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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연구 : 6호_자본주의 세계경제 위기의 현 단계
| 2010·08·1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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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론연구]  

    자본주의 세계경제 위기의 현 단계

    김명환

    이제는 더 이상 개별 기업, 개별 은행만 파산 위기에 처해 있지 않다. 그리스 같은 나라들도 파산 위기를 맞고 있다. 아니, 파산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가 하나도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하나의 위기가 다른 하나의 위기를 촉발시키면서 연이어 폭발이 터지는 커다란 화약고와 같다는 점을 지난 2년간의 사태 전개는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위기를 억제하기 위해 사용한 해법조차 결국은 위기를 증폭시키기만 했다. 위기는 사라지기는커녕 더 깊고 위험한 국면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이런 위기의 새 국면이 어떻게 전개돼 왔고 어디까지 갈 것인가? 지금 유럽과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과연 일부 정치가들이나 논평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몇몇 자본가나 정부의 부패나 무능력인가? 아니면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 전체인가? 위기의 새 국면이 노동자계급에게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방어할 뿐만 아니라 뒤틀린 사회 전체를 바꾸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어떤 것인가? 이 글은 이런 문제들을 다룰 것이다.  

    은행을 구제하기 위한 국가 개입  

    2008년 9월 15일, 미국 최대 투자은행 가운데 하나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다. 그 직후 여러 나라가 빠르게 대대적으로 개입해 금융 시스템을 강타한 극도의 자신감 위기, 즉 투자의욕 상실의 위기를 어느 정도 누그러뜨렸다. 하지만 그건 임시땜빵이었다. 새로운 투기 붐이 이미 새로운 거품을 키워왔는데, 그건 언젠가 반드시 터질 수밖에 없다. 은행 간 거래(은행들끼리 서로 돈을 빌려주고 빌리기)는 회복돼, 위기 이전처럼 순조롭게 굴러가고 있다. 하지만 은행은 스스로는 신용대출을 받으면서도, 일반 고객한테는 신용대출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은행의 자신감 위기는 기본적으로 모든 은행이 자기 보유고에 엄청난 양의 불량채권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발생한다. 하지만 누구도 개별 은행이 얼마나 많은 불량채권을 갖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2007년 여름에 부동산 위기가 터지고, 미국 모기지(부동산 담보 대출) 시스템이 붕괴한 다음, 미국 모기지론 관련 채권이 첫번째 ‘악성’ 채권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몇 주 후에는, 이렇게 일부 채권에 국한된 불신이 금융시장에 범람해왔던 모든 다른 위험한 채권들로 확산됐다. 주택 부문에 대한 도박에서 아주 엄청난 위험을 겪었기 때문에, 은행들은 이제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려 했다. 그 결과 금융시스템이 마비됐다. 그리고 전례 없이 유동성(현금)이 넘쳐났지만, 은행가들은 몇 달 동안 서로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보통 때는 담보 역할을 했던 채권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일상적인 은행간 대부 시장의 금리가 하늘높이 치솟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은행들은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극도로 비싼 금리로도 대부해주려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유동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넘쳐났다. 하지만 현금에 목마른 은행가들은 그런 넘치는 유동성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 모든 곳에 신선한 물이 있었지만, 마실 수 있는 물은 한 방울도 없었다!

    이 금융위기가 터지는 데에서 이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은행들이, 이제는 신용사업을 인정사정없이 막아버림으로써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거대 투자은행들의 사적 이해는 전체 금융시스템을 붕괴 지경으로까지 몰고 갔다. 자금 투자와 무역에서 필수적인 현금의 흐름이 경제에서 사라지자, 실물경제라고 불리는 산업, 즉 대중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물질적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산업도 침체했다. 결국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수렁으로부터 은행가들을 건져내기 위해, 자본가계급의 보편적 이해를 대표하는 국가가 직접 개입했다.

    “금융시스템을 구하라”는 것이, 국가개입에 반대한다고 표명해왔던 국가들을 포함해 모든 제국주의 국가의 슬로건이 됐다. 이 국가들은 자신의 모든 자원을 은행을 살리기 위해 쏟아부었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낳은 공황 3일째에 미국 정부는 은행들이 갖고 있는 불량채권을 사들이기 위해 7000억 달러를 풀겠다고 선언했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일, 영국, 프랑스 정부가 그 뒤를 따랐다. 은행이 무너지도록 국가가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점을 은행가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3조 달러가 넘는 돈이 풀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사회의 압도적 다수인 노동자민중은 실패한 자본주의 체제를 구하기 위해 쏟아부어진 돈을 통제할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정보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도 없다. 결국 은행을 살리기 위해 지폐, 국채 등 여러 형태로 투입한 엄청난 돈을 충당하려면 사회로부터 그만큼을 뜯어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인간노동의 거대한 낭비를 뜻한다.

    각국 정부는 자본가들을 살리기 위한 국가 개입을 “경제를 복원하기 위한 계획”이라고 거만하게 그리고 왜곡해서 불렀다. 이런 국가 개입의 목표는 은행 간 신용거래를 복원하기 위해 은행 간 불신을 줄이는 것이었다. 이 모든 조치는 아무도 사려 하지 않는 은행의 불량 채권을 국채(국가가 뒷받침하기 때문에 위험이 없다고 믿는)와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을 담보로 이루어졌다.

    세계 금융시스템에서 미국이 결정적 역할을 해왔고, 금융위기 동안에 미국 국채가 인기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 연준[중앙은행]이 국채를 더 많이 발행해, 민간 채권과 교환하기로 한 것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다른 한편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다소 위험하고 다소 ‘악성’인 채권에 짓눌려 곤두박질쳤다. 2008년 9월 10일과 12월 31일 사이에, 연준의 다른 ‘자산’ 보유액은 9500억 달러에서 2조 3000억 달러나 됐다. 연준의 “인쇄기가 과로하고 있다”고 말해졌던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시간은 흘러간다. 그리고 돈은 지금 지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형태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가개입은 예전과 똑같고, 결과도 다음과 같이 똑같다. “그들이 돈을 마구 찍어낸다. 그러면 인플레가 온다.”

    민간은행의 불량채권과 교환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돈을 찍어내는 것은 달러 자체가 허풍에만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것이 달러의 지위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안전한 투자처를 찾는 투자가들은 다른 어떤 통화나 다른 어떤 국채보다도 달러를 계속 더 선호했다. 특히 금융위기가 고조돼 있는 상황에서는 더 그랬다.

    하지만 극심한 혼란이 진정되자마자, 달러는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통화 투기가 되살아났다. 그러면서 새로운 통화 위기가 수면 위로 희미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가 개입의 다른 측면은 금융 위기 때문에 가치가 하락한 은행의 자본을 재구성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었다. 몇몇 경우에, 자본 재구성은 일시적 국유화의 형태를 취했다. 이런 국유화는 은행의 손실을 완전히 없애고, 은행을 다시 수익성 있게 만들 때까지 지속됐다. 다른 경우에는 국가가 단지 은행에 자금을 투입하기만 했다. 주식 수에 상응하는 투표권을 요구하지도 않은 채 은행 주식을 사고, 은행이 원할 때면 언제든지 다시 주식을 되팔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주고받기 과정에서 은행은 더 많은 선물을 받을 수도 있다. 가령 프랑스 정부가 프랑스 BNP은행에 주식을 되팔 때 이런 일이 벌어졌다. BNP은행이 빠르게 회복됐기 때문에, 그 주식 가치는 두 배로 뛰어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주식을 예전 가격으로 팔았다. 그래서 50억 유로의 이익을 포기했다. 결국 BNP 은행의 모든 주주들이 이익을 봤다.

    은행 간 신용거래의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은행들이 유동성을 은행에 무제한 공급하겠다고 결정한 것이 대출보다 더 중요했다.

    중앙은행들이 하나둘씩 자신들의 우대 금리를 낮췄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낮은 금리로 무제한 신용대출을 열어주었다.

