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위기와 현대중공업 위원장 선거
세계경제위기의 여파는 자동차산업뿐만 아니라 국내 조선산업에도 이제 막대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조선산업은 세계경제위기 여파로 급격한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는 무역거래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해운선박량으로 인해 위기를 겪고 있다. 해운조사기관에 따르면 568척(운행선박의 10.4%)에 이르는 컨테이너선이 무역에 투입되지 못하고 항구에 정박해 있다. 이미 수주해서 건조중인 배조차도 인도연기 요청, 발주취소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선업 상위 10위 안에 7개나 되는 조선소를 보유한 한국 조선산업의 사정은 전 세계 조선산업의 위기를 잘 보여준다. 한국의 대형 조선업체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박을 골라서 수주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위 조선소인 현대중공업은 올해 한 척의 배도 수주하지 못했다. 2, 3위 업체인 대우조선과 삼성 역시 올 상반기에 한 척도 수주하지 못하다, 하반기에 어렵게 몇 척 정도만을 수주하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물론 경제위기 이전에 수주한 배들로 인해 국내 대형 조선사들은 2011년까지의 물량을 확보하고 있지만, 올해 상황이 내년 이후까지 이어진다면,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많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과 임금삭감, 단협개악 시도 등이 벌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미 금속노조 한진지회는 사측의 임금동결, 단협개악, 성과금 축소, 하청폐업에 맞서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고, 현중과 대우조선 등에서는 어용노조가 주도해 임금을 동결하는 만행이 저질러지고 말았다.
“임금위임·어용세력 심판” 요구한 현중선거, 압도적으로 지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월 23일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의 임원선거가 치러졌다. 경제위기에 따른 조선산업 위기가 급격히 다가오고 있고, 전초전 성격으로 올해 이미 교섭권위임과 임금동결이 자행된 현대중공업에서 어용세력에 대한 단죄와 심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직 위원장인 오종쇄가 출마한 이번 선거에서 아쉽게도 현중 민주파는 완패하고 말았다. 오종쇄는 전체 조합원 17,504명 중 10,667명(63.7%)의 표를 확보해 당선했고, 반면 민주파는 5,830표(34.84%)를 얻는데 그쳤다.
오종쇄는 현중 정규직 노조 역사상 최초로 연임에 출마하고 당선된 위원장이 되었다. 더군다나 2년 전 오종쇄의 첫 출마 지지율이 58%선이었는데 5%를 더 확보하고 당선되는 위력을 드러냈다. 임금동결을 주도하고 조선업 전반에 임금동결 열풍을 불게 한 장본인이 또다시 위원장에 당선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불어 닥칠 조선업 전반에 대한 노동자 공격양상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오종쇄는 현중자본이 주도하는 노동운동 초토화 공격의 꼭두각시
오종쇄는 선거 직전 9월 한 달 내내 진행된 조합원교육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 3천 명을 정리한다’는 말을 떠벌렸다. 당선된 후로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조의 독립성 보장과 책임성 있는 노동운동을 위해 전임자임금을 회사에 의존해온 관행을 탈피해야 한다”고 했다. 자본의 입장을 정확히 대변하는 말이다. 이제 회사의 든든한 지원, 그리고 연임에 성공한 자신감으로 과거보다 더 거리낌 없는 행보를 할 것이다.
오종쇄는 앞으로 공장 내에서는 조선산업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노동자 공격을 완성하는 주도세력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를 바탕으로 공장 바깥에서는 전경련, 경총 등의 반노동적 입장을 노골적으로 수행하는 선봉장 역할을 할 것이다. 이는 물론 현중 사주인 정몽준의 정치적 입지확장과 절묘한 조화를 모색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 막강한 위기 앞에 현중 하청노동자들과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의 자주권과 투쟁력도 없이 맨몸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다시 87년과 같이 ‘어용노조를 갈아엎고 투쟁으로 떨쳐 일어나느냐?’ 아니면 생존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아비규환의 양상으로 지금보다 더한 야만의 현장으로 떨어질 것이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현중 활동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