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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당을 건설하자 : 1호_역사유물론, 자본주의 쇠퇴론 그리고 공산주의 혁명
 정책위  | 2008·02·21 19:25 | HIT : 4,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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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노련에서 발행한 <사회주의자>1호에 실린 글입니다.)

    특집기획을 내며

    특집기획을 내며



    오세철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이론지 《사회주의자》는 세계 공산주의 운동과 계급투쟁의 역사 속에서 이론적 쟁점이 되고 논쟁의 중심이 되어 왔던 맑스주의의 기본원칙과 사상 그리고 실천 과제를 검토함으로써 앞으로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가 반드시 이룩해야 할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사상이론과 실천의 방향을 모색할 것이다. 이러한 공론의 마당은 한국의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에게만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에게도 열려있는 소통과 논쟁의 마당이다.

    그중에서 <특집기획>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당을 건설하는 데 기초가 되는 강령을 위해 기본적으로 검토해야 할 맑스주의 이론과 실천의 핵심 주제를 선정하여 그와 연관된 논쟁들을 살펴봄으로써 앞으로 우리가 건설해야 할 혁명적 노동계급 당의 강령을 설립하는데 기초를 마련하려고 한다.

    이번 창간호에서는 <역사유물론, 자본주의 쇠퇴론 그리고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주제로 공산주의 혁명의 역사적이고 물질적 필요성뿐만 아니라 실천적 가능성을 맑스주의 기본이론으로 재확인함으로써 세계혁명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제2호부터 제5호까지 네 차례에 걸쳐 맑스주의 이론과 프롤레타리아 혁명 실천에서 핵심적 논쟁이 되어왔던 주제를 선정하여, 제2호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와 계급의식 : 과거, 현재, 미래>를 중심으로 혁명주체의 문제를, 제3호에서는 <혁명조직 : 당, 소비에트, 그리고 노동조합>의 관계문제를, 제4호에서는 <계급과 민족 : 국제주의와 민족주의>를, 그리고 제5호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국가>를 다룰 것이다.

    기획 글의 필자들은 논쟁을 비교 검토하면서도 자신들의 입장을 밝혀 앞으로의 계속되는 논쟁을 촉발시키고 그 과정에서 활발한 토론이 벌어져 혁명당 건설과 강령건설에 크게 공헌하기를 바란다.



    역사유물론, 자본주의 쇠퇴론 그리고 공산주의 혁명



    오세철



    1. 들어가며


    맑스 이후의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는 자본주의 쇠퇴의 역사이며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이는 혁명조직인 당의 역사이며 혁명의 원칙과 지침으로서의 강령의 역사이다.

    따라서 오늘날 공산주의 혁명의 역사적 필연성과 가능성을 알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쇠퇴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 기반 위에서 현 시기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강령과 혁명 전략의 역사적 근거를 밝히는 작업은 이 시대를 사는 모든 혁명적 맑스주의자들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책무이다.

    여기에 맑스와 엥겔스의 공헌은 자본주의 소멸과 공산주의 실현을 위한 물질적 필요성을 과학으로 정련화 시켰다는 것에서 출발하는 의미가 있다. 하나의 생산양식은 그 사회체제가 기반하고 있는 생산관계가 생산력 발전의 족쇄가 될 때까지 소멸되지 않는다는 역사유물론에 대한 이해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 강령을 정의하는 기초가 된다. 맑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 혁명의 전망이 자본주의 자체의 지구적이고 역사적인 진화와 맞물려 있음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주장한 임박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전 세계를 가로지르는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지속적 확장과 성장에 의해 옆으로 떠밀려 최초의 혁명으로서 파리코뮌은 실패했다. 돌이켜보면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생산력과 마지막 갈등에 들어섰다고 19세기 중반에 선언한 맑스의 판단은 어긋났을 뿐만 아니라 틀렸다고까지 볼 수 있다.

    19세기에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생산력의 모순은 결코 해소될 수 없는 막다른 것이 아니었다. 아직도 자본의 지속적인 확대재생산을 가능케 하는 지구상의 광범위한 영역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맑스가 자본의 축적과정에서 확신한 기본 모순, 즉 보편적인 과잉생산 경향, 시장의 포화, 이윤율 저하경향을 자본주의 확대재생산이 상쇄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개괄적으로 인터내셔널의 역사를 통해 이러한 중심 주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공산주의자 선언>은 자본주의가 그 진보적 성격을 소진했다고 주장했지만, 제1인터내셔널에서는 자본주의 뿌리와 가지 모두를 파괴하기 보다는 가능한 진보적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자본주의 성장이 개량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과 개량투쟁의 타당성을 확인시킨 것은 유물론적 입장이었고, 무정부주의처럼 개량투쟁을 반대하고 자본주의의 즉각적 폐절을 요구한 것은 비역사적인 요구였다. 무정부주의자의 입장은 역사적 대세로서의 진전이 아니라 독립 소생산자의 입장으로 퇴행하는 소부르주아 혁명의 표현이었다.

    제2인터내셔널에서는 즉각 획득 가능한 개량, 즉 노동조합 인정과 노동시간 단축 등의 최소 강령을 역사적 위기의 최대강령과 연결시킴으로써 전략적 적응을 하려고 했으나, 최소강령을 유일한 실질적 강령으로 만드는 수정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베른슈타인 등의 수정주의자들은 자본주의 몰락과 사회주의로의 혁명적 이행의 필요성을 부정한다.

    그러나 제국주의적 확장, 미국·독일·러시아에서의 대중파업으로 격렬해진 계급적대, 볼셰비키·룩셈부르크·네덜란드 트리뷴 그룹 등 혁명세력의 존재는 자본주의의 실질적 폭력적 전복의 필요성을 주장한 맑스주의의 기본 언명을 방어하게 했다.

    특히 임노동 관계의 본질은 그 자신의 사회적 관계 내에서 추출한 모든 잉여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는 데 있다는 맑스의 주장에 기초하여,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 역사적 쇠퇴가 지구적 자본주의 생산에 의해 창출된 잉여가치 양에 관련된 자본주의 시장의 소진의 시점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런 점에서 1914년 제국주의 전쟁은 자본주의 역사와 노동자운동의 역사적 전환점이었으며 전쟁과 혁명의 시기임을 레닌의 볼셰비키 그룹, 룩셈부르크의 스파르타쿠스 그룹, 그리고 브레멘 좌익 그룹 등이 천명하였다. 짐머발트와 키엔탈의 국제주의자 대회에서 가장 명확한 입장인 전쟁반대와 혁명을 외친 세력은 이들 세력이었다.

    이를 이어받은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은 1919년 창립 대회에서 “목적과 전술”로 공산주의 강령의 정련화를 위한 역사적 시기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1.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지닌 자본주의가 파괴되지 않는다면 전 유럽문명이 그와 함께 멸망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해체와 몰락의 시기가 바로 현재의 시기이다.

    2.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는 즉각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국가권력 장악은 부르주아지 국가권력기구 파괴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권력기구 조직을 의미한다.1)


    코민테른 창립 대회 선언에서 혁명세력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운동에 대한 명확한 자신감을 나타냈고, 노동자평의회 독재에 기반을 둔 노동자에 의한 즉각적 권력 장악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며, 1차 세계대전 전 노동자운동의 목표 및 조직과의 결별과 자본주의 도구로 전락한 사회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강조하였다.

    의회주의는 노동계급의 이해에 봉사할 수 없음이 대세로 인정되었으며, 식민지 억압문제는 세계 사회주의 사회의 맥락에서만 해결될 수 있음도 인식되었다. 1848년 맑스가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주장한 자본주의 쇠퇴라는 막다른 골목이 70년이 지난 1919년 코민테른 창립 대회에서 확고하게 지지되었다.

    그러나 1921년 코민테른 3차 대회에서부터 혁명원칙의 일관성에 퇴행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독일혁명 패배를 통한 세계혁명 퇴조와 함께 소비에트 국가 고립의 맥락에서 소련과 볼셰비키당의 퇴행이 일어나면서 1928년 스탈린주의 확립으로 반혁명의 시기로 접어든다.

    나치즘, 스탈린주의, 전시경제로 특징 지워지는 1930년대에 자본주의 쇠퇴와 공산주의 강령의 문제를 제기한 그룹은 트로츠키와 이태리 망명좌파였다.

    1934년 9월 《빌랑》(Bilan)지에 실린 <고뇌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와 순환>에서, 미첼(Mitchell)은 생산양식에 내재한 모순의 본질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는 더 이상 역사적 사명, 즉 지속적이고 진보적인 방식으로 생산력과 노동생산성을 발전시키는 사명을 달성할 수 없는 과정으로 규정하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쇠퇴가 1912~1914년에 시작된 것으로 규정한다.

    그는 상승하는 자본주의의 순환적 위기와 쇠퇴의 과정에서 경기상승·후퇴의 본질적 차이를 지적했다. 상승기에는 위기가 세계 자본주의 시장의 지속적 확장에 필요한 계기가 되는 반면, 쇠퇴기에서 시장의 포화는 자본주의 위기가 오로지 제국주의 전쟁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쇠퇴기에 자본주의는 전쟁이라는 한 방향으로만 체제의 모순을 인도할 뿐이다. 인류는 오직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서만 그 결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2)


    그 이후 1980년 말까지 쇠퇴하는 자본주의는 중요한 분기점에 도달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되는 노동자 투쟁은 세계대전으로의 길을 막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의 문제를 제기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그 결과 경제위기의 격화는 사회적 해체의 보편적 과정을 열어놓았고, 자본주의 사회는 발끝부터 썩어 줄기가 찢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러시아 블록의 갑작스런 몰락을 가져왔다.

