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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란 무엇인가 :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핵심 사상을 논쟁적으로 밝힌다!(4)
 사노련  | 2009·03·17 08:58 | HIT : 3,228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 2008년 6월 7일 발행한 <사회주의자> 2호에는 <우리의 입장> 해설[2부]가 실려 있다. 그 글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쟁점토론]에 올린다. 여러 동지들의 좋은 의견과 토론을 바란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우리의 입장>을 논쟁적으로 해설한다!(4)

소련, 북한 등의 스탈린주의 국가 체제에 대한 태도

“아니 실패한 혁명을 뭐 하러 검토하려 하는가?”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을 다루려 할 때 가장 먼저 나올 수 있는 반론일 것이다. 그러나 10월 혁명은 결국 스탈린주의 반혁명에 자리를 내주기는 했지만, 약 10년 이상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했던 유일한 경험이었다. 혁명의 준비과정, 혁명의 실행, 반혁명에 맞선 투쟁, 당의 지도적 역할, 일국혁명과 국제혁명의 상호작용 등 10월 혁명이 제기한 많은 문제들은 전세계 노동자 투사들에게 일반적인 의의를 지닌다.

이후 ‘새로운 모범’이 창출되기 전까지는 러시아 10월 혁명은 ‘노동자계급이 가장 멀리까지 나아가고 가장 높이 솟구쳐 오른 경험’으로서 계속 남게 될 것이다. 이 경험을 토대로 삼아, 다음번 세계 노동자 혁명은 러시아 노동자 혁명이 도달했던 가장 높은 고지에서 출발하게 될 것이며, 러시아 노동자 혁명이 멈추었던 그 지점을 넘어서서 승리의 고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 점에서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러시아 10월 노동자 혁명을 계승하려는 세력이다.

우리가 계승하려는 것은 구체적으로 ‘소비에트 유형의 노동자권력 사상’, ‘볼세비키 유형의 노동자 혁명정당의 사활적 중요성’ 등이다. 우리는 러시아 혁명의 실패와 타락을 거론하면서, 이른바 “사회운동”을 내걸고 “노동자권력(노동자국가)”를 거부하고, 노동계급 혁명당 창건의 필요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진보연대’ 류의 무정부주의 경향과 명백히 단절한다. 이 경향은 ‘모든 형태의 국가 제도의 철폐’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노동자권력’이라는 과도적 단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형태의 착취자들의 반란과 저항을 분쇄하고,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모든 부패와 타락을 근절하는 조치를 노동자권력이 취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는 영원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계급제도와 이로부터 반드시 발생하게 되는 국가 제도는 영원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국가라는 과도기적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계급제도의 완전한 철폐, 국가 제도 - 군대, 경찰, 관료 기구 - 의 소멸은 실현할 수 없다.

이런 반론도 나올 수 있다. “10월 혁명은 노동자 혁명이었지만 결국 스탈린주의를 낳지 않았는가? 스탈린주의 반동 권력의 어머니는 17년 10월 러시아 노동자 권력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10월 러시아 혁명을 지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다른 이들, 가령 노동자정치협회(이하 “노정협”)는 이렇게 질문한다. “10월 러시아 혁명을 지지한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관료 체제는 10월 노동자 국가의 연장선에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스탈린주의 관료 체제까지도 현실 사회주의 노동자 국가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진지한 분석과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또한 현실 사회주의 국가를 지지하지 않으면서 제국주의 편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그들 모두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은 10월 혁명이 수립된 노동자 국가와 스탈린주의 반혁명이 만들어낸 ‘관료 체제’ 사이에는 ‘노동자계급의 피의 강물’이 흐른다는 사실이다. 이 ‘피의 강물’ - 노동자 권력을 국가관료들의 권력으로 바꿔냈던 반혁명 - 을 진지하게 검토해야만 한다. 이 ‘피의 강물’은 소비에트와 같은 노동자 국가의 기본 단위들을 파괴하고 노동대중의 아래로부터의 권한을 박탈한 것, 볼세비키 정당의 최고 지도자들의 거의 대부분을 처형하고 암살했던 것, 당과 국가를 감시 통제하고 폭력을 자행했던 체카 등의 공안기구들의 대대적인 확대, 계급 제도와 상비군 체제를 완전히 부활시켰던 반동적 군대 체제의 확립 등의 총체들이다.

이것들은 노동자 국가를 파괴하고 국가 관료층의 지배를 수립했던 “명백한 반혁명”이다. 이것을 고려한다면, 다음의 결론이 나온다: “스탈린 관료권력은 10월 노동자 권력의 계승자가 아니라 파괴자다!” ‘왜 파괴되었는가’를 질문하고 그 예방책을 세우는 것은 진지한 혁명적 투사들의 접근법이다. 그러나 그것을 묻는 대신, 10월 노동자 혁명의 의의를 부정하거나 스탈린주의 관료 체제를 어떤 식이든 옹호하고 방어하려 하는 것은 완전히 틀렸다. 두 입장 모두 사실상 10월 노동자 혁명의 역사적 성과를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북한과 중국 - 과연 노동자 국가를 수립했던가?

나아가서 러시아 10월 노동자 혁명이 만들어낸 노동자 권력과 중국과 북한 등에서 수립된 정권을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이 두 가지 권력은 전혀 다른 계급적 기초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계승하고 그 약점을 극복해 완성시켜야 할 권력은 러시아 10월 혁명이 탄생시킨 노동자 권력이지 중국과 북한의 권력이 아니다.  

먼저 중국, 북한의 경우 노동자계급이 주인이 되어 성공시킨 노동자혁명이 없었다. 중국과 북한에서는 노동자민주주의 권력이 존재했던 적이 애당초 없었다. 중국, 북한의 노동자계급은 농민이 주축이 된 민족해방혁명의 수동적 방관자로 머물도록 강요당했고, 자주적 행동을 봉쇄당하기까지 했다. 급기야는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의 지배 대상으로 전락했다.

모택동, 김일성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정권의 운명은 소부르주아 계급의 역사적 운명을 반영했다. 급진적으로 반(反)봉건 농업 혁명과 민족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즉 부르주아 혁명의 역사적 과제를 담당하는 과정에서 이들 소부르주아 세력은 역사적 진보를 반영했다. 이들의 역사적 역할은 대단히 독특한 것이었다.

프랑스에서 부르주아 혁명의 역사적 과제는 바로 부르주아 계급이 담당했다. 반면 러시아에서 그 과제는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 혁명의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함께 수행했다. 반면 중국과 북한에서는 부르주아 혁명의 역사적 과제 - 농촌 내에서 봉건적 잔재의 철폐, 그리고 민족국가 체제의 수립 - 는 소부르주아 계급이 담당했다. 이것은 부르주아 혁명에서 부르주아계급의 주도성이 더 이상 관철될 수 없음을 제기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역사적 과제를 제기했던 레닌도, 트로츠키도 예견하지 못했던 독특한 상황이었다. 레닌은 약간의 유보 조건을 두었지만, 소부르주아 계급이 부르주아 혁명의 지도자로 등장하는 가능성을 거의 염두에 두지 않았다. 트로츠키는 아예 그런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음을 웅변했다.

레닌과 트로츠키의 가정은 만일 노동자계급이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강했다면 의심할 바 없이 옳았을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관료 집단이 세계적으로 발휘한 영향력 - 노동자계급의 독자성과 국제적 연대의 파괴 - 은 이 전망까지도 파괴해버렸다. 욱일승천의 기세로 성장하고 있었고, 동양의 노동자 혁명을 이끄는 결정적 지위를 부여받고 있었던 중국의 노동자계급은 스탈린 관료집단이 장악한 코민테른의 어처구니 없는 반동적 지도 때문에 국민당 부르주아 세력에 투항하면서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북한의 경우에도 노동자계급 속에서 활동하던 사회주의 세력은 거세되고, 농민층 내에서 활동하던 소부르주아 정치세력들이 주도권을 잡았다.

노동자계급운동이 해체된 가운데, 그러나 부르주아 계급은 더 이상 부르주아 혁명의 과제마저도 담당할 수 없을 만큼 반동화된 가운데, 부르주아 혁명은 결국 소부르주아 주도로 이뤄지게 되었다. 모택동, 김일성 분파는 급진적 농민층에 기반을 둔 소부르주아 정치세력을 대변했다. 이들은 농민층의 혁명적 에너지를 모아내, 부르주아 혁명을 방기하고 심지어는 억압하는 자본가계급의 저항을 뚫고 급진적인 방식으로 부르주아 혁명의 과제를 수행했다. 이것은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는 물론 진보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이 두 가지가 있다. 그리고 이것이 노동자계급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하나는 모택동, 김일성 세력이 분쇄했던 것은 단지 부르주아 계급의 저항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운동마저 분쇄해버렸다. 이들은 노동자계급운동을 소부르주아 운동의 종속물로 전락시켰고, 그 한도 내에서만 용인했다. 그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 이들은 노동자계급운동을 잔인하게 억압했고 통제했다.

다른 하나는 소부르주아 정치세력의 역사적 운명이다. 봉건 잔재에 맞선 부르주아 혁명의 과정에서 소부르주아 세력은 잠시 진보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심지어 중국과 북한에서는 이들이 부르주아 혁명의 주도자로 설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거기까지는 맑스주의적 원리를 침해하는 것은 없다. 맑스주의는 봉건제에 맞선 투쟁에서 소부르주아 계급의 역사적 진보성을 승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다음은 무엇인가?” 봉건제를 타도한 뒤, 소부르주아 계급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이에 대해 맑스주의는 분명한 대답을 하고 있다. 소부르주아 계급의 독자적 세계는 없다. 소부르주아 공동체는 오직 환상 속에만 있거나 기껏해야 수십, 수백 명의 지역 공동체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봉건제를 타도한 뒤, 등장할 수 있는 사회 체제는 자본주의 사회 체제 아니면 사회주의 사회 체제 둘 중 하나다. 소부르주아 혁명 세력은 그들의 희망과는 다른 객관적 압력에 떠밀려 점차 자본주의 사회 체제를 창출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부르주아 계급의 지위를 떠맡기 시작했다. 다만 이 사회 체제는 통상적인 부르주아 혁명을 통해 창출된 자본주의 체제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마치 노동자 국가를 내부에서부터 타도하고 등장한 스탈린주의 반혁명이 창출한 체제가 그랬듯이 말이다. 두 종류의 정권 모두 그런 독특한 방식 이외로는 부르주아 권력을 창출할 수 없었다. 러시아에서는 노동자계급의 권력을, 중국과 북한에서는 급진적 소부르주아계급의 권력을 무너뜨리면서, 게다가 노동자계급과 소부르주아계급의 저항을 최소한으로 만들기 위한 ‘위장막’을 걸치면서 조심스럽게 부르주아 권력을 창출해나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북한 모두에서 관료층에 기반을 둔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성립해나갔다. 이들은 노동자계급만이 아니라 소부르주아계급에 대해서도 독재 체제를 수립했다.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완성되어 감에 따라, 즉 자본주의가 보편화됨에 따라 소부르주아 계급은 점차 소멸해나가면서 노동자계급이 다수를 점하게 되었다.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잡든 다음은 분명하다: “러시아를 제외한 어느 나라에서도 노동자 권력이 수립되어 사회주의로 전진한 경우는 없다! 노동자 권력의 외피를 둘렀던 사회 체제는 스탈린주의 체제의 소부르주아 판에 불과했다. 동양의 소부르주아 혁명정부는 국가자본주의 관료 체제로 전화해나갔다! 이들은 혁명의 시기든, 이후의 반동화되는 시기든 공히 노동자계급운동에 대한 파괴자로 군림하거나, 노동자계급운동의 파괴를 반영했다!”

다시 한 번 사회주의 사상의 근본으로!

사회주의는 곧 노동자계급이 세상의 주인으로 우뚝 서는 것, 즉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이다. 노동자계급이 생산과 정치의 주인이 아니라 지배자들을 위한 희생양이 되고 있는 나라는 사회주의의 이름을 도용할 자격이 조금도 없다. 사회주의 혁명은 오직 노동자계급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만 쟁취될 수 있다. 자본가들과 개량주의, 의회주의 지도자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노동자해방은 결코 누군가에 의해, 가령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에 의해 선물처럼 주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930년대 이후 소련 사회, 그리고 북한과 중국 등의 사회 체제에 대해 “현실 사회주의” 혹은 “타락한 노동자 국가” 등의 규정을 내리는 세력이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근본적 접근이다. 이들은 사회주의를 “노동자계급의 자기 해방 체제”이자, 이것을 통해 이룩하는 “필연의 왕국에서 자유의 왕국으로의 인류의 도약”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 결과 이들은 사회주의를 일종의 국유화 체제로 간주한다. 만일 국유화 체제가 사회주의라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존재하는 “국영기업들”은 사회주의 체제의 일부일 것이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은 “국영기업이나 공기업의 민영화 정책”에 대해 반대한다. 이것은 사적 소유 체제, 그리고 이로부터 비롯되는 생산수단의 부르주아적 사용에 대한 반대를 표현한다. 그러나 이로부터 “국영기업과 공기업”을 모종의 사회주의 소유관계로 접근하는 것은 맑스주의를 완전히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영기업과 공기업”의 운영 통제자는 노동자 민중이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 국가관료들이다. 이들은 직간접적으로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위해 이것들을 사용한다. 한마디로 전체 자본가계급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이윤을 짜내는 “국가자본”이란 성격을 갖는다. 사회주의자들이 민영화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국영기업과 공기업’에 모종의 사회주의적 환상을 도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반대하는 이유는 민영화가 인원감축, 임금 복지 축소, 노동자 생활 수준 저하 등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을 동반하기 때문이고, ‘국영기업과 공기업’을 진정 노동자 민중을 위한 생산수단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즉 사회주의적 생산수단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을 자본가계급의 수중에서 박탈해서 노동자계급의 수중으로 이전”해야 할 절실한 필요성을 제기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혁명적이고 정치적인 조치, 즉 국가권력의 주인공이 누가 되어야 하는지를 묻는 조치를 통해서만 비로소 국가자본은 ‘사회주의적 소유’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1990년대 초반에 무너진 러시아권력의 성격은 무엇인가?

30년대 말에 관료자본가사회로 질적으로 변화한 뒤에는, 러시아사회는 더 이상 노동자권력이 아니었다. 단지 그 반동적 성격만이 날로 강화되었고, 나란히 그 모순 또한 성장했을 뿐이었다. 이 관료자본가사회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대중의 아래로부터의 저항, 그리고 관료집단 내부의 파벌투쟁에 의해 80년대 말 와르르 붕괴되었다. 이것은 과연 사회주의 노동자국가의 붕괴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망해야 마땅한 관료자본가집단의 몰락 혹은 위기였을 뿐이다. 이에 대해 우리 노동자계급이 비통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비통한 것은 대중의 분노가 제2의 1917년 혁명으로 결실을 맺은 것이 아니라 관료자본가 체제를 통상적인 자본주의 체제로 변화시킨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는 점에 있다. 더군다나 90년대 이후 러시아에서 권력과 생산수단을 장악한 자들은 사실 스탈린 관료집단의 일부이다. 노동자들을 억누르던 바로 그 경찰, 공안기구, 군대의 책임자들이 그대로 지배하고 있다. 노동자들을 착취하던 관리들이 관료자본가에서 사적 자본가로 옷을 갈아입었다. 단지 자본주의의 형태만 바뀌었을 뿐, 그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음이 분명하다. 1980년대 말 러시아사회는 노동해방 사회가 절대 아니다. 또한 사회주의가 한계를 드러낸 것도 아니다. 1930년대 말에 반혁명이 완성된 이후, 러시아에서는 노동자국가라고 할 만한 국가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에 폭로된 국가는 어떤 자본주의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반동 자본주의 국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접근은 중국, 북한 등의 국유화된 체제에 대한 접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우리의 입장>은 이 점에 대해 정확히 말하고 있다.

