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국 노동자들의 대안이 결코 아니다!
지금 미국에선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선 오바마의 열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흑인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백인노동자들까지도 그를 검은 케네디라고 부르며, 그로부터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
미국 노동자들이 바꾸고픈 현실은 무엇인가? 디트로이트의 자동차산업에서만 7만 5천명이 해고되어 그 중 4만 명이 가족과 함께 일자리를 찾아 다른 주로 이주하고 있다. 그러나 실업률이 천정부지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얻을지는 대단히 불투명하다. 금융 자본가들이 만들어낸 부동산 투기(서브프라임 모기지)의 거품 붕괴로 1500만 명이 집을 잃고 있다. 목숨을 거는 잔혹한 해외점령군이 되지 않고서는 생존을 위해 다른 일자리를 찾기 힘든 수십만 노동자들이 병사로 자원해 반동적 이라크 전쟁에서 목숨을 헌납하고 있다. 국적이 다르다고 가장 밑바닥에서 천대받으며 노동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무려 2천만 명에 달한다. 미국노동자들은 변화를 원한다. 이대로 살 수 없다고 느낀다. 이들은 오바마가 바로 이러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오바마에 대한 환상
어느 정도 인종의 형태로 계급이 나뉘어져 있는 미국사회에서 그의 검은 얼굴은 흰 얼굴을 가진 부유한 자본가계급이 아니라 하층의 노동하는 인민을 상징하는 듯한 효과를 낳는다. 오바마는 이런 효과 - 그러나 환상 - 를 극대화해서 노동자계급의 표를 얻으려 사기술을 일삼는다.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세금환급을 통한 경기부양, FTA에 대한 반대, 700만개의 새 일자리 공약을 내세우면서 그들의 열망을 표로 끌어 모으고 있는 것이다.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던 그의 경력은 대중의 기대를 더욱 현실적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는 이런 경력을 통해 스스로를 출세주의자가 아니라 꿈과 이상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게 했다. 노동자들은 거짓말만 내뱉는 다른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오바마라면 진정한 인권, 일자리, 복지, 자녀교육을 노동자들에게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키우고 있다.
진정한 변화의 길
그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7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재원을 자본가들에 대한 증세와 이라크전쟁 중단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그의 주장은 거짓이다. 미국의 초국적 자본가들, 특히 이라크전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는 군수자본가들과 석유자본가들은 그러한 정책에 분명하게 반대한다. 그런데도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은행고인 월스트리트를 통해 막대한 지원금을 오바마에게 제공하고 있다. 오바마가 자본가들의 대변자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바마는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연금을 말하면서도, 자본가들과 갈등하지 말고 협조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자리와 연금은 자본가들의 이윤을 침해하지 않고서는 조금도 얻을 수 없다. GM 노동자들 앞에서 그는 대안에너지 분야와 건설 분야에 대한 투자를 통한 일자리창출을 말한다. 그러나 GM의 구조조정, 공장폐쇄로 인한 해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정확히 자본가들이 원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약속하라! 그러나 그 일자리는 ‘투자와 성장’, 한마디로 자본가들이 원하는 것을 수행함으로써만 얻어질 수 있으니 양보하고 협력하라고 요구하라!” 이것은 정확히 사기술이다.
결국 오바마에 대한 미국 노동자들의 열광의 깊이만큼이나 환멸의 깊이는 크고도 넓을 것이다. “당연한 환멸이다!” 노무현에 대한 한국 노동자들의 환멸만큼이나! 그러나 노무현에 대한 환멸이 노동자운동의 전진을 보증하지 않듯이, 오바마에 대한 환멸도 그러하다. 문제는 절벽 밑으로 떠밀리고 있는 미국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 그리고 이 삶이 매일 만들어내는 ‘더 이상 이대로 살 수 없다. 거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열망을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 나아가서 자본주의에 대한 혁명적 투쟁으로 이끌 수 있는 노동계급적 대안이다.
자본가 정치인이 아니라 미국 노동자 스스로의 운동을 통해서만 노동자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대중적 자각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자주적 길을 제시하며 미국 노동자계급 속에서 활동하는 혁명적 투사들의 수는 아직 적다. 그러나 바로 이들로부터만 진정한 대안이 자라나올 수 있다.
정원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