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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자료 : 6호_사노련 재판 관련 자료 모음
| 2010·08·1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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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노련 재판 관련 자료 모음

      

    [최영익 동지의 최초진술]

    인류 발전의 원동력인 체제의 혁명적 변혁을 누구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저는 오늘 16년 전과 똑같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재판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 그리고 그 연장선에 있는 집회, 시위, 조직, 정치활동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 여전히 이 땅에서 지배자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자들이 여전히 노동자계급과 민중에 대한 억압자들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소위 사노련 사건은 지배자들의 강력함이 아니라 허약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두 차례에 걸친 구속영장 기각에도 불구하고, 정부를 대변하는 검찰이 재판을 강행해 유죄판결을 끌어내려고 필사적으로 발악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이 보호하고자 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정당성을 잃고 있고 거대한 위기 앞에 놓여 있다는 바로 그 절박함입니다.

    현재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거대한 모순이 토해낸 산더미 같은 문제들 앞에서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한줌 대기업 회장들은 더 많은 이윤을 위해, 그리고 그들 사이의 격화되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구조조정이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줄이고, 임금을 삭감하며, 기계처럼 쉴 새 없이 일하게 만들고, 언제든지 자유롭게 자를 수 있는 비정규직으로 내모는 것들입니다. 지금 세계는 실업, 저임금, 생활의 불안정성, 노동의 소외 등으로 도탄에 빠진 노동자들의 신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술은 어마어마하게 발전하고 있지만, 젊은이들은 변변한 일자리 하나 얻기 힘듭니다.

    상황은 거기에만 제한되지 않습니다. 압도적 다수의 사회구성원들과 미래 세대들의 엄청난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 자본주의 사회는 더욱 가망 없는 처지로 굴러 떨어지고 있습니다. 자본가들은 시장이 좁아지고 있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고 있는 짓은 다수 구매자들인 노동자계급과 가난한 민중의 호주머니를 강탈해 구매능력을 최소화시켜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앞에 그들은 위기를 끊임없이 유예시킨 대가로 더 큰 위기를 불러와 사회를 엉망진창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은행을 동원해 돈을 꿔주고, 이 돈으로 카드빚을 내고 주택을 구입하도록 유도해 가공의 수요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경제폭탄입니다. 이 가공의 수요는 계속 주택가격을 폭등시키고, 더 많은 빚을 내도록 유도함으로써만 지탱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언젠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가시화된 세계 경제위기는 그런 한계를 수면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째깍째깍 돌아가는 경제폭탄의 타이머 소리 앞에 화들짝 놀란 세계 자본가계급이 동원하는 마지막 카드는 무엇입니까? 국가의 이름으로 자본주의는 거대한 빚을 내서 망해가는 회사들을 살리려 애쓰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두 어깨에 천문학적 빚을 짐 지우면서 대자본의 생존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들, 그리고 응당 기성 세대가 책임져야 마땅한 바로 그 젊은 세대들에게 돌아가야 할 교육, 의료, 주택 재정들이 모조리 한줌 거대 부자들, 대기업, 대은행들의 지원금으로 투입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조차 한계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그 단적인 표현은 그리스 국가부도 위기입니다. 그리스 국가부도는 결국 EU 전체의 경제적 붕괴이며, 이것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 붕괴의 서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마지막 카드를 집어들고 있습니다. 주요 자본주의 국가와 다국적 은행들의 국제적 연합체들을 총동원해서 파산을 일시적으로 유예하는 것입니다. IMF 구제금융은 사상 최대의 천문학적 규모의 최신 무기를 장착하고 경제적 다국적군으로 그리스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다국적군의 운명은 이라크에 파견된 다국적군의 운명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최악의 신용등급으로 최고의 이자율을 감당해야 하는 그리스가, 게다가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관광산업을 주요 산업으로 삼고 있는 그리스가 어떻게 이 빚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라는 절망의 목소리가 도처에서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한끝짜리 패를 들고 모든 판돈을 털어넣어야 하는 파산 직전의 도박꾼과 이 자본주의 체제는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이것만이 공통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라크에 파견된 다국적군은 이라크 민중들에 대한 대규모 학살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리스에 투입된 다국적 금융은 ‘빚의 조건’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대규모 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체계적으로 축소하고, 비정규직을 확대하며, 임금을 대폭 삭감하라는 것입니다. 국가재정을 모조리 IMF 빚을 갚는 데 투입하고, 실업자, 빈민, 장애인, 아이들을 위해 투입하는 사회복지 국가재정을 없애버리라는 것입니다. 경제위기를 불러온 당사자들은 바로 세계 자본가계급인데, 그 책임은 노동자 민중, 한마디로 사회가 보호해야 할 바로 그 사람들에게 전가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주문은 사실 불필요합니다. 그리스를 비롯해,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이미 스스로 수행하고 있는 조치들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객관적인 토대 위에 사노련 사건이 놓여 있습니다. 사노련 사건 직후 세계 경제위기가 터졌습니다. 하지만 이 경제위기의 폭발은 이미 수개월 전에 예견되었던 바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위기로부터 자본주의 체제를 지켜내기 위해선 노동자계급에 대한 한층 강화된 공격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 일환으로 사노련 사건은 배치되었습니다. 사노련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공격을 규탄하고, 자본주의 경제위기가 바로 한줌 자본가계급에 의해 발생했으며, 이 공격은 이 체제를 바꿀 때에만 격퇴할 수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들의 비위에 거슬렸고, 그들을 두렵게 했던 것입니다.

    평상시에는 노동자들에게서 생산에 대한 통제권과 정부에 대한 통제권을 박탈하고, 이것을 원천 봉쇄해왔던 자들이, 다시 말해 이 사회에 대한 운영권을 모조리 자본가계급과 자본가 정부의 수중에 장악해왔던 자들이, 그래서 이 사회가 만들어낸 대부분의 성과들을 독식하고 그 성과를 자신이 만들어낸 것으로 뽐내왔던 작자들이 이제 그 책임이 추궁되고 고통을 누군가 져야 할 경제위기 상황이 오자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책임을 서로 회피하면서 책임과 고통은 노동자계급이 져야 한다고 윽박지르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 선봉에 이명박 정부가 서 있습니다.

    사노련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하고 한줌 자본가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에게는 심히 거슬리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에 걸친 구속영장 청구, 사노련 재판의 강행은 그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진실이 밝혀지는 것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 자신의 아킬레스건에 대한 강박증을 표현하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뿌리에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저항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무한한 공포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 자본주의 체제가 낡아버렸다는 사실, 이 체제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모순을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 자본주의 체제를 압도적 다수 사회구성원인 노동자계급과 젊은이들의 생존과 번영, 안정을 대변하는 체제로 바꿔내야 한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등장함으로써, 사노련과 같은 세력의 위험성은 더 이상 간과하기 어려워졌다는 검사의 최초 진술도 그러한 공포감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이번 재판에 임하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저는 이 재판의 정치적, 사회적 뿌리를 밝힐 것이며, 그 과정에서 검찰의 기소는 막다른 골목에 직면한 자본주의 체제의 최후의 발악을 표현하는 것임을 증명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저는 검찰이 제기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침해했다”는 주장에 대해 인류의 역사적 발전의 관점에서 반박하고자 합니다.