“‘노동자 권력 하의 국유화’만이 사회주의를 향한 결정적 조치일 수 있다. 그런데 말로는 공산당이라 하면서도 실제로는 ‘부르주아적 국유화’를 사회주의로 위장하면서 노동자계급을 억누르고 착취하는 지배자들의 정당인 동유럽, 북한, 중국 등의 공산당들, 그리고 노동자투쟁을 개량주의의 길로 비켜나가게 하면서 부르주아 체제를 보호하고 있는 서유럽과 남미의 사회당, 사회민주당, 노동당들은 사회주의를 변질시키고 곡해해왔다.” (사노련, <우리의 입장>)

사회주의는 국유화 형태와 같은 형식적인 장치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의 본령은 “노동자계급의 자기 해방”이고, 이것이 소유 관계에서 표현될 때는 “노동자 권력 + 국유화 = 사회주의”라는 정식이며, “관료 권력 + 국유화 = 국가자본주의”라는 정식이다.

그런데 노정협을 비롯한 혁명적 진영의 일부는 “맑스의 ‘자본론’에 이에 해당하는 규정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항의한다. 100% 엄밀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당연하다. 맑스의 “자본론”은 통상적인 자본주의 체제말고는 존재하지 않았던 특정한 역사적 시기를 분석했다. 우리가 “자본론”으로부터 취해야 할 것은 “혁명적이고도 과학적인 방법론”,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이다. 이것은 맑스가 연구할 수도, 분석할 수도, 경험할 수도 없었던 새로운 역사적 시기에 “구체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맑스주의자들의 역사적이고도 구체적인 임무이다. 노정협이 보지 못하는 것은 이 점이다.

맑스주의에 충실하고자 하는 의도는 물론 좋은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맑스주의는 교조주의를 배격하고, 그 자리에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접근”을 대체시킨다. “자본론”을 쓰던 당시 맑스는 “관료집단의 반혁명과 그것을 통해 수립되는 국가 관료들의 지배 체제” 및 “소부르주아 혁명 정부와 이 정부의 부르주아 관료 체제로의 진화”를 경험할 수도, 예상할 수도 없었다. 이것은 맑스의 책임이 아니다. 이것은 아무리 뛰어난 이론가도 주어진 역사적 시기를 뛰어넘을 수 없음을, 그리고 이론이란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던져진 질문에 대한 대답임을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

맑스는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국유기업이 사회주의 소유관계와는 무관함을 지적했을 뿐이었다. 이 지적은 “스탈린주의 관료 체제”가 등장한 1930년대 이후에 창조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이 창조적 적용을 반영하는 이론으로 “국가 자본주의 체제” 혹은 “관료자본주의 체제” 등의 이론적 정식이 있다. 물론 어떤 이론적 개념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회주의노동자연합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다. 이 이견은 이후 풍부한 이론적 토의의 과정을 거쳐, 해소되도록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분투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도 공통적인 지점은 있고, 바로 이 지점이 가장 중요하다. 첫째, 어떤 개념을 쓸지와 무관하게, 구 소련, 중국, 북한 등의 체제를 “사회주의”로 승인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이 사회 체제들은 노동자 권력과는 무관하며, 노동자계급의 자기 해방 체제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회 체제들은 권력의 주체가 노동자 민중이 아니라 “관료집단”이다. 둘째, 이 사회 체제를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어떤 식이든 지지할 수 없다. 이 사회 체제는 남한이나 미국 등과 똑같은 자본주의 체제다. 이들 자본주의 체제들 사이의 대립과 분쟁에서 우리는 이들 모두에 맞서 투쟁할 뿐, 어느 한 편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상은 <우리의 입장>에 다음과 같이 정식화되어 있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1930년대 이후 옛 소련, 동유럽, 북한, 중화인민공화국 등의 사회체제를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반(反)노동자계급적 사회체제로, 노동자계급이 타도해야 할 반동체제로 규정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더욱 엄밀한 과학적 규정이 필요하다. ‘반동체제’라는 규정보다는 더 명확한 과학적 규정(가령 국가자본주의, 관료자본주의 등)이 필요함은 분명하다. 이후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심화된 강령연구와 토론을 통해서 이 부분을 보완할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는 관료주의적 접근을 철저하게 배제한다. 사회주의 사회는 노동자계급의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의 산물이며, 그것을 제외한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옛 소련 등의 몰락 및 타락은 이를 현실에서 분명하게 보여준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파리 꼬뮌과 1917년 러시아 소비에트 유형의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노동자 대중권력만을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주의 사회로 규정한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우리의 입장>)

북한 체제에 대한 입장

유럽과 전 세계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소련, 동유럽 자본가정권에 등을 돌렸지만, 남한에서는 자본가 군사정권의 극심한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감 때문에 오히려 북한 자본가정권에 막연한 호감을 갖거나 적어도 비판적 태도를 유보하는 모습들이 오랫동안 만연해 있었다. 하지만 진실은 정확히 밝혀야 한다. 러시아의 위대한 볼셰비키 혁명가들과 노동자들을 수없이 처형하고, 동유럽에서 진정한 노동해방을 갈망하는 노동자들을 탱크로 쓸어버린 소련 제국주의가 북한에서 ‘노동자국가’를 세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소련은 동유럽에서 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북한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본뜬 위성국가를 건설해갔다. 이 위성국가에 스탈린 관료집단이 기대했던 것은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국가 - 러시아 관료 체제 - 의 번영과 안정이었다. 이 관료 국가의 제국주의적 지배 도구인 위성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한반도에서 관료 집단이 추구했던 목적이었다. 한반도의 노동자 민중들, 자원들을 수탈하는 데서 얌전히 복종할 친소련 정부를 수립할 필요가 있었다. 소련은 이 임무의 주역을 김일성에게 맡겼다.

김일성은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기는 했지만,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수많은 세력 중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김일성 부대 외에도 중국, 만주, 러시아 등 곳곳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훨씬 더 강력한 세력들(가령 중국공산당의 영향력 아래 있던 연안파)이 있었으며, 시퍼런 일제통치의 칼날 속에서도 한반도의 공장과 농촌에 뿌리를 두고 혁명적 투쟁을 전개했던 세력들(이재유 같은 토착 노동해방운동 세력)이 존재했다.

김일성이 북한에서 완전히 권력을 독점한 것은 10년 이상 남로당계, 소련파, 연안파 등 수많은 세력의 지도자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그들을 숙청한 뒤에야 가능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그만큼 해방 직후에 김일성의 영향력은 결코 크지 않았는데, 역설적으로 바로 그 점이 소련 제국주의가 김일성의 손에 권력을 쥐어준 이유였다. 소련 제국주의 군대는 자신들에게 충성하지 않고는 권력을 획득할 수 없기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김일성을 내세워 북한을 위성국가로 확고히 장악하고자 했던 것이다. 소련 지배자들의 후원 아래 김일성은 갑작스럽게 지도적 인물로 부상됐고, 급기야 1946년 2월에는 북조선 과도인민위원회 의장이 되었다.

김일성 정부가 수행했던 조치들은 스탈린 관료 집단이 러시아에서 수행했던 조치들을 여러 방면에서 복사하는 것이었다. 북한은 토지개혁을 실시했는데, 이것은 러시아에서 10월 혁명 이후 전개된 토지개혁과 달리 ‘노동자혁명 없는 개혁’이었다. 이것은 봉건 잔재를 철폐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노동해방 사회 건설의 첫걸음이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첫 번째 조치였다.

북한은 공장, 건물 등 자본을 국유화했으며, 이것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으로부터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전화’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에서 시행된 국유화는 사회주의적 국유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북한 김일성 권력이 소비에트, 파리꼬뮌과 같은 노동자계급의 자주적이며 대중적인 권력이 아니라 급진적 민족주의자의 권력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국유화는 스탈린 강제 농업집산화와 마찬가지로, 김일성 권력을 안정화하고, 노동자대중에 대한 착취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북한에서 관료제는 노동자 국가를 파괴하면서 반혁명을 통해 점차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명백하게 나타났다. 북한에서 김일성은 박헌영 등 정치적 반대파들을 대거 숙청하면서 당과 정부 안에서 비판을 원천 봉쇄했고 절대적 권력을 세워갔다. 러시아 소비에트와 비슷한 형식의 인민위원회가 있었지만, 인민위원회는 노동자 권력이 아니라 노동자들과 여타 소부르주아 세력들이 뭉뚱그려져 있는 계급연합 체제였고, 여기에서 민주주의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것은 형식상으로만 소비에트를 모방했을 뿐, 노동자들의 살아있는 직접 민주주의 기구가 아니었다.

초기에는 어느 정도 허용되었던, 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소환, 선출, 탄핵의 권리가 점차 유명무실해졌으며, 북한 김일성 지배분파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단순 집행기관으로 전락해갔다. 북한에서 정치의 주인은 김일성과 그를 추종하는 소수 관료들이었으며, 다수 노동자들과 피착취 근로인민들은 정치에서 소외되고 대상화됐다. 제국주의의 침략 위협을 핑계로 상비군을 항구적으로 존속시켰으며, 군대 안에서 관료적 통제를 심화시켜갔다.

북한노동당은 처음 출발할 때부터 사회주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노동자계급의 가장 우수한 분자들을 결집시킨 사회주의 정당이 아니었다. 김일성 유격대는 주로 소부르주아 농민들에 기초한 급진적 항일 민족해방 투쟁부대였다. 그리고 이후 건설된 북한노동당 또한 이런 소부르주아 농민들, 지식인들 등이 잡다하게 참가한 급진적 소부르주아 민족정당이었다.

일제 식민지 하에서 제국주의적 침략에 맞서 싸우며 민족해방을 쟁취하고자 했던 것은 당시로서는 일정한 진보성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피억압 민족의 민족해방 투쟁도 노동자계급의 해방이라는 원대한 목표에 종속되고, 노동자해방 투쟁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배치될 때에만, 그리고 민족해방 투쟁에서도 급진적 부르주아나 소부르주아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주도성이 관철될 때에만 일관되게 전진하고 승리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민족민주권력은 노동자혁명을 통해 노동해방 권력으로 전진할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 지배 체제로 진화할 것인가의 갈림길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김일성 유격대와 초기 북한노동당 같은 급진적 소부르주아 정당을 노동자계급 쪽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세계 노동자계급에게 깊게 뿌리내린 인터내셔널이 있거나 적어도 한반도에서 노동자해방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수 있는 전투사령부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트로츠키가 건설한 제4인터내셔널이 있었으나 이 조직은 제3인터내셔널처럼 전 세계 노동자투쟁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이며 위력적인 힘을 갖고 있는 조직이 아니었다. 그리고 국내 혁명운동에서도 스탈린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진정 노동자계급적이고 혁명적인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북한노동당은 민족해방의 과제가 달성된 다음에는 일정한 진보성까지 마감하고 부르주아 정당으로 전화해갔다.

시간이 갈수록 이 당은 더욱더 자본가국가 관료들과 사회 전체에 포진한 지배 엘리트들의 당으로 확실하게 전락했다. 이런 김일성 자본가권력이 수행한 국유화 조치가 노동자들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는 노동해방 사회 건설의 첫걸음이 결코 아니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국전쟁은 남북한의 노동자계급, 피착취 근로인민의 투쟁역량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북한에서는 관료적인 국가자본주의가 노동자, 인민에 대한 가혹한 착취를 바탕으로 더욱 분명하게 형성되어갔고, 남한에서는 수십 년 동안 혁명투쟁이 단절되는 쓰라린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한편 노동자대중에 대한 착취도 강화해 갔다. 1956년 시작된 ‘천리마 운동’은 58년 말에 ‘천리마 작업반 운동’으로 발전되어 광공업뿐만 아니라 농업 등 모든 산업으로 확대되었다. 이것은 북한판 스타하노프 운동, 북한판 대약진 운동으로서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현격하게 증대시키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 시행된 ‘청산리 방법’은 당, 국가 간부에게 목표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숙청하는 것으로, 간부들의 노동자착취를 독려하는 위로부터의 운동이었다.

북한 자본가계급은 이에 따른 대중적 저항을 무마하고 지배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김일성, 김정일 우상숭배를 추진했다. 그러나 노동자해방은 노동자대중 자신의 창조적 운동이기에 우상숭배와는 정면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다. 지배자에 대한 우상숭배는 노동자들이 지시에 무조건 따르는 수동적인 기계부품 정도로 전락시킬 뿐이다. 게다가 우상숭배는 엄청난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동상 및 기념관 건립, 호화찬란하고 거대한 숭배 행사에 쏟아 붓게 함으로써 북한경제를 위기로 몰아가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북한 지배계급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라고 떠벌였지만, 거기에서 ‘계획’은 국가자본가들의 종이 위에서만 존재했고 실제로는 무계획상태가 지배했다. 바람직한 전사회적인 계획화는 직장과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대표들이 국가업무를 보고, 언제나 노동자들이 국가관리들을 선출, 소환, 탄핵할 수 있을 정도로 노동자 민주주의가 발전해있고, 국가관리들의 임금이 숙련노동자의 평균임금을 넘지 않을 정도로 관료적이지 않는 사회 체제 하에서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또한 모든 작업장 노동자들이 생산의 계획화에 참여하고 이들의 소비욕구를 반영해 생산을 계획하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관료들만이 주인이었던 북한에서 노동자의 창의와 자발성, 참여를 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초기에는 ‘미 제국주의가 다시 쳐들어올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 유포와 강압으로 북한 노동자들을 강도 높은 노동에 동원하면서 생산력을 발전시켰지만, 이런 사기와 강압만으로 생산력을 계속 발전시킬 수는 없었다. 특히 강도 높은 노동의 결과물이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되자, 노동자들의 생산열망은 형편없이 축소되었다. 그 결과 70년대 이후부터, 특히 80년대부터 생산성 향상률은 사적 자본주의에도 못 미칠 정도로 떨어졌으며 급기야 마이너스 경제로 전락했다. 그럴수록 북한 자본가계급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더욱 강화해 갔다.

이처럼 북한 체제는 탄생할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노동자 사회주의 체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북한 체제는 독일 노동자 혁명의 실패에서 시작해, 소련에서 노동자 권력이 파괴되고 스탈린 관료 집단의 반혁명이 승리하는 데로까지 나아갔으며, 결국 코민테른을 집어삼킨 뒤 불가리아, 동유럽, 중국, 한국으로까지 퍼져나간 “세계 노동자 혁명의 패배”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북한 체제는 이 패배의 불가피한 결과로 탄생한 세계적 관료 체제의 한 부분이다.

