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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당을 건설하자 : 3호_당건설토론3차 : 강령
 정책위  | 2009·07·27 01:09 | HIT : 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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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노련에서 발행한 <사회주의자> 3호에 실린 글입니다.)

    [당건설전국토론] 제3차

    사회주의노동자연합과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준비모임 그리고 무소속 활동가들은 지난 2월 초부터 ‘사회주의 당 건설운동 전면화를 위한 전국공동토론회’를 수도권, 영남권, 호남권, 중부권을 순회하며 열고 있다. 이 ‘당건설전국토론’에 우리가 제출한 글들을 자료로 싣는다. 다음은 제3차 토론 ‘강령’에 관련된 자료다.


    <제3차 토론 발제문 : 최영익>

    강령

    1. 강령의 의의

    1) 당건설의 사상적 토대와 기준을 만드는 데서 강령은 필수적이다

    ○ 당 활동의 본질적 지점에서 사상적 통일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부분적인 문제들에 대한 당원들 사이의 부분적 의견차이에도 불구하고, 통일되어 있는 당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당의 성격, 목적과 임무에 관한 기본적 견해가 굳건하게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정치에서는 1+1이 반드시 2인 것이 아니다. 기본 견해가 불일치하여 충돌하는 이질적 경향의 결합은 당 혹은 당 건설투쟁을 마비시켜 1 이하로 추락시킬 수 있다.

    ○ 강령적 논쟁은 개인적, 서클적 경쟁 혹은 무원칙한 절충이 아니라 당의 기본 지점에서 일치단결을 끌어내기 위한, 그리고 공동의 당을 건설할 수 있는지를 둘러싸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책임성 있는 논쟁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이다. 레닌의 말처럼, “어떤 차이점들이 ‘객관적으로 실제로’ 존재하는가? 만약 존재한다면, 그 차이들이 ‘본질적 차이인가 부분적 지점에서의 차이’인가? 또한 이 차이점이 ‘하나의 당 대열 내에서 실천투쟁을 전개할 때 심각한 방해가 되는가?’”를 분명히 하는 유익한 논쟁을 위해서는 강령을 둘러싼 논쟁이 필요하다.

    ○ 강령은 당 혹은 당 건설투쟁에서 선전, 선동을 비롯한 정치적 활동의 개요를 명확하게 안내한다. 강령은 선전, 선동 사업에 일관성과 통일성을 부여한다. 또한 강령의 도움으로, 우리는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선동을 사회주의적 요구들을 향한 목적의식적 선동의 지위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2) 현재의 남한 혁명운동의 과제를 볼 때, 강령 논의는 더욱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a. 구 동구 몰락 이후, 약 17년간 진행된 사상적 모색을 강령 논의로 집약시켜야 한다.

    ○ 이른바 현실사회주의로 일컬어졌던 구 동구권의 몰락은 당시에 사회주의를 지향하던 혁명적 그룹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미쳤다. 한편으로 이것은 80년대 혁명서클들이 견지했던 노선과 강령을 파산시켰다. 혁명적 지향성 및 맑스-레닌주의의 권위가 심각하게 파괴되고 도전받았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80년대 혁명서클들이 받아들였던 왜곡된 맑스-레닌주의, 마찬가지로 왜곡된 사회주의에 대해 문제의식을 던져주었다. 이것을 통해 스탈린주의적 왜곡을 뚫고 혁명적 사회주의의 근본 노선과 원리를 제대로 수립해낼 수 있는 기회 및 문제의식을 제공받았다.

       80년대의 다수 혁명서클들은 전자의 부정적 충격만을 반영했다. 그들은 맑스-레닌주의, 혁명적 사회주의를 폐기하고 개량주의로 퇴보했다. 기껏해야 사회민주주의를 사회주의로 포장했을 뿐이었다. 이들은 청산주의자 진영을 형성했다. 반면 소수의 혁명서클들이나 혁명적 인자들은 후자의 기회를 붙잡으려 분투했다. 이들은 청산주의에 맞서 투쟁함과 나란히 스탈린주의적 왜곡을 극복하면서 혁명적 사회주의의 참된 전통을 되살리고 이것을 노선적으로 분명히 하려 분투했다.

       한편으론 후자의 혁명적 경향이 17년 이상 발전시켜 온 사상적 성과들 덕분에, 다른 한편으론 민주노조운동의 위기, 그리고 최근 터져 나온 경제위기의 충격이 자본주의와 개량주의, 조합주의를 넘어서는 혁명적 운동의 필요성을 열 배 이상 강력하게 요청한 덕분에, 이제 남한에서는 혁명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세력들이 그간의 사상적 모색을 ‘강령’적 형태로 집약시켜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고, 또한 절박한 과제로 요청받고 있다.

    b. 실천적 경험과 성과의 집약

    ○ 강령은 단순한 이론적 성과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강령은 “혁명적 투사들의 실천 경험의 혁명적 요약”이어야 한다. 다행히도 남한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세력들은 더 이상 실천경험이 일천한 선전서클들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 10~15년 이상의 풍부한 실천 경험을 갖춘 조직들이다.

       이러한 실천적 유산들은 물론 모두 긍정적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부끄러운 심지어는 혁명가들과 선진노동자들 앞에 과오를 솔직히 고백해야 하는 비참한 유산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풍부하고도 공개적인 논쟁을 통해 각 서클의 실천이 ‘객관적’으로 평가되고 정리되는 필수적인 과정을 결코 통과하지 않았기에, 그리고 각 서클이 놓여 있는 편협한 기반과 이 제한된 기반을 반영하는 마찬가지로 편협한 감각이 지배해왔기에, 각 서클들 사이에는 상호 몰이해, 심지어는 ‘반응없는 메아리’에 가까운 자의적인 비판과 자기합리화에 갇히는 문제까지 발생했다.

    ○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실천경험의 축적은 강령논의를 순수 이론적 수준의 논의가 아니라 실천적 차원에서 정돈하고, ‘진정한 차이와 부분적 차이’를 “실천적 혁명가의 눈”으로 구분하면서 (비록 그 결과가 당장에는 공동의 당 건설추진을 불가능케 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발전적으로 논쟁할 수 있는 풍부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에 따라 순수 이론가들의 끝모를 순수 논쟁, 논쟁을 위한 논쟁이 아니라 실천 활동가들의 진지하고 책임성 있는 논쟁이 가능할 수 있는 기반이 상당히 열려 있다. ‘강령’을 중심으로 하는 논쟁은 이러한 기회와 기반을 극대화하면서도, 과거의 부정적인 서클적 유산들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다. 특히 과거의 이러저러한 실천에 대한 비판적 평가들이 상대를 짓밟고 제압하는 경쟁의 수단이 아니라 ‘미래의 통일적 실천을 위해 과거를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교훈을 추출하는’ 생산적이고 협력적인 수단으로 작용하도록 지원할 것이다. ‘강령 논쟁’이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실천의 방향을 둘러싼 논쟁이자, 과거 실천에 대한 지엽적인 평가가 아니라 미래의 당적 실천을 위한 총체적이고 교훈적인 평가란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이에 덧붙여 약 150여년에 걸친 세계적인 혁명투쟁의 실천 경험이 우리에게는 있다. 물론 남한에서는 다른 자본주의 나라들과 달리 스탈린주의적 유산을 극복하는 작업이 수십 년 이상 늦게 시작된 약점 때문에, 1917년 이후의 혁명적 실천에 대한 흡수 및 이것으로부터 혁명강령을 발전시키는 것이 상당히 뒤처진 측면이 있다. 그러나 스탈린주의적 왜곡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80년대 민중주의 운동이 한계를 드러내거나 파산하면서, 이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약 15년 이상 진행되어왔다. 여기에 한국 혁명가들의 실천 경험이 접목되면서, 이제 1917년 이후의 혁명투쟁의 경험을 포함하는 진정한 “혁명강령” 논의가 가능한 기초가 열렸다. 한국에서 당면의 ‘강령적 논의’는 세계노동자 혁명운동의 150여년의 실천경험을 소화하여 혁명의 방향타를 마련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c. 당건설 투쟁에서 함께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나누는 기준을 세울 필요성

    ○ 남한 혁명운동의 취약성 중 하나는 새로운 세대의 젊은 혁명가 층을 충분히 육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능력있고 정치적으로 역동적인 젊은 혁명가 층의 형성은 끊임없는 정치적 논쟁과 진지한 토론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과거의 논쟁은 이러한 방향에서 이뤄지지 못했다. 논쟁은 운동의 근본적 지점을 둘러싼 명쾌하고도 압축적인 논쟁이 되지 못했다. 그 대신 각 서클의 눈에 의해 일방적으로 재단된 허구적 쟁점과 실천적 감각의 차이를 극대화한 지엽적 논쟁이 횡행했다. 심지어는 의미있고 중차대한 소중한 쟁점들조차도 진지하고도 치열한 정치적 논의로 상승하지 못해왔다.

    ○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강령’이란 집약적 논쟁 틀을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이것을 중심으로 정치적인 논쟁을 펼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어느 서클에 소속되어 있느냐와 무관하게 모든 혁명적 동지들이 객관적 시각으로 ‘공동의 논쟁과 토론’에 임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서클의 경계를 뛰어넘는 ‘정치적 지도자의 시야’를 획득하도록 도와야 한다. 논쟁점과 차이점이 서클 지도자들의 일방적인 규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혁명운동의 근본 지점을 둘러싼 객관적인 차이를 둘러싸고 전체 혁명가들 사이에서 공론화되어야 한다.

       이런 작업들은 당건설 투쟁에서 함께 하느냐의 여부가 서클 지도자들 몇몇의 감정이나 심리상태, 주관적 판단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모든 서클 성원들, 나아가서 아직 소속이 없지만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에 헌신할 각오가 되어 있는 선진투사들의 “객관적인 정치적 판단과 (서클 차원의 책임성을 뛰어넘는) 정치적 책임성”에 의해 결정되도록 도울 것이다. 그리하여 함께 해야 마땅한 세력들이라면 마땅히 함께 하도록 강제하고, 반면 함께 할 수 없는 세력들이라면 마땅히 독립적인 정치활동을 승인하는 깔끔한 정치적 정리가 이뤄질 것이다. 후자의 경우일지라도, 이런 식의 구별정립은 이후 실천을 통해 상호검증하고 정치적으로 평가하면서 ‘올바른 방향’에서 정치적으로 정리됨으로써 통일될 수 있는 진정한 길을 열어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도, 혁명적 강령의 승리와 우유부단하고 불철저한 강령의 확실한 패배의 길을 열어줌으로써 혁명적 투사들이 정확하게 지지하고 힘을 결집해야 할 정치세력이 누구인지를 보여줄 것이다. 모든 경우에, 이것들은 우리의 혁명운동에 “힘찬 전진”을 보증할 것이다.

    d. 당건설을 위한 선전 선동 정치활동의 기준선을 건설할 필요성

    ○ 노동자계급 선진투사들의 극히 제한된 일부만을 결합시키고 있는 현재의 한국 혁명서클들의 상태를 고려할 때, 수천의 선진노동자 투사들을 결집한 명실상부한 혁명적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은 당분간 미래의 과제에 놓여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미래의 과제’라는 것을 당장 두 손을 놓고 기다리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을 가능케 하는 당면 실천 활동의 윤곽을 확정하고 여기에 힘을 집중함으로써 ‘미래의 과제’를 하루빨리 ‘현재의 과제’로 능동적으로 앞당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혁명강령” 논의를 통해 “통일적 혁명강령의 기초”를 다지는 작업과 나란히 ‘혁명강령’을 노동자계급의 광범위한 부위, 최소한 광범위한 선진부위에 보편화시키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사회주의 정치선동”이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사회주의 정치선동을 통해 얻어지는 성과는 혁명강령 논의에 에너지와 사명감을 불어넣음으로써 강령논의를 풍성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 그런데 사회주의 정치선동(그리고 사회주의 선전과 사회주의 교육)이 그 이름에 걸맞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이 정치선동을 이끌 가이드라인을 확정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가이드라인이 없는 채로 진행되는 정치선동이라면 사회주의적 집중점과 방향성을 상실하면서, 대부분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선동에 머물러 결국 일반 민주주의 수준으로 추락하거나 조합주의 쟁점에 갇혀 버릴 것이다. 사회주의로 향하는 결정적 학교가 될 수 있는 소중한 노동자투쟁의 성과들도 유실되고 말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강령에 의해 인도되는 사회주의 정치선동의 전면화만이 그러한 불행한 처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그런데 혁명적 사회주의의 기본 견해들을 정식화하고 있고, 우리가 당면한 정치적 임무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명확히 하고 있는 강령만이 선동사업에 통일성과 목적의식성을 불어넣을 수 있다. 또한 모든 곳에서, 다양한 쟁점을 가지고 이뤄지는 우리의 선동이 혁명적 사회주의 요구를 향한 총체적인 선동의 지위로 집약될 수 있다. 그래서 당 건설을 위해 투쟁하고 헌신하고자 하는 모든 동지들이 자신의 선전 선동 사업을 비롯한 모든 정치적 사업들이 진정 혁명정당 건설을 향해 복무하고 있는지를 매일 확인하고 점검할 수 있는 ‘전투교본’이 마련될 것이다.

       이러한 통일적인 선동 작업은 그 어떤 수단보다도 강력하게 당 창건 정치투쟁을 확산하고 그 통일성을 실질적으로 극대화할 것이다. 그리고 당 창건 투쟁을 자임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노동운동 속에서 당의 초석을 놓도록 모든 투사들을 강제하고 감독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업은 ‘노동자계급의 심장부’에서, 그리고 ‘당 건설의 향배를 결정할 선진노동자 투사들 속에서’ 진행하는 정치사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조합주의적 선동과 쟁점에 갇히거나 노동조합 서기 수준으로 추락해버리면서 사실상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의 조직자의 지위에서 투쟁하기를 겁내거나 포기하는 모든 경향을 극복해 나가는 진지가 ‘강령에 기초한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통해 마련될 것이다.

    ○ 다음으로 노동계급 속의 당면 정치활동의 총체로서 강령이라면, ‘대중행동강령’의 작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혁명적 최대 강령”과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토대를 놓는 당면의 “최소 강령” 사이의 구분은 1914년 이전의 상승기의 자본주의 하에서나 가능했다. 1914년 자본주의의 전 세계적 위기와 이에 동반한 제국주의 전쟁 이후 자본주의는 명백히 “반동적, 쇠퇴기의 자본주의”로 추락했다.

       경기의 국지적 변동리듬에 따라, 그리고 세계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지위에 따라 약간의 부침은 있지만, 1914년 이후 전체로서 볼 때 세계자본주의 체제는 노동자계급을 위한 의미있는 개량을 제공할 수 있을 만한 지위를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혁명적 최대 강령’ 실현을 위한 “주체적 토대”를 준비해나간다는 ‘최소 강령’의 정신은 교조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 그 정신은 그대로 계승하되, ‘쇠퇴기의 자본주의’에 걸맞게 창조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순수하게 혁명적인 최대 강령과는 구분되지만, 당면의 부분적 투쟁과 최대 강령 사이의 다리를 놓는 “대중행동강령”(정확히는 준비기와 혁명기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이행을 촉진하는 “이행강령”)이 쇠퇴기 자본주의에 대두된다. 이 이행강령은 “부분적 요구 투쟁을 혁명적 투쟁으로 발돋움시키는 다리”일 뿐만 아니라 당장 직접 대중적 반향을 일으킬 수 없는 최대 강령을 부분적 투쟁을 매개로 대중화시킴으로써 혁명강령을 노동자계급의 광범위한 선진부위에 보급하는, “혁명강령으로 이어지는 다리”다.

    ○ 강령 논의를 “이행 강령” 논의로까지 확장하고, 이것을 당장의 대중투쟁의 요구이자 선전 선동의 축으로 세움으로써 한국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강령을 당면 정치활동의 기준선으로 ‘구체적’으로 발돋움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천을 매개로 ‘이행 강령’을 수정 보완 발전시키고, 이 실천의 결과물을 바탕으로 ‘혁명강령’에 대한 지지로 넘어오는 대중 풀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강령 논의와 실천 활동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면서 당 창건의 기초를 형성해나가야 한다.

    3) 강령 논의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 강령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활동과 정치적 논쟁이 실종된 것은 한국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전진을 가로막는 족쇄 중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 물론 이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제출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강령 논의’란 “당건설과 연동”해서 진행할 때만 의미가 있기에 당분간 ‘강령적 형식’의 논쟁이나 ‘강령 제출’을 미뤄두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물론 명실상부한 당 강령을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그러한 당 강령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작업으로서의 강령적 방식의 정치적 토론과 논쟁은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그 점에서 강령적 방식의 정치적 논의는 유효하며, 오히려 이제까지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약점은 ‘강령 논의’의 결핍에 의해 ‘정치적 토론’이 집약되지 못하고 사실상 좌초했다는 점에 있다. 최소한 지금부터라도 각각의 사회주의 그룹들이 자신의 강령을 작성하고 이것을 공개하며, 이 강령을 중심으로 상호 논쟁과 토론을 벌이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과거를 불문하고, 만약 지금이 당 건설 투쟁을 전면화해야 할 단계임을 승인한다면, 모든 정치그룹들에게 “강령을 작성하고 공개하라! 강령을 중심으로 분명하게 논쟁하라!”는 정치적 의무가 되어야 한다. 이 의무를 강제하는 것만으로도 한국 사회주의 운동에서 거대한 일보 전진이 이룩될 것이다.

