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투쟁이 한국노동자운동을 벌거벗기다
갈림길에 선 한국노동자운동
처참하지만 영웅적으로 투쟁했던 쌍용차 노동자들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자본과 정부는 거의 모든 힘을 총동원하여 악랄하게 공격한 반면, 그에 맞설 계급적 연대를 조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에 대해 그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자신을 포함해 쌍용차투쟁에 성심껏 연대했던 동지들은 사선을 넘나드는 쌍용차 내부전투를 뒷받침할 위력적인 행동을 조직하지 못하고, 정문 앞에서 경찰과 용역깡패, 구사대에 가로 막혀 발만 동동 구르며 무기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에어컨 냉각수를 받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장에 물 한 병 건넬 힘조차 우리에겐 없었다.
간간히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싸움이 전부였다. 평화적인 집회조차 가로막는 중무장한 경찰과 구사대 앞에서, 쌍용차 사측과 구사대의 조롱 앞에서 집회조차 방어하지 못하고 쫓겨나야만 했다. 그 동안 노동자들에게 그나마 제공했던 제한적인 민주주의를 자본가 정권이 완전히 압살하기로 마음먹자,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한국노동자운동의 상황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10여 년 간 후퇴해 온 노동운동이 이제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 이르렀고, 노동운동을 근본부터 전투적으로 재편하지 않는 이상 민주노조운동의 미래는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현장투사들의 분투, 이를 가로막은 노조관료기구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엄호하고 확대하는 데서 누구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했던 것은 금속노조였다. 금속의 일부 전투적 현장노동자들은 형식적인 연대 부분파업이 아니라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해 분투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는 연대투쟁과 총파업을 호소하는 선전전을 현장동지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매일 진행하면서 100명에 가까운 조합원들이 출근선전전에 참여하기까지 했다.
울산과 전주공장에서 연대파업을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하여 4천명 가까운 조합원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금속대의원대회에서는 총파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투쟁결의안을 발의하여 쌍용차 대의원들, 쌍용차 가대위와 함께 연대총파업에 나설 것을 호소하며 조직하려 했다.
하지만, 단호한 결의로 총파업을 조직해야 했던 금속지도부는 현장의 열악한 상황을 핑계 대며 진지한 총파업 조직화 시도를 방기했다. 그 대신 금속노조 지도부는 쌍용차지부에게 양보안을 제시하라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힘을 빼는 역할을 하면서 공분을 샀을 뿐이다. 그들은 정부, 정치인, 사측을 만나며 중재자의 역할을 자처했지만, 그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막바지에도 그러한 모습은 그대로 나타났다. 용역깡패와 구사대, 폭력경찰이 정문 앞 천막을 완전히 철거하고 뼈를 부러뜨릴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연대하는 노동자들을 짓밟고 있었지만, 민주노총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방어할 어떠한 실질적 계획도 제출하지 못했다.
구사대의 폭력이 심각해져 정문 앞에서 모이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자, 평택역에 모여 쌍용차 공장 정문을 향해 행진하다가, 아무것도 못한 채 두들겨 맞고 연행당하고 도망치는 집회가 그들이 조직해낸 전부였다. 심지어 자발적으로 선봉대가 구성되어 집회를 방어하고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엄호하고자 했던 시도조차도 지도부에게는 ‘조직적이지 못한 행동’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누가 보더라도 한심할 뿐만 아니라, 처참하기까지 했다.
노동자운동, 현장에서부터 새롭게 조직해야 한다
다른 산별노조들은 더욱 나쁜 상황이다. 기념일처럼 열리는 노동절집회에는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하지만, 정작 연대가 절실하게 필요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열리는 노동자대회에는 훨씬 적은 노동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단사에 갇힌 노동조합들은 계급적 연대의 절실함을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회사 살리기와 같은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장악된 수많은 노동조합들의 경우 상황은 더욱 비극이었다.
이번 쌍용차투쟁이 보여준 것처럼 경제위기가 심각해질수록 자본가들은 노동자투쟁에 대해 광기어린 탄압을 가한다. 결국, 쌍용차투쟁과 같은 결정적 국면에서 모든 노동자는 계급적 연대냐 아니면 굴종과 외면이냐는 선택의 갈림길에 더욱 빈번하게 부닥칠 수밖에 없다. 투사들은 그것을 대비해야만 한다. 진정한 총파업을 조직할 수 있는 현장의 힘, 현장노동자들의 계급적 연결망을 조직해나가는 작업에 사활적으로 달라붙어야 한다.
정원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