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지부 전주위원회 선거-전투파 당선
현장은 정면돌파를 요구한다!
쌍용차 동지들의 ‘위대한 패배’, 대우차의 배신적 임금동결 합의, 금호타이어의 백기투항, 11차례에 걸친 파업에도 사측의 임금동결 기조를 박살내지 못하고 선거실시로 우회한 기아차까지, 일련의 상황은 현 시기에 노동과 자본 사이에는 적당한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것, 전면적인 항쟁이냐 아니면 완전한 굴종과 배신이냐를 강요받고 있는 상황을 극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주현대차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 발생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전주위원회 선거에서 가장 전투적인 세력인 현장동지회에서 낸 후보가 당선되었다. 5개 선본 중 1위로 결선에 오른 현장동지회는 결선투표에서 2위와의 표 차이를 더욱 벌리며 당선되었다. 우리가 이번 선거결과에 대해 주목하는 이유는, 노동조합 선거가 현장노동자들의 정세판단을 드러내며, 또한 그 정세판단 속에서 어떤 세력을 자신의 대표자로 생각하는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무난한 2년=후퇴
현대차지부 전주위원회 자주회 집행부의 2년은 ‘무난했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였다. 현대차 전주공장에는 휴업도, 비정규직 계약해지도 없었다. 굵직한 현장사안이라 할 만한 것은 “1년 간 잔업특근이 없는 고속버스 라인의 물량문제”로 한정되었다. 자본이 일방적인 휴업조치를 단행해왔던 울산․아산공장의 상황과 비교하면, 전주공장은 상대적으로 무풍지대였다 할만 하다.
물론 현대차 자본은 버스라인을 중심으로 휴업을 받아들이라는 공세를 펴곤 했지만 현장은 이를 막아냈다. 현장 동력이 살아있기 때문이건, 현대차 자본이 속도를 조절했기 때문이건 전주현장이 상대적으로 조용했다는 점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현장은 가랑비에 옷 젖듯 후퇴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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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합의사항이었던 <09년 1월 중 주간연속2교대 전주공장 시범실시>는 일방적으로 파기되었지만, 현대차 울산공장, 전주공장 집행부 양자 모두 몇 달 동안 어떤 대응도 하지 못했다. 주간 라인만 돌아가던 공장에 직권조인으로 주야맞교대가 들어온 것도 분통터지는데, 빼앗긴 권리를 조금이나마 되찾아오자는 주간연속2교대 쟁취 투쟁마저 계속 표류한 것이다. 더군다나 시범실시 공장이었던 전주에서, 자본의 명백한 단협파기에 대해 투쟁없이 침묵한다는 것은, 투쟁의 중요한 고리를 완전히 날려버리는 것을 뜻했다.
자주회 집행부는 ‘울산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현대차지부 전주위원회 자주회 집행부가 투쟁의 전망을 갖지 못한 채 울산공장만을 바라보던 상태에서, 올 6월 윤해모 집행부가 전격 사퇴했다. 전주위원회가 애타게 바라보던 울산의 집행부 자체가 날아간 것이다. 하지만 전주위원회는 현장을 추스르기 위한 어떤 진지한 투쟁도 조직하지 않았고, 자본은 서서히 현장을 잠식해왔다.
혼란과 후퇴 속에서, 현대차 자본은 6월 고속버스에서 일반버스로의 전환배치를 받지 않으면 비정규직을 집단계약해지 하겠다는 협박을 하기에 이르렀고, 7월에는 안전사고에 대한 정당한 조치로서 라인을 잡은 대의원이 정직 45일의 중징계를 맞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현장조합원들은 울산공장만을 목이 빠져라 쳐다보는 ‘안정’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이것이 이번 선거 결과에 표현된 것이다.