    ○ 다음으로 “지금 한국 사회주의 운동이 머물러 있는 낮은 발전 수준에서 강령작성이나 강령적 논쟁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좋게 말해서 완벽주의인데, 사실상 “정치적 수동성과 기권주의”를 표현하는 것이다. 완성된 완벽한 강령은 사실 존재할 수 없다. 강령은 혁명적 노동자계급의 실천의 역사적 응축인데, 이 실천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전한 승리의 그날까지 지속적으로 보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바로 그 점 때문에 강령은 필요하다. 강령이 존재함으로써, 그래서 이 강령이 갖는 약점과 한계가 드러남으로써 혁명세력, 혁명당은 자신의 실천경험으로부터 획득한 교훈을 부단히 정치적으로 일반화하고, 혁명적 실천의 기준선으로 규칙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강령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도 바로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이다. 전 세계 노동자들의 혁명적 실천 경험을 통해 기존 혁명운동의 약점과 한계가 정확히 드러나는 것은 노동자 혁명운동의 법칙이며, 이 법칙을 정치적으로 반영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은 완전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해나간다. 강령은 이 법칙을 정치적으로 집약시킨 틀이어야 한다. 만약 이상의 점들을 승인한다면 ‘강령 작성과 강령 토론’을 어떤 정치그룹이든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 다행히도 90년대의 ‘점검과 모색기’는 어떤 식으로든 지나갔다. 1920년대 이후 세계 혁명운동의 역사에 대한 점검과 그 경험의 이론화에서 한국 혁명가들은 한참 뒤처져왔다. 그러나 이런 뒤처짐은 1990년대를 거치면서 상당 부분 극복되어 왔다. 한국 혁명운동이 정치적으로 이룩해낸 이 성과들의 가치를 결코 무시하지 말자. “이제는 그것을 강령적 논의 형태로 집약하여, 실천과 통일 및 구별정립의 기준으로까지 세워내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단계다.”

       또한 ‘혁명강령’을 정식화하는 데 필요한 세계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실천경험은 맑스-레닌의 시기보다 훨씬 더 풍부하게 존재하고 있다. 게다가 맑스-레닌-트로츠키 등에 의해 작성된 훌륭한 혁명강령을 우리는 물려받고 있다. 만약 지금도 혁명강령 작성을 미루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운동 자체의 한계가 아니라 그들의 무능력과 정치적 게으름의 결과일 뿐이다. ‘강령 논의’는 그들을 채찍질하고 그들 중 가장 훌륭한 부분들을 정치적으로 일깨울 것이며, 이것을 거부하면서 과거의 관성을 고집하는 낡은 부위들을 자연스럽게 정화하고 정리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운동의 성과다!

    2. 강령의 핵심 지점들, 그리고 몇 가지 논쟁점들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준비모임(사노준)은 강령을 준비하는 단계라서 아직 확정된 강령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토론에서 각자 강령안을 가지고 비교 평가하면서, 강령 논의를 발전시켜 나가는 방식은 채택될 수 없었다. 다행히도 강령의 기초가 되는 ‘전략 논의’가 2회차 공동토론회에서 있었고, 여기서 등장한 쟁점을 중심으로 ‘강령 토론’의 쟁점을 삼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것은 사노준의 강령파트 발제자인 박성인 동지와도 사전에 교감하고 합의했던 것이다. 강령 토론의 쟁점을 제기하는 2장은 이 기준에 따랐다.

    다음으로 사노련은 완전한 강령적 형태는 아니지만 그것에 준하는 강령적 입장을 <우리의 입장>과 <대중행동강령>으로 제출하고 있다. 이것을 중심으로 강령의 핵심 지점들과 그것에 담긴 근본 정신을 다루도록 하겠다.

    1) 사회주의 혁명의 본령

    ○ 맑스가 정식화하고 레닌이 계승한 사회주의 혁명의 단 한 가지 근본 핵심은 “노동자계급의 자기 해방 혁명”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노동자계급이 자기 해방 사회를 스스로 건설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을 자주적으로 표현하고 동원함으로써 실제로 사회를 자기 의지대로 해방을 향해 통제 운영할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노동자권력”이다. 두 가지를 종합해서 정리한다면, 사회주의 혁명의 본령은 “노동자계급 자기해방으로서의 노동자권력” 사상이다.

    ○ 맑스주의 혁명론의 이 근본 노선은 국제노동자계급의 목숨을 건 혁명적 실천에 의해 구체적 표현을 얻었다. 바로 1871년 ‘파리코뮌’과 1917년 ‘러시아 노동자 소비에트’(노동자 평의회)다. 당연하게도 맑스와 레닌, 그리고 그들의 뒤를 이은 모든 뛰어난 혁명적 지도자들은 ‘추상적 수준’에서 던져진 ’자기 해방, 그리고 노동자권력 사상’을 ‘코뮌과 소비에트와 같은 노동자 평의회 건설’이라는 구체적 방식으로 강령에 반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강령은 세계 노동자계급운동의 성과를 전혀 담지 못하는 낡은 강령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의 통일, 모든 관리들에 대한 선출 및 소환권, 노동자 평균임금 지급, 노동자 민병대” 등 노동자계급이 현실에서 창조해냈던 자기 해방 운동의 핵심적 모습들이 강령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노동자의 진정한 자기 권력’이란 내용을 표현하는 형식들이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내용이었다. 맑스는 이를 “파리코뮌의 핵심은 이것이 진정으로 노동자계급의 정부였다는 점에 있다”고 천명했다.

    ○ ‘노동자 소비에트’ 사상이 ‘어떤 혼란이나 동요도 없이 정확히’ 강령에 담겨야 한다. 문제는 이것을 회피하거나 모호하고 혼란스런 방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사활적인 지점과 연결되어 있기에, 한 치의 의혹도 없는 분명한 강령으로 정리해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와 연관된 지점, 특히 실천과 연동될 수 있는 세부 지점들에서 ‘날카로운 논쟁적 토론과 비판’을 응당 감수해야만 한다.

    a. 중국 혁명, 북한 혁명의 성격

    ○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부르주아 자본가 혁명이나 소부르주아 혁명에 대해 그 혁명의 ‘진보성’을 인정하는 것, 심지어는 그들의 혁명과 잠시 제휴하는 것과 그 혁명들을 ‘노동자 사회주의 혁명’으로 인정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혁명적 사회주의는 비노동계급 혁명에 대해 특정한 시기에 역사적 진보성을 승인하면서도, 동시에 그 혁명이 결코 사회주의 노동자 혁명이 아님을, 심지어는 이후 적대적으로 맞설 자들의 혁명임을 분명히 한다. 이는 마오 권력과 김일성 권력이 노동자계급에 대해 수행한 반동적 조치와 억압, 착취를 통해서 이미 입증된 것이다.

    ○ 중국 마오 혁명의 경우, 이 혁명은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혁명”이 결코 아니었다. 마오주의 정당은 광동과 상해 등에 거점을 두었던 초기 코민테른 공산당의 소비에트 전략에 맞서면서 농촌을 근거지로 농민계층에 기반한 혁명전략을 주장했다. 중국 공산당의 소비에트 전략은 올바랐지만, 중국 공산당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외교적 도구로 전락했던 타락한 코민테른의 지도 때문에 객관적 상황에 걸맞지 않은 극좌적 봉기에 나서다가 도시 공장 지대의 당 기반을 상실하고 말았다. 약 90%가 도시 노동자 당원들로 구성되고, 나머지 10%가 지식인들과 빈농 층에 의존했던 초기 중국 공산당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마오는 이 타격을 더 강력한 ‘노동자 공산당’을 재조직화하고 소비에트 전략을 더 가다듬는 기회로 삼는 대신 당이 도시의 공장을 버리고 농촌으로 이전하는 전략, 그것도 농민계층에 기반해 혁명을 추진하는 전략을 제출했다. 결국 지식인과 농민들의 당으로 중국 공산당은 변질해나갔다. 중국 마오 혁명 당시에 마오 공산당은 도시에 입성하면서, 도시 노동자들에게 “소비에트 건설과 자주적 무장”을 호소하는 대신 “농민군을 해방군으로 맞이해 박수를 치는 관객”으로 서 있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마오가 권력을 잡았을 때, 도시 노동자들은 의미있는 ‘진정한 노동자 소비에트’를 아래로부터 단 하나도 건설하지 못했다.

    ○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러시아 볼셰비키 당도 농민이 인구의 90%에 달하는 상황에서 권력을 잡지 않았는가? 중국 마오 공산당에게만 왜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가?” 하지만 두 당의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다. 러시아 볼셰비키 당은 농민이 90% 인구를 점하는 상황에서 출현했고 혁명을 수행했지만, 이 당은 당원의 90%가 도시의 노동자계급이었다. 농민들의 경우, 사회주의 노동자 혁명을 지지하는 빈농들만을 가입시켰다. 혁명전략도 도시 소비에트 혁명전략이었고, 실제로 17년 혁명은 러시아의 주요 공업지대들에서 수행되었다. 이후 수년에 걸친 내전의 과정에서 혁명은 도시에서 농촌으로 뻗어나갔는데, 이때 볼셰비키 당이 의존했던 세력은 농민 일반이 아니라 농업노동자들과 빈농들이었다. 이 당은 농민 상층, 즉 농업자본가들, 부농들과 목숨을 건 계급투쟁을 전개했다. 이 당은 1917년 시기부터 농민 소비에트와는 별도로 ‘농업노동자·빈농 소비에트’를 독립적으로 조직했고, 계급투쟁이 농촌에서 고양된 1918년부터는 확고히 ‘농업노동자·빈농 소비에트’에 기반해 투쟁을 조직했다. 이들의 지도자는 바로 “도시의 공업노동자 소비에트”였다. 러시아 1917년 혁명에서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혁명의 방관자, 다시 말해 모호한 농민계급에 의해 ‘위로부터 해방(물론 불가능한 해방!)을 선물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1917년 혁명에서 노동자계급은 농민의 가장 가난한 층을 지도하고, 농민의 부유한 층과 목숨을 걸고 투쟁하면서, 중간층 농민(중농)의 동요성을 마비시키는 지도자였고, ‘스스로의 자기 해방운동’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수립해낸 주인공이었다.

    ○ 반면 노동자계급이 관객이 되고, 스스로 자기 해방운동에 나서지도 못하고, 노동자권력의 구체적 표현인 노동자 소비에트 하나 변변하게 건설하지 못한 중국 혁명은 과연 “노동자 사회주의 혁명인가?” 다시 말해 중국 사회와 중국 공산당의 현재 모습은 ‘노동자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당’의 타락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농민 계층에 기반을 둔 소부르주아 혁명과 소부르주아 혁명당’의 타락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후자라고 여긴다. 중국 마오 혁명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북한 혁명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다만 중국에서는 소부르주아 혁명이라도 존재했지만, 북한에서는 소부르주아 주도의 진정한 혁명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결국 ‘노동자계급 자기 해방 혁명’으로서의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해 명실상부한 노동자권력이 수립된 경우는 역사상 단 하나의 곳에서만 존재했다. 바로 1917년 러시아 소비에트 혁명이다. “러시아 1917년 노동자 혁명의 전통을 방어하고, 바로 이 혁명이 수립해낸 권력을 반영하는 혁명강령”만이, 나아가서 “이 혁명이 패배한 원인을 진단하고, 이를 통해 이 혁명의 최종적 승리를 위한 조건들을 보완해내는 혁명강령”만이 노동자계급의 자기 해방운동의 역사적 경험의 요약으로서 현 시대의 혁명강령이 될 수 있다.

    ☞ 그렇다면, 질문해 보자. 중국과 북한 혁명에 대한 사노준의 입장은 무엇인가? 이 혁명에 대한 계급적 규정은 무엇인가? 이 혁명은 과연 사회주의 혁명이었는가? 그리고 현 중국과 북한 정권에 대한 태도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통일 문제를 비롯한 북한과의 관계에서 한국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취할 실천적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 또한 앞으로 세계 사회주의 혁명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며 또한 한국 노동자계급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 중국의 노동자 혁명과 관련된 국제주의적 태도와도 직결되는 실천적 문제다.)

    b. 차베스 정부에 대한 태도

    ○ 이러한 태도는 차베스 정부에 대한 태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군사쿠데타를 시도하기도 했다가 선거를 통해 집권한 차베스 정부는 “노동자계급의 자기 해방운동”과는 무관했다. 차베스 정부는 ‘노동자 소비에트’와 같은 노동자의 자기 해방운동과 그 운동이 만들어낸 조직들을 바탕으로 결코 등장하지 않았다. 차베스 정부와 차베스 휘하의 군대는 러시아 혁명에서 탄생한 병사소비에트처럼 위계적 계급제도를 철폐한 사병 주도의 민주적 조직 형태를 아무 것도 만들어내지 않았고, 오히려 봉쇄했다. 노동자 군대(적군)와 같은 민병대 형태의 군대는 애당초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 차베스 정부가 수립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관료제도, 계급제도, 상비군 제도에 기반한 베네수엘라 군대체제는 털 끝 하나 변하지 않고 있다.

       물론 차베스의 집권과 권력 유지에는 노동자 민중의 지지와 지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차베스는 다국적 석유자본과 결탁한 국내 자본가 등의 반대파들을 제압하기 위해 ‘필요한 정도’로만 노동자 민중의 힘을 동원했다. 이 힘을 동원하는 과정에서도 차베스 정부는 노동자계급이 반동들을 완전히 분쇄할 수 있기 위해 무장하고 자기 해방 기구들을 수립하도록 결코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반동들의 권력장악 시도를 노동자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제압한 뒤, 차베스 정부는 반대파들을 부드럽게 다루면서 노동자들의 결집을 가로막았다. 그 근본에서 볼 때, 차베스 정부는 부르주아 국가기구들을 조금이라도 약화시킬 생각이 없다.

       차베스 정부의 진정한 역할은 점증하는 노동자계급의 저항으로부터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사실상 보호하는 것이다. 부르주아 국가체제가 그대로 있는 한, 노동대중의 투쟁성과는 역관계가 조금만 불리해져도 손쉽게 유실될 수 있다. 그런데 부르주아 국가체제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이 국가체제를 관리하는 관리자인 차베스 정부로부터 노동자계급운동이 완전한 독립성을 획득하고, 더 나아가서 타도하기를 겁내지 말아야 한다.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 정부가 차지하는 지위는 1917년 러시아에서 케렌스키 정부가 차지했던 지위에 비교될 수 있다. 코르닐로프 반동 쿠데타에 맞서면서도 케렌스키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자 소비에트를 발전시키고 무장시키며, 이 노동자 소비에트를 통해 케렌스키 정부 타도를 준비했기에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승리할 수 있었다. 이는 차베스 정부에 대해 베네수엘라 노동자계급이 취해야 할 태도에도 적용되어야만 한다.

    ○ 차베스와 차베스 정부의 핵심관리들의 발언들은 그 점을 확증한다. 2002년 4월의 쿠데타가 불발로 끝난 후 차베스는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은 채 이렇게 선언했다: “내가 정권을 잡고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 석유가 제대로 공급되고 있다. 나를 권력에서 밀어내려고 반대세력을 지원한다면 내전과 함께 석유공급이 중단될 것이다”(ZNet, 2002년 9월 10일) 볼리바르식 연대 프로젝트를 통해 기타 자본주의 국가들을 포섭하려는 계획이 내포하는 논리가 2005년 8월에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투자와 일자리 증대를 요구하며 에콰도르의 석유수출을 중단시킨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항하여 차베스는 에콰도르 정부 편을 들었다. 노동자들의 강점인 연대투쟁을 갉아먹으며 차베스 정권은 이렇게 선언했다: “요즘 에콰도르 정부가 충족시킬 수 없었던 석유수출 약정을 베네수엘라가 대신 이행할 것이다. 에콰도르 정부는 단 한 푼도 낼 필요가 없다.”([로이터통신사], 2005년 8월 21일)

    “나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말했지만 베네수엘라는 일종의 시한폭탄(혁명전야)이다. 우리는 1995년과 1997년에 이렇게 말하곤 했다. 틱톡, 틱톡. 우리는 이 폭탄을 해체하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 이 폭탄이 완전히 해체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1985년, 1988년, 1989년보다 지금 이 폭탄이 터질 가능성은 훨씬 적어졌다.” [베네수엘라/미국 기업 대표들에 대한 차베스 대통령의 연설], Venezuelanalysis.com, 2005년 7월 6일

    ○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관리자로서 차베스 정부의 본질은 경제 분야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차베스 정부는 경제 영역에서도 자본주의 소유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는다. 사실 차베스에게 부르주아 소유관계를 침범하지 않는다고 비난한 것 자체가 황당무계한 것이다. 차베스는 1990년대 내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떠벌였던 인물이다. 2000년 7월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차베스는 정부의 경제계획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경제정책은 국가주의도 아니고 신자유주의도 아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국가의 보이는 손을 맞잡는 중도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필요한 만큼의 국가개입과 가능한 많은 시장 질서를 원한다.”(차베스, 취임연설문)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우리의 개혁은 사유재산 폐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사유재산의 공존을 인정하는 것이다”라고 차베스 정부의 재무위원장은 말했다.

