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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강령>>의 쟁점들:
오늘날의 계급투쟁 현실에 맞춰 <<이행강령>>을 재구축하자!
2007년 6월
트로츠키의 <<이행강령>>1)이 작성된 지 50년이 지났다. 이 50년 동안에 트로츠키의 <<이행강령>>이 예견하지 못했거나 대비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트로츠키의 정세전망은 “인류의 생산력 정체”2)라는 전제에 기초해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제국주의 전쟁이 끝난 뒤 주요 국가들에서는 거의 20년 동안 전례 없는 경제호황이 뒤따랐다. 그리고 이 호황이 이번에는 트로츠키가 전쟁에서 결정적으로 붕괴될 것으로 생각했던 세력, 즉 사회민주주의적 개량주의가 부활할 수 있는 조건을 낳았다. 스탈린주의 역시 단순히 살아남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동유럽에 이어 이제는 아시아 지역으로의 확장을 통해 새롭게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예상 밖의 사태발전은 유럽에서 전쟁 동안 일어난 혁명적 봉기가 패배한 때문이다. 소련 군대와 연합국 제국주의가 점령한 지역에서의 반(反)혁명세력이 이러한 봉기를 진압했다. 서유럽 대부분에서의 민주주의 반(反)혁명 [사회주의 혁명에 대당하는]이라는, 못지않게 치명적인 덫에 봉기가 걸려든 것이다.
전후의 현실은, 적어도 정세전망의 수준에서는 트로츠키가 죽기 직전에 묘사했던 일반적이고 동시적인 위기 상황에 부합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태발전은 맑스주의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것이 아니다. 맑스와 엥겔스의 예견은 여러 번 예기치 않은 갖가지 사태발전에 의해 논박 당했다. 이것들은 모두 마르크스주의가 예견의 완전무결함을 보증하는 신비한 힘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말해준다. 맑스주의의 예견 -- 정세전망의 정식화 -- 은 경제와 지배계급과 노동자계급과 계급투쟁 등에서 전개되는 동향에 대한 부단한 평가와 재평가 과정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이런 구체적 분석에 근거하여 정세전망은 정식화되고 검증되어야 한다. 또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정세전망은 다시 정식화되어야 한다. 1930년대에 트로츠키도 자신의 강령을 “검증하고 교정하는” 맑스주의적 방법을 거듭해서 보여주었다.
<<이행강령>>의 방법
1920년대 말에 시작된 경제위기는 자본주의 세계 전체를 파탄으로 몰아넣었다. 새로운 정치적 ․ 경제적 위기의 시대가 1920년대의 자본주의 호황기를 뒤이었다. 독일의 파시즘 출현, 프랑스의 인민전선, 스페인의 내전, 중일전쟁 등은 모두 세계자본주의의 만성적 취약성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었다. 이 위기의 전 세계적 확대와 극도의 심각성, 그리고 1921-33년 사이에 노동자계급의 거듭된 좌절과 패배는 새로운 현상을 낳았다. 내전을 통한 세계 최초 노동자국가의 수립을 경험했던 1917-21년과 꼭 마찬가지로 그 다음 10년 동안에는 거의 비슷한 정도로 이 노동자국가의 관료주의적 타락을 경험했다. 코민테른을 지배하고 있던 러시아공산당은 세계노동운동 내에서 잘못된 지도력의 만성적인 도구가 되었다. 스탈린의 초좌익 정책은 1933년 히틀러의 승리를 불러들였다. 파시즘과 싸우기 위한 노동자 통일전선(공동전선)을 가로막은 범죄행위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패배 직후 코민테른의 모든 지부들은 코민테른의 정책이 전적으로 옳았다는 스탈린의 견해에 예외 없이 동조했다. 이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차렸던 트로츠키는 코민테른이 혁명을 고사시키려 한다고 선언했다. 10년에 걸친 프랑스와 스페인의 인민전선정부 경험은 코민테른이 절대로 혁명을 살려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코민테른은 반(反)혁명의 도구가 되어버렸다. 스탈린 치하에서 코민테른은 반(反)혁명적 개량주의 조직이 되었다.
이런 사태 진전에 대한 트로츠키의 반응은 제4 인터내셔널 건설에 남은 생을 바치는 것이었다. 트로츠키의 이 투쟁은 여러 단계를 거쳤다. 그 투쟁은 노동자계급의 끔찍한 패배를 배경으로 하여 수행되었다. 이 객관적인 사실이 의미했던 바는 그 투쟁이 끊임없이 시류를 거슬러서 헤엄치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 투쟁의 지지자들은 세계대전 직후 겨우 수천 명에 지나지 않았다.
1930년대 내내 트로츠키는 강령 문제에 대한 타협을 통해 혁명적 인터내셔널 건설 과정을 단축시키려는 유혹과 맞서 싸웠다. 늘 좌익 중도주의 분자들(4개 조직 블록(the Block of Four), 영국독립노동당(ILP), 프랑스노동자농민사회당(PSOP), 미국의 중도주의 좌파조직인 머스트(Muste) 그룹 등)을 획득하기 위한 시도를 진지하게 펼치는 동시에 트로츠키는 언제나 이들에게 혁명적 강령에 대한 분명한 동의를 강력히 요구했다. 트로츠키 시대의 중도주의자들은 그가 강령에 대한 최후통첩을 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영국독립노동당의 페너 브록웨이 같은 인물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강령에 대한 ‘엄격하고’ ‘교조적인’ 태도에 대해 경멸을 퍼부었다. 이들은 마음대로 자신의 강령을 바꿀 수 있는 절대적인 자유를 원했다. 이들의 원칙과 이들의 전략 ․ 전술이란 것은 너무도 카멜레온적이어서 노동운동 내 지배적인 세력의 구미에 맞게 갖가지 방식으로 변조된 결과물들이었다. 브록웨이는 트로츠키의 “종파주의”를 질타했다. 그는 독재자 트로츠키가 제4 인터내셔널을 건설하는 방식은 “엄격한 강령을 던져놓고, 그리고나서 각 당들로 하여금 그 인터내셔널에 가맹하라고 하는 아주 인위적인 방식’이라고 비난했다.3) 중도주의는 엄격한 - 즉 명확한 - 강령을 혐오하지 않는가!
트로츠키는 자신의 길을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제4 인터내셔널은 자신의 강령을 가지고 스스로를 개량주의 및 중도주의와 분별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령이 혁명적일 때만 제4 인터내셔널은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는 위기와 대결할 수 있을 것이다. 확고한 강령을 가졌을 때에만 제4 인터내셔널은 소규모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불리한 객관적 조건 속에서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길을 걸을 수 있다. 프랑스에서 입당 전술을 폈던 시기에 프랑스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다수가 조직적인 분파로서 프랑스사회당(SFIO)에 들어갔을 때, 트로츠키는 당장의 허황된 성과에 눈이 멀어 강령을 희생시킨 레이몽 몰리니에 같은 이들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그는 몰리니에와 프랑크의 ‘대중신문’ <코뮌>(La Commune)을 공격하며,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강령이 우선이다! ‘대중신문’? 혁명적 행동? 조직 재편? 도처에 코뮌을? ... 다 좋다. ... 그러나 강령이 우선이다! 강령이야말로 당신들의 정치적 신분증이다! 당신들이 좋아하는 가짜 신분증이 아니라 진짜 신분증 말이다! 당신들이 어떤 신분증도 없다면, 조용히 있어라!4)
트로츠키가 강령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키기 시작한 것은 맑스주의적 기초 위에서 계급투쟁에 개입하는 것을 통해서였다. 이런 식으로만 사상이 실천에서 검증될 수 있었으며, 그 다음에 강령으로 체계화되었다. ‘자본주의의 단말마적 고통과 제4 인터내셔널의 임무’, 즉 <<이행강령>>이 작성된 1938년 이전 시기에 이미 트로츠키는 자신이 살고 있던 시기에 초점을 맞춰 맑스주의적 강령의 핵심 요소들을 정교화 했다.
좌익반대파는 1917년의 볼셰비키당과 초기의 건강했던 코민테른으로부터 이행 슬로건들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배웠다. 트로츠키는 특히 노동자 통제(workers′ control; 노동자 통제권)의 핵심 중요성을 인식했다. 초좌익적 노선이 지배했던 코민테른 제3기 동안에 스탈린주의자들은 ‘노동자권력을 위한 투쟁’을 들이밀어서 이 ‘노동자 통제를 위한 투쟁’을 기각시키려고 한 반면, 트로츠키는 그 권력 투쟁으로 나아가는 가교로서 통제 투쟁을 이해했다. 즉, 그는 진정한 노동자 통제 투쟁이 착수되어 어떻게든 성공했다면, 노동자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인식했다.
“공황과 실업, 그리고 자본가들의 약탈적인 시장 조작의 영향 하에서 노동자계급은 그 다수가 기업비밀의 철폐와 은행 ․ 상업 ․ 생산에 대한 통제를 위해 투쟁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을 수 있다. 혁명적 권력 장악의 필요성을 이해하게 되는 상황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생산에 대한 통제의 길에 들어가고 나면 노동자계급은 불가피하게 권력과 생산수단을 장악하는 방향으로 밀고 나아갈 것이다.”5)
한 가지 중요한 의미에서 볼 때 트로츠키는 바로 여기서 이행요구들의 핵심 자체에 다가가고 있었다. 최소요구들 또는 당면요구들은, 어떤 조건에서는 노동자계급을 달래는 수단으로 자본주의가 다 들어줄 수도 있는 요구들이다. 반면에, 이행요구들은 정말로 객관적 상황에 부합한다면, 자본주의가 결코 완전하게 들어줄 수가 없다. 이행요구들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요구안이 되고, 부분적으로라도 쟁취된다면, 그 즉시 이 이행요구들은 노동자계급으로 하여금 계급사회의 토대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더욱더 나아가게 할 것이며, 동시에 그에 대한 사회주의적 해결을 가능케 해 줄 의식과 조직을 창출하면서 계급전쟁을 질적으로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이행요구들은 통상적인 당면요구들(개량들)과 투쟁방법들로는 넘어설 수 없는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해결책이 되어준다. 즉 이행요구들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자본가들의 통제와 운영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의 논리 자체에 노동자계급이 도전할 수 있도록 노동자계급의 힘을 조직해 줄 보다 효과적인 요구들과 투쟁방법들로 나아가는 전진의 길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행요구들을 배경으로 하여 ‘노동자계급의 정치경제학’, 즉 인류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계획생산(planned production)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는 사회주의에 관한 단조롭고 메마른 주일 설교 형태가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구체적인 문제에 구체적으로 답하는 형태여야 한다.
트로츠키의 <프랑스 행동강령>
이행요구들에 내장된 방법에 대한 트로츠키의 이해방식은 1934년 프랑스에서 전개된 위기 속에서 잘 나타났다. 초좌익 시기에 코민테른은 당면요구들과 이행요구들을 모두 기회주의라고 비난했었다. 모든 것이 권력의 문제로 환원되면서 앙상해져버렸다. 인민전선 쪽으로 우경화되어감에 따라 코민테른은 이전 입장을 폐기하고 프랑스에서의 당면요구들과 권력의 문제를 대립시켰다. 당면요구들에서나 권력 문제에서나 모두 코민테른은 현재의 필요사항들과 권력을 위한 투쟁을 연관시키는 이행 방법을 포기하였다. 트로츠키는 위기의 규모 덕분에 이행요구들이 실제로 얼마나 직접적인 타당성을 갖게 되었는지를 입증했다. 이행요구들은 당면 수준에서 대중들의 절박한 필요에 부합했고, 여기에 더해 권력 문제 자체가 당면의 절박한 현안 문제가 되고 있었다.