그렇기에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북한 지배 체제에 대한 어떠한 지지도 단호히 거부한다. 우리는 스탈린 지배 하의 러시아 체제에 대해 적용하는 입장과 똑같이, 북한 지배 체제를 노동자계급이 혁명적으로 타도해야 할 반동 체제로 규정한다. 이것은 남북 통일 문제에서 다음과 같은 노선으로 표현된다.

“북한 노동자계급이 노동자혁명을 승리로 이끌어 탄생시킬 북한 노동자국가와의 노동자계급적 통일을 추구한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우리의 입장>)

러시아 혁명의 교훈

노정협은 구 러시아 체제를 스탈린주의 관료 체제 혹은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접근하는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입장이 “마치 진지한 분석이 필요한 문제들을 가볍게 치부해버리는 정치적 경박함”으로 묘사하고자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입장은 충분히 진지하고도 책임성 있는 과학적 분석의 결론이다.

무엇이 스탈린 관료집단의 반혁명을 가능케 했던가? 여러 분석이 가능하다. 그 중 핵심적인 것들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러시아 노동자 혁명은 사회주의 완성을 위한 최초의 시도였다. 당연히 가장 뛰어난 지도자들까지도 그것 앞에 기다리고 있는 난관, 특히 관료주의의 위험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없었다. 이것은 지도자들의 대처를 한 박자 뒤늦게 만들었고, 이들이 위험성을 느끼고 대처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누구도 가지 못했던 전인미답의 길이었던 사회주의 실현의 길에서 이들은 새롭게 제기될 수 있는 위험성들을 모두 간파하면서 주도면밀하게 대처할 수는 없었다. 이것은 관료분자들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런 취약성은 몇몇 뛰어난 지도자들의 영웅적인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노동계급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러시아 10월 혁명의 소중함은 혁명과 반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경험을 역사적으로 물려주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 경험을 통해서, 미래의 노동자 혁명과 혁명정당은 최종적인 승리를 향해 진격할 것이다.

둘째, 이런 취약성은 비단 지도자들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평당원들이 관료주의를 용납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면, 관료주의자들의 성장은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10월 혁명 전후로 당에 가입했고 평당원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던 젊은 당원들은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 이들에게는 미지의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판단하고 밀어나갈 수 있는 의식성이 부족했다.

이것 또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는 것이고, 러시아 선진노동자들의 약점으로 단순하게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맑스조차도 일반적인 예상 이외의 것을 언급할 수 없었던 전인미답의 사회주의의 길에 대해 어떻게 단번에, 한 번의 오류도 실패도 없이 정확히 이해하고 똑바로 전진할 수 있을 것인가? 오직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실천만이 시행착오를 통해서 올바른 길과 방법을 제시할 수 있었다. 불행은 이러한 시행착오가 당시 러시아 노동자 권력과 혁명적 노동자 당이 직면했던 대단히 엄혹한 조건에서는 관료집단의 반혁명의 통로가 되었다는 점에 있다.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경험을 재산으로 삼아, 다음번 주자는 이런 약점을 극복하고 훌륭하게 사회주의를 실현해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더 넓게 보자면 세계 노동자 혁명의 실패가 자리잡고 있다. 러시아 사회의 후진성, 내전, 제국주의 세력들의 포위 등은 만약 세계 노동자 혁명이 성공했다면 러시아 노동자 권력의 사회주의로의 전진에 장애물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을 비롯한 세계 자본주의 나라들 모두에서는 혁명을 이끌 만큼 노동자계급과 당이 훈련되어 있지 못했다. 당시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을 구성했던 유럽과 미국의 자본가계급은 러시아 자본가계급보다 훨씬 강력했다. 수십년, 백여년의 통치 경험, 오랜 기간 동안 체계적으로 육성해온 경찰, 군대, 정부 관료기구들로 그들은 무장했다. 또한 무수한 부르주아 언론들의 일상적인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세뇌 공작들,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을 심지어는 사회주의 정당의 지도자들까지 부르주아 체제 속으로 포섭하는 잘 발달된 의회주의 장치들을 그들은 구비해두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노동자 혁명은 엄청난 난관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내전과 제국주의 전쟁, 방대한 농민층의 후진성 등이 러시아 노동자계급을 위협했다. 이 난관은 노동자 소비에트의 약화를, 패기만만했던 노동자 당원들 사이에서 당혹감과 패배의식을 조장했다. 이것들을 이용해서 퍼져나간 것이 바로 관료주의라는 병균이었다.

이것은 남한의 민주노조운동의 다수 지도자들의 변절의 과정과 근본적으로 일치하는 것이다. 이들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공세, 거듭된 전투에서 노동자 투쟁의 패배, 노동해방의 전망과 자신감의 상실, 출세주의를 부추기는 부르주아 체제의 영향력 등에 의해 전투적 투사에서 관료로 변질하고 말았던 것이다. 남한에서 그들은 착취자의 하수인인 노조 관료로, 소련에서 그들은 스스로 착취자인 국가 관료로 변질했다는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국제주의 노선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온갖 민족주의적 입장들과 완전히 단절한다. 우리는 오직 “노동자계급 국제주의”만을 채택한다. 이것은 러시아 노동자 혁명의 패배의 경험에 대한 분석과 연결지어 볼 때, 더욱 절실하다. 러시아 혁명의 교훈은 국제주의의 사활적 중요성을 우리 앞에 보여준다. 레닌과 트로츠키가 전망했듯이, 만약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 중 일부라도 혁명을 성공시켰다면 러시아 혁명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것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졌을 것이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부르주아적 문화를 받아들이고, 일국 사회주의의 전망으로 후퇴하며, 사회주의로의 전진을 포기하는 등의 모습들이 러시아 선진노동자들에게 강력하게 반격당하지 않고 퍼져갔던 데는 세계 혁명의 가능성이 닫히면서 러시아 노동자 권력이 고립된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것은 러시아 선진노동자들과 노동자계급 앞에 사기저하와 낙담의 분위기를 키웠고, 러시아 노동자 혁명이 직면했던 어려움들을 백 배 이상 증폭시켰다.

독일 등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의 문명화된 노동자들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기에, 러시아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분자들의 활용이라는 타협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부르주아적 영향력이 노동자 국가 속에 퍼질 수 있는 객관적 토대를 이루었다. 또한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탄생한 노동자 권력과 결합할 수 없었기에, 러시아 노동자 권력이 사회주의로 전진하는 것은 대단히 느리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회주의를 창출할 수 있는 선진적인 기술과 생산능력이 외부 선진국의 노동자계급의 지원이란 방식으로 공급될 수 없었기에 후진국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엄청난 난관과 마주쳤다. 사회주의로의 직선적인 전진의 길은 닫혀버렸던 것이다.

제국주의 세력의 지원을 등에 업은 자본가계급의 끊임없는 반란, 특히 내전 과정에서 러시아 노동자 권력이 입은 상처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노동자 권력의 대중적 토대인 공장과 작업장 단위의 소비에트를 사실상 무력화시켰고,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경제적 기반들을 상당한 기간 동안 해체시켰다. 기아, 가난 등이 러시아 노동자계급을 덮쳤고, 이것은 피로도를 극대화시켰다. 노동대중의 자신감과 창조성, 혁명에 대한 확신은 약화되었다.  

고립 상태가 만들어낸 이런 난관들, 사기저하, 소비에트의 기반 축소 등이 총체적으로 결합되면서, 거기에 역사상 처음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주의로 나섰던 노동자계급의 첫 주자가 가졌던 경험 부족, 심지어는 당시에 최고의 혁명정당이었던 볼셰비키당의 지도자들마저도 당시로서는 피할 수 없었던 한계들이 결합되면서 러시아 혁명은 좌초하고 말았다.

가장 결정적인 패배는 바로 러시아 볼셰비키 노동자 당이 스탈린 관료집단에게 장악당해 버린 것이다. 만일 비록 혁명은 좌초했을지라도, 이 당이 관료집단을 숙청해내고 노동계급 혁명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했다면, 그래서 러시아 혁명의 교훈들이 이 당에 의해 전수되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단지 세계 혁명의 패배에 따른 역관계의 불리함 때문에 러시아 혁명 또한 패배를 면하지 못했을 뿐, 혁명의 전통, 사회주의 혁명당의 전통은 그대로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볼셰비키당이 관료집단의 당으로 변질하면서 혁명당의 전통을 관료집단이 형식적으로 가져가버림으로써, 마찬가지로 타락한 관료집단의 국가가 노동자 국가인 것처럼 위장할 수 있게 됨으로써, 러시아 혁명의 위대한 가치는 시궁창에 처박혀 버렸다. 이것을 되살려, 러시아 혁명을 딛고 세계 노동자 혁명의 전통을 발전시키는 것은 바로 현 시대의 과업이 되었다. 이 과업에 대해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생산과 교환이 국제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오직 국제적 차원에서만 가능하다. 한국 노동자계급은 세계 노동자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국제 노동자계급의 한 부분이다.
이상이 전 세계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함께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이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똑같은 궁극적 목적을 위해 활동한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우리의 입장>)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노동자 국제주의 원칙에 확고히 바탕을 둔다. 국제주의는 오늘날 더욱 중요하다. 자본주의 세계화가 더욱 높은 수준에 도달하여 모든 나라의 노동자운동을 더욱 밀접하게 연결하고 하나로 통합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민족주의적 경향에 맞서 국제주의를 지키고, 이 위대한 대의를 먼저 선진노동자들에게, 나아가서는 한국 노동자계급의 광범한 부분에 보급하는 것을 필수적인 임무로 받아들인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우리의 입장>)  
사노련   동지의 의견을 자유롭게 남길 수 있습니다.

대신 올립니다 맑스주의 방법론과 원리를 포기한사노련의 국가자본주의 비판
-소련사회에 대한 전면 분석에 앞서

이 글은 소련사회에 대한 전면적인 분석이 아니다. 우리는 본격적인 분석에 앞서 사노련과 국가가본주의론의 방법과 몰과학성, 종파주의적 입장을 비판하고, 우리가 소련 사회에 접근하는 다른 방식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역사를 관념적으로, 종파주의적으로 단순화 하지 않고 실사구시하는, 변증법적 지양의 관점으로 소련 사회의 성과와 오류, 한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사노련은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우리의 입장>을 논쟁적으로 해설한다!(4) 소련, 북한 등의 스탈린주의 국가 체제에 대한 태도”를 통해 주로 노정협의 입장을 비판했다. 그런데 사노련은 직접 인용부호를 가지고 우리의 입장을 비판하면서 자의적으로 문장을 구성했다. 사노련의 인용이 우리의 입장을 근본적으로 왜곡하지는 않았으나 이런 식의 자의적 구성은 우리 내용을 단순화 시킬 수 있다.

1. 변증법적 방법론을 통한 소련 사회 분석

우리는 소련 사회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맑스레닌주의의 변증법적 철학의 방법을 취하려고 한다. 레닌은 변증법적 부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심의 여지없이 변증법은 부정의 요소를 그것도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포함하고 있지만, 변증법에서 특징적이고 본질적인 것은 노골적인 부정, 무익한 부정, 회의적인 부정, 동요, 의혹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을 보존하는, 즉 어떠한 동요도 없는, 어떠한 절충주의도 없는, 연관의 계기로서의, 발전의 계기로서의 부정인 것이다.(레닌, 철학노트)

레닌은 변증법적 부정은 핵심을 보존하면서 발전의 계기로서의 부정이라고 했다. 그것은 변증법적 지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현실 사회주의 분석에 있어서 전면 부정하는 태도는 자칫하면 청산주의를 낳을 수 있다. 국가자본주의론처럼 소련이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대중들에게 새겨져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현실 사회주의를 있는 그대로 분석하면서 우리가 맞닥뜨릴 수 있는 혁명의 현실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때로 큰 퇴보를 겪지 않는, 항상 순조롭고 규칙적으로 전진해 가는 세계사를 생각하는 것은 비변증법적이고 비과학적이며 이론적으로도 옳지 않다.(레닌, 유니우스 팜플렛에 대하여)

역사는 발전한다. 하지만 일직선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역사는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지그재그로 발전한다. 소련 사회주의의 패배는 역사에서 큰 퇴보지만 자본주의 모순이 해결되지 못하는 역사의 새로운 전진은 계속될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해야 하는 사회주의의 선구자들의 경험이나 시행착오를 통해 더욱 더 확실한 사회주의를 모색할 수 있게 됐다.

‘순수’한 사회주의 혁명을 고대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기다려도 결코 혁명을 만나지 못할 것(레닌, 자결권에 관한 토론의 총괄)

‘순수’한 현상이라는 것은 자연계에도 사회에서 없으며, 또 있을 수도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름아닌 바로 맑스의 변증법이 가르치고 있다. 이 변증법은 순수한 개념 자체가 대상을 그 총체에서 구석구석까지 파악하지 않는 인간의 인식이 얼마나 협소하고 일면적인가를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레닌,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가상으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혁명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순수한 혁명의 잣대를 가지고 현실이 이 잣대에 들어맞지 않으면 국가자본주의라고 한다. 지극히 관념적이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은 진공 속에서 건설된 것이 아니라 러시아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후진성, 낮은 교육수준, 내전과 생산력의 파괴, 제국주의의 포위 공격이라는 극단적인 조건 속에서 건설됐다. 러시아 혁명은 이러한 현실의 모순 속에서 건설되고 발전해 나갔다.

“러시아를 제외한 어느 나라에서도 노동자 권력이 수립되어 사회주의로 전진한 경우는 없다! 노동자 권력의 외피를 둘렀던 사회 체제는 스탈린주의 체제의 소부르주아 판에 불과했다. 동양의 소부르주아 혁명정부는 국가자본주의 관료 체제로 전화해나갔다! (사노련,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우리의 입장>을 논쟁적으로 해설한다!(4) 소련, 북한 등의 스탈린주의 국가 체제에 대한 태도)

모택동, 김일성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정권의 운명은 소부르주아 계급의 역사적 운명을 반영했다. 급진적으로 반(反)봉건 농업 혁명과 민족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즉 부르주아 혁명의 역사적 과제를 담당하는 과정에서 이들 소부르주아 세력은 역사적 진보를 반영했다. 이들의 역사적 역할은 대단히 독특한 것이었다.(사노련, 같은 글)

국가자본주의 사노련에게는 중국, 북한, 베트남, 쿠바 등은 순수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다. 사노련은 농촌을 중심으로 해서 도시로 진출하여 혁명을 한 중국이나 식민지 국가인 북한은 ‘순수’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 쿠바나 베트남도 소부르주아 국가자본주의 정권의 수립에 불과한 것이다.

각 나라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할 때 어느 방법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에 의해서 결정된다.(레닌, 각국 공산당. 노동자당 대표자회의 문서집)

레닌의 말처럼 이들 나라의 혁명이 ‘순수’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었던 것은, 저발전과 식민지, 반식민지 국가에서의 혁명이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중국 혁명 과정에서 혁명노선을 둘러싸고 바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과 신민주주의 혁명을 거쳐서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노선들이 치열하게 대립했다. 혁명의 주축 세력도 처음에는 도시 노동자계급에서 출발해서 잇따른 봉기의 실패로 농촌으로 거점이 옮겼다가 혁명 직전에는 다시 도시로 거점이 옮겨지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제한된 조건 속에서 각 나라의 특수성을 기반으로 한 혁명을 ‘순수’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부르주아 혁명에서 국가자본주의로 전화해갔다는 사노련의 주장은 역사를 단순화, 도식화하여 구체적 조건 속에서 구체적 분석을 회피하는 것이다.
사노련은 이들 국가들이 단지 소부르주아 정권이기 때문에 역사적 진보를 반영했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부르주아 혁명의 역사적 과제를 담당하면서 부르주아의 계급의 지위를 떠맡기 시작했다고 하고 있다.


