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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번역 : 6호_스탈린주의에 대한 여러 이론들
| 2010·08·1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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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탈린주의에 대한 여러 이론들

    월터 돔(Walter Daum)1)

    소련을 창조한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은 우리 시대에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최초로 근대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권력을 장악해 전 세계 피착취 피억압 민중을 위한 사회주의 혁명의 깃발을 들었다. 인류의 비참함을 끝장낼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입증되었다. 사회주의자라면, 노동계급의 이 기념비적인 업적을 파괴하려는 온갖 시도에 맞서야 할 책임이 있다.

    1917년 이래 “러시아 문제”, 즉 소련의 계급적 성격은 열띤 논쟁의 대상이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혁명 직후 소련은 노동자 국가로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사회였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많은 자본주의적 잔재를 짊어지고 있었다. 갓 태어난 모든 노동자 국가는 이런 장애물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데, 특히 러시아는 다른 나라의 혁명이 모두 실패함으로써 고립되었으며 또한 후진적이었기에 이것이 커다란 부담이었다.

    혁명 직후에 소비에트 노동자 국가는 급속히 퇴화했다. 노동자들은 얻은 것을 빼앗겼고, 세계 혁명은 가로막히고 패배했다. 1920년대 중엽에 이미 소련은 관료적으로 타락(퇴행)한 노동자 국가가 되었고, 세계 혁명정당이던 코민테른은 반혁명적으로 변했다. 스탈린주의는 국내외에서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을 방해하면서 소련이 자본주의로 되돌아가는 길을 열었다.

    사회주의를 사칭하는 자본주의  

    블라디미르 레닌과 함께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던 레온 트로츠키는 1930년대 중엽에 프롤레타리아 권력을 복원하고 사회주의 성과를 보존하기 위한 “정치혁명”을 주장했다. 1930년대 말 그는 반혁명적 스탈린주의 때문에 소련에서 자본주의가 복원되기 직전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아무리 망가졌다 하더라도, 노동자 국가는 여전히 노동자 계급이 절대적으로 충성하고 자본주의 열강의 공격에 맞서 방어해야 할 만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1939년까지는 트로츠키의 이러한 견해에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는 반혁명이 제2차 세계대전 전야에 절정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반혁명 때문에 국가기구가 변형되고 볼셰비키 당이 파괴됨으로써 새로운 지배계급이 형성되었다. 트로츠키가 내다본 것과 달리 자본주의는 완전히 부활했다. 널리 알려진 스탈린주의 국가의 권력 집중과 더불어 국유재산을 효과적으로 분산하는 질적인 조치들이 있었다. 이는 오늘날 명확하게 눈에 보이는 “시장”과 무정부성의 선구적 작업이었다.

    그때부터 스탈린주의 사회들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였다. 스탈린주의 사회는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성격이 전혀 다른 지배계급에 의한 임금노동의 착취에 기초한다. 지금과 같은 쇠퇴기에 자본주의의 내부적·외부적 작동 방식은 전통적인 부르주아 기준에서 볼 때 어디서나 뒤틀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어디도 스탈린주의가 통치하는 사회만큼 왜곡된 곳은 없다. 스탈린주의 사회들에서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은 반혁명이 강탈한 노동자 국가의 사회주의 잔재를 통해 더욱 뒤틀려 버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스탈린주의 소련은 자본주의의 생존을 위해 헌신하는 세계적인 강대국이 되었다. 소련은 자신의 지배력을 세우기 위해 수많은 대중들을 현혹했다. 또한 지배적인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며 유럽에서는 노동자 혁명을 분쇄하고 식민지에서는 민족해방투쟁을 배반했다. 이렇게 노동계급이 전 세계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가난한 자들이 가진 자들의 노예로 전락하고 풍요로 둘러싸인 채 굶주리는 세계에 살게 되었다. 한때 일소될 뻔했던 자본주의 착취는 이제 모든 곳에서 도전할 수 없는 삶의 현실로 간주된다. 거대한 생산력은 인간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큰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자본주의 지배 아래서는 계속해서 빈곤화와 생태 파괴, 그리고 핵전쟁을 부를 뿐이다.

    수십 년 동안 소련과 그 위성국들은 국제사회에서 버린 자식 취급을 받았다. 그 나라들이 얼마나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제국주의의 안정을 돕는가에 상관없이, 전 세계 부르주아지는 소련과 그 위성국들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들의 사회주의적 주장과 국유화된 재산, 그리고 소련의 프롤레타리아적 역사 이 모든 것들은 부르주아의 불신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도 1956년 폴란드 노동자평의회와 헝가리 혁명2)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스탈린주의 세계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망이 보이면 언제나 서방 당국은 증오심을 가라앉히고 개혁과 안정을 요구했지, 위협당하고 있는 스탈린주의 체제의 전복을 요구하지 않았다. 결정적 시기에는 계급이 말한다.

    스탈린주의에 대한 우리의 분석은 여러 자칭 마르크스주의 이론들과 대조를 이룬다. 자칭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은 크게 네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즉 스탈린주의 국가들은 1) 사회주의라는 견해, 2)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체제(노동자 국가)라는 견해, 3) 국가자본주의라는 견해, 4)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체제라는 견해다. 이런 분류는 단지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각 부류들 사이의 논쟁만큼이나 중요한 논쟁이 네 개의 부류 내부에서 각각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부류에 속하는 이론가들도 이를테면 언제 소련이 지금의 형태로 전환되었는지, 소련과 같은 성격 규정이 다른 스탈린주의 국가들에도 적용되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의견을 달리한다.

    우리는 러시아 문제에 대한 논쟁이 얼핏 보기에는 광범위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협소한 것임을 보여줄 것이다. 표면적인 차이가 있긴 하지만, 네 가지 이론들은 공통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그 이론들은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인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을 부인하고 있다. 우리는 스탈린주의가 자본주의 체제라고 주장하지만, 전형적인 국가자본주의 분석에는 근본적인 수준에서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러시아를 여전히 타락한 노동자 국가로 보는 “정통 트로츠키주의”의 입장을 (우리 자신이 트로츠키주의자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거부한다.

    우리는 네 가지 부류를 차례로 살펴볼 것이다. 우리의 서론적 개관에서는 이 책이 깊이 있게 증명하게 될 여러 가지 결론이 제시될 것이다.  

    스탈린주의 체제를 '사회주의'로 보는 이론들  

    스탈린주의 국가들이 사회주의라는 생각은 보통 경제가 국유화되었다는 점에 대한 단순한 관찰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오래 전에 엥겔스는 사회주의를 국가 소유와 동일시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반박했다.  

    “최근 비스마르크가 공업 시설의 국유화에 찬성한 이래, (여기저기서 심지어 일종의 아부까지 떨어 가면서) 모든 국가 소유는 사회주의적인 것이라고 매우 거침없이 선언하는 하나의 가짜 사회주의가 등장했다.”3)  

    1930년대 중반에 사적 기업가들을 제거한 뒤, 스탈린은 소련에 “사회주의”라는 칭호를 붙였다. 이는 초기 볼셰비키의 인식과 깜짝 놀랄 만큼 모순된 것이었는데, 볼셰비키는 소비에트 혁명으로 ‘사회주의’를 수립한 게 아니라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사회를 지배하는 노동자국가’(또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수립했다고 인식했다. 계급 없는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하나의 단계를 뜻하는 사회주의 그 자체는 심지어 경제적으로 선진국일지라도 고립된 나라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후진적이면서 국제적으로 고립된 소련의 경우에는 더더욱 불가능한 것이었다.

    오늘날 스탈린주의 체제를 “사회주의”로 보는 주장은 당연히 소련과 각국의 스탈린주의 공산당들이 하고 있다. 그들의 주된 논지는 국유화된 자산이 자본주의와는 질적으로 다른 생산양식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회주의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든) 두 가지 점에서 진보적인 사회라고 여긴다. 첫째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방어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둘째 자본주의 한계를 넘어 생산력을 발전시킨다는 점에서다. 소련형 사회에서는 인간의 의식이 무계획적인 법칙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즉 사회적 계획이 자본주의 경제를 지배하는 가치법칙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이 나라들에는 실업이 거의 또는 전혀 없다는 점, 자본주의에 견줄 만한 대중적 빈곤이 전혀 없다는 점, 지나친 빈부격차가 전혀 없다는 점, 경쟁으로 인한 낭비적인 중복노동이 없다는 점이 그 증거로 자주 거론된다.

    1930년대에는 소련의 공업 확장을 가리키면서 (비록 소련 노동자들의 권리와 생활수준이 후퇴했다 하더라도) 세계대공황으로 시달리던 자본주의보다는 더 낫다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럴 수 없다. 1980년대 초반 폴란드 경제의 붕괴는 제2차 세계대전 이래 그 어떤 나라의 경제 붕괴보다 더 나쁜 것이었다. 유고슬라비아 때문에 유럽 전체가 실업과 물가상승으로 치닫고 있다. 소련 지도자들은 그들이 씨름하고 있는 경제적 재앙에 대해 공공연히 말한다. 스탈린주의 국가들이 기술적·재정적으로 서방 자본주의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들이 인류 진보의 새로운 단계를 대표하고 있다는 주장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

    1960년대에 몇몇 좌파들은 혁명적인 민족주의 투쟁과 동맹하려는 중국 관료집단의 노력에 지지를 보내면서 중국을 “사회주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국을 사회주의로 부르려면, 특히 자의적이고 반(反)유물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혁명 직후 중국은 초기 소련보다 훨씬 더 제국주의 때문에 발전이 지체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어떤 지도적인 이론가는 “지금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생산력의 낮은 발전 수준’이 사회적 관계를 사회주의적으로 전환하는 데서 장애물이 아님을 사실상 보여주고 있다”고 썼다. 지배하는 당의 “올바른 정치노선”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4) 이런 논리대로라면 애초부터 인간은 비참함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일 아담과 이브가 사과 대신에 “붉은 소책자”5)를 발견하기만 했더라면 말이다.

    스탈린주의 체제를 “사회주의”로 보는 또 다른 이들은 유행하는 부르주아 개념들을 받아들인 (또는 그에 맞서 도전할 의지가 없는) 강단 맑스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맑스주의 경제학”에 관한 박식한 글들을 쓰면서 사회주의 “체체 전반의” 위기들을 말한다. 이것이 사회주의에 관한 맑스주의 이론에 대한 자신들의 천박한 이해 수준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 대해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스탈린이 소련에서 처음 “사회주의”를 선언했던 것은 소련의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을 부정하고 소련을 “인민의” 국가로 선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한 용법이 갖는 반(反)노동계급적 의미는 오늘날 온갖 방식으로 확대되어 있다.  

    스탈린주의 체제를 '노동자국가'로 보는 이론들  

    트로츠키가 죽은 뒤 많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소련이 (자본주의 부활 또는 새로운 노동자혁명을 향해 나아가는) ‘타락한 노동자국가’라는 트로츠키의 판단을 형식적으로 유지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스탈린주의는 동유럽과 중국, 그리고 그 밖의 지역에서 혁명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신 트로츠키주의자들 대부분은 트로츠키의 용어를 (그 내용은 빼고) 유지하면서 스탈린주의가 완전히 반혁명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유보조건을 (만일 직접 말하지 않았다면 암시하면서) 덧붙였다. 한참 동안 이런 입장의 지도적 이론가는 에른스트 만델이었다. 산티아고 카리요 같은 유로코뮤니즘 인사들과 마오주의에 영향 받은 저자들도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6) 물론 그들은 스탈린주의 국가들에서 혁명이 필요하다고 보지 않는 점에서 트로츠키주의자들과 달랐으며, 주요 주장들도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았다.

    ‘노동자국가’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소련을 사회주의로 보는 이론에 반대하면서) 생산수단의 국유화가 그 자체로 사회주의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스탈린주의적 국유화가 그 자체로 진보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기초를 더 이상 변혁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진정한 사회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의 논지를 약화시킨다. 그런 결론은 오늘날 저렇게 많은 스탈린주의 체제들이 붕괴하는 것에 비춰볼 때, 근거 없는 낙관론임이 드러났다. 더욱이 트로츠키는 결코 그런 결론을 내린 적이 없다. 트로츠키는 후진성과 고립 때문에 소련이 국제적으로 작동하는 자본의 법칙에 종속되었고, 또한 국내적으로는 자산 국유화에도 가치관계가 적용되었다고 이해했다. 사회화를 이루려면 소련은 자본주의를 질적으로 능가하는 경제적 진보를 이루어야 할 것이었다. 오늘날 스탈린주의 국가들에 전형적인 후진성과 위기는 “사회주의”로 보는 이론만큼이나 “노동자국가”로 보는 이론을 손상시킨다.

    더구나 이 이론들은 압도적인 모순에 부딪힌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동유럽 전체로 스탈린주의 지배가 퍼진 것은 (중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는 무장혁명을 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소련의 군사력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 신생국가들은 머지않아 소련식 모델을 채택했지만, 대부분 스스로를 “새로운” 민주주의 또는 “인민”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즉 그들은 (처음에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아니라 단순히 (사회주의로 기운) 좀 더 민주적인 자본주의를 주장했을 뿐이다. 소련을 노동자국가로 보는 이론가들 대부분은 이 신생국가들을 “기형적인” 또는 “관료적인” 노동자국가로 부르기로 결정했다.7) 그런데 이 국가들은 노동계급의 혁명 없이 세워졌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노동자들이 공장을 통제하고 노동자평의회를 수립하려는 시도를 스탈린주의자들이 분쇄한 뒤에야 형성되었다.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이든 이런 창조물을 “프롤레타리아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스탈린주의 국가들에 프롤레타리아라는 명찰을 붙이는 것은 노동자국가가 노동자들 자신의 의식적 활동을 통해서만 수립될 수 있다는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은 오직 프롤레타리아트 자신의 과제”라는) 맑스주의의 결론을 냉소적으로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신 트로츠키주의 개념은 또한 노동자들의 사회주의 혁명은 전위당의 지도를 필요로 한다는 레닌의 가르침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권력을 잡자마자 사회주의가 자신의 목적임을 부정한 스탈린주의 정당들이 프롤레타리아 의식을 가진 전위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해방이라는 맑스의 원리는 결코 추상적인 독단이 아니다. 맑스의 원리는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나온다. 즉 자본주의 체제는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공산주의를 수립하려는 투쟁력을 본래부터 지닌 계급을 유기적으로 창출한다. 다른 계급에게 이런 프롤레타리아적 특징을 부여함으로써, ‘기형적인 노동자국가’ 이론가들은 스탈린주의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적 이해를 거부한다. 본문에서 우리는 그들의 잘못된 개념이 가진 물질적 근거와 그 실천적 결과를 분석할 것이다.  

    스탈린주의 체제를 '국가자본주의'로 보는 이론들  

    이 부류는 폭이 넓은데, 그 안에 몇 가지 흐름이 있다. “극좌파들”은 소련이 임금노동과 같은 자본주의 형식들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그들은 소련에서 자본주의가 1921년 레닌의 신경제정책(NEP)부터 또는 더 일찍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맑스의 국가론을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들처럼, 그들은 자본주의 잔재를 안고 있는 노동자국가가 일정 기간 필요하다는 점을 부인한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론가인 폴 매틱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인 운동법칙인 가치법칙이 스탈린주의 체제에서 적용된다는 점을 부인한다. 따라서 그의 이론은 실제로는 ‘제3의 체제’ 이론이다.8)

    두 번째 흐름은 주로 과거 트로츠키주의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들은 소련 역사에서 ‘타락한 노동자국가’였던 때가 있었음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국가자본주의의 부활 시점을 스탈린이 강제적 공업화 정책과 농민층에 대한 징발을 시작했던 1928년 제1차 5개년 계획이 착수되었을 때로 잡는다. 토니 클리프는 이런 견해의 지도적인 주창자다.

