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가국가의 수반, 차베스에 여전히 환상 품고 있는 사노준 활동가
나는 지난번에 ‘사노준은 차베스에 대한 위험한 환상을 불어넣고 싶은가?’라는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렸다. 그리고 어느 사노준 활동가가 사노준 신문인 <문제는 자본주의다> 15호에 <답변>을 썼다.
사노준 활동가는 우선 <문제는 자본주의다>의 기사가 차베스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을 부정직하게 감추려 든다. 하지만 그가 차베스와 베네수엘라에 대해 쓴 기사는 문구마다 차베스에 대한 환상이 배어 있다. 나는 이 환상을 폭로하고자 한다.
차베스는 베네수엘라 노동자혁명의 ‘선도자’인가 아니면 ‘억압자’인가?
<답변>은 차베스 정부에만 시야를 가두지 말고 베네수엘라혁명 전체를 보자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베네수엘라혁명 전체를 고려하기 때문에 차베스 정권에 대해 아주 분명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레닌이 말했듯이, 혁명의 근본문제는 권력의 문제다. 따라서 베네수엘라혁명의 근본문제는 ‘베네수엘라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해 차베스 정권을 지지하고 강화해야 하는가? 아니면 차베스가 이끌고 있는 자본가국가를 타도하고 노동자권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있다.
차베스는 집권 초기부터 노동자투쟁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냈는데, 권좌에 앉아 있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노동자투쟁에 대한 적대감도 더 커지고 있다. 2006년 초 도자기 제조업체 노동자들이 6주 동안 점거농성하고, 2007년 소유주가 회사를 닫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차베스는 그 회사의 국유화를 거부했다. 2007년 4월, 집회에 참석하려던 그 공장 노동자들은 경찰과 군인들한테 공격당했다. 21명이 연행되었고, 14명은 총에 맞아 부상당했다.
2007년 9월,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경찰의 공격을 받았다. 3시간 동안의 충돌로 40명의 노동자가 체포됐고, 한 명이 왼쪽어깨에 총상을 입었다. 경찰의 습격 소식을 접한 여러 도시의 노동자들 4,000여 명이 즉각 작업을 중단했다.
차베스가 ‘반제국주의 투사’인가?
<답변>은 차베스 정권이 ‘반제국주의’ 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썼다. 하지만 차베스 정부는 미국 부시와 신자유주의를 격렬히 비난했지만, 미국에 꼬박꼬박 석유를 수출했고 외국 자산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더욱더 중국, 러시아 등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 아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이런 차베스를 반제국주의 투사로 봐야 하는가? 결코 아니다! ‘러시아, 중국 등 또 다른 제국주의 국가의 하위 파트너’일 뿐이다.
차베스가 이란을 비롯해 다른 ‘반미정권’ 등과 추진해 왔던 ‘반미연대’도 ‘자본가국가들 사이의 연대’일 뿐이다. 차베스는 지금까지 이란을 모두 8번이나 방문해, 이란 대통령과는 서로를 ‘형제’라고 부를 정도다. 올해 이란에서 대규모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을 때, 이를 가장 먼저 비판한 인물이 차베스였다.
환상을 갖는다고 무엇이 변하느냐고? 자본가국가에 대한 환상은 노동자혁명을 파멸시킨다
<답변>은 “차베스에 대한 위험한 환상? 설사 환상을 갖든 비판적 관점을 갖든 무엇이 변하는가?”라고 아주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환상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을 봉쇄했으며, 혁명을 향해 전진하던 노동자계급의 목을 부러뜨렸고, 파시즘 같은 반혁명에 길을 활짝 열어주었다.
차베스에 대한 환상은 한국노동자들에게도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같은 의회주의 세력들은 계속 말해왔다. “20세기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혁명은 실패했다. 하지만 차베스를 보라. 그는 선거를 통해 집권해서 사회주의 혁명을 상당히 잘 선도하고 있지 않는가?” 상당히 많은 노동자들이 이런 의회주의 세력의 선동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다. 그 결과는 무엇이겠는가?
한국에서도 노동자계급 스스로 계급의식을 키우고, 단결투쟁력을 강화하면서 진정한 노동자권력을 수립하기 위해 분투하는 길 대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의 소부르주아 엘리트들이 국회의원, 지자체, 대통령 선거에 나가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더 많은 (지방)권력을 ‘분점’하고 더 나아가 ‘집권’하는 길이 좀 더 효과적인 길이라고 믿지 않겠는가?
사회주의 세력의 경우에도 차베스 정권이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 또는 촉매’라고 환상을 품으면, 선거구에서 열심히 ‘주민’들과 만나면서 표밭을 일구거나, 차베스 같은 뛰어난(?) 인물을 내세워 (자본가 국가권력을 그대로 둔 채) 대통령직을 장악하는 데 힘쓰면서 ‘현장 중심의 노동자 투쟁기구를 기반으로 한 노동자혁명’을 포기하거나 경시할 위험, 그리고 진정한 노동자 혁명정당의 사활적 중요성을 보지 못할 위험성이 크지 않겠는가? [이 글은 12월 21일에 사노련, 진보넷, 사노준 자유게시판 등에 올린 긴 글을 요약한 것으로, 관심 있는 독자들은 글 전체를 읽어보기 바란다.
김형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