“‘사회개량은 혁명투쟁의 부산물일 뿐이다’라는 일반적인 맑스주의 테제는 자본주의의 쇠퇴기에 가장 당면한, 가장 긴급한 중요성을 갖는다. 자본가들은 모든 것을 잃을 위험에 직면해서만 노동자들에게 약간의 양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시기 자본주의 -- 그 자체로 막다른 골목에 처한 -- 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조차도 대중들의 고통과 사회위기의 심도에 비교하면 전혀 대수롭지 않다. 바로 이 때문에 자본가에 대한 수탈(재산 몰수)과 생산수단의 국유화(사회화)가 모든 요구들 가운데 가장 당면한 요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르주아지의 지배 하에서 이 요구는 실현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정말 그렇다! 때문에 우리는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6)
마찬가지로, 파시스트 깡패들의 무장동원은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현 조직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장해야 할 필요를 당면요구로 제기했다. 물론 무장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의 존재와 장시간 동안 양립할 수 없다. 첨예한 사회위기는 대중들을 혁명의 문턱에까지 이르게 하는 요구들을 당면요구가 되게 했다. 낡은 사회질서는 붕괴하고 있었다. 대중들은 투쟁할 태세가 되어 있었지만 배신적인 지도부는 대중들을 수동적이고 혼란된 상태로 방치하였고, 패배의 길을 닦았다. 한 가지 중요한 의미에서 이것은 트로츠키가 준혁명적(pre-revolutionary)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낡은 질서는 무너지고 있지만, 노동자계급이 맞고 있는 지도력(지도부)의 위기는 대중들이 지배계급의 균열을 이용하는 것을 막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절망에 빠진 중간 계급 및 계층들을 노동자계급의 편으로 결집시키는 것을 막는다. 노동자계급을 사회주의로 인도하고 배신자들과 결별토록 하며 노동자계급이 혁명가들 속에서 새로운 지도부를 찾도록 해주는 강령을 중심으로 노동자계급을 행동에 나서게 함으로써 이러한 지도의 위기를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일련의 요구체계가 필요하다. 바로 이러한 점이 이행요구가 갖는 결정적 중요성이다.
이러한 방법이 적용된 하나의 초기 사례가 1934년의 <프랑스 행동강령>이었다. 이 강령은 프랑스에서 준혁명적 상황을 앞당기는 데 모든 초점을 맞춘 이행강령이었다. 이 강령은 파시즘의 위험에 대해 경보를 울렸다. 이 강령은 프랑스 부르주아지가 노동자계급을 공격하면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 -- 디플레이션과 해고 ․ 실업 -- 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이 강령은 이러한 위험에 맞서는 방책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토대에 도전하는 노동자 통제와 조직 형태를 제시하였다. 이 강령은 노동자계급과 함께 소부르주아 계급의 진보적 부위를 동원하려고 했고, 부르주아 헌법에서 보나파르트주의의 모든 흔적을 없애라고 요구하는 것도 피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프랑스 행동강령>은 하나의 모델이다. 그러나 모델은 맹목적으로 모방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에 창조적으로 적용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날 누군가 <프랑스 행동강령>이 “지금도 타당하다”고 말한다면, 분별 있는 사람들은 그를 약간 돌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프랑스 행동강령>은 시공을 초월한 것이 아니다. 이행 방법은 특수한 정세에 적용되는 것이다. 이 이행 방법은 다른 시기에 와서 <<이행강령>>으로 이월되었다.
<<이행강령>>
<<이행강령>> 최초 초안은 트로츠키가 1938년 봄에 완성하였다. 이 초안은 제임스 캐넌을 비롯한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미국 SWP)의 지도자들과 광범위한 토론을 거친 뒤에 작성되었다. 강령을 일종의 체계화로 대단히 중시했던 트로츠키는 이전 시기의 경험과 교훈을 총화하고, 이 시기의 사건들에 대한 좌익반대파/ 제4 인터내셔널의 대응을 집대성했다. 트로츠키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 강령 초안은 현재까지의 집단적 작업을 총괄한 것이다.”7)
이러한 총괄은 과거 경험과 미래 전망이 제4 인터내셔널 전체에(프랑스 지부만이 아니라) 광범하게 공유되어야 했기 때문에 매우 중요했다. 강령 초안은 <<공산당 선언>> 제2부의 새로운 버전이었다.
“기술관료제(technocracy)에 대당하는 바의 노동자 산업 통제 같은 구체적이고 정확한 요구들을 총괄할 필요가 있다.... 독점자본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단계에 부합하는 일련의 이행 조처들 및 여기에 추가하여 식민지 ․ 반(半)식민지 나라들에 부합하는 이행 조처들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문서가 준비되어 있다. 우리의 문서는 맑스와 엥겔스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밝힌 <<공산당 선언>>의 그 부분[제2부]과 부합한다. 우리의 문서는 단지 부분적으로만 시대에 뒤떨어졌을 뿐, 부분적으로는 매우 훌륭하다. 시대에 뒤떨어진 부분은 우리의 총회를 통해 다른 내용으로 대체되어야 한다.”8)
<<선언>>처럼 <<이행강령>>도 서로 연관된 구성부분들로 이루어졌다.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들 부분 및 각각의 부분들이 맺고 있는 상호연관을 이해해야만 한다.
위대한 <<선언>>처럼 트로츠키의 강령도 첨예한 위기에 대한 단기적 정세전망에 입각해 있다. 어느 때보다도 깊고 더 격렬한 위기를 낳았던 제국주의 시대를 트로츠키는 파국적인 시대라고 예견했다. 그는 거의 10년간의 자본주의 위기가 제국주의 전쟁으로 귀결될 것임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는 이런 예견에서 절대적으로 옳았다. 트로츠키를 “파국론”이라고 비난하는 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인류를 실제로 엄청난 파국에 빠뜨렸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재래식 무기가 수천만 명의 목숨을 빼앗고 불구로 만들었다. 국가경제들 전체가 황폐화되었다. 이게 파국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트로츠키가 그의 강령에서 빛나는 통찰력으로 내다본 파국의 규모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러나 트로츠키의 정세전망은 단순히 일반적인 파국의 전망이 아니었다. 개개 자본주의 나라들이 직면하고 있던 특수한 문제들을 고려한 보다 세밀한 정세전망이었다. 트로츠키는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을 때에 비해 자본주의가 훨씬 더 약화되었다는 정세분석을 이행강령에 담아냈다. 트로츠키의 생각으로는, 혁명적 위기가 자본주의체제 전체의 붕괴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약점이었다. 그는 1939년 초에 이렇게 주장했다.
“그렇다. 새로운 세계전쟁이 세계혁명의 절대적 필연성과 자본주의체제의 붕괴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을 나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9)
더욱이 1940년에는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체제는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다. 유럽과 전 세계적으로 경제체제의 전면적인 재구성이 없다면, 우리 문명은 운이 다한 것이다.”10)
이러한 전망에서 그는 미국도 제외시키지 않았다. 더욱이 루즈벨트가 미국을 전쟁으로 이끌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견했다. 그는 미국 제국주의가 유럽 제국주의처럼 내부적으로 허약하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유럽이 직면하고 있던 것처럼, 미국도 비슷한 붕괴와 혁명적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 -- 공황과 실업 -- 은 미국 노동자들의 의식에 비해 비길 바 없을 정도로 혁명을 위해 무르익어 있다.... 우리는 주체적 조건 -- 대중들의 의식, 혁명정당의 성장 -- 이 근본 요인이 아님을 알고 있다.”11)
트로츠키의 분석에서 다른 두 가지 요소는 전쟁으로 인해 어느 때보다도 대규모로 식민지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그의 인식과, 노동자국가로서 소련의 생존은 정치혁명 여하에 달렸다는 그의 소신이었다. 게다가 트로츠키는 독선적인 크렘린 관료들이 몰로토프-리벤트로프 협약(독 ․ 소 불가침조약)으로 한숨 돌렸다고 생각했을 때, 나찌의 공습을 정확하게 예견했다.
“모스크바 전체주의 도당의 타도만이,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회생만이 불가피하고 또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제국주의 독일의 공격에 맞서는 싸움으로 소비에트 인민의 힘을 분출시킬 수 있다.”12)
트로츠키는 정치혁명이 없다면 소련은 붕괴될 수밖에 없으며, 자본주의가 부활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더욱이 그는 자본주의가 파국을 딛고 살아남는다면, 전체주의 정권으로의 변모 또는 일련의 전체주의 정권들로의 변모를 통해서만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정세전망은 공상적인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확한 예언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었다. 그것은 가설이었다. 트로츠키도 이 점을 인정했다.
“정치적 예측은 작업가설일 따름이다. 그것은 부단히 검증되고, 보다 정확해지고, 현실에 보다 가까워져야 한다.”13)
이와 같이 트로츠키의 정세전망은 당시 제4 인터내셔널이 당면하고 있던 시기 동안 제4 인터내셔널을 위한 지도지침 용도로 제출된 것이었다. 이 시기는 트로츠키가 보기에 장기간의 준혁명적 시기일 공산이 컸다. 트로츠키는 그의 사이비 추종자들과는 달리, 왜 이 시기가 준혁명적 시기인지, 이 준혁명적 시기를 혁명적 시기로 만드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정확히 규정 내렸다.
“경제와 국가, 그리고 부르주아지의 정치와 그 국제관계는 준혁명적 사회 상태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위기에 의해 완전히 엉망이 된다. 준혁명적 상황을 혁명적 상황으로 전환시키는 도상에서 부딪치는 주 장애물은 노동자계급 지도부의 기회주의적 성격이다. ... 수백만 대중이 거듭해서 혁명의 길에 들어선다. 그러나 대중들은 매번 자신의 보수적인 관료기구들에 의해 봉쇄된다.”14)
이것이 전쟁 전야 노동자계급 지도부의 위기에 대한 트로츠키의 이해방식이다. 준혁명적 상황에서 -- 특히 유럽의 -- 대중들은 혁명의 길로 들어갔다. 프랑스와 스페인 노동자들의 투쟁은 순전히 부문적, 경제적, 일시적 성격을 띤 것이 아니었다. 이들의 투쟁은 혁명적 잠재력을 품고 있는 전면적인 투쟁이었다. 바로 이런 시점에 노동자계급 지도부(지도력)의 위기는 특별한 효과를 미친다. 즉 낡은 지도부가 이 혁명적 잠재력이 현실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스탈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언제든 배신할 수 있음을 1936년과 37년 프랑스와 스페인 모두에서 충분히 보여주었다. 한편 같은 시점에 트로츠키주의 세력은 지도권을 다투기에는 너무도 미약했다. 트로츠키가 보기에 이러한 지도력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잠재력이 짧은 기간 존재했다. 그의 위기 분석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정치적 결론은, 대중들이 다시 한번 혁명적 투쟁의 길에 들어서도록 추동되는 바로 그 시점에 지도력의 위기가 스탈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붕괴를 야기 시킬 거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트로츠키로서는 혁명투쟁과 낡은 지도부의 쇠약을 이용하여 제4 인터내셔널을 무장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대중운동으로의 결정적인 전환이 필요했다. 동시에 <<이행강령>>은 그 자체가 제4 인터내셔널의 지부들이 대중운동의 선두에 서도록 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 제4 인터내셔널은 대중운동의 과제들을 정면으로 떠안는다. <<이행강령>>은 이 중요한 전환의 반영이다.”15)
이러한 정세전망은 시대(epoch; 대시기) 전망이 아니라 중단기(소시기 및 중시기) 전망이었다. 즉 수십 년이나 반세기가 아니라 수년간의 문제였다. 이러한 정세전망은 트로츠키가 대면했던 시기 -- 준혁명적 시기 -- 에 적용된 것이었다. 이 시기의 시작과 끝은 세계사적 사건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트로츠키의 정세전망이 입각해 있던 시기는 대략적으로 히틀러의 승리와 함께 시작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미국 제국주의의 승리로 끝난 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대한 트로츠키의 정세전망은 현실적이면서도(인류가 직면한 위기의 심각성을 전체적으로 면밀히 평가했다는 점에서), 동시에 혁명적 낙관주의로 충만했다. 즉 트로츠키의 정세전망은 이 위기를 혁명적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주체적 측면을, 다시 말해서 제4 인터내셔널의 의지 -- 제4 인터내셔널의 강령으로 구현되어 있는 의지 -- 를 계산에 넣은 정세분석이었다. 1938년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의 승리를 위해서는 트로츠키의 이러한 정세전망 이외에 그 어느 다른 정세전망의 제출도 결국은 배신이나 기권주의를 변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전후에 이러한 정세전망은 여러 지점에서 조정을 필요로 했다. 제국주의 나라들의 경제호황, 아시아 ․ 아프리카 ․ 라틴 아메리카의 민족 투쟁, 그리고 자본주의가 타도되었지만 스탈린주의 관료들이 지배하게 된 나라들에서의 정치혁명적 위기 등, 이 모든 상황은 트로츠키가 예견한 것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이런 사태발전은 맑스주의자들에게 두 가지를 요구했다. 첫째로, 강령의 초점을 재설정하는 수단으로서, 새로운 조건에서 새로운 정세전망을 다듬어내는 것이 필요했다. 둘째로, 트로츠키의 정세전망에 들어있는 오류를 분리시키고 극복하기 위하여 트로츠키의 정세전망에 대한 비판적인 대차대조표 작성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전후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둘 중 어느 과제도 수행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제4 인터내셔널의 주요 지부이자 주도세력인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은 국제무대에서 사실상 철수했다. 유럽과 아시아의 중핵들은 전쟁 중에 많은 수가 목숨을 잃었다. 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에서는 트로츠키주의가 거의 영향력이 없었던 반면에, 상당히 영향력이 강했던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는 국가별 고립에 빠져 있던 모든 트로츠키주의 그룹들이 미국 동지들만큼이나 준비되어 있지 못한 관계로 제4 인터내셔널 내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할 수가 없었다. 트로츠키주의를 발전시켜야 할 과업에 직면한 중핵들은 상대적으로 경험이 일천했으며, 불길하게도 적어도 노동자계급의 일부 부문들에라도 뿌리를 두고 있는 상당수의 당원들을 가진 정당의 지도자들이 아니었다.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제임스 캐넌 같은 경험 많고 노련한 투사들은 트로츠키가 죽을 때까지 한 중심적인 국제적 지도 역할을 할 능력이 없거나 혹은 의지가 없었다.
