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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당을 건설하자 : 4호_사회주의 현장신문을 무기로 현장을 노동해방의 요새로!
 사노련  | 2009·08·08 15:06 | HIT : 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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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호40_사회주의현장신문.hwp (47.0 KB), Down : 217
  • (사노련에서 발행한 <사회주의자> 4호에 실린 글입니다.)

    [정치노선]

    사회주의 현장신문을 무기로 현장을 노동해방의 요새로!

    김형선

    “87년 민주화와 노동자대투쟁 이후 20년 이상 달려왔습니다만 민주노조운동의 상층부는 정파와 담합으로 집권을 하다 보니 도덕성과 활동성 결여로 성폭력, 도박, 주식투자, 부패, 패거리주의가 판치고 중앙으로 집중된 노조 집행권력은 더 이상 조합원이 주체가 되는 현장권력과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노동조합의 의사결정 과정은 민주와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대의원은 현장위원을 발굴하는 데 적극성이 떨어지고, 현장간담회와 부서집회 등이 없습니다. 현장위원은 배움의 자세와 노력, 활동성이 부족합니다. 대의원 출마 등록 인원보다 현장위원이 더 적고, 현장위원이 없는 반들이 많아졌습니다.

    조합원은 특근에 목매고 주식투자에 열중하고 비정규직, 여성, 이주노동자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며, 노래방 도우미 같은 성매매를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즐기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사회변혁을, 평등을, 같은 권리를 주장하는 우리가 한번쯤 뒤집어봐야 할 시간들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1)

    짧은 이 글은 무너져 내리고 있는 대공장 상황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성폭력, 도박, 주식투자, 부패, 패거리주의’ 같은 자본주의 문화가 판치고, ‘비정규직, 여성, 이주노동자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겨’ 노동자가 갈기갈기 찢겨져 있으며, 노동자 민주주의는 ‘행방불명’된 상태다. 이렇게 ‘자본의 요새’로 전락해가는 현장을 방치하면서 ‘사회변혁’과 ‘평등’을 백날 외쳐봐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지만 진짜 문제는 사회주의 운동이다. 자본가들은 보수언론, 방송, 인터넷은 물론 현대차의 <함께 가는 길>, 현중의 <인사저널> 같은 자체 찌라시를 통해 날마다 노동자들에게 자본가 논리를 주입하고, 노동자들을 ‘성폭력, 도박, 주식투자, 부패, 패거리주의, 차별’의 늪에 빠뜨리려고 혈안이 돼 있는데, 사회주의 운동의 현장선동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선동은 거리 집회에는 존재할지 몰라도, ‘공장문’은 거의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학습토론을 할 때는 사회주의자일지라도, 현장에서는 단순히 노조 실무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주의자가 전투적 조합주의자로, 심지어는 노조 관료로 변질해간 경우는 많지만, 노동자투사가 사회주의 노동자로 전진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 결과 대규모 현장일지라도 사회주의 노동자가 거의 없고, 있더라도 철저히 고립돼 겨우겨우 버티거나 무기력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두고 ‘노동자혁명’을 진지하게 꿈꿀 수 있겠는가? 사회주의 선동이 현장에서 넘쳐 나고, 사회주의 노동자 주위로 노동자투사들이 모이고, 노동자투사들 속에서 젊고 똑똑하고 열의에 찬 사회주의 노동자들이 새로 탄생하지 않고도 노동자혁명이 가능하겠는가?

    노동자혁명을 진지하고 확고하게 원한다면, 사회주의 현장 정치활동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말로만 인정하지 말고 빠르게 실천에 옮겨야 한다.

    사회주의 현장 정치활동이 뭔지 구체적 상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는 사회주의 현장신문이야말로 그걸 위한 가장 기초적인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사회주의 현장신문을 발간할 조건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고? 물론 아무 기반도 없는 곳에서 현장신문을 발간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혹시 객관적 조건을 탓하며 주체적 노력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닌지, 또는 발간의 전제 조건을 너무 높게 설정하는 것은 아닌지진지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실패하는 자는 핑계를 찾고 성공하는 자는 방법을 찾는다”는 명언이 있다. 이 명언은 현장신문 발간을 통한 사회주의 현장활동의 전면화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이 글은 노동자혁명을 위해 현장을 노동해방의 요새로 만들겠다는 굳센 의지를 가진 사회주의자들에게 사회주의 현장신문의 의미와 역할, 활동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2).

    1. 노동자의 사상을 노동자에게!

    사회주의는 노동자의 사상이다. 노동자계급의 조건과 투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노동자해방의 전망을 제시하는 사회주의는 노동자의 피와 살이 돼야 한다.

    그런데 사회주의와 노동자계급은 너무 오랫동안 분리돼 왔다. 자본과 정권의 악선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주의 세력의 무능력 탓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은 이제 선전써클의 단계는 약간 벗어났으나 여전히 노동자계급과 아주 끈끈하게 결합하고 있지는 못하다. 다수의 일반 노동자들에게 사회주의 운동은 ‘뜻은 좋으나 현실성이 없는 운동’으로 비치거나 ‘가끔 유령처럼 출몰하는 집단’ 정도로 보일 수 있다. 이것은 사회주의 세력이 현장 노동자들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사회주의 선동을 하고, 현장투쟁에 긴밀히 결합하지 못한 채 가끔 이벤트 식으로 사회주의 선전물을 배포할 경우 특히 그럴 수 있다.

    (1) 사회주의 선동으로 노동자들에게 계급의식과 혁명의식을 불어넣어야 한다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자들의 도움 없이도 혁명에 떨쳐 일어설 수 있다. 그리고 혁명기에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사회주의자가 되며, 여러 사회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왼쪽에 서 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혁명투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도 ‘혁명의식’이 아닌 ‘개량의식’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 노동자들이 항상 ‘의식적 훈련’을 충분히 거친 다음 ‘행동’에 나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혁명투쟁과 개량의식 사이의 모순 때문에 노동자들은 혁명정당의 지도가 없다면 결정적 순간에 빠르게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할 수 있고, 그래서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세계 혁명운동사는 그런 사례를 무수히 보여주었는데, 다음도 거기에 해당한다.

    “50만 명의 독일 노동자들이 평화를 위해 파업에 나섰다. 반전(反戰) 투쟁을 통해 양국 노동자들이 손을 잡을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였다. [그러나 영국] 전국 직장위원회 운동의 모호한 입장은 클라이드 지역을 고립시켜 버렸다.[독일 노동자들도 반전파업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확신하지 못해, 반전파업을 단호하게 벌이려 하지 않았던 것. 이 때문에 영국에서 가장 선진적으로 반전투쟁에 나섰던 클라이드 지역이 고립돼 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글래스고의 좀 더 우유부단한 공장들에서 정부가 조직한 선전으로 반전(反戰)파업의 희망은 물 건너 가버렸다. 영국 노동자들은 자신의 독일 동료들을 저버렸다.”(도니 글룩슈타인, 󰡔서구 소비에트󰡕, 풀무질, 121~122쪽)

    당시 영국 노동자들은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거대한 노조를 가졌지만, 일상 시기에 정치적, 혁명적 훈련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기에 위와 같은 치명적 한계를 드러냈다.

    이렇게 혁명기에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혁명조직이 일상시기부터 노동자계급을 혁명적으로 단련시켜야 한다. 혁명조직은 노동자계급의 일상투쟁에 결합하면서 노동자 생존권을 방어하기 위해 분투해야 하지만, 이런 모든 투쟁을 통해 노동자계급을 혁명적으로 훈련시키겠다는 분명한 목표의식을 갖고 활동해야 한다.