    “체제의 혁명적 변혁”은 인류 발전의 원동력입니다. 가령 망이 망소이는 ‘하늘 아래 임금과 백성이 따로 있냐’고 절규했습니다. 그 이유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망이 망소이의 혁명적 사상이 정당함을 증명했습니다. 누군가 왕정 체제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면, 이제 초등학교 학생까지도 정신 나간 사람으로 규정하고 저항할 것이 분명한 그러한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체제의 혁명적 변혁’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런 발전을 결코 볼 수 없었을 것이고 보다 더 행복해질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바야흐로 자본주의 체제가 스스로 더 이상 자신의 체제가 인류 발전에 적합하지 않고 거대한 장애물로 전락했음을 드러내고 있는 이 시대 상황에서 ‘체제의 혁명적 변혁’은 인류의 절실한 화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화두 앞에 정신병자처럼 날뛰면서 탄압하고 재판대에 올려 세우려는 작자들은 결국 인류 발전을 가로막으려는 반동 세력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사노련은 ‘체제의 혁명적 변화'의 필요성을 웅변할 뿐 누구에게도 그것을 강요할 생각이 없습니다. 압도적 다수 사회구성원들인 노동자계급 스스로 통제하고 운영하는 그러한 사회 체제를 추구하고 그것만이 인류 역사의 발전을 지속할 결정적인 요소라고 확신하는 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런 발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신념의 핵심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므로 만약 그런 죄명을 우리에게 뒤집어씌우려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양심을 짓밟고 거짓 악선동으로 정치적 반대파를 매도하는” 가장 비열한 짓으로 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된 변혁은 오직 다수 사회구성원들 스스로의 확신과 자발성, 결단과 협동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저와 사노련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쟁점은 이명박 정부와 검찰의 머릿속에는 자본주의 체제 말고는 그 어떤 체제도 사회를 위기로 내모는 것이고,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발상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체제의 혁명적 변화’의 여지를 봉쇄하는 것, 그것은 정확히 자유민주주의의 진정한 탄생배경과 충돌하는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는 프랑스 대혁명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사상입니다. 그런데 프랑스 대혁명은 왕을 교수대에 올려 처단하는 것과 함께 왕정 체제를 영원히 무덤 속으로 처박아버렸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사상은 바로 이러한 혁명적 변혁의 과정에서 당시 프랑스 인민들의 ‘혁명의 권리’를 표현하는 사상이었습니다. 누구도 사회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의사표명의 권리를 제약할 수 없으며, 기존 체제를 완전히 새로운 체제로 바꿀 권리를 박탈할 수 없다는 혁명적 인민의 의지, 바로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 또한 사회구성원들의 그러한 권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유민주주의로부터 “혁명의 권리”를 박탈해버린다면, 그것은 수많은 목숨을 역사의 제단 위에 바치면서 프랑스 인민들이 비로소 쟁취해낸 역사적 성과를 무로 돌리는 것입니다.

    물론 프랑스 인민들의 의지는 온전하게 집행되지 못했습니다. 여러 역사적 조건들이 맞물리면서 프랑스 인민들은 완전한 인민들의 공화국, 진정으로 자유로운 공화국인 노동자 권력으로 전진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당시의 자유민주주의 깃발을 자본가계급이 도둑질해갔고, 그들은 “자본주의 공화국”으로 그것을 색칠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역사적 성과들을 자본가계급이 모두 무효화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의 프랑스 인민들의 역사적 후예들인 노동자계급은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고, 정부를 비판하며, 다수 사회구성원들의 의지에 따라 경제적, 정치적 체제를 바꿀 수 있는 권리, 특히 다수 사회구성원들이 희망한다면 언제든지 기존 체제를 새로운 체제로 바꿀 수 있는 권리”를 일정하게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이 혁명의 권리를 노동자계급으로부터 박탈하려고 하는 이명박 정부와 검찰은 자유민주주의를 얘기할 권리가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자본주의 공화국”으로 변질한 껍데기 자유민주주의에 의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견해 표명, 완전한 정치적 권리 행사, 저항과 투쟁의 권리, 자신의 뜻에 따라 다수 사회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권리를 지킬 것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노동자 권력, 사회주의 체제”로 온전하게 승화시킴으로써 “자본주의 공화국”이란 덧칠을 지워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혁명적 인민이 쟁취하고 발전시킨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적 성과를 지키고, 그 약점을 보완하면서 이 시대의 역사적 발전의 계기로 승화시킬 것입니다.

    저는 이 재판이 역사적 진보를 승인하고 지켜내는 재판이 되기를 희망하며, 그것을 위해 재판투쟁을 전개할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이 재판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민의 권리, 즉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권리를 승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본가계급과 그들의 정부가 도둑질해간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적 성과들을 이 시대의 프랑스 인민들인 노동자계급의 수중에 온전히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저는 최대한의 진지함으로 재판에 임할 것이며, 재판부 또한 이 역사의 부름에 성실히 응답하기를 기대합니다.

      

    [양준석 동지의 최초진술]

    사노련에 대한 집요한 탄압은

    사회주의야말로 노동자민중의 진정한 대안임을 말해줍니다!  

    지난 2008년 8월 촛불항쟁이 끝나갈 무렵, 검찰은 사노련 회원 7명을 전격 체포해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기각되었습니다. 검찰은 국가보안법이라는, 박물관에나 들어가야 할 유물을 끄집어내서 사회주의자들을 탄압하려 했습니다. 검찰의 시도는 사회적으로 큰 비난과 조롱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석 달 후인 2008년 11월, 검찰은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이번에도 기각되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009년 8월 쌍용자동차 파업이 끝난 직후 검찰은 사노련 회원 8명을 기소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사노련 사건을 다루는 이 재판정에서, 14년 만에 다시 국가보안법 사건의 피고자가 되어 첫 진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검찰은 이 사건 재판의 증거 자료로 그 목록만 1천 개가 넘는 엄청난 양을 제출했습니다. 여기에는 사노련과 직접 관련이 없는 개인 이메일이나 노동운동과 진보운동 관련 자료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사노련 동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사찰한 결과들도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이렇게 집요하게 사노련을 탄압하려는 것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사노련이 주창해 온 사회주의 운동이 노동자민중 속에 파고드는 것을, 나아가 뿌리내리는 것을 차단하려는 것입니다. 노동자민중이 참된 희망을 움켜쥐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입니다. 노동자민중이 절망에 사로잡힌 채 끝없는 생존경쟁으로 허덕이고 있어야만, 자본가들과 지배자들이 노동자민중을 손쉽게 계속 착취하고 억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는 사상의 자유조차 인정하지 않는 야만적 행위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계속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사회주의를 생각하고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처벌하는 야만적 행위가 계속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금방 답이 나오는 문제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한마디로 사상의 금기를 깨뜨림으로써 발전해 왔습니다. 불과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땅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는 왕이고 누구는 양반이며 누구는 상민이고 누구는 노비라는 엄격한 신분적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강요되었습니다. 그러한 신분적 차이를 넘어서려는 도전은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행위로 간주되었고, 그 어떤 것보다 더 악랄한 대역죄로 취급되었습니다.