그 결과, 새로운 사태발전에 비추어 강령을 재구축할 수 있는 지도부가 없었던 제4 인터내셔널은 전체적으로 이러한 사태발전에 의해 심각할 정도로 방향성을 잃고 헤맸다.16) 이행강령 자체의 문제에 대해 두 가지 반응이 나왔다. 첫째는 제임스 캐넌과 유럽 지도자들에 의해 나타났다. 이들은 전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이행강령에 담긴 정세전망이 그 일반적 적용의 어려움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집착했다.
미국의 군사적 승리와 거대한 경기활황의 실제 영향에 대해, 그리고 전후의 대 파업 물결이 관료적으로 봉쇄당한 사실에 대해 눈을 감은 채, 캐넌은 단순히 이제 막 그런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위기에 대한 전전(戰前)의 정세전망을 계속 밀고 나갔다. 게다가 위기는 불가피하게 완전한 혁명적 위기일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견해에 도전하면 모두 회의주의적이고 패배주의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또한 미국 노동자계급이 혁명적 공세로 나아가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 미국 노동자계급을 알지도 못하면서 중상 비방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견해는 미국의 새로운 세계지배를 한 측면만 반영한, 근거가 불충분한 것이었다. 이 세계지배를 기초로 한 경제회복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대신에 캐넌은 1946년 이렇게 주장했다.
“세계자본주의 및 그와 함께 미국 자본주의가 도달한 막다른 골목은 자본주의 안정화의 새로운 유기적 시기가 올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한다. 미국 제국주의의 지배적인 세계 지위는 이제 자본주의 전체의 단말마적 고통을 가중, 격화시키고 있다.”17)
캐넌은 자본가계급에게 절망적인 상황이란 없다는 레닌과 트로츠키의 주장을 잊어버렸다. 그는 단기적인 호황 가능성을 인정했지만, “1929-32년의 상황이 오히려 번영하는 모습으로 보이게 할 정도의”18) 불황이 급속히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만델과 파블로19)가 캐넌과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1948년의 세계정세에 대한 이들의 테제에는 트로츠키의 예측에 대한 똑같은 숙명론적 믿음이 배어 있었다. 이들은 당시 만연했던 “불안정한 균형 상태”를 인정한다며 립서비스를 바쳤지만, 중심 지점에서는 이렇게 주장했다.
“쇠퇴하고 썩어가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와 소련에서 소비에트 관료집단에 의해 수립된 체제는 그 고유한 모순이 축적되면서 첨예화되고 있다. 이 모순은 생산력의 발전을 마비시키고, 수백만 세계 인민의 생활수준을 꾸준히 하락시키고 있으며, 사회생활과 사생활에 대한 관료 ․ 경찰 국가의 압력을 증대시켜 모든 분야에서의 창조성을 질식시키고 있다. 또한 이 모순은 독일이나 일본처럼 고도로 산업화된 나라들을 식민지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민족적 억압을 증대시키고 있다.”20)
이런 정세전망에서는 전쟁의 실제 결과에 입각한 진지한 평가의 흔적을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1938년에 트로츠키가 한 말을 문구만 바꿨을 뿐이다.
잘못된 정세전망은 이행강령의 본질 자체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정통’ 트로츠키주의자들 -- <<이행강령>>을 물신화시킨 사람들 -- 은 <<이행강령>>은 오직 실제 혁명적 위기만을 상정하여 작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들은 이런 위기상태는 전후 사회의 영구적인 특징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런 접근법을 대표한 것이 바로 캐넌이었다. 전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행강령>>은 혁명적 정세전망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도 없다. 최대/최소강령 개념 -- 즉 일상의 작은 변화라는 최소강령과 일요일 집회 때나 이야기하는 궁극적 목표라는 최대강령 -- 에서 이행강령으로 넘어간다는 사실 자체가 파국이 임박한 혁명적 성격의 사태발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21)
캐넌은 가능한 한 가장 좁은 뜻으로 이행방법을 -- 거의 백 년 동안 맑스주의가 그리도 공을 들여 발전시켜온 그 이행방법을22) -- 규정함으로써 전후 호황의 현실을 무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미국과 서유럽의 대부분 지역에서 경제가 회복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유지되었던 것을 단지 위기가 단기적으로 중단된 것일 뿐이라고 보는 정세전망을 그는 고수했다. 서방에서의 경제호황과 사회평화는 잠시 궤도를 벗어난 일탈쯤으로 치부되었다. 극단적 형태의 이런 ‘정설’은 제4인터 국제위원회의 위기 남발행위로 나타나고 있었다. 국제위원회 위원들은 경제적 붕괴와 임박한 혁명적 위기에 대한 기대로 계속 흥분된 상태였다. 이런 견해의 대표적 옹호자는 게리 힐리였지만, 캐넌은 많은 점에서 이 견해의 창안자이다. 전후에 그는 경제위기가 임박했으며, 이 위기와 혁명 사이에는 필연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경제위기가] 미국에서 가장 웅대한 혁명적 가능성을 열어놓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지금부터 우리 당의 정책과 정세전망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23)
현실 생활과 이런 웅대한 정세전망 사이의 불일치는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으로 하여금 1950년 이후 당의 선전 ․ 선동의 중심이었던 이행강령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정통’ 세력으로 인정받으려면 이행강령을 정식으로 숭배하는 것이 조건임을 주장했다.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과 영국 혁명적공산당(RCP) 내 분파들 사이에는 이런 식의 분석에 반대하여, 전쟁의 결과로 서유럽에서 출현한 안정화를 인정하는 가운데 대안을 제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를테면, 테드 그란트는 “민주주의 반(反)혁명”이 일어났다고 올바르게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반대 입장들은 제4 인터내셔널 지도부에 의해 관료적으로 차단되었고, 상당 규모의 영향력 있는 세력으로 발전하는 것이 저지되었다.
영국 혁명적공산당에서 발전해 나온 클리프주의자들은 정세가 변화했음을 표명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가운데 단지 이들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오랜 격언의 진실을 입증했을 뿐이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스탈린주의의 생존과 자본주의의 호황에 대한 이들의 경험주의적 인식은 이들로 하여금 소련의 계급적 본질을 설명하는 이론으로서 국가자본주의론을 채택케 하고, 레닌의 제국주의론과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을 거부하게 했다. 목욕물과 함께 아기까지 버려졌다. <<이행강령>>에 대한 그들의 태도보다 이를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1960년대에 트로츠키주의 원칙 옹호에 매우 열심이었던 던컨 핼라스(Duncan Hallas)는 1948년 제4 인터내셔널 대회에서 올바르게 이렇게 주장했다.
“현 상황 및 <<이행강령>>의 정세전망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요구된다. 대다수의 운동이 이 임무에 나설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24)
그러나 클리프주의자들이 결성한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이하 영국 SWP)은 이런 재검토를 하기는커녕 1938년 트로츠키의 정세전망이 틀렸기 때문에 그에 따라 그의 강령도 틀렸다는 결정을 내렸다. 존 몰리뉴는 그가 쓴 트로츠키에 관한 책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1838년 트로츠키의 자본주의 성격 규정은 엄밀히 말해서 경험주의적인 인상이었다. 대개 그렇듯이 그것은 미래에 대한 예측으로서는 특히 취약했다. 요컨대, 경제 분석이 <<이행강령>>의 토대였는데, 그 토대는 결함이 많은 토대였다.”25)
언뜻 보면 클리프주의자들의 입장은 캐넌의 입장과 굉장히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행강령>>을 거부하는 자기 합리화에서 이들은 캐넌이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행강령>>의 본질을 규정한다. 이들은 직접적인 혁명적 위기가 존재하는 조건에서만 그 강령은 현실 적합성을 가지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클리프 경향이 언제나 주장해 온 이런 견해는 최근에 역설적이게도 제임스 캐넌에 대한 클리프 경향의 글에서 표명되었다. 글쓴이인 크리스 뱀버리는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이행강령>>에 집착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거를 동원하여 공격했다.
“트로츠키의 말을 빌리면, 개량주의적이고 경제적인 요구투쟁과 권력투쟁 사이에 가교로서 역할 한다고 하는 이행요구들은 오직 특수한 혁명적 맥락 안에서만 의미가 있다.”26)
캐넌에 대한 소위 비판이랍시고 하는 이런 이야기는 오히려 캐넌의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메아리로 들린다! 클리프주의자들이 트로츠키의 <<이행강령>>을 거부한 것은, 직접적으로 혁명적인 위기가 있을 때에만 오직 <<이행강령>>이 현실 적합성을 가질 수 있다고 간주하는 입장에서 실제 그 같은 위기가 미국과 서유럽에서 전혀 다가올 기미가 없다고 -- 캐넌, 힐리, 만델, 파블로 등과는 달리 -- 보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펴볼 것처럼, 실제로 클리프주의자들 자신들의 <<이행강령>>에 대한 일면적 정의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수정주의를 심화시키게 했다. 이는 전후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앙상한 정설만큼이나 혁명적 맑스주의의 대의를 손상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두 경향 모두에 반대하여 우리는 트로츠키의 정세전망이 <<이행강령>>의 바로 그 행동강령적 요소의 토대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전후에 정세전망과 행동강령 양쪽 요소 모두를 다시 정교화 하는 것이 필요했다. 정세전망과 관련하여 우리는 트로츠키의 ‘파국론’의 힘이라고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명확히 했다. ‘파국론’은 전쟁과 그 전쟁에서 솟아나는 혁명적 고양을 예견했다. 두 가지 모두 일어났다. 이탈리아, 그리스, 베트남, 중국, 유고슬라비아에서 혁명적 분출이 일어났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보다는 훨씬 약했지만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도 그 반향이 감지되었다.