그들은 부르주아 계급의 지위를 떠맡기 시작했다. 다만 이 사회 체제는 통상적인 부르주아 혁명을 통해 창출된 자본주의 체제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마치 노동자 국가를 내부에서부터 타도하고 등장한 스탈린주의 반혁명이 창출한 체제가 그랬듯이 말이다.(사노련, 같은 글)

이것은 봉건 잔재를 철폐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노동해방 사회 건설의 첫걸음이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첫 번째 조치였다.(사노련, 같은 글)

그런데 과연 역사상 부르주아 혁명의 역사적 과제를 담당하는 부르주아 계급이 중국, 북한, 쿠바, 베트남에서 이루어진 혁명적 조치를 취한 적이 있는가? 이들 국가들은 봉건적 소유관계를 철폐했을 뿐만 아니라 지주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 소작세의 폐지로부터 시작해서 집산화와 국유화로 나아갔다. 뿐만 아니라 무상의료, 무상주택, 무상교육 조치를 실시했다. 다만 역사적으로 제한된 생산력 발전의 낮은 수준 때문에 그 질이 그다지 높지 않았을 뿐이다.

역사에서 부르주아에 의한 부르주아 혁명은 봉건적 소유관계를 철폐했으나 이는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를 창출하기 위해서였다. 부르주아 혁명에서 가장 급진적이었던 쟈꼬뱅 정부조차도도 사적 소유권은 철저하게 보호했다. 부르주아 계급은 토지를 소농에게 무상분배 하기는커녕 공유지의 농민들을 강제로 내쫓고 농민들의 노동력을 공장에서 착취했다.

레닌 당시의 볼셰비키의 농민에 대한 정책도 바로 지주, 귀족, 교회 재산을 무상몰수해서 무상분배 하는 것이었다. 러시아에서 농민은 곧바로 집산화해야 한다는 로자의 주장에 대해 레닌은 농민과의 동맹을 파괴하는 모험주의라고 비판했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1930년대 이후 옛 소련, 동유럽, 북한, 중화인민공화국 등의 사회체제를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반(反)노동자계급적 사회체제로, 노동자계급이 타도해야 할 반동체제로 규정한다.(사노련, 같은 글)

1930년대 이후 중국, 북한, 쿠바 등이 타도해야할 반동적 국가라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체제가 된다. 먼저 사노련의 이 주장은 이 사회가 노동자 국가는 아니지만 부르주아 혁명의 과제를 담당할 때는 진보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자신의 주장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체제를 반동으로 규정하고 타도하겠다는 세력이야말로 역사의 진보를 반대하는 반동세력인 것이다.

사노련은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체제 또는 국가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반동체제로 전면 부정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부분이 어떠한 모순을 겪으면서 긍정성을 탈각해갔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항상 긍정적이고 항상 부정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모순 속에 변화,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 발전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후퇴와 퇴보라는 부정적인 부분이 더욱 드러날 수도 있다.

이러한 역사발전의 변증법적 과정을 보지 못하고 이들 국가들을 일면적으로 반동체제로 규정해버리면 이 주장은 반공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현실 사회주의를 포위해오던 제국주의의 입장과 같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IS(국제사회주의자)는 제국주의 미국이나 베트남이나 다 반동체제이기 때문에 베트남 전쟁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사노련의 입장대로라면 한국내전에서 사노련은 제국주의 반동과 북한 반동체제의 싸움에서 중립을 지킬 수밖에 없다. 지극히 우익적인 입장이다. 미제국주의에 맞서서 북이 자위권으로 핵무기를 소유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노련의 입장도 여기서 나왔다.

2. 경제적 토대 분석을 바탕으로 상부구조 분석하는 유물론적 방법론

맑스주의는 경제적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짓는다는 유물론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물론 상부구조는 상대적 자립성을 가지고 있고 경제적 토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하지만 근본적 규정력은 경제적 토대에 있다.

소련사회를 분석하는데 있어서도 소련사회 내에서 내부의 정치투쟁을 낳았던 사실들에 대해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경제분석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전시경제 체제에서 네프로의 이행, 농업과 중공업 발전을 둘러싼 논쟁, 농촌의 생산물과 도시 생산물의 가격격차로 문제를 낳은 협상가격차 위기 등의 정책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중심으로 이러한 제한적 조건을 만든 내전과 제국주의의 포위 공격 등의 정치적 조건을 살펴보아야 한다.

전시경제 체제는 혁명 이후에 내전과 제국주의의 포위로 인해서 불가피하게 강요되었다. 전시경제 체제는 말 그대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을 중심으로 해서 전 사회의 생산과 분배가 이뤄지는 체제를 의미한다. 노동자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생산, 분배, 유통에 대한 극도의 국가통제가 진행된다. 당시 전시경제 체제는 농민으로부터 농업생산물을 공급받아서 군수품과 식량을 공급하는 전쟁을 수행하였고, 노동자에 대한 토요 무상노동이 고무되었다.

이러한 전시경제체제는 사회주의 이행의 고유한 법칙도 아니었고 오로지 내전에서의 승리를 위한 목표로 집중됐다. 내전으로 인해 산업시설은 파괴되고, 군대로의 집중으로 산업은 파행적으로 되었다. 기아와 궁핍이 전 사회에 만연했다. 노동자와 농민의 불만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내전에서의 승리 이후 러시아는 신경제정책(네프)으로 전환했다. 신경제 정책은 은행, 대공업 및 해외무역은 국유화를 유지하면서 나머지 분야에서 개인 기업의 허용, 이윤추구를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붕괴직전인 농업과 공업을 성장시키기 위함이었다. 이를 위해 지주와 생산 관료에 대한 일정 정도의 양보책이 취해졌다. 신경제정책은 붕괴된 러시아 산업을 부흥시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공업에 있어서 자본주의 소유관계가 부활되기 시작하고, 투기꾼, 브로커 같은 기생적인 세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농업에서는 자유시장의 부활로 부농층이(쿨락)이 생겨났다. 노동자계급 내부에서도 성과급제의 부활로 노동자 내부가 분열됐다. 특히 농업 생산물과 공업생산물 사이에 심각한 가격격차가 발생해서 협상가격차 위기가 만들어 졌다.

이러한 전시공산주의 경제정책의 향방을 둘러싸고 볼셰비키 내부는 노동조합의 군사화 문제로 레닌과 부하린, 트로츠키가 격심한 논쟁을 벌였다. 신경제 정책을 둘러싸고도 레닌과 트로츠키는 논란을 벌였다. 레닌 사후에는 생산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생산수단을 만들어내기 위한 중공업에 집중할 것인가? 농민과의 동맹을 염두에 두고 농업발전에 집중하느냐를 둘러싸고 격렬한 권력내부의 투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볼셰비키 내부는 개인의 권력욕 보다는 이러한 경제정책을 둘러싼 격렬한 내부 투쟁이 진행됐다.

트로츠키와 트로츠키 파인 프레오브라젠스키는 우선적으로 중공업에 집중을 해서 생산기반을 만들어 내고 이것을 통해 농촌에 공업제품을 제대로 공급하고 농촌으로부터 도시 노동자들은 식량을 공급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부하린은 농촌의 우선 발전과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이 산업발전의 조건이 되기 때문에 농민과의 동맹을 통해 신경제정책을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농민들에게 부자가 되라고 외쳤다. 이러한 논란에서 스탈린은 중간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탈린은 트로츠키를 권력투쟁에서 밀어낸 뒤 트로츠키와 트로츠키 파인 프레오브라젠스키가 주장하는 초공업화 정책, 농민 집산화 정책을 취하게 된다.

스탈린은 초공업화 정책과 농촌의 집산화에서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몰아갔다. 수치상으로 농촌에서의 집산화 정책은 성공을 거두는 듯 싶었다. 하지만 농민 내부에서의 강압적인 형태의 집산화에 대한 반발이 극심했다. 스탈린은 농민이 이제는 집산화를 원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집산화를 밀어붙였는데 이제 스스로도 ‘성공에 취하여’라는 글을 발표하여 이러한 정책의 모순을 인정하고 집산화 정책을 완화하고 자율적 조치를 취했다. 그러자 58%대에 이렀던 집산화 비율이 23%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스탈린은 이후 계속적으로 집산화 정책을 강화하여 1937년에는 93.5%나 집산화 되었다.

지금까지의 대략적으로 서술한 경제정책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볼셰비키 내부의 투쟁의 전 과정에 대한 엄밀한 평가가 필요하다. 후르시초프는 스탈린 사후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비판했다. 그런데 이 비판은 스탈린 시대에 대한 온전한 비판과 평가가 아니라 개인의 권력욕 때문에 모든 일이 빚어진 것이라는 식으로 역사를 단순화 한다. 이는 소련사회 구성체에 대한 진지하고 올바른 접근을 막고 개인의 문제, 개인 간의 권력다툼이 독재의 원인이라는 부르주아 역사관이다.

그들 모두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은 10월 혁명이 수립된 노동자 국가와 스탈린주의 반혁명이 만들어낸 ‘관료 체제’ 사이에는 ‘노동자계급의 피의 강물’이 흐른다는 사실이다. 이 ‘피의 강물’ - 노동자 권력을 국가관료들의 권력으로 바꿔냈던 반혁명 - 을 진지하게 검토해야만 한다.
이것들은 노동자 국가를 파괴하고 국가 관료층의 지배를 수립했던 “명백한 반혁명”이다.

사노련은 1928년을 소련에서 반혁명이 이뤄져서 소련은 국가자본주의 사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분석은 비약일뿐더러 과학적이지 못하다. 중공업의 집중적 발전과 농촌에서의 대대적인 집산화처럼 사회주의 형식이 훨씬 강화됐는데 국가자본주의 사회로 변모한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사노련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국유화 조치가 이뤄지기 때문에 국유화 자체가 사회주의 정책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물론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사회주의의 형식이다. 그러나 그것은 주요한 사회주의 형식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국유화는 자본주의 초기에 독점자본이 형성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가 주된 자본축적의 주체로 나설 때나, 공황으로 파산한 사기업을 국가가 매입해서 국유화하거나, 파시즘처럼 전시체제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사민주의 정부에 의해서 일부 산업에 대한 국유화가 이뤄지기도 한다. 파시즘 하에서 국유화 비율이 높지만 자본주의에서 모든 국유화는 사적소유 체제를 인정하면서 사적 독점자본을 위해서 존재한다. 국가는 사적자본이 성장하거나 요구가 있으면 언제든지 사유화 조치를 취한다. 이렇게 자본주의에서 국유화와 사회주의에서 국유화는 분명히 다르다. 다만 사회주의에서는 국유화 형식만 아니라 그 국가에서 노동자가 차지하는 위치, 노동자 참여(소비에트 같은 국가기구, 산업생산 계획과 분배기구 등에서의 노동자 대표성)와 민주주의의 보장정도, 관료주의에 대한 제도적, 문화적 제한 정도(관료의 노동자평균임금, 직선제나 소환제 등 통제장치가 중요하다.)가 실질적으로 중요하다.

중공업 발전 정책과 농업 집산화는 혁명 이후 볼셰비키 내에서 끊임없이 그 방식을 둘러싸고 첨예한 논란을 벌이던 경제정책이었다. 물론 그러한 정책의 추구 과정에서의 조급성, 관료주의의 문제를 가지고 비판을 한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러시아 사회구성체가 국가자본주의로 변했다는 주장이라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이러한 정책을 취하는데 노동자농민의 희생이 있었다면 누가 정책을 취하더라도 불가피한 조건이었는지, 아니면 관료들을 위해 노동자농민이 희생된 것인지를 정확하게 살펴야 한다. 후자라면 심각하게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사노련은 북한의 천리마 운동 같은 생산장려운동을 노동자에 대한 착취증대의 근거로 사용하는데 레닌도 내전 당시에 생산을 독려하기 위해 테일러주의와 공산주의적 토요노동, 성과급제를 강조하기도 했다. 북한의 생산장려운동도 그것의 추진방식이 어떠했든 당시 경제적 조건 속에서 강요받은 측면이 크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이 있다고 그것을 자본주의에서의 자본축적을 위한 착취라 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에서 착취는 자본 간 경쟁에서 승리하고 자본의 성장을 위한 것이다. 결국 사노련이 말하는 ‘노동자 계급의 피의 강물’이라는 문학적 수사, 분노가 소련사회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대체하지 못한다.

3. 자본론을 통해 인식하는 국가자본주의론

사노련은 소련이 국가자본주의라는 선험 하에 구체적이고 풍부한 현실을 꿰어 맞추려 한다. 사노련은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의 실질적인 소유주가 아니었기 때문에 소련이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노련은 소련사회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맑스주의의 방법론과 개념을 철저하게 무시한다.

맑스는 추상에서 구체로 상향하는 방법론을 통해 자본주의의 경제적 작동법칙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들어간다. 이를 위해 맑스는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적인 세포인 상품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출발해서 가치, 교환가치 등의 추상적인 개념을 사용해서 구체적인 자본주의의 현실을 총체적으로 분석해 들어간다. 그런데 맑스주의 철학에서 추상은 과학적, 이론적 연구를 위해서 사물의 한 특성을 분리, 추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추상은 현실과 무관한 순전히 가상의 분석이 아니라 실제적인 대상에 대한 사실의 분석이다. 따라서 자본론은 자본주의에 대한 원리적 분석인 동시에 구체적인 분석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노련은 소련이 국가자본주의라고 하면서 자본주의 분석에 필수적인 노동력, 상품, 시장, 자본 간 경쟁과 독점, 잉여가치, 특별잉여가치 등의 개념을 사용하기를 거부한다.

노정협을 비롯한 혁명적 진영의 일부는 “맑스의 ‘자본론’에 이에 해당하는 규정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항의한다. 100% 엄밀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당연하다. 맑스의 “자본론”은 통상적인 자본주의 체제 말고는 존재하지 않았던 특정한 역사적 시기를 분석했다. 우리가 “자본론”으로부터 취해야 할 것은 “혁명적이고도 과학적인 방법론”,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이다. 이것은 맑스가 연구할 수도, 분석할 수도, 경험할 수도 없었던 새로운 역사적 시기에 “구체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맑스주의자들의 역사적이고도 구체적인 임무이다. 노정협이 보지 못하는 것은 이 점이다.

맑스주의에 충실하고자 하는 의도는 물론 좋은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맑스주의는 교조주의를 배격하고, 그 자리에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접근”을 대체시킨다. “자본론”을 쓰던 당시 맑스는 “관료집단의 반혁명과 그것을 통해 수립되는 국가 관료들의 지배 체제” 및 “소부르주아 혁명 정부와 이 정부의 부르주아 관료 체제로의 진화”를 경험할 수도, 예상할 수도 없었다. 이것은 맑스의 책임이 아니다. 이것은 아무리 뛰어난 이론가도 주어진 역사적 시기를 뛰어넘을 수 없음을, 그리고 이론이란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던져진 질문에 대한 대답임을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사노련)

사노련은 자본론을 쓰던 당시 맑스는 관료지배체제의 성격을 파악할 수 없다고 한다. 자본론은 자본주의 사회의 운동법칙에 대한 저술이다. 만약 사노련의 주장대로 소련이 자본주의 국가라면 자본론의 이론에 따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소련사회가 맑스가 “연구할 수도, 분석할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새로운 역사적 시기”라면 소련사회는 국가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괴물 같은 제3의 사회구성체가 될 것이다.