    혁명조직은 “혁명기에 노동자계급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각각의 노동자계급 부대가 노동자혁명의 승리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할 필요가 있는가”를 최대한 명료하게 머릿속에 그려야 한다. 그리고 그런 혁명적 구상 속에서 당면 투쟁에 헌신적으로 참여하면서 사회주의 선전, 선동, 조직화 활동을 정력적으로 결합시켜야 한다.

    노동자혁명에 대한 굳건한 확신도, 원대한 포부도 없는 통상적인 노조 관료, 조합주의 활동가는 ‘사회주의 선동’이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로 쓸모없다고, 심지어는 해가 될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수년, 나아가 수십 년간 꾸준히 펼치는 ‘사회주의 선동과 사회주의 현장활동’은 혁명기에 노동자가 ‘명료한 두뇌를 갖지 못한 거대한 공룡’이 되느냐 아니면 ‘명석한 지혜를 갖추고 세계를 뒤흔드는 거인’이 되느냐를 좌우할 것이다.

    사회주의 선동은 ‘미래’를 위해서만 절실한 게 아니다. ‘당면 투쟁’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노동자들이 개인주의·실리주의에 빠져 분열하고 타협하는가, 아니면 계급의식과 혁명의식을 갖고 굳게 단결하고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가는 임금 투쟁이든, 정리해고 분쇄 투쟁이든 당면 투쟁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다.

    (2) 정치선동과 경제선동을 결합시켜야 한다

    사회주의와 노동자계급이 분리돼 있는 상태에서 현장신문을 발간할 경우 두 가지 편향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다.

    하나는 정치선동 없이 경제선동만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현장노동자들은 임금, 노동조건, 고용 같은 생존권 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있을 뿐 정치, 사회 문제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판단, 사회주의 선동을 하면 현장노동자들이 등을 돌릴 것이라는 두려움, 모든 주요한 사회문제들에 대해 사회주의 선동을 능숙하게 해낼 수 없는 정치적 무능력 등이 이런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런데 주로 경제선동만 하는 현장신문은 노동자들의 관심과 시야를 공장 울타리 안에 가둘 위험이 크다. 그런 현장신문은 노동자들을 계급적, 정치적으로 단련시킬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런 현장신문은 발간주체인 사회주의자들조차도 정치적으로 성장, 발전시킬 수 없고, 오히려 조합주의적으로 퇴보시킬 수 있다. 또한 주로 경제선동만 하는 전투적 노조나 현장조직의 신문과 별반 다를 바 없기에 사회주의 현장신문으로서 ‘자기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다. 따라서 사회주의 현장신문이 오래도록 생명력과 활력을 가질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정치선동만 하고 현장의 구체적 사안에 대해 제대로 다루지 않는 것이다. 이 경우는 경제선동은 노조나 현장조직의 몫이고, 정치선동만이 정치조직의 몫이라는 분할적 사고, 현장 문제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현장 노동자들의 고통, 분노, 열망을 옳게 꿰뚫어보며 반영할 수 없는 무능력 등이 문제가 된다.

    주로 정치선동만 하는 현장신문은 현장노동자들에게 너무 어렵고, 자신들과는 무관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현장신문이 현장노동자들한테 외면당할 위험이 크다. 그래서 이 경우도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사회주의자와 현장노동자들이 유기적으로 소통할 수 없다면, 사회주의자는 현장을 이해할 수 없고, 현장노동자는 사회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주의자와 현장노동자는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는 수준에 머물기 쉽다.

    따라서 이런 위험을 피하려면 정치선동과 경제선동을 긴밀히 결합시켜야 한다. ‘정치선동과 경제선동의 결합’이란 정신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은 신문의 지면을 적절히 나누는 것이다. 가령 2면짜리 현장신문을 발간할 경우, ‘1면에는 정치선동 기사를, 2면에는 경제선동 기사를 담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는 있지만, 이렇게 면을 배치해야 정치선동 또는 경제선동 가운데 어느 하나에만 매몰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3) 어떤 내용과 방식으로 정치선동을 할 것인가?

    1면의 정치선동 기사는 모든 현장신문에 통일적으로 싣는다. 그렇게 하면, 통일적인 정치선동을 통해 현장신문을 읽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통일적인 노동자 정치의식을 불어넣을 수 있다. 1면의 정치선동도 이슈가 되는 주요 사안을 계급적으로 날카롭게 분석하되, 쉽고 분명하며 대중적인 언어로 써야 한다. 당면의 사회,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노동자의 불만과 분노를 적절하게 표현하면서, 노동자들이 그 사건의 계급적, 정치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로 나아갈 수 있게 주의를 기울여 선동해야 한다.

    2008년 1월부터 2009년 6월까지 약 1년 반 동안 사노련은 현장신문 1면에서 다음과 같은 주제를 다뤘다. 주간연속2교대 투쟁,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공황과 대량 실업, 쌍용차 정리해고와 그에 맞선 파업은 약간씩 각도를 달리하며 여러 차례 다뤘다.

    북한 핵실험, 노무현 죽음, 국회의원 재보선 평가, 돼지독감, 박연차 비리, 일제고사, 성폭력 문제 등으로 공격받는 민주노총, 비정규악법 추가 개악 기도, 과들루프 노동자 총파업,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압력, 현중 무교섭과 노사민정 대야합, 용산참사, MB악법, 금속노조 양보교섭 기조 비판, 부자 감세, 민주당과 야합한 민노당·진보신당 비판, MB의 교육정책, 조류독감, 중국 정부의 티베트 학살 규탄, 이천 화재참사, 삼성 비자금 등이다. 이 목록만 보더라도 정치·경제·사회·문화·국제 등 사회 전반을 폭넓게 다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현장노동자들은 1면 정치선동 기사보다는 2면의 현장 기사들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현장 기사와 비교해볼 때 정치선동 기사는 자신들과 더 멀리 있는 문제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꾸준히 현장신문을 발간하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1면 정치선동 기사를 읽는 노동자들의 비율이 늘어나고, 기사에 대한 반응도 좋아진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1면 정치선동 기사로는 하나 또는 두 개를 싣는 것이 적절한데, 노동자들의 관심도가 아주 높은 사안이 아니라면 두 개의 기사를 싣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 같다. 특별히 커다란 주목을 끄는 사안일 경우, 또는 좀 더 깊이 있는 분석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한 개의 기사로 1면을 다 채우는 것도 괜찮다.

    2. "노동자는 하나"라는 정신으로 현장을 단결시킨다

    (1) 현장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2면 현장기사는 무엇보다 현장노동자 모두를 ‘하나’로 단결시키려 한다. 따라서 비정규직(2,3차 사내하청까지),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통상적인 노조나 현장조직에서는 쉽게 간과할 수 있는 밑바닥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대변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단, 정규직을 적대시하는 일부 비정규직의 편협한 부문주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모든 문제에서 계급적 단결이라는 관점을 놓치지 않는다.

    많은 정규직 노조나 정규직 현장조직은 정규직 조합원의 이해만을 대변한다. 그리고 많은 비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조합원의 이해만을 대변한다. 설사 정규직 노조나 정규직 현장조직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해까지 대변하고, 비정규직 노조가 정규직 노동자의 이해까지 대변하더라도 항상 의식적으로 대변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한다. 이런 약점은 해당 조직이 발간하는 선전물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하지만 현장신문은 목적의식적으로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의 이해를 대변하려 한다.

