회주의는 사람들을 다 똑같이 만드는 전체주의인가?
9. 17년 10월 러시아에서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 그 뒤 어떻게 관료집단이 등장했는가?
10. 사회주의자 당과 노동자 투쟁
사회주의 연재 총론 자본가들은 왜 사회주의를 두려워할까?
‘사회주의’란 말은 탄생 시부터 증오와 모략,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회장들, 사장들, 권력자들, 고위 장교들의 특권과 이익, 거짓말을 정면으로 공격했기 때문이다. 반면 모든 것을 다 만들어내지만 보잘 것 없는 것만을 얻는 사람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만들어냈다는 이유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 길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 즉 가난한 노동자 민중들에게 ‘사회주의’는 가슴 벅찬 희망이었다.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노동자 민중의 행렬이 얼마나 거대했던가는 두 사례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모던 타임즈"
위대한 영화감독이었던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는 대공황과 세계대전으로 점철되었던 1920, 30년대 당시의 시대 분위기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1936년에 제작된 ‘모던 타임즈’에는 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노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해고 통보를 받은 이 노동자는 지나가던 차에서 떨어진 빨간 깃발을 주워들고,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소리치고 흔들며 달려간다. 그런데 불과 몇 십 분이 지나지 않아 이 빨간 깃발 뒤로 수천 명의 실업자, 노동자,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 거대한 군중은 왜 빨간 깃발 뒤에 몰려들었는가? 대공황과 전쟁 속에서 삶과 목숨이 절체절명의 위기로 내몰려 간절히 탈출구를 찾던 가난한 사람들은 빨간 깃발이 상징하는 ‘사회주의’를 지지했던 것이다. ‘사회주의’를 향한 노동자들의 거대한 결집, 그리고 ‘사회주의’말고는 대공황과 전쟁, 실업 등으로부터 탈출할 길은 없다는 점을 모던 타임즈를 통해 찰리 채플린은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 영화는 전 세계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열화와도 같은 지지를 받았다. 단지 영화만이 아니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노동자 정당 주위로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80% 이상이 결집했다.
원산노동자 총파업
한국과는 무관한 다른 나라의 역사만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사회주의 운동의 전통은 한국 노동자계급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다. 일제하 가장 큰 노동자 파업투쟁으로 기록되는 원산노동자 총파업을 보자.
1929년 1월 29일, 대량해고, 깡패들의 대대적인 동원 등 자본가들의 공세에 맞서 원산노련은 총파업을 선포했다. 원산노련은 식량과 기금을 아끼기 위해 하루 두 끼만의 식사를 하고, 술과 담배를 끊었다. ‘한 잔의 술, 한 개비의 담배, 한 푼의 낭비도 반동’이라는 단호한 구호가 내걸렸다. 원산과 일본을 오가는 화물선의 일본노동자들은 일본경찰이 코앞에서 쳐다보고 있는데도 대담하게 ‘원산노동자 총파업 만세!’를 외쳤다. 자본가들이 파업파괴자를 모집하기 위해 원산시내에 3,000장의 광고지를 뿌렸지만, 모집에 응하는 한국인 노동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무려 4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일본 경찰, 군대, 깡패들에 맞서 원산노동자 전체가 전개한 총파업은 식량이 바닥나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고 다치고 감옥에 갇히면서 결국 막을 내렸다.
일제하 가장 강력했고 대규모였던 원산노동자 총파업은 누가 주도했던가? 물론 원산노동자 전체가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이 총파업의 중심부에는 사회주의자들이 있었다. 경찰은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이 모든 노력은 실패했다. 경찰 취조실에서도 그 많은 조합원들 중 누구도 이른바 “빨갱이”가 누군가를 불지 않았다. 이처럼 ‘사회주의’와 노동자 민중은 이곳 한국에서도 하나로 만나고 있었다. 그랬기에 해방 직후에 ‘전국노동조합평의회’(전평)를 비롯한 노동자 조직들에서 주도권은 확실히 사회주의 운동에 있었다. 미군정의 잔인한 살인통치, 일제하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계승한 국가보안법과 같은 야만적인 억압이 없었다면, 사회주의 운동의 힘은 더욱 거대했을 것이다.
70년 후
모던 타임즈와 원산노동자 총파업으로부터 대략 70-80년이 흘렀다. 지금 ‘사회주의’는 어디쯤 있는 것일까? 모던 타임즈에 등장한 빨간 깃발 뒤로 노동자 민중이 구름처럼 모여들던 상황은 더 이상 없다. 원산노동자 총파업처럼 다수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자들을 전면 지지하고 온힘을 다해 보호하던 그런 상황도 더 이상 없다. ‘사회주의’에 작별을 고해야 하는가?
자본가들과 보수언론들, 정부는 그렇게 말한다. “끝났다!” 그런데 왜 이들은 ‘사회주의’를 여전히 두려워하고, 탄압하는 것일까? ‘사노련 사건’은 자본과 정부, 자본가 언론은 결코 ‘사회주의가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고, 그냥 놔두면 거대한 힘을 회복할 잠재력이 있다고 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그들의 판단이 옳다고 믿는다. ‘사회주의’의 어떠한 힘이 그러한 공포를 만들어내는지를 노동자 민중에게 알리는 것, 바로 그것이 ‘사회주의’를 알리는 기획 연재 기사를 시작하게 된 이유다.
사회주의에 대한 공포의 비밀
‘사회주의’가 수십 년간 영향력을 회복해오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사회주의’하면 사람들은 소련과 북한의 관료체제를 떠 올린다. 하지만 소련, 북한 체제는 사회주의를 파괴하고 등장했거나 사칭하면서 등장한 노동자 민중에 대한 또 하나의 억압과 착취체제에 불과하다. 그러나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자본가언론들은 ‘사회주의 체제 = 소련, 북한의 관료지배 체제’란 등식을 강요한다. 또한 한국에서 사회주의는 미군정과 6.25전쟁,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폭력과 억압’으로 강제 매장되었다. 사노련에 대한 탄압에서 증명되듯이, 진정한 사회주의를 널리 알리는 것은 지금도 억압당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매일처럼 만들고 확대해오고 있는 착취, 억압, 파국, 전쟁, 환경파괴 등이 노동자 민중에게 “자본주의는 이 따위 재앙들을 불러오고 있다. 이 야만적 체제의 수레바퀴 밑에 깔려 신음할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대안으로 전진할 것이냐?”를 계속 질문한다. 이 질문이 생기는 한, 아니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치열하게 질문할 수밖에 없는 한, 자본주의에 맞서는 거의 유일한 혁명적 대안으로 150년 이상 생명력을 이어온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영원불멸을 꿈꾸는 자본가계급에게 공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사노련 또한 바로 이 질문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지금부터 사노련은 이 질문에 하나씩 대답하면서 ‘노동자계급의 해방 사상인 진정한 사회주의의 전통’에 대해 노동자들과 대화하고자 한다.
최영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