사노련은 국가자본주의라는 교조와 분파주의에 사로잡혀 맑스의 자본론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훼손하고 있다. 사노련은 맑스의 자본론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 외에는 분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초기 영국의 상황을 바탕으로 자본론을 작성한 맑스는 ‘역사적 시기를 뛰어넘을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맑스주의 이론은 국가자본주의라는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던져진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없단 말인가? 또한 독점이 존재하는 현대자본주의 즉 제국주의 시대의 자본주의에 대해서 맑스의 자본론을 가지고는 분석할 수 없다는 말인가? 이런 식의 사노련 주장대로라면 자본론은 영국의 초기 자본주의의 ‘역사적 시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불과한 것이 되고 맑스는 경험주의자로 전락하고 만다. 사노련의 의도와 상관없이 맑스주의에 대한 적대자들이 맑스를 산업혁명 초기의 극단적인 착취가 존재했던 시기에만 들어맞는 주장이라고 경험주의적으로 왜곡하는 것과 같게 된다.

맑스의 자본론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자본의 본질도 분석할 수 있도록 한다. 사노련의 주장대로라면 자본주의의 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증명될 수 없는 단지 추상의 수준에서 ‘일반적인 규정’일 뿐이게 된다.

사노련의 이 주장은 맑스의 자본론 1권과 3권을 비교하면서 상품의 가치와 가격이 일치하지 않는다, 총가치와 가격이 일치한다는 실증적 증명을 대라면서 노동가치론 또는 가치법칙을 전면 부정했던 부르주아 경제학자인 뵘 바베르크의 주장과 유사해진다. 베른슈타인 또한 맑스의 노동가치론이 ‘순전히 추상적인 개념’이라며 자본의 노동자에 대한 실제적인 착취를 거부하고 수정주의 이론을 전개했다. 사노련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일반적 규정’과 베른슈타인의 ‘순전히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규정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가?

사노련의 자본론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소련사회에 대해서 맑스의 관점대로 가치법칙이 과연 작동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변을 회피하려는 부정직한 태도에서 비롯됐다. 물론 소련사회에서 가치법칙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상품관계를 폐절했다고 해도, 농민이나 자영업자 등 소소유자가 생산하고 교환하는 상품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가치법칙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련에서는 자본주의처럼 가치법칙이 한 사회를 규정하는 지배적 법칙이 되지는 않는다.

소련에서의 상품의 생산은 전사회적 생산의 일부로 사전에 계획돼서 생산이 됐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의 상품생산은 한 기업에서는 계획이 이루어지지만 전체사회에서는 무정부적 생산이 이뤄지면서 가치법칙에 의해 생산이 조정된다. 가령 가치보다 가격이 높을 때는 다른 생산부분에서 더 자본투자를 해서 생산이 늘어나고 반대일 때는 생산이 줄어든다. 그런데 가치 보다 가격이 높아서 생산이 더 늘어나게 되면 수요 보다 생산이 많아지면서 가격이 떨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본은 또 다시 다른 생산분야로 옮겨가게 된다. 이러한 자본주의 생산을 규제하는 법칙이 가치법칙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의 보이지 않는 힘인 가치법칙에 의한 생산의 조정은 조화로운 관계가 아니라 가치법칙의 작동 과정에서 무정부적 과잉생산과 과잉축적 자본주의 모순과 공황을 낳는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격렬한 모순을 통해 새로운 생산을 개시한다.

토니 클리프는 소련사회만을 놓고 본다면 가치법칙이 작동하지 않지만 제국주의 국가와의 무기경쟁에 의해 가치법칙이 작동한다고 한다.(토니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에 대한 전면적 비판은 여기서 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이 주장은 상품은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 즉 교환가치를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는 맑스주의 상품법칙에 의해 간단히 부정된다. 소련에서 무기생산은 일부 판매되기도 하지만 주로 대부분 제국주의 국가로부터의 공격을 막기 위한 비생산적 소비였다.

자본주의 생산의 목적은 잉여가치를 위한 생산이다. 이를 위해 자본가는 노동자를 극심하게 착취하려 한다. 또한 자본가 간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새로운 생산방법과 자동화, 기계화된 혁신적인 방법을 도입한다. 왜냐하면 자본은 다른 자본가에 비해 혁신적인 생산방법과 생산력을 도입해서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 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생산물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가치로 생산물을 판매한다. 여기서 자본가는 특별 잉여가치를 누린다. 자본가 간의 격렬한 경쟁을 추동하는 힘도 이러한 특별잉여가치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제법칙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련에서 무기생산을 가지고 가치법칙이 작동했다고 할 수 있는가?와 과연 소련에서 관료가 잉여가치와 특별 잉여가치를 추구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만일 관료가 자본가라면 관료간의 경쟁을 통해서 경쟁력을 상실한 관료의 파산이 이뤄지고 독점적 관료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자본주의론의 주장대로 소련 사회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장이었다면 관료간의 경쟁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또한 그리고 관료적 위치와 지배가 상속을 통해 자식에게 넘어 갔는가?

이처럼 국가자본주의론은 맑스의 자본론의 관점에서 어느 것 하나 들어맞는 게 없다.

사노련은 이렇게 소련 사회주의가 맑스의 자본론의 분석에 의해서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간단하게 증명되자 파산한 국가자본주의론을 지켜내기 위해 맑스의 자본론을 가지고 소련 사회가 자본주의인지 아닌지를 분석할 수 없다고 한다. 더 나아가 맑스의 자본론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이기 때문에 자본론을 가지고는 자본주의를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없다고 하여 맑스를 왜곡한다. 우리는 맑스주의를 자처하는 사노련이 종파주의적인 국가자본주의론에 사로잡혀 맑스를 부정하게 된 현실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결국 사노련과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맑스의 자본론인가 국가자본주의론인가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맑스주의는 자본주의의 원리적 이해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과학이다. 이것이 과연 교조주의인가? 이것을 교조주의라고 주장한다면 사노련은 이미 수정주의자가 된 것이다.

4. 소련사회 분석에 있어서의 좌편향적 무정부주의


유럽 프롤레타리아의 직접적이고 국가적인 지지가 없다면 러시아의 노동자 계급은 획득한 권력을 유지할 수도 없을 것이고, 또한 일시적인 지배권을 영속적인 사회주의적 독재로 전환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이 사실을 일순간도 의심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서구의 사회주의 혁명이 우리들로 하여금 노동자 계급의 일시적인 지배권을 직접 사회주의적 독재로 전화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는 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트로츠키, 평가와 전망)

유럽에서의 혁명의 전망은 구체적으로 독일이었다. 독일은 후발 자본주의 국가였지만 1920년대 당시에는 유럽에서 자본주의 산업이 가장 발전한 국가였다. 이러한 생산력이 가장 발전한 독일에서의 혁명은 유럽 각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프롤레타리아를 격발시켜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전역으로 혁명의 불길을 전파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럽에서의 혁명의 기대가 송두리째 무너졌을 때 혁명권력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독일혁명은 1919년 제3인터내셔널 1차 대회 개최 후 3개월이 지나지 않아 패배한 뒤 21년 이후에는 완전히 혁명의 가능성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면 가능성 없는 세계혁명에 기대면서 일국의 사회주의를 자본가들한테 넘겨줘야 하는가? 레닌이나 심지어 스탈린조차도 처음에는 유럽에서의 혁명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스탈린도 1924년 4월에는 후진 농업국인 러시아가 유럽에서의 혁명의 성공 없이 일국에서 사회주의의 최후의 승리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0월에는 대규모적인 공업화와 농민과의 동맹을 통해 농업을 협동조합화 하는 것으로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은 1925년 12월 제14차 당대회에서 압도적으로 가결됐다. 이로써 당내에서 스탈린의 입지는 확고해지고 트로츠키는 급속히 영향력을 상실하고 카메네프, 지노비에프와 3각동맹을 맺게 된다. 세계혁명의 가능성이 물 건너 간 상황에서의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고, 당시 대중들의 정서는 전쟁과 내전으로 피로도가 겹쳐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능성 없는 세계혁명에 기대어 러시아혁명은 산화해야 하는가? 아니면 일국에서의 사회주의를 일궈가야 했는가? 하는 갈림길에서 사노련은 이렇게 말한다.


가장 결정적인 패배는 바로 러시아 볼셰비키 노동자 당이 스탈린 관료집단에게 장악당해 버린 것이다. 만일 비록 혁명은 좌초했을지라도, 이 당이 관료집단을 숙청해내고 노동계급 혁명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했다면, 그래서 러시아 혁명의 교훈들이 이 당에 의해 전수되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단지 세계 혁명의 패배에 따른 역관계의 불리함 때문에 러시아 혁명 또한 패배를 면하지 못했을 뿐, 혁명의 전통, 사회주의 혁명당의 전통은 그대로 살아남았을 것이다.

사노련의 이 주장은 볼셰비키가 관료주의에 빠지지 않고 일국사회주의가 아닌 국제주의 정신을 사수했다면 세계 혁명의 패배에 따른 역관계의 불리함 때문에 러시아 혁명이 패배할지라도 혁명의 전통, 사회주의 혁명당의 전통은 그대로 살아남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 주장은 세계혁명이 실패하면 러시아 혁명의 패배는 필연적이라는 숙명주의, 패배주의를 안고 있다. 러시아 혁명의 패배는 혁명전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혁명에 대한 패배주의, 러시아에서의 자본주의 부활, 전 세계 자본주의의 기고만장한 승리를 낳는다.

소련이 일국에서 생존하고 뒤이어 중국혁명이 승리하면서 많은 식민지 국가가 해방되었다. 소련은 이후 엄청난 인민들이 희생되면서 독일 파시즘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혁명의 공포에 떨면서 소련을 무너뜨리기 위해 엄청난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와 선전을 하고 반소비에트 십자군 전쟁을 벌였다. 미국은 마셜플랜을 통해 유럽지원도 유럽에서의 공산주의의 전파를 막고, 소련을 봉쇄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한편으로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국 내에서의 혁명을 막기 위해서 복지국가 정책을 취했다. 반면 제국주의 국가들의 위협 앞에서 소련의 사회주의 건설은 심각하게 왜곡됐다.

일국에서의 사회주의는 스탈린이 대러시아 민족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혁명의 패배로 인해 강요된 것이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강요된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일국사회주의는 일국사회주의다. 일국에서의 사회주의는 처음에는 승리할 수는 있지만 국제혁명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는 없다. 스탈린은 레닌도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를 말했다고 하지만 레닌은 최종적인 승리를 말하지 않았다.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를 더 나아가 완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피한 조건을 하나의 원칙으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각국에서의 사회주의자들은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존립과 강화를 위해 싸워야 하지만 일국 사회주의는 세계혁명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투쟁해야 한다. 또한 자칫 일국으로의 고립조건에서 나타날 수 있는 민족주의 사상에 맞서 국제주의 사상과 국제적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위해 부단하게 투쟁해야 한다. 그러나 세계혁명의 가능성이 당분간 없는 상황에서 일국에서의 사회주의는 필연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패배주의이자 청산주의다. 이 말을 강조하는 것은 유행처럼 번지는 스탈린주의 비판이 물질적 조건을 중심으로 한 분석이 아니라 스탈린이 이러 저러한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분석의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적 유물론을 거꾸로 적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소련 사회주의의 승리와 패배의 경험으로부터 과학적 교훈을 얻지 못한다. <노/정/협>
08·09·06 23:22 수정 삭제


행동강령 노정협의 ‘사노련의 국가자본주의론 비판’을 읽고
--국가자본주의론과 스탈린주의 모두에 반대한다!

**모든 굵은 글씨 강조는 글쓴이가 한 것이다.


1.

현실 노동자국가 분석의 중요성

<전국노동자정치협회>(이하 노정협)는 지난 43호 <노동자정치신문>을 통해 ‘맑스주의 방법론과 원리를 포기한 사노련의 국가자본주의 비판’을 발표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1991-2년 발생한 소련의 붕괴, 그리고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에 수입된 IS의 클리프주의는 '국가자본주의론'을 급속히 유행시켰다. 그리하여 IS의 한국지부인 <다함께>뿐만 아니라,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하 사노련)이나 <사회주의노동자신문> 등도 소위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을 ‘국가자본주의론’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 ‘국가자본주의론’이 유행하게 된 까닭은,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이 탄생한 1940년대 말이 그러했던 것처럼, 한국 특유의 맹렬한 반북 반공 히스테리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런데 요즘, 대응하기 까다롭고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를 ‘국가자본주의론’을 통해 회피하려는 데에서 나아가, 그것을 이론으로 정립하려는 독자적인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사노련이 지난 6월 <사회주의자> 2호에서 발표한 ‘소련, 북한 등의 스탈린주의 국가 체제에 대한 태도’는 그러한 시도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노정협의 ‘사노련의 국자자본주의 비판’은 시의적절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소위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하나인 북한 그리고 중국에 인접하고 있는 남한의 노동계급에게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IBT는 이 문제를 이렇게 말한다.
“남한의 일부 사회주의자들은 소련의 성격 문제 등과 더불어 북한의 성격을 규명하고, 그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문제가 이론적으로만 중요할 뿐, 실천적으로는 그다지 날카로운 쟁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이 다르다.
말할 필요도 없이, 혁명은 국제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 나라 혁명의 성공과 그 방어는 국제적 역관계 속에서 규정된다. 즉, 남한 혁명은 남한 내 노동과 자본의 역관계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역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구체적으로 자본주의 세계 질서를 지탱하는 축인 미국과 주변의 나라들인 중국, 북한,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정세는 남한 역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혁명적 상황은 남한이 아니라, 구소련과 동구의 붕괴 때 그러했던 것처럼, 중국이나 북한의 격동을 통해서 시작될 수도 있다. 미래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 현재로서는 중국과 북한 체제가 남한이나 일본보다 더 불안정하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혁명 상황은 (그것이 정치혁명으로 나아가든, 아니면 자본주의 반혁명으로 나아가든 간에) 천안문 사태와 같은 격변으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국경을 맞대고 있고, 같은 민족이라는 사정 때문에, 북한의 정세 변화는 남한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따라서 중국과 더불어 북한의 성격을 정확히 규정하고 정치적 입장을 명확히 하는 것은 날카로울 뿐만이 아니라, 사활적인 문제이다.
한편,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는 많은 좌익 조직들이 ‘국가 자본주의론’으로 중국이나 북한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이 '국가자본주의론'은 참 편리한 이론이다. 토니 클리프는 자신의 굴복을 치장하는 데 이 이론을 동원했다. 또한 이 이론은 손에 때 묻히기를 싫어하는 쁘띠 부르주아 공론가들의 이상주의적 성향을 만족시키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현실보다 자신들의 공상이 우선한다. 이들은 맑스주의의 구체적인 실현 즉, 구소련의 역사나 중국, 북한 등이 자신의 머릿속 추상과 일치하지 않는 데에서 오는 실망이나 당혹스러움을 ‘국가 자본주의’라는 거짓 이론으로 달랜다. 누추해 보이는 ‘현실 사회주의(노동자 국가)’를 국가 자본주의로 일축하는 것을 통해, 허약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사회주의 이상이 보존되었다고 안도한다.
중국이나 북한을 간단하게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하는 자칭 사회주의자들은, 아마도 이들 나라들이 ‘마땅히 무너져야 할 체제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제대로 건설하면 된다.’라고 편리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 누추해 보이는 소위 ‘현실 사회주의 국가 (퇴보한 그리고 기형적인 노동자국가)’들을 자본주의의 공격에 맞서 건설하고 지키기 위한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인민들이 처절하게 죽어갔는지를 상기해야 한다. 소련에서 수천만의 인민이 내전과 2차 대전을 통해 죽어야 했다. 한반도에서만 내전과 전쟁을 통한 계급투쟁에서 죽어간 인민이 3백만이 넘는다.
사실 사회는 가장 높은 수준의 그리고 가장 복잡한 형태의 물질 운동이어서 그것을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다. 게다가 역사의 전개는 추상화된 모습이 아니라, 우여곡절을 겪으며 전개된다. 현실은 그 추상을 법칙적으로 실현하지만, 그 구체적인 실현 형태는 그 추상과 때로 달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상반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20세기에 있었던 노동자 혁명(들)은 그 극명한 실현 형태였다. 맑스와 레닌이 혁명으로 가는 지침과 해석의 도구를 많이 남겼지만, 노동자 혁명의 성공, 고립 그리고 스탈린주의라는 퇴행은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건이었다. 그 혁명을 이끌었고 중심에 있었던 좌익반대파와 트로츠키마저도 그 사건을 명확히 해석해 내는 데에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었다.
우리는 그보다는 쉽다. 맑스, 레닌과 트로츠키가 남긴 이론적 유산은 20세기에 일어났던 굵직한 역사적 현상들을 거의 설명가능하게 해 준다. 그 범주에서 벗어난 사건은 중국, 북한 쿠바, 베트남 등 노동자 혁명 없이 수립된 노동자 국가들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배반당한 혁명> 등을 비롯한 트로츠키의 노동자 국가 분석을 바탕으로 한 유추를 통해 해석해 낼 수 있었다.
중국과 북한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남한 혁명의 사활적인 문제이다. IS 그룹의 지도자들이야 그 동안의 일관된 굴복의 역사를 숨기기 위해서라도 그 이론을 고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좌익 그룹들이 중국과 북한을 손쉽게 ‘국가 자본주의’라고 규정하고 외면해 버리는 것은, 나태를 넘어 범죄적일 수 있다. 20세기에 유산된 수많은 혁명에서 목도했지만, 노동계급 지도부의 불철저는 인민의 피를 헛되이 흘리게 하기 때문이다.”--17대 대선에 대한 IBT 입장

