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란 무엇인가<9>
1917년 러시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사회주의는 이미 '실패'한 것이 아닌가?
사회주의는 ‘이상적으로는’ 좋은 얘기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패했고, 또 실패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들의 단골메뉴는 러시아 사례다. 하지만 러시아 사례는 사회주의혁명이 반드시 패배한다는 걸 보여준 게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줬을 뿐이다. 그와 함께 한 나라의 사회주의 혁명은 세계혁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줬을 뿐이다.
일용노동자가 시장이 되다
10월 혁명 직후에 분노에 찬 어느 반동 장군이 이렇게 적었다. “일용노동자가 시장이 된다. 자물쇠 제조공이 공장주가 된다. 짐꾼이나 경비원이 갑자기 재판장이 된다. 병원의 조수가 병원장이 된다. 이발사가 관리자가 된다. 병사가 총사령관이 된다. 누가 이 사실을 믿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전에 일용노동자였던 시장이 옛 관료들의 저항을 분쇄했다. 마차에 기름칠하던 일꾼이 수송체계를 정상화시켰다. 자물쇠 제조공이 공장을 가동시켰다. 병사가 장군을 패배시켰다. 이런 일들이 벌어질 때 믿지 않을 수 없었다.
1917년 10월 혁명으로 이렇게 노동자들은 ‘세상의 주인’이 됐다. 이런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났는가? 자본가들이 흔히 그렇듯이, 러시아에서도 소수 음모가들이 노동자들을 ‘꼭두각시’으로 앉혀 놓은 것인가? 아니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1917년에 자신의 운명이 걸려 있는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장악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수많은 강연, 논쟁, 연설들이 극장, 원형극장, 학교, 술집, 소비에트[노동자평의회] 집회장, 조합 본부, 병영, 전선의 참호, 마을의 광장, 공장의 모임들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푸틸로프 공장에서는 노동자 4만 명이 쏟아져 나와 사회민주당, 사회혁명당, 무정부주의자들과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주장을 경청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러시아 전역에서, 모든 길모퉁이는 몇 달 동안 공적 발언을 위한 연단으로 사용됐다. 또, 기차와 전동차를 비롯한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즉석 논쟁을 벌였다.”(<세계를 뒤흔든 열흘>)
노동자들의 혁명투쟁이 세계로 퍼지다
1차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고, 해고당하며, 자유를 억압받았다. 그 때 러시아에서 노동자혁명의 소식이 들리자, 전 세계 노동자들은 커다란 힘을 얻어 혁명투쟁에 떨쳐 일어섰다. 1918년 오스트리아, 헝가리, 독일의 200만 노동자가 파업했다. 1918년 11월에는 독일 노동자들이 봉기했고, 1919~20년에는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대대적인 점거파업을 벌였다. ‘피억압 민족의 해방’을 선언하고 그대로 실천한 러시아 혁명에 고무 받아 조선에서도 3·1 운동이 터져 나왔다. 중국에서는 부패한 정부에 반대해 5·4 운동이 일어났다. 이렇듯 러시아에서 붙은 혁명의 불은 전 세계로 삽시간에 옮겨 붙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러시아를 제외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노동자혁명이 성공하지 못했다. 세계 노동자계급은 세계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는 풍부한 잠재력을 보여주었지만, 세계 노동자혁명의 거센 파도를 앞장서서 이끌고 나갈 강력한 지도부, 즉 세계 혁명정당이 올곧게 서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혁명을 짓밟고 반혁명이 들어서다
이쯤에서 누군가는 “결국 사회주의혁명은 실패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끔찍한 전체주의 사회로 나아가지 않았느냐?”라고 물을지 모른다.이런 질문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마치 가을이 겨울에 길을 내주는 것이 필연이듯이, 사회주의혁명이 실패하고 전체주의에 길을 내주는 것도 필연인가?
그건 아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탄생한 수많은 민주노조들이 어용노조, 관료적 노조로 타락해갔다. 현중노조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런 타락은 반드시 일어나기 마련인가? 이런 타락을 막고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한 모든 노력은 헛수고일 뿐인가? “그렇다”고 쉽게 답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주노조가 타락한 것은 ‘노동자계급 대 자본가계급의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이 밀렸기 때문이다. 즉 노동자계급의 힘이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인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힘을 더 키울 수 있다면 민주노조의 타락도 막을 수 있다.
