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노동자연합
연합소개 문서고 주장과 쟁점 투쟁의 현장
 
연도별 검색
2010년
2009년
2008년
항목별 검색
정치방침
정치노선
정세분석
당면투쟁
기획번역
역사탐구
이론연구
추천자료
기타

Category
기획번역 : 5호_[특집번역] 오늘날 중국의 노동자계급 (4) - 중국의 위기
| 2009·11·05 10:25
 FILE 
  • 5호74_중국의위기.hwp (62.0 KB), Down : 126
  • [특집번역] 오늘날 중국의 노동자계급 (4)

    중국의 위기


    <WILDCAT> 83호(2009년 봄)

    위기에 빠진 중국 : 공포에 빠진 이유?

    2008년 12월 <파이낸셜 타임스>는 “1989년 사회주의 동구권의 붕괴와 톈안먼의 사회적 격동에서 살아남은 중국공산당이 만일 2009년 세계 경제위기의 파장 속에서 붕괴하게 된다면 얼마나 역사의 아이러니가 될 것인가” 하고 말했다.1) 다른 논평가는 노동자·농민·실업자들의 사회적 폭발 가능성에 마주하고 있는 중국의 정치인들이 이미 “공포에 빠진 상태”라고 말했다.2) 그러나 문제는 단지 중국과 공산당의 지배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세계 경제위기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사회적 전복이 전 세계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끝장낼 수 있는 세계 노동계급의 형성으로 귀결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이 무엇이든, 중국에서의 계급투쟁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중국은 13억 인구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이며, 현재 세 번째로 큰 경제규모를 갖고 있다. 1980~90년대의 개방과 산업화를 통해 중국은 “세계의 조립라인”이 되었다. 생산과 유통의 지구적 사슬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은 투자와 신용에서 “글로벌 플레이어”로 행동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에 걸친 산업화의 거대한 과정은 수억 명을 농촌으로부터 도시와 경제특구로 밀어냄으로써, 공장노동자·건설노동자·가정부 등으로 일하는 민공(民工)을 만들어 냈다. 2003년 이후 민공의 투쟁이 탄력을 받기 시작하면서 공산당 정권은 압력을 받게 되었다. 이번 세계 경제위기는 다시 한 번 중국의 사회적 관계를 뒤집어놓고 있는데, 공산당은 그 파장을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만일 그에 실패한다면 중국의 정권과 자본지배가 약화될 수 있는데, 심지어 해체될 수도 있다. 이는 나머지 세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그리고 지금 중국에서 경제위기와 계급투쟁이 갖는 상호관계를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도시에서 펼쳐지는 상황에, 특히 민공에게 벌어지는 상황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경제위기와 계급투쟁

    중국의 부상, 산업화, 그리고 수억 명의 도시이주는 적어도 두 번의 자본주의 경제위기와 계급투쟁이 낳은 결과물이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산업 중심지인 유럽과 미국 등에서 일련의 투쟁이 있은 뒤에, 자본은 전 세계를 통틀어 더 수익성 있는 투자기회를 찾게 되었다. 자본은 이른바 신흥 개발도상국들에 투자했고, 그곳에서 “값싼” 노동력을 착취했다. 그런데 1980년대에 이르자, 자본은 더 높은 임금과 더 나은 노동조건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강력한 투쟁에 직면하게 되었다. 브라질과 한국은 가장 대표적인 경우였다. 1990년대 초반 자본은 다시 “값싼” 노동력을 찾게 되었는데, 또 다른 “공간적 해법”을 통해 신흥 개발도상국의 노동자 투쟁을 피하려 함이었다.3) 그로부터 중국의 민공이 등장하게 되었다.

