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투단, 무엇을 남겼고 어떤 길로 가야 하나
‘비정규·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이하 ‘공투단’)의 투쟁이 20일 넘게 지속되고 있다. 공동총회라는, 더 넓은 노동자 민주주의 기제를 도입하며 탄생한 공투단은, ▲개별 사업장이 홀로 넘기 어려운 지점을 공동으로 돌파함으로써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이명박과 자본가들에 맞서 비정규직 철폐와 구조조정 분쇄라는 대정부투쟁전선 건설을 목표로 제시했다.
공동투쟁이 돌파해낸 소중한 성과
공동총회 이전에 이미 코스콤과 재능 농성장 침탈에 맞서 “코스콤·재능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이라는 인식으로 투쟁사업장 노동자 전체가 농성장 재설치투쟁으로 뭉친 바 있다. 이것이 탄압에 대한 방어 성격이었다면 공투단 결성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전선의 돌파를 시도했다.
3월28일 홈에버 상암점에서 공투단은 과감하게 매장 진입을 시도하였고, 실제 어느 정도는 물리적 저지선을 뚫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날 공투단이 돌파한 것은 물리적 저지선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매장 안으로 들어가 구호를 외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했던 조합원들의 심리적 공포를 돌파한 것이다.
4월4일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는, 그동안 집회와 천막농성을 봉쇄할 목적으로 사측이 설치한 철제펜스와 가시철조망 구조물 위로 재능지부 조합원들이 올라타 고공농성을 전개하면서 자본과 경찰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명박 정권은 이날 처음으로 ‘체포전담반’까지 파견하며 미친개처럼 합법집회장을 유린하며 공투단 21명을 연행했다.
4월11일 강남의 하겐다즈 본사 앞 집회를 마친 공투단은 7층 본사 로비에까지 진출하며, 똥배짱을 부리며 교섭해태와 부당노동행위를 일삼는 하겐다즈 사측에게 분명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경고 메시지가 전달된지 3시간여만에, 200일 이상 사측의 노조불인정으로 교착상태에 있던 교섭이 잠정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혼자 싸워서는 전망이 없다. 함께 싸울 때 돌파구가 생긴다!” 공투단은 분명히 과거에 비교했을 때 중요한 지점들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공동투쟁이 넘어서야 할 한계
그러나 공투단이 돌파한 성과 못지않게 많은 한계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가장 분명한 한계는, 과감한 투쟁전술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많았지만 결의수준의 편차로 인해 집행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의있는 투쟁이 집행되지 못함으로 인해, 의미있는 돌파를 이뤄낸 지점을 제외하면 평이한 사업장 집회들로 배치되고 말았다.
“대정부 정치투쟁이 배치되어야 하는데 사업장 순회투쟁 중심이다” “하루하루 일정이 너무 많고 빡세다” “우리사업장 투쟁이 별로 없다. 공동투쟁이 사업장투쟁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공투단 내에서 이러한 평가들도 적지않게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공투단이 넘어서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투쟁’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목표에 대해, 조합원들 스스로 가슴 깊숙이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이다. 결의수준에서 차이가 나는 것 역시 공동투쟁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
공동투쟁은 이명박과 자본가들의 대대적 공세에 맞서기 위해 조직된 것이다. 혼자 싸워서는 아무런 전망도 만들어낼 수 없기에 결성된 것이다. 그렇기에 사업장 투쟁이건 정부기관을 상대로 한 투쟁이건, 네 사업장이다 내 사업장이다를 떠나 모든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노동자는 하나”라는 관점으로 강도 높은 투쟁을 전개한다면, 그것이 바로 이명박과 자본가들을 상대로 한 노동자 정치투쟁이 될 것이다. 사업장 투쟁이냐, 대정부 투쟁이냐 하는 것은 쟁점이 아니다.
공투단에 부여된 역사적 사명
그리 멀지 않은 과거를 한번만 돌이켜보자. 홈에버 상암점과 뉴코아 강남점 점거농성으로 이랜드·뉴코아투쟁이 전국적 관심을 획득하였을 때, 모든 사람들이 이 투쟁에 대해 ‘비정규악법을 둘러싼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리전’이라고 불렀다. 코스콤 비정규투쟁이 터져나올 때에도 ‘전국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대표하는 투쟁’이라고 평가했다.
객관적으로 각각의 비정규투쟁은 850만 비정규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어깨 위에 짊어지고 갈 것을 요구받았다. 그리고 투쟁의 초기에 노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억울하게 여기기보다 오히려 영광으로 여기며 “우리가 밀리면 850만 비정규직 전체가 밀린다”는 사명감을 갖고 투쟁을 밀어나갔다. 그 사명감이 전국의 노동자들 마음을 움직이며 연대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현재 공투단이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투쟁사업장이 전선의 최선두에 서있지만 고립된 채로 각개약진하는 양상이었다. 그래서 각각의 고립을 타개하기 위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결해낼 수 없기에, 모든 투쟁사업장이 하나로 뭉쳐 싸우자는 의식이 공동투쟁단 결성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공투단이 결성되자마자,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공투단은 이명박과 노동자 사이에 설치된 투쟁전선의 최선두에 서게 되었다. 마치 이랜드·뉴코아·코스콤 비정규투쟁이 자본과 노동계급 사이의 대리전이 되어버린 것처럼, 공투단은 1천5백만 노동자 전체의 이해관계를 어깨 위에 짊어질 것을 요구받게 된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이명박과 자본가들의 공세에, 민주노조운동 지도부 전체가 공포에 휩싸여 납작 엎드려버린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공동투쟁과 각 사업장투쟁의 관계
“비정규직 철폐를 내건 공동투쟁이 과연 우리 사업장투쟁에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은, 스스로의 투쟁 역사를 돌이켜보면 쉽게 답할 수 있다.
이랜드·뉴코아·코스콤 비정규투쟁이 편협한 조합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전체 비정규직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때, 전국의 노동자들로부터 연대와 지원이 조직되었다. 이러한 방향으로 투쟁이 발전할 때에만 사업장 투쟁의 전망도 그만큼 넓어졌다.
그러나 투쟁이 장기화되고 노동자들 사이에서 자신감이 점차 사라질 때, “우리가 무슨 비정규직 대표주자냐? 우리 사업장 문제라도 해결하자”는 생각이 싹트게 되고 연대와 지원도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연대·지원은 개별적 요구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요구로 조직될 때에만 폭발적인 힘을 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공투단이 네 사업장이다 내 사업장이다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내사업장이라는 관점으로 전선을 돌파해갈 때, 꼭 그럴 때에만 자신의 사업장투쟁에서 전망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투쟁을 밀어나갈 때에만 전국의 노동자들로부터 연대와 지원이 재조직될 것이다.
“우리의 어깨에 850만 비정규직, 1천5백만 노동자 전체의 생사가 걸려 있다!” “우리가 밀리면 전체 노동자가 밀린다!” “비정규직 철폐! 구조조정 분쇄! 여기서 승부를 봐야만 이명박의 가장 약한 고리에서 파열구가 날 것이다. 약한 고리에서 파열구가 나면 제2, 제3의 파열구가 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공동투쟁의 목표와 의미, 객관적으로 공투단에 부여된 역사적 사명을 조합원들이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이해하게 된다면, 현재 공투단 내부에서 보이고 있는 결의수준의 편차 또한 극복될 것이다. 내 한몸 건사하기 위해서라면 비굴하게 무릎꿇는 것이 인간이지만, 나의 어깨 위에 1천5백만 노동계급의 절실한 요구가 걸려있다면 어떠한 희생도 마다않는 것이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오민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