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 독이 든 사과를 또 들이미는가? - 사회연대전략 비판
진보신당이 또 다시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을 파괴하는 사회연대전략을 들고 나왔다. 진보신당이 주장하는 사회연대전략은 3가지다. ‘야근 줄여 일자리 나누기’, ‘최저임금, 현실에 맞게 올리기’, ‘국민연금 사각지대 없애기’다. 언뜻 보면 좋은 말들이다. 겉보기에는 먹음직스럽지만 노동자들을 죽이는 독이 든 사과다.
과거에 민주노동당 안에서 진보신당의 주요 참여자들이 주장했던 사회연대전략은 ‘노동자 양보론’으로 사실상 폐기된 정책이다. 때문에 심상정 진보신당 상임대표는 “필요하다면 논쟁을 해서라도 노동운동이 비정규직 노동자와 저소득층의 이익을 위해 앞장서도록 만들겠다”며 노동자들에게 으름장을 놓고 있다. 심지어 진보신당 정책위원장 노중기 교수는 “단기적, 경제적 이익을 연대 기금으로 내놓고 중장기적으로 더 큰 경제적 실익을 확보하자는 고도의 정치전략”이라고 양보를 무슨 대단한 노동자계급의 대의인 양 선전하고 있다.
왼쪽 호주머니서 돈을 꺼내 오른쪽 호주머니에 넣고서 기쁠까?
이미 비정규직 노동자는 900만 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다. 세계경제 12위라고 말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고통의 나날이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배는 터질 듯하다. 한국의 1,000대 기업은 364조원(06년 기준 사내유보율)이나 되는 돈을 썩히고 있고, 삼성 비자금 사건에서 보듯이 자본가들은 수 조원대의 돈을 몰래 감추어두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썩은 자본주의를 폭로하고 노동자들을 착취한 결과물을 빼앗아 오게끔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투쟁을 독려하는 것이야말로 노동자정당이 진정으로 할 일이다.
하지만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과 같은 사이비 노동자정당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도록 촉구하고 그 선두에 서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의 후진적인 정서에 기대어 돈 몇 푼 내놓고 노동자계급의 대의를 실천했다는 면죄부만을 주려한다. 불법파견이 넘쳐나고 한 사업장에서 궂은 일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몫이 되어 버리는 현실을 작업장 밖에서 해결하려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정치가 아니다. 현장에서 비정규직이 확대되는 것을 방치하면서 국민연금을 더 내면 마음의 부담이 좀 덜어진다는 것인가? 비정규직 철폐는 온데간데없고 “비정규직 인정, 처우 개선이나 해주자”는 것인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노동자가 국민연금 더 내서 자본가들을 강제하자!’ 이것이 진보신당이 주장하는 사회연대전략의 핵심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투쟁을 지원해도 시원찮을 판에 정규직이 나누어 준 푼돈이나 먹고 떨어지란 소린가! 이런 것으로는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아니, 단결을 파괴한다. 이것을 가지고는 자본가들을 전혀 강제할 수 없다. 아니, 자본가들에게 철저히 농락당하는 전략이다. 자본가들에 맞서 계급투쟁전선에 설 때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과 연대는 가능하고 비정규직을 없앨 수 있다.
“자본주의 치명적인 병폐를 고쳐주자!”
진보신당이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파괴하면서까지 사회연대전략에 몰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더 이상 자본주의 모순에 정면으로 맞서 투쟁하기 보다는 ‘보다 덜 착취하는 자본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진보신당에 참여하고 있는 장석준씨는 과거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에서 만들어낸 <임금-복지에서의 연대전략 보고서>에서 복지국가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그들이 말하는 복지국가는 스웨덴과 같은 나라다. 스웨덴은 ‘벨린베리’라는 한국의 삼성과 같은 재벌이 마음대로 전횡을 일삼는 국가다. 1930년대 스웨덴은 유럽에서 가장 투쟁이 활발한 나라였으나 노사정이 합의하여 이제는 투쟁의 씨가 마르다시피 한 나라로 변신했다. 노동자의 임금격차를 노사타협으로 개선하는 대신 노동자들이 치른 대가는 투쟁의 실종이었다. 그 결과 지금은 스웨덴의 청년실업은 20%를 훌쩍 넘어서 버렸다. 진보신당이 주장하는 사회연대전략은 결국 노사정 합의를 전제하고 노동자들의 투쟁의식을 갉아먹는 전략이다.