공장 안과 밖의 폭풍우
경제위기 하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과 적당한 타협을 하지 않는다.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혹독한 탄압, 금속노조 내의 주요 공장인 대우차와 금호타이어 등의 심각한 양보교섭 소식을 접한 조합원들은 위기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이런 문제는 단지 다른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님을 직시하고 있기도 하다. 당장 현대기아차 자본은 상반기에만 1조 5천억원을 벌었지만 임금동결방침 등 강경한 공세를 펴고 있다. 상황이 조금만 악화된다면, 그것은 노동자에게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
쌍용차 이후 지속되는 자본의 총공세를 전제한다면, 이는 무엇보다 월급제 실시를 결코 용인하지 않겠다는 현대기아차 자본의 공세적 대응기조를 표현하는 것임을 명심해야한다. 월급제가 가능하려면 기본급이 대폭 올라야 한다. 그러나 자본의 입장에서는 주간연속2교대와 무관하게 시급제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물량공세와 물량배분을 매개한 현장분열책동을 지속할 수 있다. 그런데 기본급이 충분히 상승하면, 노동자들은 월급제에 단호히 지지할 것이다. 결국 기본급 상승을 절대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자본의 판단이다. 자본은 임금동결기조를 통해 <임금과 생산량을 더욱 밀착 연동>시키며 주간연속2교대투쟁의 근본취지 자체를 날려버리겠다는 강력한 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 “무상주 50주”나 성과급 봉투를 갖다주겠다는 것은, 대놓고 자본의 공세에 맨몸으로 당하자는 말과 같다. 임금동결을 깨부수는 것이야말로 전진과 후퇴를 가늠하는 기준선이기 때문이다. 기만적인 현대차 08합의, 09년 1월 기아차의 10+10임금보장폐기, 그리고 현재의 강력한 임금동결방침은, 임금-생산량의 더욱 강력한 연동을 통해 주간연속2교대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자본의 의도를 명확히 표현한다. 자본은 공세를 결코 적당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열망을 조직하자! 자본의 공세를 정면으로 돌파하자!
현장동지회는 굵직굵직한 대공장들을 각개격파하며, 자본의 전면공세가 확산되고 있음을 강조해왔다. 그리고 현대차 전주공장의 후퇴와 전체전선의 후퇴가 서로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강조해왔다. 울산만을 바라보고 있는 전주공장의 뿌리 깊은 타성과 변방의식을 깨부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총자본의 공세 속에서 단호하게 투쟁전선을 세워내지 않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일반 조합원들 역시 계급적 본능을 통해 이를 감지하고 있다. 현대차 노동자 운동의 지속적 후퇴, 강화되는 고참 조합원의 안정희구 심리를 감안한다면, 전투파 집행부의 출현은 일정한 ‘안정’을 포기하더라도 자본과 맞설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조합원들을 받아들인 것을 뜻한다.
‘현장동지회 집행부’는 이런 소중한 열망과 함께 등장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약속들을 실제로 지켜갈 의지와 실력이 있는가를 검증받게 될 것이다. 검증대를 통과한다면, 그것은 현대차 전주공장의 진격의 나날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통과하지 못한다면, 전주공장 노동자들은 패배주의에 젖어들면서 좌절과 침체로 빠져들 것이다. 현장동지회 집행부를 비롯해, 모든 전주공장 현장 활동가들이 중차대한 시험대 위에 올라선 것이다.
단호한 각오와 결의, 조합원들의 숭고한 바램을 지켜내고자 하는 책임감으로 이 시험대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다행히도 현장조합원들의 선택은 현장동지회를 비롯해 전투적 현장활동가들의 끈질긴 실천과 선전 선동에 호응한 것이다. 그 동안의 꾸준한 실천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지지도 없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시험대를 통과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과거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과제와 맞닥뜨리게 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현대차 전주공장의 선거결과는, 앞으로 몇 년간의 실천이 운동의 존망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현장의 위기의식과 투쟁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다. 동지들, 위기의식과 잠재된 열망이 어디 전주현장 뿐이겠는가? 상급단체와 현장조합원을 탓하기 전에 분노를, 열망을 조직하자! 자본의 공세를 정면으로 돌파하자!
이진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