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현장권력 문제에 대한 기초 자료 글들 중 하나입니다. 몇 가지 영어 문건 보면서 임시로 짜깁기 한 글이니 그냥 참고만 하십시오. 계속 올려놓겠습니다.
현장권력(노동자 통제권), 노동자 경영, 계획경제
대공장 노조들이 산별 전환 하면서 그 나마 잔존하는 현장권력의 요소들마저도 더욱 약화될 위기에 처해지고 있다. 이제 산별노조 체제 하에서 과거 “기업별” 시절의 ‘현장권력 쟁취!’는 낡아빠진 슬로건으로 치부되는 분위기가 퍼져가고 있다. 산별 교섭을 통한 산업 차원의 정책 개입 및 이와 연동한 경영 참가가 노조운동의 본령이라고 하면서 ‘현장권력 쟁취’는 대공장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낡은 방식의 투쟁 양태라고 비난받는다. 아니, 개량주의 ․ 관료주의 세력들이 그런 논리들을 유포하고 악선전을 한다. ‘전투적 조합주의’에 대한 공격도 여기서 나온다.
개량주의 세력들은 이미 90년대 초부터 ‘현장권력 쟁취!’ 보다는 ‘경영 참가’를 내세워 왔다. 경영참가는 산별노조가 일반화되어 있는 독일에서 가장 널리 퍼져 있다. 경영참가를 하면서 노동조합은 계급투쟁 기구에서 계급협조 기구로 되어버렸다. 노조 지도부들은 작업장 현장으로부터 철저히 유리되었고, 노동자들로부터 잉여노동을 어떻게 더 잘 짜낼지를 사측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결정하는 것이 자기 일이 되었다. 양보교섭을 하고, 정리해고와 전환배치에 동의해주고, 작업속도를 높이는 데 동의해주고, 대의원 작업중지권을 없애는 데 동의해주고 등등. 기껏 노측에 허용된 것이라곤 노동자들이 푸른색 작업복을 입을 것인가, 회색 작업복을 입을 것인가 따위의 사안들이었다.
1930년대 초에 트로츠키는 이렇게 설명했다. “노동자의 경영참가가 지속적이고 안정적이고 ‘정상적’인 것이려면, 그것은 계급투쟁이 아니라 계급협조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협조는 [현장 차원이 아닌] 오직 노동조합 상층부와 자본가 단체 간 [노사정위 등]을 통해서만 현실화될 수 있다. 그러한 실험들이 적잖이 있어 왔는데, 독일에서 ‘경제 민주주의’, 영국에서 ‘몬디즘’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사례들로 볼 때 말이 좋아 ‘참가’이지 자본에 대한 노동자 통제와는 전혀 거리가 멀고 실제로는 자본에 노동관료의 예속이다. 이런 예속 상태는 현장의 대중투쟁을 통제하면서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
현장권력(노동자 통제권)의 개념은 이러한 경영참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노동자는 순수 관념적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산에 실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사용자의 경영권에 실제적인 제약을 가하기 위해 통제권[현장권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현장권력은, 그 발달된 형태에서는 공장, 사업장 등에서의 일종의 이중권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트로츠키)
모든 공장과 작업장 내에서 사용자들은 그들 자신의 통제체제를 강요, 부과한다. 이들 자본은 경영진과 관리자들을 통해 노동조건이나 근무체계(교대제 등), 작업속도, 휴식시간 등을 결정한다. 자본은 생산과 노동과정에 대한 전제적 지배를 유지, 강화하려 하고, 작업 시간 및 동작을 효율화하는 시스템을 도입하여 잉여노동 착취를 극대화하려 한다. 이에 맞서 노동자들은 저항하고 대항력을 조직한다. 저항과 조직화의 정도에 따라, 즉 역관계에 따라 노동자들은 작업 조건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상층 노조 기구가 아니라 단위 사업장 조직으로서 공장위원회, 직장위원회 같은 조직이 이러한 저항과 투쟁 속에서 생겨난다. 현장으로부터의 압력을 통해 노동자들은 작업 배치, 작업중지권 등 안전 대책, 징계 문제, 노동강도 등 일련의 사안에 대해 사측으로부터 양보를 따낸다. 전반적인 역관계의 변화와 함께 이러한 권한을 강화시켜 가면서 나중에는 사측이 생산과 관련한 문제에서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는 단 한 발짝도 마음대로 나아갈 수 없게 되는 지점까지 현장권력의 수위가 끌어올려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장권력(노동자 통제권)은 항구적인 성격을 가질 수가 없다. 과도적인 성격이다. 현장권력은 기업의 몰수/ 국유화와 <노동자 산업경영>으로 나아가든지, 아니면 현장권력이 무너지고 일련의 권한들을 되빼앗기든지 둘 중의 하나로 결판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1935-38년의 노동자 대투쟁 기간에 공장점거 파업이 역사상 처음으로 전개되었는데, 이 공장점거 파업에서 현장권력 쟁취투쟁은 그 임계점에 도달했다. 공장은 노동자들의 수중에 있었지만, 노동자가 공장을 몰수, 수탈한 상황까지는 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어느 시점에선가 이 통제권을 다시 내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통제권은 노동자에게 있지만, 소유권과 처분권은 여전히 자본가에게 있는 상황, 일종의 경제적 권력공백 상황이다. 이 상황은 무한히 계속될 수 없다. 사용주들이 기업의 소유권을 쥐고 있는 한 그들의 지배권이 다시 노동자들의 머리 위에 들씌어질 것이다.
