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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당을 건설하자 : 3호_당건설토론2차 : 혁명전략
 정책위  | 2009·07·27 01:07 | HIT : 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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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노련에서 발행한 <사회주의자> 3호에 실린 글입니다.)

    [당건설전국토론] 제2차

    사회주의노동자연합과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준비모임 그리고 무소속 활동가들은 지난 2월 초부터 ‘사회주의 당 건설운동 전면화를 위한 전국공동토론회’를 수도권, 영남권, 호남권, 중부권을 순회하며 열고 있다. 이 ‘당건설전국토론’에 우리가 제출한 글들을 자료로 싣는다. 다음은 제2차 토론 ‘혁명전략’에 관련된 자료들이다.


    <제2차 토론 발제문 : 양준석>

    혁명 전략

    1. 노동자계급의 세계적인 사회주의 혁명만이 오늘날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자본주의가 낳는 참화에서 인류를 구할 수 있다.

    (1) 이미 오래 전에 자본주의는 역사에서 진보적 역할을 마감하였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압도적 다수의 노동자 민중을 더욱 더 끔찍한 야만과 참화로 내몰면서 간신히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사명이다.

    ○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위기와 파괴, 즉 불황과 파산, 실업과 빈곤, 전쟁과 야만은 필연적이다. 자본주의에서 위기와 모순의 극복은 자본주의의 형태 변화(신자유주의에서 케인스주의로의 왕복 운동)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의 근본적인 폐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2)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서만 자본주의의 계급적 착취와 억압을 분쇄하고, 나아가 계급과 국가 자체를 소멸시킴으로써, 모든 유형의 사회적 착취와 억압이 사라진 공산주의 인류 공동체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 사회주의 사회는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에 대한 자본가소유를 대신하여 사회적 공동소유를 도입함으로써, 그리고 자본가들의 무정부적 상품 생산을 대체하여 사회 전체에 의한 계획적 생산을 도입함으로써, 나아가 이러한 계획경제를 생산자들 스스로가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수평적으로 협동하는 자주관리 생산과정과 전면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노동자계급의 해방과 함께 사회의 모든 계급을 철폐하고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불평등을 폐지한다. 그리고 생산력 발전의 모든 결과를 전체 사회구성원의 완전한 복지와 전면적인 발전을 보장하는 데 쓸 수 있게 만든다. 이것 말고는 노동자계급과 인류가 자본주의 참상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 압도적 다수 생산자로서 노동자계급이 수행하는 혁명은 이런저런 착취자들이 수행했던 과거의 혁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은 한 유형의 착취자를 좀 더 진보적인 다른 유형의 착취자로 대체하는 지난날의 혁명이 아니라, 모든 착취자의 손아귀에서 생산수단을 빼앗아 전체 사회의 공동 소유물로 만들고 생산자들 자신이 운영함으로써 ‘계급제도’ 일반을 없애는 혁명이다.

    (3) 사회주의 혁명은 세계 노동자계급을 주체로 하는 세계 혁명이다. 한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세계 노동자계급의 유기적인 한 구성부분인 한국 노동자계급이 세계 혁명의 유기적인 한 과정으로 수행하는 혁명이다.

    ○ 생산과 교환이 국제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오직 국제적 차원에서만 가능하다. 한국 노동자계급은 세계 노동자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국제 노동자계급의 한 부분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화가 더욱 높은 수준에 도달한 만큼 모든 나라의 노동자운동은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

    ○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운동이 오랜 퇴조를 거치는 동안 노동자 국제주의는 심각하게 후퇴했고 크게 보아 여전히 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사회주의 혁명운동이 세계적으로 새롭게 상승하기 시작한 것과 맞물려 노동자 국제주의는 막연한 당위가 아니라 현실의 운동으로 재건되어 나갈 것이며, 또 그렇게 만들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2. 사회주의 혁명은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 혁명이며, 그것을 실현하는 핵심 수단은 ‘노동자권력’의 수립이다.

    (1) 노동자권력은 압도적 다수 생산자로서 노동자계급이 아래로부터 전면적으로 참여하여 자신들의 주도권과 능동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수립되고 유지되는 권력이다.

    ○ 착취자들의 모든 저항을 제압하기 위해 자본가권력을 철폐하고 노동자권력을 수립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 노동자권력은 소비에트 유형의 노동자·민중의 자주적 기관으로 구성한다. 노동자권력은 모든 관리를 아래로부터 선출·소환·통제하며, 입법·사법·행정을 자기 수중에 단일하게 결합시킨다.

    (2) 노동자권력의 힘을 바탕으로 모든 형태의 착취와 억압을 철폐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은 국가를 소멸시키고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공동체를 향한 최종 목표로 나아간다.

    ○ 노동자권력은 광범한 노동자 대중이 직접 주도하고 통제하여 운영된다는 점에서 더 이상 통상적인 유형의 국가가 아니며, 이미 ‘공동체 사회’의 성격을 띤다.

    ○ 현장 단위 생산자 조직을 기초로 민주적으로 세워지고 운영되는 노동자 권력은 생산자들(노동자들)이 정치의 주인으로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보장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적 생산력을 창조할 수 있도록 생산자들을 통합하고 이끈다.

    ○ 노동자권력은 계급 자체가 철폐되고 노동자 대중의 자치적인 사회운영 능력이 완성됨에 따라 국가로서의 성격을 점차 소멸시켜 가며, 최종적으로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공동체’에 자리를 내준다.

    (3) 노동자계급의 적인 자본가나,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에서 동요하는 중간계급이 노동자계급을 해방시킬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오직 노동자계급 자신의 과업일 수밖에 없다.

    ○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더욱 빠르게 몰락할 수밖에 없는 중간계급은 노동자계급의 입장에 설 때에만 노동자계급과 더불어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만약 사회주의 혁명이 ‘민중’의 혁명일 수도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노동자계급의 입장에 동화된 다른 피억압 민중이 노동자계급과 노동자권력을 지지하여 노동자혁명에 참여하는 경우에서이다.

    ○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다른 피억압 민중을 사회주의 혁명에 참여시킬 경우, 노동자계급은 그들이 노동자계급의 입장에 설 때만 동맹군으로 받아들이며, 아울러 그들이 불가피하게 보여줄 동요와 일탈에 맞서 사회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이며 혁명적인 노동자계급의 입장을 일관되게 수호해야 한다.

    (4)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이행의 과정으로서 사회주의 사회는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을 향한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의 산물이며, 그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

    ○ 사회주의 사회는 관료주의적 접근을 철저히 배제한 채 1871년 파리 코뮌과 1917년 러시아 소비에트와 같은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자 대중권력을 근간으로 할 때에만 제대로 수립·발전될 수 있다. 소비에트권력의 무력화에 뒤이은 러시아 혁명의 타락과 반혁명은 이를 현실에서 분명하게 보여준다.

    ○ 오직 노동자권력에 의해 이뤄지는 국유화만이 비로소 사회적 공동소유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견주어 스탈린 관료집단과 같은 반노동자계급 세력이 관료적으로 지배하는 국가에서의 국유화는 사회적 공동소유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 1930년대 스탈린 반혁명 뒤부터 1991년 몰락 전까지 옛 소련, 2차 대전 이후부터 1989년 몰락 전까지 동유럽, 그리고 오늘날 중국과 북한 등의 사회체제는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노동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국가)자본주의 사회로서 노동자계급이 타도해야 할 또 하나의 반동체제일 뿐이다.

    ○ 특히 2차 대전 이후 동유럽, 중국, 북한, 베트남, 쿠바 등에서 노동자권력의 수립 없이 펼쳐진 ‘혁명’들과 그것이 건설했다고 주장하는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결국 또 하나의 자본주의 체제를 건설하고 발전시켜 온 과정이었다.

    ☞ 오늘날 중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극악한 자본주의적 착취와 억압이 판치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중국의 모습은 마오가 이끈 ‘중국혁명’에서 일탈한 결과인가, 아니면 그 혁명이 낳은 필연적 결과인가? 머지않아 힘차게 솟구칠 중국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부여잡아야 할 깃발은 ‘부활한 마오주의’인가, 아니면 마오주의 환상을 철저히 극복한 진정한 ‘혁명적 사회주의’인가?