청산주의 우려와 그 현실화

노정협의 이번 문건에는 ‘국가자본주의론’을 옹호하는 사노련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들이 많다. 다음 인용문은 그 중의 하나이다.

“현실 사회주의 분석에 있어서 전면 부정하는 태도는 자칫하면 청산주의를 낳을 수 있다. '국가자본주의론'처럼 소련이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대중들에게 새겨져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현실 사회주의를 있는 그대로 분석하면서 우리가 맞닥뜨릴 수 있는 혁명의 현실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노정협

'국가자본주의론'은 결국, 노동계급의 기존 성과를 청산하려는 경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노정협의 우려에 동의한다. <가자! 노동해방> 14호에서 그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북한 김정일의 사망, 그리고 북한의 관료적 지배체제의 붕괴에 대해 우리가 슬퍼해야 할 이유가 없다. 무너져도 빨리 무너져야 할 반동 체제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중략) 나아가서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 노동자 민중은 ‘미제 축출’을 내건 북한 관료집단의 영향력에 다시 포섭될지도 모른다. 남한에서도 계엄령을 비롯한 살벌한 반동 조치들이 활개 치면서 노동자 민중의 수십 년의 투쟁 성과들을 무로 돌리려 할 것이다.”--최영익, 북한 김정일 체제의 위기-부시와 이명박의 야합에 맞서야 한다!

이 글에서 사노련은, 북한 정권은 “무너져도 빨리 무너져야 할 반동 체제”라며 미제와 남한 부르주아들과 인식을 같이 한다. 머리를 풀숲에 묻어버리면 세상의 모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꿩처럼, 일제 민족해방투쟁과 해방 후의 미군정, 한국전쟁, 반공반북이데올로기를 통한 혁명운동에 대한 잔인한 탄압 등 한반도의 근현대사에 대해 사노련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아마도 조합주의 경향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 자본주의 초과 착취의 버팀목이고, 국제적으로 자행되는 온갖 만행에 연관되어 있으며, 남한 부르주아의 산파인 “미제”를 “축출”하자는 구호는 북한 관료집단의 구호일 뿐이라고 사노련은 생각한다. 남한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선, 최소한 한반도 차원에서라도 미제를 축출해야 한다. 남한 부르주아(국제적으로는 미제의 하위파트너)들이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미군의 존재에 목을 매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사노련은 미제 축출 없이도 사회주의 혁명이 과연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리고 북한의 붕괴는 노동계급에게 또 다른 패배를 가져다 줄 것이다. “자본주의적 재앙의 한반도화가 진행될 것(IBT)”이고, "부르주아는 기고만장(노정협)”해질 것이며, “북한 인민은 아시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나 중국 동포들처럼 가장 혹독하게 착취당하는 처지가, 남한의 노동 계급은 북한의 값싼 잉여노동으로 인해 현재보다 더욱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강요받게(IBT)" 될 것이다. 1990년대의 소련과 동구권 몰락이 노동계급의 전 세계적 사기저하를 몰고 왔다는 사실을 사노련은 정녕 모르고 있는 것일까?

“무너져도 빨리 무너져야 할 반동 체제”라고 말하며, 기존의 진지를 쉽사리 적에게 내어주는 사노련은, 그 동안 남한에서 쌓아 올린 “투쟁 성과들을 무로 돌(릴)” 가능성만을 걱정한다. 반면, 사노련이 “빨리 무너져야 할 반동 체제”라고 규정한 북한을, 훨씬 더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을 자본가 단체들은, 이렇게 묘사한다.

“북은 근로자의 임금을 ‘생활비’라고 부른다. 생활비는 기본노임, 가급금, 상금 및 장려금으로 구성된다. 기본노임은 직종과 소속 산업부문, 노동 부류에 따라 정액 임금제와 도급 임금제로 구분된다. 공통적으로 노동의 양과 질에 따라 차등화 되어 있다. (중략) 다만, 무상 치료제, 무료 의무교육제, 사회보장제, 영예군인 우대제 등의 사회적 시책들은 계속 실시되고 있고, 연금이나 생활보조금은 인상됐다.”--북한투자전략연구소, 주간 북한경제동향 3호 http://www.dprkinvest.org/

사노련은 ‘촛불노동자 13대 행동강령’에서 ‘국유화, 무상 의료, 무상 교육’ 등을 제기했다. 북한에서 실시되고 있는 ‘국유화, 무상 의료, 무상 교육’은 그 강령과 무관한 것인가?

‘사회주의’라는 용어 사용의 문제

사노련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이다’라고 말하는 반면, 노정협은 ‘현실 사회주의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사회주의라는 용어 사용에 대해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트로츠키의 견해를 들어보자.

“공산주의로 가는 첫걸음인 노동자국가에서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즉 각자가 일할 수 있고 일하기 원하는 정도에 따라 노동을 허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더욱이 일의 많고 적음과 무관하게" 각자의 필요에 따라" 모든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도 없다. 공산주의를 달성할 정도로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임금이라는 관습에 의존할 필요가 있다 . 즉 개개인 노동의 질과 양에 비례하여 재화를 분배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새로운 사회를 향한 이 첫 단계를 "공산주의의 가장 낮은 단계"라고 불렀다.” (중략)
“달성된 노동생산성과 무관하게 소유형태만 가지고는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견해이다. 마르크스에게 공산주의의 가장 낮은 단계란 처음부터 경제발전에서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보다도 높은 수준에 도달한 사회를 의미했다. 이론적으로는 이 논리에 허점이 없다. 왜냐하면 최초의 낮은 단계에서도 세계적 차원에서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보다 더 발전한 체제이기 때문이다.” (중략)
“러시아는 자본주의의 가장 강한 고리이기는커녕 가장 약한 고리였다. 현재 소련은 세계의 경제수준을 능가하고 있기는커녕 자본주의 국가들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당대에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의 생산력을 사회화시킨 기초에서 형성될 사회가 공산주의의 가장 낮은 단계 즉 사회주의 사회이다. 그렇다면 소련은 명백히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다. 왜냐하면 소련은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기술, 문화, 재화의 측면에서 상당히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소련이 보여주고 있는 모든 모순적 요소들을 인정할 경우 이 체제는 사회주의가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예비적 체제(preparatory regime)로 보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트로츠키, <배반당한 혁명>, 갈무리출판사, IBT, 제3장, 사회주의 체제와 국가

이렇게 길게 인용하는 의도는, 양측의 용어 사용 모두 특정한 정치적 전통에 기초해 있고, 일정한 편향을 지니고 있으며, 그로 인해 (퇴보한 또는 기형적) 노동자 국가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노련은, 스스로 인정하건 그렇지 않건, 소련 등 소위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견해는 토니 클리프를 대표로 하는 '국가자본주의론'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한편, 노정협은, 뒤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스탈린주의의 전통에 기대어 있다.

트로츠키는 레닌과 더불어 1917년 10월 혁명으로 탄생한 사회체제를 사회주의라고 규정하지 않았다.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소비에트 권력에 기초한 노동자 국가로 인정했다. 관료집단의 집권과 그 퇴보 이후, 트로츠키는 그것을 퇴보한 노동자국가(degenerated workers' state)로 규정했다. 트로츠키가 1940년 사망한 이후, 2차 세계 대전 소련이 장악한 동유럽에서, 그리고 중국, 북한, 쿠바, 베트남 등 민족해방운동을 통해, 소련 체제를 이식한 노동자국가들이 등장했다. 이 노동자국가들을, 제4인터내셔널의 전통을 이은 혁명가들은, 기형적 노동자국가(deformed workers' state)라고 규정한다. 앞으로 논쟁이 되어야겠지만, 나는 트로츠키와 제4인터내셔널 전통에 따른 명명법이 과학적이라고 믿는다.

‘대담함’으로 과학을 대치하는 사노련

사노련은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시기에, 어떤 소유관계에 기초해서’와 같은 사회 성격 규정의 핵심적인 문제들에 대한 논증을 생략해 버린 채, 격앙된 느낌표와 “피의 강물이라는 문학적 수사(노정협)”로 느닷없이(!) 소련 중국 북한 등에 부르주아 정권을 등장시킨다.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잡든 다음은 분명하다: “러시아를 제외한 어느 나라에서도 노동자 권력이 수립되어 사회주의로 전진한 경우는 없다! 노동자 권력의 외피를 둘렀던 사회 체제는 스탈린주의 체제의 소부르주아 판에 불과했다! 동양의 소부르주아 혁명정부는 국가자본주의 관료 체제로 전화해나갔다! 이들은 혁명의 시기든, 이후의 반동화되는 시기든 공히 노동자계급운동에 대한 파괴자로 군림하거나, 노동자계급운동의 파괴를 반영했다!”--사노련(노정협의 인용과는 다른 부분)

이에 대해 노정협은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반박한다.

“그런데 과연 역사상 부르주아 혁명의 역사적 과제를 담당하는 부르주아 계급이 중국, 북한, 쿠바, 베트남에서 이루어진 혁명적 조치를 취한 적이 있는가? 이들 국가들은 봉건적 소유관계를 철폐했을 뿐만 아니라 지주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 소작세의 폐지로부터 시작해서 집산화와 국유화로 나아갔다. 뿐만 아니라 무상의료, 무상주택, 무상교육 조치를 실시했다. 다만 역사적으로 제한된 생산력 발전의 낮은 수준 때문에 그 질이 그다지 높지 않았을 뿐이다.”--노정협


'국가자본주의론'과 제국주의

또한 노정협은 '국가자본주의론'이,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궁극적으로 제국주의 입장으로 귀결된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이러한 역사발전의 변증법적 과정을 보지 못하고 이들 국가들을 일면적으로 반동체제로 규정해버리면 이 주장은 반공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현실 사회주의를 포위해오던 제국주의의 입장과 같게 되는 것이다.”--노정협

'국가자본주의론'은 토니 클리프 고유의 발명품이 아니다. 이미 레닌이 배신자라 칭한 카우츠키는 1917년 혁명 직후, 내전에 시달리고 있던 소비에트 정권을 국가자본주의 체제라고 규정했다. <미국사회주의노동자당> 소속이던 맥스 색트먼은 2차 세계대전 직전, 소련을 '집산 자본주의'라고 규정 소련 방어를 거부했고 트로츠키주의로부터 이탈했다. 이후 그들은 우경화를 거듭하다가, 그 중 일부는 신보수주의 이론가가 되었다. 토니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은 한국전쟁 무렵 등장했다. 2차 대전 직후 극심해진 반공 공세 속에서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하고, 6. 25 전쟁 때 어느 편도 들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스탈린 사후 소련에서 진행되던 스탈린 격하 운동으로 인해 갈등을 빚던 모택동은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라고 부르며 1972년 미 제국주의와 반(反)소련 동맹을 맺는다.

이처럼 국가자본주의는 단순히 이론인 것만이 아니다. 카우츠키에서부터 모택동에 이르기까지, '국가자본주의론'은 제국주의로의 경도이거나 압력의 결과였다.

국유화에 대한 관점

소련, 중국, 북한 등을 자본주의로 규정하고자 하는 사노련은 국유화는 사회주의적 소유가 아니라는 대단히 놀라운 입장을 제기한다. 소위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들에도 국유화한 기업이 부분적으로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이들은 사회주의를 일종의 국유화 체제로 간주한다. 만일 국유화 체제가 사회주의라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존재하는 “국영기업들”은 사회주의 체제의 일부일 것이다. / 물론 사회주의자들은 “국영기업이나 공기업의 민영화 정책”에 대해 반대한다. 이것은 사적 소유 체제, 그리고 이로부터 비롯되는 생산수단의 부르주아적 사용에 대한 반대를 표현한다. 그러나 이로부터 “국영기업과 공기업”을 모종의 사회주의 소유관계로 접근하는 것은 맑스주의를 완전히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다.”--사노련(노정협과 다른 부분에서 인용)

사회주의적 국유화와 자본주의적 국유화를 혼동하며, 기존 노동자국가들의 국유화를 얼렁뚱땅 무시해버리는 사노련에 대해, 노정협은 다음과 같이 옳게 지적한다.