    그 시대에 왕도 양반도 상민도 노비도 다 같은 인간이라는 사상을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니 일가친척이 몽땅 몰살당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신분의 철폐를 위해 투쟁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신분의 굴레 때문에 고통당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 국가는 신분제 철폐를 주장하는 자들을 악랄하게 탄압했습니다. 그것은 국가를 수단으로 봉건 지배계급이 저지른 무지막지하고 더없이 야만적인 폭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검찰은 사회주의를 생각하고 말한다는 이유로 저희 사노련 동지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만일 검찰이 바라는 대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는 국가를 수단으로 이 시대의 지배계급이 저지른 또 하나의 무지막지하고 더없이 야만적인 폭력이었다고 훗날의 역사는 단호하게 규정할 것입니다.

    사회주의 종주국이라던 소련이 망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사회주의 타령이냐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사회주의를 통해서만 참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노동자민중들조차 다수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노련 사건은 검찰이 국가보안법이라는 구시대 유물을 다시 꺼내 쓰려 한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또 다른 중요한 사실들을 우리 사회에 알려 주었습니다. 아직도 또는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의연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한줌도 채 되지 않는 그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민중과 결합할 가능성을 검찰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련의 몰락, 그리고 중국과 북한의 실망스런 현실을 보면서 이 땅의 노동자민중은 사회주의가 과연 대안일 수 있는지 깊은 회의감을 가슴에 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검찰의 두려움은 사회주의가 여전히 살아있는 희망임을 역설적으로 말해줍니다.

    사회주의가 여전히 희망인 것은 몰락한 옛 소련도, 지금의 중국과 북한도 사회주의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옛 소련, 그리고 중국과 북한은 사회주의라는 이름을 참칭했을 뿐, 특권 관료집단이 노동자민중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또 하나의 자본주의 체제일 뿐입니다.

    사회주의란 무엇보다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입니다. 평범한 모든 노동자들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우뚝 일어서서 가장 철저한 민주주의를 통해 스스로 기업과 국가를 통치해 나가는 것이 바로 사회주의입니다. 그래서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필요와 행복을 위해서 생산하고 분배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사회의 모든 것을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인간의 필요와 행복을 위해서 재편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특권 관료집단, 즉 노동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또 다른 지배자들은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이 자본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세상, 즉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사회주의는 착취와 억압에 허덕이는 모든 노동자민중들에게 영원히 희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함으로써 모든 인류를 해방해야 할 역사적 운명을 안고 태어난 노동자계급에게 사회주의는 바로 그 자기해방을 실현할 유일한 방도입니다.

    1917년 10월 혁명을 비롯해서 세계 역사 속에서 노동자계급은 사회주의를 향해 전진하는 빛나는 투쟁들을 수없이 보여주었습니다. 러시아 노동자혁명은 결국 스탈린주의 반혁명에 무너지고 말았지만, 러시아 노동자혁명이 보여준 노동자계급의 위대한 투혼은 세계 노동자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사회주의를 향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로 그렇게 사회주의는 여전히 꿈틀꿈틀 살아 숨 쉬는 희망입니다.

    또한 사회주의가 여전히 희망일 수밖에 없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체제가 노동자민중을 그리고 전 인류를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으로 점점 더 내몰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8년 하반기 미국 발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가 최근에는 유럽 발 재정위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본의 이윤을 최우선 목적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체제는 더 이상 인류에게 진보를 가져다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지속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습니다. 파멸로 치달아가는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자신의 수명 연장을 위해 점점 더 많은 노동자민중의 피땀을, 그리고 인류의 목숨 자체를 대가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미 노동자민중은 견디기 힘들 만큼 끝없는 생존경쟁에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자본주의 체제는 더욱 극심한 생존경쟁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끝없이 강화되는 생존경쟁에 노동자민중은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노동자민중은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생존경쟁에 점점 더 가혹하게 내몰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아니 알 시간조차 없습니다. 만일 그 비밀이 바로 자본주의에 있다는 것을 노동자민중이 알게 된다면, 노동자민중은 결코 자본주의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평범한 노동자민중 모두가 들고 일어나 거대한 폭풍처럼 자본주의 체제를 휩쓸어 버리려고 할 때, 과연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그 때문에 검찰은 사회주의 사상과 노동자민중의 결합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사상은 노동자민중이 착취당하고 억압받으며 나아가 끝없는 생존경쟁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원인이 바로 자본주의 체제에 있다는 결정적 비밀을 가차 없이 드러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사회주의 사상은 노동자민중이 서로를 이해하고 민주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을 획득함으로써 강력한 단결을 이루어낼 수만 있다면 그 억센 팔뚝으로 얼마든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을 당당하게 밝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천안함 침몰을 계기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전쟁을 향해 치달을 수 있는 환경 속에 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침몰 직전 교신기록’ 같은 너무나 기본적인 정보들도 공개하지 않은 채, 또한 앞뒤가 맞지 않는 수많은 의문점들을 무시한 채, 결국 천안함 침몰 원인을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단정지었습니다. 그리고선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군사적 긴장을 끝없이 높이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이 언젠가는, 아니 머지않아, 만천하에 밝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이 말해 주는 가장 근본적인 진실은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전쟁 또는 전쟁위기가 끝없이 우리를 괴롭힐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자본주의는 한 나라를 지배하는 자본가들이, 착취와 억압이라는 자신의 특권을 강요하기 위해 노동자민중을 상대로 그리고 경쟁하는 다른 나라들을 상대로 거대한 무력을 행사하는, 또는 그것을 위해 늘 준비하고 있는 체제입니다. 자본주의는 지배자들의 권력 유지와 강화를 위해서 또는 자본가들에게 더 많은 이윤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 늘 전쟁으로 치닫는 경향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늘 전쟁 또는 전쟁위기와 함께 존속해 왔습니다.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는 점점 더 극심한 위기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위기가 깊어질수록 자본가들은 전쟁이라는 대량 파괴와 학살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유혹에 점점 더 강하게 빠져들 것입니다. 마치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1930년대 대공황을 벗어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제국주의 국가 사이에 세계 패권을 둘러싼 정치군사적 대립이 점점 더 첨예해져 갈수록,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점점 더 끝없는 전쟁위기로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천안함 사건은 그처럼 거대한 정치군사적 긴장이 한반도를 휘감는 국면을 향한 작은 예고편일 뿐입니다.

    사회주의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도 너무나 절실한 희망입니다. 남한과 북한의 지배자들, 나아가 미국·중국·일본·러시아의 지배자들 사이에서 장차 점증하게 될 경쟁과 대립은 한반도를 끝내 전쟁의 불길 속으로 밀어 넣고야 말 것입니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사회주의를 향한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 즉 노동자 국제주의밖에 없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노동자들을 비롯해서 미국·중국·일본·러시아의 노동자들이 모두 노동자 국제주의에 입각해 자기 나라 지배자들에게 현혹당하지 않고 전쟁을 강요하는 자본주의에 맞서 단결된 힘으로 투쟁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만일 자본주의 체제가 충분히 정당한 것이라면, 노동자민중에게도 공평한 기회들을 충분히 줄 수 있고 끝없는 생존경쟁과 전쟁 위협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누릴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사회주의 사상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고 따라서 두려워해야 할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스스로 도태될 것이기에 굳이 탄압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노동자민중에게 사회주의 사상이 너무나 절실한 것이라면, 사회주의 운동을 탄압하는 것은 인류의 역사라는 견지에서 볼 때 매우 어리석고 부당한 일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재판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유물을 박물관으로 확실하게 처박는 재판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제가 인생을 걸고 간직해 온 사회주의라는 신념이 한낱 어리석은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인지 아닌지 현실이 입증하도록, 다시 말해 노동자민중이 선택하도록 내버려 두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사회주의 사상을 생각하고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처벌하는 야만적 행위가 우리 사회에서 계속되지 않기를 강력히 희망합니다.