    마침 그 때, 중국 정권은 해외 자본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서 있었다. 1980년대 말, 중국은 일련의 투쟁들을 겪었다.4) 도시 노동계급은 1980년대 초반의 개혁으로부터 거의 이익을 보지 못했다. 국유복합기업의 구조조정과 노동강도 강화, 실업, 그리고 물가상승은 도시 노동계급을 심하게 타격했으며, 그로부터 분노와 파업들이 뒤따랐다. 이는 베이징의 학생들이 시작하고 주도하였으며 분노한 도시 주민들이 지지하고 뒷받침했던 1989년 톈안먼 운동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중국의 많은 도시에서 봉기와 시위가 일어났고, 자주적인 노동자조직을 만들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정권은 운동을 살육하기 위해 군대를 투입했다. 동시에 정권은 개혁이 실질적인 경제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며, 위기가 더 깊어지면 새로운 사회적 폭발을 낳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 결과 1992년 이후 정권은 해외투자와 기술수입을 위해 국경을 점점 더 개방하고, 새로운 경제특구를 만들었으며, 사적 경제를 지원하고, 산업화 진전 과정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도시 노동계급과 농민 그리고 새로 등장한 민공은 공히 경찰의 감시 아래 묶여 있었다.5) 다른 지역으로부터, 특히 “호랑이 나라들”과 동남아시아로부터 소비재 산업이 중국으로 이동했다. “세계의 조립라인”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계급형성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기존 도시 노동계급의 투쟁이었다. 산업신흥지대에서 산업화가 진행되는 동안, 기존 국유산업들이 위치한 산업사양지대에서는 엄청난 자본이 사라지면서 한 지역 전체가 위기에 빠져드는 일이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다. 노동자들은 ‘사회주의’ 산업복합체의 파괴에 맞서 임금과 사회보장을 요구하며 파업, 공장점거, 봉기를 통해 싸웠다.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을 중단시킬 수는 없었으며, 단지 그 속도를 늦출 수 있을 뿐이었다. 전체 노동자의 40%에 이르는 5천만 명이 구조조정과 대량 정리해고 속에서 일자리를 잃었다. 그들 가운데 다수는 오늘날 가난한 도시 프롤레타리아트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경제호황과 농촌 출신 젊은이들의 거대한 흐름이 프롤레타리아가 된 과정은 민공이라는 새로운 노동계급의 형성을 낳았다. 그들의 수는 꾸준히 늘어나서, 오늘날 대략 1억 5천만에서 2억 명에 이르고 있다. 호구제도 때문에 민공은 도시에 영구 정착하지 못한 채, 도시에 임시로 거주하고 노동하는 것만 허용받고 있다. 유럽연합 안에서 비유럽출신 이주자들이 놓인 상황과 다소 비슷하다.

    2000년대 들어서 민공의 두 번째 세대가 도시로 밀려들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도시의 다른 거주자들과 비교하면서 (이전 첫 세대들과 달리) 대개 농촌으로 돌아가지 않고 도시에 영구 정착하기를 원한다. 자신의 미래를 도시에서 그리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경작권을 갖고 있는 고향의 한 뙈기 땅을 빌려주거나 팔고 있다.6)

    산업화 추진이 시작되고 대략 10년이 지난 2003년부터 지금까지, 민공의 투쟁은 꾸준히 그 수가 늘어났다. 민공의 투쟁은 끔찍한 노동조건의 개선과 더 높은 임금, 성장의 과실에서 자신들의 몫을 요구했다. 민공의 두 번째 세대는 탄원·집회·태업·파업·시위·봉기를 조직했다. 그들은 수출지역에서 (해외자본이든 중국자본이든) 공장 사장들에게 압력을 가하여 더 높은 임금을 따냈다.

    겹쳐지는 과정들

    신용의 긴축, 미국의 소비 위축, 주문 감소, 세계무역 급감 등 현 위기의 조짐들은 정리해고와 사회적 대립을 낳았으며, 그 이전에 시작된 발전을 방해했다. 2006년 이후 미국 달러 대비 중국 위안화 환율의 점진적인 상승과 제조업 임금의 증가 그리고 에너지·원자재·식량의 높은 수요에 따른 가격상승은 생산비용을 높이면서 이윤을 압박하게 되었다. 또한 낮은 임금과 나중에 물가상승에 대한 불만은 민공의 투쟁이 빠르게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정기적으로 올리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새로운 “공간적 해법”의 첫 시도가 이미 있었다. 비용과 임금의 상승에 대응하여 2007년부터 점점 더 많은 공장들이 폐쇄되고 이동했다. 보기를 들어 섬유를 비롯한 소비재 산업의 일부가 중국의 내륙 오지나 베트남으로 갔다. (그 곳에서 공장노동자 투쟁의 수도 늘었다.)

    한편 자본가들의 중국 노동법에 대한 체계적인 무시는 점점 더 중국공산당 정권의 정당성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는 몇 년 동안 파업에 대한 국가의 직접 개입, 고충처리와 중재 시스템 구축, 노동법의 탄력적인 적용, 국가노조 공후이(工会)에 의한 민공 조직화 등을 통해 민공을 둘러싼 사회적 대립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2003년부터 정부는 노동자들과 농민들을 “사회주의 시장경제” 건설로 동원하기 위해 “조화사회”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별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노동자들의 처지는 너무 불안정하고, 그들의 기대는 너무 크며, 다수가 더 이상 빵 부스러기를 얻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2008년 1월 노동계약법을 도입했는데, 이는 1995년 노동법을 몇 가지 제재 조항을 달아 보충한 것이었다. 이 법이 시행되자, 저임금 부문에 있는 중국기업들과 해외기업들은 정규직 전환을 피하려고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거나 공장의 폐쇄와 이동을 선언했다. 많은 노동자들은 새로운 법적 틀을 활용하고자 했으며 노동계약과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주강삼각주에서 온 활동가들은 2008년 초 새 법을 둘러싸고 대립이 늘어났다고 보고했다.7)