“물론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사회주의의 형식이다. 그러나 그것은 주요한 사회주의 형식이다. (중략)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국유화는 자본주의 초기에 독점자본이 형성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가 주된 자본축적의 주체로 나설 때나, 공황으로 파산한 사기업을 국가가 매입해서 국유화하거나, 파시즘처럼 전시체제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사민주의 정부에 의해서 일부 산업에 대한 국유화가 이뤄지기도 한다. 파시즘 하에서 국유화 비율이 높지만 자본주의에서 모든 국유화는 사적소유 체제를 인정하면서 사적 독점자본을 위해서 존재한다. 국가는 사적자본이 성장하거나 요구가 있으면 언제든지 사유화 조치를 취한다. 이렇게 자본주의에서 국유화와 사회주의에서 국유화는 분명히 다르다.”--노정협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생산수단의 국유화가 사회주의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사회주의의 핵심 필요조건이다. 사노련처럼 도식으로 말한다면,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노동자 민주주의+자본주의 최고의 생산성’일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국영기업의 성격과 사유화 반대 투쟁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촛불정국과 <사노련>의 조합주의적 기회주의’에서 언급한 바 있다. 여기서는 사노련이 혼동하는 사회주의적 국유화와 자본주의적 국유화의 차이를, 노정협의 지적에 더해, 몇 가지 덧붙이고자 한다.

노동자 국가의 국유화는 ‘혁명’을 통해 등장하지만, 자본주의적 국유화는 국가투자를 통해 등장한다. 노동자 국가의 생산수단 국유화는 경제 체제 전체를 지배하는 ‘전면적’인 것이지만, 자본주의 국유화는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 보완하는 수준에서 일면적으로 이루어진다. 노동자 국가의 국유화는 ‘노동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며 ‘계획 경제’의 일부가 되지만, 자본가 국가의 국유화는 시장 경제의 일부이며 자본가 계급의 이익에 봉사한다. 노동자 국가의 국유화 체제가 전면적인 사적 소유체제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반혁명’이라는 사회격변을 동반하지만, 자본주의 국가의 국영기업은 매각 조치로 이루어진다.

생산수단의 소유형태는 사회 성격을 가늠하는 맑스주의의 핵심 문제이다. 맑스는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 계급이 구성된다고 가르친다. 노동자 민주주의로 보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너져도 괜찮은’ 체제라고 규정하는 사노련이야말로, “맑스주의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자본가 진영의 편을 드는 반동적인 태도이다.

* * *
이처럼 사노련의 국가자본주의론에 대한 노정협의 비판에는 의견을 같이할 만한 내용이 많으며, 대부분 동의한다.


2.

하지만, 노정협의 ‘사노련의 자본주의 비판’을 읽으면서 우려스러운 것이 있다. 그것은 국가자본주의로부터 맑스 레닌주의와 노동자국가(퇴보한 또는 기형적인)를 이론적으로 방어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스탈린주의까지 방어하려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태도

그런 의심이 드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소련의 성격을 왜곡하는 '국가자본주의론'에 맞서 싸우면서, 소련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에 주역이었고, 여러 수정주의적 견해들에 맞서 소련 방어를 위해 일생을 걸고 투쟁한 트로츠키를 인용하는 데에는 참 인색하다는 점이다.

레닌 생전에도 감지되긴 하였지만, 그 퇴보가 명백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의 죽음 이후였다. 그리하여 소련의 퇴보와 맞서 싸우고 또 한편으로 소련 성격에 대한 여러 조류의 수정주의적 견해와 맞서 싸운 것은 레닌이 아니라 트로츠키였다. (그런 점에서, 트로츠키의 핵심과업인 소련 방어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IS나 그 한국지부인 <다함께> 그리고 <사노련> 등이 스스로를 트로츠키주의로 자처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들의 강령에 걸 맞는 정확한 명칭은 ‘토니 클리프주의’일 것이다.)

노정협은 딱 한 번 트로츠키를 인용한다. 그런데 트로츠키(또는 트로츠키주의)를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듯한 “4장 좌편향적 무정부주의”에서, 그것도 ‘국가자본주의론’ 비판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평가와 전망(1906년)’ 일부를 인용한다. ‘평가와 전망’은 트로츠키가 연속혁명론을 펼친 첫 저작인데, 연속혁명론은 스탈린이 ‘일국사회주의론’을 확립하기 위해 반드시 타격해야 했던 목표였다.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 운동

그런 의심은 흐루시초프가 ‘레닌의 유서’를 공개하며 벌인 ‘스탈린 격하 운동’에 대한 다음의 평가에서 커져간다.

“지금까지의 대략적으로 서술한 경제정책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볼셰비키 내부의 투쟁의 전 과정에 대한 엄밀한 평가가 필요하다. 흐루시초프는 스탈린 사후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비판했다. 그런데 이 비판은 스탈린 시대에 대한 온전한 비판과 평가가 아니라 개인의 권력욕 때문에 모든 일이 빚어진 것이라는 식으로 역사를 단순화 한다. 이는 소련사회 구성체에 대한 진지하고 올바른 접근을 막고 개인의 문제, 개인 간의 권력다툼이 독재의 원인이라는 부르주아 역사관이다.”--노정협

물론,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은 온전한 것이 아니다.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단히 스탈린주의적인 동기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스탈린주의는 “제국주의의 군사적 압박으로 정치적 공황 상태에 빠진 관료들의 세계관이다. 그들은 제국주의라는 당면한 위협에 질식되어, 노동계급의 장기적 국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안목을 상실하고, 관료 집단의 당면한 일국적 이익만을 도모한다.(IBT, 같은 글)" 혁명가가 아니라, 국유화에 기생하는 특권층인 자신들의 모습을 숨기기 위해, 그들은 맑스나 레닌의 대리인으로 행세한다.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은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즉, 스탈린(정확히는 스탈린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어 있는 노동계급 앞에서 스탈린을 비판함으로써,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공격의 예봉을 피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은 같은 뿌리에서 탄생한 노태우가 전두환을 법정에 세우고 처벌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편, 중국의 모택동이나 북한의 김일성은 레닌의 대리인일 뿐만이 아니라, 소련 즉, 스탈린의 대리인으로서도 행동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근본을 흔드는 스탈린 격하운동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런 점에서 각각 흐루시초프 정권과 갈등을 빚었다.

그런 점에서 스탈린주의 세계관과 체제 전체가 아니라 스탈린 개인의 비판에만 머무르고 있는 흐루시초프의 비판은 온전한 것이 아니며, 혁명가들은 그 점을 지적해야 한다. 하지만 노정협은 그 점을 언급하는 대신, 흐루시초프의 비판마저 부르주아 역사관이라고 일축해 버린다.

상황적 불가피론과 일국 사회주의론

나아가 노정협은 네 번째 장인 “4. 소련사회 분석에 있어서의 좌편향적 무정부주의”에서 ‘상황적 필연론’으로 스탈린을 옹호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스탈린의 등장(트로츠키에 의하면 소련판 테르미도르 반동) 당시를 노정협은 “유럽에서의 혁명의 기대가 송두리째 무너졌을 때” “세계 혁명의 가능성이 물 건너 간 상황”이라며 과장한다. 물론 당시 볼셰비키들이 독일혁명에 크게 기대했고, 그 실패가 커다란 패배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 혁명의 가능성이 “송두리째 무너”지거나 “물 건너 간” 것은 아니었다. 소련 혁명의 성공으로 인해 고무된 노동계급은 1919년 독일만이 아니라 각 나라에서 혁명적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문제는 ‘일국사회주의론’과 스탈린 관료집단이, 중국, 영국, 스페인, 또 다시 30년대의 독일, 프랑스 등 그 뒤로 연이어 발생하는 여타 나라들의 혁명적 상황을 물 건너가게 했다는 데에 있다. (자세한 내용은, ‘날조를 일삼는 스탈린일당 재판 (스파르타쿠스동맹, IBT)’, ‘스페인 전쟁(트로츠키, 풀무질, IBT)’, ‘레닌 사후의 제3인터내셔널(트로츠키)’, ‘프랑스 인민전선비판(트로츠키, 풀무질, IBT)’, ‘트로츠키의 반파시즘 투쟁(풀무질, IBT)’ 등을 참조할 것)

그리고 노정협은 그 '일국사회주의론'이 마치 당 대회의 신임을 얻은 정당한 결정인 것처럼, 반면, 그에 맞선 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 등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기각당한 것처럼 말한다.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은 1925년 12월 제14차 당대회에서 압도적으로 가결됐다.”--노정협

‘일국사회주의론’을 압도적으로 가결했다고 소개하는 1925년 14차 당 대회가, 사실상 스탈린주의 관료화를 완성하는 대회였다는 사실을 노정협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 과정을 빠르게 살펴보자. 독일혁명의 실패(1919-23년), 내전과 많은 핵심 당원들의 전사(1917-23년), 레닌의 뇌졸중 발병(1922), 잠깐의 회복 기간 동안 ‘레닌의 유서’로 알려진 스탈린의 서기장 해임 등을 요구하는 ‘당 대회에 보내는 편지’ 구술(1923년 초), 스탈린-지노비예프-카메네프 삼두체제 성립(1923년 4월, 13차 당 대회), 반(反)트로츠키 캠페인 시작(1923년 12월), 레닌의 죽음(1924년 1월), '레닌의 소집(Lenin's Levy)'이라는 이름의 당원 확충 운동과 출세주의자, 쿨락 등의 대대적인 당내 유입(1923년부터), 트로츠키의 군사 인민위원장직 해임(1925년 1월) 등.

스탈린주의 이분법

그리고 노정협은 스탈린이 애용했던 흑백논리를 다시 들고 나온다. 즉, ‘(스탈린주의화된) 소련을 옹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혁명을 배반하는 것이다.’라는 논리이다. 바로 그 논리로 좌익반대파를 먼저, 그 다음엔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등을 연이어 숙청하였고, 세계 혁명 운동을 압살했으며, 좌익반대파 그리고 제4인터내셔널 트로츠키주의 운동을 제국주의 간첩으로 몰아 탄압했고, 급기야 트로츠키에게 자객을 보냈다.

노정협은 비장한 물음을 던진다.

“가능성 없는 세계혁명에 기대어 러시아혁명은 산화해야 하는가? 아니면 일국에서의 사회주의를 일궈가야 했는가?”--노정협

이 물음을 통해 노정협은 마치 선택할 길은 두 가지 즉, ‘혁명을 산화시키거나, 일국 사회주의를 채택하거나’밖에 없던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러면서 일국사회주의에 반대하는 견해들을 “좌편향적 무정부주의”로 부르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이분법적 물음은 엉터리이다. 노정협이 은연중 암시하는 것과 달리, 트로츠키는 “혁명의 산화”를 주장하고 추구한, 모험주의자도 이상주의자도 또한 청산주의자도 아니었다. 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가 스탈린 관료집단과 ‘일국사회주의론’에 대항해 싸웠던 문제는 혁명의 성과를 어떻게 해야 제대로 방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트로츠키(레닌과 더불어)의 연속혁명론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국제 혁명을 통해서만 러시아 혁명은 보완될 수 있고,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반면, 스탈린은 소련 방어에 모든 국제 혁명을 종속시켰다.

과학적 교훈

일국사회주의 소련은 트로츠키가 예견한 두 가지 방향(노동자의 정치 혁명과 자본주의 반혁명) 중 하나를 실현시키며, 결국 붕괴하였다. 그런 점에서 결과적으로, 1925년 13차 당 대회는 소련의 붕괴를 압도적으로 가결한 대회였다. 다만, ‘일국 사회주의’ 소련이 70여 년 가량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 이후 전개된 세계사적 특수성 때문이었다. 즉, 제국주의 국가 상호 갈등과 2차 대전으로 인하여 정치 군사적 공백이 생겼고, 그로 인해 동유럽과 중국, 북한, 베트남, 쿠바 등에서도 기형적이나마 노동자 국가들이 들어서면서 일국적 성격이 보완되었기 때문이었다.

노정협은 다음과 같은 문단으로 글을 맺는다.

“그러나 세계혁명의 가능성이 당분간 없는 상황에서 일국에서의 사회주의는 필연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패배주의이자 청산주의다. 이 말을 강조하는 것은 유행처럼 번지는 스탈린주의 비판이 물질적 조건을 중심으로 한 분석이 아니라 스탈린이 이러 저러한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분석의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적 유물론을 거꾸로 적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소련 사회주의의 승리와 패배의 경험으로부터 과학적 교훈을 얻지 못한다.”--노정협

노정협이 말하는 것과 달리, 트로츠키는 ‘전혀’ 스탈린주의를 사회 역사적 맥락과 따로 떼어 “개인적인 사상의 문제 개인의 권력욕 때문에 모든 일이 빚어진 것이라는 식으로 역사를 단순화”하거나, “스탈린(개인)이 이러저러한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배반당한 혁명’과 ‘맑시즘을 옹호하며’ 등에서 행하는 트로츠키의 스탈린주의 비판은 대단히 유물론적이다.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독자에게 맡기기로 하자.)

그런 점에서 노정협이 “4. 소련 사회 분석에 있어서의 좌편향적 무정부주의”에서 가하는 비판이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면 그것은 트로츠키의 저작들을 주의 깊게 읽어보지 않은 탓이거나, 스탈린과 일국사회주의를 옹호하려는 정치적 태도 때문이다.

노정협은 “소련 사회주의의 승리와 패배의 경험으로부터 과학적 교훈”을 얻을 것을 주문한다. 나는 이에 적극 동의한다. 왜냐 하면, 이것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문제이며, 중국 북한과 인접해 있는 남한 운동에게는 더더욱 절실하고 예리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자본주의론’이 그 “과학적 교훈”이 아니라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스탈린주의이어서도 안 된다고 믿는다. 왜냐 하면 스탈린주의는 과학적이지도 교훈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혁명을 나락으로 이끌고, 종국에는 소련 자신을 붕괴시킨 패배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행동강령
2008년 9월

***노동자국가 성격 문제 논쟁을 위해 추천하는 참고 자료들***
(별표는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중요도를 의미한다.)
<트로츠키 저작>
*****배반당한 혁명--갈무리/IBT(www.bolshevik.org)
*****맑시즘을 옹호하며--IBT
****소련의 계급적 성격--IBT
****노동자국가, 테르미도르 그리고 보나파르티즘--IBT

<국제볼셰비키그룹(IBT)>
****남한 17대 대선에 대한 IBT의 입장 (2007년 11월)
**북한을 방어하자! (2006년 11월)
***붕괴의 벼랑으로 향하는 중국 (NO26, 2004)
**소련의 관료지배층은 계급이 아니었다 (NO 24, 2002)
****러시아: 자본주의 생지옥 (NO 24, 2002)
**스페인: 전쟁과 혁명 (NO 18, 1996)
**소련에서 반혁명이 승리하다 (NO 11, 1992)
**루비콘강을 건넌 소련과 좌익의 반응 (NO 11, 1992) <1917> 한글어판 1호
***죽음의 고통에 처한 스탈린주의: 동유럽 국가의 몰락과 클리프파의 정치적 오도 (NO 8, 1990) <1917> 한글판 2호
****소련의 사회성격에 대하여 (NO 6 1989) <1917> 한글판 2호
****남한 <국제사회주의자(IS)>에게 보내는 편지-무엇이 올바른 길인가?(1994) <1917> 한글어판 1호

<스파르타쿠스동맹>
***소련은 왜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가?
****날조를 일삼는 스탈린주의 일당 재판(再版)
***국가 자본주의 이론: 나사가 빠진 엉터리 시계
08·09·23 15:55 수정 삭제


펌 내가 이해하는 국가자본주의론과 마르크스주의-'노정협'과 '행동강령'에 대한 비판-
대리운전노동자 | 2008·10·06 10:04 | HIT : 109

이 글은 그동안 사노련 사이트에 게시된 '노정협'과 '행동강령'의 국가자본주의론 비판에 대한 나의 개인적 생각을 정리해 본 것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쟁점에서 핵심만 다루고자 한다.