    미국은 2008년 말 이래 우대금리가 0%에서 0.25% 사이를 계속 오갔다. 즉 연준은 어떤 은행이든 돈을 원하면 공짜로 빌려줬다. 영국에서는 금리가 몇 주만에 5%에서 1.5%로 떨어졌다. 유럽중앙은행의 경우, 반응이 어느 정도 느렸다. 왜냐면 그 은행은 한 국가의 기관이 아니라,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국가들의 연합체인 유로존의 기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유럽중앙은행도 그대로 따라갔다. 기본 금리를 1.25%로 내렸다가, 그 다음에 1%까지 내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은행도 “실물경제의 침체가 위험 수위에 달한 만큼 충분한 유동성 공급을 통한 시장안정을 위해 파격적인 금리인하가 불가피하다”며 2008년 8월 7일에  5.25%였던 기준금리를 몇 차례에 걸쳐 2009년 2월 12일 기준으로 2.0%로까지 내렸다. 한국은행은 2.0%라는 최저금리를 1년 6개월 동안 유지해오다 2010년 7월 9일에 0.25% 올려 2.25%로 높였다.

    모든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낮췄지만, 정확히 똑같은 수준으로 금리를 고정시키지는 않았다. 그래서 금리 차이 때문에 투기꾼들한테는 새로운 기회가 왔다.

    투기꾼들은 금리가 매우 낮은 나라에서 돈을 빌린 다음, 더 이익을 남길 수 있는 다른 나라에 투자했다. 금리 차이가 작을지라도, 투기꾼들은 엄청난 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투기행위로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다. 미국 연준의 금리가 거의 0%에 맞춰지자, 세계 투기꾼들이 주로 미국 달러로 투기행위를 벌였다.

    가치가 떨어진 악성 자산 때문에 잃을 건 많지 않은 반면, 실제로 [금리가] 공짜나 다름 없는 돈에 무제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확신하고, 은행들은 투기에 다시 나섰고, 그렇게 해서 금융시스템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쌓아놓은 자본을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회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결국 금융시스템을 구제하기 위한 계획은 은행가들을 구제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손실은 사회화하고, 이윤은 사유화하자”는 오래된 슬로건이 그 어느 때보다도 왕성하게 실행됐다.

    정부가 금융계에 보낸 메시지는 금융계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이 말하며 미래를 약속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당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어서 해라. 당신들이 할 수 있는 한 투기행위를 많이 해라. 손실을 보상해 주기 위해 국가가 당신들 뒤에 서 있겠다.” 이런 조건에서 금융활동의 회복은 곧 투기의 부활을 뜻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감 위기의 말미에 은행가들은 묶어 놨던 엄청난 돈을 풀어놓았다. 하지만 이 돈이 생산적 투자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은 금융위기 전보다 훨씬 더 적었다. 근본적으로, 시장이 계속 침체해 있고, 실업 때문에 시장상황이 더 나빠지는 상태에서는 금융계가 갖고 있는 모든 돈을 산업이 흡수할 수 없다. 게다가 은행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낮은 금리를 고객들한테까지는(적어도 전면적으로는) 확장하지 않았다. 그들은 금리 차이를 노려 수익을 올리는 걸 선호했다.

    거대 은행들은 중앙은행들로부터 매우 호의적인 금리로 돈을 빌렸다. 그런 다음 많은 담보를 요구하면서 높은 금리로 그 돈을 빌려 줬다. 이게 은행 이윤이 빠르게 회복된 한 가지 이유다.

    또 다른 요인은 맹렬한 투기행위다. 정부의 친금융 정책은 은행을 투기에 따르는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보호막이자 담보물이 됐다. 물론 이런 담보물은 한계가 있다. 생산경제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투기꾼들은 그걸 안다. 그래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모든 투기꾼들은 마지막 투기행위가 붕괴를 낳기 직전에 시장에서 빠져나오겠다고 계획한다.  

    국가권력과 금융업계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위기 때마다 경쟁이 더욱 격화된다. 이 경쟁은 주로 2가지 기능을 한다. 약자를 제거하고, 자본의 집중을 강화한다.

    수많은 소규모 금융회사들과 은행들이 위기를 맞아 쓰러진다. 미국에서는 모기지론 전문회사들이 특히 그랬다. 하지만 국가가 크게 개입해서 쓰러지기 직전인 큰 은행들이나 가장 위험에 처한 금융기관들을(투기펀드 회사나 가장 위험한 채권을 특화해서 다루는 회사 등등을) 구제한다. 따라서 완전히 불합리한 자본주의 경제에서 위기가 할 수 있는 유일하게 유용한 역할, 즉 쓰러져가는 기업을 없애는 것을 국가 개입은 가로막는다. 하지만 이런 개입도 경쟁이 격해지는 것을 막지 못한다. 반대로 국가 개입은 경쟁을 격화시키는 데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국가권력과 금융 간 융합이 이토록 분명했던 적은 별로 없었다. 금융시스템 전반에 대한 국가 원조 뒤에서, 힘 있는 정치인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크게 개입했다. 아무 문제없이 그들은 그렇게 했다. 왜냐면 국가 개입(즉 공적 자금의 분배)은 완전히 불투명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가 분명한 사례다. 골드만 삭스는 지난 몇 년간 모든 투기 거품의 주역, 주요 수혜자 중 하나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쓰레기 채권을 축적해온 은행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도 골드만 삭스는 아무 문제없이 금융위기 국면을 거침없이 통과했고, 2009년 1사분기에 34억 달러의 기록적인 수익을 얻었다고 발표할 수 있었다. 실제로 위기는 금융시스템 안에서 골드만삭스의 위상을 강화시켜 놓았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미 재무부장관이었던 헨리 폴슨은 1999년부터 2006년 사이에 골드만 삭스를 이끌었다. 그는 재무부장관 시절에도 그가 과거에 몸담았던 투자회사, 즉 골드만 삭스의 이해를 간과한 적이 결코 없었다. 정부든, 은행을 통제하기로 되어 있는 다른 기관이든 마찬가지였다. 그런 기관 자체가 골드만 삭스의 최고 간부진이었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2008년 12월 12일에 금융위기가 거의 절정에 달했다. 두 주요 투자은행인 메릴린치와 리먼 브라더스는 파산 위기에 처해 있었다. 메릴린치는 유망한 구매자를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그건 또 하나의 거대은행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였는데, 이 은행은 국가의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폴슨은 리먼 브라더스를 구제하는 데 국고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것은 리먼 브라더스를 낭떠러지로 떠미는 것이었다.

    결국 골드만 삭스의 주요 경쟁자였던 리먼 브라더스는 9월 15일 파산을 선언했다. 이 파산은 세계금융시스템을 공황에 빠뜨리는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3일 뒤 미국 정부는 180도 방향전환을 해, 세계에서 가장 큰 보험회사인 AIG를 구하기 위해 공적 자금에서 850억 달러를 풀었다. AIG는 골드만 삭스에 빚을 많이 지고 있었다. 따라서 AIG가 파산했다면, 골드만 삭스의 금융상 위상도 크게 위태로워졌을 것이다.

    동시에 폴슨은 연방 정부가 은행으로부터 악성 자산을 사기 위해 공적 자금 7000억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연하게도 폴슨의 악성자산구제계획(TARP)은 골드만 삭스에 큰 혜택을 줬다.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는 이론상으로는 악성자산구제계획을 이용할 수 없었는데도 말이다. 골드만 삭스는 편법을 써서 미국 연방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다.

    미국 정부로부터 확고한 지지를 받은 골드만 삭스는, 다른 미국 투자은행들의 붕괴를 활용함으로써 위기를 거치며 과거보다 더 강력해졌다. 미국의 매트 태이비 기자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투자은행은 인간의 탈을 쓴 거대한 흡혈귀다. 이 흡혈귀는 돈 냄새만 나면 무엇에든지 흡혈 빨판을 가차없이 쑤셔넣는다.”고 썼다.

