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가 노동자에게 한 짓을 똑똑히 알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죽음에 부쳐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태어나 해방과 분단, 군부독재 그리고 부르주아 정치의 역사 속에서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상징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산 늙은 정치가 김대중은 지난 8월 24일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그가 경험한 모든 영욕의 세월을 역사의 평가로 남기고 자연으로 돌아간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야말로 한 시대가 갔다.
부르주아지의 평가
경향신문 사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민족화해의 큰 족적을 남겼지만 현 정부 들어 오히려 퇴보하는 민주주의와 남북관계 경색을 안타까워하며 86년의 삶을 마감했다”고 하면서 “고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 서민에 대한 사랑, 평화적 남북관계에 대한 신념을 오롯이 계승해야 한다”고 싣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도 “대한민국이 김 전 대통령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모든 사람이 그의 대통령 취임으로 지역갈등이라는 국가적 병폐가 치유되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를 바랐지만 실망스럽게 끝나고 말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장례를 치룬 다음날 사설은 “지역, 여·야, 노·사, 보수·진보가 화해하고 나라가 정상화되는 길을 걷게 되는 것 이상으로 김 전 대통령이 바란 것은 없을 것이다”라고 전형적인 부르주아지의 입장을 점잖게 내놓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치기어린 김대중 추종자들의 찬사를 일일이 언급할 필요도 없고 별별 극우반동분자들의 막말을 꾸짖을 필요도 없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도 스승도 아닐뿐더러 ‘빨갱이 좌파’도 아니다. 40여 년의 군부독재가 있었기에 눈에 띈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치인이었을 뿐이다. 그의 죽음이 경색된 남과 북의 관계를 푸는 계기가 될 건지는 ‘민족화해’라는 추상적 담론을 넘어서는 남북 노동자연대라는 틀로 다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 세력과 노동계급의 평가
김대중은 개인이 아니었다. 이 땅의 민족주의 세력과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표상이었다. 70년대 초부터 그가 대통령이 된 1997년까지 그의 행적은 부르주아 권력을 향한 도정이었고 군부독재를 반대하는 이른바 민주화운동 세력의 정치적 야망의 출구였다. 그는 80년 광주와 한국 자본주의의 압축적 성장발전 과정에서 형성된 사회주의 세력과 노동계급의 투쟁과 전혀 거리가 멀었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실질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가로막고 심지어 억압해온 자유주의 세력의 대변자였다. 87년의 6월 항쟁을 부르주아 선거일정으로 유도하면서 7·8·9월 노동자 대투쟁의 전진을 가로막으려 애쓴 것, 노태우·김영삼이 집권한 10년 동안 선거를 통한 권력심판이란 구호 아래 군부독재에 맞서는 과감한 투쟁을 축소하는 데로 몰고 간 것이 그와 그의 지지세력의 본질을 잘 드러내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1998년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보인 부르주아 정권의 본 모습이었다. IMF 사태와 같은 세계금융위기 속에서 그가 철저하게 밀어붙였던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그야말로 반노동자적이고 반민중적이었다. 몇몇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과 일부 남북 사이의 관계 복원이 김대중 정권의 반노동자적 정체성을 가리지 못한다.
특히 그가 집권한 기간 동안 37명의 열사가 나왔고 892명의 구속자가 있었음을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은 쇠퇴해가는 20세기말 자본주의의 반동성과 야만성, 착취성을 이 땅에서 철저하게 대변하고 관철시킨 자본가 정권이었음을 모든 사회주의 세력과 노동계급은 기억할 것이다.
그의 죽음이 미래의 노동자운동에 던지는 의미
자유주의 부르주아세력은 김대중의 죽음에서 민주주의 후퇴, 민족의 대립을 심화시킨 이명박 정권을 극복하는 교훈을 끌어내고자 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와 민족화해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명박 정권은 그나마 민주화운동이 쟁취한 절차적 민주주의까지도 철저하게 유린하는 반면 민주당과 같은 자유주의 부르주아세력은 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복원하려 하는 것인가? 이명박 정부가 보여주는 체제와 본질적으로 다른 체제를 자유주의 부르주아 세력은 건설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파시즘과 전쟁은 쇠퇴의 막바지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탈출구일 뿐이다. 이명박 정권이 보이고 있는 노동계급과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폭력적 적대는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자본가계급이 채택할 수밖에 없는 전략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부르주아지의 보편적 선택이다.
자유주의 부르주아들이든 이명박 정부든 지금의 자본주의 위기가 가져다 줄 재앙을 막아낼 주체가 전 세계 노동계급임을 두려워하는 것은 약간의 색깔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자본가계급이 보여주는 공통적 태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는,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할 정도로 더욱 폭력적이고 반동적으로 변하고 있는 자본가계급과, 지난 10년을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에 빼앗겨 노동자운동의 전진을 본격화하지 못했다고 보는 노동계급과 사회주의 운동 사이의 대립과 격돌에 달려있다. 그 대립과 격돌을 무마하자는 것이 김대중의 화해와 협력이다. 이것은 이 대립과 격돌을 가로막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오랜 군부독재의 억압과 그늘 속에서 숨 쉬고 투쟁했던 역사를 이제는 밑거름으로 삼고 그 과도적 오류를 반성하면서 사회주의의 전망과 노동계급의 빛나는 미래를 열어젖히자! 더 늦기 전에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 시대와 새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자!
오세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