    이에 세계대전은 언제나 가능한 의제가 되었지만 군사주의와 제국주의를 향한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경향을 완화시키는 방법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1991년 벽두 걸프에서의 거대한 살육에서 이러한 해체의 과정이 국지적·지역적 갈등, 강대국들에 의한 경찰행위, 기근과 생태적 파국 등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 주었고, 이러한 해체의 경향은 이 순간까지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100년 전 쇠퇴기에 접어든 자본주의에 대한 역사적 분석과 혁명주체로서의 노동계급 투쟁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검토하면서 “전쟁인가 혁명인가”의 구호를 다시 한 번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로 외칠 수 있는 혁명가로서의 사상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역사유물론과 자본주의 쇠퇴론에 대한 명확한 인식, 그리고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총체적 전망이 요구되는 중요한 시점이다.



    2. 역사유물론과 자본주의 쇠퇴이론


    (1) 들어가며


    어느 점을 지나면 생산력 발전은 자본에 장애요소가 되고, 결과적으로 자본관계 또한 노동의 생산력 발전에 장애요소가 된다. 일단 이러한 관계가 형성되면, 자본 다시 말하여 임금노동은 사회적 부와 생산력의 발전에 길드 체제, 농노제, 노예제가 그랬던 것처럼 족쇄가 되며, 필연적으로 해체된다.

    임금노동과 자본을 양 측면으로 가진, 인간 활동이 취한 노예체제의 마지막 형태는 그리하여 마치 허물이 벗겨지듯 사라진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에 대응하는 생산양식의 귀결점이다. (스스로 이미 부자유한 사회적 생산의 이전 형태들에 대한 부정인) 임금노동과 자본의 부정을 위한 정신적 물질적 조건들은 자본의 생산과정 자체의 산물이다. 사회의 생산력 발전과 현존하는 생산관계 사이에 점증하는 부조화는 모순, 위기, 변동으로 표현된다.3)


    맑스의 이 대표적 언명은 자본주의 쇠퇴론을 말하는 축약된 표현이며 역사유물론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는 맑스주의와 혁명사상, 특히 트로츠키주의와 좌익공산주의 운동에서 지배적인 사상이었고, 동구블록의 몰락 이후 더욱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여기서 쇠퇴(decadence 또는 decline)의 의미는 사회주의 기초의 형성과 파국을 향한 모순을 포함한다. 자본주의 쇠퇴론의 쟁점들 속에는 위기, 자동붕괴, 상승기와 쇠퇴기의 구분, 이행의 의미, 주체와 객체에 대한 존재론적 문제가 담겨있다.

    트로츠키주의와 좌익공산주의에서 쇠퇴론은 동일하나 계급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데 차이가 있다. 즉, 좌익공산주의에서는 자본주의 쇠퇴론을 대중에게 선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트로츠키주의는 위기이론과 (당과 같은) 조직문제를 설명하고 제기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쇠퇴의 국면은 자유방임 자본주의에서 독점 카르텔이 증가하고 자본이 집중하는 독점자본주의로, 단기 이윤을 추구하고 특정 노동과정과 연결되어 도래하는 금융자본의 지배, 국유화와 방위지출의 방식으로 독점이 상호 침투하는 국가계획의 증가, 국가지출의 파괴적 유형인 전쟁 생산, 세계시장의 재분할을 위한 강대국 사이의 분화로 나타나는 제국주의로 그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사회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지고 소련이 붕괴하자 마치 자본주의가 승리하고 역사가 끝난 것으로 간주되면서 그 이전까지 사회주의적 형식을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로의 역사적 진보로 보았던 생각이 뒤집히는 결과가 빚어지고 있다. 서구에서 국유화된 분야가 사유화되고, 동구에서 지배계급의 사유화가 진행되면서 지난 100년 동안 좌파의 지배적인 사상인 사회주의를 향한 움직임의 기반이 허약해지고 더 이상 가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생산력의 역사발전이 사회주의/공산주의라는 사상을 포기하고 세 가지 사상 조류가 생겨났다.

    첫째, 자본주의의 폐절 기획을 포기하고 “새로운 실재론”이나 “시장 사회주의”에 의한 기존 체제의 개혁을 말하는 흐름. 둘째, 발전하는 총체성 개념에 대한 포스트모던의 거부, 즉 무엇의 극복으로 결과되는 모든 역사적 의미를 거부하는 조류. 셋째 반자본주의 전망을 유지하지만 “진보” 또는 “문명”과 문제를 동일시하며 역사운동의 사상이 모두 틀렸고 과거로의 회귀를 원하는 낭만주의 조류.

    이와 같은 조류로 나타난 대안이 너무나 빈약하기 때문에 세계의 혁명가들은 다시 한 번 자본주의 쇠퇴론을 재확인하고 자본주의 몰락에 따른 세계 공산주의 혁명의 역사적 필요성을 다시 주장하게 되었다.

    트로츠키는 <4차 인터내셔널 창립선언문>에서 다음과 같이 자본주의 쇠퇴와 혁명의 연관을 설명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경제적 필수조건은 이미 자본주의 아래에서 대체로 다다를 수 있는 결실의 최고점을 달성했다. 인류의 생산력은 정체하고 있다 (8쪽)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객관적인 필수조건은 ‘무르익었을’ 뿐만 아니라 다소 썩어가기 시작했다. 사회주의 혁명 없이 다음의 역사적 시기에 파국은 인류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차례, 즉 주로 혁명적 전위의 차례이다. 인류의 역사적 위기는 혁명적 지도력의 위기로 환원된다 (9쪽)


    그런데 자본주의 쇠퇴론의 입장을 공유하고 있는 트로츠키주의와 좌익공산주의는 노동자운동의 유산이 제2인터내셔널에 있고 1917년 이후 고전적 맑스주의 전통이 레닌, 트로츠키, 판네쿡, 보르디가에 계승되고 있다고 보지만, 트로츠키주의는 소련이 정치적으로는 퇴행한 반면 경제적으로는 진보적 운동으로 인식하고 있고, 좌익공산주의는 소련을 자본주의 쇠퇴기의 전형적 유형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트로츠키주의는 소련을 그 시기의 이행기적 본질의 증거로 보았기 때문에 국가자본주의로 본 좌익공산주의보다 소련의 몰락에 더욱 괴로워했다.


    (2) 쇠퇴(decadence) 개념의 역사와 그 정치적 의미


    엥겔스가 확립한 에르푸르트 강령은 당 강령의 중심에서 자본주의 쇠퇴론과 자본주의 붕괴를 지지한다.


    이러한 (사유) 재산 체제를 지키려는 노력은 더 이상의 사회발전을 불가능하게 하고 사회가 정체와 쇠퇴로 가게 한다. … 새로운 사회질서의 수립은 단순히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것이 되었다. 오늘날 모든 것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자본주의 문명은 지속할 수 없다. 우리는 사회주의로 나아가든지 야만으로 전락하든지 해야 한다. 인류의 역사는 관념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누구의 바람이나 변덕이 아닌 특정한 기본법칙에 복종하면서 저항할 수 없이 진보하는 경제발전에 의해 결정된다. (117-119쪽)


    에르푸르트 강령은 내부 모순에 의한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몰락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개량주의적 목표와 전술을 훌륭하게 담고 있다. 그리고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자유로운 창조물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가 상속받은 경제발전의 자연스런 결과라고 보았다. 이처럼 제2인터내셔널이 맑스의 “경제학”만을 채택해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형식 비판으로서가 아니라 경제학으로서 정치경제비판을 한 것은 맑스의 공헌이 경제학이 아닌 정치와 경제의 분리에 대한 비판, 즉 경제학 비판임을 인식하지 못한 데 있다. 이는 카우츠키를 고무시켰고 1890년대의 호황은 수정주의 논쟁을 촉진시켰다.

    이러한 베른슈타인을 로자 룩셈부르크는 그의 맑스 독해가 변증법적 혁명정신을 잃고 부르주아 경제학으로 환원시켰다고 비판했다. 카우츠키는 맑스의 《자본》에서 이원론, 즉 자본주의 붕괴개념과 혁명의 필요성이라는 이원론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룩셈부르크는 사회주의 미래와 자본주의 현재, 자본과 노동,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등의 이원론이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그녀의 자본주의 붕괴론은 자본의 재생산의 불가능성을 보이는 맑스의 공식에 대한 재해석에 기초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위기, 쇠퇴, 몰락 이론은 순환과 시장에만 기초하고 있어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전혀 고려해 넣지 않고 있다. 재생산 공식 수준에서 보면, 모든 사람은 단순히 상품의 구매자·판매자이고 노동자는 투쟁의 주체가 아니다. 아래로부터 대중혁명행위를 신봉하는 그녀 같은 혁명가에게 자본주의 과정의 개념은 맑스 공식에 대한 오해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오류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제2인터내셔널에서는 경제주의의 책임이 수정주의 논쟁에 가담했던 양쪽 모두에게 있음이 밝혀졌다. 맑스의 정치경제비판을 부르주아 경제학으로 환원시킨 수정주의자나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를 단순히 시장에서의 구매자나 판매자로 본 룩셈부르크 모두에게 있다. 그러면 제2인터내셔널을 극복한 트로츠키주의와 좌익공산주의는 어떠한가?