       자본주의 소유관계를 거의 전혀 손대지 않으면서도, 차베스 정부가 노동자 민중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약간이라도 선물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석유자원 덕분이다. 1998년 차베스 집권 당시 국제유가는 12달러였는데 2005년에는 60달러가 되었다. 이 차액은 차베스 정부의 수중에 집적되었다. 이것은 노동자 민중에게 의료, 교육 등에서 떡고물을 나눠주면서 체제내로 통합시키는 물적 자원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물적 자원은 자본가들을 위해서는 더 전면적으로 사용되었다. “베네수엘라신용은행의 회장 멘도사는 이렇게 말한다: 정부는 자신의 석유수익 전부를 약 5%의 이자를 받고 은행들에 예금한다. 그리고 14%의 이자를 주고 이 돈을 다시 빌린다. 미치도록 좋을 지경이다. 은행들이 돈을 벌기가 너무 쉽다. 이 정부가 부자들의 정부라고 내가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크리스티안 파렌티, “차베스와 석유 인민주의”, [나라]지, 2005년 4월 11일)

    ○ 차베스의 이른바 볼리바르 혁명(?)의 계급적 본질은 바로 소부르주아계급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차베스 정권의 주요한 “원칙”은 바로 보나파르트주의다. 맑스가 가장 먼저 사용한 이 용어는 서로 경쟁하는 사회계급들의 갈등을 초월하여 사회 위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들 사이에 위태롭게 곡예를 하는 “강력한” 정부를 지칭한다.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에서 어중간하게 끼어있는 소부르주아계급은 보나파르트주의의 계급적 기반이다. 소부르주아계급의 본질을 반영해, 차베스 정부는 노동자들과 자본가들 모두를 화해시키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이상적 사회를 꿈꾼다. 평화, 협력, 인도주의, 형제애 등의 온갖 미사여구와 공문구가 판친다. 베네수엘라 자본가계급은 차베스 정부를 활용해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운동을 억제하면서도, 동시에 더 완전하게 자본가계급 지배를 실현하기 위해 적절한 시기에 보나파르트 정부를 전복하고 온전한 자본가권력을 세워낼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베네수엘라 사회 앞에 놓인 길은 '노동계급이 자본가계급의 생산수단을 몰수하여 이 계급을 청산하는 길로 전진하든가 아니면 자본가계급이 노동계급을 압살하든가'의 두 가지밖에 없다. “제 3의 길” 또는 중간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 그렇다면, 질문해 보자. 사노준은 차베스 정부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한다. 노동자혁명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고, 좌초할 수도 있다는 두 가능성 모두에 문을 열어두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세계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전통을 반영한 혁명강령에서 결함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노동자계급의 자기 해방운동으로서의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 그리고 이것을 반영하는 “노동자권력”의 본령을 충실히 견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만약 이 본령을 인정한다면, 차베스 정부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유보적이고 동요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그것은 ‘혁명강령’에서 불철저함을 드러낼 우려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단지 “기우”가 아니다. C번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혁명전략에서 사노준은 소비에트 전략을 끝까지 단호하게 밀고나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c. 의회주의 반대

    ○ 차베스의 이른바 ‘볼리바르 혁명’은 소비에트 혁명전략과 대립하는 “자본가 국가기구를 위로부터 장악하는 전략”을 대표한다. 위로부터 장악의 수단은 바로 “선거”다. 사노준이 차베스 정부에 대해 미지근한 태도를 취하고, 여전히 기대감을 갖게 되는 것도 바로 ‘선거를 통한 위로부터의 혁명전략’을 완전히 도려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한 집권 → 사회주의 정부의 집권 → 이 정부의 위로부터의 지원을 활용하면서 노동자민중의 자기권력화”라는 등식을 여전히 사회주의 혁명의 가능한 주요 경로 중 하나로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 우선 “사회주의 정부의 집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사회주의 정부’란 ‘노동자계급의 자기 해방 정부’로서 ‘노동자권력’ 이외의 의미로는 해석할 수 없다. 즉 소비에트 유형의 노동자계급의 자주적 대중기구들에 기반한 정부이며, 이때 소비에트는 ‘노동자 민병대 중심의 무장, 광범위한 노동자대중의 대표자들의 기구, 소환권의 보장’ 등이 관철되는 기구다. 선거주의자들이 아니라면, 이러한 소비에트 유형의 기구들은 선거를 통해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자기 해방운동, 즉 계급투쟁의 정점에서 창출된다는 것을 승인할 것이다. 계급투쟁의 전면화와 소비에트 유형의 혁명적 대중기구들의 보편화를 동반하지 않은 채, 선거를 통해 창출되는 ‘사회주의 정부’란 존재할 수 없다. 가령 소비에트 유형의 혁명적 대중기구들을 동반하고, 그것에 토대를 두지 않는 차베스 정부는 그 출발점에서부터 사회주의 정부 비슷한 성격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 사노준에게 유리한 최선의 경우를 ‘가정’해보자. 소비에트 유형의 대중투쟁기구들은 아직 전면적으로 등장하지 않았지만, 노동자들의 지지로 사회주의 혁명을 내건 정당이 집권하게 되는 경우다. 이것은 ‘선거주의 사이비 혁명정당’이 아니라면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가정이다. 혁명정당이라면 선거에 참여하는 경우일지라도 “노동자권력은 선거를 통해서는 결코 수립될 수 없고, 오직 전면적인 계급투쟁을 통해 의회 바깥에서만 수립될 수 있다. 부르주아 국가를 온존시킨 가운데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꼭대기를 장악하는 선거주의 방식으로는 노동자 해방을 절대 이룰 수 없다”는 선전 선동 차원에서만 선거를 활용할 것이다. 이 이외의 활용, 가령 “선거를 통해 집권한 뒤, 이것을 활용해 노동자민중의 자기권력화를 지원하겠다”는 식의 활용은 “수줍은 의회주의”로서 그 무엇보다도 선거, 그리고 선거를 통한 부르주아 국가기구 장악에 대한 환상을 조장하는 것이다.

       세계노동자계급의 혁명투쟁 경험도 그 점을 정확히 보여준다. 1917년 노동자권력을 수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던 볼셰비키는 “러시아판 부르주아 의회”인 ‘제헌의회’ 활용을 통한 혁명을 결코 추구하지 않았다. 반대로 볼셰비키는 ‘제헌의회를 분쇄’하고 ‘노동자 소비에트 체제’ 수립을 호소했다. 진실을 말하자면 볼셰비키는 제헌의회를 통한 권력 장악에 대한 환상에 맞서 투쟁했다.

    ○ 두 번째 가정을 해보자. 소비에트 기구들이 이곳저곳에서 창출되고, 동시에 선거를 통해 집권하는 경우이다. 세계노동자계급운동의 모든 경험은 이러한 소비에트의 대대적인 창출은 “이중권력” 상태로 사회가 이행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하늘 아래 두 개의 권력이 존재할 수는 없다. 이때 소위 “집권 사회주의 정부”의 역할이란 도대체 무엇일 것인가? 그것은 제헌의회를 신봉하고 이것에 참가함으로써 임시혁명정부를 사실상 용인하는 황당한 전략을 추구했던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 1917년에 수행했던 역할의 재판일 것이다.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분쇄하고 이 기구 “바깥”에 ‘소비에트 권력’을 건설하며, 이를 위해 ‘제헌의회’ 따위의 부르주아 선거장치가 아니라 의회 바깥의 전면적인 계급투쟁 및 노동자 소비에트의 강화와 보편화에 의지하도록 호소하는 대신, 그들은 제헌의회 선거에 의존하고 임시혁명정부를 그대로 놔두도록 호소했다. 임시혁명정부가 사회주의 혁명의 전진을 위해 ‘모종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조장했다. 17년 러시아 노동자 혁명의 성공은 정확히 그러한 기회주의 전략을 거부하고, 의회 바깥의 계급투쟁에 기초한 소비에트 혁명전략을 노동자계급이 받아들임으로써만 비로소 가능해졌다.

    ○ 부르주아 국가기구에 대해 전면적으로 맞서려면 칠레와 베네수엘라 노동자들은 바로 아엔데 정부와 차베스 정부에 맞서 투쟁하면서 (물론 그 과정에서 노골적인 반동에 맞선 전술적 제휴는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방식은 볼셰비키가 코르닐로프 쿠데타 국면에서 임시혁명정부에 대해 취했던 전술적 태도―일시적으로 제휴하지만, 확고한 독립성을 사수하면서 ‘타도’를 준비한다!―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 이 정부 바깥에 소비에트 유형의 새로운 대중투쟁기구와 맹아적 정부를 세워내야만 했다.

       그런데 ‘이 정부와 협조하고 이 정부의 지원에 의지하는 노동자 민중의 자기권력화’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나머지 칠레와 베네수엘라의 혁명적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국가기구에 맞선 전면적인 투쟁에 나서지 못했다. 이 노동자들은 반동들의 공세 앞에서 최소한의 권리라도 사수하기 위해 아옌데 정부와 차베스 정부를 보호하는 데로 내몰렸다. 그런데 이 노동자들이 보호하는 바로 그 정부들은 반동적인 상비군과 관료적 위계질서로 무장한 부르주아 국가기구들로 온통 채워져 있다. 다만 그 꼭대기에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대통령과 수상, 국회의원들이 덩그러니 존재할 뿐이다. ‘과연 노동자들은 무엇을 보호하고 있단 말인가?’ 반동들과 제대로 싸우고 자기 권력화를 이룩하기 위해서 진정 필요한 것은 반동 상비군에 대당하는 노동자 민병대고, 관료적 국가기구에 대당하는 소비에트 기구들인데, 이것은 바로 아옌데 정부와 차베스 정부의 밑둥을 허무는 것이다.

       결국 칠레 사회당 정부가 조장한 환상을 극복하지 못했던 칠레 노동자계급은 더 전진하지 못하고, 아옌데 정부와 함께 반동에 학살당하면서 매장되고 말았다. 지금 동일한 길을 베네수엘라 노동자들이 가고 있다. 아무리 기다려도 자기 해방을 달성할 수 없어 노동자들이 지치고 허약해졌을 때 베네수엘라 반동들은 차베스 정부를 전복할 것이다. 게다가 반동들의 보복의 칼날은 차베스 정부의 관리들이 아니라 바로 부르주아 국가기구 바깥에 존재하는 혁명적 노동자들을 향할 것이다.

    ☞ 정말이지 정확해야 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한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 사노준의 혁명전략과 혁명강령은 둘 중 하나를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 “노동자민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정당연합/정당·전선체연합)이 선거를 통해 집권하는 것이 계기가 되어 노동자민중의 투쟁력·자기권력화가 강화되면서 변혁이 시작될 수도 있다. … 집권 사회주의 정부가 노동자민중의 자기권력화를 지원했을 때만 선거를 통한 집권은 노동자민중권력 수립의 촉매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사노준, 장혜경, <변혁전략 토론회 발제문>)는 환상을 거두고, 단 하나의 혁명전략―노동자계급의 자기 해방으로서 소비에트 유형의 노동자권력 사상! 그런데 이 사상은 모든 형태의 선거주의와 의회주의와 명확히 단절하고 있다―만을 승인해야 한다. ‘선거를 통한 집권은 불가능하고, 오직 의회 바깥의 노동자투쟁을 통해 소비에트 유형의 대중권력을 창출해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분쇄할 때만 노동자가 해방될 수 있다’는 단 하나의 혁명전략만을 채택하고, 이를 강령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분명히 반영해야 한다.

       만약 이것을 두려워한다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처럼, “선거를 통한 집권 및 집권을 통한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통제, 혁명적 활용, 이것을 통한 평화적 이행”을 주장하는 세력에 맞서 사회주의 혁명강령을 단호하게 사수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사노준의 지향이 ‘결코’ 이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해법은 간단하다. 혁명강령과 양립할 수 없는 환상적인 ‘위로부터의 길’, ‘선거를 통한 집권의 길’ 혹은 ‘선거를 통한 집권이 수행하는 촉매역할’ 등은 아예 100% 배제하고 말끔히 소비에트 전략을 채택하면 된다. 아울러 이 부분은 노동자권력 사상의 심장부이기에 타협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d. 스탈린주의 체제에 대한 규정

    ○ 혁명강령이 세계노동자계급의 투쟁 경험의 일반화라면, 그래서 과거의 혁명투쟁으로부터 얻어낸 교훈을 집대성해 미래의 혁명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나침반이라면, 다음을 포함하지 않는 2009년 한국의 혁명강령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1) “1917년 러시아 노동자 혁명”에 대한 단호한 지지, 2) “1917년 노동자 혁명과 대비되는 기타 혁명들 및 이 혁명들이 창출한 권력에 대한 태도”, 3) ‘1917년 노동자권력에 대비해, 1930년대(이 시기에 대해서는 물론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가령 192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잡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이후 등장한 스탈린 관료체제에 대한 성격 규정’, 4) ‘1917년 러시아 노동자 혁명의 패배의 교훈 및 이로부터 도출되는 승리의 조건들’

       1)과 2)번 항목에 대한 사노련의 강령적 입장은 a, b, c 항목에서 이미 그 개요가 서술되었다고 본다. 여기서는 3)과 4)번 항목을 반영하는 강령의 개요에 대해 다루겠다.

    ○ 이런 주장을 우리는 흔히 듣는다. “10월 혁명은 노동자 혁명이었지만 결국 스탈린주의를 낳지 않았는가? 스탈린주의 반동 권력의 어머니는 1917년 10월 러시아 노동자권력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10월 러시아 혁명을 지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반대 편에서 다른 이들, 가령 전국노동자정치협회(노정협)는 이렇게 질문한다. “10월 러시아 혁명을 지지한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관료 체제는 10월 노동자 국가의 연장선에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스탈린주의 관료 체제까지도 현실 사회주의 노동자 국가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진지한 분석과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또한 현실 사회주의 국가를 지지하지 않으면서 제국주의 편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 그들 모두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은 10월 혁명이 수립한 노동자 국가와 스탈린주의 반혁명이 만들어낸 ‘관료 체제’ 사이에는 ‘노동자계급의 피의 강물’이 흐른다는 사실이다. 이 ‘피의 강물’―노동자권력을 국가관료들의 권력으로 바꿔냈던 반혁명―을 진지하게 검토해야만 한다. 이 ‘피의 강물’은 소비에트와 같은 노동자국가의 기본 단위들을 파괴하고 노동대중의 아래로부터의 권한을 박탈한 것, 볼셰비키 정당의 최고 지도자들의 거의 대부분을 처형하고 암살했던 것, 당과 국가를 감시 통제하고 폭력을 자행했던 체카 등의 공안기구들의 대대적인 확대, 계급 제도와 상비군 체제를 완전히 부활시켰던 반동적 군대 체제의 확립 등의 총체들이다.

       이것을 고려한다면, 다음의 결론이 나온다: “스탈린 관료권력은 10월 노동자권력의 계승자가 아니라 파괴자다!” ‘왜 파괴되었는가’를 질문하고 그 예방책을 세우는 것은 진지한 혁명적 투사들의 접근법이다. 그러나 그것을 묻는 대신, 10월 노동자 혁명의 의의를 부정하거나 스탈린주의 관료 체제를 어떤 식이든 옹호하고 방어하려 하는 것은 완전히 틀렸다. 두 입장 모두 사실상 10월 노동자 혁명의 역사적 성과를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 ‘국유화’는 부르주아 ‘사적’ 소유관계에 대한 침해다. 그러나 부르주아 소유관계가 ‘사적’(개인적) 소유관계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부르주아 소유관계에서 ‘좁은 의미’의 사적 소유관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줄어들어왔다. 가령 현재에 이르러 가장 일반적인 부르주아 소유관계를 표현하는 ‘주식회사 제도’는 더 이상 개인적 소유가 아니라 ‘부르주아들의 집단적 소유’를 표현한다. 이 소유형태는 중간계급, 심지어는 노동자계급 상층부까지 주식을 소유함으로써 상당히 복잡해진다. 그러나 형식적 소유관계가 아니라 실질적 소유관계를 중심으로 보자면, 주식회사 자본의 통제자이며 그 이윤의 가장 큰 몫을 가져가는 ‘소수 부르주아들의 연합된 소유형태’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부르주아 소유관계의 대표적 형태 중 하나는 ‘국가소유 형태’다. 국유기업이나 공기업, 국책은행 등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이러한 ‘국가자본’은 형식적으로는 어느 개인의 소유가 아니며, 또한 일부 부르주아들의 집단적 소유도 아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보자면, ‘국가자본’은 “전체로서의 자본가계급의 공동소유물”이다. 자본가계급 전체를 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다양한 직간접적 방식으로 이 잉여가치를 전체로서의 자본가계급에게 분배하는데, 이 국가자본의 통제자이자 잉여가치의 수탈자이며 배분자는 바로 국가관료집단(이들은 자본가계급의 일부분이다)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유화 형태”는 부르주아 ‘사적’ 소유에 대한 침해이지만, 결코 ‘부르주아 소유관계’에 대한 침해는 아니다.

    ○ 부르주아 소유관계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면서 사회주의 소유관계를 창출해내는 것은 국유화만을 통해서는 불가능하다. “국유화”에 반드시 결합되어야 할 것은 “노동자권력”이다. 이것은 “경제”와 “정치”가 하나로 융합되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유산자 혁명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회주의 혁명’의 특징을 반영하는 것이다. “노동자권력에 의한 국유화”만이 사회주의와 동의어가 될 수 있다. 뒤집어 말하자면 ‘노동자권력’이 아닌 ‘다른 권력’에 의한 ‘국유화’, 즉 자본가권력 혹은 비노동계급 권력 하의 국유화는 결코 사회주의가 아니다. 이름을 어떻게 붙이느냐는 그 다음의 일이다.

    ○ 1917년 러시아에서 탄생해 대략 1920년대 후반까지 그 기본 성격이 지속되었던 노동자권력 하의 국유화는 물론 사회주의 소유관계의 한 부분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 시기부터다. 30년대 중반에 이르면, 노동자의 자기 해방 권력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 만한 노동자권력은 러시아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노동자권력은 파괴되었다. 노동자계급은 그들 위에 군림한 관료들의 권력에 의해 억압당하는 존재로 굴러 떨어졌다.

