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연대가 ‘월권’? 그건 노동자논리가 아니라 자본가논리다
주간연속2교대 관련 현대차 대의원대회 평가
메이데이를 눈앞에 두고, ‘노동자는 하나’라는 메이데이 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부끄러운 짓이 버젓이 저질러졌다. 당사자는 바로 현대차 지부 집행부다. ‘부품사 노동자들의 교대제 전환, 고용안정 등에 우리가 개입할 수 없다’고 노골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차 지부 집행부는 부품사 노동자들만 외면한 게 아니다. 비정규직을 포함해 5만이 넘는 현대차 노동자들도 외면했다. 부실한 바가지는 밖이든 안이든 항상 새는 법이다. 4월 21일과 25일에 열려 주간연속2교대 요구안을 확정한 현대차 대의원대회가 그걸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노동자들을 고통에 빠뜨릴 위험천만한 안을 제출하다
현대차 지부 집행부는 4월 15일 주간연속2교대 대토론회에서 심각한 안을 제시했다. (1) 주간연속2교대는 연 2,500시간이 넘는 살인적 장시간 노동을 철폐하자는 것인데, 2009년에 2,500시간, 2010년에 2,400시간, 이런 식으로 단계적으로 노동시간을 조금씩 줄이자고 했다. (2) 월 6회까지 주말특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주말에 조금도 쉬지 못하고, 계속 뺑뺑이 돌아 노동자들이 산재와 과로로 쓰러져갈 수밖에 없다. (3) ‘야간 노동 없애고, 주간노동만 하자’면서 하루도 밤에 잠을 잘 수 없는 상시야간조를 도입할 수 있다고 했다. 상시야간조는 외국 사례가 보여주듯, 비정규직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한시하청처럼 언제 짤려나갈지 모르는 파리목숨이 된다. (4) 비정규직, 부품사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구체적인 요구가 어디에도 없었다. 공동요구를 내걸고 공동으로 싸워야 한다는 주장도 당연히 없었다.
4월 21일 대의원대회가 열렸다. 집행부는 근무형태 변경과 월급제 실시만을 두루뭉술하게 제기했다. 대신 진짜 중요한 수많은 구체적인 문제는 노사간 ‘실무 교섭’으로 넘겨버리는 위험천만한 안을 제출했다.
현대차 자본은 날마다 도요타, GM의 경쟁력을 들먹이며 현대차 노동자들을 죽이려고 덤벼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시간 노동, 주말특근, 상시야간조를 사실상 모두 인정하는 지부 집행부와 현대차 자본이 진짜 중요한 문제들을 ‘실무 교섭’에서 다루면, 결과는 자본이 원하는 대로일 게 분명하다. 그 경우 주간연속2교대란 빈 껍데기뿐이며, 실제로는 주간연속2교대를 빙자한 노동자 죽이기가 무차별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서 21일 대의원대회 때는 ‘주말특근’, ‘상시야간조 도입’, ‘부품사, 비정규직 무대책’, ‘4,300여 상시주간조의 8시간 노동, 월급제 쟁취에 대한 불철저한 태도’를 놓고 거센 성토가 이루어졌다. ‘정규직, 비정규직, 부품사 노동자들의 공동투쟁본부 건설’ 주장도 적극 제기됐다.
원칙도 잃고, 실리도 잃은 여러 현장조직들
21일에 결론을 내리지 못해, 25일에 대의원대회가 다시 열렸다. 하지만 집행부의 입장은 25일에도 거의 바뀐 게 없었다. 25일에도 집행부에 대한 비판이 꽤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21일에 집행부를 꽤 신랄하게 비판했던 여러 현장조직들이 25일에는 어설프게 집행부와 절충을 시도했다. 그래서 현장조직들은 ‘상시야간조 도입, 주말 특근’도 분명히 반대하지 않고, ‘부품사 주간연속2교대제 동시 실시, 부품사 노동자 고용안정 보장’ 같은 알맹이가 빠진 수정 동의안을 제출했다. 이 안은 291명 가운데 131명만(45%) 찬성해 부결됐다. 결국 여러 현장조직들은 노동자의 정신도 지키기 못했고, 수위를 낮춘 요구안을 통과시키지도 못했다.
메이데이 정신인 노동자연대를 내팽개치다
비정규직 투쟁 연대, 징계철회 투쟁 등을 열심히 해왔던 공투위가 ‘부품사도 현대차와 동일하게 주간연속2교대를 실시하며, 고용안정과 월급제를 보장한다’와 같은 계급적 요구를 수정동의안으로 제출했다. 정규직, 비정규직, 부품사 공동투쟁을 통해 이런 요구를 쟁취해야 한다고 계속 표명해왔던 것의 자연스런 연장이었다.
그런데 이 안이 제출되자마자 윤해모 지부장은 “부품사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월급제 등은 우리가 못 받을 안인 것 같다”, “우리 재량권 밖이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건 현대차 주간2교대이지, 금속노조 주간2교대가 아니다” 운운하며 공투위 안을 맹렬히 공격했다. 다른 집행 간부는 공투위 안이 “월권”이라고 했고, 노골적인 어용 대의원은 “현자 지부의 범위를 뛰어넘는 것이다. 그래서 안이 되기 어렵다”며 마녀 사냥을 벌였다.
메이데이의 핵심 정신은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노동자는 하나라는 것이다. 같이 자동차를 만드는 부품사 노동자들이 원청 노동자와 하나라는 점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현대차 노동자와 부품사 노동자는 이미 같은 금속노조 조합원이기도 하다. 이런데도 현대차 지부 집행부는 “재량권 밖”, “월권” 운운하며 부품사 노동자들을 차갑게 외면했다. 결국 그들은 단사의 울타리에 갇힌 채 자본가한테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요구만 내거는 부끄러운 ‘종업원’일 뿐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공투위 대의원들은 십자포화 속에서도 꿋꿋하게 노동자의 대의를 지키려고 분투했다. “부품사, 비정규직 외면하면 다른 노동자들한테 비난받을 것이다”, “노동강도 강화, 상시야간조 도입, 주말특근 안 된다는 걸 분명히 요구하자. 그런 걸 인정하면 사측이 신규공장 건설(로 일자리 늘리기) 하겠는가”, “(자본이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면)노동자가 총단결해 싸워나가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했다. 275명 가운데 31명(11%)이 공투위 안에 찬성했다. 비록 많지는 않지만 31명이 마녀사냥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노동자의 대의를 지킨 것이다. 어쨌든 현장조직들의 안과 공투위 안이 모두 부결돼 집행부 원안이 통과됐다.
부당한 압박을 못 이겨 공투위 대의원이 일부 중요한 요구안을 철회하고, 완성차 정규직, 비정규직, 부품사 공투본을 원래 계획대로 제기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하지만 단사의 울타리에 갇힌, 자본가의 충성스런 종업원이기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노동자 연대의 정신, 비타협적 투쟁의 정신을 굽힘없이 제기한 것은 훌륭했다. 이 올곧은 정신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점차 그러나 분명하게 현대차 노동자들과 전국 노동자들의 뇌리에 깊고 강하게 울려퍼질 것이다.
최지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