    대통령이나 정부가 바뀌더라도 자신의 이해가 무시당하지 않고, 국가 수반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약화시키지 않으려고 골드만 삭스는 오바마 선거운동에 주요 자금원으로 참여했다.

    은행 상호간의 불신 때문에 일시적으로 얼어붙었던, 엄청난 양의 돈과 채권이 다시 돌았다. 하지만 누구도 미쳐서 돌아가는 국제 금융시장을 재편할 수 없고, 그걸 원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금융계는 금융 붕괴 이전에 돌았던 재앙적 궤도로 단순히 되돌아갔을 뿐이다.

    G20의 지도자들이 조세 피난처와 금융거래자의 성과금에 대해 실랑이를 벌이면서 보통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려고 하는 동안, 금융계는 위험성이 큰 새로운 금융투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G20의 지도자들이 금융계를 ‘훈계’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그들의 실제 메시지는 ‘저금리’ 정책을 통해 금융계가 그런 투기행위를 하도록 고무하는 것이다.  

    금융 투기에 기초한 회복  

    정치인들과 논평가들이 그렇게도 자랑스러워하는 경기 회복은 단지 금융적, 투기적 회복일 뿐이다.

    자본 소유자들은 생산이 침체해 있지만 노동자 착취를 강화해 이윤을 짜낼 수 있는 거대기업의 능력을 기대하면서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데 돈을 건다. 미국에서든 다른 데에서든 증권거래소에서 여러 회사들이 발표한 상당한 이윤은 투기행위를 시작하는 데 발판 역할을 했다.

    신용대출의 개시는 또한 산업, 금융대기업들이 서로를 삼키려 드는 거대한 인수합병 시도가 부활했다는 것을 뜻한다. 자본 소유자들은 생산 투자를 더 갈망하지 않는다. 특히 장기 투자의 경우는 더 그렇다. 하지만 수익성이 좋다고 평판이 난 회사들은 인수하려고 기꺼이 달려든다. 이런 인수 시도 또는 단지 그런 시도에 대한 발표만으로도 주가는 치솟는다!

    투기는 또한 몇몇 원료의 가격을 폭등시켰다. 2008년 12월에 석유는 배럴당 33달러였다. 그런데 2009년 10월에는 배럴당 75달러로 올랐다. 아홉 달 만에 수요가 배 이상으로 급증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사실 자본 소유자들은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 따라서 석유 수요 증가에 대한 기대가 석유값을 인상시킬 것이라고 예상하고 석유에 투기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투기꾼들은 자신들의 예측이 실현되지 않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시장이 반전되기 전에 자기 주식을 팔 수 있는 한, 그래서 돈을 벌 수 있는 한, 수요가 내일 급감할지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정확히 이런 방식으로 투기 거품이 시작되고, 커지다가 꺼진다.  

    금융 손아귀에 목졸리는 생산  

    금융활동의 회복은 경제회복과는 딴판이다. 금융계가 자랑스럽게 광고한 수익과 그걸 얻기 위해 지불한 비용은 노동자들로부터 자원을 대거 빼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점점 더 생산과 멀어지는 금융이 생산에 기생하면서 생산을 질식시키고 있다.

    1982년 이후 최초로, 세계 무역량이 감소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2009년에 9%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몇몇 부문에서는 수입과 수출이 2008년에 비해 30~50%까지 줄어들었다. 세계무역의 감소는 시장 침체의 중요한 단면이다. 하지만 시장 침체는 은행위기와 맞물려 신용의 고갈로 더 악화됐다. 왜냐면 세계무역은 거의 전적으로 신용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세계무역이 감소하면 항상 국가들은 보호주의 정책을 펼쳤다. 그런데 그런 보호주의 정책이 세계무역을 더 축소시킨다.

    지금까지 엄격하고, 분명한 보호주의 조치(예를 들면, 높은 관세)를 취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그런 보호주의 조치를 취하면 1929년 대공황 시기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결과가 빚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노동분업은 그때보다 지금 훨씬 발달해 있다. 이제는 한쪽에 원료를 생산하는 저개발 국가가 있고, 다른 한쪽에 발달한 산업국가가 존재하는 게 아니다.

    오늘날의 생산과정에서는, 결국 단일 완제품(예를 들어 자동차)을 생산하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국경을 넘나든다. 미국시장처럼 거대 시장 안에서도 일국적 자급자족은 불가능하다. 포드나 GM 차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대부분까지는 아닐지라도)은 해외에서 온다. 한 다국적 회사의 서로 다른 부문 사이의 교환이 오늘날 국제무역의 1/3을 차지한다. 어떤 나라가 높은 관세로 자국 경제를 보호하려고 하면, 그것은 결국 자국 자본가들부터 해치게 된다. 트로츠키가 말했듯이,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같은 사슬로 연결돼 있는 강도단”이다.

    하지만 보호무역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건 통화 조작이나 국가 보조금처럼 더욱 더 교묘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위기가 시작된 다음부터, 위기가 자본주의 경제의 기능이 아니라 규제완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게 유행이 되어 왔다. 여기서 규제 완화란 자본 순환, 즉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한 부문에서 다른 부문으로 투자했다가 철수하는 것의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거나 투자은행과 상업은행 간, 은행과 보험회사 간, 금융 부문과 생산 부문 간 전통적 장벽을 없애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1980년대와 1990년대의 규제완화는 위기의 원인(또는 촉진제)이기 이전에 결과였다. 규제 완화는 경제의 점증하는 금융화, 신용의 거대한 발전, 따라서 일반화된 부채에 대한 적응 조치였다. 그리고 좀 더 근본적으로 보자면 현재의 경제위기는 과잉생산과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라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신용에 기초한 "성장"  

    1970년대 초부터, 시장은 높은 이윤을 보장할 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거대 자본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이기 위해 노동자들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다. 거대 자본은 그 전쟁에서 이겼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소비 능력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위기의 근본 원인이 악화됐다.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시장을 되살리기 위한 마법의 약은 신용이었다. 신용은 국가 신용(즉 국가 부채)과 가구 신용을 모두 포함한다. 1971년 이후, 침체기에 뒤이은 ‘성장’기는 모두 신용의 발전 덕분에 가능했다.

    이렇게 신용에 기초한 ‘성장’은 은행을 살찌웠고, 부채를 지속적으로 증가시키면서 금융권을 터무니없이 부풀렸다.

    모든 제국주의 나라에서 가구 부채가 증가해왔다. 2006년에 부채는 프랑스에서 GDP(국내총생산)의 45%를 차지했고, 독일에서는 68%, 스페인에서는 84%, 영국에서는 107%나 됐다.

    미국에서 가구 부채는 GDP의 93%였고, 주택담보대출만 77%에 이르렀다. 2007년에 서브프라임 위기라 불린 미국 모기지론의 실패는 금융위기의 첫 번째 국면이었는데, 모기지론은 신용을 향한, 즉 부채를 향한 미친 듯한 경쟁이 취한 최근 형태일 뿐이었다.

    2009년 말 한국의 가구부채가 734조원에 이르렀다. 전년도 말보다 45조 4000억원(6.6%)이 늘어난 수치다. 그래서 한국은행 총재는 올 2월 국회에 출석해 “최근 한국경제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부채, 특히 가계 부채의 문제”라고 실토했다. 그런데 올 1분기 말 기준으로 가계부채는 739조원으로 더 뛰어올랐다. 국민 1인당 부채도 1,559만원으로 올랐다. 그래서 한국개발연구원(KDI), 삼성경제연구소, 현대경제연구원 등 5대 연구원장들은 6월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 하반기 한국경제의 뇌관은 가계부채, 부동산”이라고 밝혔다.

    회사들도 비슷한 이유로 비슷하게 따라갔다. 비금융 회사의 부채도 가구 부채와 같은 비율로 증가했다. 서브프라임 위기가 터지기 약간 전인 2006년에, 민간 부채, 즉 비국가 부채는 모든 거대 제국주의 나라들에서 GDP보다 훨씬 더 컸다.