       이처럼 권력의 성격이 노동자권력이 더 이상 아니고, 권력의 주인공이 국가관료들이라면 이 권력은 “관료권력”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관료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국유화 체제를 부르는 용어 중 하나가 바로 “관료자본주의 체제”다. “국가자본주의”란 용어는 이 관료집단이 국가를 장악하면서 국유화된 생산수단의 실질적인 통제자가 되었다는 점에 주목한 용어다. 이 둘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입장들이 제기하는 ‘자본주의’라는 규정이 과연 과학적인가라는 점이 문제가 될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반론은 일반적인 ‘국가자본주의’란 개인적 부르주아 소유와 주식회사 형태의 연합된 부르주아 소유와 연동되어 성립한다는 것이다. 반면 러시아에서는 사적 분야의 자본가 소유나 주식회사제도가 존재하지 않기에 ‘국가자본주의’라는 규정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이것은 ‘국가자본주의’라는 개념을 확장하지 않고 좁혀 쓴다면 물론 가능한 반론이다. 1920년대 이전의 ‘국가자본주의 개념’은 “통상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반영하기 위한 개념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맑스주의는 화석화된 교조가 아니다. 살아 있는 맑스주의는 새롭게 등장한 물질적 운동을 반영하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야 하며, 기존의 개념도 이처럼 새로운 물질적 운동을 반영해 확장하고 수정 보완해야 할 필요성을 정확히 승인한다. 그런데 1930년대 소련에서 등장한 새로운 반동 체제는 그 이전의 맑스주의자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체제였다. 당연히 새로운 개념이 창조되어야 했다. 맑스주의의 근본 개념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 체제는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쥐지 않고 국가관료들이 권력을 쥔 체제고, 동시에 생산수단이 국유화된 체제였다.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이 체제의 실제 성격에 걸맞는 새로운 개념을 맑스주의는 제공해야 했다. 이것은 기존의 ‘국가자본주의 개념’을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 ‘국유화된 소유관계’이지만, 국가의 주체가 노동자계급이 아니라 국가관료들이라는 점을 반영한 개념이 “국가자본주의”였다.

       원래 ‘국가자본주의론’이 제시한 ‘자본주의’란 규정은 그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서 노동자계급이 착취당하고 통제당하는 대상에 불과한 상태, 그리고 자본가계급의 통제 하에서 노동자계급이 창출한 잉여가치가 죽은 노동(자본)의 확대재생산에 투입된다는 것을 반영한 과학적 개념이었다. 이 개념은 스탈린주의 체제에 대한 분석에 확장시켜 적용할 수 있는 유효한 개념이다. 자본을 “생산에서 맺는 사회적 관계의 표현”으로 이해한다면, “노동자계급은 잉여가치를 수탈당하고, 국가관료집단은 잉여가치를 쥐어짜고 이 잉여가치를 바탕으로 국유화된 죽은 노동의 확대재생산을 추진하는 체제”를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정의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 사노련은 과학적 맑스주의 개념을 소중하게 받아들이지만, 개념 논쟁에 정력을 쏟고 개념을 중심으로 동지와 반대자를 나눌 만큼 한가하고 현학적이지 않다. 내용만 공유된다면, 특히 실천의 방향만 공유된다면 그것을 담는 형식(개념)을 둘러싼 논의는 무엇이 내용에 더 적합한 과학적 개념인가를 분명히 하는 방향에서 얼마든지 진통없이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노준과 관련해서, 이것을 접근한다면, “현실사회주의 대 국가자본주의(혹은 관료자본주의, 반동체제)”란 정식화가 가능할 것이다. 사회주의의 근본 정의에 입각할 때, 우리는 ‘현실’이라는 접두어를 붙이더라도 러시아의 스탈린주의 관료체제, 그리고 노동자 혁명 자체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던 중국이나 북한 등의 체제에 대해 ‘사회주의’란 칭호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본다. 특히 실천적 측면에서 그렇다. 이 반동 체제들은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사회주의에 대한 확신을 앗아간 가장 결정적인 주인공들이다. ‘사회주의’란 외피를 두른 반동 체제들 덕분에 ‘사회주의’는 거대한 타격을 입었다. 우리는 레닌의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사회민주주의 개량주의자들이 사회주의를 타락시켰을 때, 레닌은 당의 명칭을 공산당으로 바꾸면서 철저하게 구별 정립했다. 혁명적 사회주의를 향한 노동자계급의 지향을 보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만약 이 체제들을 진정한 사회주의와는 무관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반동적인 체제로 규정한다면, 우리는 이 체제에 대해 ‘사회주의’란 칭호를 박탈함으로써 사회주의의 진정한 가치를 사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 그런데 진정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만약 사노준이 구 소련의 스탈린주의 체제를 노동자계급이 타도해야 할 반동 권력으로 인정한다면, 그럼에도 ‘현실사회주의’란 개념을 고수하는 이유가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교훈 추출’의 필요성 때문이라면 우리 사이에 결정적 차이는 없을 것이다. 단지 무엇이 사회주의의 진정한 가치를 선진노동자들에게 보여주는 데 더 적합한가를 두고 동지적으로 논의하면 된다고 본다. 어떤 개념을 쓰는가를 가지고 격렬하게 대립할 필요는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다음의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며, 실천적으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지점들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 생산수단이 국유화되어 있지만, 권력이 노동자계급 수중에 있지 않은 체제들을 노동자계급은 방어해야 하는가, 아니면 타도해야 하는가? 현 중국과 북한 체제는 타도해야 할 대상인가, 아니면 방어 혹은 비판적으로 지지해야 할 대상인가? 북한과 남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사노준의 태도는 무엇인가? 남북 통일에 대한 사노준의 태도는 무엇인가?

    e. 러시아 혁명의 교훈을 강령에 담아내기 - 첫 번째 교훈(관료주의에 맞선 투쟁)

    - 1번 항목에서 이제 마지막으로 다룰 부분은 4) ‘1917년 러시아 노동자 혁명의 패배의 교훈’과 관련된 부분이다. 무엇이 스탈린 관료집단의 반혁명을 가능케 했던가? 여러 분석이 가능하다. 그 중 핵심적인 것들을 정리하자면 우선 “관료주의” 문제를 거론해야만 한다.

       러시아 노동자 혁명은 사회주의 완성을 위한 “최초의 시도”였다. 당연히 가장 뛰어난 지도자들까지도 그것 앞에 기다리고 있는 난관, 특히 관료주의의 위험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없었다. 이것은 지도자들의 대처를 한 박자 뒤늦게 만들었고, 이들이 위험성을 느끼고 대처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이것은 관료분자들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 당과 국가기구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런 취약성은 비단 지도자들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평당원들이 관료주의를 용납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면, 관료주의자들의 성장은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10월 혁명 전후로 당에 가입했고 평당원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던 젊은 당원들은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 이들에게는 미지의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판단하고 밀어나갈 수 있는 의식성이 부족했다.

    ○ 지도자들과 평당원들, 나아가서 노동자대중이 보인 이런 약점들은 노동자 혁명투쟁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는 것이고, 러시아 선진노동자들의 약점으로 단순하게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맑스조차도 일반적인 예상 이외의 것을 언급할 수 없었던 전인미답의 사회주의의 길에 대해 어떻게 단번에, 한 번의 오류도 실패도 없이 정확히 이해하고 똑바로 전진할 수 있을 것인가? 오직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실천만이 시행착오를 통해서 올바른 길과 방법을 제시할 수 있었다. 불행은 이러한 시행착오가 당시 러시아 노동자권력과 혁명적 노동자 당이 직면했던 대단히 엄혹한 조건에서는 관료집단의 반혁명의 통로가 되었다는 점에 있다.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경험을 재산으로 삼아, 다음번 주자는 이런 약점을 극복하고 훌륭하게 사회주의를 실현해낼 수 있을 것이다. 강령은 이를 위한 정치적 안내서가 되어야 한다.

    ○ 우리는 “관료주의에 맞선 투쟁”을 강령에 반영함으로써 러시아 혁명의 교훈을 흡수해야 한다. 러시아 1917년 노동자 혁명의 패배가 던진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노동자계급이 완전한 자기 해방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 내부에 존재하는 부르주아적 요소들을 완전히 토해내는 자기정화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러시아 국가관료들은 노동자계급 내부로부터 탄생한 관료집단이었다. 이 관료집단에 맞서 투쟁하고, 그리하여 노동계급 내부의 악성종양을 걸러내고 제거할 수 있는 노동대중의 아래로부터의 통제력, 그리고 온갖 부르주아적 잔재와 유혹을 이겨내고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대의를 지켜낼 수 있는 진정한 지도자들의 창출 없이는 노동자계급운동은 자기 내부에서 솟아나는 취약성, 악성종양 때문에 좌초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운동이 결정적인 국면에 도달하면 할수록, 자본주의 체제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본가계급의 힘이라기보다는 노동자계급이 아직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부르주아적 요소들이다. 이 부르주아적 요소들을 결정적 단계에서 반영하는 인격적 표현이 바로 노동관료집단이다. 혁명의 최종적 단계까지 진격했던 러시아 혁명이 마주쳤던 가장 결정적인 투쟁의 단계도 바로 그것이었다.

    ○ 이 관료집단은 사실 낯선 것이 절대 아니다. 러시아 노동자계급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거대한 잠재력과 조직성을 보여주었던 유럽의 노동자계급운동이 혁명의 문턱에서, 아니 일상적으로 대면하는 가장 거대한 암초가 바로 노동관료집단이다. 이 관료집단은 국가권력 장악 이전에는 노동조합관료와 개량주의 노동자당 관료집단으로 존재한다. 이 관료집단은 러시아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과 똑같이 노동자계급의 자주성과 창조성, 통제력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억압적인 관료체제를 채워 넣는다. 이 관료집단은 세계노동자혁명을 향한 노동자계급의 의지를 일국 내로, 사업장 내로 국한시키면서 조각내다가 결국 파괴한다. 이 관료집단은 노동자권력을 향한 대중의 힘을 부르주아 국가체제나 관료체제 내로 가둠으로써 자본주의 체제의 2중대로 기능한다.

    ○ 유럽의 자본가계급은 일상적 시기부터 이 관료집단을 효과적으로 배양하고, 이들을 통해 노동자계급을 통제하고 그 의식을 부르주아적으로 치환하며 부르주아 국가체제, 소유체제 내로 노동자운동을 묶어둠으로써 체제를 보호해왔다. 수백 년의 투쟁경험과 놀랄만한 조직률, 높은 의식성, 사회 내의 압도적 비율에도 불구하고 유럽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지 못하는 이 비참한 현실은 이 노동관료집단이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 말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이 관료집단은 1920~30년대의 서유럽 혁명기, 1968년 투쟁기에도 노동자계급운동이 노동자권력 창출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만들었던 결정적 방해물이었다.

    ○ 서유럽 노동관료집단에 비해 대단히 허약했던 러시아 노동관료집단은 주로 멘셰비키, 부분적으로는 사회혁명당과 같은 개량주의 정당의 관료들로 존재했는데, 볼셰비키와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단호한 투쟁에 의해 분쇄되었다. 1917년 혁명 직후 철도노조 등에서 노동조합 관료집단이 등장해 노동자혁명에 브레이크를 걸려 했지만, 이들 또한 갓 등장한 허약한 세력이었다. 그들이 노동자권력에 대항해 채우려 했던 브레이크는 평조합원들의 아래로부터의 반발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눈부신 승리는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풍부한 경험을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러시아 자본주의의 후진성, 그것을 반영해 권력유지의 경험이 일천했고 기껏해야 7~8개월 정도 (그것도 이중권력 하에서) 권력을 유지한 경험만을 갖고 있었던 러시아 자본가계급의 후진성 덕분에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상당히 손쉬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의 반혁명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파고든 것은 ‘관료주의 집단’에 맞선 내부 투쟁에서 풍부한 경험을 아직 갖고 있지 못한 러시아 노동자운동의 약점이었다. 러시아에서 노동관료집단은 국가관료들로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이 국가관료집단에 의해 질식당했다. 결국 러시아에서 반혁명의 통로는 “노동자계급운동이 아직 완전히 도려내고 떨쳐버리지 못한 부르주아적 요소”들이었고, 바로 이것이 “관료집단”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 가장 결정적인 패배는 바로 러시아 볼셰비키 노동자 당이 스탈린 관료집단에게 장악당해 버린 것이다. 만일 비록 혁명은 좌초했을지라도, 이 당이 관료집단을 숙청해내고 노동계급 혁명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했다면, 그래서 러시아 혁명의 교훈들이 이 당에 의해 전수되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단지 세계 혁명의 패배에 따른 역관계의 불리함 때문에 러시아 혁명 또한 패배를 면하지 못했을 뿐, 혁명의 전통, 사회주의 혁명당의 전통은 그대로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볼셰비키 당이 관료집단의 당으로 변질하면서 혁명당의 전통을 관료집단이 형식적으로 가져가 버림으로써, 마찬가지로 타락한 관료집단의 국가가 노동자국가인 것처럼 위장할 수 있게 됨으로써, 러시아 혁명의 위대한 가치는 시궁창에 처박혀 버렸다. 이것을 되살려, 러시아 혁명을 딛고 세계 노동자 혁명의 전통을 발전시키는 것은 바로 현 시대의 과업이 되었다.

    ○ “문제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이다. 답은 분명하다. “노동관료층”과의 투쟁을 통해 단련되는 것이다.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권력 장악 “이후” 관료층과의 전투에 맞닥뜨렸다면, 서유럽 노동자계급은 권력 장악 “이전”에 관료층과의 전투에 부닥쳤다. 서유럽 노동자계급은 이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하고서는 “권력 장악”에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권력 장악은 1917년 당시의 러시아 노동자계급에 비해 훨씬 더 어려웠다. 그러나 권력 장악 ‘이후’, 이 노동자권력은 훨씬 더 안정적이다. 이미 관료주의에 맞선 전투에서 승리했고 단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레닌과 그람시가 말한 “러시아는 문화혁명이 정치혁명에 뒤따르지만, 유럽은 정치혁명이 문화혁명에 뒤따른다”는 규정의 구체적 의미다.

       그런데 한국의 현 상태는 당시의 러시아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1917년 당시의 서유럽 유형에 속한다. 이제 한국에서도 노동관료층은 체계적으로 성장해 있다. 이 노동관료층의 성장과 나란히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창출한 한국 노동자계급의 거대한 힘은 통제당하고 매장당해 왔다. 이제 한국에서도 노동관료층과의 전투에서 승리 없이는 노동자권력 수립을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전투는 대단히 어렵다. 눈에 보이는 적과의 전투가 아니라 ‘노동자계급 내에서 창출된 위장된 적과의 전투’이기 때문이다. 또 이 전투는 노동자계급이 아직 완전히 뱉어내지 못한 부르주아적 요소에 맞선 투쟁이기에 일종의 “문화적 전투”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수립된 노동자권력은 거의 승리의 90%를 쟁취한 셈일 것이다. 러시아 노동자계급이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진 노동관료층(이들은 러시아에서 국가관료집단으로 나타났다)과의 전투에서 이미 승리했기 때문이다.

    ○ 노동관료층과의 전투의 핵심은, 첫째 지도자들을 노동대중이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언제든지 소환해내면서 걸러낼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주도력 형성, 둘째 부르주아적 요소들(관료적 습성, 출세주의 등등)에 단호하게 맞서면서 노동자 민주주의를 대변할 수 있는 진정 사회주의적인 지도자들의 형성, 셋째 이것들을 뒷받침하는 노동자들의 날카로운 의식과 높은 문화적 수준(부르주아 문화·윤리·가치관에 맞서 노동자 문화·윤리·가치관을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확신)의 쟁취 등으로 요약된다. 이를 통해 “노동자권력”을 향한 준비작업과 함께, 노동자권력의 부르주아적 타락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힘이 자라난다.

    ○ 2009년의 한국 혁명강령은 당연히 “노동관료제”에 맞선 비타협적 투쟁노선을 강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 가장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노동관료층은 바로 노동조합 관료층이다. 이들은 노동자투쟁을 차단하고 계급적 연대와 노동자 민주주의를 파괴하면서, 온갖 협조주의와 양보에 집착하고 있다. 이들에 의해 10년 넘게 노동자투쟁이 파괴되어온 결과, 한국 노동자계급의 조직된 부위에서는 사기저하와 패배감이 두텁게 자리잡고 있다. 또한 전체 노동자계급에 대한 조직된 노동운동의 권위와 영향력이 파괴당하고 있다. 대다수 노동조합들 속에서 노동조합 관료제는 실질적으로 두텁게 자리잡고 있다. 또한 이 관료제가 비대하게 성장시키고 있는 교섭기구가 평조합원들의 아래로부터의 참여와 통제력, 소환권, 투쟁력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다. 그 결과 “노동자권력”을 향한, 일상적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훈련 기관이자 학교로서의 노동조합의 의의가 파괴되고 있다. 이 노동관료층과의 전투에서 철저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실천적으로 볼 때 1917년 이래 수십 년 동안 진행된 노동자혁명의 패배의 교훈을 진지하게 흡수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조합 좌파관료층을 비롯해 모든 유형의 관료층에 맞서면서 노동자 민주주의와 비타협적인 투쟁노선, 계급적 연대를 대표하는 대중적 운동을 노동조합 속에서 건설해야만 한다. 그래야 1917년 10월 러시아 노동자혁명의 교훈으로부터, 서유럽 노동자혁명투쟁의 경험으로부터 비로소 배우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쇠퇴기의 자본주의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서, 2000년대 이후에는 ‘좌파 노조관료층’을 더 이상 거론할 수 없을 만큼 좌우 관료층은 거의 똑같은 수준으로 융합하고 있다. 물론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말이다.

    ☞ 이에 대한 사노준의 입장은 무엇인가? 사노준은 그 중요한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구) 노동자의 힘이 “민투위”의 관료적 행위에 대해 소속 조직원들이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이로부터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 이런 실패나 약점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정치적, 조직적 대안은 무엇인가?