그러나 트로츠키가 예견하지 못한 요인들이 뒤섞이면서 전쟁과 혁명적 분출은 그가 기대했던 방향과 수준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혁명적 분출은 영미 제국주의와 그 동맹군인 소련이 반(反)파시즘의 기치아래 유럽을 휩쓸고 있던 맥락 속에서 일어났다. 스탈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이러한 상황에서 혁명적 봉기를 좌절시키고도 이를 정당화할 수 있었다. 혁명적 봉기의 목표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회복으로 제한되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공산당은 부르주아지와의 연립정부에 참여했다. 이러한 배신으로도 혁명투쟁을 진압하기에 불충분했던 곳에서는 소련 군대와 연합국 제국주의 군대의 잔인한 무력이 반(反)혁명의 도구로 이용되었다(폴란드, 그리스, 베트남의 경우). 혁명적 봉기의 지도력을 놓고 스탈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에 도전할 수 있는 대중적 제4 인터내셔널의 부재는 민주주의적 또는 스탈린주의적 반(反)혁명이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상황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쉽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러한 패배에 기초하여 전쟁의 진정한 승리자인 스탈린주의와 미국 제국주의는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새로운 전후 현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제4 인터내셔널은 혁명적 봉기의 진압 또는 미국 제국주의와 스탈린주의의 승리가 갖는 거대한 의미를 새기는 데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의 정세전망은 두 가지 모두를 과소평가 했다. 이러한 사태발전에 바탕을 둔 새로운 정세전망이라면, 제국주의 나라들에서의 경제 호전의 영향에 대비해야만(장기호황까지 예견할 수는 없었다 하더라도) 했을 것이다. 또한 대영제국이 해체되고 미국이 자신의 의지를 강제하는 데에 따른 민족해방투쟁의 발전에도, 그리고 스탈린주의의 지배에 대항하여 동구에서 일어난 반란에도 대비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제4 인터내셔널의 어떤 지부도 이런 정세전망을 다듬어내지 못했다.
지지자들이 방향감을 잃어버린 데 대해 트로츠키 자신의 책임은 어느 정도였는가? 트로츠키는 자신도, 전체 제4 인터내셔널도 모두 정치경제학의 영역에서 불충분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는 세계경제를 다룬 <<이행강령>> 제1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강령의 도입부분은 완전하지 않다. 첫 장은 단지 암시일 뿐, 완전한 표현이 아니다.”27)
정세전망의 명백히 임시적인 성격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이행강령>>은 경제 예측에서 단언적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 혁명을 위한 경제적 필요조건은 자본주의 하에서 도달될 수 있는 최고수준의 결실을 이미 대체로 이뤘다. 인류의 생산력은 정체하고 있다.”28)
이 구절은 그 동안 트로츠키주의 운동에서 수많은 논쟁들의 중심에 있어 왔다. 전후,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펠릭스 머로우는 트로츠키의 단언이 그릇된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고 지적하여, 내부에서 회의주의자이자 패배주의자라고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이제는 우리 뒤로 펼쳐진 전후 경제호황이라는 현실에 비춰 볼 때 바보가 아니면 아마도 게리 힐리 같은 허풍선이만이 트로츠키의 단언적인 선언이 옳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트로츠키의 오류가 그의 객관주의적, 숙명론적 방법론에서 유래한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존 몰리뉴 같은 이론적 구두쇠들이 트로츠키에게 가한 이런 비난은 잠시도 검증을 견디지 못한다. 몰리뉴는 트로츠키의 고립이 그로 하여금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해결할 객관적인 추동력으로서 역사의 역할에 점점 더 강조점을 두게 했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것은 본질적으로 숙명론적인 제2 인터내셔널의 방법에서 유래하며 그 방법을 다시 되풀이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왜 종말론적 예언이 이 시점에 주를 이루었는지 아는 것이 어렵지 않다면, 또한 제2 인터내셔널의 기계적 유물론과 결정론에 그 이론적 뿌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29)
이런 주장이 의미하는 것은 몰리뉴가 1920년 중반부터 삶이 다할 때까지 스탈린주의에 맞선 트로츠키의 투쟁의 의미도, 제4 인터내셔널을 건설하기 위한 그의 투쟁의 중요성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로츠키는 결코 역사가 사회주의적 방식으로 위기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는 위기는 단지 혁명정당과 인터내셔널이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할 뿐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이것은 그가 지도력의 위기에 강조를 둔 것의 온전한 의미이다. 실로 1930년대 내내 중도주의에 대한 트로츠키의 논박은, 역사가 사람들의 행동으로부터 독립해 있는 힘이라는 생각에 대한 거듭된 공격에 다름 아니었다. <<이행강령>>을 작성하고 몇 달 지난 1938년 12월에 그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매번 혁명적 상황마다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 요인인 혁명적 계급의 혁명적 공세가 제때에 나서서 객관적 요인을 거들지 못한다면, 혁명적 상황이 반(反)혁명적 상황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최근의 역사는 일련의 비극적 증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30)
트로츠키의 오류는 결정론에 있지 않았다. 그의 예측은 미국 제국주의의 힘을 너무도 과소평가했기 때문에 빗나갔다. 이는 중대한 오류였다. 이 때문에 트로츠키는 미국에서 파시즘 말고는 경제위기의 탈출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가 혁명적 귀결 이외의 다른 대안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했을 때는 언제나 그것은 전체주의적 대안이었다. 이는 자본주의의 그 어떤 휴식기간도 일시적일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 제국주의의 경제적 힘이 미국 제국주의로 하여금 전후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민주주의 반(反)혁명에 대규모로 자금을 댈 수 있게 해주었다. 게다가 전후의 생산력 팽창을 위한 길을 닦는 세계경제의 원동력 역할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트로츠키와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 모두 이런 가능성을 보려 하지 않았다. 미국경제의 급속한 성장 자체가 동일하게 급속한 몰락을 보증한다는 것이 그들의 전제였다. 트로츠키는 전쟁이 막대한 자원을 고갈시킬 것이기 때문에 관련 국가는 경제 붕괴에 직면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가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지도부 중 한 사람과 나눈 다음과 같은 의견 교환을 보면 이 점이 분명히 나타난다.
“샤흐트먼 : 미국이 참전하지 않는 유럽의 전쟁이라면 어떨까요?
트로츠키 : 그 경우에 미국의 경제 붕괴는 지연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전쟁에 관련된 국가들에서는 4년이나 6년이 아니라 6개월에서 12개월 사이에 경제가 붕괴되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국가들은 물질적으로 1914년에 비해 더 부유한 것이 아니라 더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모든 실업자들이 전시산업에 흡수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의 모든 부를 빨아들이는 가공할 펌프를 만들어낼 뿐입니다.”31)
이는 미국을 비롯한 여타 자본주의 경제들에 대한 위험할 정도로 일면적인 관점이다. 어떤 경우에는 전쟁이 자본주의 경제의 수익성을 되살릴 수 있으며, 단지 고갈시키는 역할만 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아주 일찍부터 모든 사람이 인지했던 것처럼, 특히 미국이 폭격으로 자국 산업이 파괴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국 영토에서 전쟁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은 너무도 분명했다. 영국의 전쟁 관련 기관과 영국 자체를 강하게 압박했던 군수공급은 미국의 부를 흡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미국경제의 성장을 도왔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자들이 코민테른 ‘제3기’ 동안 내걸었던 “최종 위기”론을 논박하는 가운데 경고하기를, 이 같은 견해는 정치의 수준에서는 숙명론 -- “다음은 우리 차례” -- 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세계경제 위기의 성격을 일면적인 모습으로 제시했고, 따라서 그의 지지자들을 묶어세우기 위해 제출한 정세전망도 중요한 점들에서 빗나간 것으로 판명되었다. 혁명적 공산주의 운동(건강한 코민테른과 이를 뒤이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실패한 데에서 유래하는 이 정세전망의 오류는 전후에 트로츠키의 지지자들을 혼란으로 몰아갔다. 그들이 숙명론을 범한 -- 처음에는 일시적으로, 나중에는 체계적으로 --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트로츠키주의로부터 벗어나 중도주의로 빠져든 것의 산물이었다. 그들이 처음에 트로츠키의 정세전망을 고수한 것은 정세전망과 원칙을 구분하지 못하고 둘을 진짜 혼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그들은 이 정세전망을 자신들의 누적된 중도주의적 오류들을 감추는 가리개로 사용했다.
이에 대한 뚜렷한 사례는 파블로가 이행강령 자체에서 단 한 줄 따가지고 다음과 같은 논리의 근거로 삼은 데서 볼 수 있다. 그는 1948년 크렘린과 결별한 티토를 지지하며 이렇게 말했다.
“크렘린으로부터 소연방과 공산당들을 지도하는 스탈린주의 기구의 힘과 내적 안정성이 많은 이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인상을 주는 듯한 바로 이 시점에 유고슬라비아 사태는 그들에게 혁명적 낙관주의의 근거 -- 즉 그 어떤 관료주의 기구보다도 결국 더 강한 것으로 입증될 역사의 법칙 -- 를 상기시켜주었다.”32)
파블로 이후로 이렇게 이행강령에서 일부만을 인용하는 것이 유행했다. 이렇게 이행강령을 숙명론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이 제4 인터내셔널의 중도주의적 분파들을 지배했다. 이 노선은 힐리의 “영구적인 혁명적 위기”, 만델의 “저지할 수 없는(따라서 미분화된) 혁명적 과정”, 랑베르의 “끝나지 않는 준혁명적 상황” 등과 같은 논리들의 토대가 되었다. 요컨대, 혁명가들의 자기 임무를 역사과정에 떠넘기는 핑계거리가 된 것이다. 객관적 요인이 전권을 갖게 되었다. 파블로는 유고슬라비아에서 작용하고 있는 역사 법칙은 대중들의 압력이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압력은 워낙 강해서 티토 같은 스탈린주의적 도살자들을 아쉬운 대로 쓸만한 혁명가들로 바꿔놓을 정도다. 제4 인터내셔널 통합서기국(USFI)에 따르면, 같은 이 법칙이 오늘날 산디니스타로 하여금 니카라과를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바꿔내도록 이끌었다! 우리는 이러한 숙명론이 역사과정과 배신적 지도자 간의 관계를 훨씬 더 변증법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이행강령을 자의적으로 왜곡한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단언한다.
“역사 법칙은 관료주의 기구보다도 더 강하다. 사회주의를 가장한 배신자들이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 절대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의지를 꺾지는 못할 것이다. 노동자계급 지도력의 위기는 인류문명의 위기가 되고 있으며, 이 위기는 오직 제4 인터내셔널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막으려는 배신자들의 필사적인 노력은 시간이 갈수록 이점을 대중들에게 더욱 명확하게 입증시켜 줄 뿐이다.”33)
트로츠키에게 역사의 법칙 -- 노동자계급은 객관적으로 혁명적 계급이라는 사실 -- 은 다음과 같은 점을 보증할 것이다. 즉 계급투쟁은 지속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이 계급투쟁이 최종적으로 주체적 요인의 승리를 위한 조건을 혁명당의 형태로 창출할 것이라는 점 말이다. 트로츠키가 볼 때 ‘무딘 도구’나 무의식적인 행위자는 이런 역할을 수행하려 하지 않으며, 할 수도 없다.
행동강령
트로츠키는 혁명적 강령은 행동의 안내자여야 한다고 되풀이해서 주장했다. 이 말은 행동 지향적인 요소 -- 이행 슬로건들 -- 가 전면에 나서고 대신 강령의 보다 일반적인 측면들은 일정 정도 위상이 축소된다는 뜻이었다. 물론 행동강령적 구성부분은 일반적인 혁명적 원칙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이 원칙을 정세적 초점에 집중하여 적용한 것이었다. 강령 상의 핵심적 이행요구들은 앞서 제시된 정세전망을 그 전제로 하고 있다. 즉 행동강령으로서 <<이행강령>>의 완전한 잠재력은 혁명적 권력투쟁의 상황 속에서 현실화 될 것이었다.