    클리프는 (매틱처럼) 소련 경제에서 가치가 내적 관계의 원동력이 아니라고 믿는다. 러시아는 경쟁 자본주의의 무정부상태가 아니라, 지배자들의 의식적 의지를 통해 내부적으로 다스려지는 “하나의 거대한 공장”과 같은 것이다.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은 (스탈린주의자들로 하여금 대규모 자본축적에 나서게 강제하는) 서방과의 군비 경쟁을 통해서만 경제 안으로 들어온다. 가치법칙을 외부로부터만 도입함으로써, 이 주장은 맑스주의적 의미에서는 이 체제가 자본주의임을 사실상 부인한다. 따라서 클리프의 이론 역시 근본적으로는 ‘제3의 체제’ 이론이다.9)

    과거 트로츠키주의자에 속하는 또 다른 흐름은 제2차 세계대전 뒤 형성된 프랑스의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경향이었다. 그들은 계획이 경제의 무의식적 작용을 제거한 나라에서는 가치법칙이 도저히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소련과 그 위성국들에게 “관료적 자본주의”라는 명칭을 붙여주었다. 이것은 아마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하면서 “자본주의”로 보는 이론으로서는 가장 분명한 형태일 것이다.10)

    1940년대 미국에서 라야 두나예프스카야와 C.L.R. 제임스가 이끈 <존슨-포레스트> 경향은 자본주의로 보는 분석을 더욱 강력하게 시도했다.11) <존슨-포레스트> 경향은 소련에서 가치법칙이 임금노동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것은 우리의 이론에서 근본적인 지점이다. 그러나 매틱과 클리프처럼, 그들은 자본주의 형식이 노동자 국가에 내재한 것이라는 사상을 부정했다. 더욱이 그들은 국가자본주의를 미국을 비롯한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에 적용되는 “세계적인 집중화 경향”의 결과라고 보았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 없이도 미국 경제의 완전한 집중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칼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 이론과 더불어) 몇몇 극좌파 경향들과 공유하는 입장이었다. 이 책의 핵심은 스탈린주의가 ‘경제를 집중화하고 그래서 과학적으로 계획하는’ 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한 형태로 규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있다.

    ‘국가자본주의’ 이론의 세 번째 흐름은 마오주의자들로 구성되었는데, 그들은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프롤레타리아 노선”과 절연한 뒤 소련과 관계를 끊었다. 그들에게는 당의 올바른 노선이 한 나라가 절망적인 경제 환경을 극복하고 사회주의를 이룩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었기에, 그런 노선의 변화가 그 계급적 성격을 다시 바꿀 수도 있다는 게 마찬가지로 논리적이었다. 따라서 마오주의자들은 “사회주의” 러시아의 계급적 본질이 스탈린이 죽은 뒤 (계급관계나 경제조건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지만) 자본주의로 되돌아갔다고 주장했다. 일부 마오주의자들은 마오쩌둥이 죽은 뒤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판단했다. 마오주의자들이 소련을 자본주의로 보는 관념론적 이론은 실제로는 그들의 정치노선이 서방 제국주의와 화해하는 방향으로 기회주의적으로 전환한 것에 상응했다. 소련이 자본주의이며 서방보다 “훨씬 큰 위험”이라는 점이야말로 이러한 목표에서 핵심이었다.

    과거 마오주의자들 가운데 일부는 그러한 속임수에 맞서 그리고 중국이 제국주의에 협력하는 것에 반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을 비난했을 때 소련이 자본주의가 되었다는 마오쩌둥의 선언을 더 이상 무턱대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소련을 사회주의라고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마찬가지로 빈약한 개념을 붙들고 있다.12)

    중국공산당은 흐루시초프의 노선 변경이 러시아를 자본주의로 만들었다고 주장한 사상의 발원지였는데, 자신들의 반(反)유물론적 입장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까다로운 숙제를 다른 이들에게 넘겼다. 이 숙제는 주로 소련경제의 탈집중화와 국가의 탈프롤레타리아화가 스탈린이 죽은 뒤에야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거짓으로 꾸미는 방식으로 해결되었다.13)

    샤를 베틀하임은 가장 세련된 마오주의 이론가이자 자본주의 법칙이 국가화된 형태 속에서 작동하는 것을 순수하게 통찰해 낸 저술가였다. 그러나 그가 근본적으로 갖고 있던 관념론은 조금이나마 맑스주의 분석에 충실하고자 했던 자신의 시도를 압도해 버렸다. 소련에 관한 4권으로 된 저작의 서두에서 그는 신경제정책에서 구체화된 노동자-농민 동맹을 스탈린이 파괴한 1920년대 말에 “프롤레타리아 노선”이 폐기되었다고 넌지시 말했다. 저작의 말미에서 그는 반혁명과 더불어 혁명 또한 거부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는 측은하게도 정당한 근거를 거의 밝히지 못했다. 그가 제시한 근거는 약 2천 쪽에 이르는 저작에서 겨우 몇 단락에 불과했다.) 그는 이제 볼셰비키 혁명 덕에 “인텔리겐챠의 급진적 분파”가 권력을 잡았으며, 그래서 볼셰비키 혁명은 “본질적으로 직접 생산자들을 철저히 수탈하는 것으로 마침내 귀결되는 ‘자본주의 혁명’”이었다고 주장했다.14) 그는 정치노선의 올바름 여부를 갖고 물질적 실체를 판단하는 마오주의 방법을 사용해 먼저 스탈린의 후계자들을 부정했고 그 뒤 마오쩌둥의 후계자들을 부정했는데, 나중에는 레닌 또한 부정하게 되었다.

    매틱과 클리프 등은 국가자본주의에서 가치법칙의 중심적 기능을 부정함으로써 사실상 (가치를 생산하는 계급인) 진짜 프롤레타리아트를 갖지 못한 자본주의를 정의하고 있다.15) 관념론적인 마오주의 입장은 이러한 부정을 훨씬 더 확장한다. 즉 그 체제의 본질이 지배자들의 의지에 달려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스스로 행동하는 계급이 아니라 (“도움을 받아 마땅한 극빈자” 같은) 하나의 도덕적 범주로만 취급된다.  

    스탈린주의 체제를 '제3의 체제'로 보는 이론들  

    소련 체제가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니며 두 체제 사이의 이행기도 아니라는 생각은 소련이 어떤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만 의견을 같이 하는 이론가들이 주장하는 경험주의적이고 상식적인 견해다. 그들이 관찰하기에 소련에는 분명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두드러진 특징들이 없다. 자본주의와 반대로 소련에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아마도 서로 다른 자본들 사이의 경쟁도 없다. 사회주의 또는 노동자국가와 반대로 소련에는 대중적 정치권력과 민주주의가 없다.

    그들의 분석이 본질적으로 부정적이라는 점에서, “제3의 체제” 이론가들은 자연스럽게 스탈린주의 사회들이 대체된 자본주의와 비교할 때 진보적인가를 둘러싸고 견해를 달리한다. 루돌프 바로, 폴 스위지, 움베르토 멜로티는 스탈린주의 사회들을 자본주의에 비해 “진보적”이라고 본다.16) 진보적이지 않다는 견해의 초창기 이론은 브루노 리치와 맥스 샤흐트만의 “관료적 집산주의”였다.17) (샤흐트만은 원래 관료적 집산주의를 진보적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그는 과거의 이 어리석은 짓을 숨기려고 자기 저작의 주요한 부분을 아무런 언급도 없이 바꿨다.) “진보적이지 않다는” 몇몇 이론들은 밀로반 질라스를 비롯한 동유럽 출신의 필자들이 생산했다.18) 또한 소련을 어떤 동학도 전혀 없는 사회, 즉 어떤 생산양식도 존재하지 않으며 체계적인 낭비가 지배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로 묘사하는 이상한 변종도 있다.19)

    ‘제3의 체제’ 이론가들 가운데 좌파들은 (부르주아 여론의 압력 아래) “민주적” 서방이 동방에 견주어 진보적임을 발견하게 될 위험에 맞닥뜨린다. 고전적인 사례가 샤흐트만이다. 그는 스탈린주의 아래서 금지된 노동조합 권리가 노동계급에게는 결정적 문제라고 주장하는 (트로츠키주의부터 서방 제국주의에 이르는) 모든 경향을 이끌었다. 오늘날 샤흐트만의 추종자들은 AFL-CIO(미국노동총연맹-산별조직회의)의 국제 활동뿐만 아니라, 미국 노동조합 관료층의 여러 분파를 이끌고 있다. 이런 입장을 갖고 그들은 (자본주의에서 관료들에게 물질적 기반을 제공하는) 이윤을 노동자들이 침해하지 못하게끔 미국과 해외에서 노동조합 투쟁에 대한 억압을 지원한다.

    ‘제3의 체제’ 이론들 대부분은 새로운 형태의 계급사회 발견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운동법칙에 관한) 어떤 과학적 분석도 제시하지 않는다. 운동법칙을 제시했던 아마도 유일한 사례는 폴란드의 맑스주의자 자섹 쿠론과 케롤 모젤류스키의 분석이었다. 1960년대에 그들은 “당에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정권의 전복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징역을 살았다.20) 그들의 분석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고, 불완전한 형태로 ‘국가화된 자본주의’ 이론에 다가섰다. 우리는 그들의 저작에서 통찰력 있는 부분을 우리 자신의 이론에 통합시켰지만, 그들의 저작에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들도 포함되어 있다. (제5장 참조)

    ‘제3의 체제’ 개념의 이론적 경솔함은 두 가지 상반되는 변종을 통해 볼 수 있다. 한 가지 변종은 소련의 관료적 집산주의가 1965년 경제대개혁을 통해 자본주의로 평화롭게 진화하기 시작했다고 본다.21) 다른 한 가지 변종은 혁명을 겪었으나 여전히 자본주의적인 쿠바가 카스트로 통치 아래서 관료적 집산주의로 변모해 갔다고 본다.22) 맑스주의 변혁론에 입각하자면, 어떤 사회가 혁명을 겪지 않고 자본주의로 변모할 수 있거나 또는 자본주의로부터 변모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줄곧 자본주의임에 틀림없다. 물론 같은 논리가 1989년 말 스탈린주의 사회들이 겪은 당면한 변화에도 적용된다.

    ‘제3의 체제’ 이론들의 큰 이론적 결함은 그 체제를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주된 생산자 계급을 “노동자”로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과의 관계 속에서만 하나의 계급이 된다. 맑스가 썼듯이, “자본은 임금노동을 전제하고 임금노동은 자본을 전제한다. 그들은 서로 상대방 존재의 조건이 되며, 서로 상대방을 생성한다.”23) 사실 어떤 착취관계에도 특정한 두 계급이 필요하다.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무산계급은 그 노동력을 사는 계급, 즉 (자본의 인격적 화신인) 자본가 계급에게만 착취당할 수 있다.

    ‘제3의 체제’ 이론가들 가운데 일부는 그런 딜레마를 인식했다. 그래서 샤흐트만은 스탈린주의 체제 노동자들이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노예 또는 “새로운 종류의 국가농노”라는 개념으로 장난을 쳤다.24) 그러나 스탈린주의 아래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아래 노동자들처럼 행동했다. 실제로 1953년 6월 봉기한 동베를린 노동자들은 스탈린주의 정권에 저항해 행진하면서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 노동자다”라고 구호를 외쳤다. 이에 샤흐트만은 물러서서 그들의 이름을 있는 그대로 부를 수밖에 없었는데, 그럼으로써 자신의 또는 다른 어떤 이의 ‘제3의 체제’ 이론이 가진 기초를 허무는 딜레마에 항복해야 했다. 베를린 노동자들은 그들이 당하는 착취의 본질이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이 아니라 임금노동이라는 내용에 있음을 정확히 올바르게 말했다. 그들은 ‘제3의 체제’ 이론이 (본질로 나아가지 못한 채) 현상의 수준에 붙잡혀 있음을 입증했다.  

    여러 이론들의 공통점  

    스탈린주의 체제를 설명하는 여러 이론들이 있으니, 그 이론들 가운데 일부는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결정적인 역사적 변화를 예견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결국 이론은 실천으로 검증되며, 이제까지 맑스주의 사상가들은 많은 기회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실천으로 입증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기존 이론들 가운데 어느 것도 오늘날 스탈린주의가 위기에 빠지고 나아가 자본주의의 전통적 형태로 퇴행하는 것을 예측은커녕 설명조차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몇 년 전 어떤 뛰어난 이론가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스위지는 “혁명 이후 사회들”과 관련해 이렇게 썼다. “내가 알기로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이라는 관점에서 그런 사회들의 발전을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25)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주장하며, 우리가 맑스의 자본운동법칙을 이용해서 스탈린주의의 현재 방향을 예견했음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그 밖의 점에서, 즉 대다수 맑스주의자들이 맑스의 법칙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위지는 옳다. 운동법칙에 입각하지 않은 그들의 이론이 예견능력을 전혀 갖지 못한다는 사실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운동법칙의 누락은 특히 소련 체제가 자본주의라고 믿는 사람들 쪽에서 두드러진다. 이미 지적했듯이, 매틱과 클리프는 그 체제의 핵심에 가치법칙이 작동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의 ‘국가자본주의’ 분석은 좀 더 맑스주의적으로 꾸민 ‘제3의 체제’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이행기국가’ 이론도 운동법칙을 부인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런 나라들이 진정 노동자국가라면,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의식적 계획이 자본주의의 맹목적 법칙들을 대체하는 걸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델 등이 주장하는 “자본주의 이후 사회”라는 개념은 스탈린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와 견주어 진보적이라고 주장할 뿐, 스탈린주의 국가들이 질적으로 진보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고는 주장하지 않는다. 만델의 말대로 관료적인 노동자국가들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얼어붙었다.” 내적 동학이 없다면, 스탈린주의 국가들에는 이행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으며, 따라서 노동자국가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만델의 이론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놓인 ‘제3의 체제’ 이론으로 간주할 때에만, 만델의 이론은 내적으로 일관성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스탈린주의 체제에 관한 주요 이론들은 모두 사실상 하나의 부류, 즉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체제’ 이론으로 환원된다. 게다가 그들은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운동법칙을) 만들어 내지 않는 생산양식을 가정하고 있다. 그 생산양식은 맹목적인 법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중앙의 결정에 의해서 지배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회에는 정체와 붕괴를 낳을 내재적 이유도, 근본적인 계급갈등도 전혀 없다는 것이다. 체제 전반의 위기는 오로지 잘못된 계획이나 압제 때문에만 야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태적인 스탈린주의라는 개념은 심각한 정치적 결과를 낳는다.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내적 운동이 없는 사회는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을 제공하지 못한다. 대중은 고난과 전제에 맞서 반란을 일으킬 수 있지만, 자기조직화의 형식을 혁명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주의 의식을 습득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한다.

    맑스가 자본주의를 계급투쟁을 동력으로 발전과 변화가 이루어지는 사회로 분석한 것과 비교해 보라! 이 운동은 한편으로 위기들과 쇠퇴를 낳지만, 다른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트 의식과 조직의 강화를 낳는다. 운동법칙은 프롤레타리아트로 하여금 착취에 저항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지배할 준비를 하게 한다. 20세기에 벌어진 모든 노동계급 반란에서 나타난 이중권력 노동자평의회(또는 소비에트)는 이 점을 확실히 보여준다. 이것은 혁명적 맑스주의가 낙관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이유다.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혁명적 신뢰의 결여는, 여러 방식으로 맑스주의적인 것처럼 가장했지만 결국엔 전반적으로 ‘제3의 체제’ 분석으로 환원되는 이론들에서 핵심적인 문제다. ‘제3의 체제’ 이론가들이 (그리고 ‘국가자본주의’ 이론가들과 ‘노동자국가’ 이론가들이) 스탈린주의에 맞서 제시하는 “혁명적” 민주주의라는 강령은 사실은 혁명적인 것이 아니다. 이 강령은 억압에 대해서는 일부나마 해답이 되겠으나 착취에 대해서는 전혀 해답이 되지 않는다. 이 강령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단지 (권력이 아니라) 정의를 추구할 줄 아는 영웅적인 또는 조종 가능한 얼간이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믿음에 이바지한다. (우리는 8장에서 전형적인 사례를 볼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스탈린주의뿐만 아니라 통상적인 자본주의와 관련해서도 냉소주의적 태도와 틀림없이 병행한다.  

    중간계급 맑스주의  

    노동계급의 혁명적 능력에 대한 패배주의적 태도는 20세기 자본주의에 출현한 “새 중간계급”의 사회적 전망을 보여주는 하나의 질병이다. 이것은 단순히 오늘날 좌파가 대체로 중간계급 출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이긴 하지만.) 오히려 문제는 중간계급 출신이든 아니든 그들이 중간계급의 세계관을 지녔다는 데 있다. 이는 무엇보다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공산주의 전통이 패배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쁘띠부르주아 소상인처럼, 중간계급은 자본가들 사이의 치열한 투쟁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한다. 또는 여러 층위의 인텔리겐챠들처럼, 중간계급은 사회를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라는 두 강력한 세력이 지배하는 것으로 보면서 두 주요 계급으로부터 독립해 그들 자신이 권력의 중심에 서서 국가를 통제하고자 한다.26)

    중간계급 맑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란 자본주의 사회를 타락시키는 비천한 물질적 동기에 대한 거부를 필요로 한다고 믿고 있다. 낡은 탐욕과 물질주의를 극복한 “새로운 사회주의적 남성과 여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분명히 자본가들은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역시 자본주의 아래서 근근이 생존하려면 그들 사이에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기에 대체로 적격자들이 아니다. 사회주의에는 진보적이며 사회의식을 가진 사람들, 즉 기획자들, 과학자들, 이론가들 등처럼 한마디로 경제적으로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중간계급이 필요하다. 이러한 세계관과 관련된 것이, 맑스주의는 중간계급 좌파에 의해서 노동자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개념, 즉 아마도 레닌으로부터 유래한다고 알려진 사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님을 제2장에서 확인하라.) 중간계급 맑스주의가 바라보는 사회주의는 무지몽매한 자들을 위해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통치하는 사회다.