    경제 전체가 신용의 책략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본가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성장’은 인위적 성장이었다.

    정부 부채의 증가는 훨씬 더 중요했다. 정부 부채는 자본주의 경제를 작동시키는 데에서 항상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위기 때나 전쟁 시기에는 더 그랬다.

    현 경제 위기가 오기 오래 전에, 재정 적자가 해마다 늘어나고 쌓이면서 점점 더 엄청나게 커졌다.

    정부 부채의 폭발적 증가는 지불해야 할 이자의 폭발적 증가를 수반했다. 그래서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금융업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정부는 자기 자신의 부채를 크게 악화시켰다. 그런 다음, 정부 자신의 부채를 갚기 위해 정부는 금융업자들로부터 많은 돈을 빌려야 했다. 금융업자들은 부채를 갚기 위한 예산의 상당 부분을 가져갔다. 은행들이 왜 생산적 투자에 애를 쓰겠는가? 국가에 돈을 빌려줌으로써 엄청난 이윤을 남기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상황인데 말이다. 금리 생활자들과 고리대금업자들의 경제가 위기를 낳았는데, 위기를 거치면서 그런 경제가 예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다.  

    통화 위기에 시동을 걸다  

    경제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음으로써, 국가들은 통화량을 상당히 증가시켰을 뿐만 아니라 통화시스템 자체를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 환율 투기는 오늘날 필수 투기분야일 뿐만 아니라, 가장 수익성 있는 투기분야 중 하나다. 모든 거대 회사들은 거기에 항구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들도 다른 나라에 맞서 환율 변동을 이용한다. 오늘날 통화 조작은 과거의 보호무역주의 조치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2008년 10월에 1달러는 0.79유로의 가치를 갖고 있었다. 1년 뒤 그건 0.67유로로, 15% 하락했다. 미국이 유로존으로 수출하는 데 더 유리하게 말이다(1달러 상품이 2008년에 0.79 유로에 팔리다가, 1년 뒤에는 0.67 유로에 팔리는 셈이니까 미국 입장에서는 수출하기가 더 쉽다). 따라서 미국 지도자들은 달러 가치가 높은 수준에서 안정되기를 바란다고 거듭 말하면서도 통화시장에서 달러를 ‘방어’하기 위해 개입하려고 서두르지 않았다.

    단일한 유럽국가가 없기 때문에 유로존은 미국보다 환율을 이용하기가 훨씬 더 어려웠다. 게다가 유로화가 유럽연합 안에서 사용하는 유일한 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환율은 유럽 안에서조차 보호무역주의 방식으로 이용돼왔다. 예를 들어, 영국 파운드화가 석 달만에 유로화에 비해 가치를 10%나 잃었다. 그 결과 영국이 유로존으로 수출하는 게 유리해졌으며, 유럽연합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수단이 생겨났다.

    반세계화 운동을 고무하기 전에 IMF를 이끌었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스티글리츠는 2009년 8월 27일 한 인터뷰를 통해 “돈 찍어내는 미국 인쇄기”가 만들어내는 상황을 “안개로 뒤덮여 있는 절벽 끝에서 스키 타는 것”에 비유했다. 달러는 다른 나라 통화처럼 오랫동안 인플레 문제를 겪어 왔다. 금 대비 달러 가격의 변동은 전반적으로 하향곡선을 그려왔다. 그것은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오랜 위기를 동반해왔다. 1971년에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막을 알린 달러의 위기는 첫 번째로, 그리고 아주 극적으로 그 위기를 드러냈다. 달러 가치의 지속적 붕괴를 다음 수치보다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1971년 8월 15일, 닉슨 대통령이 달러가치를 평가절하하고, 달러와 금의 태환을 중단하겠다고 선포했을 때, 금은 1온스당 35달러였다. 하지만 오늘날 금 1온스는 1000달러가 넘는다!

    미국 정부가 금융계를 지원하기 위해 달러를 거의 무제한으로 찍어내 부실은행의 부실채권을 엄청나게 사들이자 달러에 대한 신뢰가 많이 무너졌다. 그렇다면 이것이 달러의 붕괴를 촉발할 수 있는가?

    세계의 주요 통화 가운데 하나인 영국 파운드화도 이미 이런 경험을 했다. 1992년에 영국 파운드화가 너무나도 투기의 대상이 됐기 때문에, 영국 정부는 파운드화의 가치를 절하할 수밖에 없었다.(어쨌든 이걸 통해 조지 소로스라는 투기꾼은 10억 달러의 이익을 얻었다.)

    하지만 달러는 세계통화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달러의 상태는 파운드화를 비롯해 다른 나라 통화의 상태와는 매우 다르다. 달러의 힘은 달러가 국제 지불수단, 국제 준비통화로 사용된다는 사실에 있다. 중국, 일본, 산유국들은 자기 금고에 달러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있다. 이 점 때문에 그 나라들은 달러에 묶여 있다. 그래서 미국 정부도 하지 않는 것을 이 나라들은 할 수밖에 없다. 즉 달러가 남아돌지 않도록 통화시장에서 달러를 부지런히 사들이는 것이다.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 홍콩 같은 몇몇 아시아 국가들도 자기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달러 구조작전에 나섰다.  

    “달러화에 대한 자국 통화 가치의 급격한 절상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직접 달러 사재기에 나서는 신흥국들이 늘고 있다. 특히 약달러가 심화되는 가운데 사실상 고정환율인 위안화마저 주요 통화 대비 약세를 나타내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들의 환율방어 부담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로이터통신과 블룸버그통신은 9일 신흥국들 가운데 한국과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러시아 홍콩 대만 등 최소 7개국의 중앙은행들이 달러 가치를 떠받치기 위해 일제히 외환시장에 개입했다고 보도했다.”(한국경제 2009년 10월 9일자)  

    달러의 가치하락은 이 나라들이 자국 노동자계급을 희생시켜 쌓아온 외환보유고의 일부가 안개처럼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역설적이지만, 달러 약세 자체가 최강의 제국주의 국가가, 즉 미국이 덜 발전한 나라들을 약탈하는 수단이 되어 왔다.

    하지만 자기 외환보유고에 달러를 갖고 있는 모든 나라들이 공유하는 암묵적 합의조차도 미국 달러를 반드시 지키지는 못할 것이다. 세계경제에 유동성이 너무나도 넘쳐난다. 그래서 투기꾼들은 모든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에 쌓여있는 달러만큼 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달러를 동원할 수 있다.

    미국의 붕괴 가능성이 오늘날 공공연하게 논의되고 있다. 경제학자들만 그런 논의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무역 수단, 특히 석유 거래의 수단으로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 유로화, 금을 포함한) ‘통화 바스켓’을 구성함으로써,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을 찾으려고 아랍 국가들과 중국 등 주요 석유 수출, 수입국들이 모인 비밀 회동에서 걸러져 나온 정보를 믿는다면, 일부 정부들도 미국의 붕괴가능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받아들이는 국제통화는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달러의 심각한 위기는 불가피하게 환율 시스템의 위기를 낳을 것이다. 환율이 잔인하게 변하면서 국제무역의 어려움을 훨씬 가중시킬 것이다.  

    더블딥(이중침체) 경고  

    2009년 중반쯤에, 세계 각국 정부는 경제가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금융계에 엄청나게 돈을 쏟아부어 약간은 결실이 나온 것처럼 보이게 하려 했다. 그래야 대중의 다수인 노동자계급을 겨냥한 긴축조치가 조금 더 견딜 만한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틀림없이 교묘한 속임수였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고분고분하게 그 속임수에 따랐다.

    낙관적인 주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을 때, 소수의 경제학자들이 정부들한테 결코 ‘달갑지 않은’ 경고를 언론에 완고하게 발표했다. 주류로부터 자주 ‘닥터 둠’(비관론자라는 뜻)으로 불렸기 때문에, 그들 대부분은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일자리와 임금에 대한 사장들의 공격 때문에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감추려고 각국 자본가정부가 ‘회복’ 운운한다는 것을 밝히는 게 그들의 관심사는 분명 아니었다.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자본주의 자체의 보존이었다. 그들은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믿어 위기 경보 발령을 중단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려 했을 뿐이다.

