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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의 통제방식에 대한 날카로운 폭로,
조지 오웰의 ≪1984년≫
꽤 오랜 동안 책장에 꽂혀 있던 낡은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읽기 시작했던 조지 오웰의 ≪1984년≫은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마지막 한 페이지를 덮는 그 순간까지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책을 읽던 중 잠시 잠이 들었던 그 때조차 나는 악몽을 꿔야 했다. 잠에서 깨어나 어떤 꿈을 꿨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그 느낌은 이 책 전반에 흐르는 ‘감시와 통제의 올가미’ 같은 것이었다.
이 책에서는 회색빛이 떠오른다. 그려지고 있는 소설의 배경은 낙후되고 지저분하면서도 칙칙한 느낌의 도시다.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생명력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 책의 주인공인 윈스턴조차도 그 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전개과정이 밋밋하거나 박진감 없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독자를 초긴장상태로 몰아가면서 책에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조지 오웰이 폭로하고자 했던 ‘스탈린주의 관료체제’가 너무도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러시아혁명의 진정한 성격이 퇴색되고 변질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났던 사건들, 즉 생산량에 대한 조작,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왜곡, 정치-사상의 자유에 대한 박탈, 날조된 무오류의 신화를 통한 당과 지도자의 신격화, 언어조작을 통한 우민화 등은 토니 클리프의 ≪소련국가자본주의≫를 읽고 있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이뿐 아니다. 송수신 기능을 갖고 있는 텔레스크린을 통한 감시는 잠자는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직장과 거리에서 그리고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웃들 내에서조차 각자의 생각을 나눌 수 없는 전사회적인 감시체제는 소름이 끼칠 정도다.
이 책에 나오는 주요 인물은 주인공인 윈스턴, 그의 애인이었던 줄리아, 이웃인 파슨스, 윈스턴이 착각하며 신뢰했던 오브라이언이다. 각각의 인물들을 분석해보면 이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소재가 되었던 시대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이들 모두는 당원이라는 공통의 지위를 갖고 있지만 오브라이언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외부 당원으로 일명 ‘하급관료’다.
주인공 윈스턴은 혁명 이전(과거)의 삶과 혁명 이후(현재)의 삶 사이에서 혼란을 겪게 된다. 그는 어렴풋이 떠오르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 어릴 적 기억들에 대해 추적해보려 하지만 그 기억은 단편적이고 분절적이며 파편적이다. 어머니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자신이 어떻게 여기에 존재하는지 그 모든 기억을 온전하게 되살릴 수 없다. 당이 모든 이들의 과거 기억까지도 모두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무의식상태에 빠지고 그 다음에는 다시 자신이 만들어놓은 최면 행위에 대해서까지 무의식이 되어가는 ‘이중사고’를 통해 인간의 사고는 당에 의해 지배당한다. 또한 언어가 사고력을 발전시키는 수단이라면 당은 ‘신종 언어’를 개발해 모든 출판물과 방송, 개개인의 대화에서까지 사용함으로써 인간의 사고를 통제한다.
여기서 당은 스스로 확신을 가진 능동적 주체들의 자발적 결합체가 아니다. 그 대신 당은 소수 지배자들이 강요하는 의식에 피동적으로 적응하면서 끌려다니는 사람들의 강요된 결합체일 뿐이다. 심지어 당원들은 집단 최면상태로까지 빠져들어, 스스로 사고하기를 거부한 채 오직 위로부터 하달되는 명령과 지시를 맹목적으로 받아안고 집행하면서 그것이 마치 자신의 확신에 의한 것처럼 착각하는 상태에까지 이른다.
윈스턴은 매일매일, 시간 시간마다 당의 모든 예언이 틀리지 않도록 기록을 조작하는 ‘진리부’에서 일을 한다. 당의 무오류성을 위해, 과거의 기록은 ‘기억통’ 속으로 사라지고 온갖 조작이 행해진다. 그러나 윈스턴은 “과거는 단지 존재할 뿐이며 결코 창조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것은 반역이자 사상죄에 해당한다. 그러나 윈스턴은 “미래를 향해, 혹은 과거를 향해, 사고가 자유롭고 인간의 개성이 서로 다를 수 있으며, 고독하지 않을 시대를 향해, 진실이 존재하고 한 번 이루어진 객관적 사실은 누구도 조작할 수 없는 시대를 향해” 자신을 내던지려 한다.