    물론 자신을 맑스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상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계급적 뿌리를 자각하지 못한다. 자신의 강령을 ‘프롤레타리아의’ 과제로 제시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작은 기업들이 지배하는 신화적 세계를 원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대신 대체로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노동자들 또는 “민중”이 통제하는 대중적 기구들의 상호 견제력을 통해서 안정이 이룩되는 모종의 민주주의 사회다. 그 의도와 상관없이, 중간계급은 트러스트 해체 또는 탈집중화를 내걸고 독점과 싸우는 자유주의자들과 비슷한 성향을 드러낸다. 양자는 공히 거대한 괴물과 같은 국가권력에 민주주의를 대치시키려고 국지적 통제, 또는 그것의 노동자주의적 형태인 현장 통제를 역설한다.

    이런 관점이 갖는 한계는 혁명기에 절정으로 치닫는다. 중간계급 좌파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거대한 권력을 휘두르게 될 가능성에 맞서면서 끝내 기존 지배자들의 권위에 호소하게 된다. 그래서 1917년 러시아의 멘셰비키는 부르주아 임시정부를 지지했고, 1919년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본을 위해서 노동자들을 박살냈으며, 1968년 프랑스 공산당은 드골을 위한 최후의 방어자임을 입증했다. 1936년 스페인의 무정부주의 지도자들 또한 부르주아 국가기구에 합세했다. 권력의 집중을 반대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은 끝내 반(反)노동계급적 국가기구의 품 안으로 뛰어든다. 언젠가 트로츠키가 말했듯이, 자칭 맑스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변증법적 발전을 무시한다고 해서 변증법이 그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다시 시작된 자본주의 위기는 진정한 공산주의의 긴박한 필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강력하게 전 세계에 걸쳐서 그 존재를 느끼도록 만들어 왔다. 그에 대응해서 중간계급 좌파는 노동자들의 반항에 박수갈채를 보내면서도, 그들이 계급적 독립성을 지키려는 노력에서 일탈하게 만들고 사회민주주의나 스탈린주의의 잘못된 지도자들에게 묶여 있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를테면 폴란드에서 좌파 조언자들은 1980~81년 혁명이 “스스로를 제한하게” 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했다. 영국에서 좌파는 노동당이 1984~85년 광부 파업을 죽이는 데 협력한 것을 폭로하는 대신, 노동당에 훨씬 더 깊숙이 파묻혀 들어갔다. 미국에서 좌파는 제시 잭슨이 눈치 빠르게 대중의 불만을 알아차리고 그러한 불만을 민주당이라는 자본가당의 틀 안에 가두려고 선동을 펼칠 때 선거운동이라는 함정에 두 번이나 열심히 빠져들었다.

    좌파의 치명적인 시도들은 제3세계에서도 있었다. 칠레에서 좌파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 군대를 고스란히 유지한) 아옌데 인민전선 정권과 관계를 끊지 못하도록 교란했다. 이란에서 좌파는 호메이니의 이슬람 공화국이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에서 필요한 한 단계라고 노동자들이 확신을 갖도록 부추겼으며, 결국 노동자들은 준파시스트들에게 패배하는 길로 나아갔다. 니카라과에서 좌파 산디니스타는 미 제국주의의 환심을 사려는 헛되고 파멸적인 시도를 하면서 노동자-농민의 반(反)자본주의 투쟁을 가로막았다.

    맑스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공산주의란 하나의 유토피아일 뿐이고 노동계급은 혁명을 실행할 능력이 없음을 입증했다는 지쳐 빠진 사상을 무덤에 처박아야 한다. 그런 사상은 제국주의의 전후 부흥 덕분에 일시적으로 진정되었다가 이제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위기와 계급 세력들의 압력을 느끼면서 겁에 질린 중간계급들이 질서를 원하며 지르는 외침일 뿐이다.  

    이 책에 대하여  

    스탈린주의에 대한 우리의 분석은 이전 맑스주의 저작에 기초하고 있다. 이미 얘기했듯이, 우리의 인식은 1930년대 소련 노동자국가의 타락에 대한 트로츠키의 분석들에서 시작한다. 제임스와 두나예프스카야, 쿠론과 모젤류스키 같은 다른 이들은 자본주의 소유관계라는 본질이 스탈린주의 아래서 어떻게 특수하게 나타나는지를 파악하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우리가 이전의 이론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결정적인 충격은 1960년대 노동계급 반란의 부활이었다. 특히 거대한 프랑스 총파업, (중국의 문화혁명에서처럼) 스탈린주의 국가들에서 계속되는 노동자들의 저항, 미국의 흑인 빈민가 폭동이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현대 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중심적 지위를 절실히 느끼게 했으며, 마찬가지로 우리로 하여금 맑스주의 안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중심적 지위를 다시 세워 나가도록 강제했다.

    스탈린주의를 자본주의로 보는 우리의 분석을 입증하기 위해서, 우리는 세 가지 기본적인 문제부터 상세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주의 이론으로부터 국가화된 자본주의(statified capitalism) 개념이 도출될 수 있다는 점. 둘째, 소련 지배계급이 1920년대와 1930년대 노동자국가 안에서 국가-당 관료의 타락으로부터 형성되었다는 점. 셋째, 2차 대전 이후 스탈린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 운동법칙의 작동을 보여준다는 점.

    이 책은 역사적 흐름을 따라 서술되었지만, 연대기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 책은 자본주의와 스탈린주의에 대한 맑스주의 이론들을 역사적 현실 그 자체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보고 그 발전과정을 추적한다. 물론 제기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우리는 전형적으로 잘못된 이해와 우리의 분석을 대비시킬 것이다.

    제1장은 맑스의 노동가치론이 표면적인 현상을 결정짓는 체제의 근본법칙임을 보여준다. 독점적 경제에는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화된 경제에는) 가치 개념을 적용할 수 없다는 통상적인 가정과 대조적으로, 우리는 가치가 임금노동에 기초한 모든 체제에 내재하는 것임을 보일 것이다. 덧붙여, 자본주의 위기들을 토론하면서 우리는 맑스의 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할 것이며, 이것이 스탈린주의 경제들에도 적용됨을 보일 것이다.

    제2장에서는 이러한 법칙들을 확장해 자본주의 모순들이 어떻게 제국주의와 쇠퇴의 시대를 초래했는지 보일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놓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양자의 연관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과 트로츠키의 영구혁명 이론이라는 두 개의 전망을 만들어 냈다.

    제3장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대한 맑스주의 이론과 더불어 볼셰비키가 그것을 어떻게 러시아 노동자혁명을 위한 지침으로 사용했는지를 보여준다. 노동자국가란 “자본주의 이후 사회”이거나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가 없는 사회라는 일반적인 생각들과 대조적으로, 우리는 이행기 노동자국가에서 부르주아적 형식들이 피할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한다.

    제4장은 스탈린주의 반혁명의 국면들을 분석하면서, 반혁명이 노동자들이 획득한 성과들을 실질적으로 파괴하고 맑스주의를 이데올로기적으로 타락시켰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1930년대 초반 스탈린의 무모한 공업화 정책이 가치법칙을 폐지했다는 생각을 논박한다. 대신, 1930년대 말에 새로운 자본가 관료들이 강력하게 형성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서 우리는 또한 트로츠키가 발전시킨 스탈린주의 이론을 깊이 있게 검토한다.

    제5장은 이 책의 중추적인 부분으로서, 스탈린주의 관료들이 왜 자본가들이며 국가화된 자본주의에서 운동법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한다. 스탈린주의의 가치 “침해”("violations" of value)는 자본주의 쇠퇴의 시대에 고유한 가치 침해를 반영한다. 스탈린주의가 전형적인 자본주의 방식들을 얼마나 뒤트는가는 스탈린주의가 찬탈한 노동자국가의 잔존물이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제6장은 스탈린주의가 세계 정치에 미친 충격을 살펴본다. 우리는 영구혁명 이론을 2차 세계대전 동안 그리고 이후에 노동계급이 겪은 거대한 패배를 설명하는 데까지 확장한다. 우리는 제국주의 시대라는 개념을 다시 돌아보고, 전후 경제부흥 영향 아래 발전된 이른바 “새 시대” 이론들에 이의를 제기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소련 제국주의를 세계 제국주의의 부차적이지만 필수적인 구성요소로 설명한다.

    제7장은 트로츠키주의 운동 안에서 펼쳐졌던 전후 자본주의와 스탈린주의에 대한 이론들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면서,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타락을 돌아본다.

    제8장은 오늘날 극적으로 쇠퇴하고 있는 소련 체제를 다룬다. 우리는 고르바초프의 개혁 캠페인과 함께 관료층, 개혁파 중간계급, 그리고 노동자 조직들이 내놓은 다른 제안들을 평가한다. 이는 스탈린주의 국가들에서의 혁명 강령을 다룬 마지막 절로 이어진다.

    이 책 전체를 통틀어서, 우리가 비판하는 모든 이론들 가운데, 에른스트 만델과 토니 클리프가 첫 번째에 놓여 있다. 그들은 가장 세련되어 있으며, 러시아 문제에 대한 그들의 입장은 자본주의 전체에 대한 분석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는 그들이 스스로를 트로츠키주의라 주장하면서 노동자 투쟁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하는 국제 경향들의 지도자들이기 때문이다. 좌파 출신의 구식 개량주의를 공격하는 척함으로써, 그들은 우리 계급의 최정예 요소들을 끌어당길 가능성을 확보한다.

    만일 노동자계급이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맑스주의 의식에 도달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차단당한다면, 그것은 세계사적인 수준의 재앙이 될 것이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맑스주의를 타락시킨 스탈린주의, 사회민주주의, 중도주의를 일소해야 한다. 역사의 현 단계에, 반세기 동안 세계 자본주의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했던 스탈린주의 세력들이 붕괴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무대의 중심을 다시 차지하면서, 중간계급 맑스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가 남기고 간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환상을 뒷받침할 물질적 기반 또한 마찬가지로 산산조각 나고 있다. 이 책은 이제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계급투쟁이라는 운동을 인도하기 위한 이론적, 강령적, 그리고 그러므로 실천적 기초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이다.



    스탈린주의 붕괴에 관한 이론들
    무너진 소련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월터 돔(Walter Daum)27)

    10여 년 전 소련과 동유럽 스탈린주의 정권들의 몰락은 세계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냉전 시대를 극적으로 종결시켰고, “역사의 종말”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자본주의 승리로 “새로운 세계질서”가 도래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자유로운 시장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세계관이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이전 스탈린주의 국가들에도 강요되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관은 이전 스탈린주의 국가들에서만이 아니라 세계 대다수 지역에서 경제적 재앙으로 입증되었다.)

    소련과 동유럽 정권의 붕괴는 또한 스스로를 노동계급 혁명가로 여기는 전 세계 거의 모든 조직들과 활동가들이 방향을 잃게 했다. 많은 좌파들은 소련을 사회주의 또는 노동자국가로 여기는 이론들에 빠져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눈에는 소련이 몰락함으로써 맑스주의 또한 거대한 패배를 당한 것으로 비쳤다. 스탈린주의 정권을 반혁명적인 것으로 여겼던 다른 이들 또한 사기저하에 빠졌다. 스탈린주의 붕괴의 충격 때문에 그 뒤 몇 년 동안 사회주의 사상에 귀 기울이는 노동계급 청중들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깊어지는 경제적 혼란은 자본주의가 승리했다는 개념에 의문을 던지고 있으며, 노동계급 속에서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개방적 태도가 되살아나고 있다. 이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매우 중요해졌음을 뜻한다. 스탈린주의가 자본주의 착취의 변형된 형태로서 그리고 전 세계적 규모에서 자본주의 안정에 기여하는 결정적 버팀목으로서 했던 역할을 이해하지 않고서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스탈린주의는 우리에게 두 가지 해악을 남겨 놓았다. 자본주의가 1930년대의 단말마적 고통으로부터 회생하게 했고, 자본주의에 맞서 프롤레타리아적 대안을 추구하던 노동계급 의식을 파괴했다.

    스탈린주의를 파멸로 내몰았던 것들을 떠오르게 하는 오늘날의 모순들은 전체 자본주의의 안정성을 밑에서부터 허물고 있다. 그런데 극좌파가 스탈린주의 위기에 대응하여 제출했던 잘못된 해답들이 솟아오르는 제국주의 위기에 대응하는 노동계급의 해답으로 다시 제출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스탈린주의 지배 아래 만들어진 ‘가짜 사회주의’ 사회들의 계급적 성격과 몰락에 관한 토론을 다시 붙이게 되었다.  

    국가화된 자본주의 (Statified Capitalism)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1976년부터 <혁명정당추진동맹>(LRP)의 (그리고 나중에는 <제4인터내셔널을 추진하는 공산주의자 조직>(COFI)의) 스탈린주의에 대한 독창적인 분석을 제시했다. 소련을 비롯한 사이비 사회주의 국가들은 ‘국가화된 자본주의’의 일시적인(transient) 형태들이라는 것이다. 이제 옛 소련의 혁명가들을 포함하여 다른 이들도 같은 결론에 이르고 있다.

    소비에트 노동자국가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태어났다. 모든 사람에게 풍요를 제공하는 계급 없는 사회, 즉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소비에트 노동자국가의 목표는 가장 발전한 나라들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확산시키는 데 달려 있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국가는 혁명 직후 제국주의 군대와 차르 군대의 공격으로 4년 동안 내전에 휩쓸린 끝에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제1차 세계대전에 뒤이어 내전까지 겪은 소비에트 국가는 말 그대로 폐허가 되었고, 그 결과 이전보다 훨씬 더 후진적인 나라가 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 그 가운데서도 특히 혁명적 중핵들이 거의 사라졌다. 게다가 유럽의 다른 곳에서 노동자의 혁명적 봉기가 모두 패배하자, 소비에트 국가는 더욱 외톨이가 되어 버렸다. 허약해진 소비에트 국가는 가치에 따른 상품교환과 임금 체계 같은 자본주의 요소들을 제거할 수 없었다. 그 결과, 1920년대 동안 스탈린이 이끈 보수적 관료집단이 국가와 집권 공산당의 꼭대기에 자리하고서 자신의 권력을 굳건히 했다.

    타락은 1930년대에 더욱 심하게 일어났다. 1930년대 후반에 일어난 대숙청 동안 스탈린주의자들은 당 안에서 살아남은 혁명적 요소를 모조리 쓸어버렸고 붉은 군대의 장교 집단을 파멸시켰다. 군대, 경찰, 사법부와 같은 국가권력의 본질적 핵심은 볼셰비즘의 모든 흔적이 없어질 때까지 숙청당하고 또 숙청당했다. 따라서 국가기구는 분쇄되었고, 새로운 자본가계급, 즉 몰락한 부르주아지를 대신해서 지배하는 섭정계급인 상층 관료집단의 도구로 재편되었다. 그것은 반혁명의 완성을 뜻했다. 노동자 국가는 파괴되었다. 비록 국가화된 공업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자신을 여느 곳의 자본가들처럼 지배계급으로 수립하게 된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임금노동의 메커니즘을 통해 노동자들로부터 잉여가치를 뽑아냈다. 그 결과 들어선 조잡한 체제를 우리는 “국가화된 자본주의(statified capitalism)”라고 불렀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소련은 서구 제국주의에 맞선 민족해방 투쟁들을 겉으로는 지지했다. 하지만 소련은 이러한 운동들이 자본주의적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게 하는 데 무엇보다 애를 썼다. 유럽에서 소련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억제함으로써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강대국의 세력권을 보장했다.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뒤 노동자들의 혁명적 운동들을 진압하는 데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 따라서 냉전 시기 동안 소련과 서구가 경쟁했지만, 스탈린주의는 국지적인 제국주의 세력권을 독자적으로 확보하면서 미국이 이끄는 세계 제국주의 질서를 떠받치고 있었다.

    이러한 분석은 ??스탈린주의의 삶과 죽음??(The Life and Death of Stalinism)이라는 우리의 책에서 자세히 설명되었다. 이 글에서 우리는 스탈린주의 체제의 몰락과 스탈린주의 이후 세계의 사건들에 비추어 이 문제를 다시 돌아볼 것이다. 또한 몇몇 다른 이론들이 맑스주의 관점에서 볼 때 왜 잘못된 것인지도 다룰 것이다.  