    친기업 ‘비관론자’ 가운데 한 명이 미국 경제학자인 루비니 교수였다. 그의 견해는 검토할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2007년 전부터 수년간 굽히지 않고, 어마어마한 금융거품이 세계경제를 위태롭게 할지 모른다고 경고해왔던 극소수 중 1명이기 때문이다. 2009년 8월 23일, 루비니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즈에 <더블딥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기사를 썼다. 이 기사에서 그는 경고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밝혔다.

    첫째, 객관적인 이유가 있다. 실업률이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여러 나라에서 여전히 사실이다. 자본가정부들은 실업률이 떨어지고 있다고 장밋빛 환상을 부추긴다. 하지만 그건 환상일 뿐이다. 취업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구직활동을 포기해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의 비율로 실업률을 계산하기 때문에, 취업자 수가 줄어드는데도 실업률이 떨어지는 ‘눈속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루비니 글이 나온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계의 실업률은 심각한 상태다. 가령 미국 전체 평균 실업률은 2010년 5월에 9.7%였고, 캘리포니아 주 실업률은 5월 기준으로 12.4%나 됐다. 한국도 공식 실업률은 3~4%대로 100만 안팎이지만, 취업준비생, 구직포기자를 포함한 ‘사실상 실업자’는 330만명으로 실업률이 12.6%에 이른다.

    둘째, 위기는 단지 신용 부족 때문에 발생한 게 아니다. 위기는 부채의 발행 때문에 생긴 것이기도 했는데, 이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정말로 루비니가 지적했듯이, “금융기관의 손실은 사회화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정부 재정이 부실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회사들이 자기 자신의 부채를 반드시 줄이려 하는 건 아니었다.

    셋째, 더 중요하게는 금융부문을 구제한 결과로 쌓인 엄청난 재정 적자는(이런 적자를 처리하는 방식과 무관하게) 또 다른 깊은 경제침체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정부들은 적자를 감축시키든 그렇지 않든 위험에 빠진다. 적자를 감축시킬 경우, 소비를 위축시켜 경기침체를 심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적자를 감축시키지 못하면, 투기꾼들이 공격할 것이다. 그들은 금리를 인상시켜서 마찬가지로 소비를 위축시킬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사태는 더 좋아지기보다는 더 나빠질 것이다. 위기는 정부 부채가 야기하는 ‘이중침체’ 국면으로 들어갈 것이다. 이것은 경제 상태의 어떤 일시적 중단도 또 다른, 아마도 더 깊은 불황으로 빠져드는 것을 뜻할 것이다.”

    분명히 루비니는 전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그 필요, 규칙 안에서 상황을 분석하고 있다. 그런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할 다른 본질적 대안을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뒤에서 다룰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소리높여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도, 부르주아 전문가들 가운데 일부가 그런 헛소리에 따르지 않고,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다고 경고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 알다시피, 이 전문가들의 진단이 맞다. 7개월 뒤인 2010년 3월 19일에는, 영국은행 통화위원회 회원이 “이중침체의 위험이 상당히 있다”고 말했다. 정말로 “회복”의 나팔소리는 갑자기 바람과 함께 사라진 듯했다.  

    별로 '공적'이지 않은 부채  

    루비니가 급증하는 정부 부채의 위협에 대해 경고했을 때쯤, 세계 10대 부국의 부채가 이들 나라의 GDP(국내총생산)의 106%와 맞먹는다고 IMF가 발표했다. 2007년에 76%였으므로, 2년 사이에 30%나 뛰어오른 셈이다. 이런 차이는 간단히 말해 금융가와 대주주들을 구제하기 위한 비용 때문에 발생했다.

    여기서 ‘공공부채’와 ‘예산 적자’라 불리는 것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수치를 계산하는 방식은 GDP를 계산하는 방식과 매우 비슷하다. 그러므로 우선 GDP 계산법부터 검토해보자.

    당신이 얼마간의 배, 한 줌의 콩, 그리고 약간의 썩은 사과를 갖고 있다고 하자. 그걸 모두 합쳐서 참외 몇 개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GDP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GDP에는 옷, 약, 식품, 밥, 이발처럼 사회적으로 유용한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가 포함된다. 그런데 거기에는 또 스팸 메일이나 다른 광고 찌라시들처럼 사회적으로 완전히 쓸모없는 것들의 가치도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여러 살상용 무기처럼 사회적으로 완전히 해로운 것들의 가치도 포함된다. 또한 부동산 투기나 주식 투기를 통해 벌어들인 불로소득도 GDP에 들어간다. 이 모든 걸 합쳐서 1년 동안 한 사회가 생산해낸 가치, 즉 GDP(국내총생산)라고 부른다.

    이런 GDP의 일부분만이 대중에게 유용하게 사용된다. 그리고 훨씬 더 적은 부분만이 이 사회의 부를 대부분 생산하는 노동자계급에게 혜택을 준다. 따라서 대중의 부를 측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GDP를 사용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1인당 GDP가 여전히 주요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정부의 ‘공공 부채’도 비슷한 방식으로 계산한다. 그건 이름만 ‘공공’일 뿐이다. 위기가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재정 적자의 상당 부분은 대중들에게 어떤 혜택도 주지 않는 정부 지출 때문에 생겼다. 국방비,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유혈 점령비도 그렇고, 국회의원들한테 들어가는 돈, 자본가계급에게 계속 퍼주는 보조금 등이 그렇다.

    따라서 ‘공공부채’는 전혀 공적이지 않다. 사실 그건 주로 자본가계급의 부채일 뿐이다. 납세자들의 돈을 이용해 정부가 자본가계급을 구제하기 위해 지출해서 발생한 부채이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공공부채’란 사장들이 국가에 기생하는 수단일 뿐이다.

    위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자본가계급이 국가에 기생하는 정도가 기록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것은 전세계에 걸쳐, 특히 부유국들에서 정부 부채가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기의 결과로 발생한 추가 부채의 실제 양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정치인들이 경제를 보호한다는 핑계로 대자본가들한테 얼마나 퍼줬는지를 비밀로 하기 때문이다. 마치 경제의 주요 위험이 정부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는 자본가들한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중한테 진실을 알리는 데서 나오는 것인 양 핑계를 대는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방식은 결국 영국에서 2009년에 새은행법을 도입해, 은행 고객이나 납세자들이 아무것도 모르게 하면서 은행한테 구제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권한을 영국은행에 준 것으로까지 이어졌다.

    금융 구제비용을 정확히 측정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그 비용이 위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데 있다. 위기가 더 깊어진다면, 이미 취해진 구제조치의 비용이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다. 예를 들자면, 영국 정부는 금융구제비용이 GDP의 4%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초기부터 계속 주장해왔다. 하지만 IMF가 2009년에 발표한 또 다른 통계자료에 따르면, 이미 9.3%에 이르고 있다.  

    온갖 방식으로 기생하는 금융  

    앞에서 말했듯이, ‘공공’ 부채는 자본가들이 국가에 기생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그리고 이 점은 금융 구제의 결과로 오늘날 훨씬 더 분명해지고 있다. 하지만 금융기관은 다른 많은 방식으로도 공공부채를 이용해 번성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예를 2009년 3월에 바닥을 친 다음, 주가가 급반등한 주식 시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세계에 걸쳐 정부가 금융계를 구제하기 위해 퍼부은 현금이 주가 급상승을 낳은 투기활동의 주요 자금원이었다.

    채권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재정 지원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는 이른바 국채를 정기적으로 판다. 거대 회사들도 이런 방식으로 금융시장에서 기금을 조성한다. 그 경우 회사의 채권을 ‘회사채’ 또는 줄여서 그냥 ‘사채’라 부른다. 이 모든 채권이 채권시장이라 불리는 특별 시장에서 매일 거래된다.

