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실리주의 집행부의 재등장
- 민주노조운동 부활의 관건은 “공세적인 계급단결 투쟁”
지난 9월말 치러진 선거를 통해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에 이른바 실리주의 집행부가 다시 들어섰다. 14년 만이다.
1987년 노조 설립 이후 혼란과 지지부진함을 걷어내지 못하던 현대차 노동자들은 1995년 양봉수 열사 분신을 계기로 사측과 어용집행부에 맞서 일주일 동안 전면적인 현장파업을 결행하며 비로소 민주노조 기틀을 확고히 세웠다. 이어 1996~97년 민주노총의 노동법 총파업을 주도하면서 현대차노조는 민주노조운동의 핵심 사업장으로 일어섰다.
그로부터 10여 년, 현대차노조는 민주집행부를 계속 배출하며 민주노총이 추진했던 수많은 총파업과 이른바 ‘노동자 정치세력화’에서 선도적 역할을 했다. 2006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로의 조직형태 변경은 산별노조를 대세로 만드는 기폭제가 되었다.
민주노조 세력의 정체와 퇴보가 만들어 낸 가혹한 시련
이처럼 그동안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노조운동의 대표주자였던 현대차지부에 다시 실리주의 집행부가 등장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민주노조운동의 위기가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하루아침에 온 것이 아니다. 그만큼 위기는 총체적이다.
현대차 조합원들은 양봉수 열사 분신 이후 아홉 차례나 민주집행부를 선택했다. 그러나 이른바 민주집행부들은 △정리해고 수용 △투쟁광고비 대납으로 사측과 결탁 △연대파업 불참으로 전국투쟁전선 이탈 △노조 간부들의 입사비리 연루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배신 △노조 위원장의 사측 금품수수 △노조 창립기념품 선물비리 △사측의 노동유연화 정책 수용 등 온갖 배신과 비리를 저지르며 조합원들의 가슴에 대못질을 해댔다.
조합원들은 먼저 간 ‘양봉수’가 남긴 민주노조의 꿈을 저버리지 못하고 다시 또 다시 민주집행부를 세워주었지만, 그들의 선택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결국 거듭된 민주집행부 선택에도 끝내 참된 민주노조를 얻지 못했던 조합원들이 마침내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강한 실망과 분노를 드러내고 만 것이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가?
그러나 상황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여전히 민주노조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조합원들이 최소한 절반 가까이 남아 있다. 총체적 위기를 걷어낼 대안적 방향과 주체를 세워낼 수 있다면 여전히 민주노조운동의 힘찬 전진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이를 위해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자본의 무한경쟁과 심화되는 자본주의 위기 앞에서 노동자들이 살 길이 진정 무엇인지를 민주노조 세력이 조합원들 앞에 당당하게 제시해 내는 것이다.
이와 관련 사측과 실리주의 세력은 나름대로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나 꿈 따위는 집어치우고 회사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데 최대한 ‘협력’(굴종)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회사의 지불능력이 있는 한 정규직한테는 어느 정도 실리를 챙겨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은 주변의 친구·친지들한테까지 ‘노동귀족’이라 손가락질 받는 삶,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끝없는 불안 속에서 허덕이는 ‘일시적으로 배부른 노예’의 삶일 뿐이다.
노동자는 노동자의 길을 가야 한다. 자본의 이윤과 축적된 부를 털어서 노동자의 생존과 권리를 확실하게 보장받는 투쟁의 길을 가야 한다. 이를 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을 넘어, 기업의 울타리와 산업의 구획을 넘어 모든 노동자들이 단결하는 길을 가야 한다. 노동자의 억센 팔뚝으로 기업의 생산과 경영을 통제하고 나라의 향방을 틀어쥐며 마침내 노동해방으로 달려 나가는 길을 가야 한다.
현대차 조합원들 또한 고통스런 삶을 뒤집을 명확한 투쟁의 전망을 갈구하고 있으며, 만일 그런 전망을 찾는다면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조 세력에게서 이와 같은 명확한 투쟁의 전망을 보지 못한 조합원들은 차라리 실리주의가 현실적이라고 느낀 것이다.
이제 현대차에서 민주노조운동의 부활은, 자본주의 위기에 맞서 공세적인 계급단결 투쟁의 전망을 열어가는 운동이 얼마나 많은 활동가와 조합원의 주체적 참여 속에서 건설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활동가들과 다수 평조합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리고 공장 밖의 노동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세적인 계급단결 투쟁만이 다시금 현대차에서 힘찬 민주노조운동을 세워낼 유일한 방안이 될 것이다.
양준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