       (사노련은 우리가 비판하는 구) 노동자의 힘의 오류와 약점을 ‘사노준’에 그대로 대입해 ‘극복할 수 없는 오류’로 취급하고 최후통첩을 보내려는 의도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반대로 우리는 ‘사노준’이 그러한 오류를 “진정으로 극복”해 관료주의에 맞서는 단호한 정치세력으로 서 있기를 바라며, 그것이 진정으로 이뤄져 사노련과 사노준의 관계가 몇 배 이상 가까워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서는 “객관적 조건”, “현장 대중의 상태”, “타 현장 조직이나 타 집행부에 비교한 상대적 노력” 등을 통한 합리화가 아니라 “노조관료주의에 맞선 혁명적 사회주의의 노선”, “노동조합과 현장조직에 적극 개입하되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독립적인 혁명적 사회주의의 노선”, “그 노선을 구체화하는 현장에서의 독립적 정치활동의 개요 및 평조합원 운동의 관점” 등을 명확히 제시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과거의 오류에 대한 진지한 평가와 자기 정화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사노준이 구) 노힘의 한계를 진정으로 극복했음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를 우리는 동지적 애정을 갖고 희망한다.)

    f. 러시아 혁명의 교훈을 강령에 담아내기 - 두 번째 교훈(국제주의)

    ○ 러시아 노동자 혁명의 패배에는, 더 넓게 보자면 세계 노동자 혁명의 실패가 자리잡고 있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후진적 러시아에서 10월 노동자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서유럽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조건이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 견지에서만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은 비로소 블랑키즘(객관적으로 무르익지 않은 혁명을 소수 혁명가들의 음모와 주관적 의지에 의해 수행하려는 주관주의)이 아니라 현실적 의미를 획득한다!”는 원칙을 견지했다. 실제로 러시아 사회의 후진성, 내전, 제국주의 세력들의 포위 등 불리한 조건들은 만약 세계 노동자 혁명이 성공했다면 러시아 노동자권력이 사회주의로 전진하는 데서 결정적인 장애물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을 비롯한 세계 자본주의 나라들 모두에서는 혁명을 이끌 만큼 노동자계급과 당이 훈련되어 있지 못했다. 반면 당시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을 구성했던 유럽과 미국의 자본가계급은 러시아 자본가계급보다 훨씬 강력했다. 오랜 통치 경험, 오랜 기간 동안 체계적으로 육성해온 경찰, 군대, 정부 관료기구들로 그들은 무장했다. 또한 무수한 부르주아 학교기구와 부르주아 언론들의 일상화된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세뇌 공작들,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을 (심지어는 사회주의 정당의 지도자들까지) 부르주아 체제 속으로 포섭하는 잘 발달된 의회주의 장치들을 그들은 구비해두고 있었다.

    ○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 혁명의 세계적 확산은 엄청난 난관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 혁명을 계기로 급격하게 고양된 노동자 혁명투쟁, 특히 권력의 문턱까지 노동자들이 도달했던 독일, 스페인 등에서의 노동자 혁명투쟁을 차단하고 적들에게 헌납하면서, 사회배외주의(민족주의)에 입각해 제국주의 지배자들과 타협하면서 빵부스러기 개량에 탐닉했던 노동관료층이 국제 혁명을 말아먹은 주인공들이었다. 세계 혁명이 좌초되자, 러시아 노동자권력은 고립되었다. 그러자 내전과 제국주의 전쟁, 방대한 농민층의 후진성 등이 러시아 노동자계급을 위협했다. 이 난관은 노동자 소비에트의 약화를 낳았다. 노동자 소비에트의 거점인 주요 공장들의 70% 이상이 전쟁 과정에서 파괴되어 문을 닫았다. 노동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노동자 소비에트의 70% 이상이 사실상 작동불능 상태로 빠져들었다. 현장과 국가기구에서 사회주의자로 헌신적으로 활동했던 핵심 공산당원들의 80% 이상이 제국주의 전쟁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또한 관료주의가 당과 국가기구에서 성장하는 중요한 배경을 이루었다.

       그와 동시에 러시아 혁명은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노동자권력의 약화와 함께 유럽 노동자 혁명의 쇠퇴에 따른 국제적 고립, 제국주의의 군사개입과 경제봉쇄가 덮쳤던 것이다.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경제적 기반들은 상당한 기간 동안 해체되었다. 기아, 가난 등이 러시아 노동자계급을 덮쳤고, 피로도가 극대화되었다. 이것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당혹감과 패배의식을 조장했다. 사회주의 완수의 가장 결정적 요소인 노동대중의 자신감과 창조성, 혁명에 대한 확신은 약화되었다. 관료주의라는 병균은 이러한 객관적 배경 하에서 번성해나갔다.

       결국 세계 혁명의 패배와 이에 따른 고립 상태가 만들어낸 난관들, 사기저하, 소비에트의 기반 축소 등이 총체적으로 결합되면서, 거기에 역사상 처음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주의로 나섰던 노동자계급의 첫 주자가 가졌던 경험 부족, 심지어는 당시에 최고의 혁명정당이었던 볼셰비키 당의 지도자들마저도 당시로서는 피할 수 없었던 한계들(관료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대처 능력의 부족)이 결합되면서 러시아 혁명은 좌초하고 말았다. 이것은 한국의 혁명강령이 세계 노동자 혁명의 기초 위에서, 즉 국제주의에 단호하게 입각해 수립되어야 함을 웅변하고 있다.

    2) 사회주의 운동의 실천적, 조직적 기초

    a. 사회주의 혁명의 토대 - 작업장 단위의 생산자조직(작업장 노동자 소비에트)

    ○ 노동자권력이 단순히 자본가권력에 대당하는 대립물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권력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지는 “집단적 생산자들이 자유롭게 연합한 계획적인 공동체적 생산양식”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최종적으로 소멸하고,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가 선포되는 것도 그러한 새로운 생산양식을 창조해냄으로써이다. 노동자권력이 수행하는 일차적 조치로서 자본가권력 분쇄라는 파괴적 행위는 사실 그 다음의 조치인 새로운 생산양식을 건설하는 창조적 행위를 위한 필수적 준비로서 자리매김된다.

    ○ 당연히 혁명의 근본 문제 중 하나는 “어떻게 새로운 생산양식을 창조하고 완성시킬 것인가”로 모아질 수밖에 없다. 혁명강령은 이에 대해 대답하고, 이것을 내용적으로 표현해내야만 한다.

    “진정한 노동자권력은 소비에트 유형의 국가처럼 생산자들이 노동하는 단위인 작업장단위로 노동자국가가 건설되는 것을 통해서만 수립할 수 있다. 작업장단위의 생산자조직을 기초로 민주적으로 세워지고 운영되는 이 국가는 최초로 생산자들(노동자들)이 정치의 주인으로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보장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적 생산력을 창조할 수 있도록 생산자들을 통합하고 이끈다.”(사노련, <우리의 입장> 해설)

    ○ 혁명정당이 이러한 혁명을 완성시키는 안내자이자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생산현장에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 이는 정치혁명의 과정에서나 이후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나 필수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원칙은 어떻게 ‘강령’에 담겨야 할 것인가? 이는 강령의 “조직적 항목들”로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b. 당의 조직적 기초

    ○ 어떤 정당이든, 그 정당의 본질은 “어떤 계급의 정당”이냐다. 이것은 형식적인 기준이 아니라 실제적인 기준으로 측정되어야 한다. “어느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로 무장하고 있느냐”(이는 일차적으로 강령의 정치적 항목에 의해 측정된다. 만약 소부르주아 정치나 위장된 부르주아 정치로 채워져 있다면, 이 정당은 노동자들이 아무리 많이 참가하더라도 노동자계급정당이 될 수 없다)는 당연히 첫 손에 꼽아야 할 실제적 기준이다. 그러나 또 하나 중요한 기준이 있다. 그것은 이 정당이 “어떤 계급의 성원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통제되고, 실질적으로 작동하느냐”이다.

    ○ 대개의 경우, 이 두 가지 기준―정치적 기준과 조직적 기준―은 충돌하지 않고 조화롭다. 자본가정당의 경우, 그 정치와 이 정당을 실제 통제하고 운영하는 계급이 완전히 일치한다. 대개의 개량주의 정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정치는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에서 동요하는 중간계급의 입장을 반영하며, 이 당을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하는 자들은 주로 중간계급 성원들이다. 이들은 주로 지식인, 전문가 집단, 당 관료들, 상근자들로 구성된다. 노동자 당원들은 수적으로 다수일지라도, 사실 당의 방향을 결정할 위치에 결코 서 있지 않은 수동적 관객들에 가깝다.

       문제는 혁명적 정치강령을 갖고 있는 혁명조직과 관련해서 제기된다. 정치강령이 혁명적일지라도, 만약 이 조직의 조직적 기초가 현장의 노동자들에 확고히 놓여 있지 않다면(가령 주로 지식인 출신인 상근자들, 현장대중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이러저러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현장대중과의 연계성이 약하다면) 이 혁명조직은 모순적 위치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 혁명조직의 정치적 기초와 조직적 기초는 결코 어울리지 않게 된다. 모순은 운동을 낳는다. 정치강령에 걸맞는 노동계급적인 조직적 기초를 수립하든, 아니면 비노동계급적인 조직적 기초에 걸맞게 정치적으로 변질해야 한다. 유럽의 수많은 혁명조직, 당들이 보여준 길은 주로 후자였다. 이 당들은 그들의 조직적 기초(중간계급)에 걸맞게 정치강령에서 퇴보해갔고, 결국 개량주의 정치강령을 받아들였다.

    ○ 현 시대에 진실로 혁명적인 유일한 계급인 노동자계급을 대변하는 혁명정당을 지향한다면, 이 조직은 반드시 노동계급의 힘이 정치적으로 탄생하며 새로운 생산양식을 창조하는 데로까지 뻗어나가는 핵심 공간인 현장에 조직적 기초를 두어야 한다. 이는 실천적으로 다음으로 요약된다: 1) 조직의 기초가 사회주의 현장분회에 확고히 뿌리를 둘 것. 2) 비노동계급 출신 혁명가들(가령 지식인 출신 혁명가들)이 사회주의 현장분회와 반드시 연결되어 활동할 것. 이들은 사회주의 현장분회의 노동자 동지들을 통해 검증받아야 하며, 이들과 협력하여 현장노동대중과 연결되어 활동하는 것을 기본 임무로 받아들여야 한다. 3) 상근자들의 비중을 적절한 범위 내로 제한하고, 이 상근자들의 다수는 노동현장의 사회주의 현장분회들을 지원하고 연대망으로 밀접히 연결시키는 활동에 복무해야 한다. 4) 사회주의 현장분회들로부터 자라나고 이 현장분회들의 통제력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지역위원회, 그리고 이러한 지역위원회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통제받고 작동하는 조직 중앙을 건설해야 한다. 그래서 조직의 주요한 결정과 집행이 현장 사회주의 분회원들의 의지와 필요를 실제로 반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사회주의 현장분회원들의 정치적 주체화, 조직 내 민주주의 구조를 혼신의 힘을 다해 발전시켜야 한다.

    ○ 사노련은 이러한 조직적 기초를 사수할 때만 의회주의의 병균으로부터 혁명조직이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는다. 노동자투쟁만이 노동자권력의 토대―노동자 소비에트―를 창조할 수 있고, 이 노동자권력을 향하는 노동자들의 투쟁경험과 의식, 자신감을 창출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혁명정당은 이 노동자투쟁을 발전시키고, 이 노동자투쟁을 매개해 노동자들의 투쟁경험을 사회주의 혁명사상과 강령으로 일반화시키며, 이 노동자투쟁들을 전국적 차원에서 나아가서 국제적 차원에서 하나로 연결시키는 작업에 사활적으로 달려들어야 한다. 혁명을 주도하고 안내할 수 있는 지도세력으로 혁명정당이 형성되는 과정은 바로 그런 작업에 부단히 뛰어들고,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단련되는 과정을 통해서이다. 이런 작업을 포기하거나 뒷전으로 미루는 모든 경향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건 사실상 “의회주의 경향의 한 부류”일 뿐이다. 사노련은 이런 원칙을 다음과 같은 조직적 강령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 건설하려는 조직은 모든 기관들을 통해 노동자투쟁을 고무하고, 작업장과 연결되어 활동하는 투사들의 주도력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이 같은 조직원리에 따라야만 사회주의자 조직은 생산하고 투쟁하며 건설하는 노동대중으로부터 힘을 공급받고 통제되면서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조직의 기초를 생산현장에 놓으려고 정열적으로 활동함으로써 진정으로 노동자계급 정당을 추구하는 조직이라는 점을 조직적 측면에서 분명히 한다.” (사노련, <우리의 입장> 해설)

    c. 지역과 현장

    ○ 현장이란 공간 속에서 일상적으로 맺어지는 관계 속에서 노동자들은 계급적 동질감을 획득할 수 있는 기초를 획득한다. 지역의 동네에서는 중간계급 심지어는 중소자본가들과 이웃일 수 있다. 여기서의 동질감이란 ‘쓰레기 문제’, ‘도로 문제’ 등 개량주의적 쟁점들에 주로 머물며, 게다가 중간계급이나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은 구분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다르다. 여기서는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통제하며 전권을 휘두르는 자본가, 그의 지시 명령을 집행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일하고 있고 고용되는 처지에 있기에 노동자들과의 친화성 또한 갖고 있는 중간계급(이들은 주로 중하층 관리자 층으로 포진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자계급으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노동자의 계급적 각성이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은 후진적인 미조직 현장에서도 이러한 구분은 저변에 깔려 있다. 현장을 술렁이게 만드는 의미 있는 쟁점이 발생한다면, 대개 이 쟁점은 노동자와 자본가간의 긴장과 대립 관계를 표면 위로 올려놓는다.

    ○ 사실 ‘현장에서 맺어지는 노동자들 사이의 관계’란 실로 엄청난 것이다. 깨어 있는 시간 중, 심지어 부부 사이에 갖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동료들과 보내는 것이다. 또한 현장은 그 어떤 공간보다 더 단순명쾌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마지막으로 매일 매일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긴장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노동자가 하나의 동질적 계급으로 형성되고, “노동자계급”으로서의 자각과 면모를 획득하게 되는 출발점은 바로 현장이다.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단련되고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계급이 자본에 맞선 계급투쟁을 발전시킨 경우, 나아가서 노동자 혁명으로 도약했던 경우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렵다.

       실제로 노동자권력을 향한 결정적 투쟁 국면이 성숙했던 모든 상황은 항상 “현장 단위의 격렬하고도 일상화된 노동자투쟁”을 기초로 삼고 있었다. 현장에서의 경제투쟁을 연료로 삼지 않는 명실상부한 노동자 정치투쟁, 정치총파업은 현실에서 존재한 바가 없다. ‘현장에서의 활발한 노동자투쟁’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한국의 선진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꿰뚫어보았다. ‘현장권력 쟁취투쟁’이란 당시의 보편적 구호는 아주 명료하게 이론적으로 정식화되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의 노동자투쟁과 현장에서의 노동자 주도성의 발전”이 “노동자권력을 향한 기초”임을 본능적으로 자각한 선진노동자들의 날카로운 직관을 표현한 것이었다.

    ○ “단위 현장에 기반한 실천과 투쟁”의 참된 가치와 결정적 중요성을 무시하고, 이를 ‘조합주의나 단사주의’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지식인들의 관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그 반대다. 단위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전개하는 자본에 맞선 전투, 여기서 일상적으로 획득하고 발전시키는 자본주의 착취에 대한 증오, 여기서 일상적으로 이룩해내는 일의 성격·고용형태·나이·성별·인종과 무관한 현장 노동자들의 총단결, 여기서 일상적으로 이뤄내는 부르주아적 윤리·가치관·세계관에 대한 투쟁, 여기서 일상적으로 키워내는 노동대중의 지도자에 대한 통제능력, 부르주아적 요소에 단호하게 맞설 수 있는 진정한 지도자 층의 발굴과 형성 등이 없이 어떻게 “조합주의와 단사주의”를 넘어설 수 있단 말인가! “조합주의와 단사주의”에 맞선 투쟁은 단위 현장이란 근거지를 초월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다. 단위현장을 이 투쟁의 “근거지”로 조직해내는 일상적 실천에 확실히 기반함으로써만 이 경계를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하는 것이 비로소 가능해지며, “확장”이 참된 의미와 가치를 획득한다. 혁명정당과 노동자권력이 “현장 사회주의 분회”와 “현장 소비에트”를 근간으로 해서 형성되고 작동하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 ‘현장에 기반한 실천’을 “토대에 두고서”, 이제 ‘지역과 전국, 세계’로 노동운동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제기된다. ‘현장권력 쟁취’로 표현되는 진정하고도 진지한 현장 실천은 자연발생적 힘으로 단위 현장의 범위를 넘어서는 계급적 운동으로의 확장의 문제를 제기한다. 노동자계급 단결투쟁의 범위를 넓히지 않고서는 자본가 국가의 개입(경찰과 검찰, 부르주아 법률)에 맞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전체로서 연결되어 있는 자본주의 착취사슬에 대항할 수 없다는 점이 투쟁 자체의 논리에 의해 그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장 단위의 거센 투쟁에서 출발했던 1987년 노동자투쟁은 그 자체의 논리에 의해 단 몇 주만에, 아니 (당시의 투쟁했던 노동자들의 심장 속에 박힌 정신이라는 각도에서 보자면) 단 며칠만에 지역적·전국적 운동으로 도약했다. 지역단위로 조직된 전노협 운동의 탄생배경은 그것이었다. ‘현장운동의 활성화’는 ‘지역운동’을 밀어낸 것이 아니라 ‘지역운동’을 비로소 활성화시켰다. 다만 여기서의 ‘지역운동’은 더 이상 이러저러한 시민단체들의 몰계급적 지역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장 전투’에서 형성된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화해불가능한 대립과 노동자계급의 관점을 반영한 “노동자계급의 지역적 총단결”로 나타났다. 노동자계급운동의 단결이 확장되는 것의 공간적 반영으로서 지역운동을 정의한다면, 이 지역운동이 진실로 생명력을 갖고 탄생하고 계급적 성격을 부여받았으며 그 결과 노동대중의 열렬한 호응을 끌어낼 수 있었던 모범적 시기는 바로 전노협 운동 시기였다. 다만 당시의 운동세력은 이 자연발생적인 지향과 흐름을 더 촉진하고 일관성을 부여하며, 더 빠르게 명료한 조직적 형식에 도달하도록 지원하고 안내했을 뿐이었다.

