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투쟁과 한국사회 변혁운동의 과제
“한국사회를 뒤흔든 77일간의 투쟁”이라는 부제를 가진 토론회가 지난달 27일 <자본의위기전가에맞서싸우는공동투쟁본부> 주최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사노준, 사노련, 다함께, 사회진보연대가 차례대로 발제를 했고, 노동전선,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에서 토론발제를 맡았다. 애초 예상을 뛰어넘어 매우 많은 동지들이 관심을 갖고 토론회에 참여했으며, 오히려 한정된 시간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느꼈다(사노련 홈페이지 ‘문서고’에서 토론자료를 볼 수 있다.)
한계에 대한 공감
토론 참여자들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진보정당들, 사회주의 조직들 모두가 쌍용차 투쟁에서 “자기 실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며, 오래 걸리더라도 끈기 있게 노동자운동을 재조직해야 한다는 데 공감을 표시했다. 단지 상층 노조관료들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 ‘공식지침’만 기다리지 말고 현장 밑바닥에서부터 독자적으로 힘을 키우고 결집시켜야 한다는 점, 더 이상 노동조합주의나 진보정당 수준의 개량적 전망에 갇히지 말고 새로운 사회를 향한 혁명적 전망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점 여러 문제의식들이 제기됐다.
노동조합운동이 바로 서야 할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서도 사회주의 조직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반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사회주의 조직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강조점의 차이가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날 노동자운동 속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
과제와 전망의 차이
첫째는 노동자계급으로서의 정치적 독립성을 파괴하며 노동자들을 민주당과 같은 자본가당의 꼬리로 갖다 붙이는 입장이다. 야4당 연합에 발 벗고 나서고 있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바로 그런 입장을 대표한다.
이런 입장을 겉으로는 비판하지만, 사실은 그런 입장에 굴종하는 경향이 있다. 이 경향은 노동자 민중의 투쟁전선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의 개량주의자와 전술적으로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필요하다면 당연히 해야 한다. 문제는 이 ‘전술적 함께 하기’가 뜻하는 바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야4당 연합노선’(사실은 민주당 꼬리 노릇하기)에 대한 굴종 및 추인과 연결되곤 한다는 점이다. 우리만으로는 힘이 없으니 민주당과의 공조를 전술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거나,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하는 대중의 정서를 헤아려야 한다며 실질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다함께’와 같은 경향이 바로 그렇다.
이 동지들은 말로는 야4당 연합에 목을 매는 인민전선 전략의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실제 행동에서는 이 노선과 완전히 단절하기를 꺼려한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이 버리기를 꺼려하는 민주당과의 제휴 노선에 대한 단호한 비판, 그 비판의 연장선에서 ‘민주당과 완전히 단절한 노동자 민중의 투쟁 조직화’를 종파주의라고 비판하는데, 그럼으로써 현실에서는 인민전선 세력의 힘을 북돋아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민주노동당에서 개량주의자들과의 동거 노선에 갇혀 사실상 개량주의자들의 인민전선 전략에 수줍게 굴종하는 셈이다.
둘째는 뿌리 깊은 조합주의 전통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정치적 전망을 배제하면, 그 순간 노조는 끝없는 양보와 무기력과 자기 해체의 늪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많은 노동조합들이 “쌍용차 노동자들의 고통은 이해되지만 우리도 살아야겠으니 함부로 투쟁에 나서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며 행동에 나서기를 주저했다. 하지만 이런 대응이 노동조합을 살려주고 안정화시켜주는가? 전혀 아니다. 노동자들이 고개를 숙였다는 판단이 드는 순간, 금호타이어에서 보이듯이 오히려 자본가들은 더욱더 야수처럼 자신감을 갖고 공세를 강화한다.
현장은 노동자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장 많은 동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주요한 삶의 공간이다. 노동조합이 더 이상 이 공간을 책임지지 못하고 있다. 이 삶의 공간에서부터 사회주의 조직들은 노동자들과 긴밀하게 결합하며 새로운 투쟁의 길을 개척해가야 한다. 바로 사회주의 혁명투쟁의 길이고, 노동자계급 총단결 투쟁의 길이며,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길이다.
물론 이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회주의자들도 있으며, 또 다른 많은 쟁점들이 있을 것이다. 한정된 토론시간 탓에, 과제를 중심으로 이미 나타난 쟁점의 구체적 면모가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공투본을 통해서든 다른 방식을 통해서든, 이 ‘과제’를 둘러싼 더욱 풍부한 토론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오연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