    1916년 이후 부하린과 레닌의 이론은 제국주의와 전쟁을 금융자본의 피할 수 없는 정책으로 보았고, 이러한 금융자본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나아가는 자본주의의 쇠퇴로 보았다. 이러한 발전을 힐퍼딩은 “조직화된 자본주의” 단계에서 국가 계획이 진보적이기 때문에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을 한다고 본 반면, 레닌은 자본주의가 더 이상 진보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고 보았다. 독점·금융자본의 단계로서 제국주의는 레닌에게 마지막 단계의 자본주의였고 자본주의 쇠퇴기를 의미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다른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 몰락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당시 제2인터내셔널에서 맑스주의의 경제주의적 입장이 지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노동자운동에서 생산력과 동일시한 숙련된 기술노동자와 수공업 노동자의 입장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닌도 자본주의가 쇠퇴기에 들어섰다는 이론을 채택했지만 어떠한 위기도 반드시 마지막은 아니었다고 주장한 반면, 트로츠키는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몰락을 주장했다. 즉 자본주의가 마지막 위기에 다가가고 있고 혁명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트로츠키의 맑스주의는 생산력의 우선성 이론에 기초했고 생산력에 대한 이해는 거칠고 기술적이었다. 생산력에 대한 기계주의적 개념은 노동의 군사화를 정당화했으며 테일러주의에 저항하는 노동자를 비난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소련은 비록 사치스런 지배계급이 있지만 계획을 통해 자본주의의 비합리성과 쇠퇴를 넘어설 수 있다고 보았고, 기술발전이 부족하여 후진적이기 때문에 기술발전을 통한 생산력 발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자본주의 위기와 사회주의의 당위성에 대한 제2인터내셔널의 개념으로부터 성공적인 단절을 이루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반면 좌익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패배와 투쟁으로부터의 고립에 직면하여 자본주의가 쇠퇴한다는 객관적 분석에 몰두하게 된다.

    그로스만(Gossman)과 그 추종자들은, 첫째 자본주의가 파국으로 가면서 쇠퇴하고 있음을 보이는 경제학을 이해하였고, 둘째 새로운 경제 질서를 도입하는 정치혁명의 필요성을 보았다. 그들은 맑스의 《자본》을 자본주의 몰락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완전한 경제학으로 선언했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와 경제의 연결 관계가 내부적이 아니라 외부적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자본》의 완결이 자본주의 정치경제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정치경제라는 맑스의 총체적 이해를 결여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제와 정치를 분리하는 그로스만의 입장을 비판한 판네쿡은 혁명적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마지막 위기를 믿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는 위기에서 위기로 이어지고 프롤레타리아트는 투쟁을 통해서 배우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 파괴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해방이야말로 자본주의 몰락이라고 주장하면서 (자본주의 입장이 아닌) 노동계급 입장에서 자본주의 쇠퇴와 몰락을 이해하고 있다.

    한마디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트로츠키주의와 좌익공산주의는 자본주의가 쇠퇴하고 몰락의 끝에 서 있다는 견해를 굳게 믿었으며, 이 이론은 스탈리주의의 허위에 대항하는 진정한 혁명적 전통을 표현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호황이 자본주의 쇠퇴론을 현상적으로 역행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들은 모두 그것이 단기적 재건을 통한 호황이라는 점에 견해를 같이 했다.


    (3) 정통 맑스주의의 쇠퇴론에 대한 수정 이론들


    1)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그룹 (Socialism or Barbarism)


    카스토리아디스(Castoriadis)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그룹은 1950~60년대에 정통 트로츠키주의로부터 분리된 프랑스의 소그룹이며 영국에는 ‘솔리다리티’(Solidarity) 그룹이 있다. 이들은 생산지점을 넘어선 프롤레타리아 투쟁과 공식조직 밖에서 그 지도자에 대항하는 자발적인 노동자 투쟁의 새로운 형식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그룹은 정통 맑스주의의 물상화된 범주를 거부한다. 카스토리아디스는 그의 책 《현대자본주의와 혁명》에서 “사회는 경제적 확장의 모든 가능성을 소진하기 전까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더구나 생산력 발전은 자본주의 경제의 ‘객관적 모순’을 증가시킨다. 그것은 위기를 가져오고 이 위기는 전체 체제의 일시적 또는 영원한 몰락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하면서 자본의 법칙이 단순히 자본가와 노동자에게 작용한다는 생각을 거부하였다. 사건과 위기는 인간 또는 그 계급행동과 독립적이며 인간은 이 법칙의 작동을 수정할 수 없고 오직 전체 체제를 폐절시키기 위해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국가지출과 케인즈주의적 수요관리로 위기의 경향을 경기순환으로 해결하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호황은 이러한 위기관리의 형태라는 것이다.

    이 그룹은 자본주의 발전과 계급투쟁의 관계를 다른 방식으로 인식했는데, 계급투쟁이 혁명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투쟁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정통 맑스주의의 자본의 관점에서 벗어난다. 사회에서 노동자의 자기 위치에 대한 경험 모순에 대한 이해 없이 자본의 모순을 단순히 고통 받는 것으로 간주하는 객관주의적 위기 이론을 거부한다. 자본주의 쇠퇴론에 포함된 경제학은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의 외부 정치와 권위주의 의식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관료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는 기본적 분화, 즉 “명령하는 자”와 “명령받는 자”의 구분은 자본주의와 다른 계급사회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으며, 관료주의로의 경향은 자본주의 법칙을 대체하지 않는다는 근본적 문제를 지니고 있다. 1970년대 자본주의 위기가 도래하자 그들이 내세운 관료적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변혁의 문제가 아니라 위기 경향이 잠시 통제되는 특정 유형의 자본주의였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또한 이들의 노동자 저항에 대한 연구는 “숙련된 기술 노동자”의 관점을 취한 평의회적 관점이었는데,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호황을 끝낸 것은 대중노동자의 관점이었다.

    또한 이들 그룹은 정통 맑스주의의 뿌리를 《자본》에서 찾는다. 맑스의 임금이론과 착취율 증가이론은 노동자가 객체로 환원되면서 완전히 자본주의에 의해 “물상화”되었다는 것, 그리고 인간과 계급(자본가)은 그 경제 기능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정치경제학은 유전학이나 천문학과 비슷한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과학”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맑스는 계급투쟁이 없는 《자본》을 썼다는 것이다. 이 그룹은 《자본》을 포기하고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공격한다. 맑스가 실질 생활 표준과 노동계급의 임금이 시간이 지나도 불변하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맑스는 항상 필요한 생존수단의 수준은 투쟁에 달려 있음을 깨닫고 있었지만 《자본》에서는 이를 불변이라 가정했고 ‘임금노동에 대한 장’을 쓰지 않았다. 따라서 노동력의 가치는 《자본》에서 자본의 관점에서만 다루어진다. 왜냐하면 여기서 맑스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결국 이 그룹은 2차 세계대전 후 호황의 맥락에서 위기 이론을 거부했으며 맑스에 대한 거부는 교조적인 과잉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1950년대, 60년대 이 그룹의 생각은 그 당시 레닌주의자들에게 날카로운 비수가 되었지만 1970년대 자본주의 위기가 도래함으로써 그 의미가 퇴색했으며 결국 이 이론이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적 이론이 아니었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2)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The Situationist International)


    이 그룹은 소외의 현대적 형태에 대한 비판, 즉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총체적 비판을 하면서 자본주의 위기에 의존한 혁명을 프롤레타리아트의 절대빈곤으로 환원하는 대신 프롤레타리아트가 물질적으로 충실한 빈곤에 대항하는 투쟁을 할 것을 주장했다. 자본주의를 넘어서서 인간의 삶이 모든 국면과 순간을 변혁시키는데 함께 하는 모든 개인들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 그룹은 정치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의 분리를 거부하고 전투파의 희생적 정치를 거부했으며 이론과 실천의 살아있는 통일에서 정통 맑스주의의 객관주의를 극복할 것을 주장했다.

    대표적 인물로 드보르(Debord)는 〈장관의 사회 - 주체와 표상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노동자 운동 역사연구에서 맑스의 혁명정신을 다시 발견하고 있다. 그는 첫째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생산양식의 변동에 근거하려는 시도를 비판하면서 부르주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임무와 본질 사이의 단절을 주장하고, 둘째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목적은 생산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리를 폐절하고 그 자체까지도 폐절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부르주아지는 경제에서 권력을 수립할 수 있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럴 수 없고, 부르주아지는 국가를 이용할 수 있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의 본질이 경제적으로 사회를 통일시키는 기관이지만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은 그러한 구분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상품의 규칙”이고 상품이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주는 복잡한 사회형식이지만 그 복합성은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이것이 《자본》의 나머지 부분이고 높은 수준의 주체성으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모순을 밝히고 있다고 본다. 혁명 주체의 적극적 역할을 다시 강조하면서 혁명적 실천의 진정한 의미를 상실한 모든 과학적 맑스주의자, 알튀세주의자, 레닌주의자를 비판하고 맑스의 초기 저작과 《자본》의 제1장 <상품>을 강조한다.

    이들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그룹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호황에 영향을 받은 것과 달리 1968년 운동에 고무되었고 그 이후까지 그러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적인 자본을 패퇴시키지 못했으며, 오히려 위기 속의 자본에 뛰어들어 매몰되었다.

    이 두 그룹은 모두 자본주의 경제위기의 경향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관계를 지니고 있었고 자본주의 위기의 재도래를 인정하지만 그에 대한 대처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대안도 가지지 못했다. 객관주의에 대한 비판이 지나친 주체성으로 나아가는 역편향을 보일 뿐 아니라 짧은 국면의 자본주의에 대한 부분적인 역사적 경험에도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3) 노동자주의/자율주의 조류


    이들 조류는 1960년대 이태리 신좌파인 “노동자주의” 이론가 판치에르(Panzieri)와 트렌티(Trenti), 60년대 말과 70년대의 네그리와 볼료나를 중심으로 한 조류이다. 이들은 단순히 개량주의 노동운동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태리 공산당의 이론적이고 세련된 맑스주의를 다루어야 했다. 이태리 공산당은 스탈린주의로부터 유로코뮤니즘으로 전환하면서 자본주의 일반위기에 대한 성찰로부터 자본주의의 지속적 발전을 지지했는데 이는 노동계급 관점에서 자본가 관점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판치에르는 이에 대해 전통 맑스주의의 두 가지 기본 전제, 즉 계획과 자본주의의 그릇된 대당, 생산력 이데올로기에 담겨있는 기술의 중립성을 비판했다.