    그러나 만일 이 사건을 계기로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야만적 탄압이 다시 활개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이 땅의 노동자민중에게 사회주의야말로 진정한 희망임을 말해주는 강력한 신호가 될 것입니다.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야만적 폭력은 노동자민중 속에 일시적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강요하겠지만, 그러나 길게 보자면 사회주의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새롭게 불러일으키는 더 없이 소중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만일 그 길이 강요된다면, 저는 그것이 비록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걸어갈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든, 저는 최대한 진지한 자세로 재판에 임할 것입니다. 재판부의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진 올바른 판단을 기대합니다.

      

    [오민규 동지의 최초진술]

    사노련 탄압으로 이명박 정권이 겨누고 있는 칼끝은 바로 노동자투쟁입니다!  

    저는 앞으로의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공소 사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기에 앞서, 오늘 주어진 모두진술에서 이번 재판을 통해 이명박 정권이 노리는 것은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탄압만이 아니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투쟁과 향후 벌어질 노동자투쟁에 대해 칼끝을 겨누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재판정에 서 있는 우리 모두는 사회주의자임과 동시에 노동운동가들이기에, 한국에서 벌어지는 주요 노동자투쟁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결합하는 것이 당연한 임무입니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주의 운동은 소수 선각자들의 지도에 따라 대중들을 동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압도적 다수의 노동계급이 스스로 펼치는 자기해방운동”입니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이 벌이는 대중투쟁에 주목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벌어지는 주요 노동자투쟁에서 매번 확인하는 사실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를 조직해 투쟁으로 떨쳐일어서는 것은 단순히 일부 악랄한 자본가들의 횡포와 탄압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 체제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 저는 그 단순한 진리를 전세계 노동자계급 투쟁의 역사 속에서, 그리고 한국 노동자 투쟁의 현실에서 깨닫고 알려왔을 뿐입니다.        `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깨닫는 것은 저만이 아닙니다. 노동자들은 처음에는 자본가들의 옹졸한 행위 때문에 투쟁에 나서기도 하지만, 투쟁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삶을 옥죄고 있는 괴물의 실체가 일부 자본가들이 아니라 이 체제 자체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게 됩니다. 우리 사회주의자들이 그러한 진리를 대중에게 가르쳤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투쟁하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그 사실을 깨닫도록 밀어붙이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 청소를 하는 용역노동자, 하청노동자들은 처음에는 “우리 월급은 왜 이렇게 쥐꼬리만 한가?” “왜 우리는 최고로 많아봐야 법정 최저임금밖에 못 받는가?”라는 질문을 갖고 노동조합 설립에 나섭니다. 그런데 이토록 정당한 요구를 내걸고 투쟁에 나섰지만 대학 당국이 온갖 욕설과 탄압을 일삼는 것을 보며, 자본가가 보는 세상과 노동자가 보는 세상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하지만 아주 평범한 질문을 제기하기 시작합니다. “왜 대학 교수의 한 시간 노동과 대학 청소부의 한 시간 노동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가? 30년 동안 죽어라 더러운 오물을 청소한 우리와, 이제 갓 교수로 부임한 30대 교수의 임금은 왜 5배 이상이나 벌어지는가? 도대체 임금이 이렇게 차이가 나도록 결정하는 이는 누구인가?” 그들은 투쟁의 과정에서 ‘임금은 시장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는 자본주의 논리가 거짓임을 단박에 알아챕니다. 바로 이것이 지난 2~3년 사이 서울지역 주요 대학에서 벌어져온 일들입니다.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제기하는 평범한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여러분들의 제기는 지극히 정당한 것이라고. 도대체 대학 교수의 한 시간 노동이 청소부의 노동보다 5배에서 10배 이상 가치 있고 고된 일이라는 평가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고. 어떤 노동이 좀더 가치 있고 고된 것인지, 따라서 어느 정도의 보상이 적절한지를 가장 잘 평가할 수 있는 이들은 바로 대학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즉 당신들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들이라고. 그렇기에 어떤 노동이 어느 정도의 보상을 받아야 할 것인지를 대학에서 일하는 노동자 전체가 집단적으로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어떤 일을 얼마만큼 할 것인지, 어떻게 분배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사회주의의 원리라고 말입니다.

    물론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하고 목격해온 노동자 투쟁들은, 사회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기나긴 여정에서 보자면 아직 충분히 발전되지 못한 것들입니다. 자본가들의 분탕질로 인해 야만적인 세계대공황이 불어닥치면서, 자본가들이 정부의 비호 아래 공황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탄압을 가하고 있기에 노동자 투쟁의 발전은 참으로 더딘 속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투쟁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참으로 영웅적인 열정과 결단, 희생과 헌신을 무릅쓰고 싸워왔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노력과 열정에 비하자면 우리 사회주의자들의 노력은 아직 참으로 부끄럽고 보잘것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검찰과 공안기관은 마치 주요 노동자 투쟁이 노동자 스스로의 확신과 자발적 결의에 의해 탄생하고 유지된 것이 아니라 사노련의 ‘배후조종’에 의해 발생한 것처럼 둔갑시키려 애쓰고 있습니다. 이는 역사의 위대한 주인공인 노동자들을 ‘배후조종’할 수 있는 기계처럼 간주하면서 업신여기는 자본가 정부의 발상법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의 발상은 전혀 다릅니다.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노동자 투쟁보다 훨씬 더 전진하고 발전해야 하며, 그 발전 양태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검찰은 물론이고 우리도 겪어보지 못했고 예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검찰은 고작 이 정도의 노동자 투쟁, 그리고 아직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에 엄살을 떨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터져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검찰과 우리가 의견일치를 보고 있는 부분은 한 가지 있는 것 같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세계대공황의 책임과 대가를 노동자에게 전가해온 자본가들과 정부에 맞서, 도도한 노동자 투쟁의 물결이 다가오고 있다는 예측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 이명박 정권의 검찰과 공안기관은 다가올 물결을 예측하고 두려움을 느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2008년 8월 말, 이제 탄생한 지 반 년 남짓밖에 되지 않은 사노련을 철창에 잡아둘 생각을 했겠습니까!

    두 차례의 구속영장 기각 후에도 검찰과 공안기관은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노련 활동가들을 미행, 감시, 사찰하고 각종 e-mail 자료를 뒤져 왔으며, 아마도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순간까지도 그렇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들춰낼 것이 없었는지 각급 노동조합이 개최한 합법집회에 참여한 사노련 활동가들의 사진을 찍어서 증거자료로 제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검찰과 공안기관, 아니 이명박 정권이 이러한 공작을 하면서까지 사노련을 옭아매려고 했던 이유는, 사노련이 무서워서라기보다 앞으로 전개될 노동자 투쟁의 물결이 두려워서입니다.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세계경제의 추이와 흐름을 읽고 있는 저들은, 앞으로 자신들이 맞닥뜨리게 될 위기가 어떤 것인지를 어림짐작하고 있을 것입니다.

