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건설투쟁] 왜 선진노동자들은 노동조합운동을 넘어
‘사회주의혁명정당건설 노동자공동정치투쟁단’ 건설에 함께 나서야 하는가?
[편집자 주 : 경제위기 속에서 자본가계급의 압박에 의한 대중의 사기저하, 노조관료들의 배신적 투쟁방기, 자본가정부의 배가된 공격 앞에, 상당수의 선진노동자들은 아직 자신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사회주의 정치투쟁에 거리를 둔 채 노동조합 활동에만 머물러 있으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지금 더욱 공세적이고 근본적인 정치적·조직적 대안 즉 혁명정당 건설을 향해 정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 연장선 위에 우리의 ‘공투단’ 제안이 있다. 이 글은 여러 노동자 동지들에게 공투단 건설에 함께 해야 할 이유를 설명한다.]
결코 끝나지 않는 고통
노동자의 저항이 성공하지 못하면 이 세상은 지옥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정말이지 노동자에게 자본주의는 지옥과도 같다. 한국전쟁 후 가난을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일구기 위해 노동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해야 했다.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다음에도 노동자는 늘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80년대 말의 호황을 거치며 잠시 형편이 나아진 듯 보였지만, 곧 IMF 사태가 터지면서 또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그 뒤 십 수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아진 것은 없다. 오히려 최근 더 큰 위기가 우리를 덮치고 있다. 절반이 훨씬 넘는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굴레에 갇혀 신음하고 있다. 실질임금이 삭감되고, 고된 투쟁으로 쟁취한 단협은 종잇조각처럼 찢기고 있다. ‘배부른 귀족노동자’라며 부당한 비난을 받아왔던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조차, 이제는 수시로 공격당하며 그나마 유지했던 약간의 안정성조차 위협당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하지 않는가?
그렇다. 자본가들의 공격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워 왔다. 여전히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을 위해 중요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단결과 투쟁의 거점 역할을 지금의 노동조합은 잘 해내지 못하고 있다. 모든 노동자의 단결을 꾀하기보다는 조합원으로 조직된 노동자들만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사실상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반드시 필요한 투쟁조차 회피하거나, 심지어 철저하게 투쟁하자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나서는 노동조합 지도부를 보게 된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노동조합 투쟁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동지들은 고통스런 배반감을 느낀다. 이 고통을 이겨내려면, 왜 지금 노동조합들이 무기력하게 망가지고 있는지 그 까닭을 이해해야 한다.
노동조합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자본주의가 그럭저럭 굴러가고 자본가들도 꽤 여유를 느끼는 시기에는 교섭, 단체행동, 타결로 구성된 노동조합의 일상 패턴이 나름대로 유지된다. 그러나 지금처럼 자본주의가 비틀거리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위기감에 빠진 자본가들의 공격성이 이전과는 비할 바 없이 거세져, 노동자들의 웬만한 저항에는 절대 물러서지 않고 포악하게 달려든다. 심지어는 민주노조까지 이참에 파괴해버리려 애쓴다.
그래서 투쟁은 종종 장기화된다. 이렇게 장기화되면, 가진 것 없는 노동자가 불리해지는 것은 명백하다. 노동자투쟁이 패배로 끝나거나, 오랜 투쟁에 비해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한 채 마무리되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 요구를 쟁취하기란 어려울 것이라는 의구심이 조금씩 생겨난다.
공세적이며 성공적인 투쟁을 이끌 지도세력이 없을 때, 이 의구심은 불가피하게 자라나 모종의 신념으로 변한다. 투쟁만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가 양보하지 않으면 회사가 망할 것이다 등의 이야기를 퍼뜨리며 노조관료들은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를 마비시킨다. 단결과 투쟁이라는 노동조합의 애초 목적조차 지워지고, 오히려 지도부가 나서서 조합원들의 불만을 관리하고 투쟁을 미리 봉쇄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이런 길로 갈 때 결과는 뻔하다. 계속 양보하다가 노동조합은 허약해지고 결국 해고까지 얻어맞게 된다. 이게 아니라면 노동조합은 사장들에 맞선 가장 단호하고 대담한 투쟁에 나서야만 한다. 지금 노동조합 앞에 갈림길이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다수의 노동조합 지도부는 사기저하에 빠져 단결보다는 분열을, 투쟁보다는 굴종과 타협을 택하고 있다. 일부, 특히 노조관료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노동조합을 지키는 바람직한 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단결과 투쟁 정신을 망가뜨림으로써, 노동조합을 문패만 남은 껍데기 조직으로 전락시킨다.