    우선 그는 계획이 자본주의 반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맑스가 말한 대로 자본주의는 생산지점에서의 전제적 계획에 기초하고 있는데 19세기 자본주의에서 이러한 전제적 계획은 사회적 수준에서의 무정부주의적 경쟁과 대조된다. 그에게 정통 맑스주의와 그 쇠퇴론의 문제는 자유방임 자본주의 시기를 진정한 모델로 본 것이며, 20세기 중반 자본주의는 어느 정도 계획 대 시장의 대당을 초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자본이 지배하는 발전된 자본주의는 무정부 상태가 아니며 모든 삶의 영역에 자본주의적 관계가 부여됨으로써 “사회공장”에 의한 진보적 사회구성이 일어난다고 본다. 따라서 생산의 자본주의적 사회화와 생산물의 자본주의적 전유 사이에는 근본 모순이 없고 시장의 무정부성이 자본이 사회를 조직화하는 하나의 방식이지만 자본주의적 계획은 또 다른 하나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통제의 두 가지 형식은 적대적 모순이 아니라 변증법적 상호작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와 계획을 동일시하면서 자본주의 부정으로서의 사회주의는 비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기초가 아니고 자본주의의 사회적 통합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자본주의의 전제적 계획은 기술을 통해 작동하기 때문에 기술과 권력이 연결될 수밖에 없으므로 기술의 중립성에 기반한 정통 맑스주의 이론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기술기반은 권력 강화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자본주의에 제공하기 때문에 기술로 협소화된 생산력 개념을 혁명계급이라는 위대한 생산력 개념으로 이동시켜야 한다고 본다. 노동계급은 생산 조직화의 기술적이고 전제적이며 순간의 통일을 인식한 훌륭한 변증법론자임으로 그들을 “기술적”으로 중립적으로 보는 것은 자본주의와 함께 가는 도구로 보는 것이다.

    정치경제 비판을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도구로 보는 맑스의 견해에 동의하면서 이들은 자본의 “객관적” 구성에 상응하는 계급 주체성과 투쟁의 형식을 강조했다. 따라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의 불가피성은 물질적 갈등의 국면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기초위에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노동계급의 전복은 자본주의 발전이 표현되는 모든 조직의 부정이라는 것이다.

    위기에 대한 계급투쟁 이론으로서의 이들 조류는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분석과 공통점이 있지만 맑스를 부정하지 않고 1970년대 열린 위기에 더 잘 대응할 수 있었다. 케인즈주의에 대한 정통 맑스주의에 동의하지만 경제를 적대적 사회관계의 물상화된 표현으로 보다는 기계로 보았다고 비판했다. 상승하는 생산성이 지불한 임금인상으로 계급투쟁을 희석시킨 케인즈주의는 경제의 수요관리가 아니라 노동계급에 대한 국가 관리이며 노동계급이 이를 거절하면 점점 공격적이 된다고 보았다.

    자본주의 역사는 자본의 객관적 법칙이 아니라 정치적 구성과 재구성의 변증법이며 자본의 위기를 사회관계의 위기로 보는 이들은 “노동에서 해방”으로부터 노동을 넘어서는 지향으로의 전환을 공산주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1969년 이태리의 “뜨거운 가을”에 파업에서 복귀한 노동자가 즉각 파업으로 돌입하는 그 당시 투쟁에 지나친 낙관적 전망을 가진 이들의 계급투쟁 이론은 자본의 역공격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없었으며, 실제로 1980년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공격에 근거를 상실하게 되었다. 네그리 등의 지나친 낙관주의는 실제로 과대포장 되었으며 주관주의적 편향은 그 시대 운동의 반영물이었다.


    (4) 객관주의적 맑스주의의 재등장


    위에 언급한 몇 가지 흐름은 객관주의적 정통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적 흐름들이었지만 결국 맑스에 대한 편향된 독해, 주관주의 편향, 1945년부터 70년대 말까지 자본주의의 특수한 경험에 기초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물론 이들의 관점이 맑스의 계급투쟁적 관점을 복원시키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이들 흐름과 같은 시기에 객관주의적 맑스주의의 쇠퇴론이 반격을 했으며, 그 흐름은 트로츠키주의와 좌익공산주의에서 계승되었다.

    트로츠키주의에는 만델이, 좌익공산주의에는 매틱이 있었고, 쿠고이(Cugoy), 야페(Yaffe), 키드론(Kidron)도 맑스주의 위기 이론을 부활시켰다. 이들 이론 사이에는 불일치도 있었지만 공통점은 위기의 재도래가 오직 맑스가 《자본》에서 설명한 자본주의 운동법칙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매틱(Mattick)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호황 시기를 통해 살아 있는 자본주의 위기를 그로스만의 몰락 이론을 기본적으로 유지하면서 설명했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상승과 이윤율 저하 경향에 근거하여 자본의 기계적 파국을 말하면서 케인즈주의 혼합경제가 비생산적 국가지출을 통해 위기를 지연시키지만 그것은 전쟁 이후 경제의 부흥일 뿐이며 경기순환의 성공적 조절은 사적 부문의 일반적인 이윤의 건강성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의 운동법칙에 내재한 위기와 몰락의 경향을 막을 수 없다고 본 그는 제3세계 혁명으로 제국주의 패배를 가져온 자본주의에는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이는 서구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을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벨기에의 경제학자 만델은 그의 저서 《후기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 발전에서 상호작용하는 여러 가지 요인을 들고 있는데 자본주의 생산의 역사를 노동과 자본의 적대가 아닌 자본과 전(前)자본주의 경제관계의 역사를 보고 있다. 한편으로 후기 자본주의가 레닌이 말한 독점/제국주의 시대의 지속이라고 주장하는 정통이론을 유지하지만, 기술발전으로 추동되는 장기파동 이론을 수용하여 기술혁신이 계급투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을 결여하고 있다.

    현대자본주의의 구체적 현실과의 관계로 이론을 발전시킨 조절이론은 정통 맑스주의와 달리 자본주의 시기 구분을 축적체제로, 위기를 조절기구의 구조적 위기와 체제와 연결된 사회규범으로 보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시기를 내포 축적체제의 강화로 보아 자본주의의 “죽음의 고뇌”가 아니라 심각한 구조적 위기로 분석하면서 정통 맑스주의에서 벗어난다. 이들에게는 노동계급의 관점이 결여되어 있고, 기능주의에 빠져 자본주의의 몰락, 쇠퇴보다는 개량주의에 더욱 매력을 느끼는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이들은 유연축적체제라는 포스트포드주의를 주장함으로써 새로운 기술결정론에 빠지면서 자본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5) 틱틴(Ticktin)과 발본적 사슬(Radical Chains) 이론


    1) 틱틴의 쇠퇴론


    《비판》(Critique)의 편집자인 틱틴은 트로츠키주의자로 특정 트로츠키 정파에 연결되어 있지 않고 고전적 맑스주의 이론을 재발견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 쇠퇴의 이행기 특징으로 가치법칙의 하강과 계획법칙의 부흥을 들고 있다. 이 시기는 독점체의 발전, 국가개입의 증가, 자유시장과 자유방임주의의 쇠퇴를 특징으로 한다. 의식적인 계획의 완전한 발전은 자본주의 사회관계에 내재한 사적 전유와 모순된다. 계획은 개별국가와 자본에 한정되고 이들 자본가들과 국가들 사이의 경쟁이 강화되면서 합리적 계획의 성과는 전쟁과 갈등의 사회적 비합리성으로 폭발한다. 그는 세계적 규모의 사회주의 승리로 생산과 노동의 할당이 전체 사회의 이해에 따라 의식적으로 계획될 때, 물질생산력과 사회관계는 조화를 이루고 계획의 법칙은 사회규제의 주요원칙이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고전적 맑스주의 이론가와 달리 자본주의 쇠퇴의 징후로 금융자본의 증대되는 독자성을 강조한다. 고전적 맑스주의는 힐퍼딩의 《금융자본》에 따라 독점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통합, 합리적 계획의 부상과 시장의 무정부성의 하강이라고 본 반면 틱틴은 금융자본의 자율성이라고 보았다. 1970년대부터 95년까지 25년 동안 지구적 금융자본이 부상하면서 자본이 새로운 산업과 지역에 생산을 재분할하면서 옛 산업경제의 노동계급을 측면에서 공격하였는데 금융자본이 자본주의 쇠퇴의 징후라는 의미는 영·미 중심적이라는 점이다. 그가 말하는 자본주의 쇠퇴의 징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본주의 생산의 실질적 성과가 그 잠재성보다 점점 뒤쳐지고 있다.4)

    둘째, 구체적 경험 증거로 실업증가와 영국제조산업의 감소5), 미국의 비가치생산 군수산업의 확장6) 비합리주의, 약물사용, 마피아의 증가7), 교육, 보건, 공공주택 같은 “필요-기반” 부문의 성장8) 그리고 최근에는 상품 물신화의 “진보적 제거”의 증거로 인종주의의 증가, 국가개입 등을 추가하고 있다.9)

    그는 자본주의가 사라지면 두 가지 가능성, 첫째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파괴되고 공산주의로 대체되는 것, 둘째 비가치 기반으로 정의되는 전제적 착취적 사회의 새로운 유형이 형성될 것10)을 예상하고 있다.


    2) 발본적 사슬 이론 (트로츠키주의적 객관주의와 계급투쟁 이론의 접합)


    생산력과 생산관계 모순의 객관적 실재라는 맑스의 역사유물론에 기초한 정통 맑스주의는 반드시 올 위기를 활용할 수 있는 혁명당의 문제를 크게 인식했다. 문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25년간의 호황이 자본주의 위기의 필연성이 부적절한 것으로 보였고 1968년 이후 개량주의 기반이 무너지고 투쟁이 고양되자 혁명을 기대했지만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1980년대 이후 다시 시작된 위기는 부르주아 국가가 이전과 같은 양보를 할 수 없는 객관적 맥락을 인식하게 되고 계급투쟁이 때때로 절망적 형태를 취함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론지 《발본적 사슬》11) 그룹은 소련 ․ 동구의 몰락과 스탈린주의 몰락에 따라 맑스주의를 재조명하면서 좀 더 주체주의적 관점을 가지는, 트로츠키주의적인 객관주의 맑스주의와 계급투쟁을 접목시키는 최근의 흐름이다. 현 자본주의 시기를 이행기로 보면서 “계획의 법칙”(공산주의 출현)과 가치의 법칙의 쇠퇴 사이의 갈등으로 보는 이 흐름은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쇠퇴론이다.