주인공 윈스턴과 마찬가지로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삶을 살고 있지만, 윈스턴과는 달리 현 체제가 요구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인간형으로 파슨스가 있다. 그는 윈스턴의 이웃이자 동료로 등장하는데 윈스턴이 가장 경멸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파슨스는 무식하고 단순하며 맹목적으로 당에 충성하는 인간이다. 항상 “대형(빅 브러더) 만세!”를 외치며 자신의 자식들이 스파이단 활동을 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자랑스러워했던 자식들의 고발로 (국정원과 같은) ‘애정부’에 붙잡혀온다. 잠꼬대로 “대형을 타도하라!”고 외쳤던 것이다. 이것은 그의 잠재의식 속에 현 체제에 대한 거부가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지 그는 현 체제를 거역하는 것이 가져올 거대한 충격을 견딜 수 없기에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것은 지배계급 정당이 아무리 인간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통제하려 해도 불가능한 부분이 남게 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는 “더 큰 죄를 짓기 전에 체포된 것이 기쁘다”며 또다시 비굴한 모습으로 생명을 구걸한다. 그는 그렇게 사라진다.
줄리아, 그녀는 윈스턴의 애인이다. 윈스턴은 식당에서나 직장에서 그녀를 볼 때마다 그녀가 사상경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감시하는 듯한 눈빛이며 허리에 찬 <청년반성동맹>의 휘장은 가장 철저한 당원임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갖게 만들며, 윈스턴은 그녀를 죽이고 싶은 충동까지 느낀다. 특히 <증오> 시간에 반실성한 듯 증오를 해대는 그녀의 모습은 가장 충실한 당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당을 혐오하면서도 당에 충실한 것처럼 자신을 위장해서 생존하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당의 규율을 깨기 위해, 당을 혐오하는 사람들과 연애를 즐긴다. 그녀는 자신이 하는 행동이 얼마나 큰 반동죄에 해당되는지 알지만, 철저하게 이중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당의 숙청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윈스턴에게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은밀하게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그 둘은 사랑에 빠지고 서로는 서로를 위해 더 많은 희생을 치를 각오를 한다. 하지만 둘의 각오는 애정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순간 산산이 파괴된다. 서로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나한테 그러지 마세요. 윈스턴에게(줄리아에게) 그러세요!”라고 외치며 생명을 구걸한다. 서로를 배신한 그 둘의 사랑은 거기에서 멈춰버릴 수밖에 없다. 애정부에서 나와 다시 서로 만났을 때 그들은 더 이상 가까워질 수도 없었으며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 책에서 줄리아는 역사적 관점이 결여된 무정부주의적 인물로 그려진다. 억압의 기구인 당을 타도하고 해방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분투할 필요성을 그녀는 느끼지 못한다. 그녀에게는 그러한 역사적 책무라는 것이 없다. 오직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또는 자신이 끌리는 대로 행동하면 된다. 그녀는 혁명 이후에 자랐기 때문에 과거에 어떤 활동들이 있었으며 한계와 가능성은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그녀는 당이 썩어있고 관료적인 기구임을 알면서도 독립된 저항활동을 해야 한다거나 그러한 활동이 있을 수 있다는 상상을 할 수도 없었고, 그것이 당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기껏 반항해볼 수 있는 방법은 무정부적인 테러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골드슈타인의 영향을 받은 <형제단>에 가입하기로 마음먹는다. 골드슈타인은 당의 지도급 인물 중 한 사람으로 독재자 ‘대형’과 거의 비슷한 지도적 지위에 있었던 인물로, 반혁명 활동에 가담하여 사형을 언도받았지만 탈출하여 종적을 감춘 변절자요 반동으로 <2분간 증오>에 항상 등장한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그것만이 희망이라 생각하고 실체도 모르는 형제단에 가입하려 한다.
그들은 형제단에 가입하기 위해서, 네 번째 주요 인물인 오브라이언을 찾게 된다. 윈스턴은 오브라이언에 대해 막연한 신뢰를 보낸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할 사람이 오브라이언 밖에 없다고 굳게 믿고, 그가 형제단과 연계되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줄리아와 윈스턴은 오브라이언의 집을 방문한다. 그러나 그는 ‘내부당원’으로, 하급관료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누리고 있는 고급관료였다. 여러 명의 하인을 부리고 진짜 포도주를 먹으며 비싼 담배를 피우고, 화려하고 웅장한 집에서 살고 있다.