“근시안적인 정치인들에게 그리도 ‘비현실적’으로 보였던 제4 인터내셔널의 이행요구 강령은 국가권력 장악을 위해 대중들이 행동으로 나서는 과정에서 그 완전한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34)
<<이행강령>>은 준혁명적 상황을 혁명적 상황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행동강령이었다. <<이행강령>>은 자기 기초를 일차적으로 자기 시기의 객관적 조건에 두었다. <<이행강령>.은 앞 시기 동안의 계급투쟁의 실제 경험에서 출발했다. 독일혁명의 패배, 스페인과 프랑스에서의 인민전선, 러시아혁명의 퇴락, 미국에서의 폭발적인 노동조합 투쟁, 중국에서의 반(反)제국주의 투쟁 등에서 나온 교훈들이 모두 강령에 녹아들어갔다. 강령의 슬로건들은 이들 중대 사건들의 경험 -- 긍정적 ․ 부정적 모두 -- 에서 나왔다. 바로 이들 사건이 지도력의 위기에 대한 트로츠키의 이해에 그 정밀성을 부여했다. 이는 그의 사이비 추종자들이 결코 쫓아갈 수 없었던 것이었다. 지도력의 위기는 당면 모순, 즉 객관적 조건(20여 년 만에 자신의 두 번째 세계대전으로 내몰리고 있는, 공황으로 찢겨진 자본주의)과 노동자계급의 주체적 취약성 간의 모순을 그 배경으로 했다. 즉 전쟁과 혁명이 당면한 미래에 와 있는데 노동자계급은 혁명적 지도력(지도부)을 결여하고 있었던 상황 말이다. 물론 제국주의 시대 안에서는 혁명의 조건이 다수의 고립된 나라들에서 반복하여 객관적으로 형성되게 된다. 그러나 국제적 행동강령은 이와 같은 일반성에 자기 기초를 둘 수도 없고, 또 두어서도 안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제국주의 시대(epoch)에는 이러한 모순의 폭발적 성격이 세계의 모든 부분에서 가라앉는 시기들(periods)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투쟁에서의 배신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지도력의 위기는 트로츠키가 말한 지도력의 위기를 미발달 형태로 미리 보여주는 예시이다. 그러나 이 둘을 구분 못하고 혼동하면, 모든 파업을 영구 준혁명적 상황 또는 혁명적 상황의 맥락 속에서 일어나는 혁명의 신호탄으로 착각하게 될 것이다. 트로츠키 자신은 자신의 행동강령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시기의 성격에 대해 매우 명확했다. 그는 제국주의 시대 일반이 아니라 제국주의 시대에 전형적인 열병적 위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다음 시기 -- 선동, 선전, 조직의 준혁명적 시기 -- 의 전략적 임무는 객관적인 혁명적 조건의 성숙과 노동자계급 및 그 전위(구세대의 혼란과 실망, 신세대의 경험 미숙)의 미성숙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는 데 있다.”35)
트로츠키가 각 노동자 세대의 고유한 특징들에 대해 말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그의 강령이 정세적 초점에 집중하는 것을 본질로 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실로, 제4 인터내셔널은 인터내셔널 총회에 대한 평가 속에서 트로츠키와 같은 결론, 즉 강령은 행동의 지침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격동의 현 세계정세에서 노동자계급의 공식 지도부가 행동의 지침으로 내놓고 있는 모호한 일반론들과 기만적인 추상론들은 제4 인터내셔널이 내놓고 있는 것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이것은 제4 인터내셔널의 기본 강령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당면한 시기에 초점을 맞춘 행동강령이다.”36)
행동강령으로서 그것은 그 자체로 만고불변의 강령 같은 것이 아니라 맑스주의 일반 강령의 구체특수적 표현(주요 원칙과 전략 ․ 전술을 구현하고 있는)으로 이해되어야 했다. 또한 그것은 당면한 전쟁과 위기와 혁명에 대한 정세전망과 분명한 연관을 가졌다. 정세전망의 극적인 변화는 강령의 초점 이동을 요구한다고 트로츠키는 생각했다.
“여러분은 우리가 새로운 사태전개의 리듬과 템포를 예측할 수 없으며, 아마도 부르주아지가 정치적으로 한숨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 점을 배제하지 못한다. 그 경우 우리는 전략적 후퇴를 현실화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 정세에서 우리는 후퇴가 아니라 전략적 공세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37)
트로츠키는 자신의 행동강령을 확고히 자신의 정세전망에 기초했지만, 그 정세전망이 결코 신탁의 예언 같은 것이 아님을 잊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그의 사이비 추종자들은 바로 이 점을 망각했다.
그러나 이 점을 강조한다면, 우리는 나아가 <<이행강령>>이 그저 행동강령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음을 주장해야 한다. <<이행강령>> 내에는 이행요구들의 방법 전체에 대한 설명이 내장되어 있다. 이러한 이행요구들은 하나의 체계를 이루어 다음과 같은 목적을 도모한다. 즉 노동자계급의 각 부분적 투쟁을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목표를 향해, 그리고 사회주의 자체로의 이행을 향해 결정적인 일보를 내딛도록 하는 목적에 복무하는 것이다. 행동강령은 1938년의 <<이행강령>>처럼 특정한 국제적 위기나 1934년의 <프랑스 행동강령>처럼 국가적 위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혹은 영국 탄광노동자들을 위한 우리의 행동강령처럼, 준혁명적 ․ 혁명적 위기의 맥락 바깥에서는 한 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38) 그러나 특정 행동강령의 초점이 무엇이건 간에 행동강령은 <<이행강령>>의 전반적 전략을 자체 안에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행동강령은 이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 매번의 투쟁에서 발생하는 최소요구/부분적 요구와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목표 간의 분리를 행동강령이 넘어서려면 말이다. 대중추수주의 -- 노동자들이 자생적으로 제기한 요구들을 단지 그대로 반복하는 -- 와 실용주의의 위험을 피하려면 이러한 분리에 가교를 놓는 것이 결정적이다. 왜냐하면 그 일반적 성격이 혁명적이지 않은 시기들 내에서도 혁명을 향한 조처들 -- 때때로 매우 제한적인 -- 을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 제국주의 시대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행요구들은, 실생활에 옮겨질 경우 노동자들의 당면 이해를 위한 투쟁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을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것은 물론, 사회주의 이행의 과제를 위해 노동자들을 훈련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이행요구들은 그 어떤 행동강령에도 필수적이다. 트로츠키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나 이 전략적 임무[사회주의 혁명]의 달성은 모든 전술적 문제, 심지어 사소하고 부분적인 전술적 문제에 대해서도 가장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는 생각할 수도 없다. 계층, 직업, 집단을 망라하여 모든 노동자계급 부문들은 혁명운동으로 당겨져야 한다. 현 시대가 다른 시대와 구별되는 것은, 현 시대가 혁명당을 일상적인 사업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어서가 아니라, 이러한 일상 사업이 혁명의 실제 과제와 분리되지 않은 채 진행되도록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39)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영국 SWP)의 이론가들은 일상적 과제들이 이행요구들을 가지고서는 사회주의와 연결될 수 없다고 늘상 주장한다. 이들은 실용주의에 빠져, 그러한 이행요구 같은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대중들을 행동에 나서게 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던컨 핼라스는 이를 가장 분명하게 표현한다.
“각 단계에서의 문제는 적어도 일부 노동자계급 부문들(이상적으로는 물론 계급 전체)에서 호응을 얻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슬로건들을 찾아 제출하는 것이다. 종종 이런 슬로건들은 트로츠키의 매우 제한된 규정을 가지고 볼 때 이행적(transitional)이지 않을 것이다.”40)
문제는 계급투쟁 자체가 노동자들로 하여금 행동을 취하게 하고, 파업을 하게 하고, 대중행동으로 결집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도록 요구들을 제기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기본이다. 그러나 혁명가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노동자들을 행동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 행동의 전개 과정에서 그들을 사회주의 쪽으로 전취하는 것이다. 이행적 행동강령을 위한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상적 요구를 넘어서도록 이끄는 바로 이러한 임무 -- 영국 SWP가 늘 떠맡기를 거부하는 것 -- 를 통해 우리는 노동자들을 혁명적 사회주의로 전취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주의 혁명의 과제를 노동자들의 일상적 관심사와 무관하지 않은 연관된 과제로 만들 수 있다. 중도주의 시기의 제2 인터내셔널처럼, 실제로 영국 SWP는 그저 노동자들의 기존 요구를 지지하고, 노동자들에게 사회주의를 설교하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를 끝낸다.
이행요구들이 1938년에 트로츠키의 고립의 산물이라는 주장은 그가 훨씬 이전 시기부터 이행요구들에 대한 코민테른의 인식을 발전시켜왔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내전으로 이어지게 될 위기가 아직은 여전히 무르익고 있을 뿐이었던 1931년 스페인 상황에서 트로츠키는 현재의 부분적 요구를 넘어서 나아갈 필요를 인식했다.
“그러나 이것[최소 요구들]과 함께 이행적 성격의 요구들이 지금이라도 제출되어야 한다. 광물자원의 국유화, 은행의 국유화, 산업에 대한 노동자 통제, 그리고 끝으로 경제에 대한 국가 규제. 이 모든 요구들은 부르주아 체제에서 노동자 체제로의 이행과 결부되어 있다. 그 요구들은 이러한 이행을 준비하기 때문에, 은행과 산업을 국유화한 뒤에는 계획된 경제를 위한 일련의 제반 조처들 중 한 부분이 될 수 있으며, 그리하여 사회주의 경제와 사회주의 사회로 가는 길을 준비한다.”41)
이행요구들의 성격
트로츠키는 일련의 이행요구들을 강령으로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마침내 ‘강령 문제’를 방법의 수준에서 해결했다. <<이행강령>>은 1891년의 에어푸르트 강령으로 발단이 된 강령적 문제들의 성공적인 해결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행강령>>은 당면 요구들 및 부분적 요구들을 둘러싼 투쟁과 권력을 위한 투쟁 간의 분리/괴리라는 문제를 극복했다. 이 점에서 <<이행강령>>은 코민테른의 사업을 완성했다. 레닌과 코민테른은 일차적으로 이행요구들을 혁명적 상황 동안에 이행기 사회로 가는 가교로 이해했다. 퇴락한 코민테른은 이러한 견해 -- 단지 부분적으로만 옳았던 -- 를 틀어쥐고, 혁명적 상황 이외의 상황에서 이행요구들을 사용하는 것은 기회주의라고 비난하기 위해 이 견해를 이용했다.(나중에 코민테른은 이행요구들을 통째로 기각해 버린다). 이행요구들에 대한 레닌의 견해가 단지 부분적으로만 옳았던 이유는, 당시 그가 최소강령에 대한 일반강령의 관계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트로츠키는 바로 이 관계를 해명했다. 그는 제국주의 시대를 최소요구와 이행요구 사이의 장벽을 헐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는 시대로 보았다. 혁명적 전술을 가지고 당면요구 투쟁을 전개할 경우 그 당면요구들은 더 폭넓은 이행요구들 쪽으로 대중들을 전취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었다. “모든 국지적, 부분적, 경제적 요구가 우리의 이행강령에서는 전면적 요구로 다가가는 접근수단이어야 한다.”42)
높은 인플레 상황에서 임금인상 요구 투쟁은, 노동자들이 전면적인 대답을 찾고자 하는 문제들(이를테면, 자본주의 하에서 생계비가 산정되는 방식)을 제기한다. 이러한 논리는 부분 요구에서 이행요구로 나아가는 것을 용이하게 해 줄 것이다. 그 이행요구가 구체적인 요구로 적절히 변형되어 노동자들을 투쟁으로 결집시키기 위한 토대로 사용될 수 있다면 말이다.
“이 기본 구상을 사건들의 추이와 대중들의 사고 지향에 맞춰 좀 더 구체적이고 부분적인 구상들로 분해하여 해석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43)
명확하게 규정된 전략의 틀 내에 확고함과 유연함이 결합된 트로츠키의 방법은 매우 참신한 것이다. 이에 비해서 혁명가의 자격이 강령에서 떼어내 암기한 슬로건들을 여하한 경우에도 되풀이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고 생각한 그의 사이비 추종자들의 생명 없는 도식주의는 매우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것이었다. 부분 투쟁들을 출발점으로 삼아 전면화 ․ 일반화하고, 그런 다음 구체적 요구를 통해 이 일반화를 표현하는, 그러한 능력이 이행방법의 핵심이다.