    이 그룹은 틱틴의 맑스주의를 받아들이지만, 노동계급에 맞서는 생산력의 진보, 노동의 군사화, 크론슈타트 진압, 스탈린 방어를 주장하는 틱틴의 트로츠키주의 정치에는 반대한다. 가치법칙의 주요 목표는 생산물이 아니라 노동계급이기 때문에 틱틴에게는 독점가격 ․ 경제에 대한 정부 개입이지만 《발본적 사슬》 그룹에게는 임금 밖의 복지, 보건, 주택 등에 대한 인식과 필요의 관리이다. 이들 이론의 중심은 국가와 가치법칙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고전적 쇠퇴론이 자유방임 자유시장을 자본주의 성숙으로, 독점자본주의를 쇠퇴로 보는 틀을 가진 반면, 이들은 노동력에 대한 가치법칙을 적용한다. 즉 자본의 성숙은 노동계급이 가치법칙 아래 완전히 포섭되었을 때이며, 자본의 쇠퇴는 완전한 종속이 관리형식에 의해 부분적으로 유예되는 시기이다.

    이 그룹은 1834년 구빈개혁법(Poor Law Reform Act)을 자본주의의 “강령적 장전”으로 보는데 이는 노동력을 상품으로 확정했기 때문이다. 그 이전의 구빈법은 노동계급의 생존의 필요는 고용주로부터의 임금과 다양한 행정적 구제로 이루어졌다. 구빈개혁법은 지방복지를 종식시키고 임금으로 통일시켜 노동계급은 절대빈곤의 위치에 놓이게 되고 그들의 필요는 화폐에, 노동력을 임금으로 교환하는 명령에 전적으로 종속되었다.

    가치법칙은 추상노동을 부과하지만 노동계급은 구체노동으로 권력을 끌어오고 자본을 위협하는 집합체의 형식을 발전시킨다. 즉 프롤레타리아의 자기 구성은 자신의 존재를 사회화된 생산력으로 보인다. 부르주아지는 그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계획에 대한 행정적 대체물”로 개입했다. 하나는 노동계급의 대표 형식을 승인했는데 책임 있는 노동조합과 노동계급 당이 장려되었다. 1906~12년 자유주의 정부는 구빈법의 엄격성을 보완하고 행정적 복지를 체계화한다. 이러한 개혁은 가치법칙의 근본적 수정을 가져왔고 노동계급이 행정적 형식을 통해 필요를 얻는 방식, 즉 관료적 절차, 형식, 검사 등이 노동계급의 삶에 들어오게 되었다. 지구적 프롤레타리아트는 가치법칙으로부터 방어하는 국가적 부분으로 분화되는데 이는 혁명계급으로서의 지구적 통일을 막으려는 것이지만 지구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가치법칙의 효과성에 대한 제한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가치법칙의 부분적 유예 속에서 노동계급은 투쟁한다. 분할된 임금의 양쪽을 증가시키기 위해 완전고용과 복지를 위해 투쟁한다. 지난 30년 공산주의를 막으려고 자본은 임금을 재통일시키고 가치법칙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발본적 사슬》의 이론은 20세기의 구체적 발전을 객관적이고 주체적 요인의 조합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주체적 측면인 계급투쟁은 혁명기에 나타나고 그렇지 않은 시기에는 자취 없이 사라지는 것으로 보았다. 공산주의를 막는 자본의 형식에는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가 있다고 보면서 그러나 노동계급은 계속 투쟁하고 마침내 폭발한다는 것이다.

    《발본적 사슬》 그룹은 자본의 형식적 포섭으로부터 실질적 포섭으로의 이행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19세기말 고전적 맑스주의자에게 사적 전유의 생산관계와 시장은 사회화된 생산력에 족쇄가 됨은 분명하고 혁명을 향한 추진력은 사회주의 계획을 위한 생산력의 필요와 시장의 무정부성 그리고 사적전유에서의 모순으로 개념화 된다. 이러한 자본의 관점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견해를 세련화 함으로써 이 그룹은 계급투쟁의 관점도 통합시키려 했다. 즉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생산력 발전에 한계를 부여하고 자본주의 전복 가능성을 스스로 열어놓는다는 것이다. 공산주의는 계급철폐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분리된 힘으로서의 생산력 철폐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6) 좌익공산주의의 쇠퇴론 - 최근 논쟁을 중심으로


    맑스주의의 혁명적 기초는 자본주의가 위기의 체제일 뿐만 아니라 자기 확장의 객관적 한계에 직면한 생산양식임을 증명하는 능력에 있다. 이 견해는 공산주의가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 필요성이라는 것이다. 쇠퇴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이러한 필요성은 21세기 오늘날 자본주의가 그 위기를 (전쟁이라는) 가치의 물질적 파괴를 통해 해결하려는 방법이 인류 자체를 절멸시키려고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12)


    공산주의 좌파 내부에서의 자본주의 쇠퇴에 관한 논쟁은 주로 19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논쟁은 주로 ICC와 IBRP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IP는 자신의 입장을 ICC/IBRP와 구별하면서 제출하고 있다. 이 검토는 이들 세 흐름의 최근 글들을 기초로 하고 있다.13)

    자본주의 쇠퇴 이론은 맑스의 역사적 유물론의 중심적 이론으로 앞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 전략에 기초가 되며 공산주의 전망을 여는 열쇠이기도 하다. 이 검토는 논쟁의 지점을 정리하고 각 세력의 입장을 대비하여 차이를 드러내려고 하며, 주로 직접 인용문을 대상으로 한다.


    1) 쇠퇴 이론(개념)을 포기했는가의 문제


    ICC는 IBRP(특히 Battaglia Communista)가 자본주의 쇠퇴 개념을 포기했다고 비판한다. “Battaglia는 1976년부터 1980년까지 공산주의 좌파그룹들의 국제 대회에서 자본주의 쇠퇴분석을 채택했지만, PCInt의 창설자이고 그 대회의 주도자인 Damen이 죽은 이후, 3차 대회 끝인 1980년 5월 쇠퇴는 사라졌다.”14) 그러나 IBRP의 한 축인 CWO에 대해서는 “CWO가 ‘쇠퇴의 개념은 맑스의 생산양식 분석의 하나이며 코뮌테른 창설의 중심이었다’고 한 것은 매우 옳다”15)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IBRP는 쇠퇴 개념 정의에 있어서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불가항력적이고 사회적으로 예정된 것으로 자본주의의 소멸을 보는 견해, 즉 자본주의의 죽음에 대한 숙명론적 견해”16)라는 것이며, “프롤레타리아가 자본주의를 전복하지 않는 한 경제체제는 자기 파괴의 조건을 창출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더 높은 수준에서 모든 모순을 제기하면서 스스로 재생산한다”17)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문제가 되는 표현은 일반위기의 현상과 관련되며 경제구조와 혁명의 방향으로 이끄는 계급사건을 창출할 수 있는 이념적 상부구조 사이의 관계에서의 단절이지 토론의 대상이 되는 문제가 아니다”18)라고 IBRP는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 ICC는 이들 입장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진화에 있어서 두 가지 기본단계가 없고, 이윤율의 진화의 주요단계를 따르는 상승과 쇠퇴의 연속적 시기만 있다”18)고 보고, 나아가 “Battaglia는 맑스주의가 숙명론적이라고 주장하고 역사를 펼치는데 ‘인간의지’를 강조하는 모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들의 대변자로 행동한다”19)고 비판했다.


    한편 IP는 쇠퇴 개념이 세 가지 이유로 기본적인 중요성을 지닌다고 본다.

    첫째,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중요한 변화가 자본주의 진화를 나타내고 있고, 과거의 자본주의가 오늘날의 자본주의와 구분된다. (위기와 세계전쟁의 출현과 중요성, 국가자본주의와 전쟁경제의 발전, 자본의 자기파괴와 예측하지 못한 규모의 사회적 부와 인간생명의 파괴)

    둘째, 쇠퇴는 인간 사회의 역사와 생산양식에서의 규칙적 현상이다.

    셋째, 자본주의 쇠퇴는 공산주의라는 적극적 필요성의 반대 측면이다.20)

    또한 IP는 ICC와 IBRP 모두를 비판하는데21), IBRP에 대해서는 “쇠퇴의 개념을 거부하고 경제적 국면뿐만 아니라 계급투쟁에 의해 진행된 변형을 설명할 수 없는 이론의 부(不)적절성 때문”22)이라고 하고 “그들의 견해는 세계 그리고 국가와 전쟁경제의 비대 같은 현재 자본주의의 본질적 국면에 대한 경제적 설명을 제공할 수 없음을 드러낸다”23)고 비판한다.


    2) 쇠퇴의 기원에 대한 논쟁


    쇠퇴 개념의 기원을 맑스에서 찾지 않는 입장에 대하여 ICC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Aufheben에게는 자본주의 쇠퇴론이 제2인터내셔널에서 처음 나타났다고 본 반면, RIMC(Revue Internationale du Mouvement Communiste)는 1차 세계대전 이후로, 그리고 IP는 트로츠키를 이 개념의 창시자로 본다.”24) “자본주의 쇠퇴의 개념은 특히 트로츠키에 의해 발전된 코민테른에서 처음 생겼다. 트로츠키의 견해는 2차 세계대전 전 《Bilan》 주위의 이태리 공산주의 좌파에 의해, 그리고 그 후 GCF에 의해 기본적으로 수용되었다.”25) 더구나 IBRP는 쇠퇴 개념이 “《자본론》 세 권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26)라고 부정한다.