    ○ 그런데 사노준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지역운동과 노동운동이라는 두 범주를 설정한다 하더라도 이 양자를 각각 독립된 활동범주로 설정해서는 안된다. 지역운동은 노동운동으로부터의 자립화된 것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며, 노동운동은 지역운동의 든든한 배후지가 되어야 한다. 지역운동과 노동운동은 노동자계급 단결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존재양식이며, 노동자계급의 민중에 대한 지도력을 형성하기 위한 실질적 운동방식이다.” (사노준 장혜경, ‘변혁전략’ 발제문,)

       여기서 장혜경 동지는 “지역운동과 노동운동”이라는 두 범주를 설정하고 있다. 이 범주 구분은 틀렸다. 단 하나의 범주만 존재한다. “노동(자계급)운동”이라는 범주 말이다. 이 노동운동이 포괄하는 직접적 범위라는 측면에서만 ‘단위 현장’과 ‘지역’이 구분될 수 있다. 단위 현장에서 수행하는 것은 노동운동이고, 지역에서 수행하는 것은 지역운동이라는 구분은 옳지 않다.

       그러나 개념 논쟁을 할 생각은 없다. 만일 “이 양자를 각각 독립된 활동범주로 설정해서는 안된다. 지역운동은 노동운동으로부터의 자립화된 것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며, 노동운동은 지역운동의 든든한 배후지가 되어야 한다. 지역운동과 노동운동은 노동자계급 단결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존재양식이다”는 그 다음의 규정이 사실이라면, 그래서 내가 b, c 항목에서 정식화한 입장과 근본에서 다르지 않다면, 결코 다툴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역운동”이란 개념은 “노동운동”이라는 개념과 명백히 구분되는 “독립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실천적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대목인데, 이 부분은 다음에 이어지는 “사회운동에 대한 태도”에서 연동짓고 확장해서 다룰 대목이기도 하다.

       장혜경 동지의 발제문에서는 지역운동이란 개념이 노동운동과 구별되는 독립성을 갖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존재하고 있다. 최소한 너무 추상화되어 그 의미가 불명료하다.

    “지역은 대중들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삶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현재 지역은 지방 토호세력-관료-시민단체의 유착이 구조화되고,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세계화-지방화’(지역경쟁력-국가경쟁력 강화)가 추진되면서, 지역의 노동자민중을 개발주의 이데올로기로 포섭하거나, 가난한 민중의 삶의 터전을 뿌리뽑아 나가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민중의 이해와 요구가 일상에서부터 터져 나올 수 있는 공간인 지역을 투쟁과 변혁의 거점으로 삼아나가지 않는다면, 자본과 지배세력의 지배/장악력을 무력화시킬 수 없다. 지역은 자본과 권력에 맞선 일상적이고 총체적인 저항의 ‘공간’, 제 운동주체들의 일상적 연대가 이뤄질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사노준 장혜경, ‘변혁전략’ 발제문)

       여기서 장혜경 동지는 “노동자민중의 이해와 요구가 일상에서부터 터져 나올 수 있는 공간”이자 “자본과 권력에 맞선 일상적이고 총체적인 저항의 ‘공간’”으로 지역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성격의 지역인가?”, “어떻게 노동자 민중의 이해와 요구가 일상에서부터 터져나올 수 있고, 자본과 권력에 맞선 일상적이고 총체적인 저항이 자라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 만약 현장 단위의 노동자투쟁을 확고한 진지로 삼고, 이것이 자연스레 전면에 부각시키는 ‘경찰과 용역깡패에 맞선 투쟁, 노동악법에 맞선 투쟁, 투쟁사업장에 대한 연대, 실업노동자들과의 연대, 임금삭감 없고 노동강도 강화 없는 노동시간 1일 6시간 단축으로 고용보장과 일자리 늘리기 등의 노동자투쟁’의 필요성을 지역에서의 노동자 연대투쟁으로 상승시키는 것이 지역운동의 가장 결정적인 의미라면 전적으로 찬성한다. 그래야 “지역으로 정치활동을 확장해 가야 한다”(사노준 장혜경, ‘변혁전략’ 발제문)는 지적이 참된 의미를 갖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혼란이 뒤따른다. 가령 바로 뒤에서 “현장에서는 전투적/계급적일지라도 일상생활에서는 소시민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노동자의 상태를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지역의 조건과 주체역량에 따라 지역운동에 대한 일차적 선택지는 달라질 수 있다”(사노준 장혜경, ‘변혁전략’ 발제문)는 언급은 이해하기 어렵다. “현장에서는 전투적/계급적일지라도 일상생활에서는 소시민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노동자의 상태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만약 존재한다면, 그 결론은 “현장과 별도의 지역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전투적/계급적 운동의 고양은 일상생활에서의 소시민의 모습을 깨는 가장 확실한 장치”이며, “양자는 정확히 비례”한다.

       이렇게 규정해야 맞다고 본다: “현장에서 전투적, 계급적 운동의 고양은 지역의 노동자투쟁과 연대를 활성화시키고, 그리하여 지역운동이 현장과 분리되지 않고 소부르주아 시민단체의 지역운동과 섞이지 않으면서 노동계급적 독립성을 갖고 노동운동의 일부로서 전진할 수 있도록 돕는 기초가 된다. 이 기초에 튼튼히 의지하면서 (즉 ‘단위 현장에서의 진지 구축을 지역운동에 대한 일차적 선택지로 분명히 하면서’), 우리는 이것을 지역 차원의 노동자 연대투쟁과 정치투쟁으로 상승시키기 위해 더욱 분투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단위 현장 차원의 노동운동과 지역차원의 노동운동이 뗄 수 없는 하나로 작동하면서, 전국적·세계적 노동운동의 밑바탕이 되도록 분투할 것이다.”

    ○ 지역운동에 대한 강조가 다음의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그것도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가령 현장 기반을 갖지 못하는 실업자들의 운동, 혹은 안정적인 현장 기반을 갖기 힘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운동을 조직하는 측면에서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장에 거점을 두는 운동노선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그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다만 ‘어떤 현장운동이냐’가 문제가 될 뿐이다.

       혁명운동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간헐적이고 돌출적인 방식이 아니라 일상적인 방식으로 노동자투쟁과 단결, 운동을 조직해내야만 한다. 그 거점은 분명 현장이다. 현장으로부터 벗어난 노동자들은 일시적으로 폭발성을 드러낼 수는 있지만, 그것은 명료하고 일상적인 조직형태와 자본에 맞선 일상적인 투쟁을 건설하기 어렵다. 오직 현장의 조직된 운동과 연결될 때만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자. 지역 수준에서, 전국 수준에서 이들을 조직하고자 하는 다양한 단체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단체들이 ‘안정적인 대중조직’으로 기능하고 뻗어나갈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전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볼 수도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또한 현장에 기초한 방식으로만 대리주의적 방식이 아니라 주체적 방식으로 형성되고 노동자계급의 투쟁으로 수렴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전개되는 비정규직 투쟁, 그리고 조직된 비정규직 운동은 현장에 기반하고 있다. 이들은 현장에서 전개되는 업체별 투쟁, 그리고 이 업체별 투쟁을 확장한 공장단위 비정규직 공동투쟁, 나아가서 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공동투쟁을 통해서 계급의식을 습득하고 초보적인 조직적 진지들을 구축하고 있다. 일상적이고도 총체적인 저항의 일차적 공간은 바로 거기다. 또한 아무리 정규직들이 보여주는 현재의 상황이 처참하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부문주의(정규직과의 분열)를 뚫고 노동자계급의 단결이라는 방향에서 주체화되고 주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일상적으로 훈련되는 공간도 바로 현장이다.

       지역 수준에서 조직되는 비정규직 운동은 물론 존재한다. 가령 건설노동자운동, 화물노동자운동과 같은 것이 거기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장이 거점이 되고 있다. “대규모 건설현장”, “대규모 물류업체”를 중심으로 하는 중핵대오가 이들의 투쟁과 조직을 이끈다. 이 중핵이 파괴된 건설·화물투쟁과 운동을 거론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또한 여기서 지역이란 현장과 구분되는 일반적 의미의 지역이 아니다. 이들이 지역단위로 결집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이들이 일하고 투쟁하는 “현장”이 ‘지역’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는 특수성을 반영할 뿐이다. 이러한 특수성은 건설이나 플랜트 노동자들이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일한다는 특성 때문에 ‘전국적 수준의 조직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들에겐 현장이 바로 전국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역과 현장은 하나로 일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 이제 실업노동자들과 연관지어 살펴보자. 다음의 주장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현재 조직노동자운동(민주노조운동)으로 협소화된 노동운동의 주체를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공황의 심화에 따라 실업․반실업 노동자의 투쟁이 촉발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제까지 정규-비정규 연대로 표상되었던 노동자연대의 기치는 ‘고용-실업 노동자의 연대’로 확장되어야 한다. 실업/비정규노동자의 조직화양식은 굳이 노조를 통한 조직화 양식으로 협소화시켜서는 안된다.” (사노준 장혜경, ‘변혁전략’ 발제문)

       또한 다음의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있다.

    “현장 안 노동자 내의 차이를 넘어 단결하는 투쟁과 현장 밖(지역/거리)에서의 실업(반실업)과 연대하는 투쟁을 조직해 냈을 때, 노동운동은 계급적으로 강화될 수 있다.” (사노준 장혜경, ‘변혁전략’ 발제문)

       지역/거리에서 실업노동자들과 연대하는 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전적으로 노동운동의 필수적 과제 중 하나다. 특히 실업노동자들의 경우, 소속된 현장이 없기에 이들의 운동을 담아내는 틀로 지역과 거리가 강조되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우선 이 실업노동자들을 ‘지역’의 틀로 조직하는 것은 “울산실업노동자 조직” 혹은 “울산 실업자노조”, “울산 실업노동자 평의회” 등 노동운동의 한 형식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지, 그것과 별개의 지역운동을 가정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 실업자운동을 노동자계급운동의 일부로 통합해내고, 진정으로 일상적인 투쟁으로 발전시켜내기 위해서는 “조직된 노동자계급운동”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실업문제 해결, 일자리 늘리기”를 내건 조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일상적이고도 전면적으로 수행될 때만, 파편적이고 분산되어 있는 실업노동자들이 노동운동에 대대적으로 결집하고 조직된 노동자들과 차이를 넘어 단결하는 길이 현실적으로 열릴 수 있다. 그렇기에 ‘현장’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자운동이 계급화되고 정치화되는 것을 중심에 놓고, 이것을 바탕으로 실업노동자들과의 연대와 지역적·전국적 수준의 공동투쟁(가두 투쟁 포함)으로 나아가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 더 분명한 정식화라 본다.

    ○ 결론짓자면 건설·화물 등 분야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실업노동자들과 같은 노동자계급 부위를 노동운동으로 조직해야 할 ‘특수한 과제’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단위 현장을 뛰어넘는 지역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는 다른 맥락에서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d. 사회운동에 대한 태도

    ○ 사노준에서 제기하는 “21세기 사회주의”란 개념은 구 소련 등의 소위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그리고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퇴행 등 문제 앞에서 사노준이 제기하는 핵심적 화두라 여겨진다. 사노준에 따르면 “21세기 사회주의는 의제의 확대나 의제의 종합이 아니라, 사회주의 이념과 운동, 주체의 재구성과 확장”인데, 이 재구성과 확장에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 부분이 “여성/환경/소수자 운동의 성과와 문제의식을 적극 수렴”(사노준 장혜경, ‘변혁전략’ 발제문)해 내는 것이다. 이것은 주체의 재구성과 확장으로 이어진다. “여성/환경/소수자 운동”과 같은 “사회운동”을 사회주의운동의 주체로 흡수함으로써 사회주의운동을 확장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운동”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 “현대사회에는 계급모순과 연관되어 있지만 계급모순으로 단순히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모순들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운동(환경, 여성, 장애, 인권운동)들이 전개되고 있다. 또 신자유주의 전면화와 자본주의의 지배력 강화 속에서 자본에 대항해 노동자민중의 삶을 지켜 내거나 자본운동질서에서 벗어나려는 다양한 대안 운동(교육, 의료, 미디어, 문화 운동)들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 영역에 대한 자본의 영향(지배)력은 아직 막강하고, 시민운동진영이 이 운동을 선점․주도하고 있다.” (사노준 장혜경, ‘변혁전략’ 발제문)

    ○ 이 주장은 시민운동진영이 선점하고 있는 사회운동영역을 사회주의운동이 빼앗고 주도함으로써 21세기에 걸맞는 사회주의 운동을 조직해낼 수 있다는 주장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환경, 여성, 장애, 인권운동” 등의 사회운동에 대한 태도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혁명적 사회주의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이에 대한 혁명적 사회주의의 태도를 드러내며, 개입할 필요성이 있다. 여기까지는 맞다. 그러나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각각에 어떤 비중을 둘 것인가?”, “어떠한 관점으로 접근하고 개입하는 것이 진정 혁명적 사회주의다운 개입인가?”, “나아가서 이러한 개입이 개량주의적, 소부르주아적 개입과 구별되는 기준은 무엇인가?”의 문제에 제대로 답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할 수 있다.

    ○ “환경, 여성, 장애, 인권운동” 등의 사회운동 영역에서 자본의 영향력이 막강하고 시민운동영역이 선점하여 주도권을 형성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혁명적 사회주의의 개입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너무나 단편적인 접근법이다. 엥겔스는 “주택문제”에서 ‘주택, 여성, 추상적 인권’ 등의 분야에 중간계급이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중요한 사회적 화두로 제기하는 것은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반영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왜냐하면 이런 분야는 “노동과 자본 사이의 적대적 노자관계”를 직접적으로 반영하지 않으며, 계급적 쟁점을 희석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여성해방’의 문제를 다뤄보자. 부르주아, 소부르주아 여성주의자들은 ‘여성해방’을 여성들이 남성과 똑같이 사장이 되고, 승진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으로 사고한다. 이들은 “여성 일반 대 남성 일반의 대립구도”를 만들어낸다. 이 대립구도는 “노동자계급 대 자본가계급”이라는 절체절명의 계급적 구분선을 희석화하거나 해체한다. 이들은 여성 노동자들이 여성해방을 달성하기 위해 ‘여성노동자의 일할 권리, 여성노동자의 임금인상’을 제기할 때, 침묵하거나 적대시한다. 결국 그들은 노동과 자본 사이의 대립 문제에서 기권하거나 철저히 자본의 편에 선다. 이것은 노자관계에서 부르주아 여성들은 노동자계급 여성들의 적이라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것은 철저히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르주아 여성주의에 빠져들 때, 여성노동자들은 여성 부르주아를 포함한 자본가계급에 맞서 남성노동자들과 단결하기보다는 계급투쟁을 잊고 분열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반면 노동자는 계급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만 비로소 노동계급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다. 혁명강령은 여성 부르주아를 포함한 자본가계급에 맞서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사상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이 계급적 단결사상은 여성 노동자들의 해방을 위한 결정적 무기가 된다. 계급적 단결투쟁사상은 여성노동자들을 사회적 주체로 서지 못하도록 가두는 결정적 굴레 중 하나인 ‘여성의 사회적 일자리를 박탈’하고 집안에 가두는 모든 것에 맞서 투쟁하도록 만든다(가령 ‘여성을 비롯한 모든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보장하라. 여성을 비롯한 모든 노동자들에게 해고를 금지하라’는 요구). 동시에 이 계급적 관점은 노동자계급 내부에서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어떠한 차별도, 억압도 노동자계급의 이름으로 허용하지 않으며 단호하게 응징한다. 여성 노동자들을 차별하거나 억압하는 남성 노동자들, 여성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 문제에 단호하게 실천하지 않는 모든 노동운동에 대해 비판하며 단호히 내부투쟁한다. 여성노동자들이 주체화되어 자신에게 씌워진 온갖 굴레를 내던지는 과정도 바로 노동자계급 단결투쟁을 통해서이다.

    ○ 만약 그렇다면, 노동운동과 분리된 별도의 운동으로서 ‘여성운동’을 상정할 이유는 전혀 없다. ‘별도의 운동’을 상정하는 순간, 그리고 이 별도의 운동이 노동운동과 결합하는 것을 상정하는 순간, 이러한 종류의 여성운동은 자립화된다. 그래서 중간계급 여성운동으로 변질되기 쉽다. 이 점을 반드시 전제한 뒤, 우리는 다음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여성의 완전한 해방’은 자본주의를 철폐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부르주아 여성들의 경우, 이들은 이미 해방되어 있다. 그녀들은 사장이 되고, 수상이 된다. 중간계급 여성들도 주요한 권리들을 상당 부분 획득했다. 만약 부르주아 여성들이 부르주아 남성들로부터 진정한 독립성과 자주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유산계급이 갖는 고유의 룸펜성(기생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계급 여성들에게는 문제가 다르다. 그들은 남성과 대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기초인 ‘사회적 활동, 경제적 기반’을 상당 부분 빼앗기고 있다. 또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그녀들을 덮친다. 자본주의 실업문제는 이에 맞선 투쟁과 단결을 봉쇄하기 위해 끊임없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유포하기 때문이다. 이는 남성노동자들에게도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내면화되도록 부추긴다. 그래서 모든 여성들의 완전한 해방은 자본주의 하에서는 불가능하다. 사회주의만이,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의 확대만이 여성에 대한 모든 억압을 깰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의 실천적 결론은 무엇인가? 노동자계급 총단결, 즉 계급투쟁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온갖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 가부장제적 흔적들을 노동운동 내부의 자기정화 투쟁을 통해서 극복해내는 것이다. 이것이 노동운동과 별도의 사회운동으로서 여성운동을 가정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반대로 노동운동으로부터 자립화된 별도의 사회운동으로서 여성운동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부르주아, 소부르주아 여성주의에 놀아날 위험성이 크다!”