레닌과 코민테른의 관점에 트로츠키가 추가한 다른 하나는 이행요구들을 단지 사회주의로 가는 가교가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으로 가는 가교로 사용한 것이다. 이 임무의 수행, 즉 사회주의 혁명 강령 쪽으로 노동자계급의 전위를 전취하는 과업의 완수는 오직 이행강령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 이행강령은 노동자계급의 파산한 지도자들로부터 노동자계급을 해방시킴으로써 혁명으로 가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이 지점에서는 레닌이 말한 (사회주의로의) 이행의 강령이 필요해질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전반적인 혁명적 분출만이 자본가계급에 대한 완전한 수탈을 일정에 올릴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을 준비시키는 것이 이행요구들의 임무다.”44)
이행요구들이 실제로 대중투쟁의 초점이 되면 그 이행요구들은 개량주의에 의해 이끌리는 노동자들을 혁명에 대한 필요 자체를 인정하는 지점으로까지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적 투쟁 과정에서 대중들이 현재의 요구와 사회주의 혁명 강령 사이의 가교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이 가교에는 현재의 상황과 노동자계급의 여러 층들이 가지고 있는 현재의 의식으로부터 도출되어서 하나의 최종 결론 --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 -- 으로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일련의 이행요구들이 포함되어야 한다.”45)
어떠한 이행요구든 모든 이행요구 안에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분배에 대한 노동자 통제의 확립을 통해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사활적인 필요들을 위한 투쟁이 담겨 있다. 즉 이행요구는 그러한 투쟁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동시에 각각의 이행요구는 이런 생산 통제를 행사할 수 있는 기구들로 노동자계급이 조직화되어야 한다는 호소 ․ 촉구를 포함하고 있다. 노동자 통제권 쟁취를 위해 투쟁함으로써, 그리고 이 투쟁에 조응하는 조직을 건설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은 고용주들이 노동자들의 이해에 반하여 자신의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아낼 수 있다. 경영진이 “자기” 집에서 주인 노릇할 수 있음 그 자체를 부정하는 이러한 투쟁은 일종의 이중권력 상황이다. 단위 사업장에서의 이중권력은 그것이 고용주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것이 되려면 한 산업에서의 이중권력으로, 나아가 실로 모든 산업들에서의 이중권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이번에는 사회 전체에서 이중권력의 시작을 만들어낼 것이다. 자본가들의 피할 수 없는 공격으로부터 각각의 모든 성과를 지키기 위해 혁명가들은 이행요구들을 통해 노동자계급을 이 길에 나서도록 전취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노동자 통제는 초기적 수준(이를테면, 단위 공장 안에서 고용과 해고를 둘러싼 통제권)에서나 선진적 수준(사회 전체에 걸친 기업비밀 철폐와 고용주들의 모든 계획에 대한 거부권을 전 사회에 걸쳐 강제해냄으로써)에서나 모두 가장 기초적인 방어적 투쟁(정리해고 반대투쟁, 임금인상 요구투쟁)을 공세적인 투쟁으로 전환시켜 곧장 이중권력 상황의 창출로 나아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그 요구들이 내적 논리와 상호연관이 있어야 한다. 그 요구들은 하나의 체계를 이뤄 노동자계급을 혁명의 문턱으로 이끄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계급의 상당 부분들이 실제로 그 요구들을 위해 투쟁해야 하며, 그리고 이 투쟁의 진행 과정에서 그 요구들이 노동자정부 요구투쟁으로까지 확장되고 그것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이러한 조건 위에서만 그 요구 체계는 노동자계급을 권력 투쟁으로까지 나아가게 한다는 목표에 이를 수 있다. 노동자계급, 또는 그 전위가 이런 방식으로 투쟁하고 있는 시점에서는 이행강령이 소비에트권력/ 프롤레타리아독재 강령으로 전환될 것이다.
“한편 이중권력은 이행기의 정점이다. 두 체제, 부르주아 체제와 프롤레타리아 체제가 서로 화해할 수 없이 대립한다. 두 체제 간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 사회의 운명은 이 충돌의 결과에 달려있다.”46)
따라서 이행요구들을 위한 투쟁은 완결적인 내적 논리를 갖는다. 각각의 요구는 노동자계급을 혁명을 향한 길로 나아가도록 추동하는 이런 논리를 자신의 본질로 품고 있다. 이행요구들을 위한 투쟁이 전개되면, “이행요구들은 더욱 더 공공연하고 단호하게 부르주아 체제의 토대 자체를 겨냥하게 될 것이다.”47) 하나의 특정한 이행 슬로건을 위한 투쟁을 물신화하고 객관적 상황이 어떻든 상관없이 이 투쟁을 수행하려 하는 것이 왜 철저히 잘못된 것인지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자계급이 더욱더 깊숙이 자본주의를 침해해 들어가도록 한다는 이행 슬로건들의 본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이행 슬로건들은 시공을 초월한 방식으로 사용될 수 없다. 이행 슬로건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현실 조건에 뿌리박고 있어야 한다. 물가-임금 연동제 요구는 그 적절한 예이다. 이 요구는 <프랑스 행동강령>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행강령>>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창조적으로 발전시킬 능력도 없는 <<이행강령>>의 물신숭배자들에게 이것은 단지 실수인 것처럼 보인다. 일례로, 구 노동자사회주의동맹(Workers Socialist League)의 잡지 <<오늘날의 트로츠키주의>>에 실린 한 글에서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 행동강령>은 많은 점에서 4년 뒤 <<이행강령>>의 요구들을 앞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물가-임금 연동제와 노동시간-임금 연동제는 1934년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며, 아직 사고하지 못했던 같다.”48)
이것은 경박한 논평이다. 노동시간 연동제는, 이런 문구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초기의 건강한 코민테른과 적색노동조합인터내셔널(RILU)의 요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노동시간에 대한 노동자 통제 요구가 바로 그 노동시간 연동제를 표현한 방식이었다. 물가-임금 연동제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은 일찍이 1923년에 독일 공산주의 운동에서 제창된 요구였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그 요구가 당시의 구체적 상황에 핵심적 관련성이 없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프랑스 행동강령>에 그 요구를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트로츠키가 옳았다. ‘사고’했는지 여부는 완전히 핵심을 벗어난다. 실제로 관련성이 없었다. 그와 같은 요구로는 임투 전선에서 노동자계급 투쟁을 일반화 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노동자계급의 공통된 불만거리가 아니었다. 이 당시 그 같은 요구를 내걸고서는 노동자계급을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나서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트로츠키는 왜 그런지 그 이유를 매우 분명하게 제시한다. “잔인한 디플레이션 정책이 프랑스 자본가들의 제1단계 계획이다.”49)
게다가 그 요구가 노동자 통제 요소(노동자 생계비 지수, 노동자 ․ 주부 위원회)로부터 분리되어 제 자리를 벗어난다면 그 요구는 그 이행적 요소를 잃고, 단지 부분적 요구가 되어 버린다. 즉 무매개적인 개량으로 그쳐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화 안정과 저인플레 상황이라면, 그 요구로는 노동자계급의 대중행동을 일반화하는 것은 고사하고 노동자계급을 행동에 나서게 하는 것도 매우 힘들 것이다. 자본주의는 저인플레 시기에 노동자계급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도록 하지는 않을 형태의 연동제라면 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실제로 이탈리아와 벨기에서는 들어줬다.) 물론, 공황과 고인플레 시기에 이런 연동제에 대한 방어 투쟁은 그 투쟁을 노동자 통제를 위한 투쟁으로 전환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인플레가 상대적으로 미미했던 장기 호황의 시기에 유럽의 주요 자본주의 강대국이나 미국에서 이 슬로건을 내걸었다면 이는 트로츠키의 이행방법에서 이탈하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이행강령>>에서 이 슬로건을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엄청난 물가 상승 위협이 만연해 있는 시기에 대한 행동 슬로건으로 제출한 것이다.
“치솟는 물가는 전쟁이 다가옴에 따라 더욱 더 고삐 풀린 모습을 띨 것이다. 이에 맞서는 우리의 투쟁 슬로건은 오직 물가-임금 연동제 슬로건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50)
반면, 영국 SWP는 인플레가 미미한 시기에는 이 요구가 맞지 않다고 반론을 펼 것이다. 이는 절반만 진실이다. 그 같은 시기에 이 요구는 부적절하지만, 그러나 이 요구를 완전히 폐기해서는 안 되며, 당의 강령에서 영원히 몰아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영국 SWP는 때를 가리지 않고 어느 때에나 이 요구를 미워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이행요구이기 때문이며, 노동조합의 개량주의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영국 SWP는 때마침 인플레이션이 이 요구를 다시 한번 제기한 1970년대에 영국에서 이 요구에 반대했다. 그들의 적개심은 그들의 경제주의에 뿌리박고 있었다. 그들한테는 사회주의적 의식으로 가는 유일무이한 길이었던 임투 상의 전투성을 연동제가 누그러뜨릴 것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었다. 추가 임금인상 요구를 조금도 제약함이 없이 임투 상의 전투성이 노동자들에게 인플레에 대한 보호막을 부여해 줄 투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생각은 영국 SWP에게 혐오 대상이었다. 정말이지 이 요구에 대한 그들의 반대는 아주 유치해졌다. 이들의 ‘대’ 이론가 중 한 사람인 존 몰리뉴는 “이 요구가 물가 상승을 능가하는 임금 요구를 차단하는 요구이기 때문’51)에 이 요구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차단하는데? <<이행강령>> 어디에서 트로츠키가 노동자들에게 현행 소매물가지수 이상으로 임금인상 요구 파업을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가! 물가-임금 연동제 요구는 전투성을 더 높은 지평으로 유도하고자 하는 시도일 따름이다. 즉 고용주에게 내거는 임금 총액 인상을 위한 단편적인 요구들의 지평으로부터, 인플레를 이용하여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잠식해 들어가는 자본가들의 권한에 노동자들이 도전하는 더 높은 지평으로 전투성을 돌려놓고자 하는 것이다. 트로츠키는 노동자들에게 “빵의 양이나 질을 개선할 수 없다면 일단 이 빵을 지켜내야 한다”52)고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도 이 말이 높은 임금 요구에 대한 경고로 읽혀져서는 안 된다. 정말이지 트로츠키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구체적 상황들 -- 일국적, 지역적, 노동조합적 -- 을 토대로 하여 거듭 되풀이해서 제기되는 개별적, 부분적 요구들을 여기서 늘어놓을 필요도 없으며, 또 그럴 계제도 아니다.”53)
명백하게도 객관적 조건이 이 연동제 슬로건의 사용과 그 혁명적 의의를 결정했다. 같은 룰이 주요 이행 슬로건들 모두에 적용된다.
교육적 과제들
객관적 조건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트로츠키에게 또 다른 하나의 위험에 맞서 싸우는 데서 사활적인 중요성을 가졌다. 트로츠키는 당면요구에 이행요구를 부자연스럽게 대립시키는 경향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강령을 대중들의 기존 의식 수준으로 제한시키려는 경향들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이행요구들을 설명하면서 이를 특수한 상황에 적용할 경우, 노동자들의 의식(후진적이든 그렇지 않든)을 고려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근본적으로 교육적인 고려가 당이 노동자계급을 무장시켜 수행토록 해야 할 중심 과제들을 정식화함에 있어서 출발점이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즉 강령 상의 실제 요구들은 1930년대 말 세계의 첨예한 사회적 정치적 위기에 부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객관적 기준은 특정 노동자층의 후진적 의식을 핑계 대는 이른바 ‘현실 가능한 요구’라는 논리에 빠져들지 말고 ‘필요한 요구’를 제출하라고 혁명가들에게 지시한다.