    한편 ICC는 쇠퇴를 맑스의 역사유물론의 핵심으로 보면서 “맑스, 엥겔스 저작의 주요 발견은 계급존재, 계급투쟁, 노동가치, 잉여가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 그들 저작의 기본적으로 새로운 요소는 계급분화의 역사적 성격, 생산양식 이행의 동학에 있다. … 다른 말로 그들 발견의 핵심을 구성하는 것은 역사유물론이다.”27) “맑스의 자본주의 쇠퇴의 개념은 분명하다. 노쇠의 시기, 퇴행적 사회체제, 생산력 발전에 대한 족쇄, 점점 더 생명이 다한 체제 등의 표현이다.”28)


    3) 경제결정론인가의 문제


    이 문제는 관념론과 유물론, 생산력주의 등과 연결되어 있으며 주로 IP에 의해 제기된 문제이다. 쇠퇴의 개념을 수용하느냐 거부하느냐에 상관없이 생산력주의적 맑스주의에 기초하고 있는 공산주의 좌파의 경제이론의 부적절성을 지적한다. “맑스의 저술은 오늘날 혁명가들이 거부할 필요가 있는 생산력주의, 역사적 결정론, (헤겔로부터 유래된) 역사의 선형적 개념과 같은 몇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 그러나 이러한 요소는 맑스 저술의 혁명적 핵심을 타당하지 않다고 하지는 못한다.”29) “맑스가 죽은 후, 엥겔스는 결정론적이고 실증주의적 요소에 굴복했다. … 엥겔스는 생산력주의적 맑스주의의 시작이다.”30)

    IP는 “공산주의 좌파의 경제이론의 부적절성, 특히 한편으로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론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헨릭 그로스만과 폴 매틱의 이론이다”31)고 말한다. 맑스 이후, 이들의 기반을 “트로츠키, Bilan, GCF, ICC와 IBRP에 의해 발전된 생산력주의적 해석”32)으로 보면서 특히 ICC에 대해서는 “ICC에 의해 발전된 (과거의 우리들도 그랬다) ‘경제주의적’ 관점은 불가항력적 전망으로 이끈다. 즉, 쇠퇴를 경제적 쇠퇴로 보기 때문에 최종적 몰락으로 끝나야 한다. 혁명 과정은 경제적 과정이 아니라 지구적인 정치적 과정이다”33)고 비판한다.

    또한 IP는 Bilan과 ICC에 의해 정의된 쇠퇴의 옛 개념, 즉 생산력 발전의 정지 또는 지체를 거부하며 “쇠퇴는 명백하게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운동, 즉 한편으로는 발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파괴로 특징 지워진다”34)고 규정한다. ICC와 IBRP에 대한 최근의 비판은 2006년 한국에서 열린 ‘혁명적 맑스주의자 국제 대회’에 제출된 텍스트에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있다.

    “IP 입장에서 볼 때, 자본주의 쇠퇴가 생산력의 성장에서 정지 또는 완화로 특징 지워진다는 ICC의 주장은 1945년 이래 자본의 바로 그 궤적에 의해 반박당해 왔다. … 그리고 이러한 자본주의의 쇠퇴와 그 위기 경향의 ‘실질적’ 기초가 이윤율 하락의 경향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IBRP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볼 때 이러한 모든 주장들은 지난 반세기를 넘은 자본주의 생산양식 내의 ‘변형’들을 이해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35)

    IP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맑스는 명확하게 두 가지 자본주의 기본 모순을 지적했다. 하나는 이윤율의 경향적 하락이고, 두 번째는 생산규모의 확장과 생산에 내장된 교환가치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시장의 확장 사이에 넓어지는 간극이다. 그러나 맑스는 일관된 위기 이론으로 두 가지 모순을 통합하지 못했고, 그 계승자들은 다른 것을 배제하고 하나의 모순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룩셈부르크는 두 번째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로스만/매틱은 첫 번째에만 집중했다.”36)

    이 두 입장을 비교하면서 IP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매틱의 견고한 추종자인 CWO의 다음 주장은 그 분석이 악순환에 갇혀 있다. 이윤율 하락의 경향은 더 큰 이윤을 생산하는 노동자의 더 큰 생산성에 의해 상쇄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룩셈부르크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외적 시장이라는 부자연스러운 해결책으로 이러한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난다.”37)

    반면 ICC는 자본주의 상승기가 자유시장, 주식시장, 독점, 금융자본, 식민지 정복 그리고 세계시장 확립의 특징을 지니고 있고, 쇠퇴기는 제국주의, 세계전쟁, 국가자본주의, 영구위기, 해체로 특징 지워진다고 보고, 해체는 자본주의 쇠퇴의 마지막 단계이며 198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본다.38)

    또한 ICC는 해체에 대한 두 가지 결론을 내린다. “첫째로 경제메커니즘은 결정인자이지만 역사적으로 저주받은 구 계급의 저항이 그 진화과정을 가두기 때문에 결정되기도 한다. 야만적 몰락과 전쟁경제의 제약을 피하기 위하여 국가자본주의는 경제를 모순으로 몰아넣지만, 영구적 방법으로 가치법칙을 속여 왔다. … 둘째로, 혁명계급은 자본주의 전복의 사명을 부여받았지만 지금까지 그 역사적 사명을 성취할 능력이 없었다.”39)

    결론적으로 ICC는 자신들의 입장을 경제결정론이 아니라고 보고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나의 생산양식으로부터 우월한 생산양식으로의 경로는 생산력 진화의 숙명적 결과가 아니다. … 맑스주의는 역사적 결정론을 방어하지만 그것은 공산주의가 자본주의 진화의 불가피한 결과일 것임을 의미하지 않는다.”40) “해체의 단계에는 직접적 역사 진화의 두 가지 요소, 즉 경제메커니즘과 계급투쟁 가운데 경제메커니즘이 인류파괴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두 번째 요소인 계급투쟁이 결정적으로 된다. 그 어느 때보다 PT의 계급투쟁은 역사의 동력이 된다.”41)

    ICC의 해체이론에 대한 IP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ICC의 새로운 ‘해체이론’은 사실 단순히 이론의 해체이다. 그 이론은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재건뿐만 아니라 현재 위기의 실재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무력하다.”42)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생산력 진화 문제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룩셈부르크, 그로스만, 그리고 매틱 사이, 즉 ICC와 CWO 사이의 논쟁을 살펴본다.

    이윤율 하락의 경향을 기본으로 하는 위기이론은 “룩셈부르크와 그로스만의 위기이론이 모두 자본주의 축적의 절대적 한계를 정한 것 같은 죽음의 위기이론이다”43)라고 보고, 이윤율 하락의 의미를 “맑스의 자본의 생산 순환 그리고 분배의 통일의 결과”44)로서 설명한다. 따라서 “만일 ICC가 정치적 계획에 대한 일관된 맑스주의적 경제 기초를 가지려면 로자 룩셈부르크의 결함이 많은 위기이론을 포기해야 하고 《자본론》의 이윤율 하락의 분석으로 대체해야 한다”45)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ICC는 자신의 입장이 죽음의 위기이론이 아니라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ICC)는 생산력의 절대적 봉쇄에 대한 트로츠키의 생각을 거부한다. 똑같이 우리의 개념은 성장과 자본주의 성장의 정지를 의미하는 ‘자본주의적 죽음의 위기’에 대해 말한 KAPD의 경향 내에서 1920년대에 생겨난 개념과도 관계가 없다.”46)

    또한 ICC는 이윤율 하락 경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로자 룩셈부르크를 변호한다. “이윤율 하락의 경향은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장기간 상쇄하는 요인의 축적 내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19세기 마지막 3분의 1의 역사적 사건과 20세기 동안 쌓인 역사적 사건, 즉 제국주의, 세계전쟁, 대공황, 국가자본주의, 60년대 말부터 공공연한 위기의 재출현, 그리고 지난 30년간 세계경제 대부분의 심각한 몰락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47) “자본가들은 노동과 착취를 증가시킴으로써 이윤율 하락을 보상하려고 한다.”48) “맑스는 잉여가치 실현을 위한 지구적 틀로서 시장을 정의한다. 맑스는 임노동에 기반한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자본주의 시장의 역사적 한계를 결정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했다. 또한 맑스는 위기의 발전에서 시장의 중요성을 보았다.”49)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의 축적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재난과 혁명의 끈이 된다는 룩셈부르크의 주장이다. 이것은 절대적 한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부패와 함께 발생할 일반경향을 의미한다.”50)

    다른 한편으로 IP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경제이론에 의존하는 ICC를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룩셈부르크의 총체적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과학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계속되는 존재는 그 발전의 결과로 인류에게 재앙이 되고 바로 그 존재에 죽어야 할 위협이 된다는 이해의 기원은 로자 룩셈부르크이다. 이것은 <자본축적론>의 로자 룩셈부르크가 아니라 <유니우스 팸플릿>(Junius Pamphlet)과 1차 세계대전의 격변 속에 저술을 쓴 로자 룩셈부르크이다.”51) “자본주의는 룩셈부르크가 인식한 바와 같이 인류에 재앙이 되고 생산력의 발전은 스스로 이 재앙 속에 휩쓸리게 되었다.”52)

    지금까지 논의와 관련하여 ICC 쇠퇴이론의 문제로 지적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성장이다. IBRP와 IP는 모두 ICC 이론이 반박 당했다고 주장한다. CWO의 입장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2차 대전 이후의 높은 이윤율과 생산력의 재정비에 근거를 둔 CWO의 명확한 분석은 자본주의 재건의 설명으로 이윤율 하락을 비판한 ICC의 방법을 무너뜨린다”53)고 한다.