마찬가지다. 러시아 노동자권력이 타락하고 변질했던 것도, 타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을 상대로 한 세계적 계급투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사회주의혁명을 한 나라에서 ‘시작’할 수는 있지만, 사회주의를 한 나라에서 ‘완성’시킬 수는 없다. 사회주의혁명은 세계로 힘차게 뻗어나가 세계 자본가계급을 패배시킬 때만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세계 노동자계급은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등 여러 나라에서 혁명을 성공시킬 기회를 얻었지만, 승리하지 못했다. 그 결과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1918~1921년에 세계 자본가계급이 일으킨 끔찍한 반혁명 전쟁에 맞서야 했고, 쓰라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전쟁터에서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들 다수가 쓰러졌다. 전쟁을 거치며 산업과 운송은 마비됐고, 기아와 전염병이 극심해졌다. 1921년쯤 산업노동자 전체의 숫자는 3백만 명에서 1백 25만 명으로 줄어들었고, 남아 있던 노동자들도 정치적으로 기진맥진해 있었다.
당시에 러시아 자본가계급은 정치권력도 잃고, 공장과 기계에 대한 소유권도 박탈당했지만 여전히 문화적 영향력은 막강했다. 반면 후진 농업국에서 사회주의혁명을 성공시킨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정치·군사적 측면에서는 강했지만, 문화적 측면에서는 아직 약했다.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건설의 길로 들어섰기에 과거의 모범을 통해 배울 수도 없었다. 오직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조금씩 전진할 수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러시아 자본가계급은 노동자권력 안으로 관료주의와 같은 병균을 침투시키고 강화시켰다. 전쟁을 거치며 기력은 쇠약해진 반면, 문화적 투쟁능력은 아직 약한 노동자권력이 그런 자본주의 병균에 제대로 맞서기 어려웠다. 그래서 빠르게 반혁명 권력으로 변질해갔다.
이런 반혁명을 거쳐 등장한 스탈린 반동권력은 노동자의 민주적 권력이었던 소비에트를 빈껍데기로 만들어버렸다. ‘미국 같은 선진 (자본주의)국가를 따라잡자’고 외치며 노동자들을 혹사시켰다. 강제 집산화로 토지도 빼앗았고, 수많은 농민의 목숨도 앗아갔다. 그리고 혁명가들을 대거 숙청했다. 그래서 사회주의혁명과 자본주의 반혁명 사이로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간난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다 한 번 넘어졌다고 해보자. 이때 “너는 한 번 넘어졌으니 영원히 계속 넘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걸음마를 아예 포기하게 만드는 부모가 있을까? 마찬가지로 자기 축구 팀 선수들이 한 경기에서 패배했다고, 아예 축구를 그만두라고 요구하는 코치가 있을까? 좋은 부모, 좋은 코치라면 “다음에는 잘 할 수 있다”고 믿고 격려하면서 다음에는 꼭 잘할 수 있도록 성심껏 도와줄 것이다.
사회주의혁명도 그렇다. 한 번 졌지 영원히 진 게 절대 아니다. 예전엔 세계 노동자계급의 힘이 약해 패배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해 세계 노동자계급의 숫자도 월등히 많고, 단결투쟁의 잠재력도 훨씬 더 크다. 공황, 대량실업, 전쟁 같은 자본주의 위기 상황은 세계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강하게 요구한다.
따라서 노동자투사들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의 교훈은 ‘자본주의여 영원하라’가 아니다. ‘다시 또 다시 사회주의’다! 배우고 또 배워 패배한 혁명을 다음 혁명의 성공을 위한 어머니로 만들자! 전 세계 노동자계급이 스스로의 힘을 자각하고 똘똘 뭉쳐 싸우면 다가오는 혁명에서는 세계 자본가계급이 패배할 것이다. 세계 노동자계급은 착취와 억압의 쇠사슬을 싹둑 끊어버리고 찬란한 새 세상을 활짝 열어젖힐 것이다.
김형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