    ☞ 지금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볼리바르 혁명’은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의 한 부분인가? 아니면 (소)부르주아 혁명의 또 다른 사례인가? 그 혁명 속에서 노동자계급은 얼마나 주체로 서 있는가? 나아가 노동자권력 수립으로 나아갈 전망은 얼마나 있는가?

    3. 노동자권력은 노동자들이 현장에서부터 권력의지를 갖고 계급의 힘을 전면적으로 조직해 내는 ‘노동자평의회’를 통해서만 수립될 수 있다.

    (1) 노동자권력은 부르주아 국가기구 속에서는 결코 창출되지 않으며, 오로지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분쇄함으로써만 창출된다. 노동자권력 수립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경로로서 ‘부르주아 선거를 통한 집권’을 꿈꾼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개량주의 환상이며, 파멸적인 의회주의 전망일 뿐이다.

    ○ 노동자들이 부르주아 선거를 통해 ‘집권’한다 하더라도 그 권력의 주인은 여전히 노동자계급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이다. 국가권력의 진정한 주인은 선거로 뽑힌 ‘얼굴’이 아니라 국가기구를 구성하고 국가기구가 봉사하는 ‘계급’이기 때문이다. 자본가계급이 구성하고 자본가계급에게 봉사하는 부르주아 국가기구는 부르주아 선거를 통해서는 결코 분쇄되지 않는다.

    ○ 만약 부르주아 선거를 통한 ‘집권’을 바탕으로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개조하고 그럼으로써 노동자권력의 기초를 다져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너무나 순진한 환상이다. 칠레 아옌데 정권의 경험에서 드러났듯이, 온갖 관료장치와 무장력을 갖고 있는 부르주아 국가기구는 그러한 방향으로 너무나 사소하게 벌이는 시도조차 ‘군사 쿠데타’로 응답함으로써 국가권력의 주인이 어느 계급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 더욱 중요한 것은 어느 노동자 정치세력이 부르주아 선거를 통한 집권을 추진하게 될 경우, 그러한 노력의 과정 자체가 그 정치세력의 성격을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잠정적인 관리자로, 다시 말하여 또 하나의 부르주아 정치세력으로 변질시키게 된다는 점이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압도적 힘을 발휘하며 노동자들이 집단성을 해체당한 채 개별 시민으로 참여하게 되는 부르주아 선거에서 득표력의 확대 자체를 목표로 삼는 노동자 정치세력은, 시간이 갈수록 노동자계급의 관점을 버리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순응해 나갈 수밖에 없다.

    ○ 그렇다고 사회주의 혁명세력이 부르주아 선거와 의회를 제한적으로 활용하는 것까지 전혀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때때로 부르주아 선거와 의회 공간은 사회주의 혁명세력의 존재와 주장을 불특정 다수의 노동자들에게 알리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다만 부르주아 선거와 의회를 활용하는 전술은 부르주아 선거와 의회 바깥에서 노동자 대중투쟁을 힘차게 발전시켜 나가는 데 철저히 복무하는 보조수단, 즉 계급투쟁의 부차적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 또한 사회주의 혁명세력의 역량은 부르주아 선거와 의회 바깥에서 노동자 대중투쟁을 힘차게 발전시키는 데 우선적으로 집중되어야 하며, 부르주아 선거와 의회를 활용하는 전술은 그러한 우선적인 역량집중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 여건에서,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만 활용되어야 한다.

    (2) 노동자권력은 폭발적인 계급투쟁 속에서 광범한 노동자들이 ‘노동자평의회’ 형태의 혁명적 투쟁기관들을 아래로부터 창출해 내면서 벌떼처럼 일어난 힘으로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분쇄하고 스스로 권력을 획득함으로써만 수립될 수 있다.

    ○ 집단적 생산자로서 노동자계급의 힘을 전면적으로 조직해 낼 수 있는 방식은 노동자계급 총단결의 정신으로 현장에서부터 모든 노동자를 결집시키되, 이것을 권력의지에 입각해 지역을 거쳐 전국으로 총결집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현장을 기초로 지역을 거쳐 전국으로 노동자들이 총결집하는 형태는 역사 속에 등장했던 노동자평의회들이 공통으로 보여주었던 모습이며, 앞으로 출현할 노동자평의회 또한 이와 같은 형태를 기본으로 갖게 될 것이다.

    ○ 노동자평의회로 대표되는 노동자권력과 부르주아 국가기구로 대표되는 자본가권력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두 권력 사이에서 죽고 사는 전투가 펼쳐지는 이중권력 상태를 제외한다면, 기본적으로 한 하늘 아래 같이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노동자평의회 형태의 혁명적 투쟁기관들은 부르주아 국가기구 아래서 점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혁명적 정세를 열어젖히며 일거에 등장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 노동자평의회가 혁명적 정세를 열어젖히며 일거에 등장하는 것은, 한편으로 자본주의 모순과 부르주아 지배력의 위기가 매우 심화되는 객관적 조건의 성숙을 필요로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부르주아 선거와 의회에 갇히지 않는 직접적인 계급투쟁의 발전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투쟁역량이 획기적으로 강화되는 주체적 조건의 성숙을 필요로 한다.

    ○ 마침내 세계자본주의가 세기적인 세계대공황에 다시 빠져들었다는 것은 오늘날 자본주의 모순과 부르주아 지배력의 위기가 전 세계적 수준에서 매우 깊어져 있고 앞으로 빠르게 더 깊어질 것임을 말해준다. 그런 만큼 앞으로 정세 발전을 사실상 좌우하는 것은 주체적 조건의 성숙 정도라고 할 수 있다.

    ○ 노동자계급의 투쟁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시켜 내려면,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과제들이 실현되어야 한다.

    ☞ 첫째, 혁명정당을 건설하여 근본 목표와 당면 방향을 올바로 제시하고 앞장서 헌신함으로써 전체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힘차게 이끌고 나가야 한다.

    ☞ 둘째, 노동자들의 당면 요구를 공세적으로 집약한 대중행동강령을 내걸고 광범한 노동자들이 노동자공동전선으로 집결하여 노동자계급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 셋째, 평조합원 운동에 기초한 노동조합의 전투적 재편, 파업위원회와 공장위원회 건설, 노동자 통제의 도입과 강화 등 앞으로 노동자평의회가 출현하는 데 디딤돌이 될 수 있는 맹아적 요소들을 광범한 노동자들 스스로의 운동으로 곳곳에서 만들어가야 한다.

    4. 혁명정당을 건설하여 근본 목표와 당면 방향을 올바로 제시하고 앞장서 헌신함으로써 전체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힘차게 이끌고 나가야 한다.

    (1) 사회주의 혁명정당은 노동자계급의 가장 선진적인 부분으로서, 노동자계급의 근본적인 이해를 대변하며, 정치적 능력과 헌신성을 통해 노동자운동을 이끌어 나간다.

    ○ 혁명정당은 노동자계급 운동이 자신의 위대한 역사적 임무를 완수하는 과정에서 내딛는 모든 발걸음을 온힘을 다해 앞장서 실천적으로 이끈다. 그 속에서 혁명정당은 언제나 노동해방 공동체 건설이라는 노동자운동의 궁극적 목적을 뚜렷하게 제시하며, 산업과 국경을 초월한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해를 대변한다. 혁명정당은 전 세계 노동자운동의 굳건한 단결을 위해 투쟁하며, 자신을 국제 사회주의 혁명세력의 한 부분으로 여기면서 혁명적 인터내셔널의 창건을 위해 분투한다.

    ○ 혁명정당은 관료적이고 기계적인 방식으로는 노동자계급을 지도할 수 없다. 혁명정당은 노동자계급의 가장 선진적인 부분으로서 전체 노동자들을 자신과 긴밀히 연결시켜 낼 수 있고, 계급투쟁의 객관적 조건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노동자운동을 실제로 조직해 나갈 수 있으며, 노동자투쟁을 노동자가 해방되는 사회의 실현을 향해 일관되게 밀어갈 수 있을 때, 객관적으로 노동자계급을 지도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런 능력을 갖춘 혁명정당은 관료적인 권위나 쓸데없는 형식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노동자 민중에게 미치는 정치적 영향력 그리고 당원들의 헌신성과 지도력을 통해 노동자들의 자발적 지지와 동의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노동자운동과 나아가 노동자권력을 이끌어 나갈 것이다.

