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제냐 내각제냐? 따위가 아니라, 노동자권력이냐 자본가권력이냐?"라는 질문에 투쟁으로
화답하는 것이 개헌론을 바라보는 노동자계급의 관점이다.
자본가 당들의 개헌론에 맞서 노동자계급이 나아갈 길
17일 김형오 국회의장이 작심하고 꺼내들었던 개헌론 카드가 지금 당장에는 관심을 불러 모으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악법 등을 둘러싼 대치상황으로 국회 자체가 멈춰버린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야를 막론하고 ‘시기상조’를 이야기할 뿐, 개헌론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시피 하다. 개헌을 추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래한국헌법연구회는 한나라당, 민주당,
유선진당 의원들이 공동대표를 맡았으며, 절반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참여해서 전국 순회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무엇을 위한 헌법 개정인가?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말한다. 권력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집중돼서 문제라는 것이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급변하는 시대의 요구에 발맞춰 새로운 헌법은 권력을 분산하는 분권헌법, 새로운 국가비전을 제시하는 선진헌법, 국회가 중심이 되는 국민통합 헌법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말마따나 시대는 급변하고 있다. 새로운 국가비전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러나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 권력을 여야 자본가 정치꾼들이 나눠 갖도록 하는 권력 분산조치로 새로운 국가비전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눈 가리로 아웅일 뿐이다. ‘급변하는 시대’의 실체는 영원히 번영할 것 같던 자본주의가 하염없이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빅3’로 대표되는 미국경제의 척추가 부러지고 수백 개의 은행들이 파산했다. 미국과 한국에서 볼 수 있듯이 자본가정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막대한 재정지출을 통해서 간신히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대신해 미국식 대통령 4년 중임제, 내각제,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따위로 바꾼다고 해서 이러한 체제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개헌론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그것은 체제위기와 손실을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하기 위해서는 자본가 정치세력이 단결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권력 독점적인 대통령제는 소모적이라는 것이다. 자본가 정치세력들이 권력을 분점하면서 타협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들에게 통일적으로 확실히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자본가들은 노동3권을 포함해 가장 기본적인 노동자 권리에 대한 법적 공격을 줄기차게 요구해왔고, 정부는 개헌 여부와 무관하게 사실상 노동자의 단결권과 파업권을 봉쇄하는 조치를 강행해왔다. 개헌은 노동자에게 모든 손실을 전가해 자본가들의 배를 채워주기 위한 조항들이 자본가 정당들 사이의 합의를 통해 더욱 일사천리로 관철되도록 만들 것이다.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
결국 개헌론의 문제는 지금의 체제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다.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지도력의 문제다. 자본가들 및 그들에게 봉사하는 정부와 정당들은 이 위기를 자본가 정치세력들 사이의 단결이란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 개헌을 통해 ‘자본가계급 지도체제’를 개편하고, 통일된 힘으로 노동자들에게 죽음의 고통을 전가함으로써 자본가들의 생명줄을 지키는 것이 저들의 대안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 위기를 혁명적 방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자본가 정당들 사이의 단결에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단결로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즉 대통령제냐 내각제냐 따위가 아니라, “노동자권력이냐 자본가권력이냐”,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질문에 투쟁으로 답하는 것이 개헌론을 바라보는 노동자계급의 태도이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아직 노동자권력을 향한 투쟁,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에 나설 채비를 갖추지 못했다. 자본가들의 반동적이고 관료적인 지도력이 나날이 노동자의 목을 조이고 있는 상황, 따라서 하루빨리 저들의 낡은 지도력을 밀어내고 혁명적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시기에 그 주체인 노동자들의 준비가 지체되고 있다. 이 지체가 계속된다면 현재의 위기는 노동자계급이 재앙을 뒤집어쓰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민주당 2중대 노선을 넘어 모든 노동자의 단결투쟁을 위한 공동전선으로, 사회주의 조직들의 분산을 넘어 단일한 혁명적 사회주의 당 건설로 나아가는 것이 저들의 개헌론에 대항하는 우리의 방향이다.
오연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