“우리의 임무는 노동자들의 성향에 좌우되지 않는다. 우리의 임무는 노동자들의 성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강령으로 정식화하여 선진노동자들 앞에 내놓아야 할 내용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강령은 과학적 강령이며 객관적 상황에 부합한다는 얘기는 다 좋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이 강령을 한사코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런 결실도 낳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노동자들이 완전히 꺾여버려 아무 희망도 없음을 의미할 뿐이다. 왜냐하면 위기는 사회주의 혁명에 의하지 않고서는 어떤 다른 방식으로도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54)
이 이야기는 노동자들의 의식 상태가 결코 고정되어 있거나 안정적인 것이 아니라 위기와 투쟁에 의해 촉진되는 도약과 환골탈태를 겪는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이행요구들이 해당 시점에 노동자들의 의식에 비해 너무 선진적으로 보일지라도 객관적으로 필요한 요구들이라면 그 이행요구들이 반드시 투쟁의 요구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자들의 후진적 성향에 강령을 맞출 수 없다. 성향이나 정서는 부차적 요인이다. 일차적 요인은 객관적 상황이다.”55)
신참 혁명가들에게 항상 일어나는, 그리고 만성적인 중도주의자들이 결코 대답할 수 없는 한 가지 곤란한 문제는 이행요구들이 자본주의 하에서 실현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답은 ‘실현될 수 없다’이다. 이행요구들은 생산에 대한 자본가들의 배타적 지배권과 이윤 논리에 필연적으로 도전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이행요구들은 자본주의 하에서 안정적이고 영구적인 성과로 실현될 수가 없다. 그러나 이행요구들은 단지 ‘불가능한’ 요구일 뿐인 것도 아니며, 공상적인 요구일 뿐인 것도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당면한 문제들을 다룰 수 없고, 자본주의 철폐 필요성을 아직까지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노동자들의 충성을 얻을 수도 없을 것이다.
다른 중대한 당면요구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자계급의 힘이 충분히 강력해서 자신의 행동으로 체제 전체를 위협할 정도라면 자본가들로 하여금 당면요구들 중 이런저런 요구를 일시적으로나 부분적으로 양보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이행요구 투쟁에서 오는 양보는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높여 공세적 투쟁을 불러일으킨다. 이행요구들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자권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수백만 대중들”이 이해할 때까지 이행요구 투쟁을 노동자계급의 여러 층들한테로 계속 확대하고 이행요구들과 당면요구들과 민주주의 요구들을 상호 연결시켜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이행요구들의 성공적인 실현이 보장된다. 조직적으로는 이것이 혁명당의 영향력이 대대적으로 성장하고 소비에트 유형의 투쟁기관이 생겨나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어느 한 요구가 실현 가능한 것인가 불가능한 것인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 이 문제에 대해 흔히들 제기하는 방식처럼 -- 추상적인 형이상학적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각 개별 요구의 운명은 투쟁의 진행 과정에서 정해질 것이다. 그러나 요구들의 체계는 오직 부르주아 정치 ․ 경제 권력을 파괴함으로써만 실현될 것이다. 레닌은 같은 문제를 어떤 최소요구들과 관련하여 다루면서, 이 문제를 다루는 올바른 방법이 무엇인지 설명하였다. 1910년에 라데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실천 불가능한’ 것의 기준이 부르주아지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는 우리 최소강령의 매우 많은 요구들이 ‘실천 불가능’ 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필수적인 의무사항이다.”56)
이행요구들을 다루면서 트로츠키도 다시 이 점을 천명했다. 이행요구들은 사회주의 투쟁 쪽으로 노동자들을 “유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의도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사활적인 필요들을 위해 노동자들을 행동에 나서게 하는 수단임을 그는 분명히 하고 있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우리 요구 가운데 그 어느 하나도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이 요구들을 이행요구들이라 부른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의식구조에 이르는 다리를 놓은 다음, 사회주의 혁명에 이르는 물질적인 다리를 놓는다. 문제는 대중들을 어떻게 투쟁에 나서게 하느냐 이다. ... 혁명가들은 언제나 개량의 획득은 단지 혁명투쟁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만일 우리가 저들이 줄 수 있는 것만 요구할 것이라고 말한다면, 저들 지배계급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의 10분의 1 쯤만 줄 것이다. 우리가 더 많이 요구하고 우리의 요구 수준을 높여낼 수 있다면, 자본가들은 어쩔 수 없이 최대치를 줄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의 투지가 더 확대되고 더 전투적으로 될 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더 많은 것을 쟁취한다. 이행요구들은 실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공허한 슬로건이 아니다. 이행요구들은 부르주아지를 압박하는 수단이며, 가능한 한 최대한의 물질적 성과를 즉각 가져다줄 것이다.”57)
세계강령
<<이행강령>>은 제4 인터내셔널을 위한 강령이었다. 강령은 세계자본주의의 모순, 스탈린주의 체제의 위기, 국제 노동자계급의 경험에 바탕을 두었다. 강령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 근거에 대해 첫 줄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하고 있다. “전체 세계정세의 주된 특징은 무엇보다도 지도력의 역사적 위기이다.”58)
강령의 서두는 노동조합 내에서의 혁명적 전략 문제들에 집중되어 있다. 어떻게 노동자들을 제도권 노동조합 및 개량주의 지도자들과의 단절을 위한 행동에 나서게 하느냐가 초점이었다.
이 같은 정책을 적용할 가장 직접적인 무대(유일한 무대는 아니지만)는 노동조합 관료와 개량주의 기구가 혁명의 결정적 장애물이 되고 있는 나라들, 즉 제국주의 심장부였다.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지도자들과의 강령 토론에서 트로츠키는 이 점을 뚜렷이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트로츠키는 노동조합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행요구들이 반(半)식민지 세계에 절실한 중요성을 띠고 있는 민주주의 요구들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를 검토해 나간다. 공산주의 강령의 국제주의적 성격에 대해 트로츠키가 지닌 이해의 깊이는 그가 민주주의 요구와 이행요구 간의 연결고리를 발전시키는 방식에서 잘 나타난다. 제국주의 시대의 불균등 ․ 결합 발전에 대한 이해에 바탕을 둔 그의 영구혁명론은 그로 하여금 민주주의 강령과 이행강령을 결합시킬 수 있게 했다. 이에 비해 스탈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은 하나 같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대립시켰다.
“이 투쟁에서는 민주주의 슬로건들과 이행요구들과 사회주의 혁명의 문제들이 별개의 역사적 시대들로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같은 토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59)
특히, 러시아와 스페인과 중국에서의 혁명의 경험은 트로츠키로 하여금 민주주의 혁명의 임무가 어떻게 사회주의 혁명의 임무와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게 했다. 트로츠키는 민주주의적 요구에 부여된 비중은 해당 나라의 낙후성의 정도, 그리고 민주주의적 열망의 강도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적 요구를 제기하는 데서 그의 출발점은 대중들이 부르주아 민주주의한테 걸고 있는 환상과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민주주의적 열망 가운데 진보적인 측면들(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 노동조합과 정당 설립의 권리 등에 대한 갈망)과 연대하는 것이었다. 부르주아지가 이 요구들을 거부하거나 기껏해야 기만적인 방식으로 이 요구들을 이용하는 상황에서 이 요구들을 내거는 것은 이행요구들과 사회주의적 요구들로 가는 다리를 놓는 것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트로츠키가, 예컨대 중국에서 이행적 민주주의 강령을 제안, 촉구했을 때 담겨 있던 의도이다. 이런 이행적 방식으로 민주주의적 요구를 활용하는 방법 -- 이것은 <<이행강령>>에 내장되어 있다 -- 은 트로츠키가 스페인에서 다음과 같이 제헌의회(코르테즈) 소집 슬로건을 사용한 것에서 그 초기적 모습을 미리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오직 민주주의적 슬로건들 하에서만 도시와 농촌의 대중들을 단결시킬 수 있다. 그 중에는 보통 직접 평등 비밀선거에 기초한 제헌의회 선거 슬로건도 포함된다. 현 상황에서는 이 슬로건을 피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소비에트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으며, 스페인 노동자들은 소비에트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다. 적어도 그들 자신의 경험에서는 그렇다. 농민은 말할 것도 없다. 당분간은 제헌의회를 둘러싼 투쟁이 스페인 정치생활의 모든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소비에트 슬로건을 제헌의회 슬로건에 대립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반면에, 분명히 소비에트는 민주주의 슬로건에 근거하여 대중을 행동에 나서게 할 때에야 비로소 가까운 장래에 건설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다음을 의미한다. 왕정이 허구적이고 기만적이며 보수적인 의회를 소집하는 것을 못하도록 막고, 그리하여 민주적인 제헌의회 소집을 보장하고 이 의회가 농민에게 토지를 부여하는 등, 기타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 병사 ․ 농민 소비에트들을 창설하여 근로대중들의 입지를 단단히 해야 한다.”60)
민주주의 요구를 이행요구에 결합시키는 이러한 방법은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 ․ 아프리카 ․ 아시아에서 퇴보한 트로츠키주의의 입장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이들은 트로츠키가 민주주의 강령으로 노동자들을 무장시키는 것을 “가장 우선해야 할 조처”61)라고 언급한 것을 두고 독자적 단계로서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런 식으로 이들은 스탈린주의 단계론을 흉내 낸다. 트로츠키가 ‘가장 우선해야 할 조처’라고 말한 것의 의미는 스페인에 대한 위 인용문으로 볼 때 명확하다. 민주주의 강령을 위한 혁명적 투쟁은 특정 상황에서는 소비에트 강령을 향한 제일보(첫 걸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일보는 소비에트를 위한 투쟁이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연결될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 10월 혁명이 있기 전 1917년에 트로츠키도 레닌도 제헌의회 요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동시에,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의 수중으로 가져다 놓아야 한다고 요구하면서도 말이다. 이러한 입장은 러시아혁명의 결합된(combined) 과제들을 반영하고 있지, 이 혁명의 서로 대치되는 단계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이행강령>>의 재구축을 위해
우리의 책 <<제4 인터내셔널의 단말마적 고통과 오늘날 트로츠키주의자의 임무>>(The Death Agony of the Fourth International and the Tasks of Trotskyists Today)에서 우리는 우리의 목표가 재구축(재정교화)된 강령에 기초하여 혁명적 인터내셔널을 재건하는 것임을 밝혔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맑스주의 전통에서는 강령의 정규적인 재구축이 이루어져 왔다. <<공산당선언>>에 내장된 방법은 <<이행강령>>에서 보존되었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선언>>이 방법론적 수준에서 여전히 타당하다는 이유로 <<선언>>을 단순히 그대로 옮기지는 않았다. 그는 <<선언>>을 재구축했다. 그는 자신의 강령에 새로운 사태발전과 새로운 정세분석과 새로운 계급투쟁 평가를 담아냈다. 이러한 재구축은 완전히 맑스주의적인 전통이다. <<이행강령>>이 작성된 지 50년이 지난 지금 바로 그 같은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리의 호소는 제4 인터내셔널에 기원을 두고 있는 잡다한 중도주의 그룹들의 혐오와 질시를 샀을 뿐이다. 어떻게 감히 성상(holy icon)이 된 원문에 손을 대자고 하는가! 우리에게 강령은 행동의 지침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들에게 강령은 바라보고, 감탄하고, 어쩌면 숭배해야 하는 대상인지도 모른다. 트로츠키가 <<공산당 선언>>을 그의 강령이라고 선언했던 것처럼,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 맞게 그 강령을 재구축 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이행강령>>이 우리의 강령이라고 말하며, 단지 우리가 직면한 시기에 맞춰 재구축하고자 의도할 뿐임을 명확히 밝히는 바이다.
우리는 몇 가지 요인 때문에 재구축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가장 직접적인 것은 그 강령이 완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행강령>>이 완전한 강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든 그 강령에 대한 트로츠키 자신의 언급을 숙고해 봐야 한다.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전국위원회가 강령 채택에 주저하자 트로츠키는 그 강령이 “경험의 시련 속에서 조정될 수 있고, 틀림없이 조정될”62) “일반적 작업가설”이라고 이들을 재차 안심시켰다. 그는 심지어 <<이행강령>>을, 중도주의자 마르소 삐베르가 이끈 프랑스 노동자농민사회당(PSOP)과의 토론을 위한 기초 자료로 제공하면서, 삐베르에게 수정안을 제출해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지도자들과의 강령 토론에서는 이렇게 주장했다.
“강령 초안은 완전한 강령이 아니다. ... 이 강령은 최초의 개괄적 요약에 지나지 않는다. 차기 국제대회에 제출될 것으로는 너무도 일반적이다.”63)
그는 현 단계의 제국주의 및 그 발전과 모순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수립 및 공고화를 위한 정확한 슬로건이 결여되어 있음을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강령이 특정 국가에 적용될 때는 “그 나라와 심지어 그 나라 각 부분의 독특한 조건”64)이 강령의 특정 초점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인정했다. 요컨대, 트로츠키는 보다 심화 발전이 필요하다고 느낀 지점들을 찍어서 우리들에게 신호를 보내준 것이다.