    ○ 이제 마지막 과제를 정리해보자. 여성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투쟁하고자 하는 진지한 투사들이라면, 그들은 자본주의 철폐 없이는 그것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할 것이다. 남는 것은 이 진지한 투사들을 사회주의 운동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이다. 이것은 여성에 대한 억압에 맞선 이들의 투쟁을 (물론 선별해서) 사회주의 노동운동이 지지하되, 그 혁명적 결론을 그 운동의 선진투사들에게 불어넣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으로 구성된다: “첫째, 여성 문제는 자본주의 제도로부터 발생하며, 자본주의 극복 없이는 해결불가능하다는 점을 적극 제기하는 것이다. 둘째 이것을 노동자계급에게 고유한 계급적 투쟁요구로 표현하는 것이다. 단지 ‘여성에 대한 승진차별을 철폐하라’는 구호에 멈춰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부르주아 여성이나 소부르주아 여성의 요구와 구별되지 않는다. 노동계급 여성의 중요한 요구들을 전면에 부각시켜야 한다. “모든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보장하라. 여성을 비롯한 모든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를 금지하라.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이 그러한 요구의 표현들이다. ‘가사 노동’에 대해 ‘자본가들의 세금으로 사회적 임금을 지급하라’는 요구처럼 여성 문제를 계급투쟁의 쟁점으로 이동시키는 것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가사 노동”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가사 노동의 사회화” 그리고 “여성들을 부엌에서 해방시켜 사회적 활동으로 전진시킨다”는 사회주의 강령을 반드시 결합시켜야 한다. 셋째 이러한 혁명적 결론을 받아들이는 투사들을 그것이 지시하는 단 하나의 실천적 결론인 혁명적 계급투쟁 즉 혁명적 노동운동 건설을 위해 투신하라는 결론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계급은 여성운동 속에서 최선진적인 부위를 사회운동을 뛰어넘어 노동자 혁명투쟁에 결합하고 이것에 복무하는 가치 있는 인자로 획득해나가야 한다.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라는 양날개로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을 쪼개고, 그 뒤 양자의 연결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 노동운동이라는 단 하나로 통합시키면서 사회운동이 배출한 가장 선진적인 투사들까지도 혁명적 노동운동으로 흡수해내야 한다! 당연히 그들, 그녀들은 별도의 사회운동이 아니라 혁명적 노동자투쟁에 결합해 헌신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진정한 여성해방의 길을 가는 진지한 투사임을 입증해보여야 한다.”

    ○ 그렇기에 사노련의 <우리의 입장>에 실린 노동운동과 관련된 모든 요구들은 동시에 여성노동자들, 여성의 완전한 해방과 연결된 주요한 요구다. 아울러 우리는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특수한 요구들을 거기에 결합시키고 있다. 이것들은 물론 대단히 불충분하다. 세부적 항목들은 수정되거나 새롭게 보완해야 한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혁명적 사회주의의 정신은 고수해야 할 기본 정신이라 믿는다.

    ○ 노동운동이 포괄하는 범위를 “교육, 의료, 미디어, 문화” 등의 영역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의심할 바 없이 옳다. 그러나 여기서도 분명히 질문해야 한다. 그 확장이 “노동운동과 별도의 사회운동으로의 확장을 뜻하는가?” 아니면 “노동운동이 더 명확한 사상과 노선을 가지고 그 분야에서까지 진군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후자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전자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 우선 노동운동은 이미 그 분야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는 “전교조, 탁아소 유치원 노조”, 의료 분야에서는 “병원노조”, 미디어분야에서는 “언론산업 노조”, 문화 분야에서는 “세종문화회관 노조, 오페라 노조” 등. 그렇기에 그 분야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발전시키는 것은 이러한 분야에 있는 노동자들의 운동을 발전시키는 것에서 출발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진행해야 한다. 바로 이 노동자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이들에 의해 이 분야에서 사회주의 방책들이 실현되도록 만드는 것, 나아가서 이들이 사회주의를 향한 노동자계급 전체의 투쟁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되도록 안내하는 것, 바로 이것이 접근의 핵심이다. 여기서도 별도의 사회운동을 가정할 이유는 없다. 바로 이 노동자들 속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발전시키고, 교육, 의료, 언론, 문화 등의 분야에서 전체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과제를 앞세워 투쟁을 선도하도록 이끄는 것처럼 중요하고 실제로 위력적인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 다음으로 “교육, 의료, 언론, 문화” 등의 문제들은 노동자계급 전체와 연결되어 있는 노동자적 쟁점들이며, 또한 오직 그런 방향에서만 그 문제들에 접근해야 한다. “아이 교육”,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 “노동자를 위한 언론과 문화 쟁취” 등의 과제들은 노동자들의 관심사와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 그렇기에 이런 분야에 대한 대응은 노동운동의 필수적 항목으로 간주해야지, 별도의 사회운동적 영역으로 바라볼 이유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자본운동질서에서 벗어나려는 다양한 대안 운동(교육, 의료, 미디어, 문화 운동)들이 전개”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여기서도 여성운동에 대한 태도와 동일한 태도를 적용해야 한다. 이런 대안 운동에 종사하는 진지한 사회운동가들에게 혁명적 노동운동은 “사회주의적이고 노동계급적인 해결책과 그것을 반영하는 급진적 투쟁요구들을 제기”하며, 노동운동의 힘(가령 교육, 언론, 미디어 노동자들의 파업투쟁, 나아가서 이 분야에서의 노동자계급 요구를 내건 노동자 총파업)을 바탕으로 “오직 혁명적 노동자계급운동만이 그들이 추구하는 대안을 실현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이 분야의 사회운동가들의 가장 선진적인 층이 노동운동에 합류하고, 이 노동운동의 혁명화에 헌신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또한 그들이 가진 모든 재능과 지식들을 이 분야에서 노동자계급운동이 올바른 정책을 내걸고 투쟁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에서 쏟도록 이끌어야 한다.

    ○ 이상이 사회운동에 대한 우리의 태도다. 그런데 이와 달리, 노동운동과 구분되는 사회운동을 가정하고, 심지어는 이러한 사회운동과 결합하는 것이 노동운동이 조합주의나 개량주의, 관료주의를 뚫고 혁명화되고 정치화될 수 있는 길이라고 사고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은 몰계급적인 사회운동의 영향력에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자운동의 문호를 활짝 열어줄 위험성이 있다. “여성/환경/소수자 운동의 성과와 문제의식을 적극 수렴”하는 것도 그 필수적 전제가 충족되고, 그 의미가 분명해지지 않는다면, 노동운동을 몰계급적 사회운동의 수준으로 추락시키는 위험 요소가 있다고 본다. “계급모순으로 단순히 환원될 수 없는 환경, (여)성, 소수자의 관점과 의제를 포괄하는 사회주의로 확장․재구성”이란 주장도 일반적인 사회운동의 가장 큰 위험성―‘노동자계급 대 자본가계급,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라는 명확한 계급적 대립선의 희석화―을 경시하고, 오히려 이 경계선을 모호하게 할 약점이 있기에 위험하다고 본다.

    e. 대중행동강령(이행 강령)

    ○ 지금부터 다룰 문제는 “이행 강령”과 연결되어 있다. 민주주의 투쟁의 과제, 부분적 요구 투쟁의 과제는 아무리 혁명적인 사회주의 정당일지라도 피할 수는 없다. 완벽한 민주주의 사회로서의 자본주의 체제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노동자계급은 해방투쟁을 위해 더 많은 민주주의적 권리를 필요로 한다. 뿐만 아니라 부분적 요구 투쟁에서 얻은 경험과 단결, 투쟁력의 발전을 통하지 않고서는 노동자계급은 완전한 해방투쟁으로 전진할 수 없다. 여기까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혁명적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적, 부분적 요구들” 중에서 “노동자계급의 혁명투쟁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부분과 부차적이거나 쓸모없는 부분을 구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주어진 사회발전 단계 및 노동자계급투쟁의 발전 단계에 걸맞는 적절한 요구”를 선별해서 힘을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사회주의 혁명의 전진을 위한 혁명적 계기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 가령 “언론” 분야의 예를 들자. 부르주아 야당은 언론이 집권여당에 의해 장악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언론의 중립성”을 전면에 제기한다. 그들이 문제제기하는 것은 언론의 “부르주아적 속성”이 결코 아니다. 다만 언론은 여와 야 부르주아 정당에 모두 중립적인 균형감각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간계급 시민단체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언론의 국민 통제”를 요구한다. 부르주아계급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중간계급 국민들의 요구를 반영하게 만들면, 언론을 중간계급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통로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의 입장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레닌과 볼셰비키 당의 실천, 그리고 1917년 러시아 노동자 소비에트의 실천이 정확한 답을 보여준다.

       혁명적 사회주의는 “언론의 중립성” 대신 “언론의 당파성”을 제기한다. 언론이 계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환상을 맑스주의는 배격한다. 혁명적 사회주의는 현재의 언론이 “자본가계급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는 점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폭로한다. 그리고 그렇게 장악되어 있는 것이 자본가들, 자본가 국가에 의한 언론기구 소유와 운영이라는 권력의 문제 및 소유권의 문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그 뒤 맑스주의는 “노동자계급의 당파적 언론 건설”의 길을 제시한다. 우선 언론기구가 노동자권력 및 자주적인 노동자 기구에 의해 소유되고 운영될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것을 위한 구체적 강령으로 “노동자권력에 의한 모든 언론기구의 국유화, 노동자권력 및 언론사 노동자 소비에트에 의한 언론기구 운영, 통제” 등을 내건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것을 향해 노동운동이 다가서도록 돕는 “이행 강령”을 제기한다. 이것은 언론기관에 대한 ‘국민주제도’, ‘편집권 독립’ 등의 소심한 요구와는 명백히 차원을 달리 하는 것이다. 가령 우리는 “언론기관에 대한 국유화”를 제기한다. 동시에 “언론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에 의한 언론기관의 통제권”을 제기한다.

    ○ 이는 주택 문제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철거 반대”는 물론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그러나 혁명적 사회주의 강령은 철거 반대에 나서는 가난한 민중의 생존권을 단순히 보호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을 넘어서서 철거반대에 나서는 소부르주아 하층들을 혁명적 사회주의투쟁으로 이끄는 주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혁명적 사회주의는 주택과 토지 문제들을 “자본주의 착취와 이윤논리”와 연결지어 설명하며, 이것의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토지의 국유화”, “1주택 이외의 모든 잉여 주택의 몰수, 그리고 가난한 노동자 민중에게 분배”를 내걸어야 한다. 이것은 부르주아적 소유권에 대한 도전임과 동시에 노동자권력을 향한 준비의 항목으로 배치된다. 만약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투쟁요구를 전면에 내걸고 전진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투쟁이나 부분적 요구 투쟁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의 독립성과 지도성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말로는 “민주주의 혁명에서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전화라는 2단계 혁명론”을 거부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 혁명론자, 정확하게는 지금 한국 단계에서는 민주주의자들의 꼬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상의 문제의식은 민주주의 투쟁, 더 중요하게는 노동자의 부분적 요구투쟁을 이끄는 실천강령으로서 “이행강령”으로 집약되어야 한다.

    ○ 이제 우리는 이행강령의 영역에 본격적으로 들어선다. 이 영역에서의 진지한 고민은 한국에서 1980년대에 유행했던 2단계 혁명론의 낡은 유산을 극복하고, 이것을 강령논의에 반영하는 데서도 중요하다. 1900년대 초의 러시아에서는 ‘민주주의 혁명’이 필요했다. 이미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적대성은 현장에서 격렬한 파업투쟁으로 시작되었지만, 정치권력 수준에서는 여전히 봉건 짜르체제가 온존함으로써 정치투쟁의 대상과 경제투쟁의 대상 사이의 불일치가 발생했다. 이것은 자본가계급에 맞선 노동자 사회주의 투쟁의 전면화를 가로막았다. 게다가 봉건지주들의 광범위한 존재는 인구의 90%에 달하는 농촌에서 “농업노동자, 빈농, 소농 대 부농, 농업자본가” 사이의 계급투쟁(이것 없이는 사회주의로 전진할 수 없다)이 가로막혔다. 왜냐하면 농업노동자, 빈농, 소농들은 ‘지주에 맞선 투쟁’에서는 부농, 농업자본가와 함께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 앞에서 러시아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민주주의 혁명을 수행하고 이를 통해 계급투쟁을 전면화시켜 사회주의로 진격한다”는 노선을 채택했다. (이 노선이 실제 1917년 현실에서 얼마나 정확한 노선으로 입증되었는가는 별도의 문제다. 민주주의 혁명을 제기했을 때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기본 정신이 무엇인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지금 핵심이기 때문이다.)

    ○ 이와 같은 혁명적 사회주의의 정신은 민주주의 혁명의 단계가 이미 지나가고 순수하게 사회주의 혁명의 단계에 도달한 지금의 한국에서는 “민주주의 투쟁과 부분적 요구 투쟁”을 “사회주의 혁명 투쟁의 관점”에서 이끌고 인도하는 “이행 강령”의 정신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만일 1900년대 초의 레닌이 “2단계 혁명의 과제”에 직면해 제기했던 민주주의 투쟁의 의미를 채용해서, 지금 한국에서 “민주주의 투쟁이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전개해야 할 필수적 투쟁”이라고 단순화시켜 제기한다면 그것은 정확히 낡은 2단계 혁명론의 유산을 반영하는 것이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요구들을 쟁취하는 것이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진하는 데서 우선적인 ‘전제 조건’으로 제기되었지만, 2009년 한국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과제들은 대부분 해결되었다. 미완의 민주주의적 과제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또한 어느 자본주의 나라든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당시 러시아 상황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제기된다. 이것들은 “노동자계급 민주주의” 즉 사회주의 혁명과의 연관 속에서, 그리고 사회주의의 혁명적 요구들과 연결되어 제시되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라는 혁명적 방식으로서 제기해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2단계 혁명론을 극복하려면, 민주주의 영역과 같은 정치적 영역에 개입해야만 조합주의, 경제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교조적 선언 대신 “2009년의 사회주의 혁명 단계에 걸맞는 민주주의 투쟁의 성격―이것은 사회주의 투쟁에 종속되어야 한다―과 그것을 반영하는 구체적 요구강령을 정식화하는 데로 전진해야 한다. 그 뒤 이 강령의 기준 아래 선전, 선동, 실천 조직화가 뒤따라야 한다. 그래서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이행의 한 고리로 민주주의적 과제들을 재정리하고 편입시켜야 한다.

    ○ “이행강령”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영역은 2009년 현 단계에서는 사실 “민주주의 투쟁”의 영역이 아니라 “노동자의 부분적 요구 투쟁”의 영역이다. 레닌은 “러시아에서 1900년대 초반에 민주주의 투쟁의 과제가 특별히 부각되었다면, 그것은 러시아의 후진성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경제투쟁의 대상과 정치투쟁의 대상이 상당히 어긋나 있었던 러시아의 특수한 발전단계를 반영했다. 반면 엥겔스가 말년에 유럽 사회주의자들에게 그토록 경제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은 경제투쟁의 대상과 정치투쟁의 대상이 일치했던 유럽의 조건을 반영하는 것이다”고 자신의 경험을 술회한 바 있다. 이것은 2009년 한국에서 노동자의 부분적 요구 투쟁이 갖는 결정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정치투쟁을 주로 민주주의 투쟁의 측면에서 다루는 것은 20세기 초반의 러시아에서나 유효성을 갖는다. 2009년 한국처럼 경제투쟁의 대상과 정치투쟁의 대상이 자본가계급으로 일치하는 사회에서는 ‘정치투쟁의 요구는 경제투쟁의 요구와 긴밀한 관련 하에서’ 던져져야 마땅하다. “민주주의 투쟁의 요구가 급진적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수준에서가 아니라 노동자 민주주의(즉 사회주의 혁명)의 수준에서 질적으로 도약하여 재구성되는 것”도 ‘경제투쟁의 요구와 긴밀한 관련 속에서만’ 비로소 완전해진다.

       실제 현실은 그 점을 더욱 명확하게 확증한다. 임금, 고용, 근로조건, 현장에서의 통제권 등을 둘러싼 경제투쟁의 요구들은 전투적 요구로 제시되고 노동자투쟁으로 실물화됨과 동시에 경찰과 검찰, 부르주아 법, 국회 등의 자본가 국가기구 및 자본가 정치기구와의 직접적인 충돌과 대립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말 그대로 ‘자연발생적’으로 ‘경제투쟁의 정치투쟁으로의 도약 및 상호결합’을 탄생시킨다. 이 ‘자연발생성’은 그 자체로 부정적으로 해석할 이유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자연발생적 정치투쟁은 사회주의자의 목적의식적 활동이 결합하지 않는다면, 결코 ‘사회주의 정치투쟁’ 즉 혁명적 정치투쟁으로 도약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혁명정당의 역할은 이 ‘자연발생성’을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자연발생성’을 ‘사회주의 혁명강령의 목적의식성’과 하나로 “통일”시켜내는 것이다. 치욕스런 것은 ‘자연발생성에 굴종’하면서 사회주의 혁명강령에 바탕을 둔 혁명적 정치실천을 포기하는 꽁무니주의이지, 경제투쟁의 과정에서 정치투쟁에 눈을 뜨며 자본가 국가기구와 맞서기 시작하는 대중의 정치적 본능으로서의 자연발생성이 아니다.