    2009년 3월에 주식시장이 붕괴했을 때, 그래서 거대 회사들이 자신들의 주요한 새로운 자금원을 잃어버렸을 때, 모든 정부가 대안적 자금원을 회사들에 제공하기 위해 채권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조치들을 취했다. 이것이 영국 정부가 ‘양적 완화’ 정책(중앙은행이 국채를 비롯한 다양한 금융자산을 사들이거나 그걸 담보로 잡아 돈을 풀어 경기 방어와 신용 경색을 해소하려는 정책)을 채택한 주요 목적이었다. 영국은행이 막대한 양의 채권을 사들임으로써, 이전 몇 달 동안 적었던 채권 수요가 많아졌고, 그래서 채권 가격이 갑자기 폭등했다. 이 때문에 채권 시장은 투기꾼들한테 매력적인 투자처가 됐다. 특히 채권은 마지막까지 살 주체(정부)가 항상 있다는 점을, 따라서 채권이 안전한 투자처로 바뀌었다는 점을 ‘양적 완화’ 정책이 암묵적으로 보장해주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 결과 많은 사장들이 신용을 얻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쳤지만, 거대 회사들은 채권 시장에서 기금을 마련하는 게 훨씬 쉬워졌다. 사실 2009년에 발행된 새로운 회사채의 양은 사상 최대치였다.

    정부 부채 문제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채권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채권은 처음 발행될 때 액면 가격이 써 있다(가령 10만원이라고 해보자). 하지만 주식을 소유한 사람에게 변동하는 배당금을 주는 주식과 달리, 채권은 고정 수입을 준다. 정해진 기간 동안, 정해진 금리로 액면 가격에 비례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가령 액면 가격이 10만원인 20년짜리 5% 채권이라면, 20년 동안 해마다 5,000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20년이 지나면 채권 소유자는 10만원을 버는 셈이다.

    하지만 한 번 더 꼬인다. 채권은 한 번 발행된 다음, 시장에서 사고 팔리면서, 가격이 수요 공급에 따라, 마찬가지로 투기꾼의 변덕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채권의 금리에 영향을 치민다. 가령, 앞에서 언급한 10만원짜리 채권의 시장 가격이 5만원으로 떨어지더라도, 연간 수입은 여전히 5천원일 것이다. 그러면 누가 그걸 사든지 금리는 10%가 된다. 하지만 만약 채권의 가격이 20만원으로 두 배가 되면, 채권의 금리는 절반, 즉 2.5%로 떨어질 것이다.(채권 가격과 채권 금리(이자율)는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새로운 재정이 필요한 정부한테, 자기 국채의 시장가격이 하락하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 왜냐면 이 가격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채권의 금리가 오르고, 정부가 대출기관에 팔고 싶어하는 새로운 채권에 대해 금리를 더 높게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특히 높은 부채 비율 때문에) 정부 재정이 취약해보일수록, 투기꾼들은 그 국채의 가격이 떨어지는 것에  도박을 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그럴수록 이 투기꾼들의 압력 속에서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루비니가 언급했던 ‘채권 자경단’(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때문에 채권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을 경우 국채의 대량 매도에 나서는 투자자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함으로써, 부채가 많은 정부는 더 나쁜 상태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많은 영역에서처럼 이 영역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자주 칭송받아온 시장은 사실상 기존 불균형을 ‘증폭’시킬 뿐이다. 이것이 정확히 올해 초부터 그리스에서 벌어져온 일이다. 또한 그 때문에 부채가 많은 다른 정부들도 앞으로 비슷한 처지로 굴러떨어질 수 있다. 2010년 5월 18일, 루비니는 “그리스 등 남유럽을 목표로 삼아 국채수익률을 끌어올린 ‘채권시장 자경단’이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미국, 영국, 일본 등을 겨냥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 채권시장이 3년 안에 흔들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기관들의 기생성도 그 파괴적 힘을 여기에서 모두 드러낸다. 현재의 위기를 낳은 거대한 투기 거품을 일으킨 게 바로 그 금융기관들이었다. 그런데 자신들을 구제하느라 정부 재정적자가 심해진 바로 그 은행, 보험회사 및 다른 금융기관들도 국가의 주요 채권자들에 속한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은, 바로 그 은행들이 채권 시장에서 발생하는 투기행위의 주요 배후세력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단기 투기수익을 위해 그리스 국채 가격의 하락에 베팅함으로써, 그리스 정부를 파산 직전으로까지 몰아넣고, 그리스 대중들로 하여금 견딜 수 없는 긴축조치에 직면하게 한다.  

    가장 가난한 나라들을 쥐어짜기  

    경제위기 자체 때문이든 아니면 경제위기에서 자라나온 금융투기 때문이든, 파산 위협에 처했던 첫 번째 나라는 그리스가 아니었다.

    라트비아 같은 동유럽 국가들이 가장 크게 타격을 받았다. 라트비아는 인구가 2백만 명밖에 안 돼 유럽연합에서 인구가 가장 작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이 나라가 위기에 따른 무역 붕괴의 희생양이 됐다. 라트비아는 2008년 말까지 유럽연합으로부터 구제 프로그램을 받아야 했는데, 그런 구제계획도 라트비아 경제가 2009년에 18%나 하락하며 훨씬 더 무너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헝가리는 꽤 더 컸지만, 생산과 서비스산업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외국 투자가 감소하고, 2008년 10월에 자국 통화에 대한 투기가 쇄도하자 타격을 많이 받았다. 그 후 헝가리 정부는 EU, IMF와 세계은행으로부터 합동 긴급구제 프로그램을 받아야 했다.

    에스토니아와 슬로바키아의 ‘기적’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예를 들어 값싼 노동을 찾아 슬로바키아에 지었던 거대 독일, 프랑스 자동차공장들 덕분에 수년 동안 그 나라의 GDP는 인상적일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오늘날 슬로바키아를 침체에 빠뜨리고 있다. 산업 생산이 동유럽 나라들에서 극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유로스타트(유럽연합 통계처)에 따르면, 슬로베니아에서는 20.4%, 에스토니아에서는 27.9% 하락했다.

    유로화를 공통화폐로 쓰는 유로존의 멤버가 아닌 동유럽 국가들한테(동유럽에는 유로존 회원이 아닌 나라들이 많다) 경제위기는 자국 통화의 약화나 심지어는 붕괴를 뜻했다.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서방 은행들은 자기 자본을 이 나라들에서 철수시켜 버렸다.

    이 나라들의 은행이 기본적으로 서방 은행한테 통제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IMF는 루마니아, 헝가리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 신용 계좌를 개설해 주기로 결정했다. 루마니아 국가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 공무원에게 임금을 주기 위해 그렇게 한 게 아니다. 유럽 금융계의 전반적 붕괴로부터 서방 은행들이 타격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한 것이다.

    이론상으로만 보면, 세계경제 위기와 무역 감축은 세계 무역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가난한 나라들한테는 덜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이 이론은 세계경제의 금융화가 이 가난한 나라들한테 끼쳐온 영향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이 나라들은 정부 부채의 짐에만 사로잡혀 있지 않다. 그리고 IMF가 이들 나라 정부에 긴축 조치를 실행하도록 강요한 법령의 덫에만 걸려 있는 것도 아니다. 금융화와 그에 뒤이은 투기 때문에 밀, 쌀, 옥수수 같은 기본 식품의 가격도 매우 불안정하다. 이것은 기본 식품 생산에서 자급자족하지 않는 나라들한테는 특히 심각하다. 기본 식품 가격이 2%만 올라도, 굶주림에 시달리는 수백만 사람들이 죽을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가뭄, 홍수 같은 재앙을 더욱 증폭시킨다. 이디오피아나 사하라 사막 남부지역에서는, 작물 재앙에 따른 기근에 시달려왔던 사람들이 투기 때문에 식료품값이 세계적으로 뛰어오르는 상황을 맞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국주의 강대국에서 실업률이 증가하면 자동적으로 그 나라에서 일해온 이주노동자들이 자국으로 보낼 수 있는 돈이 줄어들어, 최빈국의 가난한 대중들이 더욱 빈곤에 처하게 된다.  