    이론의 붕괴  

    “러시아 문제”는 1917년 이래 줄곧, 특히 스탈린주의자들이 소련을 장악한 이래 노동계급 안에서 논쟁의 대상이었다. 1930년대에 실제로는 독재자였던 스탈린은 소비에트 사회가 계급 없는 사회, 즉 공산주의의 첫 단계인 사회주의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공산주의 운동의 창시자 칼 맑스와 러시아 노동자혁명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의 매우 기본적인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었다. 그들은 사회주의가 결핍의 퇴치를 필요로 하며, 따라서 소비에트 노동자 국가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가장 발전한 공업국들로 확산하는 것을 통해서만 사회주의를 성취할 수 있다고 했다.

    혁명을 배신하는 스탈린주의에 맞서 공산주의 반대파를 이끈 레온 트로츠키는 ‘정치적’ 반혁명이 일어났다고 분석함으로써 스탈린의 도그마에 도전했다. 트로츠키는 노동자 국가가 제거되지는 않았지만, 사회주의를 향해서가 아니라 거꾸로 자본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탈린 관료집단이 지배하는 소련은 “타락한 노동자 국가”가 되었다. 관료들은 전체 노동계급을 실질적인 국가권력의 행사에서 배제했고, 노동계급이 혁명으로 성취한 것들을 밑에서부터 허물었으며, 자본주의 지배를 복원하는 길로 나아갔다. 트로츠키는 계속된 반혁명을 프롤레타리아트에 맞선 “예방 내전”으로 규정했지만, ‘사회적’ 반혁명이 완성되었다는, 즉 국가의 계급적 본질이 (비록 타락했다 하더라도) 프롤레타리아적인 것에서 자본가적인 것으로 바뀌었다는 우리의 결론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타락한 노동자 국가’가 지속되고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 뿌리를 둔 트로츠키의 예언과 달리, 제2차 세계대전은 스탈린주의의 종말이 아니라 오히려 팽창을 낳았다. 스탈린주의의 팽창은 동유럽에서는 소련의 정복을 통해, 중국과 다른 아시아 나라들에서는 노동계급에 기초하지 않은 스탈린주의 당이 이끈 혁명을 통해 이루어졌다. 여러 나라에서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솟구침이 있었지만 분쇄되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처음에는 전통적인 부르주아 정당들과 연합한 인민전선을 통해 통치했다. 노동계급이 가라앉고 무력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스탈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국가화된 자본주의’ 정권을 굳건히 했다.

    트로츠키주의 운동, 즉 <제4인터내셔널>[FI]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혼란에 빠졌다. (트로츠키는 전쟁이 터지기 직전에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암살당했다.) <제4인터내셔널>은 전후 호황 동안 제국주의 나라들에서 급속히 자라났던 중간계급적 환경에 적응했다. 스탈린주의가 거둔 승리들 앞에서, 제4인터내셔널은 [쁘띠부르주아 지식인 사이에 흔해 빠진]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한 냉소주의에 감염되었다. 트로츠키가 스탈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적 개량주의를 노동계급 사회주의에 반혁명으로 맞서는 적으로 여겼던 반면에, <제4인터내셔널>은 서유럽에서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그들의 전망이 사회주의 혁명에 모든 것을 걸지 않을 뿐 진보적인 세력이라고 여겼다. 여기서 동유럽과 다른 곳의 스탈린주의자들이 만일 대중투쟁에 의해 “자극” 받는다면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해 낼 수도 있다는 개념으로 나아가는 것은 금방이었다.

    <제4인터내셔널>은 동유럽의 새 체제들에 대해 처음에는 ‘국가자본주의’라고 정확히 말했다. 그러나 이는 거의 똑같은 경제구조를 가진 소련을 여전히 노동자국가로 여기는 것과 모순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미셸 파블로가 이끈 “정통” 다수파는 동유럽의 새 체제들이 [노동계급이 결코 권력을 장악한 바가 없기 때문에 타락했다기보다는 “기형적인”] 노동자국가로 되었다고 결정함으로써 모순을 해결했다. 그들은 어떻게 노동계급을 분쇄함으로써 건설된 국가가 어떤 종류이든 노동자의 국가일 수 있는지를 전혀 진지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유럽에서 새로운 노동자국가가 정확히 언제 탄생했는지, 즉 소련 군대가 1944~45년에 나치 정복자들에게서 그들을 “해방”시켰을 때인지, 아니면 몇 년 뒤에 공산당이 독자적인 권력을 굳건히 수립했을 때인지에 관해 의견을 일치시킬 수 없었다.28)

    트로츠키주의 운동 내부의 여러 소수파들은 이처럼 뇌를 뒤틀 만큼 맑스주의를 부정하는 것에 반대했다.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지도자 제임스 캐넌은 이렇게 썼다.  

    “나는 상층에서의 조작을 통해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소유관계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혁명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 만일 국가의 계급적 본질이 상층 집단에서의 조작을 통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한다면, 이는 기본적인 이론에 대한 모든 종류의 수정에 문을 여는 것이다.”29)  

    유럽의 대표적인 트로츠키주의 이론가인 에른스트 만델 또한 마찬가지로 정확하게 주장했다.  

    “반대되는 근거들을 충분히 얻기 전까지, 우리는 이전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한 적이 없는 나라에 타락한 노동자국가가 수립되었다는 이론들을 계속해서 불합리한 것으로 여길 것이다.”30)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캐넌과 만델은 공히 이러한 수정과 불합리에 동조했으며, ‘기형적인 노동자국가’라는 우스개놀음을 받아들였다.

    다른 반대파들은 다른 방식으로 그 모순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몇몇은 소련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비롯한 스탈린주의의 범죄들을 설명하면서 소련과 그 모방국가들이 ‘국가자본주의’라는 이론들을 발전시켰다. C. L. R. 제임스와 라야 두나예프스카야는 자본주의의 가치법칙이 소련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석하기 시작함으로써 완전한 맑스주의 이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다. 토니 클리프는 스탈린주의 체제를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했지만, 거기에는 임금노동과 가치법칙이 없다고 주장했다. 맥스 샤흐트만을 비롯한 이들은 스탈린주의가 자본주의 법칙을 따르지 않으며 따라서 ‘관료적 집산주의’라는 새로운 비자본주의적 착취 사회라는 데 동의했다.

    다른 결점은 제쳐두더라도, 이러한 경향들 가운데 어느 것도 소련에서 “체제 변화”의 역사적 요소를 적절히 다루지 못했다. 즉 소비에트 노동자국가가 언제 어떻게 무너졌느냐는 것이다. “타락한 노동자국가”라는 트로츠키의 분석은 필수적인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제임스-두나예프스카야, 클리프, 샤흐트만 모두는 타락한 노동자국가라는 개념 자체, 즉 노동자국가가 도중에 뒤돌아갈 수 있으며 자본주의를 향해 뒤로 돌진할 수 있다는 개념 자체를 거부했다. 그들 모두는 스탈린주의자들이 1920년대 또는 1930년대 초반에 권력을 공고히 한 그 순간 노동자국가를 끝장냈다고 말하거나 넌지시 내비쳤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 이 문제의 핵심은 자본주의 형식이 노동자국가 안에 본래부터 존재한다는 점이다. 맑스와 레닌은 노동자국가가 아직 사회주의가 아니며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이행기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노동자국가는 “부르주아지 없는 부르주아 국가”다. 따라서 초기 소련은 자본주의의 맹목적인 작동, 즉 (가치법칙으로 요약되는) 무정부적 운동법칙들과 프롤레타리아의 의식적인 방향 사이에 서로 투쟁이 펼쳐지는 장으로 출발했다.

    자칭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지배했던 세 가지 정식, 즉 기형적인 노동자국가, 관료적 집산주의,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는 모두 실제로는 한 가지 공통된 이론의 변종이었다. 그들 모두는 스탈린주의 아래서 가치법칙의 중심성을 부인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가치가 생산에서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교환을 통해 결정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세 이론은 모두 지배 관료집단이 수행한다고 주장되는 의식적인 계획만이 경제를 유일하게 조정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이론들의 변종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이론도 스탈린주의 체제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또한 어떻게 사망에 이르렀는지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들은 허약한 스탈린주의 체제가 끝내 붕괴할 것이라는 점을 미리 내다볼 수도 없었고 설명할 수도 없었다. (몇몇 경우에는 심지어 인정할 수도 없었다.) 사실 그들 모두는 좋든 싫든 스탈린주의 체제가 서구 자본주의보다 더 강하고 더 역동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한 입장은 그들로 하여금 스탈린주의 체제가 폭발하는 계급투쟁 속으로 빠져들었을 때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붕괴에 대한 이론  

    스탈린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뒤 거의 반세기 동안 세계 권력으로 존속했다. 붕괴 직전까지도, 우파든 좌파든 거의 모든 관찰자들은 소련 체제가 몇 십 년 동안 고스란히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구의 부르주아 대변인들은 소련의 경제적 힘을 과장했다. 외부의 강력한 적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거대한 제국주의 군대 육성과 국내 계급투쟁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소련이 몰락한 뒤, 그들은 “민주주의”와 “자유로운 시장”의 우월함을 찬양했고, 이것들이 그 지역을 침체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것은 사실상 자신들의 욕심을 표현하는 견해였는데, 서구 제국주의자들은 1991년 말 보리스 옐친이 권력을 잡으면서 가속되었던 옛 러시아 제국에 대한 약탈에 동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좌파 분석가들도 별로 나을 게 없었다. <통합서기국 경향>의 만델이 이끈 “정통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 국가들을 자본주의에 견주어 진보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전쟁 뒤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초기에 높은 성장률을 보인 것에 환호했다. 전통적인 자본주의 세계 대부분에서 그런 것처럼 이것이 일시적인 것임을 인식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스탈린주의 체제의 내적인 부패가 체제를 몰락으로 내몰았을 때 놀라움에 사로잡혔다. 소련이 몰락한 뒤, 그들은 공동의 이론을 갖고 있는데도 옛 스탈린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가 되었는지, 또한 되었다면 언제 되었는지에 대해 의견을 일치시킬 수 없었다. 그들의 “이론”은 분석을 위한 어떤 기반도 갖고 있지 못한 채 그저 한때 자본주의의 위기들로부터 자유로운 듯 보였던 사회들을 위한 단순한 이름붙이기일 뿐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자본주의’ 이론을 주장한 주된 흐름인 토니 클리프의 <국제사회주의 경향>은 국가화된 경제를 자본주의 집중화 경향의 더 역동적인 정점으로 보았고, 그러므로 스탈린주의를 자본주의의 미래 발전으로 해석했다. 스탈린주의는 제국주의를 대신해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높은 단계라는 지위를 차지했다. 따라서 그들은 스탈린주의 지배자들이 사유화를 추진하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없었다.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이론가들은 스탈린주의 체제의 위기가 뚜렷해지고 나서야 자신들의 관점을 바꾸었지만, 왜 입장이 180도 바뀌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관료적 집산주의’ 이론을 가진 이들 역시 스탈린주의를 미래의 물결로 생각했다. 그들은 세계가 서로 대치하는 두 체제 사이의 엄청난 투쟁에 맞닥뜨렸으며, 둘 가운데 스탈린주의가 더 역동적이라고 보았다. 맥스 샤흐트만이 이끈 주류 분파는 원래 스탈린주의가 그 집단화된 소유권 때문에 자본주의보다 더 진보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중에 가서 (무엇보다 식민지 나라들과 옛 식민지 나라들의 현실을 무시하면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이유를 들며 서구 제국주의와 한편에 서기로 결정했다.

    이들과 대조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이론 덕분에 스탈린주의가 일련의 위기에 빠질 것임을 예견할 수 있었다. 이 잡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1976년 처음 발행되었을 때, 우리는 이렇게 주장했다. 산업의 완전한 국유화, 고용·주거·의료에 대한 권리 등 노동계급이 얻은 중요한 성과들이 반혁명을 거치고도 잔존하고 있다. 이는 전면적인 자본주의 착취를 방해하고 있으며, 따라서 스탈린주의 지배자들은 시장경쟁, 대규모 실업, 빠른 물가상승 등 노동계급의 생존조건을 공공연히 공격하는 서구식 자본주의 수단들을 채택하는 쪽으로 내몰릴 것이다. 즉 스탈린주의 사회들이 부닥친 경제침체는 전통적인 자본주의의 방향으로 되돌아가도록 그들을 강제할 것이다.  

    위기의 동구와 서구  

    ??스탈린주의의 삶과 죽음?? 제5장은 전후 스탈린주의가 맞닥뜨렸던 “영속적 위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전통적 자본주의는 호황과 불황이라는 경기순환을 통해 전개된다. 개별 자본가들이 경제체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생산수단을 축적하도록 집단적으로 내몰리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과잉생산 위기로부터 불황이 촉발된다. 경기순환이 하강 국면을 지날 때 가장 후진적이고 허약한 자본들이 사라지고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이 강제로 하락한다. 그렇게 해서 수익성이 되살아나고 확장 국면이 시작될 조건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국가화된 자본주의’라는 스탈린주의 체제는 시대에 뒤처진 산업들을 제거하지 못했다. 그래서 위기들을 해결할 수 없었다. 생산이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계속되면서, 생산성이 꾸준히 하락했다. 보기를 들면 소련공산당 지도자 고르바초프의 수석 경제자문 아벨 아간베기얀은 소련의 1인당 성장률이 몇 년 동안 0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1980년대 중반에 인정했다. 스탈린주의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경제가 서구 제국주의 국가보다 훨씬 뒤처졌으며, 노동계급이 점점 더 적대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여기에 그들이 사유화와 사이비 민주주의 개혁으로 전환한 절박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쓴 책의 주제 가운데 하나는 스탈린주의 체제의 경제 붕괴가 서구에서 작동하는 것과 비슷한 경향들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제국주의 자본가들은 1930년대의 대공황이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런 격변은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대립을 심화시키고 자본주의 지배에 대한 노동계급의 묵종을 밑에서부터 허물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들은 체제 위기를 잠재우고 불황을 미리 막기 위해 경제에 대한 여러 형태의 국가개입에 의지해 왔다. 이러한 조치들은 허구자본(fictitious capital) 거품을 거대하게 형성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는데, 이제 그 거품이 터지면서 (막으려고 의도했던) 위기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역할을 시작하고 있다.31)

    동유럽과 옛 소련 경제에 대한 공개적 조사를 시작하자, 예전에 믿었던 것보다 훨씬 더, 스탈린주의자들이 인적자원과 천연자원 그리고 그들 자신의 자본을 갉아먹으면서 기생적으로 살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고정자본은 대체 없이 고갈되었고, 환경파괴는 끔찍했으며, 산업노동자들의 기대수명은 훨씬 더 짧아졌다. 서구에서도 허구자본 거품은 부분적으로 고정자본 대체에 실패한 데서, 다시 말해서 다 써버린 자본을 잉여가치로 간주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경향이 비록 서구 나라들에서는 아직 동구에서만큼 충만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초과착취당하는 “제3세계”에서만큼 파괴적이지는 않지만, 이는 쇠퇴의 시대에 모든 곳에서 자본주의가 드러내는 전형적 모습이다.

    우리의 이론은 스탈린주의 몰락을 전체 자본주의 세계에 경제적 격변이 일어날 조짐으로 바라본다. 이와 달리 다수 극좌파들은 스탈린주의 몰락을 서구 제국주의의 수명을 연장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세계사적 패배로 여겼다. 틀림없이 서구의 자본가들은 동구의 노동자들과 자원으로부터 많은 잉여가치를 빨아먹었다. 그러나 10년의 흥청거림이 지난 지금 체제의 모순은 훨씬 더 강력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가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역할  

    1989년에 시작된 사건들의 밑바탕에는 경제위기와 점점 늘어나는 불평등이 놓여 있었다. 노동계급의 저항, 특히 1980~81년 폴란드 노동자들의 거대한 분출은 스탈린주의 지배계급의 자기 확신을 밑에서부터 허물고 사회에 대한 장악력을 무너뜨리면서, 현 시대의 사회적 진보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중심성이라는 맑스주의의 근본 교의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1980년 8월 폴란드 노동자들이 만들었던 ‘공장연합 파업위원회’는 (1917년 노동자들이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토대였던) 1905년과 1917년의 러시아 소비에트, 1956년의 헝가리 노동자평의회, 그리고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지배자들에 맞서 혁명적 투쟁으로 떨쳐 일어설 때면 언제든 수립했던 많은 비슷한 기구들을 되풀이한 것이었다.32)

    스탈린주의 권역 전체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은 착취를 강화하려는 지배계급의 강제에 의해 촉발되었는데, 그 착취는 맑스가 발견한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운동법칙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의 책이 설명하고 있듯이, 이 법칙들은 서구의 “전형적인” 자본주의 사회만이 아니라 동구의 ‘국가화된 자본주의’ 사회에도 적용되었다.