    (2) 혁명정당이 개량정당과 다른 점은 일차적으로 개량강령이 아닌 혁명강령을 내세우는 것으로 드러나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노동자 투쟁의 혁명적 발전을 실제로 이끌 수 있는 전투정당다운 실력과 면모를 갖추는 것으로 드러난다.

    ○ 첫째, 혁명정당은 현장의 혁명적 선진투사들을 규모있게 육성하고 결집시킨 현장분회들을 수많은 사업장·지역·부문에 튼튼하게 구축하여, 현장에서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수행하고 대중운동을 선도하면서 노동자 투쟁의 혁명적 발전과정을 실제로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 둘째, 혁명정당은 혁명강령의 내용을 생생한 사례와 결합된 포괄적인 사회주의 정치선동으로 구체화함으로써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관점으로 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도록 알기 쉽게 제시하는 능력과 대규모로 전파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 셋째, 혁명정당은 노동자운동의 현 발전수준과 노동자투쟁의 당면 요구 속에 담긴 혁명적 가능성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발전시켜 당면 투쟁강령(행동강령)으로 제시함으로써 현실의 노동자투쟁과 혁명강령을 연결시켜 내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3) 혁명정당은 다양한 영역에서 혁명강령에 입각해 활동하는 역량을 총괄해 낼 수 있어야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현장에서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수행하며 계급투쟁을 선도적으로 조직해 내는 것에 확고한 중심을 두어야 한다.

    ○ “선거용 종이당원으로 구성되는 개량정당과 달리 혁명정당은 활동하는 당원들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혁명정당은 기본적으로 현장에서 계급투쟁을 선도적으로 조직하는 혁명투사들의 당이어야 한다.

    ○ 현장에서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수행하려면 가장 먼저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주체로서 현장분회를 세워야 한다. 현장분회는 일차적으로 현장신문과 같이 현장 노동자들에게 직접 사회주의 정치선동을 할 수 있는 수단을 건설하여 노동자들 속에 깊이 파고들어가야 한다. 나아가 현장분회는 노동조합 관료주의에 맞서 노동자평의회 정신을 옹호하고, 대중행동강령을 내건 노동자공동전선의 강화를 추구하면서, 평조합원 운동을 비롯한 현장 내 다양한 투쟁과 조직에 적극 개입함으로써 현장 노동자운동의 혁명적 발전을 주도해야 한다.

    ○ 혁명정당이 근거하는 ‘현장’은 제조업 직접생산 사업장을 비롯하여 현실에서 임금노동자들이 노동하는 모든 공간을 일차적으로 가리킨다. 그런데 오늘날 자본주의 아래서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이 임노동 고용관계 자체로부터 배제당하여 실업자가 되거나 영세(서비스)업체에 소규모로 불안정하게 고용됨으로써 노동과정에서 일정한 집단을 안정적으로 형성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과학기술의 발전이 한편으로 과도노동을 온존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 실업과 불안정고용의 확대, 서비스산업의 팽창으로 귀결되는 자본주의 모순 때문인데, 이러한 노동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만큼 그들을 노동자운동으로 조직할 필요성과 가능성 또한 점점 커지고 있다. 오늘날 ‘현장’은 이러한 노동자들을 (이러저러한 몰계급적 운동이 아니라) 노동자운동으로 조직하는 적절한 공간으로까지 확대해석 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현장을 조직하는 단위는 사업장이 기본이지만, 현장 특성에 따라 지역 또는 부문이 될 수도 있다.

    ○ 다양한 중간계급 출신들도 혁명정당에 참여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그들이 혁명강령에 확고히 동의하는 의식적 조건과 현장에서 계급투쟁을 조직하는 데 실제로 기여하는 존재적 조건을 충족시킴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유기적인 일부가 되었을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4) 혁명정당은 ‘토론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로 요약되는 민주집중제에 따라 운영된다.

    ○ 혁명정당은 민주집중제를 구현함으로써, 노동자계급에 올바로 복무하려고 매우 치열하게 논쟁하면서도 실천적으로는 강한 응집력을 가진 강철 같은 조직이 될 수 있다.

    ○ 민주집중제는 혁명정당 안에 여러 경향이 존재할 수 없다거나 이 경향들 사이의 논쟁과 정치적 그룹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민주집중제의 참뜻은 혁명정당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논쟁이 여러 경향 사이의 대립을 축소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통일성을 강화하는 동지적 방식으로 이뤄지며, 책임성 있고 진지하게 발전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경향의 유기적 협력을 혁명정당 내부의 활동과 발전의 규범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 민주집중제는 다음과 같이 보다 풍부하게 이해되어야 한다. 첫째, 정치적 방향을 현실의 노동자운동에 부합하게끔 바로잡거나 구체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아래로부터 현장투사들의 요구와 견해를 수렴하고 반영하는 것이다. 둘째, 정치적 지도의 내용을 풍부화하기 위해 현장투사들의 다양한 경험들을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이렇게 풍부화된 정치적 지도의 내용을 다시 조직 전체로 전파하는 것이다. 셋째, 노동자들 속에서 지도력을 구축한 현장투사들을 꾸준히 각급 지도부로 보강함으로써 조직의 지도력을 강화하고 그럼으로써 조직적 안정성과 연속성을 획득해 가는 것이다.

    5. 노동자들의 당면 요구를 공세적으로 집약한 대중행동강령을 내걸고 광범한 노동자들이 노동자공동전선으로 집결하여 노동자계급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1) 대중행동강령은 노동자들의 당면 요구를 매개로 광범한 노동자들을 혁명강령으로 안내하는 수단이다.

    ○ 자본가권력 철폐와 노동자권력 수립으로 요약되는 혁명강령이 자본주의 모순의 근본 해결책들을 담고 있다고 해서, 곧바로 광범한 노동자들이 혁명강령을 자신의 요구로 내거는 것은 아니다. 계급투쟁이 충분히 발전하고 그래서 다수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충분히 발전하는 조건 아래서만 혁명강령은 광범한 노동자들 자신의 요구가 될 수 있다.

    ○ 그런데 아직 계급투쟁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조건에서도 노동자들은 당장의 생존과 부분적인 경제적 정치적 권리를 위해 당면 요구를 내걸고 투쟁한다. 그러한 당면 요구는, 관료적 지도부의 왜곡을 거쳐 분열적이고 수세적으로 제기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오히려 후퇴시킬 수도 있지만, 공세적인 방향으로 제기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강화하고 다수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으로 복무할 수도 있다.

    ○ 대중행동강령은 노동자들의 당면 요구를 가장 공세적인 방향으로 집약한, 노동자들의 당면 투쟁강령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모순이 심화된 오늘날의 조건에서는 노동자들의 당면 요구를 공세적으로 집약한 대중행동강령의 실현조차도 계급투쟁의 첨예한 발전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대중행동강령을 내건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급투쟁의 첨예한 발전을 야기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다수 노동자들의 날카로운 계급의식 성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대중행동강령은 현실의 노동자투쟁이 혁명강령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수단이다.

    ○ 아직 혁명정당으로 발돋움하지 못한 작은 혁명조직(들)이 혁명정당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 국면에서, 대중행동강령은 가장 전투적인 노동자들을 사회주의 혁명강령으로 인도하는 중간 다리의 역할, 그래서 혁명정당의 대중적 요소를 형성해 내는 역할 또한 갖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대중행동강령은 광범한 노동자들에게 제시하는 당면 투쟁강령이면서, 동시에 가장 전투적인 노동자들에게 혁명강령의 첫머리를 적극적으로 선전·선동·교육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2) 대중행동강령은 광범한 노동자들 자신의 요구가 되어야 하며, 이것은 대중행동강령을 내건 노동자공동전선의 건설과 강화를 통해 실현할 수 있다.

    ○ 노동자공동전선은 노동자들이 폭넓게 힘을 모아 투쟁에 나섬으로써 계급투쟁 전선을 구축하고 노동자들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발전시켜 나가는 수단이다. 그런데 노동자공동전선은 노동자들의 당면 요구를 공세적으로 집약한 대중행동강령을 전면에 내걸 때 비로소 노동자계급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발전시켜 나가는 수단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 대중행동강령을 내건 노동자공동전선은 인민전선에 굴종하거나 부르주아 의회로 계급투쟁을 가두려는 노조관료들과 개량주의 노동자당의 시도에 단호히 맞서는 것이며, ‘계급 대 계급’ 전선을 구축하고 그 속에서 노동자들의 계급투쟁 역량을 직접 강화해 나가는 것이다.