    또한 현장신문은 특정 부서만이 아니라 모든 부서의 중요 사안을 다루려고 한다. 모든 현장에서 사측은 부서별로 ‘칸막이’를 설치해 노동자들을 분할시킨다. 그리고 노조는 대부분 이런 분할을 없애고 노동자들을 하나로 단결시키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노력하지 못한다. 현장신문은 여러 부서의 사안을 노동자의 관점에서 다룸으로써 현장노동자들이 현장 전체를 바라보고, 모든 노동자의 단결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실제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우리의 현장신문을 통해 다른 부서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각각에서, 따라서 현장 전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 이것도 많은 현장노동자들이 우리 현장신문을 좋게 생각하는 한 가지 이유다.

    (2) 현장 사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현장 문제를 다룰 때는 가능한 한 불평하는 목소리보다는 도전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미 발생했는데 노동자들이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 (자본과 정권의) 공격을 다룰 때에는 유머를 사용하는 것이 종종 가장 좋은 방법이 된다.”3)

    단결과 투쟁을 꺼리는 후진 노동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단결과 투쟁을 원하는 선진적인 노동자의 목소리를 최대한 담아야 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특정한 요구를 갈망하고 있고, 선진적 노동자들이 그런 요구를 제기하기 시작했다면, 현장신문은 그런 요구를 보다 정확히 제시해 줘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초보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면 그런 행동을 적극 지지하면서 강화, 발전시킬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을 제시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자본과 정권이 공격을 퍼붓는데도 노동자들이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현장신문이 강경한 요구를 내걸고 과도하게 행동을 촉구한다면 현장노동자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쉽다. 그것은 현장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보다 자괴감에 빠지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적절한 풍자와 유머로 노동자들이 여유를 갖고 상황을 이해하고, 자본과 정권의 저열함을 실컷 비웃으며 스스로 ‘도덕적 자부심’을 느끼게 만드는 게 좋다.

    “내용은 가능한 한 다양하게 아주 작은 항목들로 쪼개진다.”4) 이렇게 하면 노동자들이 말하는 것을 거의 그대로 글로 옮길 수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기사를 쉽게 이해하고, 다른 노동자에게도 쉽게 전달할 수 있다.

    “○○부서의 고장난 수도 꼭지가 석달째 망가진 채 그대로다. 우리가 왜 이런 푸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열대야로 잠을 설치고, 찜통공장에 오니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런데 사측은 혹서기 휴식시간마저 줄이자고 한다. 이걸 가만 둘 것인가?” 이렇게 짤막한 기사는 노동자들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머릿속에 쏙쏙 넣을 수 있고, 다른 노동자를 만나 재밌고도 정확하게 옮길 수 있다. 장황하게 쓰지 않고 핵심만 간단명료하게 전달하는 글은 현장노동자들에게 호응을 받을 수 있다. 그런 호응이 많을 때 현장신문은 현장노동자들 속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다.

    글을 ‘여러 항목으로 잘게 쪼개는 것’에는 또 다른 목적도 있다. 기사가 모두 길다면 2면에 3~5개 정도의 기사만 실을 수 있는데, 그 경우 현장신문이 현장 전체를 반영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가령 10개 부서가 있는데, 그 중 상대적으로 의식과 조직력이 앞서 있는 2~4개 부서만 계속 다룬다고 해 보자. 그 경우 현장신문은 현장 전체를 반영하지 못해 현장 노동자 전체에 뿌리를 내려가기 어렵다. 긴 기사에 여러 부서를 같이 끼워 넣으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때에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항상 그렇게 하면 2~4개의 주요 부서를 제외하고 다른 많은 부서들이 현장신문에서 소외될 수 있다. 현장신문은 ‘(대중신문을 가장한)활동가용 신문’이 아니라 ‘노동자신문’이라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또한 모든 현장노동자들이 현장신문을 장시간 꼼꼼하게 검토하지는 못한다. 대개 현장신문을 받자마자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면서, 길을 가면서, 버스 안에서, 일을 하다가 잠깐씩 본다. 따라서 짤막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쓸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하나의 기사에서 여러 가지를 주장하기보다, ‘한 가지’만 분명하게 주장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하지만 모든 글을 그렇게 짧게 작성할 수는 없다. 그리고 항상 단순한 폭로와 풍자에만 그칠 수도 없다. 보수 언론이나 사측 신문이 쏟아내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글, 전공장 차원의 중요 현안에 대해 체계적으로 분석하면서 정확한 요구와 투쟁방향 등을 제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짧은 글로 내용을 다 채울 수는 없다. 그런 경우는 조금 길더라도 내용을 풍부하게 담아낼 필요가 있다.

    글이 아주 짧아야 하는가 조금 길어도 좋은가, 풍자와 조롱 중심인가 요구와 투쟁방향 중심인가에 대한 천편일률적 답은 없다. 전체 정세와 해당 현장의 상황, 사안의 성격과 그 사안을 둘러싼 투쟁의 발전 정도, 사회주의자가 그 투쟁에 결합해온 정도와 투쟁을 밀어갈 수 있는 주체적 역량 상태 등 여러 가지에 따라 일정하게 달라질 수 있다.

    (3) 현장신문 2면에서 어디까지 다룰 것인가?

    현장신문 2면은 보통 해당 사업장 기사를 싣는다. 이것은 현장신문이 해당 사업장 노동자들을 위한 신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그 노동자들과 밀접히 결합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현장신문은 보통 하나의 사업장 단위로 발간하는 게 좋다. 가령 현대차 울산공장, 현대차 아산공장, 현대중공업 등 사업장별로 발간하는 것이다. 특히 노동자혁명에서 전략적 가치가 아주 큰 대공장, 그것도 여러 곳으로 분산되지 않고 한 울타리 안에 수천 명이나 수만 명이 모여 있는 대공장에서부터 발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장 이상적인 방식은 한 사업장에서도 부서별 현장신문과 전공장 현장신문을 같이 발간하는 것이다. 울산공장을 예로 든다면, 전공장 신문을 격주로 발간하고, 1공장 신문, 2공장 신문, 3공장 신문, 4공장 신문, 5공장 신문, 엔진변속기 신문 등을 또 다른 격주로 발간하는 것이다. 이 경우 노동자들은 매주 현장신문을 받아볼 수 있다. 매주 사회주의 정치선동을 들을 수 있고, 매주 전공장과 자기 부서 현안을 다룬 기사를 읽을 수 있다면,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은 더 고양될 수 있고, 노동자들은 부서별로도, 전공장 차원에서도 더 굳게 단결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사업장을 포괄하는 신문(가령 지역신문)의 경우 노동자들은 그것이 ‘자신들을 위한 신문’이라는 느낌을 못 받거나 덜 받을 수 있고, 그만큼 관심을 덜 기울일 수 있다. 특히 노동자운동이 상대적으로 침체해 있거나 충분히 상승하지 않았고, 노동자들이 아직 지역과 전국 사안에 대해 높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에는 전국신문, 지역신문이 ‘대중적’으로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전국신문과 지역신문은 노동자들 가운데 가장 선진적인 일부에게만 잘 읽히고, 받아들여질 것이다. 따라서 그런 시기에 광범위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로는 현장신문이 효과적이다.5) 그런 만큼 2면에서는 현장 사안을 최대한 다뤄주는 게 좋다.

    물론 노동자운동이 상당히 발전했거나, 계급투쟁이 고양돼 일반 노동자들도 지역과 전국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질 경우에는 지역신문도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2면에서 지역, 전국 현안을 다룰 순 없는가? 있다. 1면에서 다 채우지 못한 중요한 전국, 지역 현안이 남아 있을 경우, 2면을 다 채울 현장 기사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 2면에서 지역, 전국 현안에 대해 노동자의 관점에서 다룰 수 있다.