그 집에 도달한 순간 윈스턴은 오브라이언의 집에 온 것이 잘못이었음을 직감하지만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을 또다시 착각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이 자신을 형제단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자신을 존경하고 숭배하도록 만든다. 오브라이언은 가장 철저한 지배계급을 대표한다. 그는 오래 전부터 윈스턴을 관찰해왔고 그의 심리까지 조정해 이 자리에 오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끝내 윈스턴의 뇌까지 지배한다. “오랫동안 소망해 오던 총알이 그의 머리에 박혔다. 그는 대형의 커다란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가 저 검은 수염 속에 숨은 미소의 의미를 알아내는 데 40년이 걸렸다. 오 잔인한, 불필요한 오해여! 오, 저 사랑이 가득한 품안을 떠나 고집부리며 스스로 취해온 유적이여!” 이렇게 윈스턴은 독재자 대형(빅 브러더)을 사랑하며 비극적으로 죽어간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절망감에 빠져든다. 유일한 희망처럼 보였던 윈스턴조차 자신의 생각을 지배당하고 죽임을 당한다. 스스로 ‘제국주의의 스파이’라고 거짓 고백을 하면서 죽어갔던 러시아의 부하린을 연상케 한다. 이처럼 이 책은 스탈린주의 관료체제의 모습을 극적으로 소설화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려진 삶은 당시의 러시아 관료주의 국가, 그리고 지금의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만은 아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이 갖는 거대한 문제제기는 단지 그 사회만을 겨냥하고 있지 않다. 이 소설은 영국과 미국, 한국을 포함해 자본주의 사회 또한 겨냥한다. 자본가계급은 방송과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유포하고 있고, 대중은 은연중에 파고 들어온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스스로 내면화하여 받아들이기도 한다. 또한 얼핏 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기도 하지만, 파슨스처럼 자기최면을 걸어 자본주의적 삶을 정당화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이런 노동자의 비참한 상태는 소설 곳곳에서 풍자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 소설은 노동자의 반란의 가능성도 다룬다. 가령 윈스턴은 현 체제를 뒤엎을 유일한 계급은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개별화되어 있고 파편화되어 있다. 부분적으로 태업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바로 진압되거나 무참히 공격당하고 사라진다. 그 힘은 증폭되지 못한 채 잠재된 상태로 계속된다. 소설은 단지 거기까지만 노동자의 모습을 그린다.
조지 오웰은 어떤 과장된 희망이나 쓸데없는 믿음, 대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주 냉혹하게 현재의 상황을 폭로하고 그것을 통해 진지한 사람들에게 경고할 뿐이다. 그의 소설에서 해결책은 어디에도 없다. 이것은 조지 오웰의≪1984년≫이 놓여 있던 암울한 시대상황을 반영한다. 당시에는 한편으로는 러시아 스탈린주의 체제가, 다른 한편으로는 통상적인 서구 자본주의 체제가 대중을 우롱하고 각자의 방식대로 대중의 의식을 통제하면서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반면 이에 맞선 노동자의 저항은 침체되어 있고,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은 대단히 약했다.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투쟁하고자 하는 세력들도 갖가지 한계 때문에 붕괴되고 있었고, 특히 공산당들은 스탈린주의 지배체제(가령 러시아, 북한과 같은 지배체제)를 사회주의로 간주하면서 이 지배체제의 외무부처럼 기능하고 있었다. 심지어 스탈린주의에 맞선 반역의 기치를 들었던 제4인터내셔널의 일부 지부들까지도 (독재자 대형을 사랑하며 비극적으로 죽어갔던 윈스턴처럼) 2차 세계대전 와중에 러시아 스탈린체제를 지지하면서 비참한 붕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의 어두운 회색 톤은 결국 어두운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그리고 아무런 대안도 갖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었던 당시의 비극적 모습을 반영했다. 그러나 객관적 현실에 대한 가장 사실적이고 날카로운 묘사는 어두운 회색 조명 속에서도 무언가 중요한 것을 말하기 마련이다. 이 책을 덮는 순간, 조지 오웰의 경고가 “당신이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어 들리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노동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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