    동구에서처럼 서구에서도 국가소유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국가화된 소유 속에 노동계급의 성과들이라는 요소가 원천적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국가화된 소유는 자본가들이 필요로 하는 전면적인 착취를 방해한다. 동유럽과 중국 그리고 옛 소련에서 파상적으로 펼쳐졌던 사유화 기획은 국내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자본주의 지배를 강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노동계급은 증오하는 스탈린주의자들에게 결정적 타격을 가했다. 그러나 비록 지나간 솟구침이 (파업이나 공장점거처럼) 노동계급 형태를 틀림없이 취했다 할지라도, 1989년에 시작된 사건들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은 중간계급 요소들이 이끌었으며, 몇몇 경우에는 반대파 스탈린주의 관료들이 이끌었다. 우리는 1990년 초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 거대한 혁명들은 역사적 위업이지만, 부분적 승리일 뿐이다. 정부들은 무너졌지만, 사회 밑바탕에 놓여 있는 착취관계는 그대로 있다. (…)

    비록 다른 사회세력이 이끌 때조차 노동계급은 스탈린주의를 절멸시키는 데서 진정한 힘이었지만, 위험은 그들이 중간계급 개량주의자들을 따라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

    동유럽은 혁명 과정의 출발점에 서 있을 뿐이다. 다가오는 몇 달 동안 우리는 [경제적 붕괴를 막고 계속되는 대중적 분출에 대처할 능력이 없음에 따라] 정부들이 수립과 몰락을 되풀이하는 걸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관료들과 변신한 개량주의자들 그리고 서구 부르주아들의 동맹이 가진 경제적 권력을 분쇄하지 않는다면, 동유럽 노동자들은 혁명이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것으로 돌아섰음을 보게 될 것이며, 이전보다 훨씬 더 심하게 착취당하는 신세가 될 것이다.33)  

    빠져 있는 핵심 요소는 혁명적 지도력이었다. 다시 말해서, 스탈린주의자들과 개량주의 반대파들의 계급적 본질과 정치적 역할을 명확하게 폭로해 내고, 노동자들에게 진정한 노동자국가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강령을 제시해 내는 프롤레타리아 당이었다. 그러한 당을 갖지 못함으로써, 스탈린주의에 맞선 투쟁은 스탈린주의자들에게서 나온 힘 그리고 그들의 쇠퇴하는 체제가 키워낸 부르주아 요소들에게서 나온 힘들에 패배하고 말았다.

    파괴적인 경제위기와 노동계급 소요 앞에서 자신들의 계급 지배를 유지하려고, 지배계급의 분파들은 국가권력과 경제권력의 일정한 몫을 성장하는 “사적” 부르주아 분파에게 양보하면서 혁명을 회피하는 조치를 교묘하게 수행했다.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계급 지배를 유지하는 데 대중운동을 탈취해 활용했다. 소련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에서는 체제 전환이 먼저 있었다. 이 모든 경우에 ‘국가화된 자본주의’로서 스탈린주의 체제는 [이전에는 사회주의라는 거짓 이름 아래서 어쩔 수 없이 유지했던 ‘노동계급의 잔존하는 성과들’ 대부분을 싹 쓸어버리도록 지배계급에게 허용한] 혼합 체제로 바뀌었다.

    그 결과 러시아를 비롯해 옛 소련에 포함되었던 모든 국가들에서 노동자는 재앙을 겪었다.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고, 임금은 지불되지 않았으며, 의료체계가 파괴되어 사망률이 급격히 높아졌다. 동유럽에서도 노동자들의 조건이, 비록 급격히는 아니라 할지라도, 더 나빠졌다. (전쟁으로 점철된 옛 유고슬라비아는 예외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이 끔찍하게 하락한 것은 공산당 정권이 몰락하기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소비재가 심각하게 부족했고, 환경오염에 따른 질병들과 알코올 중독이 널리 퍼졌다. 유아 사망률은 올라가고 기대수명은 내려갔다. 이러한 참극은 1989~91년의 체제 전환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참극을 더욱 악화시켰을 뿐이다.  

    정치 혁명  

    국가가 분쇄되는 과정 없이 스탈린주의 사회들이 공공연히 자본주의 사회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은 국가의 계급적 본질이 바뀌지 않았다는, 즉 스탈린주의 체제는 원래부터 자본주의였다는 우리의 분석을 확증해 준다.34) 따라서 새로운 정권들을 수립했던 1989~91년의 전환은 ‘정치’ 혁명이었다. 근본적인 착취 체제는 여전히 자본주의지만, 지배계급 내부의 주도적인 힘이 같은 계급의 (서로 중복되는) 다른 분파에게로 이전되었다. 새 정권들은 대중투쟁의 진행 방향을 대중 자신에게 적대하는 쪽으로 돌려놓았고, 비참하게 왜곡된 조건에서도 노동자들이 몇 십 년 동안 지켜왔던 ‘잔존하는 성과들’을 파괴했다.

    이 점에서 이들 정치혁명은 1930년대에 스탈린주의의 사회적 반혁명이 소비에트 노동자 국가를 분쇄했을 때 수행할 수 없었던 단계를 완성했다. 국가기구를 분쇄했던 그 때와 대조적으로, 1989~91년의 정치적 전복에서 국가기구와 그 인물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베를린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주둔하고 있던 소련의 5백만 대군은 1989년에 소련의 지배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1991년에 소련 자체를 지키기 위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는 그 군대가 지배방식을 부르주아화하려고 애쓰고 있던 지배계급의 무기였기 때문이다. 폴란드의 국방장관 플로리아 시비츠키 장군은 퇴각하는 스탈린주의자들과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연대노조(Solidarity) 운동 분파가 함께 구성한 연립정부에서 국방장관으로 다시 임명되었다. 그는 군대를 “국가 형태”의 변화에 적응시키고자 했다.  

    이제 우리가 미래의 도전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는 우리 모든 폴란드 사람 각자에게 달려 있다. 이러한 도전은 민주적이고 의회주의적이며 시민적인 국가형태를 형성하는 것을 포함한다. 국가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지지하면서, 우리는 또한 군대의 모양을 바꾸고 있다.35)  

    “민주적이고 의회주의적이며 시민적인” 국가는 사적 소유를 말하는 암호다. 군사기구는 옛 체제가 새 체제처럼 자본주의 착취를 방어했기 때문에 (새 체제에) 아주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변화가 국가를 통해 먼저 일어나는지 아니면 사적 소유를 통해 먼저 일어나는지는 덜 중요한 문제다. 어떤 경우든 국가는 착취자들의 것이고 노동자들을 탄압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국도 ‘국가화된 자본주의’에서 ‘사적 자본과 국가 자본이 혼합된 체제’로 거대한 전환을 진행해 왔다. 1989년에 톈안먼 운동은 겉보기와 달리 학생을 뛰어 넘어 노동계급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군사력으로 톈안먼 운동을 분쇄하고서, 정권은 이전에 강요할 수 없었던 “개혁”을 계속해서 수행할 수 있었다. 공산당 관료집단은 국가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국영산업 노동자들의 고용·소득·권리들을 강력하게 공격함과 더불어 비국가부문 경제의 실질적인 성장을 추진했다.  

    핵심 : 혁명적 지도력  

    자유라는 이름을 내건 “혁명들”은 노동계급의 기를 꺾어 상대적으로 수동적인 시기로 몰아넣었다. 동유럽 노동자들은 1953년 동베를린에서 1980년 그단스크까지 스탈린주의에 맞서 여러 차례 솟구쳐 올라오며 자신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모든 곳에 있는 노동계급 투사들에게 희망을 던졌다. 그들은 스탈린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이를 진정한 노동자국가로 대체할 길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도 어떤 혁명적 노동자당도 건설되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스탈린주의자들이 진정한 혁명가들을 완전히 쓸어버렸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이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1930년대 소비에트 노동자국가를 죽음으로 내모는 데 일조했던 대규모 숙청에서 1917년 10월 혁명의 목표들을 여전히 견지하려 한 남아있는 지도자들을 완전히 쓸어버렸다. 비슷하게 동유럽에서는 1940년대에 소련군의 등에 업혀 권력을 얻은 스탈린주의자들이 나치 치하에서도 살아남았던 진정한 혁명가들을 제거했다.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대안이 등장하는 데 실패한 책임 가운데 상당한 몫은 트로츠키주의를 견지한다고 스스로 주장했던 조직들에게 놓여 있다. 그들은 이론과 실천에서 투항함으로써 세계적 수준에서 노동계급 혁명의 강령을 명확히 표명하고 그를 위해 투쟁하는 어떤 진지한 세력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다수는 혁명적 진보를 위해 학생운동, 농민에 기반한 게릴라투쟁 그리고/또는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 세력들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들은 비참한 실패 때문에 이러한 개념을 포기했지만, 기본적인 계급적 태도와 이론들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트로츠키주의를 사칭하는 그룹들 가운데 일부는 옛 소련과 동유럽에 지부를 갖고 있었는데, 그들은 작지만 재앙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은 노동계급이 자신의 이름으로 권력을 장악할 가능성을 회의하면서 옛 스탈린주의 체제 또는 새 “민주주의” 체제를 진보적이라고 바라보는 이론들에 빠져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소련과 동유럽의 노동자들은 스탈린주의나 전통적인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어떤 혁명적 대안 지도력도 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반란은 새로운 혁명적 세계관과 전위 지도부를 형성할 가능성을 갖기도 전에 스탈린주의자에서 부르주아로 변신한 자들의 손아귀로 노동자들을 넘겨주고 말았다. 진짜 맑스주의자는 노동계급이 가진 당장의 의식을 미화하지 않는다. 공산주의 강령은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는 대중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거짓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공산주의 강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객관적 요구들로부터 나온다. 계급투쟁이 깊어지면서,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들은 자신의 강령과 과제들을 자각하게 되고 스스로를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정당의 중핵으로 조직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자기 계급의 나머지와 다른 피억압 계층들에게 지도력을 제공한다. 프롤레타리아 정당의 건설은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반드시 선차적으로 필요한 유일한 “단계”다.

    소련의 계급적 성격을 논쟁하는 까닭은 이론적 문제들을 비평하려는 게 아니라, 사회주의로 나가는 데에서 의식적이고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트, 즉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려고 의식적으로 투쟁하는 계급의 중심성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다. 다른 계급들에게, 즉 하늘에서 떨어지는 구세주에게 기대를 거는 좌파들은 맑스주의의 중심적인 가르침을 거부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들은 노동자들을 더 심한 억압과 착취로 내모는 게 본업인 신-스탈린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따르는 길로 노동자들이 잘못 빠져들게 이끌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옐친 쿠데타  

    소련과 그 동맹국들이 1989년 이전까지는 자본주의가 아니었으나 지금은 자본주의라고 믿는 맑스주의자가 있다면, 그는 각 나라를 놓고 다음 질문에 답해야 한다. 언제 반혁명이 일어났는가? 우리는 이미 1940년대에 정통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시점 문제”, 즉 동유럽과 중국 등의 나라들이 언제 노동자국가가 되었느냐는 문제를 놓고 상당한 난처함에 빠졌었다는 것을 언급했다. 1989년 이후 반대의 문제가 마찬가지로 그들을 괴롭히고 있다.

    소련에서 공산당이 권력으로부터 축출당한 결정적인 계기는 옐친이 쿠데타를 패퇴시킨 사건이었다. 관료적인 자본가 지배계급 내부 분파들 사이의 갈등에서, 부통령 겐나디 야나예프가 이끈 스탈린주의 “강경파”는 독점적으로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고르바초프가 강경파들과 더 신속한 사유화를 주장하는 자들 사이에서 유지해 온 정교한 세력균형을 끝내려고 시도했다. 쿠데타는 노동계급에게 중대한 위험을 제기했다. 쿠데타 지도자들은 파업을 즉시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이전 5년간 “글라스노스트”(개방) 캠페인을 통해 고르바초프가 시행했던 제한적인 민주적 조치들마저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혁명적 노동자들이라면 쿠데타에 맞서 싸워야 했으며,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에 대한 당면한 위협을 물리치기 위해 옐친과 군사적으로 연합하는 전술적 제휴를 했어야 했다.

    원칙의 문제로서 혁명가들은 자본가 지배계급 내부의 어떤 분파에 대해서도 정치적으로 지지할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내전이나 무장충돌에서 어느 한 쪽이 노동계급에게 더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할 경우, 우리는 전술적으로 그리고 일시적으로 다른 한 쪽을 방어할 수 있다. 그것은 1917년에 반동적인 코르닐로프에 맞서 반동적인 케렌스키를 방어하는 데서 볼셰비키가 쓴 방법이었고, 마찬가지로 1936년에 파시스트들에 맞서 부르주아적인 스페인 공화국을 방어하는 데서 트로츠키가 쓴 방법이었다. 우리의 입장은 옐친 편에 “군사적 지지”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우리는 총구를 야나예프에게 겨눈 노동자들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노동계급이 곧바로 옐친을 상대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경고했다. 실제로 쿠데타가 패퇴한 뒤, 옐친과 고르바초프는 다른 무엇보다도 파업을 금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협정에 서명했다. 그리고 옐친은 야나예프처럼 칠레의 피노체트가 자신의 모델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강경파들의 반란이 비참하게 실패하면서, 고르바초프의 줄타기 권력은 붕괴하고 옐친이 권력의 정점으로 떠올랐다. 옐친의 승리는 한 줌 소수는 부유하게 하면서 일반 대중은 빈곤하게 만드는 공공연한 자본주의 강탈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비록 야나예프 세력 또한 “자유로운 시장”을 위한 개혁에 헌신하긴 했지만, 그들은 더 천천히 진행되는 과정을 원했다. 따라서 ‘기형적인 노동자국가’ 이론을 가진 이들은 [노동자들을 분쇄하려는 당면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단지 전술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로서 야나예프 측을 방어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대다수는 모호한 민주적 배경에서 옐친을 지지함으로써, 자신들의 ‘노동자국가’ 이론이 텅 빈 미사여구 늘어놓기에 다름 아님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클리프와 <국제사회주의 경향>  

    스탈린주의에 관한 사실상 모든 이론가들은 스탈린주의의 몰락을 예견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그들은 스탈린주의 붕괴가 자신들의 견해를 확증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몇 가지 맑스주의 이론들과 경향들을 살피면서 그들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음을 밝히겠다.

    1990년, 토니 클리프의 동료 크리스 하먼은 스탈린주의의 몰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국가자본주의에서 다국적 자본주의로 이행한 것은 앞으로 전진한 것도 아니고 뒤로 후퇴한 것도 아니다. 그저 옆걸음 친 것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전체 노동계급에 대한 하나의 착취형태가 다른 착취 형태로 바뀐 것뿐이다. 노동자들 가운데 일부는 조건을 개선하기에 더 나은 위치에 서게 되었지만 다른 이들은 조건이 악화되었다.36)  

    1998년 클리프는 자신의 국가자본주의 이론이 정당성을 입증받았다고 주장한 ?시간의 시험?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펴냈다. 그 글에서 그는 “옆걸음” 분석을 되풀이했다. 1990년에는 관찰자들이 사유화와 국유재산에 대한 강탈이 가져오게 될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와 생활수준에 대한 위협을 보지 못할 수 있었다고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대 말에도 그럴 수는 없다. 클리프와 그 동조자들은 스탈린주의 아래서 어떤 수준에서든 노동계급의 성과들이 잔존하고 있다고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그 성과들이 사라지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스탈린주의의 전환은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이론이 모든 본질적인 지점에서 틀렸다는 것을 입증했다. 클리프는 스탈린주의 경제를 내적으로 가치법칙이나 경쟁이 작동하지 않는 사실상 하나의 자본주의 기업처럼 설명했다.37) 따라서 클리프에게는 과잉생산의 주기적 위기가 배제되었다. 클리프는 초기 소비에트 이론가 니콜라이 부하린을 인용했다. 부하린은 국가자본주의에서 경제적 추진력은 지배계급의 소비욕구에 있으며, 이러한 욕구들이 물질적으로 제한적이기에 그러한 체제 아래서 경제성장은 정체된다고 판단했다.

    클리프는 그러나 소비에트 경제가 무기생산의 필요성이라는 또 다른 추진력을 가짐으로써 “부하린 ‘해법’”을 피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새로운 자본과 새로운 축적가능성을 획득하는 수단”38)이었다. 클리프는 무기 지출을 일시적인 활력소가 아니라 거대한 경제적 촉진제로 여겼다. 그러나 사실상 무기 지출은 어떤 경제에서든, 특히 정체된 경제에서는 커다란 부담이다. 소비재뿐만 아니라 자본재도 서구의 속도보다 뒤처졌던 소련이 미국과 무기경쟁을 계속하려 했던 맹렬하지만 파멸적인 시도는 체제의 몰락을 강제한 마지막 일격이었다.39)

    클리프가 [상대적 허약성과 경제적 무정부성으로 귀결된] 스탈린주의의 내적 법칙과 모순을 인식하는 데서 실패한 것은 그 체제가 [의식적인 계획이 실질적인 추진력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더 높은 단계에 해당한다고 생각한 데서 비롯된 결과였다. 그는 1955년에 처음 출판된 자신의 주된 이론서에 다음과 같이 썼다.  