    철도, 지하철, 전화국, 유통사업장처럼 여러 곳으로 현장이 분산돼 있는 경우에는 어떻게 현장신문을 발간할 것인가? 이런 경우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핵심적인 현장에서 노동자 전체를(정규직, 비정규직 포함) 대상으로 현장신문을 발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주의자의 역량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가급적 1,000명이 넘는(최소한 500명이 넘는) 핵심 현장에서부터 현장신문을 발간할 필요가 있다. 핵심 현장에서 현장신문의 전형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주의 현장활동을 모범적으로 펼친다면 다른 현장으로 이 모범을 전파하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위의 경우 필요와 역량에 따라서는 서로 가까운 곳에 있고, 서로 연결돼 있는 몇 개 현장을 하나로 묶어서 현장신문을 낼 수도 있다.

    또한 공단에 똑같은 업종의 사업장들이 뭉쳐 있거나 서로 연쇄고리를 맺고 있는 사업장들이 모여 있다면, ‘OO공단 노동자신문’ 같은 지역 차원의 현장신문을 발간할 수도 있을 것이다.

    3. 현장신문이 있어야 현장분회가 힘차게 살아움직인다

    1) 사회주의 현장신문은 사회주의 현장분회의 기관지다

    ‘현장신문은 현장분회(현장세포)의 기관지’다. 따라서 노조나 현장조직이 현장에서 발간하는 신문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주의 현장신문’과는 분명하게 구별된다.

    노조나 현장조직이 내는 신문은 아무리 전투적이고 계급적이라고 해도, 사회주의 현장분회가 내는 사회주의 현장신문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개량주의나 조합주의에 길들여지고, 관성에 빠진 노조나 현장조직이 내는 신문과 다르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보자. 노동자 대중조직이라기보다는 활동가조직에 가까운 현중 하청 노조가 있다. 이 노조가 5년 가까이 아주 성실하게 발간해온 주간 ‘사내하청노동자’는 전투적이고 계급적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훌륭하다. 하지만 그런 신문조차도 그때그때 터져나오는 주요한 사회, 정치 사안에 대해 정확하고 풍부하게 사회주의 정치선동을 하지는 못한다. 또한 현중 정규직까지를 항상 목적의식적으로 겨냥해 선동하기보다는 현중 비정규직을 주로 겨냥해 선동한다는 불가피한 한계도 있다.

    현장조직이 발간하는 선전물(신문, 유인물, 대자보)은 대개 정기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적 사안을 충분히 다루지 않고, 대개 쟁점이 되는 현장 사안 중심으로 다룬다.  사회, 정치적 사안을 다룰 때에도 명확하게 사회주의 선동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민족주의, 개량주의 관점이 강하게 묻어나는 글도 많다.

    ‘현장신문이 현장분회의 기관지’인 이상, 현장분회가 없는 현장신문이란 원칙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현장에 사회주의자들이 있더라도 대단히 허약해 명실상부한 현장분회를 만들 수 없는 경우에는 현장신문을 안정적으로 발간하기 어렵다. 그런 경우 현장신문 발간활동을 형식상 시작하더라도 언제 중도 하차할지 모른다.

    따라서 현장신문 활동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현장분회를 건설하고 강화하기 위해 다방면에 걸쳐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가령 관계를 맺고 있는 현장활동가를 사회주의 노동자로 단련시키기 위한 개별 조직화 활동, 현장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외부활동가를 적절히 배치하고 현장 활동가와 외부 활동가 사이에 긴밀한 협력관계를 갖추어 나가는 것, 크고작은 현장투쟁에 결합해 사회주의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사회주의자 주변으로 가장 믿음직한 노동자투사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는 것 등이 그에 해당한다. “현장분회가 강할수록 현장신문도 강력해진다.”

    2) 현장신문은 기존 현장분회를 더 굳건하게 만든다

    위에서 현장분회가 현장신문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 봤다면, 여기서부터는 현장신문이 현장분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 보겠다. 양자의 상호작용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현장신문을 다루는 이 글에서는 후자에 대해 보다 깊이 검토하겠다.

    “현장신문이 없는 현장세포는 무장해제당한 현장세포다.” 현장신문이란 무기를 갖지 못할 때, 현장분회란 기껏해야 ‘잠들어 있는 용’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현장에서 파업과 같은 커다란 투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현장분회가 현장신문이란 무기를 갖고 있지 못하면, 제때 분명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노조나 현장조직을 활용해서 목소리를 간접적으로 낼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수많은 노조·현장조직이 패배주의와 무기력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는 사회주의 조직이 노조나 현장조직을 통해 제때 분명하게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개의 경우 파업과 같은 커다란 투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현장신문이 없는 사회주의 현장분회는 발만 동동 구른 채 사태의 전개과정을 단순히 지켜보는 수동적 방관자로 머물 수 있다. 이것은 현장분회만이 아니라 사회주의자 개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현장신문이란 무기를 확보하고, 이런 무기를 활기차게 이용할 수 있을 때에야 현장분회란 살아움직이는 기구가 될 수 있다. 현장신문은 평상시에 격주간으로 발간하다가 투쟁 시기에는 주2~3회라도, 아니 매일이라도 발간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장신문을 가진 현장분회는 투쟁 시기에 훨씬 더 활력 있게 움직일 수 있다.

    현장신문이란 무기가 없을 때는, 현장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현장분회의 활동가들조차도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지는 경향이 있다. 현장신문처럼 가장 기초적인 무기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면, 현장분회 구성원들이 현장분회 차원에서 통일적으로 펼치는 사업이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 현장분회 구성원들은 각자의 활동 역사, 존재 기반, 스타일 등에 따라 서로 다른 활동을 펼치는데, 서로의 활동을 하나로 ‘통일’키고, ‘응축’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의 활동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충분히 교류하지 못해 내적 결속력이 높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현장신문 같은 무기를 갖지 못한다면 전반적으로 활력이 떨어지고 무기력과 패배감이 현장분회를 휘어잡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상황에서는 현장분회원들 사이에 불신, 책임 떠넘기기 등이 더욱 커져서 현장분회가 산산조각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신문이란 무기를 확보했을 때, 현장분회는 살아움직이는 기구가 될 수 있다. “이제껏 현실보다는 주로 문서상에 존재해 왔던 공장세포가, 이제는 살아 있는 기구가 되었다.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공장세포의 활동이 모든 성원들을 하나로 용접시켰다.”6)

    현장신문을 통해 현장분회는 현장 노동자들에게 자기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고, 노동자투쟁에 책임 있게 결합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장분회원들은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현장분회와 조직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수 있다. 또한 현장신문을 발간하기 위해서는 규율 있게 모이고 활동해야 하는데, 이런 활동이 현장분회를 ‘모래알’이 아닌 ‘시멘트’로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현장신문 활동을 통해 인텔리 활동가(외부 활동가)와 현장 활동가(내부 활동가)가 끈끈히 결합할 수도 있다. 현장활동가는 매시기 현장 상황이 어떤지, 현장 활동을 어떤 방향에서 전개해야 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장신문 기사를 쓰고 깔끔하게 편집하는 데에서는 경험 부족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럴 때 인텔리 출신 외부활동가는 현장활동가의 도움을 받아 현장을 잘 이해하면서, 기사 작성, 교정, 편집, 배포 등에서 현장활동가를 도울 수 있다. 현장신문 활동을 통해 정기적으로 협력하면, ‘인텔리 활동가와 현장 활동가 간의 상호 몰이해와 갈등’도 극복할 수 있고, 신뢰로 똘똘 뭉친 굳건한 현장분회를 세울 수 있다.