    ☞ 부르주아 정치세력과 함께 만드는 인민전선과 노동자공동전선은 전혀 다른 것이다. 역사 속의 수많은 경험이 입증하듯이, 인민전선은 노동자투쟁의 성과를 또 다른 부르주아 정치세력에게 갖다 바치도록 만들며, 그럼으로써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성장을 결정적으로 방해하고 기존의 성과조차 파괴한다. 노동자투쟁의 소중한 성과는 부르주아 정치세력에게 빼앗길 수 없으며 오로지 노동자계급 역량의 강화로 귀결되어야 한다.

    ☞ 노동자투쟁은 부르주아 선거와 의회에 갇히지 않는 직접적인 계급투쟁 속에서만 힘차게 뻗어나갈 수 있다. 노동자공동전선은 노동자들이 의회와 같은 부르주아 제도정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직접 투쟁함으로써 계급투쟁 역량을 성장시켜 나가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3) 대중행동강령을 내건 노동자공동전선은 위로부터만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노동자들을 결집시키고, 다양한 부문의 노동자들을 하나로 포괄해 내며, 기회주의적 일탈을 내부투쟁으로 제압할 수 있어야만 힘차게 발전할 수 있다.

    ○ 대중행동강령을 내건 노동자공동전선은 그 정치적 수준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치조직을 비롯한 전국조직들이 상층에서 결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상층의 결집만으로 제한된다면 노동자공동전선은 광범한 노동자들 스스로가 참여하는 운동이 될 수 없다. 지역과 현장에서 가능성을 가진 다양한 흐름들을 발굴하고 묶어세움으로써 기층에 있는 광범한 노동자들과 대중조직들이 대중행동강령을 자신의 요구로 받아들이고 합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대중행동강령을 내건 노동자공동전선은 다양한 부문의 노동자들이 공동의 요구를 내걸고 하나의 계급으로 결집하는 틀이 되어야 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가 상당히 진척된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는 정규직을 비롯한 대공장 조직노동자 투쟁과 비정규직·실업자·청년을 비롯한 주변부 미조직노동자 투쟁을 하나의 계급투쟁으로 통합시켜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 노동자공동전선 안에서 노동자계급의 대의를 배신하는 기회주의적 일탈이 발생할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 그것은 노동자공동전선이 공동 요구에 동의하는 노동자들이라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열린 틀이라는 점에서 필연적이다. 그런데 대중행동강령을 내건 노동자공동전선은 노동자계급의 대의와 대중행동강령의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내부의 일탈을 방치한다면 말과 행동을 일치시킬 수 없게 된다. 노동자공동전선은 다양한 세력이 함께 하는 만큼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필수적이지만 명백한 기회주의적 일탈에 대해서는 준엄한 내부투쟁으로 제압해야만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

    6. 앞으로 노동자평의회가 출현하는 데 디딤돌이 될 수 있는 맹아적 요소들을 광범한 노동자들 스스로의 운동으로 곳곳에서 만들어가야 한다.

    (1) 노동조합은 노동자 단결과 투쟁의 성과물이면서도 부르주아 제도의 한 축으로서 관료화와 보수화로 내몰리는 경향을 늘 안고 있다. 노동조합은 관료화와 보수화에 맞서 노동자계급 단결과 투쟁의 정신을 끊임없이 다시 세우는 내부투쟁을 통해서만 계급투쟁의 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

    ○ 노동조합은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철폐가 아니라 자본주의 아래서 노동자 권익을 보호하는 것에 목적을 두는 노동자조직이다. 자본가들은 대체로 노동조합을 전면 부정하기보다 부르주아 제도 속으로 길들이는 것으로 대응하며, 오늘날 거의 모든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합법적인 부르주아 제도의 한 축으로 작동하고 있다.

    ○ 노동조합은 이런 성격 때문에 처음으로 단결과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들이 쉽게 움켜잡을 수 있는 무기라는 장점을 갖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도부의 관료화와 조합원의 보수화가 경향적으로 강화되는 단점 또한 피할 수 없다.

    ○ 자본주의가 그럭저럭 돌아가는 상황에서 관료화와 보수화는 착취와 억압 자체에 맞선 투쟁을 회피하고 그저 더 많은 떡고물을 얻으려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오늘날과 같이 자본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관료화와 보수화는 자본의 거센 공격 앞에 자신들만 살아남길 바라면서 다른 노동자들에 대한 배신마저 서슴지 않거나 덜 공격받길 바라면서 자본에 무기력하게 투항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관료화와 보수화가 지배하는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강화하는 무기가 결코 될 수 없다.

    ○ 그러나 모든 노동조합이, 또는 노동조합 속에서의 모든 활동이, 더 이상 계급투쟁 역량을 강화하는 데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노동자계급 단결의 원칙과 공세적인 투쟁의 정신으로 현장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노동조합을 강제해 들어가는 내부투쟁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나아가 내부투쟁 성과에 따라 노동조합 자체가 계급투쟁의 무기로 재편될 가능성 또한 일반적으로 존재한다.

    ○ 이처럼 노동조합을 전투적으로 재편하려는 노력의 기초는 ‘노동자평의회 정신에 입각한 평조합원 운동’이다. 이것은 노조관료들의 승인과 상관없이, 현장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내건 대담한 투쟁을 현장 노동자들 스스로가 아래로부터 펼치는 운동이다. 형식에서는 노동조합 공식체계와 부분적으로 연결될 수도 있지만, 실제 내용에서는 노조관료체계와 완전히 독립적인 운동을 현장에서 건설하는 것이다.

    (2) 개량획득을 목적으로 탄생한 노동조합의 생래적 한계는 노동조합운동 자체로는 극복할 수 없다. 사회주의 현장투사들이 노동조합의 생래적 한계를 돌파하는 독자적 역할을 체계적으로 수행할 때에만, 노동조합은 개량적 본성에 갇히지 않고 계급투쟁의 무기로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 노동조합 그 자체로는 개량적 본성 때문에 결국 관료주의와 조합주의(부문주의)로 빠져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노동조합이 계급투쟁의 무기로 작동하려면, 사회주의 현장투사들이 노동조합 안팎에서 노동자 민주주의와 노동자계급의 관점으로 그리고 자본의 지불능력을 뛰어넘는 혁명적 정신으로 펼쳐내는 독자적인 사회주의 현장활동이 반드시 결합되어야 한다.

    ○ 사회주의 현장투사들이 고립된 개인으로 존재하는 한 독자적인 사회주의 현장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혁명정당(또는 그 발전과정에 있는 혁명조직)의 유기적인 한 부분으로 작동하는 사회주의 현장분회를 통해서만, 노동조합 한계에 갇히지 않는 독자적인 사회주의 현장활동을 실천할 길이 열린다.

    ○ 사회주의 현장분회는 노동조합의 개량적이고 조합주의적인 습성으로부터 독립성을 갖고, 언제든지 그런 습성을 비판하고 대항할 수 있는 독립적인 사회주의 정치활동(이를테면 현장신문 발행과 같이 혁명정당 또는 혁명조직의 현장분회로서 실행하는 독립적인 사회주의 정치선동)과 노동조합이나 현장조직으로 해소되지 않는 독립적인 조직적 토대를 현장에 갖추고 있어야 한다.

    ○ 사회주의 현장분회에 속한 현장투사들은 노동조합 속에서 활동할 때에도 ‘노동조합 서기나 통상적인 노조 간부’의 정신이 아니라 ‘혁명정당의 노동조합 파견자’의 정신으로 임해야 한다. 또한 사회주의 현장분회는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자기 성원들이 사회주의 혁명운동의 정신을 일관되게 지켜내도록 이끌고 통제해야 하며, 만일 그들이 노동조합의 개량적 본성에 물들어 사회주의 혁명운동의 원칙을 저버릴 때에는 단호하게 축출할 수 있어야 한다.