    마치 천안함 사태로 인한 남북관계 경색에서 오는 혼란인 것처럼 보도되고 있지만, 최근 증권시장과 환율시장이 다시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때 못지않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5일, 노동자들의 호주머니에서 긁어모은 각종 연기금이 동원되어 2008년 8월 이래 최대의 돈을 쏟아붓고 나서도 코스피 지수는 최대치의 낙폭을 기록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리스로부터 시작된 재정위기가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다시 한 번 전세계의 경제 시스템을 뒤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태를 빌미로 남북 대결국면을 만들어 노동자들의 눈을 가려보려 하고 있지만, 몇 달 아니 며칠도 지나지 않아 이 사태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는 선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2008년 세계경제를 뒤흔든 사태 못지않은,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위기 상황이 도래할 것입니다.

    쌍용차에서 기술을 유출시킨 파렴치범들은 두 발 펴고 다니는 반면, 3천명에 달하는 정리해고/무급휴직/징계해고/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자리 상실과 생계고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5일에는 한 무급휴직자의 부인이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이라고 상황이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인원은 30% 줄었는데 생산량은 2배 이상 뽑아내는 엄청난 노동강도에 시달립니다. 부모님 쓰러지기 전에는 연월차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일할 때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합니다. 급기야 분사화로 인해 하청노동자로 전락해 일하던 노동자 한 분이 지난 5월 4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5월 16일에는 일요일이라 도장부에서 모터 청소를 위해 고용된 고등학생 아르바이트생이 안전교육조차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일하다가 돌아가는 모터에 그만 손가락 2개가 절단되는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현실이 바로 저들이 구조조정 이후 ‘쌍용차 회생’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실체입니다.

    2008년에 불어닥친 위기가 초래한 현실이 이러한데, 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예상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닙니까? 이러한 현실로부터 분노하지 않는 것이 비정상적인 것 아닙니까? 이제 그리스로부터 시작된 유럽 각국 정부들의 재정위기, 그리고 아마도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을 일본의 재정위기가 몰려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자본가들은 2008~2009년에 밀어붙였던 정리해고/임금삭감/구조조정을 더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입니다. 도처에서 민주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직장폐쇄와 용역깡패를 고용할 것입니다. 공무원을 비롯한 공공부문에서 정원 축소와 임금 삭감, 대대적인 외주화가 벌어질 것입니다. 아니, 당장 이곳 법원에서도 리먼브라더스 사태 직후인 2008년 말에 속기사들을 외주화하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으며 그에 반발하여 집단적인 노조가입운동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공공부문이건 민간부문이건 가리지 않고 자본의 이윤 논리가 밀어닥칠 것이고, 그에 따른 노동자들의 저항도 불가피합니다.

    이명박 정권은 다가올 노동자 투쟁의 물결을 지연시키거나 잠재울 의도로 사노련과 사회주의 운동을 탄압하고 있는 것입니다. 투쟁에 나서게 될 노동자들에게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두려움, 즉 사회주의 운동에 결합할 경우 공안기관의 감시/사찰과 체포/구속의 위협에 시달릴 것이라는 인식을 심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도는 무망한 것이 될 것이며 현실의 노동자 투쟁이 이를 직접 입증해낼 것입니다.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되는 것은 자본주의 자체 때문입니다. 실업과 해고, 비정규직, 저임금 등을 없애보십시오. 사회주의자들이 무어라 주장하든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의심을 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계속 노동자들을 덮친다면, 노동자들 속에서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의심과 분노가 성장하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가장 뛰어나고 열렬한 사회주의 선동가는 바로 이 잔인한 자본주의 착취 체제입니다. 자본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사회주의로 이끌리는 것은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미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자들 못지않게 공안기관의 감시/사찰과 체포/구속의 위협에 항상 시달리고 있습니다. 노동자 투쟁에 쏟아지는 탄압의 양상을 살펴보면, 사회주의자들에게 가해지는 탄압보다 몇십배는 더 가혹한 것입니다.

    아마도 미극의 금융위기에 이어 유럽의 재정위기가 몰고 올 전세계적 경제위기의 두 번째 폭풍으로 인해, 이번 재판이 진행되는 불과 몇 개월 사이에도 우리 사회주의자들의 확신이 옳다는 것이 일부 입증될 것입니다. 검찰은 1천여개의 증거 목록으로 사노련을 기소했고 또 여전히 진행되는 사노련의 활동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감시/사찰을 통해 증거 목록에 추가할 것으로 보이는데, 사노련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증거들은 앞으로 몇 개월 사이에 벌어질 사건들과 현실이 수백, 수천 개의 목록을 만들어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사회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노동계급의 거대한 투쟁이 어떤 형태로 벌어질 것인지, 혹은 그러한 시기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강령이나 이론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을 결정할 권리가 투쟁에 나설 노동계급 대중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언자나 계몽주의자가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입니다. 사회주의 건설 투쟁은 “압도적 다수의 노동계급이 스스로 펼치는 자기해방운동”으로 나타날 것이며 따라서 그 주인공은 투쟁에 나서는 노동계급 대중입니다. 사회주의 이념은 본래 노동계급 대중의 사상이며 사회주의자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사회주의자들의 견해는 때때로 구체적인 부분에서 그릇된 것으로 판명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입증되는 방식은 바로 현실의 노동자 투쟁을 통해서입니다. 노동계급 대중의 투쟁이 훨씬 앞서나가며 우리의 견해를 낡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런 경우 우리는 스스로의 오류를 반성하며 낡은 견해를 수정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정답을 미리 갖추고 있는 이들이 아니며, 도도한 투쟁의 물결과 경험 속에서 노동계급 스스로 정답을 찾아나갈 것임을 확신합니다. 구체적 방식과 양태는 예단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 방향이 사회주의를 향해 갈 것이라는 점이 저의 확고부동한 신념입니다.

    물론 전세계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를 볼 때 과연 이 정도의 신념과 활동으로 ‘사회주의자’라는 자랑스런 호칭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자격이 있다면 바로 이 점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노동자 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질 때만이 아니라 침체/소강 상태이거나 심지어는 후퇴하고 있을 때에도 우리의 확고부동한 신념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점, 공안기관의 어떠한 탄압이 오더라도 우리는 신념을 버리지 않고 노동계급 대중과 함께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대공황의 폭풍우 속에서 진행될 자본가들의 파렴치한 생존권 공격에 맞서 노동계급 대중이 다시 한 번 도도한 투쟁의 물결을 만들어낼 때, 사회주의는 투쟁하는 노동자들 속에서 ‘생소한 이념’이 아니라 점차 ‘상식’이 되어갈 것입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들 모두에게 사회주의가 상식이 되도록 하는 것, 사회주의 사상을 사회주의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본래의 주인인 노동계급 대중에게 되돌려주는 것, 바로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주의자들에게 주어진 임무입니다.