    3) 현장신문은 현장분회를 새로 만들 수 있게 해준다

    가령 어느 사회주의그룹의 지역조직에 5~8명의 활동가가 있고, 그 가운데 2~3명이 대공장 A에서 일한다고 해보자. 이런 경우일지라도 현장신문을 발간하지 않는다면, 일상적 시기엔 A공장의 2~3명이 정기적으로 독자적 모임을 가질 절박할 필요가 없을 수 있다. 그래서 지역조직만 굴리고, 현장분회는 따로 만들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이런 지역조직 활동을 통해 “이후에” 현장 기반을 강화하면 독자적인 현장분회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이런 계획을 여러 차례 세우고 새해마다 결의를 새로 다진다 하더라도 계급투쟁이 폭발하기 전까지는 그런 지역조직 중심의 활동만으로는 현장기반을 강화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현장신문을 발간하기로 결정하고 실제 준비에 들어가며 실행에 옮긴다면 지역조직과는 별도로 현장모임을 갖고, 더 나아가 현장분회를 결성해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사회주의 현장활동가 1~3명과 외부활동가 1~2인 정도가 모여 현장신문을 발간하면서 탄력을 얻으면, 명실상부한 현장분회를 건설할 수 있다. 이렇게 현장분회를 건설하고 강화해야 ‘현장분회를 조직적 기초로 한 혁명정당 건설’도 앞당길 수 있고, 사회주의 혁명조직(혁명정당)이 현장에 뿌리를 두고 계급투쟁을 이끌어가는 전략사령부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

    현장신문은 의식적이고 전투적인 현장노동자들을 현장분회 주위로 결속시킨다. 현장신문을 발간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현장 정보를 제공하고, 가능하다면 기사를 직접 작성하며, 재정을 지원하고, 배포를 도우며, 현장노동자들이나 활동가, 노조 관료, 관리자의 반응을 알려주는 현장노동자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모든 활동에 참여하는 노동자도 있을 수 있고, 일부 활동에만 참여하는 노동자도 있을 수 있다.

    어쨌든 이런 활동을 정기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의식적이고 전투적인 현장노동자들이 현장신문 주위로, 따라서 현장분회 주위로 모일 수 있다. 이 점에서 레닌이 전국적 정치신문에 대해 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장신문도 ‘집단적 선전가, 선동가일 뿐만 아니라 집단적 조직가’다.

    이렇게 의식적이고 전투적인 현장노동자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현장에서 중요한 사안이 터졌을 때 이 네트워크가 현장투쟁의 구심 역할을 해낼 수 있다. 이 점에서 현장신문을 통한 조직화는 계급투쟁을 조직하고 지도하는 데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4. 현장신문 활동은 노조 활동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화시킨다

    사회주의 현장신문의 의미를 강조하다 보면 노조나 현장조직 활동을 과소평가하거나 부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현장신문이 만병통치약이냐?”는 반문도 거기에 해당한다.

    물론 현장신문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현장신문 활동이 노조 활동이나 현장조직 활동, 현장 투쟁, 개별 조직화 등 다른 활동을 절대 대체할 수 없다.

    만약 어떤 사회주의 조직이 현장신문 활동에만 머문다면 현장노동자들은 그 사회주의 조직을 ‘말로만 떠들 뿐 실천하지 않는 조직’이라고 생각하며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현장신문에서 말했던 것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특히 아래로부터 평조합원 운동을 만들어가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현장신문을 무기로 사회주의 현장활동을 하지 않고 단순히 노조·현장조직 활동과 현장투쟁만 전개한다면 그건 아직 ‘반쪽짜리’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현장 투쟁, 노조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고 현장신문 활동만 한다면 그것도 ‘반쪽짜리’일 뿐이다. 그건 실천이 없는 이론처럼 생기 없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따라서 한 가지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활동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현장신문 활동이 노조 활동(현장조직 활동까지 포함해)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화시킨다는 점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정리하겠다.

    지금 대부분의 현장에서는 노조 운동이 ‘노동운동’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노조가 ‘지침’을 내리지 않으면, 현장에서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일이 거의 없다. 87년 대투쟁과 그 직후처럼 계급투쟁이 활발하던 때에는, 노조가 ‘전투적 지침’을 많이 내렸기 때문에 노조 중심으로 활동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관료주의·조합주의가 대부분의 노조를 휘감고 있는 상황에서는 노조의 ‘지침’에 따라서만 움직이려는 태도는 현장을 무덤처럼 만들어 버린다. 자본가들이 비정규직을 짤라도, 임금과 복지를 삭감해도, 현장을 숨막히게 통제해도 노조의 지침이, 그것도 이미 관료화된 노조에서 지침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린다면 어떻게 될까?

    현장이 살아움직이려면 노조의 ‘지침’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동적 태도를 벗어나, 현장노동자들이 필요할 때 자기 목소리를 능동적으로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무덤처럼 죽어있는 현장에서 일반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쉬울까? 15~20년 가까이 활동해온 고참 현장활동가들조차 자기 목소리를 잘 내지 못하는 일이 흔한데, 일반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건 그만큼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경제위기 때문에 자본과 정권의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압력이 과거보다 훨씬 거센 상황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따라서 이런 상황을 깨뜨리고 현장활동가들과 현장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과감하게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장 의식적이고, 가장 전투적이며, 가장 헌신적인’ 사회주의 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줘야 한다. 자본과 정권, 심지어는 노조 관료나 후진 노동자들로부터 밀려오는 온갖 압력에 굴하지 않고, ‘일시적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고 노동자계급의 목소리를 당차게 낼 수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이 현장신문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목소리가 현장에서 울려퍼지게 하면, 가장 의식적이고 전투적인 노동자들부터 이런 목소리에 반응을 보인다. 현장신문을 통해 선도적이고 지속적으로 선동하면 할수록 곳곳에서 노동자투사들이 능동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도 더 쉬워진다.

    세계 혁명운동의 경험은 이걸 잘 보여준다. “미국은 어떤 점에서도 공장신문 사업의 전형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미국 공산당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늪지대 같았던 몇 개 안 되는 회사들에서 공장신문에 착수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을 고용주에 맞선 활기찬 행동으로 이끌어갔다.”7)

    현대차 울산공장의 경험도 마찬가지다. 08년에 사노련은 현장신문을 통해 ‘생활임금 보장하고, 노동강도 강화 없고, 고용불안 없는 주간연속2교대제’, ‘잔업, 특근 없이 하루 8시간, 주 40시간 노동만으로 생활임금 월급제 쟁취’, ‘원청 정규직, 비정규직, 부품사 노동자 간의 공동투쟁 공동쟁취’와 같은 계급적 원칙을 몇 달 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처음에는 ‘생산량을 맞추려면 특정 부서에서 상시 야간조를 도입하는 것도 불가피하다’, ‘우리 요구도 쟁취하기 어려운데, 비정규직·부품사 요구까지 전면에 내걸어야 하느냐’, ‘하루 8시간 노동만으로 생활임금 월급제를 쟁취하자고 하는 건 너무 무리 아니냐’와 같은 소심하고 타협적인 분위기가 현장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있었다. 하지만 계급적 요구를 현장노동자들을 향해 꾸준하게 제기하자, 점차 그런 계급적 요구를 ‘말’로나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적어도 대놓고 부정하지는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런 심리적 분위기 형성은 이후 윤해모 집행부가 주간연속2교대제와 관련해 졸속합의를 했을 때, 그에 맞서 아래로부터 투쟁하는 데 일정하게 기여했다.