    지금의 위기

    2008년 여름까지도 중국의 지배계급은 세계 경제위기가 중국을 강타하지는 않을 것이며 중국경제는 자체 성장 동력을 충분히 갖고 있어 미국의 불황으로부터 영향을 입지 않을 것이라고 여전히 생각했다.8) 역설적이게도, 경제위기가 첫 번째 심각한 국면을 지나면서 서구의 자본 옹호자들은 “중국식 해법”, 즉 중국의 외환보유고와 중국식 경제기적의 힘을 사용하는 것에 기대를 보냈다.

    그러나 중국의 독자적인 역동적 성장이라는 환상과 중국(그리고 브라질·러시아·인도 등 다른 BRICs 국가들)에 대한 서방의 기대는 빠르게 부서졌다. 미국, 유럽연합, 일본, “호랑이 나라들”을 주된 무역상대로 하면서 수출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제조업 부문 때문에 중국 경제는 세계 경제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9)

    이는 2008년 가을 경제성장 급감, 제조업 성장 급감, 수출 감소, 투자 감소, 에너지 소비 감소, 국가세입 감소 등으로 확증되었다. 해마다 평균 10% 성장률로 15년 동안 호황을 거듭한 뒤에 벌어진 일이다.10) 일본,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베트남 또한 경제위기로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이들 나라들과의 무역이 붕괴되었다. 게다가 2008년 가을 중국의 부동산 거품이 터졌다.

    중국공산당 내부는 경제위기에 대한 입장이 일관되게 정리되어 있지 않다. 새로운 사회적 혼란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경제를 현대화하기 위해 이번 위기를 활용하고자 하는 세력(광둥과 상하이 같은 부유한 지방정부들)과 사회적 상황이 평온하게 유지되기를 희망하면서 값싼 소비재를 위한 수출 공장이라는 중국식 모델을 지키고자 하는 세력(중앙정부) 사이에서 대립이 되풀이하여 솟구치고 있다.11) 2008년 가을 위기의 조짐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자, 어떤 이들은 이를 하나의 기회로 보았다. 광둥성 지방정부는 이번 위기가 주강삼각주 지역의 산업 구조조정과 수준향상을 돕게 될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허약하고 작은 기업들이 폐쇄될 가능성에 대해 말했다. 광둥성 지방정부는 값싼 소비재 산업이 밖으로 더 많이 빠져나가고 대신 고도기술 산업과 자본재 산업이 확장되기를 바라고 있다.12)

    공장폐쇄와 공장이동에 대한 위협, 높은 임금과 새 노동계약법에 대한 경영자들의 불평들, 이 모든 것은 세계 경제위기가 몰아치기 전에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제 자본가들은 그 영향을 받았든 그렇지 않든 경제위기를 활용하고 있다. 자본가들은 임금을 더 낮추고, 공장을 폐쇄하거나 이동하며, 국가보조금을 받아쓰고, 노동조건을 법정기준 아래로 강제하고 있다.13)

    광저우의 고용주연합 대표는 중앙정부가 덜 엄격한 규칙을 도입함으로써 중소규모 기업들이 공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노동법의 완화에 대해 말했다.14) 그리고 사실 2009년 1월 기업가들은 2008년 노동계약법을 순순히 따르는지 감독받는 일이 거의 없었으며 법을 따르도록 강요받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보고했다.15) 한 노동자 활동가는 공장들이 살아남고 그대로 머물기를 정부가 바라고 있으며 그 때문에 작업장에서의 문제들이 무시된다고 말했다.16)

    정권은 2009년 지방정부가 최저임금을 더 올리지 못하도록 막았다. 정부는 (몇 년 동안 상당히 올랐던) 임금이 추가로 인상되는 것을 막고자 한다. 많은 대기업들은 이미 정부의 허가를 받아 임금삭감을 선언했다. 1월말 정부 대변인은 중국 기업들이 정리해고를 피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17)

    2008년 11월 주강삼각주의 활동가들과 민공들은 특히 섬유·장난감 산업에서 불안정고용과 정리해고가 심각하다고 말했다.18) 제한된 계약을 한 노동자들은 해고되었으며, 핵심 노동자들은 자리를 지켰지만 잔업을 할 수 없었고 자주 정규 노동시간마저 다 채울 수 없었다. 일부는 무기한 무급휴가를 통보받았다.19)