자본가들의 주장과 일맥상통한 진보신당판 노동시간 단축
심지어 자본가의 터질 듯 한 부를 공격하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굴레를 씌우는 주장도 서슴지 않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야근 줄여 일자리 나누기’는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자동차업종의 주간연속 2교대 전환투쟁을 ‘생활임금 보장 하에서 노동시간 단축, 이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 정신에 입각하여 실천을 조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정규직 일자리여야 하며, 이미 만연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한 투쟁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완성차 정규직, 비정규직, 부품사노동자들이 단결하여 투쟁해야 함을 주장하며, 공동투쟁을 조직하기 위해서 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진보신당이 주장하는 ‘야근 줄여 일자리 나누기’(년 2,000시간 노동시간 상한제)에는 계급적 요구가 없다. 오히려 자동차 업종 주간연속 2교대 전환과 관련하여 자본가들이 주장하는 바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진보신당은 연간 노동시간을 2,000시간으로 줄여 일자리를 늘리자고 하면서 노동시간 단축 시행에 따른 초과급여 손실액에 대해 첫 1년간 20%, 2년째 10%를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원하자고 말한다. 이런! 정몽구가 들으면 쾌재를 부를 일이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90% 이상이 잔업과 특근이 없으면 먹고살기 힘들어서 2,500시간 일을 한다고 답했다. 이는 부품사 노동자들도,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자본가들에게 죽도록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주간연속 2교대의 쟁점 중 하나는 임금보전 문제다. 노동시간을 줄일 테니 줄어든 임금을 보전 받을 생각마라! 임금을 보전 받고 싶으면 노동강도를 강화하자! 고 자본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손실분을 고용보험기금에서 일부를, 그것도 2년에 한해서 보전해주겠다는 진보신당! 이건 자본가들이나 하는 주장 아닌가.
‘표’만 생각하는 정치적 사기술
진보신당이 자본가들이 좋아할 법한 주장을 거침없이 내뱉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맞서서 투쟁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표를 얻기 위해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줄어들어도 된다는 자본가들의 논리를 대변해주고 있는 것이다. 3월 27일 수도권 비정규-장기투쟁사업장 공동투쟁 집회에서 진보신당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 사회연대전략을 내놓았다고 사기를 쳤다.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의 임금을 줄여서 자신의 임금을 올릴 생각이 없다. 박성수가 착취한 돈을 되찾아서 고용안정도, 임금인상도, 비정규직 정규직화도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표만 생각하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의 원인을 자본가들의 착취에서 찾지 않고, 2,500시간 이상 일해서 받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마치 고임금이고 배부른 노동자들인 양 자본가들의 악선전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그들은 ‘민주노총당’에서 벗어나자며 투쟁하는 동지들을 우롱하지 않았는가.
박준선
노동자들에게서 더 멀어지는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몰락의 한 이유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생존권 투쟁을 내팽개쳤기 때문이다. 점차 격해지는 경쟁, 썩어 문드러진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들의 생존권은 자본가들의 이윤을 건드리지 않고서는 보장받을 수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 착취질서에 맞서 투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투쟁을 방기해서 민주노동당은 노동자계급의 희망이 되지 못했다. 온건한 정책대안을 내세워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다 실패했다. 오히려 자본가 언론이 ‘혐오’하는 점거파업을 전개했던 이랜드와 뉴코아 노동자들은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국민 대다수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도 과감히 투쟁할 수 있음을 당당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투쟁을 확대시키고자 앞장 설 때 노동자정당은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진보신당도 투쟁 회피에서는 민주노동당과 하등 다르지 않다. 민주노동당 시절,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왜곡시킨 장본인으로서 당의 간판을 달리해도 투쟁을 방기하는 원래 체질은 그 대로다.
‘보다 넓게’
진보신당은 출범선언문에서 “우리는 평등, 평화, 생태, 연대의 가치를 지향한다. 우리의 언어가 아니라 민중의 언어로, 우리끼리가 아니라 민중의 삶 속에서 실천하자. 구호와 공약을 넘어 때론 부드럽고 더 절실하게, 때론 더 쉽고 즐겁게 실천하자”고 했다. 우리는 환경파괴에,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한다. 그러나 자본가들끼리의 평화협정으로 제국주의 전쟁을 종식시킬 수 없다. 자본가 국가 하에서의 규제로는 환경파괴를 막을 수 없다. 오로지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을 더욱 확고히 할 때만 전쟁도, 환경파괴도, 성차별도 없다. 진보신당처럼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다양한 진보 중의 하나로 여긴다면 어느 하나 제대로 실천할 수 없다. 지금은 ‘보다 넓게’가 아니라 ‘보다 날카롭게’ 자본주의에 맞서야 한다.
‘때론 부드럽게’
부드러운 이미지를 내세워 선거에서 표를 얻고자 하는 진보신당은 투쟁에 대한 혐오증을 조장한다. 이미 심상정은 ‘운동권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절대로 부드러워질 수가 없다. 천막이 철거당하고 집회마저 금지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부드러워지자는 얘기는 앉아서 맞아 죽으라는 얘기다. 이를 악물고 투쟁해야 할 시기다. 그럴 때만이 작은 권리라도 힘겹게 지켜낼 수 있다. 다양성과 부드러움을 강조하며 영화배우를 비롯한 유명인사를 앞세운 진보신당의 출범식! 처절한 투쟁을 하는 노동자들이 진보신당에 거리감을 느끼는 이유를 그들은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다.
박준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