    09년에도 사노련은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몇 달 동안 쌍용차 정리해고에 대해 노동자의 관점에서 폭로·선동하고, “연대파업”을 호소하면서 현장노동자들의 의식과 태도, 현장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노력은 이후 연대파업을 호소하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만들어지는 데 나름대로 기여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현장신문 활동은 다른 현장활동, 노조활동과 대립하는 게 아니다. 현장신문 활동은 자본가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고, 자본과 노조 관료의 이중삼중의 통제가 먹혀들고 있는 숨막히는 현장에서 현장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울려퍼지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현장신문 활동이 활기차게 전개되면, 이로부터 자극을 받아 다른 현장활동, 노조활동도 활발해질 수 있다. 그런 만큼 현장신문 활동을 활기차게 펼치는 사회주의 조직이야말로 고립되지 않고, 노동자계급과 더 굳게 결합할 수 있다.

    5. 현장신문의 역사

    1) 초기 코민테른의 공장신문 사상과 활동

    “서구 공산당들의 활동에서 공장신문이란 하나의 혁신이었다. 공장신문은 러시아에서 벽보의 형태로 나타났던 혁명적 토양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최근에 노동자의 동유럽과 자본가의 서방세계를 가로지르는 경계선을 넘어오면서 등사판 공장신문의 형태를 취했다. 그리고 그것은 선동, 선전, 조직화의 형태로 나아가면서 진정한 중요성을 얻어갔다.”8)

    왜 ‘공장신문’이 서구 공산당들에게 ‘혁신’이었는가? 서구 공산당들은 대부분 제2인터내셔널의 사회민주당으로부터 분화해 나왔다. 그런데 사회민주당은 맑스주의 사상은 받아들였을지라도 조직적 기초를 현장이 아닌 지역 선거구에 두었다. 따라서 현장에서 활동하는 노동자당원들이 현장분회 같은 조직적 수단을 통해 아래로부터 사회민주당을 정확히 통제하기가 어려웠다. 즉 현장노동자 당원들이 ‘당의 주인’으로 우뚝 서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여러 나라에서 사회민주당을 이끌어간 핵심 지도부는 다름 아닌 ‘사회민주당 국회의원단’이었다. 그랬기에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사회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제국주의 전쟁에 찬성하자마자 사회민주당은 빠르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이 쓰라린 경험을 교훈삼아, 코민테른에서는 ‘현장분회를 조직적 기초로 한 노동자혁명당’ 노선을 분명하게 제기하고, 이 노선에 입각해 사회민주당의 잔재를 떨쳐버리지 못한 서구 공산당들을 개조하기로 결정했다9). 이때 코민테른은 현장분회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하고, 현장분회를 강화할 기본 핵심 수단으로 ‘현장신문’을 제출했다. 따라서 ‘현장신문’은 선거구(지역) 중심의 활동에 익숙해 있던 서구 공산당들에게는 ‘혁신’적 수단이었다.

    현장신문의 맹아는 러시아의 ‘벽보’(오늘날의 대자보)였는데, 인쇄 기술이 발전하면서 등사판 공장신문이 됐다. 그리고 단순한 ‘매체’를 넘어서서 ‘선동, 선전, 조직화의 무기’가 됐다. 현장신문이 기술적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정치적 측면에서도 훨씬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초기 코민테른의 정신과 방침은 다음과 같았다. “공장에는 사회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산업노동자가 함께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기 때문에, 당 조직을 공장에서 강화시켜 갈 수 있다”, “(가두세포나 지역세포가 아닌) 공장세포만이 노동자들을 혁명세력으로 전환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공장세포가 당의 핵심 기초조직이 돼야 한다”, “공장세포를 일상생활 가운데서 한 걸음씩 확산시켜 가야 한다.”

    이런 정신과 방침에 따라 프랑스 공산당은 공장세포를 적극 조직해 나갔다. 1923년에 처음으로 파리지역 공장에 세포 조직을 만든 이래 1927년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898개의 공장세포를 만들었다.

    1927년 프랑스 공산당의 산업별 공장세포 현황10)

    산업부문

    세포수

    세포 구성원 수

    철도

    218

    4,467

    금속

    212

    3,309

    우편전신전화

    137

    2,503

    광산

    122

    1,807

    섬유

    56

    1,083

    기타

    156

    4,288

    총계

    898

    17,448


    프랑스 공산당은 공장세포 신문을 세포의 공적 표현수단이자 노동자들의 신뢰를 얻어 그들을 혁명투사로 전환시킬 수 있는 핵심수단으로 여기며11), 공장세포에 공장신문을 발행하라고 지시했다.

    「공장신문이 나오자마자 고용주는 화가 났다」, 「노동자들이 신문기사를 쓸 수 없다고?」 같은 글은 초기 코민테른이 현장신문을 아주 중요한 무기로 바라봤으며, 현장신문이 사회주의 현장활동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2) 프랑스 LO의 현장신문 사상과 활동

    러시아에서 스탈린 반혁명이 일어나면서 코민테른과 각국 공산당은 ‘스탈린 반동권력의 외교 수단’으로 전락해 갔다. 그러면서 각국 공산당은 제2인터내셔널의 사회민주당처럼 지역 선거구에 기초한 개량주의 조직으로 변질됐다. 따라서 노동자를 혁명계급으로 단련시킬 무기인 현장신문을 공산당은 버렸다.

    트로츠키는 맑스-레닌주의의 진정한 혁명전통을 계승해 “혁명가가 있어야 할 곳은 무엇보다 현장이다”, “노동자가 혁명사상을 움켜쥐게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가 주도해서 만든 제4인터내셔널도 그의 죽음 이후 점차 소부르주아 세력이 주도하는 개량주의 조직으로 변질돼 갔다. 그래서 여러 트로츠키주의 조직도 현장신문 사상을 (따라서 현장분회를 기초로 혁명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사상도) 거부하거나 기껏해야 말로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맑스-레닌주의와 트로츠키주의의 혁명전통을 계승해 ‘현장분회를 기초로 한 혁명적 노동자당 건설’을 위해 분투하는 조직이 있다. 바로 프랑스 LO다.

    LO(Lutte Ouvrière “노동자투쟁”)는 1930년대 말 혁명적 지식인 트로츠키주의자 중심의 소그룹으로 출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비합 활동을 전개하면서 맥을 이어나갔다.

    1947년 2월 13일, LO는 파리 르노 공장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라는 현장신문 첫 호를 발간했다. 그리고 그 공장에서 4~5월에 파업이 일어났다. LO 조직원들은 르노 자동차 노동자들을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일상 활동 속에서 불만을 가진 노동자들을 조직해 나갔다. 당시 아무도 르노 자동차에 관심을 갖고 나서지 않았는데, 이 그룹이 르노 투쟁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투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를 만들자, 노동자들은 이들을 신뢰하기 시작했고, 정치적·실천적 관계가 맺어질 수 있었다.

    이걸 토대로 아래로부터 파업위원회를 만들어 파업을 밀어갔다. 스탈린주의 영향을 받아 이미 상당히 타락해버린 공산당과 그 계열의 CGT(노동총동맹)는 ‘전후 재건(경제성장)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파업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파업 파괴자로 나섰다. 하지만 파업위원회는 파업 찬반 투표에서 공산당의 요구를 아래로부터 대중적으로 거부하고 파업에 들어갔다. 비록 스탈린주의 공산당의 끈질긴 파업파괴 공작 때문에 르노 총파업은 가시적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혁명가들이 어떻게 현장활동을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현장신문을 통한 선동과 현장투쟁을 밀접히 결합시킨 것, 모범적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결합력을 강화한 것, 아래로부터 노동자들의 힘을 모아 파업투쟁을 전개하고 파업위원회를 통해 노동자민주주의를 구현하려 한 것 등이 배울 점이다.