    저는 지난 10여년 사이에 건강상의 이유로, 또는 신념의 부족과 개인적 이유로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쉬거나 중단한 적이 두세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시 운동을 재개하게 만들어준 것은, 현장에서 일하는 매우 평범한 노동자들이 침묵을 깨고 억압에 맞서 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그들 스스로 가장 민주적인 조직운영원리를 만들어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권위자들의 지침에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들의 자발성과 역동성이 전체 구성원에게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민주적 운영원리를 창조해 갑니다.

    어디 이런 경험이 저만의 것이겠습니까?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단순히 신념만으로 이 운동을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노동자들을 자본주의에 대한 의문으로 밀어붙이듯이, 노동자들 스스로 투쟁의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자본주의보다 우월한 질서를 목격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신념이 옳다는 것을 확인해 왔기에 사회주의 운동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 온 것입니다.

    따라서 사노련을 ‘국가변란선전선동단체’건 ‘이적단체’건 무슨 죄목으로 뒤집어씌워 탄압하고 강제로 해산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자본주의 체제가 온존하는 한 노동자들이 그에 맞서 저항하는 흐름은 막을 수 없으며 따라서 사회주의 운동은 절대로 중단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탄압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절멸시킬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반복해서 확인하는 일이, 사노련 사건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벌어지지 않기를 희망하며 이만 모두진술을 마치겠습니다.

      

    검찰의 입으로 폭로된 지배계급의 두려움  

    2008년 여름에 가시화된 이명박 정부의 사노련 탄압은, 두 번이나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됐는데도 끊이지 않고 있다. 사노련 역시 어떤 탄압에도 위축되거나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정치활동을 굳건하게 펼쳐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저들의 탄압에 맞선 투쟁의 일부인 재판정에서의 국가보안법 철폐투쟁, 사회주의 정치사상의 자유 쟁취를 위한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검찰의 최초진술  

    5월 31일, 검찰의 최초진술이 이루어졌다. 검찰은 무려 2만8천여 쪽에 이르는 증거서류, 270여 쪽의 공소장을 준비했다. 검찰은 우리가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발행한 정치신문, 이론지, 교양도서 및 여러 토론회 자료들을 ‘적발’해내서 ‘범죄의 증거’로 삼았으며,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이메일과 기타 전혀 관계없는 자료들까지 내키는 대로 긁어모아 덧붙였다.

    검찰의 주장에 의하면, 사노련은 “자본주의를 대신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오직 혁명적 사회주의”뿐이라는 신념 아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뚜렷한 적대의식을 표출”해 왔으며, 이를 내버려두면 “사상오염으로 인한 안보위험”이 야기될 것이고 “법질서 훼손”, “사회불안 획책” 등의 문제를 낳기 때문에 서둘러 엄단해야 한다는 것이 그 결론이다.

    ‘사상오염’이라는 말 자체에서 드러나는 것이 있다. 검찰은 마치 자신이 모든 국민보다 사상적으로 우월한 존재인 것처럼 군림하며, 사상재판을 하려는 것이다. 저들은 사노련이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를 위협하는 세력인 것처럼 터무니없이 주장하면서도, 막상 자신들은 ‘국민 다수’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권리와 기회를 박탈하고, 더 나아가 ‘국민 다수’와 대화하며 주장을 알리고 설득하려는 노력 자체를 범죄로 낙인찍으려 한다. 정말이지 대단한 ‘자유민주주의’가 아닐 수 없다.

    검찰은 ‘법질서 훼손’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늘 특별사면 혜택을 받는 자본가들처럼 공금을 유용하지도 않고, 뇌물을 주고받으며 비리를 저지르지도 않는다. 스폰서에게 향응을 제공받는 일도 없고, 유흥업소 사장들에게 상납을 받지도 않는다.

    또한 검찰은 ‘사회불안 획책’을 말한다. 그러나 광우병 쇠고기수입에 문을 열어주고, 4대강을 파헤치고, 무력시위에 열을 올리며 전쟁불사를 외치는 이명박 정부와 우익 정치인들, 자본가언론의 압도적인 ‘사회불안 획책 능력’을 우리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지배계급의 두려움  

    이번 검찰의 최초진술이 드러낸 중요한 진실이 있다. 지배계급이 어찌해볼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사노련은 매우 작은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이지만, 검찰은 돌이킬 수 없는 자본주의 위기와 쇠퇴 속에서 이런 작은 조직도 이후 노동자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보는 것이다.

    가령 검찰은 레닌과 볼셰비키 당이 처음에는 현실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했지만, 치밀한 전략 전술과 끊임없는 선전 선동을 통해 평화를 갈망하는 러시아 민중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으며, 결국 10월 혁명을 성공시켰다는 이야기까지 친절하게 소개해줬다. 그리고는 사노련이 레닌을 ‘답습’하려 한다면서, 볼셰비키 당처럼 성장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엄단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검찰은 - 이 말이 걸작이다 - “최근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사노련의 주장이 반향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한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아무리 우려해봤자, 대안 없이 허우적거리는 자본주의 자신이 노동자대중으로 하여금 더욱더 급진적인 주장으로 다가오는 것을 절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떤 심오한 걱정과 우려도, 무능력하고 부패한 자본가계급을 몰락의 운명에서 구해낼 수 없을 것이다.

    검찰은 이번 재판으로 사노련을 ‘범죄집단’으로 낙인찍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 재판이 스스로 폭로한 진실이 무엇인지, <가자! 노동해방>의 독자라면 충분히 잘 이해할 것이다.(오연홍, 2010년 6월 3일, <가자! 노동해방> 53호)

      

    사노련 재판 - 국가보안법의 계급적 실체를 드러내다!  

    사노련 재판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재판의 정치적 성격이 전면적으로 드러나고, 부르주아 자본주의 사상과 노동자계급 사회주의 사상 사이의 투쟁이 본격화하는 것은 물론 ‘피의자 신문’ 단계에 이르러서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진행되고 있는 ‘증인신문 과정’은 마치 예고편처럼 재판의 정치적 성격과 핵심 쟁점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노동자투쟁에 대한 두려움  

    우선 재판과정은 정부를 대변하는 검찰의 입장을 통해 노동자운동에 대한 현 정부의 병적인 증오와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다. 검찰은 이랜드, 뉴코아, 쌍용차, 현대차 울산, 전주 공장 등에서 노무관리 실무자들을 증인으로 출석시켰다.

    이들을 증인으로 부른 검찰의 의도는 분명했다. 노동자투쟁에 대해 사노련이 지지하고 동참했던 것을 증명하고, 이로부터 처벌의 정당성을 끌어내는 것이다. 집회와 투쟁에 사노련 동지들이 참석한 사진을 들이밀면서 확인을 요청하는 것이 검찰의 주요 신문 사항이었다. 사노련 동지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증인들에게서까지 확인을 받으려 애쓰는 과정은 애처로울 정도였다.

    그러나 재판에 회부된 사노련 동지들은 이미 최초진술을 통해 “노동자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 나아가서 노동자투쟁에 올바른 방향을 부여하려 노력하는 것은 사회주의자들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임무”라고 당당히 밝힌 바 있다. 사노련 동지들은 노동자투쟁에 더 헌신적으로 결합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길 뿐이다.