    얼마나 많은 정리해고가 있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민공이 농촌으로 되돌아갔는지 믿을 만한 수치가 없다. 2008년 11월 후베이(湖北)·충칭(重庆=重慶)·안후이(安徽) 같은 지방에서는 귀환자들이 밀어닥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광둥성 당국자는 귀환 물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몇몇 민공들은 농촌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전체 민공의 5~10% 정도인 것으로 얘기되었다. 2009년 1월 중순, 노동부는 1천만 명의 민공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발표했다. 2월 초순에는 그 숫자가 2천만 명으로 올라갔다.20)

    새로운 투쟁들

    2008년 늦여름 경제위기가 펼쳐지기 시작할 무렵, 더 멀리 나아간 투쟁들이 터져 나왔다. 택시기사들과 교사들의 행동은, 하나의 투쟁이 다른 투쟁을 모방하도록 자극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2008년 말과 2009년 초 주강삼각주와 양쯔강삼각주에 있는 수출산업지역에서는 노동자 집회들과 폭동들이 터져 나왔다. 과거의 사건들과 비교할 때 대립의 양상이 바뀌었다. 노동자들은 임금인상, 기숙사 개선, 노동법 준수, 식사 질 개선 같은 요구들을 그렇게 많이 떠들지 않았다. 대신 체불임금 지급, 정리해고에 대한 보상을 더 많이 앞세웠다. 건설부문 또한 시위에 나섰다. 목격자들은 2008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이전보다 더 많은 노동분쟁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국가노조 공후이(工会)의 대표마저도 중국의 노동자투쟁 건수가 세계 경제위기와 더불어 늘어났다고 인정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정확하고 믿을 만한 수치는 없다.21)

    중국공산당 정권은 경제붕괴와 사회폭발 가능성에 직면하여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했다. 중국은 비슷한 상황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경제위기 동안 지배자는 사회(농민)운동에 의해, 특히 이 운동이 지식인과 관리를 포괄하는 세력과 결합하면서, 왕좌에서 쫓겨났다. 이제 중국공산당의 지배가 이번 위기 속에서 파산할 것인지 위협받고 있다.

    대내적으로 중국 정권은 자신이 여전히 상황을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정권은 위기가 일시적인 것이라 설명하며 반년밖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업을 비롯하여 위기의 여러 결과들이 “사회 안정”을 위협하자, 정부는 그에 따른 경제적·정치적 조치들을 취하려고 한다. 노동자투쟁에 대한 세부 보도는 더 감시와 탄압을 받고 있다.22)

    대외적으로 바깥 세계를 향하여 실직한 민공들의 소요 가능성에 관한 보도가 나가는 것에 정부는 큰 신경을 쓰고 있다. 중국의 사회혼란은 다른 어느 곳에서든 지배계급들에게는 악몽이다. 미국 정부 등이 급격한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면 중국은 이 위협을 사용한다.

    투쟁이 더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는 최근 몇 주 동안 체불임금과 보상금을 둘러싼 산업 갈등에 직접 개입하고 있으며, 돈을 직접 지불하기도 했다. 많은 도시와 산업지대는 파산의 벼랑 끝에 있는 기업들을 구제하고 정리해고를 피하며 체불임금을 지불하기 위하여 특별기금을 조성했다. 몇몇 도시들에서는 민공이 도시를 떠날 경우 재정지원을 받았다. 국가는 건설부문의 붕괴를 막고 실업을 억제하며 경제성장률의 추가하락을 중단시키기 위하여 사회기반시설 프로젝트와 주택 건설 등에 투입하는 경기부양 프로그램을 짜는 데 4조 위안(중국 GDP의 15%)을 퍼부었다.23)

    해마다 8%의 성장률을 유지하는 것은, 인구증가와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주 때문에 노동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고용을 창출하는 데 필수적이다. 6% 이하의 성장률은 치명적인 것으로 여겨진다.24)

    2009년 1월말, 정부는 사회적 위기를 완화하려는 일환으로 8천 5백억 위안의 기금을 조성하여 2011년에 포괄적인 의료체계를 도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원래 이것은 2020년에 시행할 계획이었다.