첫 번째 지점은 제국주의 시대에 관한 것으로서, 어떠한 강령 재구축에도 결정적이다. 그 이유는, 첨예하고 장기화된 경제위기에 대한 그의 예측이 적어도 제국주의 심장부에서 현실화되지 못했을 때 이러한 분석의 결여가 전후 트로츠키의 지지자들을 무장해제 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펴본 바, 트로츠키의 정세전망은 미국 제국주의의 경제적 힘을 과소평가했다.
그러나 우리는 트로츠키 자신이 인정한 강령 상의 결함들 -- 강령의 발전에서 우리의 작업을 요하는 결함들 -- 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도주의자들에 의한 강령의 왜곡도 극복해야 한다. 재구축을 필요하게 하는 최종 요인은 지난 50년 동안 일어난 심대한 변화와 그 변화가 계급투쟁 및 계급투쟁 주역들(개량주의자, 민족주의자, 중도주의자, 혁명가)에 미친 효과들이다. 제국주의 중심부에서 전개된 장기호황의 여파로 나타난 제국주의의 문제들, 제국주의화 된 세계에서 투쟁의 복잡다단함, 스탈린주의 팽창의 자체적 영향, 피억압자 운동의 융성 등 이 모든 것이 재구축된 강령에 망라되어야 한다.
이 과제는 혁명의 연속성이 결딴나지 않았다면 훨씬 더 쉬웠을 것이다. 1950년대에 트로츠키의 추종자들이 그의 강령을 재구축했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어려움은 그 대부분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 재구축은 가능했다. 호황이 상대적인 사회적 평화를 가져온 제국주의 나라들에서 전략적 후퇴가 필요한 것으로 판명될 지도 모른다는 트로츠키의 경고가 만약 있었다면, 그것은 다음 세대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을 경계시키고 고무시켰을 것이다. 그것은 호황과 혁명가들의 고립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그들이 후퇴하여 더 낮은 수준의 계급투쟁에 대처할 -- 그러나 혁명적 방식으로 -- 수 있도록 고무시켰을 것이다. 후퇴가 수정을 뜻할 필요는 없다. 이 후퇴가 자본주의 호황에 직면하여 최소강령으로 되돌아가는 후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후퇴는 노동조합 내부에서 개량주의 관료에 대당하는 운동을 구축하는 과제에 주목했을 것이다. 그 후퇴는 평조합원 운동 전술 -- 노동조합에서 통일전선의 혁명적 사용 --을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자본가들에게서 새로운 성과물을 거두어들일 모든 기회를 거머쥐고서 자본가들의 현장 장악력을 잠식해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고, 노동운동 내부에서 자본의 부관 역할을 하는 관료들의 능력을 약화시켜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할 수 있었음에도 <<이행강령>>의 “독자적 전투조직” 요구는 사문화되어버렸다.
제국주의 심장부의 경우, 노동조합에 대한 정책을 정식화하여 ‘전략적 후퇴’를 실행해냈어야 함에도 이를 하지 못한 것은, 개량주의의 부활에 대처할 수 있도록 강령을 재구축했어야 함에도 이를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행강령>>은 매우 일반적인 수준에서 개량주의 -- 사회민주주의적 개량주의와 스탈린주의적 개량주의 둘 다 -- 를 다루고 있다. 트로츠키는 개량주의가 이미 조종을 울렸다고 굳게 믿었다. 그는 개량주의에 대한 전술을 상세하게 반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전후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서독에서 개량주의는 자본주의의 안정화를 용이하게 해주는 데서 긴요한 역할을 했다. 개량주의는 자본주의와 함께 자신을 구해냈다. 개량주의에 대한 <<이행강령>>의 일반적인 폭로 ․ 탄핵 대신에 통일전선 전술을 활용할 행동강령이 필요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유럽에서 제4 인터내셔널의 파편 조직들은 좌파 개량주의의 모든 흐름이 개량주의 전체가 해체되고 있다는 트로츠키의 예측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보는 것에 만족했다. 전술의 수준에서는 모든 파편 조직들이 --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 좌파 개량주의에 투항하여 그들을 중도주의라면서 환호로 맞이하거나 아니면 스스로가 그들의 좌익으로 동화되어버렸다.
이와 같이 강령을 발전시키지 못함으로써 제4 인터내셔널에 기원을 두고 있는 중도주의 그룹들은 불가피하게 무장해제 될 수밖에 없었다. 1961년 벨기에와 1968년 프랑스에서 이행 방법을 버리거나 왜곡시킨 대가는 노동조합 관료집단에 순응하는 경향으로 나타나거나 또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 관료집단에 대한 노동자들의 환상을 자생적으로 극복할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그저 노동자 투쟁의 꽁무니를 좇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같은 경향들이 피억압자(여성, 흑인, 동성애자) 운동들이 발전했을 때도 모습을 나타냈다. 중도주의자들은 <<이행강령>>에 그 어떤 진실된 준거점도 두지 않고서, 그리고 <<이행강령>>의 방법들에 눈을 감고서 청산주의 또는 경제주의를 실천했다.
반(半)식민지에서는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운동이 떠오르는 것과 관련하여 강령의 발전이 요구되었다. 1952년의 볼리비아가 그 검증사례였다.65) 소비에트 문제, 노동자 ․ 농민 정부 문제, 노동자 통제 문제, 민주주의적 요구와 이행요구의 관계 등이 정확하게 정리될 수 있었을 계기였다. 그러나 트로츠키주의의 전략 ․ 전술은 트로츠키의 경솔한 아류들에 의해 마구잡이로 폐기되었다. 강령은 풍부해지기는커녕 무시되었다.
지도력의 위기는 20세기 후반부에 더 한층 심화되고 있다. 제4 인터내셔널의 붕괴는, 중도주의가 개량주의와 단절하는 노동자들에게 주요 대안으로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혁명적 공산주의 세력은 극소수파이다. 혁명적 공산주의 세력이 오늘 주로 비판의 무기를 가지고 싸워야 한다는 것은 진실이다. 이 단계를 넘어서고 장애물을 극복함에 있어서 혁명적 공산주의 세력이 한 가지 긴요한 무기를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트로츠키의 혁명적 방법이다. <<이행강령>>에는 제국주의가 빠져들고 있는 새로운 사회적 ․ 경제적 위기의 시기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가 이 강령을 재구축하는 데 필요한 모든 해답이 간직되어 있다. 중도주의가 트로츠키주의의 진정한 방법과 강령을 덮어 싸고 있는 그 가리개를 벗겨냄으로써 우리는 모든 취약점을 메울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기간부대를 준비시키고 계급투쟁에 우리 자신을 뿌리내리며 경험을 쌓아나갈 수 있다. 우리는 앞서 나온 각각의 맑스주의 강령, 특히 <<이행강령>>의 어깨 위에서 확신을 가지고 전진할 수 있고 새로운 강령을 생산해 낼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리도 절박하게 필요한 새로운 인터내셔널과 새로운 당을 건설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데서 우리는 트로츠키의 다음과 같은 말에 유념한다.
“강령의 의미는 당의 의미이다. ... 그렇다면 당은 무엇인가? 무엇에 당의 응집력이 존재하는가? 이 응집력은 사건과 임무에 대한 공통의 이해이다. 이 공통의 이해가 바로 당의 강령이다. 미개인이나 현대의 노동자나 모두 도구 없이는 일할 수가 없다. 당에서는 강령이 바로 이런 도구이다.”66)
이 같은 강령을 가진다면 우리는 자본주의를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처넣을 전략으로 노동자계급을 무장시킬 수 있다.
주
1. Leon Trotsky, The Death Agony of Capitalism and the Tasks of the Fourth International (이하 TP), (New York 1977). [풀무질출판사의 <<사회혁명을 위한 이행기강령>>으로 번역되어 있음]
2. 같은 책, p111.
3. Sam Bornstein and Al Richardson, Against the Stream, (London 1986) p183.
4. Leon Trotsky, The Crisis in the French Section, (New York 1977) p119.
5. Leon Trotsky, The Struggle Against Fascism in Germany, (Harmondsworth 1975) p40.[풀무질의 <<독일에서의 반파시즘 투쟁>>으로 번역되어 있음>>]
6. Leon Trotsky, Whither France?, (London 1974) p50. [풀무질의 <<프랑스 인민전선 비판>>에 번역되어 있음]
7. Leon Trotsky, TP, p172.
8. Leon Trotsky, Writings 1937-38 (이하 W 37-38), (New York 1976) p284.
9. Leon Trotsky, W 38-39, (New York 1974) p232.
10. Leon Trotsky, W 39-40, (New York 1973) p159.
11. Leon Trotsky, TP, p99.
12. Leon Trotsky, W 39-40, p291.
13. Leon Trotsky, W 38-39, p341.
14. Leon Trotsky, TP, p112.
15. Leon Trotsky, W 37-38, pp438-39.
16. 이러한 방향감 상실이 미친 효과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주고 있는 글로는 다음을 보시오. Workers Power/Irish Workers Group, The Death Agony of the Fourth International and the Tasks of Trotskyists Today, (London 1983).
17. James P Cannon, The Struggle for Socialism in the American Century, (New York 1977) p256.
18. 같은 책, p263.
19. 만델과 파블로는 피에르 프랑크와 함께 당시 파리에 근거지를 둔 국제서기국 성원이었다.
20. ‘The World Situation and Tasks of the Fourth International’, Fourth International , June 1948 (New York).
21. James P Cannon, 위의 책t, pp276-77.
22. Mark Hoskisson, ‘Programme in the Imperialist Epoch’, Permanent Revolution No 6 (London 1987)을 보시오.
23. James P Cannon, 위의 책, p298.
24. Duncan Hallas, ‘Against the Stream’, International Socialism 1:53, (London 1972) p39.
25. John Molyneux, Leon Trotsky’s Theory of Revolution, (Brighton 1981) p179.
26. Chris Bambery, ‘The Politics of James P Cannon’, International Socialism 2:36 (London 1987) p77.
27. Leon Trotsky, TP, p173.
28. 같은 책, p111.
29. John Molyneux, 위의 책, p185.
30. Leon Trotsky, On France, (New York 1979) p200. [풀무질의 <<프랑스 인민전선 비판>>에 번역되어 있음]
31. Leon Trotsky, TP, pp103-04.
32. ‘The Yugoslav Affair’, Fourth International December 1948, (New York) p238.
33. Leon Trotsky, TP, p113.
34. Documents of the Fourth International, (New York 1973) p348.
35. Leon Trotsky, TP, pp113-14 (강조 표시는 우리의 것임).
36. Documents of the Fourth International, p161 (강조 표시는 우리의 것임).
37. Leon Trotsky, TP, p101.
38. Workers Power, Where Next for the NUM?, (London 1985).
39. Leon Trotsky, TP, p114.
40. Duncan Hallas, Trotsky’s Marxism, (London 1979) p104.
41. Leon Trotsky, The Spanish Revolution, (New York 1973) p80.
42. Leon Trotsky, TP, p135.
43. 같은 책, p102.
44. 같은 책, p129.
45. 같은 책, p122.
46. 같은 책, pp136-37.
47. 같은 책, p137.
48. Workers Socialist League, Trotskyism Today No4, p5 (London 1979).
49. Leon Trotsky, Whither France?, p146.
50. 같은 책, p115 (강조 표시는 우리의 것임).
51. John Molyneux, 위의 책, p152.
52. Leon Trotsky, TP, p115.
53. 같은 책, p115.
54. 같은 책, p157.
55. 같은 책, p176.
56. V. I. Lenin, Collected Works Vol.36, p172 (Moscow 1966).
57. Leon Trotsky, TP, pp159-60.
58. 같은 책, p111.
59. 같은 책, p137.
60. Leon Trotsky, The Spanish Revolution, p137.
61. Leon Trotsky, TP, p137.
62. Leon Trotsky, W 37-38, p343.
63. Leon Trotsky, TP, p173.
64. 같은 책, p173.
65. Workers Power, Permanent Revolution No2, (London 1984)를 보시오.
66. Leon Trotsky, TP,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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