노동조합의 투쟁 분위기를 되살릴 수는 없는 것인가?
되살릴 수 있고, 되살려야 한다. 노동자가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조합 속에서 그저 열심히 잘 해보자는 식으로는 절대 상황을 바꿀 수 없다고 모두 느끼고 있다. 다른 전망과 계획이 필요하다. 모든 자본가들이 하나로 뭉쳐 총체적인 노동자 죽이기 공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자도 모두 단결해 자본가계급 전체에 맞선 투쟁 즉 계급투쟁(정치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통해 전국에 걸쳐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세력관계를 뒤흔들어야 한다. 계급투쟁(정치투쟁)을 통해 전국적인 세력관계를 바꿔내지 않는다면, 자기가 속해 있는 사업장의 문제조차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노동자는 정치 같은 건 몰라도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정치활동과 정치투쟁에 나서지 않고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이 점을 보지 못하거나 뒤로 미뤄두다가, 막상 전투가 시작되고서야 ‘연대와 총파업의 필요성’을 느끼고 호소하는 식으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이상이 아님을 모두 경험해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적극적인 노동자들, 즉 계급투쟁을 통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이 먼저 모여 준비해야 한다. 노동자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투사들이 노동조합 경계선을 넘어 자본가체제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 단결하고 함께 행동하는 것을 우리는 ‘당’이라고 한다. 지금 노동조합의 무기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당 건설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노동조합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도 거기에서만 나올 것이다.
이미 있는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에 가입하면 되지 않을까?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국회의원을 배출하고 국회에서 발언력을 높이기 위한 정치활동 즉 선거와 의회활동에 중심을 둔다. 그래서 선거정당, 의회정당이라고 부른다. 이런 종류의 정당에 백만 표 이백만 표를 몰아준다 해도,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세력관계가 바뀌지는 않는다. 세력관계란 정확히 ‘힘’에 따라 규정되며, 진짜 힘은 투표용지와 국회에서의 말다툼이 아니라 투쟁의 현장에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자본주의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노동자당이라면, 반드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 즉 사회주의를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부분적으로 손질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거짓말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바로 이 결정적인 지점에서 너무나 모호하다. 그 결과 종종 ‘민주당 2중대’라고 비난받는 무기력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또한 이 당에 속한 많은 지도자들은 노동조합 속에서 결정적인 국면에 투쟁을 겁내고 도망치거나 타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정당의 숫자를 불려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정당을 건설해야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회주의자들이 이제 혁명정당 건설운동에 나서고 있다. 진정한 노동자의 당을 만들기 위해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 아직은 사회주의자들의 힘이 미약하기 때문에, 크게 확신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은 문제를 대신 처리해주는 해결사가 아니다. 진정한 대안은 투쟁하는 노동자들 자신에게서 나온다. 노동자투쟁이 보다 효과적으로 조직되고, 일관되게 뻗어나가며, 더 넓은 연대로 확산될 수 있도록 돕는 유용한 도구로서 새로운 사회주의 정당, 투쟁정당, 혁명정당을 만드는 운동의 주체로 투쟁하는 노동자들 자신이 나서야 한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정치운동 즉 당 건설운동을 정말 우리 자신의 과제로 삼아야 하는가에 대해 심사숙고하도록 우리는 노동자 투사들에게 요청한다. 지금까지의 노동조합 투쟁을 되짚어보고, 지금 겪고 있는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차분하게 검토해야 한다. 자본가체제를 넘어 노동자의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것 외에 다른 탈출구가 과연 있는지도 따져보자. 이런 주제들을 갖고 우리와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동지들은 새로운 당 건설운동에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오연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