    전망

    정권은 시간을 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제위기의 심화를 늦추고 만일 가능하다면 “연착륙”에 성공하기를 원한다. 이는 도시 민공의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민공의 대다수는 (특히 공장과 건설업에서 일하는 경우) 회사 기숙사에서 살고 있으며 회사 식당에서 식사한다. 대량 정리해고가 일어나면 이 노동자들은 일자리만 잃는 것이 아니라 잠자리와 먹을 곳까지 잃는다. 1월 하순 중국의 설날을 앞두고 많은 민공들은 해마다 그랬듯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온 뒤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직 불확실하다. 어떤 보도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임금이 내려갔다.25) 어떤 기업들은 일당제와 일일고용으로 돌아갔다. 만일 경제위기가 계속되어 도시에서 일을 찾지 못하면, 민공들은 호황이 끝났으며 그들의 삶이 극적으로 바뀔 것임을 깨달을 것이다. 이후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a) 민공의 두 번째 세대는 더 이상 농촌에서 살려고 하지 않거나 적어도 자신의 미래를 농촌에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그들은 도시에 머무르려고 할 것이며, 만일 실직한다면 소득과 숙식을 얻을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인데 투쟁으로 얻으려 할 가능성도 있다. 많은 거대 도시들에서 민공은 주민의 30~80%를 차지한다. 조그만 장사를 하거나 날품팔이를 하며 생존하는 수많은 도시빈민과 민공이 세력을 합칠 기회가 있을까?

    b) 민공은 여전히 한 뙈기 땅에 대한 경작권을 갖고 있는 고향의 가족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저축한 돈으로 그럭저럭 연명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민공이 도시에서 받았던 임금 없이 그 가족은 조만간 재정적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일자리도 없고 전망도 없이 빈곤과 지루함만이 있을 것이다.26) 지난 몇 년 동안, 농촌에서는 부패한 관료들, 토지 강탈, 환경오염에 맞선 많은 폭동들이 일어났다. 지금도 많은 지방에서는 작은 땅덩어리 때문에 전체 가족을 먹여 살리기에 힘겨워한다. 여전히 농촌인구는 과잉 상태에 있다. 국가가 교육과 수업료 그리고 기업체 설립을 지원하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많은 변화를 만들지는 못했다. 만일 민공이 30년에 걸친 도시화 과정을 일시적으로나마 되돌리면서 대규모로 농촌으로 돌아간다면, 이는 폭발적인 혼란을 만들어 낼 것이다.27)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이 “위험한” 수준 이하인 5~7% 성장률로 불황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중국은 또한 공장폐쇄 물결을 보게 될 것이다. 전체 수출 공장 가운데 3분의 1이 앞으로 3년 안에 폐쇄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이는 실직한 민공의 수가 올해 5천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추정한다. 그들은 1990년대 말 국유복합기업에서 정리해고 당한 도시 노동자들보다 더 젊고 더 활동적이다. 그들은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해 더 잘 그리고 더 빨리 소통할 수 있다. 또한 해마다 대학을 마치는 수백만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학생들이 중심적 역할을 했던 1989년 톈안먼 운동 이전 상황과 비슷한 것이다. “대중적인 지도자의 죽음, 심각한 자연재해, 치명적인 전염병의 확산, 작은 데서 시작해서 격렬하게 불붙는 학생시위, 종교집단” 등이 사회적 폭발을 야기하는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있다. 2008년 말 그리스에서처럼 경찰이 한 젊은이에게 총격을 가함으로써 거대한 폭동의 시대를 촉발하는 시나리오도 있을 수 있다.28)

    중국의 민공은 이전에 실업과 불황이 오래 계속되는 국면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경제위기가 확실히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그들은 일상의 저항과 파업 속에서 투쟁과 자기조직화의 경험을 쌓았다. 기층에서부터 활동가들이 등장해서 이러한 경험들을 널리 퍼뜨리고 새로운 투쟁에 적용하고 있다. 그들은 자본가들과 관료들이 연계되어 있으며 경비대와 무장경찰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민공들은 자주 자신감을 갖고 자기 요구들을 만든다. 민공은 서로 자기 경험들을 공유하는데, 이는 경제위기와 함께 다가오는 새로운 사회구조를 형성하는 데 한 부분이 될 것이다.

    중국의 “중간계급”이 무엇을 하느냐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중간계급은 중국공산당의 지배를 떠받치는 주된 사회적 기둥이다. 하지만 그들은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 붕괴로 많은 돈을 잃으면서 경제위기로 인한 타격을 이미 입었다. 중간계급 자녀들의 다수는 대학을 마쳤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운 나쁜 주주들과 가게 주인들은 이미 행동에 나섰다. “중간계급”은 (2002년 아르헨티나처럼) 노동자 농민과 더불어 투쟁에 나설 수 있을까? 정부는 동맹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하여 실직한 민공들로 인한 “사회적 불안정”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지식인과 “중간계급”의 “군중”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고 있다.29)

    정권은 여전히 유혈참사를 피하려고 노력한다. 2008년 12월 주강삼각주에서 대립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경찰은 사진을 찍고 나중에 일부 참가자들을 체포하는 정도로 뒤에 머물러 있었다.30) 이것은 오래된 게임이다. 중국공산당은 일부 요구를 들어주면서 “주동자”로 여겨지는 자들을 체포한다. 투쟁이 고립되는 한, 그러한 전략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투쟁의 물결이 솟구쳐 오를 경우, 정권은 대응전략을 바꿔야 할 것이다.31)