    ○ 조직적인 독립성을 갖고 체계적으로 정치활동을 펼치는 사회주의 현장분회에 기초하지 않으면서 ‘혁명’을 내거는 노동자당(또는 노동자정치조직)은 현장에 대한 영향력을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조건에서는, 즉 사회주의 현장분회의 독자적인 정치활동이 실현되지 않는 조건에서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노동조합 관료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런 노동자당은 자신의 운명을 노동조합 관료들의 손아귀에 넘겨줄 수밖에 없으며, 아무리 그럴듯한 사회주의 혁명강령을 내건다 해도 기껏해야 노동조합 좌파관료들의 장식품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 이런 당(조직)은 노동조합을 사회주의 편으로 이끌며 계급투쟁의 무기로 작동시켜 내는 대신 결정적인 순간마다 노동조합 관료들의 배신행위를 감싸거나 묵인하면서 끌려 다니게 될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당(조직)의 권위와 대중적 영향력은 소멸해 갈 것이며, 당(조직)의 정체성 자체가 개량주의와 조합주의로 전락해 가는 위협 앞에 설 것이다.

    ☞ 결국 사회주의 현장분회와 독자적인 사회주의 현장활동에 확고하게 기초하지 않으면서 ‘혁명’을 내거는 노동자당 또는 노동자정치조직은,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려다 노동조합 좌파관료들의 반발과 이탈을 불러옴으로써 현장에 대한 영향력을 일거에 상실할 것이냐, 아니면 현장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노동조합 좌파관료들에게 계속 기대면서 개량주의 조직으로 전락해 갈 것이냐 하는 두 길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비참하게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3) 노동자계급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전면적으로 발전시키려면 결국 노동조합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야 하며, 권력의지를 갖고 계급의 힘을 최대로 조직해 내는 노동자평의회 유형의 대중투쟁기관들을 창출하려는 대담한 노력들을 수시로 펼쳐야 한다.

    ○ 격렬한 파업투쟁이 펼쳐지는 공간은 모든 부르주아 제도와 관습의 힘을 일시적이나마 상당히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래서 노동자평의회 유형의 대중투쟁기관이 탄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공간이 된다. 공장을 장악한 파업 노동자들이 강력한 규율로 파업에 관한 모든 것을 가장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해 나가는 ‘파업위원회’는 소중한 출발일 수 있다. 정규직-비정규직 같은 고용형태나 노동조합 소속 따위를 떠나서 공장의 모든 노동자들을 하나의 틀로 묶어세우는 ‘공장위원회’도 중요한 시도일 수 있다. ‘파업위원회’와 ‘공장위원회’가 결합되는 시도라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생산과정에 대한 노동자통제는 노동자들이 권력의지를 형성하는 소중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의 왕성한 확대재생산 운동에 의존하고 안주하는 생산통제는 불황이나 공황을 맞이하였을 때 매우 무기력해지고 만다. 생존권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고 확대하기 위해 자본의 이윤 나아가 자본주의 원리를 과감하게 공격해 들어가면서 생산과정을 넘어 기업운영 전반으로 ‘노동자 통제’를 확장하려는 과감한 도전이 펼쳐져야 한다.

    (4) 혁명정당 건설을 통한 지도력 구축과 노동자공동전선을 통한 단결력과 투쟁력 강화는 결국 최종적으로는 노동자평의회의 폭발적 분출을 예비하는 것으로 그 성과가 모아져야 한다. 자본주의 모순과 부르주아 지배력의 위기가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노동자계급 투쟁역량의 획기적 강화는 마침내 위대한 노동자 혁명의 서막을 열어젖힐 것이다.

    <제2차 토론 보충발제문 : 양준석>

    혁명 전략 (보충 발제문)

    - 장혜경 동지 발제문에 대한 의견 -

    * 쟁점을 보다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토론을 활성화하고자, 장혜경(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준비모임) 동지가 제출하신 발제문에 대한 의견을 보충 발제문으로 제출합니다.

    들어가며

    (1) 파국으로 치닫는 세계 자본주의 -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혁명이냐, 전쟁이냐?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21세기 세계대공황의 원인과 전망에 관한 장혜경 동지의 서술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특히 다음 구절들에 동의한다.

    현재의 경제공황은 1970년대 이후 장기화․구조화된 자본주의 경제위기를 신자유주의적 축적양식으로 극복하려 했던 시도가 최근의 대공황으로 파탄났음을 의미한다. 즉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세계화, 노동자민중에 대한 착취와 수탈의 강화, 금융/주택 버블 등 거품 형성으로 이윤율의 반짝 반등을 끌어내긴 했지만, 1970년대 이후 지속되고 있는 과잉생산/축적에 따른 이윤율의 저하를 극복하지 못하였다.

    현 세계경제공황은, 과거의 세계공황이 그러했듯이, 1930년대 대공황과 제 2차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자본파괴 및 전쟁을 통해서만 이윤율 상승의 새로운 기초를 마련하면서,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최근 부르주아 진영 내에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며 경제위기의 해법으로 등장하는 ‘신케인즈주의’는 1970년대 초반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문제점을 드러낸 처방으로, 현재의 경제공황을 일시적으로 지연시킬 수 있을 뿐, 공황에 대한 근본 처방이 될 수 없다.

    그렇다. 지금 세계 각국 정부들이 앞다투어 온갖 경기부양책을 쏟아 내지만, 그것으로 대공황을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자본가들은 착취의 양을 늘림으로써 대공황으로 인한 손실 또는 이윤축소를 만회하려 할 것이고, 이는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정치사회적 권리에 대한 야만적인 공격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만으로는 세계대공황을 벗어날 수 없다. 자본의 왕성한 확대재생산 운동은 오로지 거대한 자본 파괴를 통해서만 다시금 시작될 수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자체가 철폐되지 않는 한, 세계대공황의 전개는 다시 한 번 ‘전쟁의 시대’를 향해 필연적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들과 인류 앞에 놓여 있는 미래는 끔찍한 야만과 전쟁의 시대만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노동자들을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은,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사회주의 혁명의 절박함을 말할 뿐만 아니라, 그 구체적인 가능성 또한 던져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1929년에 시작된 20세기 세계대공황은 결국 5천만 명을 살육한 2차 세계대전을 만들어 내며 노동자계급과 인류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을 안겼다. 그러나 동시에 20세기 세계대공황은 1930년대 미국·프랑스·스페인에서 가장 거대한 노동자투쟁의 물결이 펼쳐지는 토대를 제공하기도 했다.

    최근 그리스와 프랑스 그리고 동유럽에서 이미 상당한 수준과 규모로 노동자투쟁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중국에서도 언제 지표면을 뚫고 솟구칠지 모르는 거대한 마그마가 작은 거품들을 토해 내며 꿈틀거리고 있다. 세계대공황은 전 세계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것이고, 여기에 선진투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결합된다면 거대한 노동자투쟁들이 곳곳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난 세기의 경험이 보여주듯이 노동자투쟁의 거대함이 곧바로 노동자계급의 위대한 전진과 승리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개량주의 노동자당과 노동조합 관료들에 맞서 사회주의 혁명정당의 지도력이 노동자계급의 나아갈 방향을 올바로 제시해 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거대한 노동자투쟁이라 할지라도 자본가계급 안에서 집권세력을 교체하고 지배방식을 바꿀 뿐 본질적으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 결과만을 남긴 채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고 말 것이다.

    (2) 사회주의의 확장과 재구성

    사회주의 사상은 굳어진 화석이 아니라 늘 시대와 운동의 발전을 반영하여 확장되고 재구성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지금 우리는 20세기 후반부를 거치며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펼쳐진 여성, 생태, 소수자, 주체성 등에 관한 문제의식의 발전을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다음 구절에 담긴 문제의식에 기본적으로 공감한다.

    계급적 착취 철폐를 넘어 성평등과 생태주의의 실현, 차이가 차별과 배제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주의운동을 재구성해야 한다. 동시에 정치경제 변혁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화변혁(일상생활의 변혁)을 결합함으로써, ‘삶의 총체적 변화로서 사회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그런데 사회주의의 확장과 재구성은 사회주의의 혁명적 정수를 온전히 계승하는 전제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 만일 그 점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사회주의의 확장과 재구성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변질 또는 폐기를 낳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주의의 확장과 재구성을 말할 때, 동시에 여전히 계승해야 할 사회주의의 혁명적 정수가 무엇인가를 함께 명확히 해야 한다. 장혜경 동지는 이것을 “자본주의 계급모순 철폐와 노동자민중권력 수립”으로 요약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 몇 가지 쟁점을 놓고 명확하게 토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1. ‘21세기 사회주의’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의의를 온전히 인정하는가?