    우리는 노동자투쟁에 결합한 사실을 조금도 감출 생각이 없다. 그런데도 검찰이 노동자투쟁 개입 증거들을 애써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검찰의 판단은 이렇다. “노동자투쟁에는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무시무시한 힘이 숨어 있다. 노동자투쟁에 적극 참여하고 사회주의적 방향을 제시하려는 사노련의 행위는 이 무시무시한 괴물을 불러오는 극히 위험한 행위다.”

    우리는 답한다. “그렇소!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투쟁에 그러한 거대한 힘이 담겨 있음을 확신하오!”    

    노동자의 자주적 투쟁에 대한 혐오  

    하지만 노동자투쟁에 담겨 있는 ‘새로운 세상을 향하는 거대한 힘’은 사회주의자들이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대중의 자주적 투쟁을 통해 노동자 스스로 깨닫고 형성해가는 것이지 누군가 외부로부터 주입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회주의자들은 그러한 깨달음을 촉진하고자 노력할 따름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노동자계급의 거대한 자주적 힘을 승인하며, 굳건히 신뢰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동자계급이 스스로의 투쟁 경험을 통해 자본주의 철폐의 방향으로 전진하도록 이끄는 가장 강력한 힘은 자본주의의 착취와 억압, 모순 그 자체다. 자본주의로부터 그것들을 지워보라! 사회주의자들의 어떤 강력한 선동도 노동자들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양규헌 동지가 증언대에서 말했듯이, 마치 노동자투쟁이 사노련과 같은 단체들의 배후조종에 의해 등장하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노동자운동에 대한 ‘모독’이다. 자본가계급의 정신을 반영하는 정부와 검찰은 노동자계급이 스스로 투쟁을 판단하고 노동자운동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힘과 의식을 갖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정부와 검찰은 노동자계급을 로봇처럼 조종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업신여기고 있다. 사장이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통제하고 조종할 수 있다고 망상하듯이, 정부와 검찰도 똑같이 망상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노동자투쟁에 의해 사장의 망상이 산산조각 나듯이, 거대한 노동자투쟁은 정부와 검찰의 망상을 산산조각 낼 것이다. “당신들은 노동자대중의 거대한 힘과 결의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할 것이다!”  

    표현과 사상의 자유  

    ‘표현과 사상의 자유’의 문제에서도 정부와 검찰의 입장은 명백히 드러난다. 검찰은 ‘표현과 사상’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위험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표현과 사상’을 넘어서서 ‘행동과 실천’으로 확대되면 이런 ‘표현과 사상’은 제한되어야 마땅하고 금지 처벌의 대상이 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행동과 실천으로 나아가지 않는 표현과 사상이라면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누군가 “당신이 노동조합이 필요하고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표현할 자유는 인정하겠지만, 당신의 확신을 가지고 노동조합을 건설할 행동의 자유는 인정하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인권에 대한 가장 철저한 위협이 아닌가? 차라리 생각이 없는 것이 낫지, 자기 확신을 기반으로 실천할 자유를 박탈당하는 인간처럼 불행한 인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것은 정부와 검찰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상에 입각한 사회주의자들의 실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사노련은 답한다 : “실천으로 연결되지 않는 사상은 더 이상 사상이 아니다. 게다가 사회주의 사상은 오직 실천과 연결될 때만 자신의 오류를 수정하면서 발전해나갈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는 실천의 사상이다! 우리는 실천을 멈출 생각이 전혀 없다!”(차정일, 2010년 7월 1일, <가자! 노동해방> 55호)

      

    헌법 제1조 해석을 둘러싼 논쟁  

    김수행, 강내희, 김세균 교수가 증인으로 발언했다. 물론 이 증인들은 사노련 회원도 아니고, 일부 영역에서 사노련의 입장과는 차이가 나는 입장을 갖고 있는 분들이다. 그런데도 검찰과 증인들 사이의 공방전에서 몇 가지 쟁점들이 등장했다. 그 중 하나를 먼저 소개한다.    

    헌법에 대한 해석  

    검찰은 사노련의 주의 주장이 대한민국 헌법과 충돌한다는 점을 강조하려 노력했다. 이에 대해 증인들은 적절하게 반박했다. 핵심은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대한 해석이었다. 검찰은 이것을 “자본주의 체제와 부르주아 정치체제를 보호하는 것이 헌법의 핵심 정신”이라는 각도에서 접근했다.

    반면 증인들은 “민주공화제는 국민들이 스스로 경제체제와 정치체제를 판단하고 선택하는 체제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와 부르주아 정치체제를 반대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 중 하나”라는 각도에서 접근했다. 즉 정부와 검찰은 민주공화제를 “자본주의 공화국”으로 왜곡시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노련의 입장도 그렇다. 김수행 교수가 항의했듯이, “자본주의가 유일한 사회체제라고 보는 것은 정부와 검찰의 잘못된 편견이다. 자본주의를 능가하는 더 우월한 사회체제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부와 검찰의 태도는 단순히 편견 이상의 것을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정부와 검찰은 자본가계급의 지배체제, 즉 자본주의를 보호하고 이에 대한 어떠한 도전도 불온시하면서 억압하겠다고 작정하고 있다. 현재의 정부와 검찰은 ‘자본주의 공화국’ 이외의 의미로 민주공화제를 해석할 생각이 전혀 없다.

    둘 중 하나다. 첫째는 민주공화제가 표현하는 ‘자유민주주의’란 결국 ‘자본주의 체제’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자본가계급만의 민주주의, 즉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독재’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둘째는 현 정부와 검찰은 ‘자유민주주의’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진짜 헌법파괴 세력은 바로 정부와 검찰이라는 것이다.

    그 무엇이든 사노련은 정부와 검찰에 맞서 투쟁할 수밖에 없다.(차정일, 2010년 7월 1일, <가자! 노동해방> 55호)

      

    삼권분립 논쟁 - 중요한 것은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가이다!  

    검찰은 기소장 및 증인신문 과정에서 “사노련이 헌법 상의 삼권분립을 부정하는 세력”임을 거듭 강조하면서 유죄 판결을 주문했다.    

    국민주권론 - 껍데기로 전락하다!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을 비롯해, 대개의 나라들은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헌법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는 권력은 양도될 수 없다는 것이 전제돼 있다. 만약 주권자인 국민대중이 권력을 누군가에게 양도한다면, 원리상 이것은 더 이상 민주공화국이 될 수 없다. 권력을 행사하는 자가 국민대중이 아닌 다른 누구라면, 이 사회는 소수가 지배하는 독재체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껏 자본가국가는 노동자계급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웠고, 사실 노동자계급 위에 군림해왔다. 노동자대중은 주기적으로 치러지는 선거에서 사회의 권력을 독점하면서 자신을 지배할 자들을 스스로(?) 선택하는 정도의 권리만을 부여받았을 뿐이다. 자본가 국가기구는 대중에게 공포와 원성의 대상이 됐다. 자본가 국가기구들은 자본가들, 가진 자들과 결탁해 온갖 비행을 저질렀고, 뇌물수수와 비리로 얼룩졌다.    

    이른바 삼권분립론의 등장  

    형식적으로는 국민주권론에 입각해 있었지만, 사실은 국민의 압도적 다수인 노동자 민중이 어떤 권력도 행사할 수 없는 이러한 모순은 끊임없이 자본가 국가기구에 대해 노동자 민중이 도전하도록 만들었다. 이 도전 앞에 자본가 국가기구는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을 통한 ‘상호견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것이 권력 독점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노동자 민중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가진 자들을 위해 작동하는 권력이 3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서로 견제한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는 왕의 독재를 막는다는 이유로 왕을 3명 세우고 서로 견제하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미가 없는 것이다.