    르노 자동차공장에서 발간한 현장신문이 노동자들로부터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자, LO는 다른 공장에서도 현장신문을 내기 시작했다. 1960년에 LO는 32개의 현장신문을 발간하게 된다. 그리고 1962년에는 <계급투쟁>이란 기관지와 별도로 대중적인 전국 정치신문도 발간한다.

    68혁명을 계기로 여성, 문화, 교육 등이 커다란 사회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많은 좌파들이 그런 유행을 따라갔다. 하지만 LO는 현장에서 노동자계급을 조직하는 데 계속 집중했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초심을 계속 유지한 것이다.

    LO는 60년대를 거치며 노동자혁명에서 사활적인 진지인 대공장의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그곳에서 현장신문을 발간하고 현장분회를 조직할 수 있도록 많은 인텔리 활동가들을 대공장에 ‘외부활동가’로 배치했다. 길게 내다보고 전략사업장 중심으로 계획적으로 배치했기에 20~30년이 지난 다음에는 많은 주요 대공장에서 기반을 내릴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혁명을 항상 대비하면서 현장신문을 통해 노동자의 사상을 현장노동자들에게 끈질기게 전파하고, 사회주의 현장노동자 중심으로 투사들의 네트워크를 발전시켜 가는 것, 노조 관료로부터 독립해서 아래로부터 노동자투쟁을 밀어가고, 튼튼한 대중 기반을 바탕으로 기층 노조부터 장악해 투쟁을 더욱 밀어가는 것이 LO의 현장활동 사상이다.

    LO는 오늘날 50만 규모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약 400개의 현장신문을 발간한다. LO는 현장신문을 매개로 하는 사회주의 현장 정치활동을 무척 강조하는데, 초기 코민테른의 현장신문 사상을 계승하는 한편, 보다 체계화하는 역할을 했다.12)

    LO는 영국, 미국, 터키, 아이티 등 다른 나라에서도 대공장 중심으로 현장신문을 발간하며 사회주의 현장활동을 꾸준히 전개해 왔다. 또한 프랑스 본토와 과달루프, 마르티니크 등 해외 식민지에서 벌어지는 여러 노동자투쟁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것은 현장신문을 무기로 사회주의 현장활동을 꾸준히 전개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비록 LO가 한국의 소규모 혁명조직들보다는 상당히 더 클지라도, 노동자계급 속에 깊이 뿌리박은 혁명적 노동자당은 아직 아니다. 명실상부한 혁명정당을 건설하려면 LO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도, 헤쳐 나가야 할 난관도 많을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LO의 사상·정책·실천활동 전체가 세계적 권위를 얻기는 힘들고, 그런 만큼 이러저러한 문제제기와 논쟁이 생겨나는 것도 자연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이 투쟁과 해방의 주체로 서야 한다는 확고한 관점을 갖고, 현장신문을 무기로 한 사회주의 현장활동의 혁명적 전통을 계승·발전시켜온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쉽게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6. 현장신문 활동에 박차를 가하자

    일제 식민지라는 열악한 조건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초보적 형태일지라도 ‘공장신문’을 발간하면서 현장을 조직하기 위해 상당히 분투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한국에서 현장신문은 오래도록 없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한국 노동자계급이 당당하게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지만, 사회주의 현장신문은 함께 등장하지 못했다. 물론 러시아의 ‘벽보’처럼 공장신문의 맹아로 볼 수 있는 사회주의 세력, 계급의식적 선진노동자의 대자보, 현장유인물, 신문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체계적이고 정기적이며 사회주의 조직이 책임있게 발간하는 현장신문은 87년 이후 20년쯤 지난 다음에야 겨우 등장했다. 그만큼 한국사회주의 운동은 취약했다. 특히 사회주의 현장활동은 오랫동안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세계 혁명운동 전통으로부터 ‘단절’됐기에 그만큼 쓰디쓴 고통을 겪어야 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급속하게 성장한 민주노조운동은 빠르게 위기를 맞았다. 노동자투사들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열망을 받아안고 탄생했지만 소부르주아 세력이 주도하면서 민주노동당도 빠르게 타락해갔다. 심지어는 ‘대공장을 노동해방의 요새로’ 만들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현장에 투신한 사회주의자들조차도 전투적 조합주의 운동 수준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전투적 조합주의, 개량주의·의회주의 정치활동을 넘어 ‘사회주의 현장활동으로 나아가자’고 여러 차례 강력하게 외치기도 했지만, ‘구체적 수단과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는 추상적 슬로건에 그칠 뿐이었다.

    외국 혁명가들의 경험과 초기 코민테른의 경험을 통해 사회주의 현장활동의 구체적 수단으로서 ‘현장분회가 발간하는 현장신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이후 현장신문을 발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그 이후 하나둘씩 결실을 맺어오고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 현장활동을 말하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아주 다르다. 마찬가지로 현장신문 활동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과 현장신문 활동을 실제로 전개하는 것도 아주 다르다.

    현장신문을 기초 수단으로 사회주의 현장활동을 시작하려면 많은 난관을 뚫고 나가야 한다. 가장 큰 난관 가운데 하나는 ‘낡은 관성’이다. 전투적이든 그렇지 않든 조합주의 현장활동에서 사회주의 현장활동으로 도약하려 할 경우, 자본과 정부, 어용, 노조 관료로부터 탄압받고, 후진 노동자들로부터 배척당하며, 심지어는 다른 활동가로부터도 견제당할 위험성이 따른다. 단기적으로 볼 때 ‘혁명적 소수파’로서 고립당하고 왕따당할 위험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위험은 한 마디로 부르주아적 또는 소부르주아적 압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압력에 굴종하면 현장신문을 통한 사회주의 현장활동이란 ‘이룰 수 없는 꿈’이 돼 버린다.

    코민테른의 경험도 이 점을 보여준다. “공장세포 간부들이 신문 간행으로 말미암은 고용주의 탄압으로부터 세포를 보호하고, 노조활동을 원하고 있던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노조 활동에 전념하면서 신문간행을 기피”13)했기 때문에 공장세포가 공장신문을 아예 발간하지 않거나 발간하더라도 불규칙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조합주의 현장활동에서 사회주의 현장활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필사적 도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자본과 정부의 탄압 같은 객관적 조건을 완전히 무시하는 건 진지한 사회주의자의 태도가 아니다. 특히 극악한 탄압이 벌어지는 사업장이라면 ‘우회적’ 방식으로 사회주의 현장활동을 펼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달랑 1~2명이라 현장신문을 낼 수 없다?

    현장신문이 ‘현장분회의 기관지’인 이상, 현장분회가 없다면 현장신문을 낼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왜 현장신문을 내지 못하는가?”라고 묻는다면, “현장에 사회주의자들이 1명이나 고작해야 2명 정도밖에 없는데, 이 숫자로 현장신문을 낼 수 있는가?”라는 답변이 나올 수 있다. 현장분회를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주체적 역량이 취약하므로 현장신문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답변은 ‘현장신문은 현장분회의 기관지’라는 명제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명제를 기계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현장신문은 완성된 현장분회가 없더라도, 현장분회의 싹이 있으면 발간할 수 있다. 가령 사회주의 조직을 지지하고 사회주의 현장활동을 결의한 현장활동가들이 몇 명 있거나 1명이라도 믿음직한 사회주의 노동자, 계급의식적 선진노동자가 있다면 현장신문을 발간할 수 있다. 물론 이 사회주의 노동자 또는 계급의식적 선진노동자는 현장신문 2면을 적절하게 채울 수 있게 현장 정보를 수집하고, 가급적 기사를 직접 작성하고, 신문 발간비를 내고, 배포를 지원하며 반응을 체크할 수 있는 의식적이고 능동적인 노동자여야 한다.