    만일 누군가 러시아 혁명의 경험만을 딸딸 외워 기계적으로 한국에 적용하려 한다면, 비참한 실패와 시대의 조롱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단지 러시아 혁명만이 아니라 그동안 세계 노동자계급 운동이 겪어 온 그 모든 경험으로부터 크고 작은 수많은 교훈들을 얻기 위해, 나아가 그러한 교훈들을 한국에 창조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중요한 문제는 그 수많은 교훈들을 얻어내고 적용하는 근본 관점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현실로 보여주었던 ‘노동자계급 자기해방으로서의 노동자권력’ 사상을 근본 관점으로 세우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이러저러한 수많은 경험으로부터 도출하는 교훈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 맞서 지금까지 수많은 ‘혁명’이 시도되었지만, 명실상부한 노동자권력을 수립해 낸 혁명은 1917년 러시아 혁명뿐이었다. 우리가 1917년 러시아 소비에트 혁명과 그 혁명을 이끌었던 볼셰비키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러시아 소비에트 혁명이 얼마 못 가서 스탈린주의 반혁명으로 무너졌다고 해서,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세계 노동자계급과 인류에게 던져 준 희망의 메시지마저 퇴색된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노동자계급 자기해방으로서의 노동자권력’, 다시 말하여 ‘광범한 노동자들이 혁명적으로 분출하는 노동자평의회(소비에트)를 근간으로 하고 여기에 사회주의 혁명정당(볼셰비키)의 지도력이 결합되는 노동자권력’을 수립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주의 혁명의 근본이라는 사상을 세계 노동자계급에게 남겼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서 장혜경 동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20세기 사회주의운동은 실패하였다. … 20세기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실험했던 공산주의운동 역시 소련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실패로 귀결되었다. 소련에서 혁명을 통해 수립된 노동자민중권력은 혁명의 진행과정에서 당/국가관료의 권력으로 변질되었다. 또한 당-노조 전달벨트론 등, 당이 대중을 계몽하고 지도한다는 무오류의 당관에 기초함으로써, 사민주의와 동일하게 대중주체의 사회주의 건설을 이뤄내지 못하면서, 결국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으로 귀결되었다.

    따라서 사회주의운동은 20세기 사회주의운동의 단순한 계승과 복원이 아니다.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의 성과(자본주의 계급모순 철폐와 노동자민중권력 수립)를 계승하면서도 그 오류와 한계를 극복한다는 의미에서 21세기 사회주의이다.

    그렇다면 장혜경 동지가 말하는 ‘21세기 사회주의’는 “당/국가관료의 권력”, “당-노조 전달벨트론”, “무오류의 당관” 등으로 나타난 스탈린주의가 1917년 러시아 혁명의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노동자계급 자기해방으로서의 노동자권력’이라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정신을 정면으로 배반한 반혁명이라고 생각하는가?

    다시 말해서 장혜경 동지가 말하는 ‘21세기 사회주의’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이 ‘광범한 노동자들이 혁명적으로 분출하는 노동자평의회를 근간으로 하고 여기에 사회주의 혁명정당의 지도력이 결합됨’으로써 ‘노동자계급 자기해방으로서의 노동자권력’을 현실로 보여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인지 아닌지, 나아가 이 점을 사회주의 혁명사상의 근본으로서 확고히 계승해야 한다고 보는 것인지 아닌지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은 ‘사회주의 혁명정당의 지도력’이 ‘자본주의 모순 철폐와 노동자권력 수립’에서 필수 요소라는 게 현실에서 입증되었다는 점이다. 20세기의 수많은 혁명 가운데 오로지 1917년 러시아 혁명만이 ‘노동자권력’을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은 볼셰비키와 같은 뛰어난 지도력을 갖춘 사회주의 혁명정당을 다른 나라에서는 만들어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사회주의 혁명정당을 갖지 못한 다른 나라 노동자계급은 러시아보다 유리한 조건에서도 여러 번 혁명적 기회를 놓쳐야 했다.)

    2.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는 노동자계급인가? 민중인가?

    장혜경 동지는 당면 혁명이 이러저러한 2단계 혁명이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당면 혁명의 성격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규정한 것에 적극 동의한다.

    현단계 변혁의 성격은 ‘반자본주의/사회주의 변혁’이다. 한국사회의 노동자민중은 한국 자본주의의 미달발이나 왜곡된 발달로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전일화와 지배력 강화로 고통 받고 있다. 전 세계적 차원의 민생파탄,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 대대적 환경 파괴, 전쟁위기, 경제위기는 모두 현대 자본주의 모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2단계 혁명론은 현재 모순을 낳는 원인을 치유할 수 없으며, 현 단계 변혁의 성격을 지체․왜곡시킬 뿐이다.

    그런데 장혜경 동지는 당면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가 ‘노동자계급’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중심이 된 민중’이라고 말한다.

    변혁의 주체는 ‘노동자계급이 중심이 된 민중’이다. … 노동자계급은 그 계급적 위치로 인해 반자본주의 변혁의 (잠재적)중심 계급이다. … 노동자 계급 내의 분할과 위계화를 볼 때, 현시기 노동자계급은 산업노동자를 비롯해 다양한 부문에 고용된 노동자 및 실업․반실업 상태에 있는 노동자를 포괄한다. … '민중'은 사실상 불안정노동층인 중소영세 자영업자, 대학을 통한 신분상승 기회가 박탈된 (예비노동자/실업노동자층인) 학생층, 신자유주의 농업파괴로 몰락위기에 처해있는 중소농민층이다. 반(비)자본주의적 지향을 갖고 자본과 국가권력에 맞서 저항운동과 대안운동에 참여/지지하는 층 역시 민중에 포괄될 수 있다.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를 ‘노동자계급’으로 보는가, 아니면 ‘노동자계급이 중심이 된 민중’으로 보는가에 담긴 차이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노동자계급 아닌 민중’의 존재조건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주도하는 또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 발전을 끊임없이 추구하게 만든다. (농민들은 자기가 가진 작은 땅뙈기를, 즉 사유재산을 지키고 또 키우려 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보수성과 반동성을 갖고 있다. 중소영세 자영업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기 존재조건을 의식적으로 철저하게 부정하지 않는 한, 지금 자본주의를 이끄는 대자본가들에 맞서 싸울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를 철폐하려는 노동자계급에도 맞서 싸우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는 ‘민중’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노동자계급 아닌 민중’이 사회주의 혁명에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경우는 단 한가지다. 그들이 자기 존재조건을 의식적으로 철저하게 부정하면서 노동자계급의 입장을 일관되게 받아들이는 경우, 다시 말하여 노동자권력과 노동자혁명을 지지하며 노동자계급의 편으로 넘어오는 경우뿐이다.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를 ‘노동자계급’이 아닌 ‘민중’으로 보는 관점은, ‘자본주의 철폐’라는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와 ‘다른 방식의 자본주의 발전’이라는 ‘노동자계급 아닌 민중’의 이해관계가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계급투쟁의 최정점에서 공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며, 따라서 사회주의 혁명의 근본이 ‘노동자계급 자기해방’에 있음을 실제로는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그동안 중국, 북한, 베트남, 동유럽, 쿠바 등 여러 나라에서 노동자권력의 수립 없이 ‘사회주의’를 건설했다고 주장한 여러 ‘혁명’들이 공통으로 가진 본질이었다.

    이들 ‘혁명’은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이 혁명의 주체라고 스스로 말했지만, 실제 권력은 ‘노동자계급 아닌 민중’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자들의 손아귀에 있었으며, 노동자계급은 그들의 힘과 이해관계에 밀려 노동자평의회 건설과 같이 노동자권력 수립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를 방해받거나 억압받았으며 심지어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이들 ‘혁명’이 만들어 낸 사회는 한동안 위장된 원시적 축적과정을 거친 후 하나같이 본격적인 자본주의 발전의 길로 나아갔거나 나아가고 있다. 이들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은 한동안 ‘사회의 주인’이라는 달콤한 찬사를 받고 고용보장과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었지만, 본격적인 자본주의 발전이 시작된 후에는 그들 또한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존재일 뿐이라는 점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자본주의를 철폐할 유일한 주체인 노동자계급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또는 드러내놓고 억압했던 이들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은커녕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혁명도 아니었으며, 사회 전체를 또 다른 억압질서, 또 다른 자본주의 사회로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이들 ‘혁명’은 대부분 노동자계급보다 농민이 훨씬 다수를 차지했던 조건에서 펼쳐졌고, 따라서 노동자계급이 이미 민중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지금 한국의 조건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계급’ 대신 ‘민중’을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로 놓는 문제의 심각성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계급’ 대신 ‘민중’이 주체가 되는 ‘혁명’에서 노동자계급 자기해방의 수단이자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결정적 무기라고 할 노동자평의회가 온전히 뻗어나갈 수는 없으며, 노동자평의회를 근간으로 하는 노동자권력이 실제로 수립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장혜경 동지가 말하는 ‘21세기 사회주의’에 다시 질문을 던진다. 이들 ‘혁명’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의 마오주의 혁명을 ‘21세기 사회주의’는 어떻게 보는가? ‘소부르주아 좌익이 이끈 (또 하나의) 부르주아 혁명’인가? 아니면 “자본주의 계급모순 철폐와 노동자민중권력 수립”인가?