    주의를 딴 데로 돌리고 얼렁뚱땅하기  

    다음으로,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에서 첫 번째 파산 신호가 나왔다. 이 두 나라는 모두 공통적으로 금융산업에 매우 크게 의존해 있었다. 아일랜드가 변방의 가난한 농업국가에서 유럽의 첨단기술국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나라로 변신하는 ‘켈틱 타이거’ 신화를 일굴 수 있었던 것은 사실 금융산업에 대한 그런 의존 덕분이었다. 하지만 금융산업에 대한 의존 때문에 두 나라는 모두 리먼 브라더스의 붕괴에 따른 연쇄반응으로부터 즉시 그리고 치명적으로 타격을 받았다.

    이와 달리, 그리스의 부채 문제는 비록 2009년에 시작됐지만 위기의 직접적 충격 때문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문제는 금융투기꾼들이 그리스 국채의 붕괴를 노리며, 그리스 국채에 대한 투기를 증가시키면서 터져나왔다. 그리스 국채의 시장 가격이 떨어지자, 그리스 국채의 금리가 올랐다. 그 결과 그리스 정부는 새로운 자금을 빌릴 때 훨씬 더 높은 금리를 지불해야 했다(투기꾼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정치인들과 논평가들은 그리스 사태를 낳는 데에서 거대 은행들이 한 결정적 역할을 부정하기 위해, 그리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그럴 듯하게 설명하려는 시도를 여러 가지로 해왔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기껏해야 주의를 딴 데로 돌리는 것이었고, 최악의 경우 노골적인 거짓말이었다.

    가장 인기 있는 ‘설명’ 가운데 하나는 유로존이 그리스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 정부가 자국 통화의 가치절하를 하지 못하게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가 유로존의 회원국이라서 무너졌다는 주장은 정말 설득력이 없다. 아이슬란드, 라트비아, 헝가리는 유로존의 회원국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 나라도 경제위기 속에서 무너져갔다.

    유로존의 과도한 집중이 그리스의 곤경을 낳은 게 아니다. 그와 정반대다. 유럽연합은 유럽 자본가계급이 자신들의 거대한 내부 시장 안에서 미국 자본가들과 좀 더 유리하게 경쟁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유럽 각국의 거대 회사들을 위해 충분히 큰 ‘내부’ 시장이 만들어지길 바란 것이다. 그래서 유럽연합 안에서는 제품, 서비스, 기금과 사람의 이동을 막는 장벽을 없앴다. 하지만 유럽 자본가계급이 미국을 상대로 보다 잘 경쟁할 필요성이 있다고 해서, 유럽 자본가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쟁관계가 조금이라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공통화폐로 유럽 국가들을 결속시킴으로써 이 ‘내부’시장을 공고히 하려고 했을 때, 예비 참가자들 중 일부가 겁을 먹기 시작했다. 특히 영국이 시티(영국의 금융중심지)의 압력을 받으면서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유로존은 결국 출범했다. 하지만 유럽연합 자체와 마찬가지로, 유로존도 참가자들 사이의 경쟁관계 때문에 약점을 계속 안고 있었고, 강대국인 독일과 프랑스의 지배에 종속돼 있었다. 그래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특히 유로화에 대해 결정할 때마다 유로존은 주요 강대국들의 의견 불일치로 발목이 잡혔다.

    공통의 통화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경제의 모든 측면에 걸쳐 공통의 정책이 있어야 했다. 따라서 모든 회원국의 공통이익을 위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공통의 집행기구가 필요했다. 하지만 유로존은 촉수가 20개가 넘는 일종의 문어와 같았다. 각각의 촉수는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촉수와 싸우는데도, 모든 촉수에 일정한 규율을 부과할 수 있는 뇌가 없었다.

    따라서 그리스 위기는 유로존의 ‘과도한 집중’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유로존이 충분히 집중되지 않아 하나의 단일한 실체로 작동할 수 없었다는 점, 공통의 화폐를 갖고 있었지만 그 이점을 충분히 살릴 수 없었다는 점 때문에 사태가 더 악화됐다.  

    은폐와 노골적 거짓말  

    프랑스 정부나 억만장자 투기꾼 조지 소로스는 그리스 사태에 대해 또 다르게 ‘설명’했다. 이런 설명은 ‘신용파산(부도)스와프’(줄여서 CDS)라 불리는 특정 금융수단을 악마로 만들면서, 그리스 국채 붕괴의 책임을 그 CDS한테 돌린다. 그 결과 CDS를 제한하고, 심지어는 완전히 금지시키라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마치 그리스 채권에 대한 투기가 단지 CDS를 막기만 하면 사라질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이 CDS는 특정 채권, 회사, 국가와 관련된 신용 사고에 대비하는 보험 계약을 뜻한다. CDS는 채권을 사는 투자자가 채권이 부도 날 가능성에 대비해 원금을 보장받기 위해 사두는 일종의 보험이다. 이것은 주로 기업 채권이나 제3세계 국가의 국채를 사는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데 사용된다.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산업국의 채무에 딸린 위험을 대비하는 데는 CDS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리스 관련 CDS의 양은 매우 적었고, 보통 때는 CDS에 대한 거래도 매우 적었다.

    설사 그리스 채권에 대한 CDS 거래를 금지했더라도, 채권 시장에서 그리스 채권에 대한 거대한 도박이 중단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그곳에서 최대의 도박꾼들은 유럽의 거대 은행들이었기 때문이다! 외국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그리스 채권 규모는 총 2,362억 달러인데, 이 가운데 유럽계 은행이 1,886억 달러를 갖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프랑스 은행이 752억 달러, 독일 은행이 450억 달러, 영국 은행이 150억 달러의 채권을 갖고 있다.

    그리스 위기와 관련해 CDS를 악마화하는 것은 단지 CDS 같은 ‘썩은 사과’가 투기와 그에 따른 혼란을 낳았다고 주장하기 위한 교묘한 속임수다. 하지만 사실 CDS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붙박혀 있는 장식물 정도다. 그리고 CDS의 주요 수혜자는 다름 아니라, 공적 자금으로 구제금융을 받아왔던 바로 그 거대 은행들이다.

    마지막으로, 그리스 위기에 대해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설명’은 그리스 정부가 생산성이 높지 않은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후하게 퍼주며 ‘낭비’함으로써 결국 ‘거대한 재정 적자’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손쉬운 책임 떠넘기기인가?

    윤증현 재정기획부 장관은 “국내외 사정이 있겠지만 그리스 사태를 보면서 공공부문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책을 펴면서도 인기 위주의 정책, 분에 넘치는 과다한 임금 지급을 하고 있더군요. 직장을 잃으면 실업 급여를 예전 급여의 95%까지 준다고 하니…”(<파워 인터뷰>, ‘그리스 위기는 포퓰리즘 탓…우리도 교훈으로 삼아야’, 문화일보 5월 14일자)

    결국 이 자본가 장관 나으리는 그리스 자본가정부가 공공부문 임금과 복지를 대폭 삭감하고, 정년을 연장하며 정리해고 공격을 퍼붓는 것이 모두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적을 초월한 자본가계급의 도덕이다.  

    '금융시장'의 배후는 거대은행이다  

    이탈리아, 아일랜드,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언론이 최근에 거론한 다른 나라들도 이른바 ‘금융시장’한테 곧 공격받을 수 있다.

    일부러 추상적으로 돌려쓴 ‘금융시장’의 뒤에는 대부분의 거대은행이 있다. 이런 거대은행은 오늘날 가장 수익성 있는 부문, 즉 투기 부문을 특화한 자회사나 전문부서를 거느리고 있다. ‘금융시장’이란 말은 전세계의 부를 강탈해가는 배후세력(거대은행)을 감추는 위장막일 뿐인 것이다.