    그러나 ICC는 “1945년과 1967년 사이의 성장과 관련하여 통계수치를 넘어서는 이해가 필요하다. 첫째, 무기와 전쟁경제의 강력한 영향, 둘째, 마샬플랜의 중요성과 거대한 부채의 확장, 셋째, 이러한 성장의 상당 부분이 극적인 분해과정 속에서 증발되었다는 점이다.”54) 즉 “자본주의 쇠퇴 기간 특히 지난 50년 동안 생산 성장의 본질은 부채와 국가개입을 통해 매개되는 경향으로 특징 지워진다.”55)

    그리고 이윤율과 성장 사이에 자동적인 연결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ICC는 여러 변수 사이의 진화와 그 관계를 통해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도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진화를 매우 잘 요약하고 있다. 재건 시기 동안 예외적 번영은 이윤, 축적, 성장과 노동생산성이라는 모든 기본적 변수가 1960년대와 70년대의 전환기에 열린 위기의 재출현 때까지 증가하거나 높은 수준에서 변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960년대에 시작된 생산성 증가의 소진은 1980년대 초까지 모든 변수를 끌어내리고 있다.”56) 그리고 1970년대와 1980년대 경제위기의 대차대조표를 통하여 무기생산과 부채증가를 설명하고 있다.57)

    자본주의 성장과 이윤율 상승의 원인을 자본의 능력으로 인식하는 IBRP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저항은 네 가지 기본요소에 의해 가능했다. 첫째, 국제적 수준에서 금융통제의 세련화, 둘째, 생산성의 미미한 상승을 가져오는 생산기구의 심오한 재구조화, 셋째, 낡은 과업과 역할의 소멸과 새로운 과업, 역할, 그리고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 세력의 출현과 함께 이전의 계급구성의 파괴가 그것이다. … 3차 산업혁명은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58)

    반면 ICC는 성장률의 저하와 이윤율의 상승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신경제, 시장의 자유화, 유럽의 확장, 기술혁명, 지구화에 대한 빛나는 연설에도 불구하고, … 일인당 세계 GDP 성장률은 계속해서 매 십년 하강하고 있다.”59) “본질적으로 자본주의는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킴으로써 상승하면서” 또는 “임금노동자의 희생을 통한 그리고 대립을 통한 ‘아래로’의 길로 이윤율 저하경향으로부터 회피할 수 있다. 이 글의 자료는 이윤율에서의 성장이 “마이크로프로세서에 기반을 둔 3차 산업혁명”(이른바 “신경제”)을 따르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성장에 있어서 감소와 둔화를 가져오는 생산성의 새로운 성과의 결과가 아니라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임금내핍과 실업증가에 기인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60)

    또한 신경제, 금융화, 3차 산업혁명 등을 강조하는 IBRP에 대해 ICC는 반세계화 운동의 이념과 유사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반지구화 주장의 모든 부분을 채택함으로써 공산주의 좌파의 이 두 그룹은 좌파분석을 향한 이론적 기회주의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이들은 금융과두제와 산업자본에의 부르주아지 내의 힘의 균형과 변동의 결과로 위기를 보고 있다.”61)

    이런 점에서 보면 IP도 IBRP와 마찬가지로 ICC를 비판하고 있다. “그 이론에서 비자본주의 시장의 소멸 또는 포화는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축적의 파괴, 아니면 적어도 정지를 필연적으로 의미했다. 그러므로 그 이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그리고 자본주의에 내적인 시장의 확장에 주로 의존한 생산력의 발전은 설명할 수 없다.”62)

    성장과 파괴의 모순적 과정으로 자본주의를 파악하고 있는 IP는 기술발전을 중요시하여 지속적 성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IBRP와 비슷하고 전쟁경제 등의 파괴를 중요하게 본다는 면에서 ICC와 비슷하다. IP는 2006년 한국 대회에 제출한 텍스트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자본주의 상승기에는 주기적인, 그대로의 파괴적인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물질적 부의 성장은 가치성장과 함께 손잡고 진행되었다. 그것은 맑스 자신이 예상했던 경우가 더 이상 아니다. 자본주의 쇠퇴의 하나의 증명은 가치생산의 틀 내에 물질적 부의 창조를 점점 더 포함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63)


    4) 쇠퇴의 양적 기준과 질적 기준의 문제


    이미 양적 기준에 대해서는 ICC와 IBRP 사이의 논쟁을 언급하였다. 여기서는 주로 IP가 제기한 양적 기준의 문제, 즉 ICC와 IBRP에 대한 비판과 ICC의 응답을 살펴보겠다.

    IP는 ICC의 양적 기준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질적 기준을 제시한다. “쇠퇴 하에서도 생산적 발전이 있다는 인식”. “자본주의 쇠퇴의 결정에의 순수한 양적 경제기준의 불충분성”, “지연의 개념은 성장과 파괴의 이중적인 모순운동에 의해 구성되는 실질적 지배로의 이행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두 개념은 같지 않지만 실질적 지배와 자본의 실질적 동학을 이해할 수 없게 한다.”64) “자본의 형식적 지배로부터 자본의 쇠퇴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자본의 실질적 지배는 국가자본주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65)

    IP의 입장을 다음의 인용글로 보완하기로 한다. “1차 세계대전의 종료는 자본주의의 기본적 변형을 초래했는데 경제적 집중이 국가의 보호 아래 서구에서 일어났다. 이는 대부분의 발전국가에서 자본의 실질적 지배의 길이 일반화되는 게 시작되게 했다.”66) “자본의 실질적 지배 하에서, (다른 면은 약화되더라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생활조건의 어떤 면은 연속적인 개선이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따라서 노동조합과 대중노동자당이 자본주의 국가기구 속에 통합된다고 설명하는 주장, 그리고 의회주의 정치와 조합주의를 거부해야 할 필요성은 노동계급의 생활조건의 영구적 개선이 쇠퇴기에 불가능하다는 주장과 함께 불충분하다.”67) “자본의 형식적 지배로부터 실질적 지배로의 이행은 두 적대적 계급의 구성에서 심대한 변형을 가져와 왜 노동계급이 이 시기에 스스로 공통이해를 가진 계급으로 보기 어려운가의 중요한 이유가 된다.”68)

    반면 ICC는 IBRP가 양적 기준에만 기반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위기가 전쟁, 그리고 사회투쟁으로 표현되는 상승과 쇠퇴의 질적 단절이 없다.”69) “쇠퇴의 맑스주의 분석은 주어진 사회형식의 사회정치적 메커니즘 밖에서 결정되는 어떤 종류의 양적 경제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 자신 생산력 발전에 생산관계가 묶여있는 관계의 질적 수준이다.”70) “자본주의 쇠퇴는 1차 세계대전으로 이끈 지배계급의 갈등과 고양을 통한, 사회민주주의의 배신과 노동조합의 자본주의 진영으로의 이전, 부르주아 규칙을 전복시키고 노동계급의 첫 번째 조치를 확립할 프롤레타리아트의 능력의 분출을 통한 사회정치적인 그리고 이념적인 수준에서의 질적 현상으로 나타난다.”71)

    형식적 지배와 실질적 지배라는 질적 기준을 제시한 IP도 유물론적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쇠퇴는 이념적 개념이 아니고 노동계급이 진화하고, 그 자신의 활동과 의식을 발전시키는 주객관적 조건의 변형에 대한 유물론적 표현이다.”72)


    5) 전통적 맑스주의의 문제


    IP는 2006년 한국 대회 텍스트에서 맑스와 엥겔스를 포함한 전통적 맑스주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를 넘어서는 맑스주의의 부흥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IP는 맑스 자신의 한계뿐만 아니라 ICC와 IBRP의 생산력주의 경향도 비판하면서 기술의 중립성, 당의 개입이나 자발성주의 모두를 거부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입장이 이를 잘 드러내준다.

    “맑스 자신의 저술 속에 이론적 간극과 빈틈이 있는데 이는 맑스가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들, 즉 19세기의 어느 누구도 자본주의 가치법칙 작동의 모든 함의를 이해할 수 없었다는 사실로부터 파생되는 쟁점들이다. … 따라서 IP의 입장에서 볼 때, 필요한 것은 오늘날 계급노선을 방어할 능력만큼 중요한 것은 검증된 ‘맑스주의의 부흥’이다.”73)

    “전통적 맑스주의, 제2인터내셔널과 제3인터내셔널의 맑스주의는 기술의 ‘중립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 그러나 IP에게 과학과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74) “우리는 자본주의 축적과정의 내적 모순이 만든 파국적 위기가, 전통적 맑스주의와 공산주의 좌파가 믿었던 것처럼 ‘당’의 개입이나 ‘자발적’으로 계급의식을 자동적으로 만드는 데 충분하다는 생각을 거부한다.”75) 결론적으로 IP는 “전통적 맑스주의가 자본의 형식적 지배로부터 실질적 지배로의 이행, 노동계급의 재구성, 그리고 집합적 노동자의 출현으로부터 야기되는 복잡한 쟁점을 다루는 데 실패하고 있다”76)고 본다.

    IP의 문제제기는 2006년 한국 대회에서 논쟁과 토론의 주요 쟁점이기도 했다. 전통적 맑스주의라는 개념 설정의 적절성, 맑스 이후 자본주의 생산양식 내의 변형들이 새로운 문제제기인가의 문제, 노동계급의 주체화와 계급의식의 강조가 새로운 문제제기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6) 잠정결론 : 더 공개적 논쟁을 위하여


    지금까지 논쟁의 검토를 통하여 몇 가지 토론 주제를 제기할 수 있다.