    (이른바 ‘반세계화’ 운동에는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노동자계급도 참여했지만, 자본주의 세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점점 더 몰락해가는 소부르주아 자영업자나 중소 농민들도 참여했다. 이런 자영업자나 중소 농민들이 드러내는 ‘반(비)자본주의적 지향’은 반드시 ‘사회주의’를 뜻하는 게 아니다. ‘반(비)자본주의’에는 ‘사회주의’도 있지만 ‘소생산이 지배적이었던 전(前)자본주의, 가령 봉건제’도 있다. 수많은 소부르주아 운동가들은 자본주의에 강한 염증을 느끼지만, 노동자계급처럼 사회주의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자본주의 이전 사회’를 동경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따라서 “반(비)자본주의적 지향을 갖고 자본과 국가권력에 맞서 저항운동과 대안운동에 참여/지지하는 층”을 민중에 포괄하고 그들을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로 바라보는 것은, 과거로 회귀하려는 ‘소부르주아 운동’조차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라고 보는 것이다.)

    3. 노동자권력은 의회주의 노선이 아니라 노동자평의회를 통해서만 수립할 수 있다!

    장혜경 동지는 노동자계급의 국가권력 장악이 의회주의 노선으로는 실현될 수 없다고 기본적으로 말한다. 동의한다. (다만 세계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투쟁 경험들을 담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노동자평의회’(Workers' Council)라는 명확한 개념 대신 ‘대체권력’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쓰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변혁으로 나가기 위한 핵심 고리는 노동자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존의 부르주아국가권력을 인수해서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 투쟁 과정에서 등장하는 노동자민중의 투쟁기관/자치기관인 '대체권력'이 부르주아 국가권력을 대체하고 새로운 '노동자민중권력'을 세우는 것이다(‘아래로부터의 대중주체의 변혁’).

    변혁의 구체적 경로가 어떻게 이뤄지든, ‘선거(의회)를 통한 변혁은 가능하다’는 의회주의 변혁전략은 불가능하며,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주체화와 자기권력화만이 반자본주의․사회주의변혁을 이뤄낼 수 있다.

    그런데 장혜경 동지의 입장은 의회주의 노선에 대한 태도가 일관되게 펼쳐지지 않는다. 이를테면 다음 두 구절은 서로 명백하게 충돌한다.

    노동자(진보)정당이 의회를 통해 집권해서, 부르주아 국가 장치를 사회주의를 위해 활용할 수 있다는 ‘의회주의 전략’(국가중립론, 국가활용론)은 변혁노선이 될 수 없다.

    노동자민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정당연합/정당·전선체연합)이 선거를 통해 집권하는 것이 계기가 되어 노동자민중의 투쟁력·자기권력화가 강화되면서 변혁이 시작될 수도 있다. … 집권 사회주의 정부가 노동자민중의 자기권력화를 지원했을 때만 선거를 통한 집권은 노동자민중권력 수립의 촉매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 그 정부는 반혁명의 공세로 붕괴하거나 아래로부터의 노동자민중의 자기권력화와 대립하게 되면서 변혁의 좌절을 가져올 것이다.

    만일 “집권 사회주의 정부가 노동자민중의 자기권력화를 지원”할 수 있다면, 그 정부는 어떤 수단을 갖고 그렇게 할 것인가? 자본가권력 위에 얹혀 있는 집권 사회주의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힘이란 결국 ‘부르주아 국가장치’ 아닌가? 만일 집권 사회주의 정부가 부르주아 국가장치를 동원하여 “노동자민중의 자기권력화를 지원”할 수 있다면, 이는 “부르주아 국가장치를 사회주의를 위해 활용할 수 있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물론 노동자권력 수립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노동자정부가 등장하는 국면을 거칠 개연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노동자평의회와 자본가권력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이중권력 상태에서 노동자평의회의 힘을 바탕으로 노동자정부가 등장할 개연성은 있다. 이런 노동자정부라면 노동자권력 수립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때 노동자정부의 역할은 부르주아 국가장치를 동원하여 노동자평의회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노동자정부는, 부르주아 국가장치를 분쇄함으로써 이중권력 상태를 해소하려는 노동자평의회의 투쟁에서 상징적인 한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집권 사회주의 정부가 노동자민중의 자기권력화를 지원”할 수 있다는 가정은 ‘21세기 사회주의’를 내건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혁명’에 대한 평가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미국에 맞장 뜨는” 차베스, “빈곤을 퇴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빈민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차베스는 꽤 그럴싸해 보인다. 쿠바에 석유를 주는 대신 의사들을 지원받아 빈민 지역에 투입하는 프로그램은 신자유주의 정책과는 확실히 다르다. 빈민들 속에서 아래로부터 자주적인 운동을 만들어 내려고 헌신적으로 분투하는 베네수엘라의 기층 활동가들에게서는 배울 점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베네수엘라가 지금 사회주의를 향해 가고 있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차베스 정부는 부르주아 국가관료들이 득실거리는 부르주아 국가장치 위에 서 있으며, 집권 10년이 지나도록 자본가들의 소유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어떤 실질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차베스 정부는 자신들이 “노동자민중의 자기권력화를 지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부르주아 국가장치를 동원해서 “노동자민중의 자기권력화를 지원”한 결과, 차베스 정부 집권 10년이 지나도록 ‘베네수엘라 노동자민중의 자기권력화’는 부르주아 국가장치를 위협할 만한 수준으로 전혀 성장하지 못한 채 단지 차베스주의를 선전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특히 노동자 자주관리 운동처럼 노동자평의회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운동은 부르주아 국가장치에 의해 체계적으로 억압받거나 심지어 탄압받고 있고, 그래서 몇 년이 지나도록 매우 작은 규모와 기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노동자 자주관리 운동에 앞장섰던 일부 활동가들이 차베스의 연임 개헌 시도를 사회주의 정신에 입각해 반대하고 나섰다가 차베스주의자들에게 우파로 몰리며 극심한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도,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혁명도 아니다. 또한 차베스주의자들이 내건 ‘21세기 사회주의’는 진짜 사회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변형된 또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 발전전략일 뿐이다.

    (차베스 정부는 일종의 ‘보나파르트 체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차베스 정부는 베네수엘라 자본가계급이 더 이상 안정적인 지배권을 발휘할 수 없는 반면, 노동자계급이 즉각 권력 장악에 나설 수 있을 만큼 준비되지 않은 국면에서, 잠시 거품처럼 솟아오른 소부르주아 정권이다.

    차베스 정부는 한편으로 대자본가에 맞서면서 그들의 이익을 부분적으로 잠식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계급에 맞서면서 노동자권력 수립과 사회주의로의 전진을 봉쇄한다. 노동자계급에게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진하는 대신 소부르주아가 잠시 관리하는 자본가권력에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차베스 정부의 역할은 자본가권력과 자본주의 체제를 어느 정도 수정하고 노동자계급에게 어느 정도 양보하면서, 잠시 동안 자본가 권력과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관리하고 지켜내는 것이다.

    그러나 보나파르트 체제는 오래가지 못한다. 이 체제는 베네수엘라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사라지면, 자본가계급에게 전복되거나 아니면 스스로 자본주의 발전의 주인공으로 노골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다. 어떤 경우든 베네수엘라 노동자계급이 차베스 정부를 지지하고 이 정부의 향배에 자기 운명을 의탁하게 된다면, 그래서 노동자권력을 향한 자기 운동과 혁명적 조직 창출 나아가 자본가권력에 맞선 투쟁을 소홀히 하게 된다면, 그들은 혁명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진압당하고 말 것이다.)