       ‘자연발생성과 목적의식성’의 결합은 경제투쟁의 성과들이 의회주의적 궤도 내에, 혹은 급진적 부르주아,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궤도 내에 갇힌 정치투쟁으로 왜곡 변질되는 것을 차단하면서 ‘사회주의 정치투쟁’의 수준으로 경제투쟁의 정치적 성과들을 안내하는 혁명가의 목적의식적 실천에 의해 이뤄진다. 바로 그 점에서 레닌이 ‘자연발생성’에 굴종하는 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제도와 이데올로기에 굴종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비판한 것은 전적으로 옳았다. 이러한 목적의식적 실천을 이끌고 안내하는 실천강령은 혁명을 실질적으로 준비하는 데서 관건적이다. 이행강령의 핵심부는 바로 여기―경제투쟁을 급진화시키고 자본과의 대립을 전면화시키면서, 이것을 ‘자본주의 생산관계 철폐와 노동자권력 수립’이라는 사회주의 정치투쟁으로 도약시키는 다리를 놓는 것―에 맞춰진다. 이행강령을 표현하는 사노련의 ‘대중행동강령’의 대부분이 민주주의 투쟁의 강령이 아니라 노동자의 부분적 요구 투쟁의 강령에 초점이 전적으로 맞춰지고 있고, 정치투쟁의 요구들도 그 맥락에서 재구성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 당장 소수만이 호응하고, 당장에는 현실의 물질적 운동으로 즉각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는 이유로 최대강령으로 표현되는 혁명강령을 포기하거나 그것을 하찮게 여기는 것은 ‘혁명의 안내자’로서의 혁명정당을 포기하는 것이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혁명적 노동자계급의 위대한 잠재력을 불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가 더 필요하다. 사회적 위기 국면(혁명적 계급투쟁의 고양기) ‘이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이며, 이런 실천적 문제의식을 강령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이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을 부단히 현실화시키는 것, 노동자권력의 맹아들을 아끼고 보살피면서 확장해나가는 것이 내용이 될 것이다. 그 점에서 “노동자권력”을 향하여 노동자계급을 준비시키고 주체화시켜야 한다는 문제의식, 그리고 소비에트와 같은 노동자 평의회를 예비하고 그것을 향해 현장노동자들의 의식과 투쟁경험, 조직들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전적으로 정당하다.

        ‘이행강령’은 그 사활적인 문제의식을 ‘강령적 수준’에서 집약한 표현이다. ‘이행강령’은 이러한 준비작업을 표현한 맑스의 ‘최소강령’을 쇠퇴기 자본주의의 상황 속에서 창조적으로 적용한 강령이다. ‘이행강령’에 대한 논의를 확대하고, 그것을 한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과 혁명적 선진노동자들의 모든 지혜와 투쟁경험을 한 데 모아 한국의 현 상황에 구체적으로 적용하여 “혁명강령”에 반영하는 것은 이 “혁명을 위한 준비작업”의 윤곽을 당 건설 투사들이 합의하는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다. 그 점에서 한국 사회주의자들의 강령논의는 이 부분을 반드시 포함해야 할 것이다. 사노련의 ‘대중행동강령’은 완벽함과는 아직 거리가 멀지만, 이러한 논의를 위한 최초의 출발점으로서 선도적 가치를 갖는다고 우리는 감히 주장한다.

    f. 노동자 민중 동맹에 대하여

    - ‘노동자 민중 권력’, 심지어는 ‘노동자 민중 동맹’이란 슬로건도 만약 정확한 의미에서 선동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 “노동자계급의 단일한 의지”가 관철되지만, 민중이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혁명의 요구를 승인하면서 결합하는 것을 표현하는 개념이라면 거기에서 무언가 혐의를 발견하려 하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또한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하는 작업을 더 용이하게 하고, 자본가계급을 더 철저하게 고립시키기 위해 더 많은 수의 가난한 대중들을 사회주의 혁명의 길에 동참시키기 위한 작업은 필요하다. 그 일환으로 “민중”을 사회주의 혁명운동에 통합시키는 지도력으로까지 노동자계급의 활동을 확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말할 필요 없이 정당하다. 그러나 다음의 지점들이 분명해져야만, 이것이 “노동자계급”과 기타 “민중”과의 차이를 망각하고, 나아가서 노동자계급의 고유한 이해와 요구를 희석시키면서, ‘지도자’로서가 아니라 단지 가난한 민중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로 노동자계급을 격하시키지 않을 수 있다.

    ○ 첫째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명확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우선 민중이란 개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노동자계급과 구별되는 존재로서 ‘민중’이란 범주가 의미하는 바는 역사적 시대에 따라 다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시대, 혹은 민주주의 혁명의 한 가지로서 민족혁명의 시대에 민중은 상당히 포괄적이다. 중농, 부농 등을 비롯해, 심지어 자유주의 부르주아, 일부 민족자본가들까지도 민중의 개념에 포괄될 수 있다. 반면 사회주의 혁명의 시대에 민중의 개념에는 더 이상 이들이 포함될 수 없다. 중간계급 하층, 가령 빈농, 영세상인들만이 체제에 맞서 투쟁할 수 있는 잠재력과 이해관계를 가진 민중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민중은 노동자계급과 똑같은 물질적 기초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노동자계급의 평균 수준보다 더 열악한 생활처지에 놓여 있는 극빈자 민중들이라도 그러하다. 쥐꼬리만한 생산수단 혹은 교환수단이라도 소유하고 있는 유산자에 속하며, 집단적 공동생산으로부터 분리된 소생산에 종사하는 민중들은 노동자계급에 비해 결코 자본주의에 맞선 단호한 투사가 될 수 없다. 그들은 항상 자본주의 체제에 크고 작은 미련을 가지며, 자본주의에 맞서 저항하더라도 그들의 물질적 기반 때문에 소부르주아 공동체처럼 실현불가능한 “소부르주아 사회주의”에 집착한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넘어서서 미래로 진군하는 방식 대신 소부르주아들의 전성기인 과거로 회귀함으로써 자본주의에 맞서려는 한계를 불가피하게 드러낸다. 노동자들의 평균 생활수준보다 더 열악할지라도, 그들이 노동자계급의 일부분이 될 수 없고, 노동자계급처럼 자본주의에 맞선 일관된 혁명계급이 될 수 없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이것은 맑스주의의 그야말로 기초적 이론이다.

    ○ 둘째, 계급적 기초가 이처럼 다르므로, 노동자계급은 그들을 전적으로 신뢰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요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도 안 된다. 단순히 그들을 지지하고 보호하는 존재로 굴러 떨어져도 안 된다. 그들의 약점을 정확히 꿰뚫어보면서, 노동자계급은 철저하게 노동자 자신의 계급적 요구―다름 아닌 사회주의적 요구―를 가지고 그들을 지도해야 한다. 그 점에서 노동자계급은 ‘민중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사회주의로 전진하지 않는 한, 민중은 자본주의 하에서 몰락하고 더 고통받는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반드시 제기하면서, 민중이 떨쳐버리지 못한 환상과 한계를 동지적 방식으로 비판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사회주의적 대안’을 던져야 한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모범과 실제의 사례”를 통한 설득의 방식으로 수행할 것이다.

       나아가서 노동자계급은 “노동자계급 대 자본가계급,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라는 경계선을 가지고 농민과 학생, 지식인들을 감히 ‘분열’시킬 것이다. 한마디로 모든 영역에 “계급투쟁을 도입하고 확장”할 것이다. 농민 속에서 농업자본가·부농 대 농업노동자·빈농의 계급대립을, 학생과 지식인 속에서 노동자계급 지식인과 자본가계급 지식인 사이의 계급대립을 확대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다수를 획득하고자 분투할 것이다. 이런 필수적 작업을 하지 않으면, 노동자계급은 ‘민중의 (사회주의적)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꼬리로 전락할 것이다.

    ○ 셋째, 이 ‘사회주의적 대안’에 대해 민중이 쉽사리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은 오산이다. 민중의 물질적 처지는 그들로 하여금 ‘노동자 사회주의’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부르주아 사회주의’에 집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상적 시기에 노동자계급의 힘은 미약하고 자본주의가 지배적이기에 민중은 ‘혁명적 사회주의’를 공상이라 여긴다.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힘을 충분히 고양시키고, 이 힘이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낼 수 있음이 손에 잡힐 듯 분명할 때에 이르러서야 그들의 환상은 깨진다. 그때서야 그들은 ‘혁명적 사회주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노동자계급의 지도력을 승인한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이 민중에 대한 지도력을 진정으로 획득하고자 한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이고, “노동자계급 자신의 혁명적 세력화”임을 보여준다. 그것이 아직 출발점에 불과한 현 단계에서는 ‘노동자 민중 권력’, ‘노동자 민중의 동맹’이란 구호는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을 더욱 분명히 하면서 제출될 필요가 있다.

    ○ 이상의 점에서 ‘노동자 민중 권력’은 ‘노동자권력’ 이외의 다른 의미로는 해석할 수 없다. 오직 노동자계급의 의지와 요구가 반영되는 ‘노동자권력’만이 존재할 뿐이다. 다만 이 노동자권력이 독자성과 사회주의적 주도력을 바탕으로 민중의 지지―노동자권력과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를 획득해 그 주도력의 범위를 넓혔다는 점에서만, 아울러 가난한 민중들에게 노동자권력이 민중의 해방까지도 담보하는 책임성 있는 유일한 권력임을 선동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만, ‘노동자 민중 권력’, ‘노동자 민중의 동맹’이란 구호가 가능할 뿐이다. 자본주의의 심화 발전에 의해 민중의 비중이 축소되고, 압도적 다수가 노동자계급으로 존재하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라는 점에서 그러한 엄밀한 규정은 더욱 필요할 것이다.

    3. 어떻게 강령논의를 발전시킬 것인가?

    1) 혁명가들의 통일

    ○ 강령논의는 무엇보다도 우선 ‘혁명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투사들’을 하나의 기치로 결속시키는 통일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사노련의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투쟁 전면화를 위한 정치방침>(당 건설투쟁 정치방침)을 참고 바란다.

    “우리는 여러 사회주의 혁명서클과 함께 공동의 노력으로 사회주의 혁명강령을 다듬어 나갈 것이다. 이미 사회주의 혁명세력 사이에서 사회주의 혁명강령의 큰 골격은 어느 정도 수립되어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정당의 강령은 지금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깊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여러 사회주의 혁명서클과 함께 사회주의 혁명강령에 관한 깊은 연구와 폭넓은 토론을 조직해 나갈 것이다.

    우리가 여러 사회주의 혁명서클과 함께 공동으로 혁명강령 연구와 토론에 나서려는 것은 일차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정당의 강령을 치밀하게 준비하기 위해서지만, 동시에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을 향해 여러 사회주의 혁명서클의 뜻과 힘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다. 따라서 우리는 혁명강령에 대한 공동 연구와 토론을 추진함에 있어 우리가 생각하는 방안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회주의 혁명서클이 제안하는 좋은 방안들에 열린 자세로 접근하여 공동 연구와 토론을 실제로 진척시키면서 그 성과 위에서 우리의 방안을 실현해 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사노련, <당 건설투쟁 정치방침>)

    2) 선진노동자들의 정치화

    ○ 우리가 건설해야 할 당이 “노동자계급의 선진부위, 즉 노동자계급 전위의 당”이라면 혁명적 사회주의 강령 논의도 마땅히 선진노동자들의 정치화와 주체적 참여를 동반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사노련의 <당 건설투쟁 정치방침>에 나와 있는 해당 부분을 참고 바란다.

    “우리는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투쟁의 필요성과 사회주의 혁명정당이 갖춰야 할 정치노선을 가장 앞서있는 노동자투사들에게 적극적인 토론의 방식으로 제기하고 결의를 모아나갈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이미 ‘사회주의 당 건설운동 전면화를 위한 전국공동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진행하는 토론회는 그 참여범위가 그렇게 넓지 못한 한계를 갖고 있다. 우리는 이미 시작된 토론회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함으로써 그 성과를 극대화하되,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 큰 규모의 토론회나 다양한 토론공간들을 계속해서 조직해 나갈 것이다.

    우리가 이런 토론공간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하려는 것은 지금 가장 앞서있는 노동자투사들부터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투쟁의 주체로 조직하기 위해서다.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은 사회주의 혁명서클의 단순 확대나 통합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자계급 선진투사들의 대대적인 결집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노동자계급 선진투사들의 대대적인 결집은, 지금 싸우고 있는 노동자투사들만이 아니라 앞으로 노동자투쟁의 물결이 힘차게 솟아오르면서 배출될 수많은 노동자투사들까지 조직해 냄으로써 온전히 실현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가장 앞서있는 노동자투사들부터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투쟁의 주체로 조직해 냄으로써 첫 물꼬를 제대로 터야만, 앞으로 수많은 노동자투사들을 조직해 나갈 실질적인 전망도 열릴 것이다.

    우리는 ‘열린 토론공간’이, 지금 가장 앞서있는 노동자투사들을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투쟁의 주체로 조직하는 데서 매우 필요한 형식이라고 본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아직 우리의 손길이 체계적으로 닿지 않는 가장 앞서있는 노동자투사들에게 사회주의 혁명세력의 정치노선과 주장을 정확하고 풍부하게 전달할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노동자투사들의 정치적 발전수준을 고려할 때 다양한 정치노선과 주장을 접하면서 자기 고민을 열어놓고 주체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열린 토론공간을 제공하면서 그 속에서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설득해 나가는 방식이, 그들의 주체적 결단을 끌어내는 데서 가장 성공적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열린 토론공간’을 조직해 나가는 데서 어느 정도 유연한 태도를 갖고 접근할 것이다. 여러 사회주의 혁명서클만이 아니라,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말하는 모든 정치세력과 공동으로 ‘열린 토론공간’을 조직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두 가지 조건이 있다. 그런 ‘열린 토론공간’은 가장 앞서있는 노동자투사들의 폭넓은 참여와 주체적 역할을 우선해서 보장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는 그런 ‘열린 토론공간’을,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노선을 얼마나 동의하고 얼마나 실천하고 있느냐는 측면에서 아직은 충분히 신뢰할 수 없는 세력과 공동으로 조직하게 될 경우, “이 토론은 공동의 당 건설을 추진하기 위해서가 아님”을 명확하게 표명할 것이며, 실제 토론에서도 그 세력의 잘못된 정치노선과 실천에 대한 공세적인 비판을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투쟁의 필요성과 사회주의 혁명정당의 정치노선을 노동자투사들에게 더 알기 쉽게 전달하는 하나의 방안으로 적극 활용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노선의 올바름과 노동자투사들의 건강한 압력을 통해 그 세력의 전체 또는 일부를 혁명적 사회주의로 확고히 이끌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러한 토론들 속에서 우리는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투쟁의 필요성과 사회주의 혁명정당이 갖춰야 할 정치노선을 노동자투사들에게 최대한 체계적으로 주장하고 설득해 나갈 것인데, 특히 다음의 논점들을 강력하게 제기해 나갈 것이다. ①스탈린주의와 민중주의에 맞서 노동자계급 자기해방으로서의 노동자권력 사상을 확고히 세워야 한다는 점, ②의회주의 환상과 미련을 단호히 깨부수고 노동자평의회 사상을 확고히 세워야 한다는 점, ③반자본주의 정도에 머무르는 어정쩡한 무지개 좌파연합당이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정당 사상을 확고히 세워야 한다는 점, ④노동조합이나 현장조직으로 해소되지 않는 사회주의 현장분회 건설과 사회주의 현장활동 사상을 확고히 세워야 한다는 점, ⑤노동자투쟁의 당면 요구들을 가장 공세적으로 집약한 대중행동강령을 내건 노동자공동전선 사상을 확고히 세워야 한다는 점, ⑥서클에 안주하는 좁은 사고방식이 아니라 당 건설이라는 노동자계급의 정신을 확고히 틀어쥐고서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투쟁에 전면적으로 떨쳐나서야 한다는 점.“ (사노련, <당 건설투쟁 정치방침>)

    3) 계급투쟁 속에서의 실천적 과제 수행 - 정치선동과의 연결

    ○ 혁명적 사회주의 강령은 선진투사들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제기될 필요가 있다. 이는 자본주의 위기와 노동자투쟁의 전면화가 맞물리는 “사회적 위기” 국면에서 노동자대중이 혁명적 길을 늦지 않게 찾아내고, 개량주의, 중도주의, 노동조합 관료층의 통제와 거짓약속을 뚫고 전진하도록 돕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이런 작업이 중단없이 규칙적으로 진지하게 수행된다면, 이로부터 혁명적 사회주의 당 건설투쟁의 주체가 될 인자들이 두텁게 형성되기 시작할 것이다.

    ○ 당장은 사회주의 선전 선동 수준에 머물지라도, 노동자의 다양한 투쟁 및 그들이 직면한 다양한 상황들과 연결시켜 혁명적 사회주의 강령을 보급해야 한다. 그런데 압축적으로 정식화된 강령이나 해설을 방대한 대중들에게 직접 던지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규칙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안들, 현장의 이슈들을 망라한 정치선동이란 매개체를 통해 던져지는 강령이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 혁명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모든 그룹들은 자신의 강령을 정식화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강령을 정기적인 “정치신문”과 “현장신문” 등 매체들을 통해 정치선동의 방식으로 구체화해 대중적으로 보급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서 강령적 논의를 통한 통일성의 고양 및 대중정치선동을 통해 이룩한 성과와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의 정치신문”, “공동의 현장신문” 등의 공동 사업으로 전진할 필요가 있다.

    ○ 다음으로 순수한 혁명강령과 당면의 부분적 투쟁요구 사이에 다리를 놓음으로써 광범위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혁명강령으로 인도하는 수단인 대중행동강령(이행 강령)을 토론하고, 이것을 선전 선동 나아가서 당장의 투쟁요구로 발돋움시키는 적극적 실천이 필요하다.

    “우리는 공세적인 요구를 대담하게 내걸고 계급단결을 실현하는 노동자투쟁들을 선도적으로 조직함으로써 많은 노동자투사들이 사회주의 혁명운동으로 다가오도록 길을 열어 나갈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세계대공황을 배경으로 자본가들이 벌일 총공세에 맞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가장 공세적으로 집약한 당면 투쟁강령(대중행동강령)을 내건 노동자공동전선을 건설하고 강화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앞장설 것이다. 우리의 그런 노력들은 그 자체로 노동자투쟁의 힘찬 발전에 소중한 거름이 되겠지만, 동시에 많은 노동자투사들이 구체적인 현실로부터 사회주의 혁명강령의 첫머리를 이해하고 그럼으로써 사회주의 혁명운동을 향해 다가오도록 만드는 역할을 할 것이다.” (사노련, <당 건설투쟁 정치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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