    “국가소유 계획 경제에서 무정부적인 사적 소유 경제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 대규모 국가산업을 사적 산업으로 대체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 퇴보일 것이다.”40)

    최근에 와서, 클리프주의 이론가들은 스탈린주의의 위기라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체제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곤란에 빠져 있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41)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이론에서 근본적인 잘못은 스탈린주의란 노동계급의 중요한 혁명적 성과들을 파괴할 능력을 갖지 못함으로써 기형적으로 뒤틀린 자본주의의 불량 형태라는 점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스탈린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 형태로만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스탈린주의 체제가 지닌 근본적인 허약성에 대해서 그리고 노동자들이 방어해야 할 1917년의 잔존물들을 일부 갖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서 눈을 감았다.  

    '기형적인 노동자국가'를 주장하는 이들  

    ‘기형적인 노동자국가’를 주장하는 이론가들 대다수 또한 스탈린주의를 안정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의 경우에는 “노동자국가들”이 자본주의의 “복원”에 직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로 되돌아 갈 위험은 없다는 견해를 유지함으로써, 만델과 그의 동조자들은 스탈린주의의 자유주의 개혁파들과 어울릴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견해에 귀 기울였던 선진노동자들을 잘못 이끌었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스탈린주의 몰락까지 모든 시기 동안, 만델과 클리프는 트로츠키주의를 고수하거나 동조하고 있다고 스스로 여기는 광범한 세력 속에서 지도적인 이론가들로서 스탈린주의의 본질을 둘러싸고 계속된 논쟁을 벌였다. 그들의 분석이 공히 비참할 정도로 틀렸다는 점은 마지막 분석에서 그 세력의 중간계급 관점으로 입증되었다. 마치 이 점을 입증하려는 듯이, 두 경향은 공히 스탈린주의가 몰락하던 날들에 스탈린주의에 맞선 투쟁에서 중간계급 구세주들을 추종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폴란드였다. 그곳에서 만델의 <통합서기국> 경향과 클리프의 <국제사회주의 경향>은 공히 스탈린주의자들과 이전 연대노조 조언자들이 함께 세운 정부를 지지했다. 그 정부가 스탈린주의 이후 긴축 자본주의를 통치하고 있던 1990년에 말이다.42)

    몇몇 정통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가 몰락한 뒤에 노동자들에 대한 수많은 퇴보가 이루어진 것은 이 국가들이 자신의 계급적 성격을 바꾸었다는 점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맑스주의 국가 이론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다. 만일 스탈린주의 국가들이 비록 기형적이라 해도 노동자국가였다면, 그러한 국가를 전복하는 것은 국가기구를 분쇄하는 것을 뜻해야 했다.43) 방금 전까지 “프롤레타리아” 소유를 방어했던 똑같은 군대가 어떻게 지금 자본주의 소유를 방어할 수 있는가? 그리고 왜 노동계급의 중대한 패배는 [단지 정치적 패배만이 아니라] 사회적 패배를 필요로 하는가? 1933년 독일에서 나치의 권력 장악은 노동자 조직들을 폭력적으로 파괴했지만,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 지배의 범위 안에서 일어난 정치적 반혁명이었다.

    게다가 만일 스탈린주의 국가들이 노동자국가였다면, ['기형적인 노동자국가' 이론에 따르자면 국가소유를 방어하는 데에 천부적인 특권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지배자들이 왜 국가소유의 사유화를 대신 선택했는가? 왜 스탈린주의 통치자들 사이의 논쟁은 사유화라는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 사유화의 속도를 둘러싸고 일어났는가?

    ‘기형적인 노동자국가’의 신봉자들은 언제나 두 개의 반대되는 경향으로 쪼개졌다. 한쪽에서 미국의 <노동자 세계>나 <스파르타쿠스단>(Spartacists) 같은 경향들은 “노동자국가”를 방어한다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에 맞서 스탈린주의자들을 방어했다. 다른 한쪽에서 만델과 그 동조자들은 [과거에 노동자들의 조직인 연대노조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던] 중간계급의 개량주의 “반체제 인사들”을 노동계급의 진정한 지도자들로 선택했다. “정통” 트로츠키주의자들 전체가 가장 따끔하게 들어야 하는 비난은 “기형적인 노동자국가”를 주장한 50년 동안 그들 가운데 누구도 진지한 이론적 분석을 내놓지 않았고 그러한 사회의 운동법칙을 설명하고 그처럼 분명한 모순을 가진 명칭이 정당함을 입증하는 책 한 권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론은 실천에 어떤 지침도 될 수 없었다. 어떤 이론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파르타쿠스단> 경향  

    <스파르타쿠스단>은 소비에트 “노동자국가”가 언제 파괴되었는지를 판단하는 데 특히 곤욕을 치렀다. 그들은 반혁명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얼마 전에 일어났다고 1992년 말에 뒤늦게 선언했다.44) 볼셰비키 혁명의 땅에서 전 세계 누가 보더라도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노동자국가”가 몰락해도 눈감고 넘어가는 것을 그 지지자들에게 허용하는 “이론”은 노동계급에게 쓸모없는 것이다.

    <스파르타쿠스단>은 강경파 스탈린주의자들이 베를린 장벽을 정당화했을 때, 노동자들에 맞서 강경파 스탈린주의자들을 지지했다. (베를린 장벽은 동독 노동자들을 가둬두는 수단이었다. 만일 그 벽을 넘어가려고 시도할 경우 사살되었다.) 그리고 1982년 폴란드 스탈린주의자들이 1천만 명의 노동자들을 진압하자 환호했다. 따라서 그들은 1991년 고르바초프에 맞선 야나예프 쿠데타를 지지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어야 했다. 그러나 이때 그들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이론이 망가지는 길로 빠져 들었다. 그들이 어느 편도 지지하지 않은 한 가지 이유는 만일 야나예프를 지지할 경우 이는 자신들의 최대 라이벌로서 야나예프를 지지했던 <국제볼셰비키 경향>(IBT)이 “옳음”을 인정하는 걸 뜻할 수 있어서였다. <스파르타쿠스단>은 스스로 강령에 대해 볼셰비키 같은 충실함을 갖고 있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자주 사소한 조직적 이해관계에 입각해 움직인다.

    <국제볼셰비키 경향> 또한 [친-스탈린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논리적일지 모르지만] 일관성이 없다. <국제볼셰비키 경향>이 옐친에 맞서 야나예프를 방어한 논거에 입각하자면, 그들은 1989년 12월 루마니아에서도 차우세스쿠를 방어해야 했을 것이다. 권력을 장악한 스탈린주의 개혁파들에 맞서서 또한 차우세스쿠가 잔인하게 진압했던 대중봉기에 맞서서 말이다. 결국 스탈린주의 국가장치를 약화시킴으로써 “노동자국가”를 파괴했던 자들은 개혁파들이었다. 또한 자신의 권력과 약탈품을 지키기 위해서 국가소유를 유지하려고 정력을 쏟았던 이는 차우세스쿠였다. 주민을 먹여 살리는 대신 제국주의자들에게 루마니아의 빚을 다 갚아주며 확고하게 헌신했던 것을 포함한 그의 모든 범죄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는 자신의 소유를 방어하면서 국유화된 소유, 다시 말해 <국제볼셰비키 경향>과 <스파르타쿠스단>의 눈으로 보자면 “노동자국가”를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파르타쿠스단>도 <국제볼셰비키 경향>도 가장 추악한 스탈린주의 학살자를 방어하게 될까봐 기회주의적으로 자신들의 친-스탈린주의 원칙을 일관되게 견지하지 않았다.

    좀 더 최근에 <스파르타쿠스단>은 다시 한 번 스탈린주의 “노동자국가들”의 붕괴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내놓으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60년 동안 관료적으로 잘못 통치함으로써 … 소련의 노동자 대중 사이에 깊은 정치적 냉소주의가 생겼다”고 썼다. 그들은 반혁명 정권을 “잘못 통치한” 정권으로 치장함으로써 노동계급을 비난하고 있다.45) 스탈린주의 “계획”을 찬양했던 자신들의 역사를 덮기 위해, 그들은 소련 경제가 서구와 비교할 때 지체 상태임을 오래 전부터 이해하고 있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1960년, 흐루시초프는 자본주의 서방에 도전했다. 20년 안에 서구 자본주의를 압도하는 세계적 우위뿐만 아니라 “완전한 공산주의”를 실현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우리는 당신들을 파묻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여기서 그는 크레믈린 독재자들의 허위의식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스파르타쿠스단>은 스스로 스탈린주의의 경제적 우월성을 소리 높여 찬양했다. 만델을 비롯해 다른 많은 ‘노동자국가’ 이론 동조자들처럼, 그들은 소련 경제가 구조적인 위기로부터 자유롭고 “생산력의 빠르고 꾸준한 성장을 보장한다”고 명백한 허튼소리를 주장했다. 심지어 레닌 시대 러시아의 사회구조가 브레즈네프 시대보다 “훨씬 더 자본주의 복원으로 가기 쉬웠다”고도 주장했다.46)

    <스파르타쿠스단>은 특히 자본주의 세계가 불황의 늪에 빠져 있던 1974~5년에 소련이 연평균 18%의 성장률을 보였다고 큰소리쳤다.47) 그러한 기적 같은 수치는 완전한 거짓말이었다. 심지어 크레믈린도 그러한 성취를 주장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회주의자의 목소리?? 제4권에서 소련의 성장률 하락을 인용하면서 소련 경제의 우월성을 보여준다는 특별한 수치와 전체 그림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그들은 전혀 응답하지 않았으며 거짓을 바로잡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과거 자신들의 것과 비슷한 주장들을 스탈린주의의 “허위의식”이라며 기각한다. 이번만은 그들이 옳다.  

    <노동자권력>(LRCI)  

    <혁명적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추진 동맹>(the League for a Revolutionary Communist International: LRCI)의 중추인 영국의 <노동자권력> 그룹은 이론적 기초 위에서 자신들의 정치를 정당화하려고 시도하는 몇 안 되는 ‘노동자국가’ 경향들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견해를 여러 번 분석했고 해부했다.48) 그러나 이론에 대한 그들의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를 다른 이들과 구분해 주는 것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자기 입장 바꾸기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소련이 해체될 때, 는 처음에는 소비에트 “노동자국가”를 약화시키지 않을까 하고 비-러시아계 소비에트 공화국들의 독립에 반대했다. 따라서 그들은 1990년 초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공격을 지지했다. 그러나 모스크바가 1991년 리투아니아를 탄압했을 때 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 비록 러시아의 “관료적이고 보수적인 반혁명”이 자본주의를 복원시킬 결정적인 변화들을 막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할지라도 민족자결권을 지지한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몇 년 뒤, 는 유고슬라비아 전쟁 동안 보스니아의 민족자결권을 둘러싸고 여러 차례 입장을 바꾸었다.49)

    는 최근 스탈린주의가 몰락한 국가들의 계급적 본질에 대해 가장 화끈한 입장 바꾸기를 하면서, 아마도 중도주의적 동요로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보여주었다. 명백한 부르주아 세력들이 정권을 장악했을 때에도 는 이것을 자본주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노동자국가 내부에서 정치혁명이 일어났을 뿐이라고 고집하면서 “사멸 직전의 노동자국가들”로 이름 붙였다. 그들은 그 사회들이 자본주의임을 확신할 수 있으려면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는 이러한 선진적인 이행기 나라들 또는 사멸 직전의 노동자국가들에 마지막으로 부과되어야 하는, 자본주의로 되려면 필수적인 구조적 변화들의 핵심을 요약했다. 이것이 실질적으로 완수되는 시점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부르주아 경제 지표라는 믿을 수 없는 프리즘을 통해 동유럽의 국가별 생산이 지금의 깊은 슬럼프를 벗어나서 회복주기가 분명해지는 시점이라든가 이러한 성장이 인플레이션에 기초하지 않으면서 재정적자를 축소시키는 시점 같은 뚜렷한 특징들이 드러나야 한다.50)  

    그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논평했다.  

    <노동자권력>과 는 가치 법칙에 대한 자신들의 이론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 자본주의는 경제가 “노동자국가” 아래서 겪던 침체를 벗어나 결정적으로 도약할 때 승리한다. 즉 에게 자본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경제적 위기들을 해결한다! 이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이는 자본주의가 진보적임을 뜻해야 한다.51)  

    우리는 이 이론의 어리석음을 생각보다 훨씬 더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우리는 이 구절 바로 뒤에 이렇게 썼다. “그 의도가 무엇이든 에게 노동자국가들에 대한 방어는 명백히 후진성에 대한 방어를 뜻한다.” 그러나 그 때 우리는 에게 “사멸 직전의 노동자국가들”은 전쟁이 벌어졌을 때 노동계급 혁명가들이 어쩔 수 없이 방어해야 할 필요가 없는 국가들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이 “노동자국가들”은 노동자계급이 건설하지도 않았고, 노동자들이 국가권력을 가져본 적도 없으며, 방어할 가치가 있는 사회주의 요소들의 잔존물도 존재하지 않는 국가였다. 는 그저 이 국가들을 자본주의로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 노동자국가로 불렀다. ‘기형적인 노동자국가’ 이론들은 실제로는 결국 ‘제3의 체제’ 이론들과 같아진다는 우리의 관찰은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

    2년 전 는 자신의 노선을 완전하게 바꾸었다. 그들은 “사멸 직전의 노동자국가”라는 용어를 폐기하고 “복고주의 부르주아 국가”로 대체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전 이론을 “근본적으로 잘못되고 갈피를 못 잡은”, “비변증법적이고”, “혼란스러우며”, “어리석은” 것으로 규정했다.52)

    의 새 이론은 이런 것이다. “이전에 스탈린주의였던 나라들, 즉 경제가 여전히 완전한 자본주의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 나라들이 반드시 어떤 유형의 노동자국가들인 것은 아니다. 핵심적인 결정요소는 지배적인 소유관계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국가권력이 촉진하고 방어하는 계급과 경제체제가 무엇이냐다.” 보기를 들어, 소련에서는 옐친 정부가 들어선 1991년에 변화가 일어났다. 는 “노동자국가”의 종말을 예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그들은 거의 10년 동안 “노동자국가”의 사망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노동계급의 가장 높은 성취를 뜻해야만 하는 것에 대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전형적인 강단 놀이일 뿐 맑스주의 정치가 아니다.) 는 우크라이나에 지부를 갖고 있는데, 그 지부에 노동계급 회원이 누구라도 있다면 자신들이 비록 사멸 직전이라 하더라도 명목상이나마 지배계급의 일부가 더 이상 아니라는 점을 2000년에야 알고서 틀림없이 실망했을 것이다.

    는 또한 2차 세계대전 뒤 동유럽 국가들이 “노동자국가들”이 된 시점에 대한 판단을 다시 내려야 했다. 그들의 이전 노선은 전환점을 경제가 완전히 국가화된 시점, 즉 1950~51년으로 규정했다. 이제 그들은 전환점이 “정부와 국가들이 자본과 자본주의에 맞서 결정적 조치를 취하며 스탈린 모델에 따른 관료적 계획경제를 창출하기 시작했던 시점, 즉 1948~49년”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프롤레타리아 혁명?? 20호와 21호에 지적했던 핵심적인 문제들을 전혀 풀지 못한다. 1948~49년에도 1950~51년에도 국가장치는 변하지 않았다. 즉 거기에는 어떤 혁명도 없었다. 국가권력의 변화라면 더 일찍, 즉 1944~45년에 소련 군대가 동유럽을 정복했을 때 유일하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때 들어선 정권은 분명히 스탈린주의자들이 이끌면서 공공연히 부르주아 정당들과 연합한 자본주의 인민전선이었다. <노동자권력>의 새 이론이든 낡은 이론이든, 이 자본주의 정권들이 자신의 국가를 부르주아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국가로 전환시켰다는 주장에는 변함이 없다. 즉 자본주의 국가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의 이론이 우스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최근 자기비판을 하면서도 여전히 노동계급 없는 “노동자국가”라는 자기 이론의 핵심적인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료적 집산주의'를 주장하는 이들  

    ‘관료적 집산주의’ 이론은 샤흐트만이 제국주의에 공공연히 순응하면서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미국에는 그 이론이 좌파적 형태로 1960년대 후반 <독립 사회주의자들>(Independent Socialists)부터 오늘날 <연대>(Solidarity) 그룹 속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론은 스탈린주의 체제의 운동에 대해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53)

    영국에서는 션 맷감나가 이끈 <노동자해방> 경향이 ‘관료적 집산주의’ 이론을 부활시켰다. 1998년 맷감나는 자신이 쓴 150쪽 분량의 서문을 함께 붙여 샤흐트만을 비롯한 ‘관료적 집산주의’ 이론가들의 저술집을 발간했다. 맷감나는 트로츠키가 러시아 문제를 잘못 이해한 반면 샤흐트만과 그 동조자들이 기본적으로 옳았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맷감나는 그의 이론적 선배들로부터 스탈린주의의 몰락을 설명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었다. 실제로 그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스탈린주의의 전반적 전망을 잘못 보았다.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트로츠키와 1946년 또는 47년까지의 샤흐트만이 스탈린주의 현상을 역사의 광대한 전진 속에서 하나의 일탈로 간주한 것은 분명히 올바른 것이었다. 1944년 이후 스탈린주의가 지구의 6분의 1로 확산되면서 샤흐트만이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스탈린주의 체제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후임자가 아니라 병행자로 등장했다는 것은 이제 명백하다. 그들은 역사의 막다른 골목이었다.54)  

    맷감나는 러시아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에서가 아니라 냉전에서 서방에 우호적이라는 점에서 샤흐트만과 가장 근본적으로 일치한다.  