    첫째, 자본주의 쇠퇴 이론과 개념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공산주의 사회 건설의 핵심으로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둘째, 자본주의 위기에 대해 경제이론의 양적 기준 만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따라서 유물론에 철저하게 기초하면서 총체성의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셋째, 경제메커니즘과 계급투쟁의 변증법적 통합인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넷째, 부르주아지의 저항능력이나 기술발전의 힘에 대한 지나친 과대평가는 부적절하다.

    다섯째, 쇠퇴와 자본의 실질적 지배와의 관계가 철저하게 분석되어야 한다.

    여섯째, 주체로서의 노동계급에 대한 인류학적 문화적 연구가 쇠퇴와 관련되어 폭넓게 연구되어야 한다.

    일곱째, 자본 축적에서 포드주의·포스트포드주의의 이분법을 넘어 쇠퇴 시대의 울트라포드주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여덟째, 맑스주의 핵심과 그 이론적 간극과 빈틈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3. 쇠퇴론과 공산주의 혁명 - 결론에 대신하여


    우리는 지금까지 맑스주의 핵심이론인 역사유물론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쇠퇴론에 대해 정통 맑스주의 입장을 역사적으로 검토하면서, 지금까지 쇠퇴론 입장을 견지하며 공산주의 혁명의 역사적 필연성을 주장하는 두 조류, 트로츠키주의와 좌익공산주의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자본주의 쇠퇴론으로부터 이탈과 포기는 사실상 맑스주의 포기일 수밖에 없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폐절이 아닌 수정주의나 개량주의로의 노선전환임을 인식할 수 있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호황과 위기의 재도래를 경험하면서 단기적 국면의 주체성 이론들의 등장과 소멸을 목도하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 모순과 계급투쟁을 희석시킨 조류로서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의 동반 몰락은 자본주의 쇠퇴론이라는 정통 맑스주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힘차게 부여잡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자본주의 쇠퇴라는 객관적 자본의 법칙과 이를 폐절하려는 능동적 주체로서의 노동계급의 투쟁이 상호 작용하면서 21세기의 자본주의는 그야말로 공산주의의 객관적 물질적 기초를 마련해줄 뿐만 아니라 생산력으로서의 혁명세력을 강력하게 형성시키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공산주의 본질에 대해 체계적으로 종합하고 최대강령의 원칙을 도출해야 한다.

    계급투쟁과 공산주의 관계에 대해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한 새로운 일이란 다음을 입증해 낸 것입니다. 첫째, 계급의 존재는 오로지 생산발전의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 결부되어 있다는 것, 둘째, 계급투쟁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귀결된다는 것, 셋째, 이 독재는 오직 계급의 철폐와 계급 없는 사회로의 이행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77)


    이러한 계급 없는 사회는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세계의 인류공동체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자본주의 기초(임노동, 상품경제, 화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유재산은 민족, 국가, 계급 그리고 모든 착취형식과 함께 철폐될 수 있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는 수단은 사회혁명이다. 국제 노동계급이 수행하는 이러한 혁명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시행한다. 이러한 혁명을 위해 일하는 힘은 사상이 아니라 진정한 운동이다.

    또한 맑스는 <독일이데올로기>에서 “공산주의란 우리에게 있어서 구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가 아니며, 또는 현실이 따라가야 할 하나의 이상도 아니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현재의 상태를 폐기해 나가는 현실의 운동이라 부른다”고 했다.  이는 공산주의가 필연적인 것이 아니며 자본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경제적·사회적 모순의 결과이자 실재적이고 객관적인 조건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실천적이고 집합적이며 의식적인 창조물이라는 뜻이다. 혁명의 성공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달성한 조직과 의식의 수준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공산주의는 계급,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어떤 종류의 개인적·집합적 소유가 없는 사회여야만 한다. 자본주의에 의해 가능했던 유일한 생산의 사회화의 최고점은 생산수단의 전 사회적인 몰수이다. 따라서 공산주의 사회는 결핍의 철폐와 필요에 의한 생산에 근거한다. 공산주의는 풍요의 사회이며, 이 사회는 인류의 다양한 필요를 충족시켜 준다. 인간의 필요에 의한 생산은 인간성의 해방이며, 이는 오직 국제적 규모에 의해서만, 그리고 경제적·사회적 삶의 모든 측면에서의 혁명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공산주의는 가치법칙을 철폐한다.

    그런데 이러한 공산주의 모든 특징들은 그것들 자체로 프롤레타리아 존재의 취약함, 궁핍, 그리고 비인간성에 달려 있다. 왜냐하면 “사회 존재의 비인간성은 프롤레타리아 존재 조건에 집중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은 “오늘날 그 자신의 상황에 집중되어 있는 사회의 모든 비인간적 측면을 극복하지 않고는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없다.”78)

    프롤레타리아트는 해방을 위한 최종적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지속적인 압력에 취약하다. 이것은 공산주의로 향한 길이 필연적이지 못한 이유이며, 따라서 공산주의는 길고 고통스러운 투쟁의 열매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 후에도, 정치권력을 쟁취한 후에도 착취 받는 계급으로 남는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공산주의 사회 사이에 이행기는 꼭 필요하다. 이 시기에 프롤레타리아트는 전 사회를 통해 다른 사회계급들을 생산적 노동에 통합함으로써 그들의 조건을 일반화 시킨다.

    이러한 사회변혁이 없다면, 계급의 발전적 해소가 없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세계적으로 정치혁명이 일어난 후에도 여전히 착취 받는 계급―다른 사회계급들의 기생적 소비를 위한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계급―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공산주의로의 이행기 동안 자본주의 사회로 되돌아가는 퇴행의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한 패배의 가능성에 대항하여 투쟁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그 자신의 의식과 연대를 발전시키도록 하는 엄청난 노력이 요구된다. ■



    1) 1919년 1월 24일, <코민테른 제1차 대회에의 초대>


    2) Mitchell, <고뇌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와 순환>, 《Bilan》 11호, 1934. 9월


    3) 칼 맑스, <요강>, 《전집》 29권, 133~4쪽


    4) Ticktin, Hillel, . Critique. 1994. 28 69쪽


    5) Ticktin, H. Critique 1986. 17. 12-15쪽


    6) Ticktin, H. New York : Sharpe, 185쪽


    7) Ticktin, H. 앞 글. 1994. 75쪽


    8) Ticktin, H. 앞 글. 1994. 83쪽


    9) Ticktin, H. 앞 글. 1994. 83쪽


    10) Ticktin, H. 1994. 13쪽


    11) 1999년 이후 영국의 사회주의 그룹 Workers’ Liberty가 발행하는 이론지


    12)  Revolutionary Perspective. 43, 2007.8


    13) ICC의 경우, International Review no. 96, 97, 105, 106, 115, 117, 118, 119, 121

       IBRP의 경우, Prometeo No. 8, Revolutionary Perspective no. 32, Internationalist Communist no. 21

       IP의 경우, Internationalist Perspective no. 30, 31, 34, 35, 44, 그리고 2006년 한국 대회 발제문


    14) IR no. 120, 2005,


    15) IR no. 120, 2005


    16) Revolutionary Perspective no. 32


    17) Internationalist Communist no. 21


    18) Prometeo no. 8, 2003


    18) IR no. 119, 2004,


    19) IR no. 119, 2004


    20) IP no. 34, 1998,


    21) ICC에 대한 비판은 이후에 다를 것이다.


    22) IP no. 34, 1998


    23) IP no. 34, 1998


    24) IR no. 118, 2004,


    25) IP no. 34


    26) Internationalist Communist no. 21


    27) IR no. 118, 2004


    28) IR no. 118, 2004, ICC가 언급한 맑스와 엥겔스의 저술은 다음과 같다.

       맑스 : German Ideology, Communist Manifesto,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Capital vol. 1, vol. 2

       엥겔스 : Anti-Dühring, The Peasant War in Germany


    29) IP no. 35, 1999, Discussion meeting, The decadence of capital


    30) IP no. 35, 1999


    31) IP no. 34, 1998


    32) IP no. 44, 2005, Decadence of capitalism


    33) IP no. 44, 2005


    34) IP no. 44, 2005


    35) IP, Text for International Conference in South Korea, 2006


    36) IP no. 34, 1998


    37) IP no. 30, 1997,


    38) IR no. 117, 2004,


    39) IR no. 117, 2004


    40) IR no. 117, 2004


    41) IR no. 117, 2004


    42) IP no. 34, 1998


    43) IR no. 105, 2001, Correspondence : crisis theories and decadence (ⅰ)


    44) IR no. 105, 2001


    45) IR no. 106, 2001, Correspondence : crisis theories and decadence (ⅱ)


    46) IR no. 106, 2001


    47) IR no. 106, 2001


    48) IR no. 105, 2001


    49) IR no. 105, 2001


    50) IR no. 106, 2001


    51) IP no. 35, 1999, Correspondence, Reply


    52) IP no. 35, 1999


    53) IR no. 106, 2001


    54) IR no. 106, 2001


    55) IR no. 106, 2001


    56) IR no. 115, 2003,


    57) IR no. 96, no. 97, 1999,


    58) Prometeo no. 8,


    59) IR no. 121, 2005,


    60) IR no. 121, 2005


    61) IR no. 115, 2003


    62) IP no. 34, 1998


    63) IP, Text for the Conference, 2006


    64) IP no. 34, 1998


    65) IP no. 34, 1998


    66) IP no. 35, 1999


    67) IP no. 35, 1999


    68) IP no. 35, 1999


    69) IR no 119, 2004


    70) IR no. 119, 2004


    71) IR no. 119, 2004


    72) IP no. 44, 2005


    73) IP, Text for the Conference, 2006


    74) IP, Text for the Conference, 2006


    75) IP, Text for the Conference, 2006


    76) IP, Text for the Conference, 2006


    77) Karl Marx, Letter to Joseph Weydemeyer, In  Karl Marx and Frederick Engels, , Moscow Progress 1975. 64쪽


    78) 맑스 엥겔스, <신성가족>,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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