    하지만 상당히 의식적인 선진노동자라도 현장신문 활동을 혼자서 감당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특히 글을 쓰는 데 익숙하지 않은 노동자라면 더 더욱 혼자서는 현장신문을 낼 수 없다. 그리고 노동자는 특별한 훈련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편집을 전문적으로 하기 어렵다. 배포 부수가 많은 경우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전부를 직접 배포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현장신문을 발간하기 위해서는 외부활동가의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외부활동가는 그 현장을 잘 이해하기 위해 기업 정보를 찾아서 분석할 수 있고, 현장노동자들과 잘 소통할 수 있으며, 기사를 작성하고 편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공장 바깥에서, 가령 정문 앞에서 출근하는 노동자들에게 현장신문을 규칙적으로 배포할 수 있을 만큼 규율성과 헌신성도 갖추어야 한다.

    이런 외부활동가의 역할은 대학생, 인텔리 활동가, 해고자,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등이 할 수 있다. 경험이 부족한 외부활동가는 다른 사업장의 현장신문 활동에 대한 ‘간접 경험’을 통해, 그리고 해당 사업장의 현장신문 준비과정을 통해 경험을 쌓고 능력을 기르면서 현장신문 활동을 지원할 수 있다.

    현장신문을 무기로 모든 현장을 노동해방의 요새로!

    이렇게 현장신문 활동을 시작할 경우, 사회주의자들은 현장신문 활동을 안정화하면서 현장에 깊이 뿌리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가령 현장신문 2면을 알차게 채우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현장 정보가 필요한데, 이런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현장활동가 및 현장노동자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서 대화해야 한다. 특히 현장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투쟁에 대해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면밀히 파악해야 하며, 최선을 다해 결합해야 한다.

    현장신문을 정기적으로 정확히 배포하기 위해서는 아주 규율 있고, 헌신적이어야 한다. 작은 기사 하나를 작성하고, 편집하고 인쇄하는 과정 하나하나에도 현장노동자들을 생각하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노동자, 현장활동가, 관리자, 정보경찰의 반응도 주의 깊게 수집하고, 분석해야 한다. ‘노동자 스스로 재정을 해결한다’는 정신에 따라 노동자들로부터 재정을 모으기 위한 노력도 끈기 있게 펼쳐야 한다.

    현장신문을 발간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투사들을 조직하는 과정은 계급투쟁의 고양기가 아니라면 상당히 길고 험난한 과정이다. 그리고 새로운 길에 나설 경우 설레임도 있지만, 두려움과 주저함이 따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어렵고 힘들고 낯선 현장신문 활동 대신 편하고 쉽고 익숙한 노조활동이나 현장조직 활동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막상 현장신문 활동을 시작하면,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따뜻한 눈빛으로 현장신문을 받아가고, 진지하게 현장신문을 읽고 동료들과 얘기하는 평범한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답답했는데 옳은 얘기를 시원하게 잘 했다”는 현장노동자나 현장활동가의 얘기에서, 현장신문에 실린 요구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노동자투사들의 우렁찬 함성에서 우리는 노동자혁명의 씨앗이 현장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노동자혁명은 두말할 것도 없고, 파업투쟁조차도 현장신문을 발간하고 이를 통해 노동자투사들을 계급적으로 조직하는 활동 없이는 제대로 성공하기 어렵다. 특히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하고,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는 조합주의 논리가 널리 퍼져 있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그렇다면 노동자운동의 전진을 위해, 그리고 노동자혁명을 위해 현장신문 발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활적 과제다. 현장신문을 무기로 현장에 뿌리박은 사회주의 현장분회를 건설·강화하고, 현장에서부터 계급투쟁을 제대로 밀어가 보자.

    우리의 모토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 “모든 현장을 노동해방의 요새로!”, “모든 현장에서 사회주의 현장신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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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년 5월 12일, 현대자동차 열사정신 계승 결의대회에서 열사회(서영호·양봉수열사 정신계승 사업회) 회장이 발표한 대회사의 일부

    2) 사회주의 현장활동에 대한 보다 총체적인 상은 우리가 작성한 다른 글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가령 이번 <사회주의자> 4호에 함께 실린 ‘사회주의 당 건설운동 전면화를 위한 전국공동토론회’ 4차 토론 발제문을 읽어 보라.

    3) 「노동해방 현장신문」, LO, 사노련 홈페이지 (http://swl.jinbo.net) 문서고

    4) 「노동해방 현장신문」

    5) “바로 그 무렵 큰 규모의 공장세포 하나가 ‘우리 지역의 모든 기업들’을 겨냥한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단순한 임시변통 정도일 뿐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여러 개의 다른 기업들을 아우르는 공동의 공장신문을 내는 것은 독일공산당 중앙기관지인 <붉은 깃발>의 개정판을 내는 것만도 못한 것이었다. 공장신문은 지역 전체를 겨냥한 것일 수는 없으며, 오히려 가급적 지역의 좁은 범위를 겨냥한 것이어야 했다. 따라서 우리는 각 회사마다 공장신문을 만들어야 했고, 당연하게도 대기업에서 먼저 시작해야 했다.” (「노동자들이 신문기사를 쓸 수 없다고?」, 초기 코민테른 자료, 사노련 문서고)

    6) 「노동자들이 신문기사를 쓸 수 없다고?」

    7) 「공장신문이 나오자마자 고용주는 화가 났다」, 코민테른 회보 󰡔인프레코르󰡕, 1925년 2월호, 사노련 문서고

    8) 「공장신문이 나오자마자 고용주는 화가 났다」

    9) “당 조직은 당 활동의 조건 및 목적에 적합해야 한다. 투표용지를 수단으로 부르주아 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데 여념이 없는 사회민주당의 개량주의적 정책 하에서는 필연적으로 선거인을 조직하는 일에 모든 주의가 집중되었다. 따라서 조직은 선거구별, 거주 지역별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조직 구조는 사회민주당으로부터 공산당에까지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공산당의 최종 목표에 모순될 뿐만 아니라 당면 임무에도 모순된다. 우리 당의 최종 목표는 부르주아의 지배를 타도하고,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획득해 공산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당의 당면 임무는 노동자대중의 일상투쟁에 적극 참가하고 이 투쟁을 지도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다수를 획득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당 조직이 현장 노동자대중과 가장 긴밀하게 결합할 때에야 비로소 달성할 수 있다.

       이미 공산주의인터내셔널 제3회 세계대회가 이 입장에서 출발해 공산당의 기초는 현장세포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결정했다.” (「현장세포의 조직에 관한 결의」, 1924년 1월 21일, 󰡔코민테른 자료선집󰡕 1권, 동녘, 192쪽)

    10) 󰡔프랑스 공산주의 운동󰡕, 신서원, 157쪽

    11) “공장신문은 선동과 선전의 주요 수단이며, 당을 공장노동자에게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것 외에도 노동자들이 신문 제작과 전파라는 실천적 작업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구성원들에게 정치의식을 불어넣는다. 그것은 일반노동자들이 공산주의자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게 한다. 그것은 일반노동자들이 정보를 제공하게 하고, 기사 작성은 물론 재정도 지원할 기회를 준다. 그것은 공산주의자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신문이어야 한다.” (󰡔프랑스 공산주의 운동󰡕, 신서원, 162쪽)

    12)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사노련 문서고에 있는 LO의 「노동해방 현장신문」을 보면 알 수 있다.

    13) 󰡔프랑스 공산주의 운동󰡕,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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