    소련이 두 번째 강대국이었던 전후 세계에서 미국과 서유럽 즉 선진 자본주의가 상대 진영보다 더 진보적이었다는 인식은 맑스주의가 사회주의 정치에 대한 균형을 복원하는 데에서 필수적인 한 부분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선진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자들이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더 많은 가능성과 더 큰 자유를 제공했다.55)  

    그러나 서구 자본주의는 제국주의이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제국주의가 옛 식민지 세계의 대중들에게 주었던 가능성은 매우 적거나 없었다. 15년 전, 이 잡지는 맷감나가 자신의 이론을 ‘기형적인 노동자국가’에서 ‘관료적 집산주의’로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에 대한 극도의 냉소주의를 채택하게 되었으며 또한 친-제국주의적인 개량주의에 강력하게 순응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보기를 들어, 그는 1982년 말비나스 제도를 둘러싸고 영국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벌인 제국주의 전쟁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했다.56) 맷감나는 자신의 책에서 샤흐트만이 미국의 쿠바 공격과 베트남 전쟁을 지지하면서 제국주의에 매우 공공연히 투항한 것을 개탄했다. 하지만 그 자신도 같은 방향으로 순응하고 있다.

    미국의 또 다른 ‘관료적 집산주의’ 경향으로 잡지 ??새 정치??(New Politics)의 공동편집자인 줄리우스 제이콥슨은 스탈린주의 몰락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다. 그 또한 기본적인 딜레마에 맞닥뜨려야 했다. 만일 소련이 1991년 이전에 자본주의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옛 지배계급이 새 지배계급으로 전환했는가? 제이콥슨은 자신의 이론에 따라 다음과 같은 논리적 결론을 끌어냈다.  

    러시아 공화국에서는 [소련에서 떨어져 나간 국가들 대다수에서처럼] 옛 공산주의 지배계급의 지도적 인자들이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생존본능에 이끌려 비참하면서도 우스꽝스럽게 발악을 하고 있다. 그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호전적으로 반(反)공산주의적인 부르주아지의 행정 위원회와 금융 엘리트로 스스로 변신하려고 앞다퉈 전력을 다하면서 서로를 거칠게 공격한다. 유례가 없는 일차원적인 “계급투쟁” 속에서 하나의 지배계급이 자신을 타도하기 위해 맹렬하게 싸우고 있다.57)  

    자신을 타도하는 지배계급이라는 부조리는 하나의 계급이 다른 계급을 대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두 계급이 같은 사람들로 구성된 상황을 설명할 필요 때문에 등장한다. 이것이 “계급투쟁”이라는 개념은 (비록 조롱하는 인용부호를 달고 있다 하더라도)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짜 계급투쟁을 깎아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중요하지 않은 사실을 지나치는 것은 지배자들과 생산자들 사이의 착취 관계에 대한 계급적 분석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그런 이론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러시아 문제”는 단지 스탈린주의 체제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둘러싼 논쟁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노동계급 혁명가들이 자본주의 아래서 수 억 명이 겪고 있는 비참함을 끝장낼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는 데서 자기 계급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제의 핵심에 놓여 있다. 러시아의 1917년 노동자혁명은 우리 계급의 150년 역사에서 걸출한 위업이었다. 스탈린주의의 몰락은 그러한 위업의 뒤틀린 흔적이었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의 남아 있는 성과들을 제거하려는 국가화된 자본주의 지배계급의 필사적인 필요야말로 붕괴를 낳은 결정적인 이유였기 때문이다.

    트로츠키는 소련과 관련해서 노동계급의 지난날 성과들을 방어할 수 없는 자들은 아마도 새로운 성과들을 획득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라고 자주 말했다. 이 말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진실이다.  

    ◇◇◇◇◇◇◇◇◇◇  

    옛 지배계급 출신의 새 지배계급  

    탈국가화를 향한 소련 경제의 변화는 옐친 심지어 고르바초프가 권력을 잡기 이전부터 이미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그 주범은 기존 지배 관료집단의 지도적 인물들이었다. 여기 하나의 설명이 있다.  

    1980년대까지 국가경제의 지역 관리자들은 사실상의 소유주가 되는 길을 착착 걸어왔다. 전통적인 문학은 그들을 정교하게 “주주들”이라고 부른다. 반면 전체 사회는 통제가 느슨해지고 있었다. 지하경제는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강력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실제로 모든 러시아인들이 사적 상품과 서비스를 “왼쪽에서”, 즉 친구들이나 관계들로 연결된 암시장을 통해 샀다. 이미 지하에는 백만장자들과 그들을 먹이로 하는 마피아 갱단들이 있었다. …  

    두 번째 혁명적 사건은 국가로부터 개인 수중으로 막대한 부의 이전이었다. (대략 1988년부터) 몇 년 동안 말 그대로 몇 천 억 달러의 국가소유 자산이 기업가들과 사적 기업들에게 흘러 들어갔다. 그들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이전 국가기업들과 담당 부서들에 연결되어 있었다. 엄청나게 부유한 개인들과 재벌들이 밤새 솟아났다. 군사적 정복을 통한 경우가 아니라면, 인류 역사에 아마도 이처럼 극적이고 놀라운 부의 이전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58)

    다른 설명도 있다.  

    러시아가 1992년 국가산업의 사유화를 시작했을 때, 규정에 따라 공장 지배인들은 자기 공장을 헐값으로 살 수 있도록 보장되었다. 이것은 공장이 사유화되었을 때 실제로는 거의 변한 게 없다는 걸 뜻했다. 경영자들이 마음에 드는 자산과 현금을 약탈할 재량권을 더 많이 갖게 되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공산주의 정권 아래서 경영자로 있었던 이들은 다수가 부자가 되었다.59)  

    이러한 설명들은 (그리고 수많은 다른 설명들은) 관료적 지배자들이 [그들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것이라고 예견했던 파블로주의 이론처럼 국가소유를 방어한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지로 변신했음을 보여준다.  

    ◇◇◇◇◇◇◇◇◇◇  

    저들의 예견과 우리의 예견  

    스탈린주의 몰락 직전에, 이 글에서 다룬 스탈린주의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의 지도적인 대표자들이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여기 있다.  

    로버트 브레너 : 미국 <연대> 그룹의 지도자로서 ‘관료적 집산주의’ 이론을 대변한다.  

    관료들을 위한 해법은 아마도 자본주의일 것이다. … 왜 그들은 그 길로 가지 않는가? 그들은 자본가 계급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가에 기반을 둔 지배계급이다. 지배계급 안에 있는 자들이 쉽게 사회체제를 뜯어 고치고 자신들을 자본주의 사적 소유자들로 전환시킬 수 있는 길은 없다.60)  

    에른스트 만델 : ‘기형적인 노동자국가’ 이론의 가장 대표적인 옹호자.  

    진행 중인 정치투쟁들의 주된 논점은 자본주의의 복원이 아니다. … 관료화된 노동자국가들 어디에서도 쁘띠 부르주아지와 중간 부르주아지는 사회의 작은 소수 이상을 대표하지 않는다. 이들은 비록 매우 제한적일지라도 세계적인 거대자본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집중을 다 합해도 단기간 또는 중기간에 자본주의 복원을 강요하기에는 불충분할 것이다.61)  

    마이크 헤인즈 : 클리프식 ‘국가자본주의’ 이론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불과 2년 전에 이렇게 말했다.  

    비록 소련 경제가 서구 경제보다 더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일 수 있지만, 이러한 차이는 정도의 문제이며, 그 정도가 자주 과장된다. 소련 경제는 서구 선진국들과의 차이가 벌어지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도 상대적으로도 그 차이를 좁히는 추진력을 충분히 보여주었다.62)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는 ‘국가화된 자본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이 잡지에 1988년 후반 다음과 같이 썼다.  

    스탈린주의 지배계급들 가운데 상당한 부분들이 더 이상 자신들의 경제체제에 자신감을 갖고 있지 않으며 안정을 되찾을 모종의 길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 체제의 몰락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혁명정당추진동맹>이 오래도록 주창해 왔던 분석을 입증한다. … 즉 스탈린주의 체제는 피상적으로 집중화된 경제구조를 포기하고 전통적인 자본주의 시장형태를 채택하려는 내재적인 경향을 갖고 있다.63)  

    ◇◇◇◇◇◇◇◇◇◇  

    그리고 다들 평화로운 반혁명을 말했다  

    스탈린주의의 몰락이 계급 지배에서의 변화를 뜻한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문제가 있다. 루마니아를 예외로 한다면, 정권의 변화들이 국가기구 분쇄 없이 평화롭게 일어났다는 점이다. 이 점은 국가란 독점적인 폭력을 사용해 자신의 권력과 특권을 지키려는 지배계급의 소유물이라는 맑스주의의 인식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하지만 모든 종류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노동자국가를 분쇄하지 않은 평화로운 사회혁명이 바로 소련과 동유럽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자권력>  

    <노동자권력>은 우리가 이 잡지에서 이미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개념에 대한 이론적 정당화를 시도했다. 그들은 스탈린주의 동독이 부르주아 서독에게 먹혔을 때 스스로 딜레마를 제기했다.  

    [동독은] 노동자국가의 평화적 전복이 가능하다고 입증했는가? 만일 그 대답이 예스라면, 그리고 그것이 적어도 동유럽 전체에 해당된다고 우리가 믿는다면, 이는 우리를 트로츠키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길로 데리고 갈 것 같다.64)  

    변호사들은 1936년 스탈린이 소련에 강요한 새 헌법에 대해 트로츠키가 했던 논평을 선례로 인용함으로써 그 문제를 풀려고 시도했다.  

    새 헌법은 소련 사회에서 생산자 대중에 대한 특권계층의 독재를 보증한다. 그래서 국가의 평화로운 점진적 소멸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관료들을 위해 경제적 반혁명, 즉 “냉정한 타격”이라는 수단에 입각한 자본주의 복원으로 가는 “합법적” 길을 연다.65)  

    트로츠키가 반혁명이 평화적일 수 있다고 암시했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는 이런 얘기를 한 것이다. 첫째, 관료들의 정치적 반혁명은 완수되었으며, 사회주의를 향한 평화적 이행이라는 희망을 차단했다. 둘째, 새 헌법은 자본주의적 반혁명 또는 사회적 반혁명을 위한 합법적 발판을 제공했다. <노동자권력>은 “냉정한 타격”(cold stroke)이 비폭력을 뜻한다고 형식주의적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트로츠키가 1년 뒤에 썼듯이, “내전에서의 승리 없이 관료들은 새로운 지배계급을 탄생시킬 수 없다.”66)

    가 처음 국가에 대한 맑스주의 사상의 거부를 합리화했을 때, 그것은 단지 동독에만 적용되었다. 스탈린주의가 무너진 다른 국가들은 이러저러한 수식어를 앞에 붙인 노동자국가들로 남아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그들이 “사멸 직전의 노동자국가들”이라는 개념을 포기하고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자본주의라고 인정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국가도 분쇄한 적이 없는 반혁명을 승인함으로써 “내던져지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 복원이 국가의 “분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했다. 사회적인 반혁명은 평화적으로 일어났다. 스탈린주의 아래서 관료기구와 군사기구는 이미 부르주아적 형태를 갖고 있었다. 진정한 혁명적 노동계급 국가와 달리, 스탈린주의 체제는 상비군과 비밀경찰 그리고 선출되지 않은 공직자들을 갖고 있었다. 필요했던 모든 것은 이 국가권력의 최고위층이 통제하는 자본주의에 헌신하는 새 정부였다.  

    다른 말로 하자면, 같은 국가기구가 그 지도자들의 의도에 따라 서로 적대하는 두 계급에게 복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형적인 노동자혁명이라는 파블로주의 이론이 정확히 뒤집어진 것이다. 그것은 국가가 아니라 맑스주의를 분쇄한다.  

    <스파르타쿠스단>  

    얼마 안 있어 <스파르타쿠스단>이 <노동자권력>을 뒤따랐다. <스파르타쿠스단>의 핵심 이론가 조지프 시모어는 한 때 다음과 같이 똑바로 썼다.  

    자본주의 복원은 점진적 전개를 통해서도 권력핵심 인물의 단순한 교체를 통해서도 일어날 수 없다. 그것은 폭력적인 반혁명을 필요로 한다. … 자본주의 복원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적인 요소들이 집산화된 소유를 방어하는 처절한 투쟁의 과정에서 몰살당하는 내전을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67)  

    그러나 스탈린주의가 몰락한 뒤, 시모어는 <스파르타쿠스단>의 법률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새로운 선례를 보았다. 그는 이제 트로츠키가 1928년에 소련에서 자본주의 군사 쿠데타가 가능하다고 암시했으며 “그러한 전복은 전면적 내전의 촉발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스탈린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경찰국가를 수립하고 나자 트로츠키가 그런 시나리오로 결코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했다.68) 이 때 <스파르타쿠스단>은 스탈린주의 국가들이 이미 부르주아 국가가 되었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그들은 동유럽의 정부들은 자본주의지만 국가들은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판단했으며, 사태가 종결되려면 폭력적인 격변이 필수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모어는 소련에서 부르주아 국가의 승리만이 아니라 부르주아 정부의 승리 또한 폭력을 필요로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내전은 별도로 치고, 동유럽에서 일어난 것처럼 자본주의 복원을 추구하는 세력들이 정부를 장악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69) 시모어는 소련과 동유럽에서 공히 “노동자국가들”을 방어하는 데서 스탈린주의 군대와 경찰을 가장 믿었다.

    그러나 <스파르타쿠스단>은, 내전 규모의 폭력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며 스탈린주의 군대기구 또한 분쇄되지 않았는데도, 결국 자본주의가 승리했다는 입장을 뒤늦게 밝혔다. 그들은 “노동자운동에 대한 폭력적인 탄압 또는 유고슬라비아 같은 대규모 민족갈등 같은 거대한 학살을 통한 이 [자본주의] 국가의 강화가 가까운 미래에 있을 것 같다”고 말함으로써 맑스주의 국가론에 동의를 보냈다. 그러나 반혁명은 이미 일어났다고 말했다. 처럼 <스파르타쿠스단>에게도 하나의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 “권력의 계급적 성격이 변화하는 일”이 국가의 분쇄 없이 가능했다.  

    <국제사회주의자들>  

    평화로운 반혁명이라는 사상을 처음 발명한 것은 나 <스파르타쿠스단>이 아니었다.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토니 클리프는 오래 전에 자신의 책에서 그 사상을 방어했다. 클리프가 보기에 러시아에서 자본주의 복원은 1928년 무렵에 일어났다. 클리프는 처럼 “냉정한 타격”을 언급한 트로츠키의 문장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을 통해 트로츠키가 “프롤레타리아 국가로부터 부르주아 국가로의 점진적인 변화는 ‘개량주의의 필름을 뒤로 돌리는 것’이라는 입장을 철회했다”고 주장했다. 클리프는 1930년대 후반 모스크바 재판들이 벌어진 폭력적인 시기를 그가 트로츠키를 따라 부른 대로 “대중들에 맞선 관료들의 내전이요, 오직 한쪽만이 무장하고 조직된 전쟁”이라고 지적함으로써 <스파르타쿠스단>처럼 맑스주의 국가론에 동의를 보냈다.70) 그러나 <국제사회주의 경향>에 따르면 그 때는 반혁명이 일어난 지 10년이 지난 뒤였다.