현장권력은 아래로부터 발전한다. 현장권력은 현장에서 자본의 전제적 지배를 거부하고 착취에 제약을 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바람을 반영한다. 현장권력 쟁취는 현장의 역관계에 달려 있다. 높은 수준의 현장권력이 있을 수 있고, 낮은 수준의 현장권력이 있을 수 있다. 모두 현장에서 역관계의 문제이다. 높은 수준의 현장권력은 현장의 역관계만이 아니라 사회의 역관계를 또한 반영한다. 노동자 혁명은 현장에서의 현장권력과 불가피하게 연동되어 있다. 현장권력 쟁취투쟁은 구 사회의 틀 내에서 새 사회의 요소들을 대표한다.
현재 베네주엘라에서 이런 과정이 전개되고 있다. 자본가들의 직장폐쇄와 경제 사보타지에 맞서 노동자들이 공장과 기업을 접수하고 스스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차베스 정부는 자본가들의 이런 반동적 책동으로 가동 중단된 1천개의 공장 명단을 작성하여 발표했다. 노동자들이 접수해서 운영해도 좋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본가들의 직장폐쇄 및 사보타지 책동을 분쇄하는, 아래로부터의 <기업 몰수/ 수탈>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는 가장 높은 수준의, 가장 발달된 <노동자 통제(현장권력)> 형태이다. 이런 형태의 노동자통제 체제라면 부르주아 국가의 파괴, 노동자의 전면적 공세,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는 일만 남은 상황이다.
러시아 혁명 속에서
10월 혁명 이전에 현장권력 쟁취를 위한 운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이 운동은 러시아 자본가들의 경제 사보타지에 맞서 출현하였다. 이러한 현장권력 운동은 혁명 이후에까지도 계속되었는데, 경제가 여전히 자본가들의 수중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볼쉐비키 정부는 러시아 노동계급의 문화적 낙후성과 인구상의 수적 규모를 고려하여, 노동자가 현장권력이라는 학습장을 통해 어떻게 경영의 책임을 떠맡을지에 대해 배우고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처음부터 국유화를 실시하지 않았다. 나중에 내전 발발이 있고 난 다음에서야 주요 산업에 대한 국유화 조치가 취해졌다.
경제의 주요 부문들이 국유화되고 나자 <노동자 경영> 문제가 제기되었다. 공장위원회가 만들어져 공장을 운영하였다. 현장권력(노동자 통제) 하에 경영자들을 선출하는 구상으로 나아갔다. 전문가들이 영입되었지만, 현장의 견제와 통제 하에 타이트하게 매여 있었다. 이것은 진정한 노동자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 <노동자 통제>가 민주적인 <노동자 경영>으로 가는 가교가 된 것이다.
노동자 통제는 그 한계가 있다. 소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자본가들의 수중으로부터 공장과 기업의 소유권이 탈취될 때만이 노동자들은 진정한 통제권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국유화된 계획 경제가 필요한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공장에서의 현장권력만이 아니라 산업 및 국민경제에 대한 <노동자 경영> 체제가 요구된다. 생디칼리즘적 자주관리는 안 된다. 전국가적인 경제 계획 속으로 서로 다른 산업 부문들을 통합시켜낼 수 있어야 한다. 한 공장, 한 지역, 나아가 전국 차원의 노동자 경영이 요구되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