    사실 삼권분립론은 국민주권론이 껍데기로 전락하는 가운데 저항과 반발에 직면한 자본가 국가체제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한 허구적 기만책에 불과하다. 본질은 이렇다. “자본주의 국가체제는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자본가계급의 단일한 의지 아래 통제하고 있다!”  

    사회주의 정치체제 - 3권을 주권자인 노동자 민중의 통제 하에 통합하다!  

    오늘날 진정으로 국민주권론의 의의를 집행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민중의 직접민주주의에 입각해 ‘소비에트’, ‘코뮌’ 유형의 정부체제를 수립하는 데로 전진해야만 한다. 이 노동자 국가체제는 노동자 민중을 중심으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직접 자신의 대표자를 선출하고, 이 대표자들이 작업장별, 지구별, 지역별, 전국 차원으로 모여 권력을 집행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대표자들의 발언과 표결은 모두 선거민들에게 완전 공개된다. 이 대표자들은 언제든지 선거민들의 결정에 의해 소환되고, 새로운 대표자로 대체될 수 있다. 그리하여 주권자인 노동자 민중의 의지가 상시적이고도 직접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보증한다.

    이 대표자들이 꾸리는 국가기구는 삼권분립이 아니라 삼권을 노동자 민중의 의지 아래 단일하게 집행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노동자 민중 대표자기구는 직접 법을 제정한다. 또한 노동자 민중 배심원제도를 근간으로 하고 법률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재판을 직접 관할함으로써 입법과 사법을 통합한다. 나아가서 이 대표자기구는 국가의 경제, 사회, 외교, 치안 정책 등을 결정하며, 노동자의 평균임금을 받는 국가관리들을 선출함으로써 행정기능까지 직접 담당한다. 이 국가관리들은 노동자 민중 대표자기구가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으며, 소환되면 즉시 작업장으로 복귀해서 일해야만 한다.

    결국 사노련 재판에서 충돌하는 진정한 핵심은 ‘삼권분립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입법 사법 행정의 사회권력이 어떤 계급의 수중에 놓일 것이냐”가 진정한 쟁점이다. 검찰을 내세워 자본가 국가기구는 말한다. “노동자 민중이 직접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안 된다. 권력은 삼권분립을 내세운 자본가계급이 독점해야 한다!”

    반면 사노련은 주장한다. “노동자 민중이 직접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이것은 압도적 다수 국민이 국민주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 압도적 다수 국민의 직접적인 권력 앞에 입법 사법 행정 기구들은 모두 복종해야 한다!”(차정일, 2010년 7월 1일, <가자! 노동해방> 55호)

      

    의회주의 반대 - 노동자계급의 힘을 행사하는 유일한 노선  

    자본가국가를 대표하는 검찰은 항상 ‘의회와 선거가 있는데 왜 그것 바깥에서 투쟁하려고 하느냐’고 윽박지른다. 이것은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왜냐면 의회와 선거에만 갇히는 순간 노동자계급의 힘이 엄청나게 약화되는 반면, 자본가계급의 힘은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의회, 선거의 테두리에 우리를 묶어두려는 것 - 자본가계급에게만 유리한 링에 가두는 것  

    자본주의 정치체제에서는 국회의원들이나 대통령 등은 노동자 민중의 통제로부터 자유롭다. 거짓 공약을 남발해 당선된 뒤, 그것과 정반대의 친자본 정책을 집행해도 노동자 민중은 그들을 끌어내릴 수 없다. 기껏해야 다음 선거 때 투표로 심판할 수 있는 권리 정도만 주어질 뿐이다.

    하지만 다음 선거라고 달라지는가? 선거에는 엄청난 돈이 필요하고, 거대한 신문사와 방송국이 필요하다. 자본가계급과 그들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은 이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다. 게다가 학교는 어려서부터 자본주의 이념을 보급한다. 이런 조건에서 노동자계급이 선거를 통해서 자신의 힘을 표현하는 것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는 가능성은 의회 바깥의 투쟁에서 나온다. 노동조합 투쟁, 파업, 집회, 시위 등의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은 비로소 집단적 힘을 형성하고, 투쟁 경험을 통해 노동자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의회 바깥의 투쟁과 연동된 노동자 조직들을 형성함으로써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자기 입장을 선전 선동할 수 있는 수단을 거머쥐게 된다. 이러한 투쟁과 조직을 통해 노동자들은 좌절하지 않고 노동자계급의 힘을 느끼면서 기운차게 전진할 수 있다.

    이러한 의회 바깥의 투쟁, 가령 총파업이나 대규모 시위 등은 자본주의에서도 국회의원들이나 대통령 등이 함부로 노동자를 억압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선거를 통해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고 스스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도 이러한 의회 바깥의 투쟁을 통해서 비로소 열리게 된다.  

    사회를 바꾸는 평화적인 길 - 의회주의 반대를 통해서만 열릴 수 있다!  

    1871년 프랑스 파리에서 코뮌으로 형성된 노동자정부는 외국 군대까지 간접 동원한 반동세력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됐다. 그 과정에서 2만여 명의 파리 노동자들이 살해당했다. 그로부터 100여년 뒤, 이른바 사회주의 정권을 표방한 칠레 아옌데 정권은 동일한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자본가들의 소유권을 침해하고 자본가 국가기구를 철폐하는 것에 대해선 엄두도 내지 않았고, 기껏해야 자본가의 이윤 일부를 침식했을 뿐인 개량주의 아옌데 정부조차 자본가계급은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자본가계급은 전투기를 동원해 대통령궁을 폭격하는 짓까지 저지르며 군사쿠데타를 감행했다.

    이 역사적 경험은 자본가계급과 그들의 국가기구가 결코 순순히 평화적으로 권력을 넘겨줄 가능성이 많지 않음을 보여준다.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압도적 다수 사회구성원들이 만약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에 의해 사회주의로 전진하기를 결정한다면, 이들은 반동쿠데타를 분쇄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힘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자본가군대가 의회 바깥의 힘이라면, 노동자의 힘도 의회 바깥에서 조직돼 있어야 한다. 거대한 파업과 시위가 필요할 것이다. 만약 사회주의를 향한 다수 사회구성원들의 의지를 자본가계급이 군사쿠데타와 같은 억압적 폭력을 통해 제거하려 한다면, 80년 광주항쟁의 시민군과 같은 저항도 필요할 것이다.

    물론 ‘어떤 수단을 동원할 것인가’는 노동자계급 스스로 그 시점에서 결정할 것이다. 이 힘이 강력하면 할수록 평화적 이행의 길도 비로소 열릴 것이다. 어차피 승산이 없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자본가계급은 무모한 저항 대신 항복하는 편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노동자운동을 의회와 선거에만 묶어두려는 의회주의에 반대한다.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힘이 형성되고 발전하며 발휘되는 진정으로 유효한 길, 게다가 사회가 사회주의로 평화적으로 이행하도록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을 포기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차정일, 2010년 7월 1일, <가자! 노동해방>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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