    4. 노동자평의회를 준비해 가기 위해 사회주의자들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노동자평의회는 자본가권력 아래서 점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혁명적 정세를 열어젖히며 일거에 등장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당장 노동자평의회를 건설할 수 없다고 해서, 지금 우리의 실천과 노동자평의회가 무관한 것일 수는 없다. 오히려 지금 우리의 실천은 혁명적 정세가 올 때 노동자평의회가 힘차게 솟구칠 수 있도록 그 잠재력을 노동자계급 속에 축적해 나가는 것에 정확히 맞춰져야 할 것이다.

    장혜경 동지 또한 이 점에서 비슷한 것 같다. 노동자평의회를 준비해 가기 위해 지금 우리의 모든 실천이 노동자들의 “정치적 주체역량의 강화/성장”에 이바지하게 해야 한다는 장혜경 동지의 문제의식에 기본적으로 공감한다.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주체화와 자기권력화는 변혁시기에 급작스럽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시기에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주체화와 자기권력화를 위한 활동과 투쟁이 끊임없이 시도되고 전개되었을 때, 경제-사회-정치(국가)를 아우르는 총체적인 저항의 진지를 구축하는 활동이 이뤄졌을 때, 가능하다

    대체권력의 구체상은 미리 고안되거나 계획될 수 없다. 변혁의 시기에 노동자민중의 직접적 투쟁과 창발성에 근거해 만들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변혁의 시기에 대체권력이 형성될 수 있도록, 노동자민중권력이 수립되었을 때 이것이 무력화되지 않도록, 우리의 모든 실천을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주체역량의 강화/성장에 이바지하도록 활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정치적 주체역량의 강화/성장”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다시 말해서 ‘권력의지에 입각한 노동자계급의 전면적 단결’이라 할 노동자평의회를 준비해 가기 위해, 지금 사회주의자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노동자들의 권력의지는, 한편으로 자본가들의 경제적·정치적·사회적 권력이 갖는 부당성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통해서,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들의 단결된 투쟁의 힘이 자본가들의 힘을 넘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통해서 형성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그러한 인식과 자신감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한편으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막히지 않고 자본주의 현실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계급적 시야를 형성하고 강화해 나가는 것을 통해서,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으로 자본가들의 경제적·정치적·사회적 권력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투쟁들을 시도하고 강화해 나가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평의회를 준비해 가기 위해 지금 사회주의자들이 할 일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선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구체적인 사실들을 통해서 자본가들이 누리는 권력의 부당성과 자본주의 현실의 모순을 생생하게 폭로하는 포괄적인 사회주의 정치선동을 현장/지역/전국 수준에서 대담하게 조직해 나가는 것이다.

    또한 생산통제를 둘러싼 현장투쟁이나 자본의 지불능력과 상관없이 전면적인 고용보장과 생활임금을 요구하는 투쟁 그리고 기업의 회계장부 공개와 대자본의 잉여금 몰수를 요구하는 투쟁처럼, ‘노동자통제’의 정신으로 공세적 요구를 내걸고 현장/지역/산업/전국 수준에서 계급단결을 실현하는 노동자투쟁을 앞장서 조직하고 이끄는 것이다.

    나아가 자본가들만을 위해 정책을 펴고 노동자들에게는 탄압만 퍼붓는 자본가정부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를 조직하면서 이것을 노동자정부/노동자권력 수립에 대한 열망으로 연결시켜 내는 노동자 정치투쟁을 현장/지역/전국 수준에서 앞장서 조직하고 이끄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주의자들의 노력이 펼쳐져야 할 기초 공간은 당연히 현장이다. 단위 현장에서 구축된 성과를 바탕으로 해야만 그 힘이 지역/전국 수준으로 결집되고 뻗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사회주의자들의 조직과 활동이 노동조합이나 현장조직으로 해소되지 않는 독자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이나 현장조직 속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하며 활동해야 한다. 그러나 독자적인 사회주의 현장분회와 (사회주의 현장신문을 비롯한) 사회주의 현장활동이 없다면,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은 노동조합이나 현장조직이 갖고 있는 현재적 한계에 고스란히 갇힐 수밖에 없게 된다. 반대로 독자적인 사회주의 현장분회와 사회주의 현장활동이라는 무기를 움켜쥔다면,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이나 현장조직이 관료화·보수화로 치닫지 않고 전투적·계급적·정치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최대한 이끌 수 있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평의회를 계급투쟁 속에서 준비한다”는 관점에서 현장활동을 접근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자신의 활동을 노동조합운동에 가두지 않으면서, 특히 노동조합 상층체계 장악에 맞추지 않으면서, 혁명강령과 당면 투쟁을 연결시키는 ‘대중행동강령’을 적극 활용하며 노동조합운동에 개입해 들어가야 한다. 만약 노동조합이 계급적 관점을 배신하고 양보와 협조주의로 빨려 들어간다면, 언제든지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전면 비판하고 ‘비대위’와 같이 아래로부터 노동자 민주주의에 입각하는 새로운 현장투쟁기구를 세워냄으로써 ‘노동자 평의회’로 이어질 예비 경험들을 시도하고 축적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불철저하고 타협적이며 수시로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는 노동조합 관료들과 명확히 단절되어 움직이는 사회주의 현장분회와 사회주의 현장활동이 독자적으로 존재해야만 실현할 수 있다. 그래야 ‘노동조합’과 ‘노동자평의회’의 차이를 잊지 않은 채로, 다시 말해서 노동자평의회와 사회주의 혁명의 정신으로 노동조합운동에 능동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만약 이런 필수적 작업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노동조합운동 개입은 노동자평의회(대체권력) 창출을 준비하는 혁명적 작업이 아니라 조합주의 운동의 좌파 지도자들을 지지·지원하고 그것에 의탁하며 종속되는 개량적이고 조합주의적인 작업으로 변질되고 말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사활적으로 중요한가는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가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회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수많은 지식인 활동가들, 그리고 그들과 결합해 사회주의 사상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 수많은 노동자출신 활동가들이 처음에는 현장을 사회주의 요새로 세워 내리라는 드높은 결의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활동은 오랫동안 노동조합과 현장조직 수준에 머물렀다.

    사회주의자들이 정치적 조직적 독자성을 견결히 지키면서 노동조합과 현장조직 활동을 펼칠 경우 노동조합과 현장조직은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획득하고 계급적으로 단결해서 투쟁하는 ‘사회주의의 학교’로 발전할 수도 있다. 그 경우 사회주의자들은 가장 의식적이고 가장 전투적인 노동자계급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이 정치적 조직적 독자성을 사수하지 못하고 노동조합이나 현장조직 활동에만 머무르게 되면, 현장을 온통 휘감고 있는 거대한 조합주의 압력에 제대로 저항도 못해보고 차츰 한 발 한 발 조합주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래서 노동조합이나 현장조직은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들과 유기적으로 만나고 그들을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로 단련시키는 계급투쟁의 공간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주의자들을 단순한 노동조합 관료로, 더 나아가서는 노동자계급의 배신자로 전락시키는 ‘정치적 무덤’으로 전락한다.

    이런 끔찍한 비극이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얼마나 되풀이되어 왔는가!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장 사회주의자들이 정치적 조직적 독자성을 반드시 사수해야 하며, 그 구체적 형태로서 사회주의 현장분회와 (사회주의 현장신문을 비롯한) 사회주의 현장활동에 대해 정말 치열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모색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노동자평의회를 준비해 가기 위해 지금 사회주의자들이 할 일은 특별히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는 사회주의자들의 당면 과제들을 헌신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현장분회를 건설하고 사회주의 현장활동을 펼치면서 현장에서 계급투쟁을 선도적으로 조직해 나가는 것, 당면 요구를 가장 공세적으로 집약한 대중행동강령을 내걸고 계급단결을 실현하는 노동자투쟁을 선도적으로 조직해 나가는 것, 개량주의 노동자당이나 반자본주의 좌파연합당이 아닌 사회주의 혁명정당을 세워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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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 혁명당을 건설하자  1호_역사유물론, 자본주의 쇠퇴론 그리고 공산주의 혁명 08·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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