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하게 돌아보는 세계노동절의 역사와 정신
“하나의 불꽃이 짓밟힐지언정 만국의 노동자와 단결하여 들불처럼 노동자 해방투쟁을 만들어 가리라!”
세계노동절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프랑스대혁명(1789년) 100주년 기념일인 1889년 7월 14일, 20개 나라의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조합 대표자 391명이 파리에 모여 국제노동자협회를 재건했다. 이날 재건된 국제노동자협회는 1864년 같은 이름으로 설립되었다가 1876년 해체된 제1인터내셔널과 구분하여 제2인터내셔널로 부르게 되었다.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는 제1인터내셔널의 구호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를 다시 채택하면서 1890년 5월 1일을 ‘세계 노동자 해방투쟁의 날’, 즉 세계노동절(메이데이)로 선포했다. 제2인터내셔널이 ‘5월 1일’을 세계노동절로 선포한 것은 그 무렵 미국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벌인 역사적인 총파업 투쟁을 전 세계 노동자의 투쟁으로 발전시키자는 뜻을 담고 있었다.
8시간 노동제를 내건 미국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모든 노동자들이 하루 동안 완전히 작업을 거부하고 집회와 시위를 벌이는 투쟁방법은 1856년 4월 21일 호주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사용했다. 비록 숙련 노동자들에 한정되긴 했지만 호주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자, 하루 12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던 미국 노동자들은 큰 용기를 얻었다. 1863년부터 시작된 미국 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제 투쟁은 점점 성장해 나갔다.
마침내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을 위해 총파업에 돌입했다. 기계소리와 망치소리가 멈추고, 굴뚝에서 솟아오르던 연기도 보이지 않고, 상가도 문을 닫고, 운전사도 쉬었다.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으면 세계가 멈춘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 날이었다. 노동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힘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경찰은 파업 중인 노동자들에게 총을 쏴 어린 소녀를 포함 6명을 죽였다. 5월 3일 30만 노동자들이 헤이마켓 광장에 모여 경찰 만행을 규탄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폭탄을 던지자 경찰들이 노동자들에게 총을 쏴 200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자본가들은 폭동교사와 살인 혐의로 노동운동 지도자 8명을 체포하여 4명을 처형했다. 7년 후 폭탄투척은 자본가들의 공작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죽은 자는 돌아올 수 없었다.
“하나의 불꽃이 짓밟힐지라도 노동자들의 투쟁은 들불처럼 타오르고 말 것이다!”
헤이마켓 사건으로 처형당한 미국 노동운동 지도자 오거스트 스파이스는 사형을 선고받은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역사에 길이 남은 최후진술을 했다.
“만약 너희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가난과 불행과 힘겨운 노동으로 짓밟히고 있는 수백만 노동자의 운동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너희는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는 있다. 그러나 너희 앞에서, 뒤에서, 사면팔방에서 불꽃은 끊이지 않고 들불처럼 타오를 것이다. 누구도 그 들불을 끄진 못할 것이다.”
스파이스의 최후 진술처럼, 미국 노동자들은 모진 탄압에도 물러서지 않고 다시 투쟁에 나섰다. 1888년 5월 1일에도 총파업을 벌였다. 1890년 5월 1일 다시 총파업을 벌이기로 한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 정신을, 1889년 7월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 모인 세계 각국의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깊이 공감하면서 ‘5월 1일’을 전 세계 노동자가 함께 8시간 노동과 노동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날로 선포했던 것이다.
이 땅의 선배 노동자들이 벌인 노동절 투쟁
우리나라에서는 1923년 조선노동연맹회가 처음으로 노동절 기념행사를 열었다. 일제 경찰이 노동절 행사를 무자비하게 탄압했으나 노동자들은 해마다 5월 1일이 되면 기념식, 기념강연회, 기념야유회, 표어붙이기, 전단뿌리기, 파업, 시위 등 여러 방법을 써서 노동절 투쟁을 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이 되자 일제의 탄압 강화로 드러내놓고 노동절 기념투쟁을 하기 어려웠다. 1938년 일제는 조선에서 ‘메이데이’가 사라지고 ‘근로일’로 바뀌었다고 선전했다.
해방이 되자 1946년 11월 5일 노동자들은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을 건설했다. 1946년 5월 1일, 전평은 노동절 기념식을 곳곳에서 성대하게 치렀다. 서울에서는 서울운동장 야구장에 20만 노동자가 참가하여 기념식을 열었다. 전평은 “산업은 건국의 기초, 노동자는 국가의 기초!”, “8시간 노동제 즉시 실시하라!”, “최저 임금제 즉시 실시하라!”,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 등의 슬로건을 내걸었다.
1946년 중반부터 미군정이 드러내놓고 노동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1947년 5월 1일 남산에 30만 군중이 모여 노동절 행사를 힘차게 열었다. “메이데이 기념을 해고 테러 폭압 반대투쟁으로!” “검거된 운동자를 즉시 석방하라!” 등의 슬로건이 울려 퍼졌다.
되찾은 노동절, 되찾은 이름 ‘노동자’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탄압으로 전평이 사실상 와해되면서 1948년부터는 한국노총의 전신인 어용 대한노총이 노동절 행사를 주관했다. 1958년 이승만의 지시로 대한노총은 노동절을 자신들의 창립일인 3월 10일로 바꿔 버렸다. 1963년 박정희 군사정권은 노동절의 이름마저 빼앗아 ‘근로자의 날’로 바꿔 버렸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 땅의 노동자들은 오랜 굴욕의 세월을 딛고 다시 일어섰다. 1988년 11월 13일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5만 노동자가 모여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그리고 1989년 4월 30일 마침내 ‘세계노동절 100회 기념 한국노동자대회’가 서울 연세대에서 5천여 노동자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노동절은 세계 노동자의 연대와 해방의 날인만큼 (…) 일천만 노동형제들의 강력한 연대와 전투적 투쟁으로 쟁취해야 할 것”임을 선언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노예처럼 일만 하는 부끄러운 이름 ‘근로자’를 거부하고, 생산의 주인이자 세상의 주인이라는 당당한 이름 ‘노동자’를 되찾은 날이었다.
그러나 세계노동절의 정신은?
노동절을 되찾은 이후 올해로 20년째 세계노동절 행사를 열고 있다. 그러나 노동절을 되찾던 무렵 이 땅의 노동자들이 갖고 있던 힘찬 투쟁과 단결의 정신은 오늘날 많이 퇴색해 있다.
하나의 불꽃이 짓밟힐지언정 전 세계 모든 노동자와 단결하여 들불처럼 노동자 해방투쟁을 만들어 가리라는 정신이 빠진 노동절은 진짜 노동절이 아니다. 세계노동절의 정신을 되찾아 진짜 노동절로 만들려는 뼈저린 각성과 투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양준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