    파장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 있는 좌파들 가운데 일부는 중국의 새 노동계급에 자신의 희망을 투사하면서 2008년 가을과 그 이후 벌어진 대립을 광범한 계급운동이 새로 시작하는 전조로 바라본다. 우리는 중국에서 다가오는 투쟁의 규모와 중요성을 예단할 수 없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고 그에 대처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 산업지대에서의 대량 정리해고와 농촌지역에서의 불경기가 대중적인 봉기를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농촌의 생존경제와 민공의 저축이 (적어도 얼마 동안은) 경제위기의 충격을 흡수할 가능성 또한 있다.

    수출지대에서 사회적 위기 상승은 기존 산업국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파장을 미칠 것이다. 값싼 중국산 소비재는 거대한 수의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 수 있는 하나의 전제였기 때문이다. 값싼 중국산 소비재 덕분에 비정규직화가 생활수준의 급격한 하락 없이 수행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경제위기, 세계무역의 붕괴, 중국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제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생활수준 하락과 사회적 처지 악화 나아가 그로 인한 노동계급 투쟁의 증가를 초래할 것이다.

    자동차·화학·기계제작 같은 핵심 산업들이 중국에 엄청나게 투자되어 있으며, 세계적인 생산 사슬을 통해 중국경제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중국에서 투쟁이 터질 경우 그러한 산업에서도 그 충격을 느끼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더 공격할 것이며 대량 정리해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일 (세계경제와 통화구조의 중추이자 아킬레스건이기에 “브레튼우즈 II”라 불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제적 틀32)이 신용위기나 미국의 소비감소에 의해서 또는 중국의 노동자투쟁에 의해서 붕괴하게 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것들을 훨씬 넘어서는 세계적 혼란을 보게 될 것이다. 달러화와 세계적인 통화체계의 몰락, 미국 패권의 파산, 세계무역의 장기적인 붕괴, 점점 더 심해지는 군사적 대결 등.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고 다른 곳에서 새로운 계급운동에 관해 토론할 때 그 경험을 덧붙이기 위하여 중국에서의 사태전개를 추적해야 한다. 우리는 경제위기와 계급투쟁의 세계적 맥락을 확인하고 강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는 경제위기에 대한 부르주아적 해석과 민족주의 경향에 맞설 필요가 있다. 우리로 하여금 벨트를 더 단단히 묶도록 만들려고 (경제위기에 대한) 두려움의 전략이 이미 사용되고 있다. “우리 일자리를 훔쳐가고 물가인상을 가져오는 값싼 중국산”처럼 이방인과 외국인을 두려워하는 목소리를 우리는 듣고 있다.

    우리는 경제위기와 투쟁들 속에서 솟아오는 사회적 변화의 기회들과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공통된 학습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투쟁의 파급과 사회적 네트워크의 출현은 세계적 수준에서 하나의 노동계급을 형성하는 데 공헌할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적으로 생활조건의 차이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자본주의를 끝장내고자 한다면, 중국에서든 다른 어느 곳에서든 이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오로지 하나의 세계적인 계급운동만이 경제위기의 자본주의 논리를 깨부수고 이윤이 아니라 연대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를 창조할 힘을 만들어낼 것이다.

    2009년 3월 8일

    <번역 : 양준석>

    --------------------------------------------------------------------------------

    1) <파이낸셜 타임스>, 2008년 12월 16일

    2)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2009년 1월 23일

    3) David Harvey. 로버트 브레너와 다른 이들이 설명한 것처럼, “공간적 해법”은 또한 “자본가들 내부” 경쟁의 결과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의 뒤에는 착취조건을 강화하고 자본에게 가장 우호적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 같은 자본가들의 공통된 이해관계가 놓여 있다. 또한 현 위기를 불러일으킨 데에는 1970년대 이후 생산적 영역에서 수익성 있는 투자기회를 찾지 못하는 데 대한 대응으로 자본의 금융화가 점점 심화되었다는 점, 즉 “금융적 해법”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4) 1970년대 이후 중국의 변화는 다음과 같은 복잡한 기원들을 갖고 있다. 문화혁명의 사회적 정치적 혼란, 농민들 그리고 나중에는 도시 노동자들의 빈곤과 불만, 실용주의 당 지도자들에 의한 교조적 마오쩌둥주의자들의 제거, 1989년 톈안먼 운동에서 절정에 이른 1980년대의 사회적 대립, 소련과 같은 붕괴를 미리 막겠다는 정권의 결심 등.