먼저, 나는 국가자본주의론자인데, 내가 국가자본주의론을 받아들이게 된 배경은, 첫째 현실 '사회주의(국가자본주의)' 붕괴와, 둘째 트로츠기의 영구혁명론, 그리고 셋째 국가자본주의론 이 세 가지의 논리적 정합성 때문이었다!

내가 이해하는 국가자본주의론은 토니 클리프가 1947년 초판을 쓴 [소련 국가자본주의]이다. '소련 국가자본주의'는 그 이후 여러 차례 수정 보완되었지만, 나는 이 책이 트로츠키가 쓴 [배반당한 혁명]이 갖고 있는 소련사회 비판의 기본정신을 계승하고, 아울러 [배반당한혁명]이 갖고 있던 한계(타락한 노동자국가론)를 뛰어 넘는 성과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클리프주의자라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타락한 노동자국가'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나는 트로츠키주의자가 아니다. 클리프-그는 1932년부터 '제4인터'에서 활동했다-의 [소련국가자본주의](책갈피)를 읽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책은 부분적인 한계는 있지만 사실 검증을 위해 엄청난 노력이 투여된 대단한 역작이고,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발전사에서 중요한 한 획을 긋는 업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배반당한 혁명]은 소련 사회 분석에서 '소유형태의 관점'에 서 있었고, [소련국가자본주의]는 소련사회의 '실제의 사회적 생산관계'의 관점에 서 있다. 트로츠키가 '타락한 노동자국가'의 입장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사회분석에서 '소유형태의 관점'에 서 있었기 때문이며, 1930년대 당시 트로츠키키는 소련 사회의 '실제의 사회적 생산관계'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정협'과 '행동강령'도 기존 '사회주의' 나라들 분석에서 소유형태의 관점에 서 있다. '행동강령'은 그 이유를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다음의 문구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산주의 이론은 사유재산의 폐지라는 단 하나의 문구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 부분을 정확히 다시 인용하겠다.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 "2.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들"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하나의 표현으로 집약할 수 있으니, 사적 소유의 폐지가 그것이다."

여기서 번역상의 차이는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공산주의이론'과 '공산주의자들' 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그리고 '사적재산'과 '사적소유'도 엄밀히 하자면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같은 부분 몇 줄 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산주의를 남김없이 설명하는 것은 소유 일반의 폐지가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유의 철폐이다."라고. 그리고 그 몇 줄 위에서는 또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공산주의자들의 당면 목적은 그 밖의 모든 프롤레타리아당들의 당면 목적과 똑같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으로서의 형성, 부르주아지의 지배의 전복,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정치 권력의 전취가 그것이다."

그리고 인용하는 김에, 위 인용문들의 바로 한 페이지 앞 쪽이 그 장(2장)의 첫 부분인데, 그 부분을 인용해 보겠다. 내가 볼 때 마르크스가 2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여기에 농축되어 있다고 본다. 길지만 내 글의 뒷부분의 논지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

" 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일반에 대해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노동자 당들과 대립되는 특수한 당이 결코 아니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이해 관계로부터 분리된 이해 관계를 결코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결코 특수한(종파적인) 원리들을 세워 거기에 따라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짜 맞추고자 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이 그 밖의 프롤레타리아당들과 구별되는 것은 오직,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의 다양한 일국적 투쟁들에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적에 상관없는 '공동의 이해 관계'(!)를 내세우고 주장한다는 점, 다른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투쟁이 경과하는 다양한 발전 단계들에서 항상 '전체'(!) 운동의 이해 관계를 대변한다는 점 뿐이다."(강조 인용자)

다시 정리하면, 행동강령이 인용하고 있는 "사유재산"은 정확히 "사적소유"이며, 그것은 '소유일반'이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유'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내용은, 바로 앞쪽에서 강조되는 "공산주의자들의 계급투쟁" 일반적 이론(원칙)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공동의 이해관계"라든가 "전체"라는 의미는 이 논쟁에서 2차대전 직후에 소련 '노동자국가'-실은 노동자국가가 아니지만-의 이해가 동유럽 나라들의 노동계급의 이해에 우선되어서는 아니된다는 점과 상기해서 연관시켜 되새김할 필요도 있다.)

나는 마르크스주의 핵심은 '사회주의는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이라고 주장한 데 있다고 본다. '노정협'과 '행동강령'은 현재 이 말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흘려넘기고 있다. 마르크스는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세 번째테제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적 말을 한다. "환경의 변화와 인간 활동의 변화 혹은 자기 변화가 일치한다는 사실은 오직 '혁명적 실천'(!)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으며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강조 인용자) 그리고 마르크스는 [국제노동자협회 임시 규약](1864)에서 다음과 같이 정확히 말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자신들에 의해서만 쟁취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노동계급이란 산업노동자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이다. 농민이 아니다. 게릴라(농민군대)가 아니다. 관료가 아니다. 자본-임노동 관계에서의 노동계급이다. 이 노동계급의 해방은 바로 자신의 행위(혁명적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1948~49년 중국혁명 당시 중국 노동계급은 '자신의 행위(혁명적 실천)가 없었으며, 수동적 방관자였다. 아니 오히려 행위가 제지당했다. 당시 중국공산당(실제는 마르크스주에서 말하는 공산당이 아니라 '명의'만 빌린 당) 홍군은 도시로 진격하며 다음과 같이 포고문을 발표했다. "모든 생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과 종업원들은 일을 계속하고 영업은 평상시처럼 돌아가게 하라.....국민당 관리들과 경찰관들은 자기 직무에 그대로 남아, 인민해방군과 인민 정부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사유공장에서 생산에 대한 최고 권위를 경영자에게 부여했다"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은 이와 달랐다. 1917년 러시아혁명은 노동계급 자신들의 행위(혁명적 실천)였다! 러시아 혁명 직후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모든 공장의 경영권은 노동조합의 수중으로 옮겨갔다. "당 세포는 노동자 공장위원회와 함께 산업경영에 참여했다. 전문경영자는 이들과 함께, 그리고 이들의 통제 하에 일했다." 말하자면 노동계급에 의한 집단적 '생산의 통제'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 차이를, 러시아혁명은 '순수'(노정협의 말을 빌면) 사회주의 혁명이고, 중국혁명은 "저발전과 식민지, 반식민지국가에서의 혁명이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노정협 글)에 마르크스주의혁명론이 중국에 적용된 것으로 보아서는 아니된다는 점이다. 러시아혁명과 중국혁명은 성격 자체가 다른 것이다. 러시아혁명은 사회주의혁명이고 중국혁명은 민족혁명인 것이다! 마르크스는 러시아혁명 같은 류를 사회회주의혁명이라고 했던 것이다. 마르크스가 추구한 사회변혁노선은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으로서의 러시아혁명과 같은 혁명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현시점에서 추구(지향)해야 할 사회변혁노선은 바로 러시아변혁노선과 같은 류이다. 그래야만이 새로운 사회구성체로 이행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상기해야 할 점은, 레닌이 식민지 반식민지 나라들의 민족해방운동을 중요시 했던 이유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라는 분석의 출발점 위에서, 발달된 선진 자본주의나라에서의 노동운동과 식민지 반식민지나라들의 제국주의에 대한 민족해방운동(그것도 정확히 "혁명적 부르주아민족운동")의 결합(!)으로서의 세계(사회주의)혁명투쟁이었지, 발달한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의 노동운동과 분리되고 노동계급의 지도성이 상실된 중국혁명 같은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코민테른 초기 테제들을 다시금 음미해 보기 바란다.)

소유의 문제를 보자. 노정협과 행동강령은 '자본주의적 국유화'와 '사회주의적 국유화'를 구별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자. 여기서 말하는 국유화란, 주요 생산수단의 국가소유화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주의혁명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는 조치이다. 그런데, 노정협과 행동강령이 보지 못하는 것은, 국가소유라는 '내용'이다. 그들도 '형식'으로서 국가소유를 강조한다. 하지만, 형식과 내용은 통일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보겠다. 포스코가 국가소유라고 할 때, 그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부르주아지들에 의해 통제되는 국가(state)가? 관료들에 의해 통제되는 국가인가? 노동계급의 집단적 힘에 의해 통제되는 국가인가?

여기에서, 노동계급의 국가란 어떤 국가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그리고 그 문제는 관료국가 혹은 부르주아국가하고는 어떻게 다른 문제인가하고도 당연히 연관되는 문제이지만.......나는 그 차이를 바로 앞서도 언급했지만, 마르크스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파리꼬뮨에서 분석한 국가의 내용에 주목하는 것이다. 즉, 다시한번 언급하면, 첫째, 노동자대표의 자유로운 투표에 의한 선출과 즉시 소환권, 둘째 노동자대표의 일반 노동자의 평균적인 보수유지, 셋째 민주적 민병대로의 대치이다. 이것이 노동계급 자기해방으로서 사회주의변혁과정에서 나타나는 노동자국가의 일반론인 것이다. 러시아혁명이 바로 이랬다. 그래서 러시혁명을 사회주의 변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담보되지 않는 변혁은 사회주의 변혁(혁명), 즉 마르크스주의변혁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담보 유지되지 않은 변혁은 '노동자국가'가 아닌 것이다. 기형화된, 타락한 국가도 아니고, 질적으로 내용을 달리하는 국가인 것이다.

사회주의적 생산수단의 국가소유를 말할 때, 그 국가가 위와 같은 내용이 담보되지 않은 국가라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계급이 생산수단과 분리된 “형이상학적 혹은 법률적 환상"이다. 마르크스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왜! 바로 앞서 공산당선언에서도 마르크스가 강조하고 있듯이, 마르크스는 '생산관계' (소유형태) 문제를 계급투쟁(노동계급의 혁명적 실천)과 결코 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산양식의 이행문제와 계급투쟁은 마르크스주의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변혁론을 보자. 노정협은 이런 말을 한다. "1917년 10월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면 2월 혁명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아니라는 말인가" 여기에 행동강령은 다음과 같이 맞짱구를 친다. "맞다. 2월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이었고, 10월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나는 이 두 문장만으로도 노정협과 행동강령(행동강령이 노정협측 스탈린주의 일국사회주의 변호론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그 긍정적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은 둘 다 스탈린주의자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다. (내가 볼 때 행동강령은 트로츠키의 [배반당한 혁명]은 열심히 읽었어도,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은 이해하지 못했다)

트로츠키의 영국혁명론에 대하여 핵심만 간락히 얘기하자. 그것은 첫째,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불균등결합발전, 둘째 그 결과로서 민주적 과제가 사회주의적 과제와 결합된 관계로 민주주의적 과제는 프롤레타리아독재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점, 셋째는 일국에서 혁명은 시작에 불과하며 국제적 규모에서만 완성할 수 있다는 세계혁명론 등이다. 그런데, 트로츠키가 이러한 마르크스주의 변혁론으로서 영국혁명론을 일반화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혁명경험과, 그 이후 스탈란주의와 그 당시 스탈린의 영향 하에 있던 코민테른이 1927년 중국혁명을 어떻게 말아먹었나 하는 역사적 (실패한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부정적) 검증을 통해 가능했던 것이다.

1917년 2월 혁명을 부르주아혁명(단계)으로, 그리고 1917년 10월 혁명을 사회주의혁명(단계)로 이해하는 사고 방식이 바로 러시아혁명에 대한 스탈린주의 해석 방식이다. 레닌이 1917년 4월테제 이전의 사고였고, 레닌의 '두 가지 전술'에서 '노동자-농민의 민주주의 독재'가 그 단초를 제공했다. 그리고 레닌 사후에 스탈린이 트로츠키와 투쟁하면서 자칭 레닌주의를 추종한다며 이러한 단계론적 해석을 유포시켰다. 그러나 내가 볼 때, 1900년 초반(1905년 혁명)에서 1930년까지를 거치면서 마르크스주의 변혁론을 일괄되게 발전시키고 일반화해 나간 것은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이었고, 19세기 마르크스주의의 변혁론을 올바로 계승한 관점이다. 물론 조직론에서는 레닌의 볼세비즘이 옳았고 트로츠키도 자신의 오류였다고 나중에 시인했다.

2월과 10월은 하나의 연속과정으로 봐야하며, 2월혁명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과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농민의 토지문제 해결은 10월 노동자권력 쟁취, 사회주의적 과제의 실현을 통해 가능했던 것이다! 1927년에 중국 국민당의 부르주아적 민주주주의 과제를 실현하고 나서 중국공산당의 사회주의 과제의 다음 단계 실현으로 나가는 것이 역사가 아닌 것이었다! 역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며, 역사적 현실은 냉혹한 것이다. 중국공산당원들은 스탈린의 코민테른 지시로 장개석 국민당에 개별입당하고나서 장개석 쿠테타에 의해 무참히 집단적 학살을 당하였던 것이고, 결국 중국공산당의 향후 앞날의 행보를 결정지었던 것이다. 중국공산당 내 산업노동자 구성비율도 1925년에는 66%였으나 1930년대 이후에는 2%를 밑돌았다. 스탈린주의의 러시아혁명에 대한 이러한 단계론적 해석(부르주아혁명단계에서 사회주의혁명단계로 성장전화한다는 사고)에서 비롯된 중국혁명과정에서의 단계론적 실천(스탈린의 미친 '4계급 블럭론')은 현실에서 개작살났던 것이다. 이런 단계론적 혹은 PD적 변혁론은 1930년대 스페인혁명 과정에서 다시한번 입증되었고, 그리고 중국혁명(말은 '신민주주의혁명'이지만 실제는 '민족혁명'!)은 단계론적 PD적 변혁론에서 파생된 것이고 내용에서 별반 차이가 없으며, 현재 중국이 앞서 나의 댓글에서 지적한대로 현재 최첨단을 걷고 있는 자본주의사회인 점을 감안할 때, 1948~49년 변혁과정(그 이후는 국가자본주의 공고화 과정이다)은 마르크스주의변혁(혁명)이 아니었다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행동강령이 타락한 '노동자 국가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현재 중국 지배계급의 운명을 "대단히 위태하다"고 보는 것은 한마디로 넌센스고 궤변이다.


나는 '노정협'과 '행동강령'의 주장에서 나와 견해가 다른 핵심 부분만 언급했다. 지엽적인 문제들은 이 핵심 쟁점과 연관되어 파생하는 문제라고 본다. 다시한번 정리하면, 노정협이나 행동강령은 기존 '사회주의'를 어찌되었던 '노동자국가'로 봐야한다는 것이고, 나는 그 관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 글에서 말하고자 했으며, 그 근거는 바로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기본적 이론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 왜 국가자본주의이냐라는 얘기는 이 글에서는 제대로 서술이 안되었는데, 그 점은 앞으로 국가자본주의론의 세부내용 논쟁과정에서, 예컨대, 관료를 '계급'으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등에서 함께 언급할 생각이다. "변증법적 방법론"이니 "과학적 방법"이니 하는 문제 등은 지금처럼 흔하게 쓸 때는 기준과 범주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말이 아니라 논쟁의 내용에서 증명되어야 한다고 본다
08·10·09 01:33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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