    스탈린주의 몰락 뒤에,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다른 지도자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1989~91년의 전복들을 <국제사회주의 경향>이 노동자국가가 전복되었다고 말하는 시기와 비교함으로써 정통 트로츠키주의자들을 꼼짝 못하게 하려고 시도했다. “1989년 혁명들은 … 1928년 뒤에 일어난 전환에서 수반된 만행들과 대조적으로 대규모 사회적 대립과 폭력의 부재가 두드러졌다.” 그는 클리프가 “1930년대를 ‘대중들에 맞선 관료들의 내전이요, 오직 한쪽만이 무장하고 조직된 전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 주목했다.71) 여기서 캘리니코스는 클리프를 잘못 인용함으로써 저능한 시도를 하고 있다. 또한 맑스주의 국가론에 대한 자신의 포기를 감추고 있다. 그는 내전의 시기를 모스크바 재판들이 아니라 “1930년대”로 규정함으로써,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1928년이라는 시점을 나중의 격변과 직접 연결하려고 시도한다. 그것은 변호사의 주장으로 진실을 대신하려는 것과 같은 시도다. 사실은 <국제사회주의 경향>에게는 반혁명이 노동자국가를 분쇄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노동자권력>은 완전히 한 바퀴 돌아서 재미있는 주장을 가져왔다. 그들은 반혁명의 시점을 1989년으로 잡는 것은 개량주의와 같아지는 것이라는 클리프와 캘리니코스의 지적에 대해 논평했다. “오늘날 트로츠키주의에 맞서 측정된 개량주의의 어떤 값어치도 클리프가 1920년대를 최초 분석한 것 앞에서 또한 측정되어야 할 것이다.”72) 즉, 만일 가 개량주의라면 <국제사회주의 경향>도 개량주의라는 것이다. 정확히.  

    번역 : 양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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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글은 미국의 <혁명정당추진동맹>(the League for the Revolutionary Party : LRP)에서 활동하는 월터 돔(Walter Daum)이 1990년에 쓴 『스탈린주의의 삶과 죽음』(The Life & Death of Stalinism) 가운데 「서문 : 스탈린주의에 대한 여러 이론들」(Introduction : Theories of Stalinism)을 번역한 것이다. 원문은 http://lrp-cofi.org/book/intro.html. -옮긴이  

    2) 1956년 2월 흐루시초프가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스탈린 개인숭배를 비판한 것을 계기로, 동유럽 국가, 특히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혁명이 일어난다. 폴란드에서는 1956년 6월 28일 포즈난의 스탈린 주철 공장 노동자들이 정부의 노동정책에 항의해 시위를 일으켰으나, 곧 반정부시위, 더 나아가 반소련 폭동으로 발전했다. 폴란드의 반소련 움직임은 1956년 10월 19일 고물카 전 통일노동자당 제1서기가 당 중앙위원에 복귀해 친소파인 로코소프스키 원수를 국방장관에서 해임하는 문제로 드러났다. 고물카는 당시 폴란드를 방문한 흐루시초프에게 ‘사회주의의 길은 하나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소련은 이러한 이탈 움직임이 동유럽 전체에 확산되는 것을 꺼려 고물카의 의견을 들어주면서, 신속히 마감한다. 반면 1956년 헝가리 시위는 전혀 다르게 다루어졌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헝가리는 정치·경제적으로 완전히 소련에 종속되어 있었다. 헝가리의 정치 지도자들은 소련의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헝가리의 경제는 소련의 경제계획에 따라 조정되었다. 헝가리의 자원은 소련의 생산을 위해 생산되었고, 그나마 불평등한 무역으로 수탈되었다. 이로 인해 헝가리는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직면한다. 식량도 부족했고, 공장을 가동할 연료도 턱없이 부족했다. 일반 대중들의 불만이 고조되어가자, 소련은 폴란드의 '포즈난 항거'와 같은 사태를 우려해, 헝가리의 오랜 독재자이자 ‘작은 스탈린’이라 불리던 라코시를 제거한다. 하지만 후임자는 라코시의 측근이었던 게뢰였다. 게뢰는 부분적인 양보 조치를 강구했지만 대중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1956년 10월 23일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는 드디어 작가·학생·시민들로 이루어진 대규모 시위가 조직된다. 이들의 첫 번째 요구사항은 사회주의 이념에 입각한 독자적인 국가정책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특히 이들은 소련과의 관계가 평등의 원리에 기초해서 조절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음으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계획의 수정을 원했고, 공장 운영에 노동자를 참여시킬 것을 요구했다. 또한 임금수준 개선과 생활수준 향상도 요구했다. 소련은 군대를 투입해 헝가리 시위를 진압한다. -옮긴이  

    3) 프리드리히 엥겔스(F. Engels), 『공상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Socialism : Utopian and Scientific), 제3부 (1877)  

    4) 샤를 베틀하임(C. Bettelheim), 『소련에서의 계급투쟁』(Class Struggles in the USSR), 제1기 (1974), 42쪽.  

    5) 『마어쩌둥 어록』 -옮긴이  

    6) 산티아고 카리요(S. Carrillo), 『“유로코뮤니즘”과 국가』(“Eurocommunism” and the State) (1977); 필립 코리간(P. Corrigan), 하비 람세이(H. Ramsay) 그리고 데렉 세이여(D. Sayer), 『사회주의 건설과 맑스주의 이론』(Socialist Construction and Marxist Theory) (1978); 마이클 골드필드(M. Goldfield)와 멜빈 로텐버그(M. Rothenberg), 『자본주의 재탄생의 신화』(The Myth of Capitalism Reborn) (1980)  

    7) 예외적인 것이 프랑스의 <노동자투쟁>(Lutte Ouvriere : LO)이다. 이들은 러시아를 여전히 노동자국가로 보면서도 다른 스탈린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분류는, 왜 그렇게 비슷한 사회들이 서로 다른 동학을 갖고 있는가라는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남겨 놓는다. 일본의 제4인터내셔널 그룹 또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소련과 다른 스탈린주의 국가들을 구분한다.  

    8) 폴 매틱(P. Mattick), 『맑스와 케인즈』(Marx and Keynes) (1969)  

    9) 토니 클리프(T. Cliff), 『러시아: 맑스주의적 분석』(Russia : A Marxist Analysis) (1955). 축약판으로 『러시아의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 in Russia)가 1988년 재 발간되었다. 이 책은 『소련국가자본주의』(정성진 옮김, 책갈피 : 1993)로 국내에 번역되었다.  

    10)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C. Castoriadis), 『정치와 사회 저작 전집』(Political and Social Writings), 제1권 (1988), 9, 39, 138쪽.  

    11) 라야 두나예프스카야(R. Dunayevskaya), 『국가-자본주의 사회로서 러시아』(Russia as State-Capitalist Society) (1973) ; C. L. R 제임스(C. L. R. James), 『국가자본주의와 세계혁명』(State Capitalism and World Revolution) (1950)  

    12) 조나단 아더(J. Aurthur), 『소련에서의 사회주의』(Socialism in the Soviet Union) (1977); 앨버트 스지만스키(A. Szymanski), 『붉은 기는 나부끼고 있는가?』(Is the Red Flag Flying?) (1979); 제리 퉁(J. Tung), 『사회주의적 길』(The Socialist Road) (1981)  

    13) 마틴 니콜라우스(M. Nicolaus), 『소련의 자본주의 부활』(Restoration of Capitalism in the USSR) (1975); 혁명적 공산당(Revolutionary Communist Party), 『 어떻게 소련에서 자본주의가 부활하게 되었을까?』(How Capitalism Has Been Restored in the USSR)(1974): 진보적 노동당(Progressive Labor Party), “소련 자본주의(Soviet Capitalism)”, 『피엘 매거진』(PL Magazine), 1981년 봄  

    14) 샤를 베틀하임(C. Bettelheim), 『소련의 계급투쟁』(Les Luttes de Classes en URSS), 제3기, 제1권 (1982), 13쪽  

    15) 이 때문에 클리프는 사상적 동지인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도전을 받아왔다. 그러나 캘리니코스는 클리프 이론의 전체적인 함의는 반대하지 않으면서 단지 수정할 뿐이다.  

    16) 바로(Bahro), 『동유럽의 대안』(The Alternative in Eastern Europe) (1977); 스위지(P. Swezy), “혁명 후 사회”(Post-Revolutionary Society),  먼슬리리뷰(Monthly Review), 1980년 11월; 멜로티(Melotti), 『맑스와 제3세계』(Marx and the Third World) (1977)  

    17) 리치(Rizzi), 『세계의 관료주의화』(The Bureaucratization of the World) (1938; 영어판 1985); 샤흐트만(M. Shachtman), 『관료주의 혁명』(The Bureaucratic Revolution) (1962; 1940년대에 집필)  

    18) 질라스(Djilas), 『새로운 계급』(The New Class) (1957); 마크 라코프스키(M. Rakovski), 『동유럽 맑스주의를 향하여』(Towards an Eastern European Marxism) (1978) 죠지 콘래드와 이반 셀레니(G. Konrad and I. Selenyi), 『계급권력으로 통하는 길 위에 있는 지식인들』(The Intellectuals on the Road to Class Power) (1979)  

    19) 크리티크 매거진(Critique magazine) (글래스고우), 특히 편집자 힐렐, 틱틴(H. Ticktin)의 글들, 또한 도널드 필처(D. Filtzer), 『소비에트 노동자들과 스탈린주의 공업화』(Soviet Workers and Stalinst Industialization) (1986) 참고. 프랭크 푸레디(F. Furedi), 『신화가 벗겨진 소련』(The Soviet Union Demystified)(1986)의 이론 역시 비슷하다; 『프롤레타리아 혁명』(Proletarian Revolution), 29호(1987)를 참조할 것.  

    20) 쿠론과 모젤류스키(Kuron and Modzelewski), 『새로운 정치』(New Politics) (1965); 영국의 국제사회주의에서 혁명적 사회주의 선언으로 재출간됨. 이에 비해서 보다 완전한 번역본은 출판사 메릿의 소책자, 『폴란드의 혁명적 맑스주의 학생들이 말한다 』(Revolutionary Marxist Students in Poland Speak Out)(1968)이다. 두 저자는 1980-81년 연대노조 운동에서 뛰어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무렵 그들은 이제 더 이상 혁명가들이 아니었다.  

    21) 안토니오 칼로(A. Carlo), 『텔로스』(Telos) (1974, 가을); 유고슬라비아의 경우 그런 진화가 완성되었다고 말해졌다. (『텔로스』(Telos), 1978, 여름)  

    22) 사무엘 파버(S. Farber, 『쿠바의 혁명과 반동』(Revolution and Reaction in Cuba) (1976)  

    23) 맑스(Marx), 『임금노동과 자본』(Wage Labor and Capital), 제3부  

    24) 샤흐트만(Shachtman), “스탈린주의적 제국주의의 강령”(The Program of Stalinist Imperialism), 『뉴 인터내셔날』(New International) (1943)  

    25) 스위지(Sweezy), “혁명 이후 사회(Post-Revolutionary Society)”  

    26) 이런 사상은 존과 바바라 에렌라이히(John and Barbara Ehrenreich)의 “전문직·관리직 계급(professional-managerial class)”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전문직·관리직 계급은 신좌파의 본산지로 그리고 소련의 지배계급으로 기능하고 있다. 팻 워커(P. Walker) 편집, 『노동과 자본사이』(Between Labor and Capital) (1979) 참고.  

    27) 이 글은 미국의 <혁명정당추진동맹>(the League for the Revolutionary Party)이 발행하는 기관지 ??프롤레타리아 혁명??(Proletarian Revolution) 제65호(2002년 가을호)에 실린 글이다. 원문은 http://lrp-cofi.org/PR/StalinismPR65.html. -옮긴이  

    28) 이에 대한 상세한 토론은 ??스탈린주의의 삶과 죽음?? 제7장과 ??프롤레타리아 혁명?? 제64호에 실린 ?스탈린주의의 팽창, 제4인터내셔널과 노동계급?("Stalinist Expansion, the Fourth International and the Working Class")을 참조하라.  

    29) ?사회주의노동자당 내부 통신?, 1949년 10월  

    30) ??제4인터내셔널??, 1947년  

    31) 우리가 펴낸 팸플릿 ?경제 붕괴의 망령?(The Specter of Economic Collapse)을 보라.  

    32) 폴란드에서 일어난 중대한 사건들은 이 잡지의 전신인 ??사회주의자의 목소리??(Socialist Voice), 10~16권에 상세히 서술되고 분석되었다.  

    33) ??프롤레타리아 혁명?? 제36호, ?동유럽을 휩쓴 혁명?(Revolution Sweeps East Europe)  

    34) 이 글 뒷부분에 있는 ‘옛 지배계급 출신의 새 지배계급’을 보라  

    35) <뉴욕타임스> 1989년 8월 29일  

    36) ??국제사회주의?? 46호, 1990년  

    37) ??스탈린주의의 삶과 죽음??에서 우리는 클리프의 이론이 사실은 ‘자본주의’ 이론이 아니라 위장된 ‘관료적 집산주의’ 이론이라고 말했다.  

    38) ??소련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 in Russia), 1988년 영문판, 243~4쪽  

    39)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영구군비경제” 이론들에 대한 비판은 ??스탈린주의의 삶과 죽음?? 제7장에서 다루고 있다.  

    40) ??소련국가자본주의??, 273쪽  

    41) 이 글 뒷부분에 있는 ‘그들의 예견과 우리의 예견’을 보라.  

    42) ??프롤레타리아 혁명?? 36호, ?좌파와 동유럽?  

    43) 이 글 뒷부분에 있는 ‘그리고 다들 평화로운 반혁명을 말했다’를 보라.  

    44) ??프롤레타리아 혁명?? 제43호, ?스파르타쿠스단이 수줍게 러시아 ‘노동자국가’를 종결시키다? 참조  

    45) <노동자 전위>(Workers Vanguard), 1999년 8월 6일  

    46) <스파르타쿠스단>이 1977년 발행한 팸플릿 ?왜 소련은 자본주의가 아닌가?(Why the USSR is Not Capitalist) 59쪽과 90쪽에서 인용  

    47) 윗글, 58쪽  

    48) 스탈린주의에 관해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20호, 21호, 48호, 49호를 보라  

    49) ??프롤레타리아 혁명?? 제43호를 보라  

    50) ??트로츠키주의 인터내셔널??(Trotskyist International) 제9호, 1992년  

    51) ??프롤레타리아 혁명?? 제48호, 1995년  

    52) ?자본주의 복원과 국가?(Capitalist Restoration and the State), 2000년 11월  

    53) 이 글 뒷부분에 있는 ‘그들의 예견과 우리의 예견’에 인용된 로버트 브레너의 주장을 보라.  

    54) ??러시아 혁명의 운명 : 비판적 맑스주의의 잃어버린 문서들??(The Fate of the Russian Revolution: Lost Texts of Critical Marxism) 제1권, 155~6쪽  

    55) 윗글, 145쪽  

    56) ??프롤레타리아 혁명?? 제28호에 실린 ?맷감나주의자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Where Are the Matgamnaites Going?)를 보라. 아울러 ??사회주의자의 목소리?? 제17호에 실린 ?말비나스 전쟁이 좌파들을 시험하다?(Malvinas War Tests Leftists)를 보라.  

    57) ??새 정치?? 1995년 겨울호  

    58) 쎄인 구스타프손, ??러시아식 자본주의??(Capitalism Russian-Style), 18쪽과 26쪽  

    59) 로버트 코트렐, ?러시아 : 더 나은 길은 있었는가??(Russia: Was There a Better Way?), ??뉴욕서평??(New York Review of Books) 2001년 10월 4일  

    60) ??노동자해방?? 12·13호. 1989년 8월  

    61) ??국제적 관점??(International Viewpoint), 1989년 10월 30일  

    62) ??국제사회주의??(International Socialism) 제34권, 1987년  

    63) ??프롤레타리아 혁명?? 제33권, ?스탈린주의의 죽음의 고통?(The Death Agony of Stalinism)  

    64) ??노동자권력??, 1990년 7월  

    65) ??트로츠키 전집?? 1935~36년, 358쪽  

    66) ??트로츠키 전집?? 1937~38년, 37쪽  

    67) ?왜 소련은 자본주의가 아닌가?, 62~64쪽, 1977년  

    68) ??스파르타쿠스단?? 1990~91 겨울호, 5~6쪽  

    69) 위 글, 14쪽  

    70) ??소련국가자본주의??, 1988년 영문판, 195~6쪽  

    71) ??역사의 복수??(The Revenge of History), 1991년, 53쪽  

    72) ??영구혁명??(Permanent Revolution) 제9호, ?스탈린주의의 위기와 국가자본주의 이론?(The Crisis of Stalinism and State Capitalist Theory),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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