    5) 동시에 사회관계의 재형성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국유복합기업의 해체에 필수적이었다. 노동조합법, 노동법 등 노동관계의 법률화는 그것의 한 부분이었다.

    6) 2008년 10월 정부는 경작권을 임대하거나 양도하는 게 허용될 것이라고 발표함으로써 이를 “합법화” 했다. 이러한 조치는 높은 위험을 수반할 것으로 보이는데, 많은 민공들이 경작권을 갖지 못하게 됨에 따라 실직하거나 도시에서 추방되었을 때 땅에 의지해 생계를 이어갈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7) 노동과사회보장부(人力资源和社会保障部)는 2008년 상반기 동안 노동분쟁 중재 건수가 충칭에서 145%, 상하이에서 92.5% 늘었다고 발표했다.(<난팡조우모>(南方周末) 2008년 7월 31일) 같은 기간, 광둥성 법원은 약 4만 건의 신규 노동분쟁 사건을 접수했는데, 이는 2007년보다 157.7% 늘어난 것이며, 전체 사건 가운데 주강삼각주 지역이 96.5%를 차지했다.(<중국일보> 2008년 7월 22일) 2008년 1월부터 9월 사이 베이징 노동중재위원회는 32,954건의 노동분쟁을 다루었는데, 이는 2007년 같은 기간보다 104% 늘어난 것이다.(<베이징 리뷰> 2009년 1월 20일)

    8) <파이낸셜 타임스> 2008년 12월 16일. 미국과 중국의 경제관계가 이른바 “브레튼우즈 II”라 불릴 만한 양상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놀라운 일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관계는 현 위기의 핵심 요소다. 미국 소비자들은 중국 기업으로부터 상품을 사고 미국 달러를 지불하는데, 판매자들은 이 달러를 중국의 은행계좌에 보관한다. 각 은행은 미국 달러를 중국 중앙은행으로 보내며, 중국 중앙은행은 이 달러를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 데 사용한다. 이제 미국 달러는 미국의 은행 시스템을 통해 미국의 개별 가구들에 신용(빚)으로 전달된다. 미국 소비자들은 그 돈을 갖고 다시 중국산 상품을 산다. 그 결과가 오늘날 중국의 거대한 무역흑자이며 미국의 거대한 무역적자다. 다른 말로 중국은 자신이 소비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생산하며, 미국은 자신이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소비한다. 그리고 미국은 자신이 상품을 사느라 중국에 주었다가 신용(빚)으로 돌려받은 돈을 갖고 소비를 지출한다.

    9) 수출은 중국 GDP의 40%를 차지하며, 수출초과가 12%에 이른다.

    10) 중국은 1997~8년 동아시아 경제위기를, 국가가 경기부양 프로그램을 펴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위기를 활용하면서, 거의 상처받지 않은 채 빠져 나갔다.

    11) <디 짜이트>(2009년 2월 5일)는 섬유·장난감·전자산업에 어떤 국가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도 반대하는 광둥·상하이 지방정부 수장들과 중앙정부 사이의 갈등에 대해 보도했다.

    12)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2008년 10월 20일

    13) Staphany Wong: Impacts of the Financial Crisis on Labour Conditions in China, December 19, 2009,

    14) <중국일보> 2008년 11월 11일

    15)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2009년 1월 28일

    16) <스트레이트 타임스> 2009년 1월 20일

    17) <스트레이트 타임스> 2009년 1월 20일

    18)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2008년 11월 17일. 여기에도 겹치는 과정이 있다. 장난감 산업은 독성물질의 사용을 둘러싼 스캔들 때문에 타격을 입었다. 섬유산업은 베트남으로 공장이 이동했다. China Labour Bulletin: Migrant workers worst hit by textile factory slowdown,

    19) 이는 중국에서 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파악한 내용이다. 경영자들은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대신 노동자들에게 “휴가”를 가도록 강요한다.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휴가를 가면 회사로서는 보상금 지급을 아낄 수 있어 경영자들이 선호하는 것이다.

    20) 도시의 실업자 수 또한 늘어났다. 공식적인 실업률은 4.2%지만, 중국사회과학원은 9.4%로 본다.(<스트레이트 타임스> 2009년 1월 20일) 이는 도시호구를 가진 사람들만 포함한 것이며, 민공은 배제된 수치다. 농촌의 실업률은 약 20%로 추정된다.(<워싱턴 포스트> 2009년 1월 13일)

    21) 중국 정부는 정기적으로 하던 소요사건 수치 발표를 몇 년 전에 중단했다.

    22) <선데이 타임스>(2009년 2월 1일)에 따르면, 산시성 린펜의 TV기자들이 섬유노동자 6천 명의 공장점거에 관한 보도를 시도한 뒤 해고되었다.

