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노동자들은 노동자 생산투쟁을 보여주었고 많은 지지를 끌어냈다. 전체 노동운동이 총자본에 맞서 공동투쟁을 조직하지 못 했던 것이다. 사진:민중의 소리)
그 따위 “양보”가 노동자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떤 동지들은 이런 질문을 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양보교섭을 전제로 한 수세적 기조를 피할 수 있는가? 공세적 기조는 사회적 고립을 자초하는 길 아닌가?” 이러한 질문과 관련해, 길지만 금속노조 정책국장의 글을 인용해보자.
“회사가 ‘선착순’을 선언하기 전에 노조가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100만 원을 가진 기업에서 100명이 1만 원을 받고 살다가 갑자기 50만 원으로 살아야 한다면, 100명 모두 살아남아 5천 원씩 받겠다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어설프게 고용도 지키고 임금도 지키겠다며 ‘전부(全部)’를 취하려 하면 거꾸로 ‘전무(全無)’라는 비참한 결과만 초래한다. .......
그것도 대충 어설프게, 어정쩡한 시점에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버려야 한다. 쌍용차를 바라보는 언론과 사회를 향해 감동을 던지겠다는 각오로 버려야 한다. 선제적인 자구안을 던진다는 것은 회사의 수용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여론의 힘을 얻음으로써 연대와 지원을 이끌어 내는 것이 목적이다. (<생존게임인가 계급투쟁인가?> 중에서, 금속노조 정책국장 조건준)
사회적 고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조건준의 말처럼 양보안을 아주 일찍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던진다면 우리 노동자들 앞에 놓인 어려운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 단언하건데 아니다.
실제로 이번 쌍용차 투쟁에서 노동조합이 양보안을 던지는 순간마다 그 결과는 결코 좋지 않았다. 자본과 정부는 그런 양보안을 받아보고 공격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양보하겠다는 의향이 있다면 정리해고를 받아들여라! 그것 말고는 회생의 길이 없다!’고 더 강경하게 나왔다.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지형은 조건준의 희망과는 정반대로 ‘무엇이 실질적인 양보이며 회사 회생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산 기업의 회생의 방향은 정해져있다. “정리해고를 확대하면 할수록 회생 가능성은 높아진다!” 진정으로 사회적 원군을 조직하는 것, 노동자계급을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지지부대로 조직하는 것은 정반대의 길을 요청한다. “책임이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들에게 있다는 점, 그래서 노동자가 희생당할 수는 없다”는 점을 정면으로 제기하면서 치고 나가는 것이다.
조건준은 노동자가 선제적 양보를 하면 사회적 여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호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양보주의 노선이 획득할 수 있는 ‘사회적 여론’이란 사실 ‘자본주의 체제의 지지’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가 노동자의 양보에 박수를 보내고 노동조합의 제안에 호의와 지지를 보내는 것은 오직 ‘정리해고 수용’과 같은 거대한 패배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경우에 국한된다. 반면 다수 노동자계급은 이 양보를 결코 지지할 수 없다. 이 양보를 지지하는 순간, 자신들에게도 임금삭감과 노동조건 개악 등과 같은 공격이 물밀 듯이 몰려들 것이 불을 보듯 분명하기 때문이다. “저 투쟁은 우리 자신을 위한 투쟁이다. 기필코 연대해서 승리하도록 만들겠다”는 연대의 굳센 각오는 눈처럼 녹아버리면서 사라지고 만다.
결국 양보주의 노선이 불러오는 사회적 여론은 노동자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절벽 밑으로 몰아붙이고, 더 결정적이고 파멸적인 양보를 강요한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말이다. 반면 투쟁하는 노동조합에 대한 진정한 연대, 즉 전체 민주노조 조합원들의 열성적인 연대를 가로막으면서 고립을 자초한다. 오직 노동자계급 전체의 요구를 공세적으로 단호하게 내걸면서, 대공장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중소공장 노동자의 공동투쟁과 단결을 확대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만이 공장 밖의 힘을 전취하는 노동자의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조건준 국장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반성
쌍용차 노동자들도 그러한 사활적인 문제에 봉착했었다. 위축된 상태에서 사회적 고립을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비겁하게 굴종하지 않았고 과감한 투쟁을 선택했다. 정리해고를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위축시킨 그 과거, 그 출발점의 상태는 온갖 것을 희생하고 전진했던 쌍용차 노동자들을 순간순간 기습했다. “그동안 비정규직이 잘려 나갔을 때 뭐 했냐?”는 비판 뿐 아니라 “다른 부품사 노동자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계속 직면해야 했다. 게다가 스스로 연대투쟁을 좀 더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호소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투쟁과정에서 비정규직 해고를 용인하고 방치했던 쓰라린 과거를 반성했다. 중소사업장, 어렵고 힘들게 싸우는 장기투쟁 사업장의 현실을 이해하게 되면서 쌍용차 노동자들의 고립은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왔다는 사실,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오늘의 삶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직면하게 될 내일’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복지에만 안주하면서 노동운동의 원칙에 주목하지 못했던 것이 어떤 치명적인 문제를 품고 있었는지 느끼게 되었다. 이렇게 노동자들은 밝아오는 빛을 조금씩 빨아들였다. 물러설 수 없는 계급투쟁의 전망이 펼쳐지자 노동자 의식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는 것을 그들은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점거파업 초기부터 분임토론 과정에서 쌍용차 평조합원들의 입에서 이런 말들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다. “지금 우리와 연대하기 위해 전국에서 매일 오고 있지만, 그 규모는 아직 미미하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노동자들이 싸울 때 얼마나 연대했던가를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과거에 연대해온 꼭 그만큼만 연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끈 뒤에 꼭 잊지 말고 다른 투쟁에 연대를 하자.” 바로 여기에 나아갈 길이 있다. 노동자총단결 정신에 입각한 노동운동을 조직함으로써만 노동운동의 중핵이 되어야 할 대기업 노동조합과 전체 노동대중 사이에 형제자매와도 같은 연대성이 발전할 수 있고, 이런 연대성을 통해서 대기업 노동자들은 사회적 고립을 뚫고 공세적으로 진군할 수 있다. 이것은 대기업 노동자들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데서도 최상의 방파제가 될 것이다.
김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