    23) 이 금액의 3분의 2를 지방정부들이 조달해야 하는데, 그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2009년 1월 23일) 이 금액의 대부분이 사회기반시설을 비롯한 건설 프로젝트에 투입되기 때문에 수출부문의 위기는 완화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줄어든 소비를 대체하기 위하여 유럽연합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 수출을 늘리고 국내수요를 키워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다른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과 달리, 중국은 이러한 경기부양 프로그램을 위한 수단들을 갖고 있다. 중국은 채무가 거의 없고, 재정적자가 적으며, 거대한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24) 꼭 1년 전만 해도 중국 경제는 해마다 1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함에 따라 과열 우려에 시달렸으며, 7~8%의 “적당한” 성장률로 조정되어야 한다고 얘기되었다.

    25) <로이터> 2009년 2월 20일

    26) 정부에 따르면 도시소득은 농촌소득보다 3.4배 더 높다. 생태적 위험, 가뭄, 태풍, 강탈, 퇴거 등은 농촌의 조건들을 한층 더 악화시키고 있다.

    27) 새 토지법이 정부 의도대로 농업의 집중화를 얼마나 만들어 낼 것인가 그리고 땅 없는 농촌 주민들이 얼마나 늘어날 것인가가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28) rgemonitor.com에 2009년 1월 9일 실린 Victor Shih의 견해. 우리는 또한 2008년 3월 티베트에서처럼, 티베트인들에 대한 차별과 정치적·문화적 억압이 사회적 요인들과 결합하면서 며칠 동안 계속된 봉기를 낳았던 것과 같은 상황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9) 이것은 1990년대의 인종주의 선전에 어느 정도 기원을 두고 있다. 당시 민공은 고지식하고 거칠며 무식한 촌뜨기로서, 도시의 범죄·질병·퇴폐 따위를 야기하는 존재로 취급되었다.

    30) <옵서버> 2009년 1월 25일

    31) 정치적 이의제기와 저항은 대부분 노동자투쟁과 분리되어 나타나고 있는데, 최근 몇 년 동안 이에 대한 진압이 늘어났다. 지금의 경제위기와 사회적 위협 속에서 정권이 족쇄를 느슨하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선전에서 계획되었던, 지방선거의 확장이 취소되었다. 어느 당 간부는 “만일 우리가 지금 당장 선거를 한다면, 태국처럼 끝장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뉴욕타임스> 2009년 12월 19일) 그는 2008년 말 국가권력을 둘러싸고 두 진영에서 대립이 발생하여 방콕공항 봉쇄까지 낳았던 사태를 언급한 것이다.

    32) 중국 외환보유고의 증가속도는 느려졌다. 하지만 미국 국채 매입은 지금까지 눈에 띄게 떨어지지 않았다. 중국의 수출이 줄었지만, 수입은 훨씬 더 크게 줄었다.(rgemonitor.com 2009년 1월 16일)

    추천자료  6호_사노련 재판 관련 자료 모음 10·08·19
    추천자료  6호_사노위 관련 논쟁글 모음 10·08·19
    기획번역  6호_스탈린주의에 대한 여러 이론들 10·08·19
    기획번역  6호_한국 자본가들의 공격과 쌍용차 파업 10·08·19
    정치노선  6호_차베스 환상을 극복하지 못하면 혁명적 사회주의로 전진할 수 없다 10·08·19
    기타  6호_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 10·08·19
    이론연구  6호_자본주의 세계경제 위기의 현 단계 10·08·19
    당면투쟁  6호_노동자투쟁의 현 단계와 과제 10·08·19
    정치노선  6호_이른바 진보대연합 노선을 반대하며 혁명적 노선을 제기한다! 10·08·19
    기획번역  5호_[특집번역] 오늘날 중국의 노동자계급 (4) - 중국의 위기 09·11·05
    기획번역  5호_[특집번역] 오늘날 중국의 노동자계급 (3) - 중국의 민공들 09·11·05
    기획번역  5호_[특집번역] 오늘날 중국의 노동자계급 (2) - 중국의 도시 국유산업 노동자들 09·11·05
    기획번역  5호_[특집번역] 오늘날 중국의 노동자계급 (1) - 중국의 변화와 계급투쟁 09·11·05
    기획번역  5호_국가와 위기 - 왜 자본주의는 '규제'할 수 없는가? 09·11·05
    기획번역  5호_1919년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창설 09·11·05
    1234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GGAMBO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4동 241번지 2층ㅣ전화 02-794-1917ㅣ이메일 swl@jinbo.net
    No copyright, Just copyleft! 홈페이지에 공개된 모든 자료는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