    이런 거대은행 가운데 하나가 바로 뉴욕에 기반을 둔, 세계 1위의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다. 골드만 삭스는 서브프라임 거품이 붕괴하던 과정에서 경쟁자들을 없애거나 인수하면서 거대한 이윤을 챙겼다.

    골드만 삭스는 그리스 위기와 관련해 표리부동한 행위를 해 최근에 세계여론의 비판대에 서 왔다.

    골드만 삭스는 그리스 정부가 필요한 현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리스 정부의 자문관 역할을 했다. 동시에 그리스 재정을 강타한 투기 폭풍의 주요 수혜자이기도 했다. 1월 말에 골드만 삭스는, 그리스가 중국에 250억 달러 가치의 채권을 파는 데 실패했다고 파이낸셜타임즈가 믿게(잘못 믿게) 만들었다. 그리스 정부가 그런 헛소문을 부정했을지 모르지만, 세계 비즈니스 업계의 바이블인 파이낸셜타임즈에 이미 그런 헛소문이 실렸기 때문에 그리스 경제는 타격을 볼 수밖에 없었다. 국제 투자자들은 그리스의 신뢰 상실을 그리스에 대한 대출 금리를 상승시키는 기회로 이용했다. 헛소문을 뿌림으로써 골드만 삭스는 자회사와 헤지펀드를 통해 자기 자신과 자기 고객을 위해 수십억 달러를 긁어담았다.

    이 골드만 삭스가 2002년에는 그리스 정부가 일부 부채를 감추는 것을 도왔다. 그래서 그리스가 유럽연합의 회원국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처럼 보이게 해줬다. 골드만 삭스는 100억 달러 부채 가운데 10억 달러를 감출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그리스 정부로부터 3억 달러를 챙겼다. 또한 골드만 삭스는 그 과정을 통해 그리스 국가의 실제 재정 상황을 상당히 잘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정보 파악은 그리스를 상대로 투기하려고 하는 기관한테는 매우 값진 이점이다.(골드만 삭스는 이탈리아를 상대로도 똑같은 짓을 벌여왔다.)

    유럽연합 주요국의 지도자들이 화가 나서 (물론 골드만 삭스가 아니라)그리스를 소환했을 때, 그들은 위선에 빠져 있었다. 무엇보다, 프랑스와 독일이 자기 적자의 일부를 정기적으로 감추어왔다. 다음으로, 두 나라 정부와 은행은 그리스의 실제 공공부채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독일의 드레스너 은행과 프랑스의 크레디 아그리콜 은행이 그리스 공공부채의 30%를 갖고 있다.

    2008년 이후 공공부채가 어디에서나 폭발하고, 이자 지불이 훨씬 더 빠르게 폭증했기 때문에, 전체 금융계가 이런 커져가는 ‘거품’ 속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투기꾼들은 그들이 노리는 국가의 재정상태를 악화시키는 데 베팅함으로써 그런 거품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스의 경우, 예산 적자는 이전 우파 정부가 주장했던 것보다 2배는 많을 것이라고 새로 선출된 사회당 총리가 선언했을 때 투기가 늘어났다. 정부 채권 소유자들은(거대 은행들, 국제 투자펀드 등) 채권 가격이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그리스 채권을 갑자기 팔아치웠다. 국고가 텅 비어가자, 그리스 정부는 갑자기 새로운 자금이 필요했다. 이것이 바로 투기꾼들이 기다렸던 것이다. 새로운 채권을 사려는 투기꾼들은 그리스 정부한테 채권수익률을 높이라고 요구할 수 있었다. 투기꾼들은 그리스의 신용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뉴스나 소문은, 그게 맞든 틀리든 관계없이 환영했다.

    그리스 채권은 독일 채권과 동렬에 있었으나, 투기 때문에 겨우 몇 주 만에 그리스 채권금리가 솟구쳐 올랐다. 그리스 채권금리와 독일 채권금리의 차이는 5%를 넘어섰다. 포르투갈과 스페인도 그리스보다는 좀 더 나중에 시작했지만, 같은 시련을 겪어왔다. 그래서 당분간은 이들 나라 채권금리와 독일 채권금리의 차이는 (그리스와 독일간 채권금리 차이보다는) 좀 더 낮을 것이다.

    투기꾼들은 멈출 이유가 없다. 몇 달 안에 그들은 고수익을 올렸다. 게다가, 과거 거품 때 부동산담보증권으로 돈을 벌었던 것처럼, 그들은 새롭고, 훨씬 큰 투기거품을 일으키면서 ‘파생’상품들로부터 많은 이익을 얻었다.

    여러 유럽 정부들은 투기를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희생을 강요하는 핑계거리로 이용했다. 정부들은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연령을 뒤로 늦췄다. 그들은 또한 임금을 삭감하고, 사회복지를 축소하며, 공공서비스를 더욱 더 해체했다. 그러는 동안, 투기가 그리스만이 아니라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고 이탈리아까지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투기꾼들이 유로화를 노리다  

    통화동맹 강화와 역내 경제통합을 통해 미국 달러로부터 통화안정을 이루려고, 독일, 프랑스 등이 1979년 3월에 출범시킨 유럽통화시스템(EMS)이 결국 실패한 뒤, 유럽 자본가계급의 일부가 유로화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염두에 뒀던 것은 공통시장을 위한 더 거대한 응집력을 보장할 수 있는 통화였다.

    27개 유럽 회원국 가운데 16개만이 유로존에 가입했지만, 새로운 통화 덕분에 이전의 유럽통화시스템을 괴롭혔던 환율의 항구적 불안정 및 이 불안정이 야기하는 유럽 교역의 정기적 교란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로존을 건설하는 데에는 내적 모순이 존재했다. 그 모순은 유럽연합을 만들었던 제2차 세계대전 말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유럽의 제국주의 강대국들, 특히 독일, 영국 그리고 프랑스는 미국, 일본 등 세계의 두 강국과 홀로 대결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서로 어쩔 수 없이 협력해야 했다. 하지만 그 강대국들 사이에는 어느 정도 중요한 이해 갈등이 있다. 바로 이 점이 유로존의 내적 모순이다.

    유럽 국가들의 일부가 만들기를 원했던 것은 공통화폐였다. 공통화폐는 단일 통화와 같은 것은 아니다. 단일 통화를 갖기 위해서는, 돈을 찍어낼 수 있는 단일 국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유럽에는 그런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유로화의 선천적 취약성이다. 이런 취약성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났는데, 그 때문에 유로화는 투기에 더욱 취약하다. 예를 들어, 유럽중앙은행의 법령은 공공부채의 일부인 국채를 되살 수 있는 미국의 연준처럼 유럽중앙은행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연준은 미국이라는 단일국가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리고 미국 자본가들은 연준을 국가기구로 여기고 있다. 이와 달리 유럽중앙은행은 화폐를 보증할지라도, 단일한 유럽국가에 의존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유럽중앙은행은 몇몇 유럽 강대국 사이의 상충하는 이해와 타협해야 한다.

    물론 유럽중앙은행은 다른 유럽 제도들처럼 이런 유럽 강대국들한테 봉사하는 공통분모를(그런 게 있을 경우에는) 찾으려고 노력한다.

    18년 전에 유로화를 만들기로 결정했던 유럽 자본가계급은 그걸 받아들인 나라들 사이에서 제품의 순환을 원활하게 만드는 공통화폐를 원했다. 그들은 또한 유로존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더 쉽게 수출할 수 있도록 돕는 통화를 원했다. 그것은 강력한 유로화였다. 이것은 유럽중앙은행과 그 뒤에 있는 프랑스, 독일이 원했던 것이기도 했다. 환율이 유럽화폐에 유리하면, 유럽 자본가들은 미국이나 달러화를 사용하는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싸게 다른 기업을 사들일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유럽의 금융자본한테 유리한 것이다.

    하지만 유럽연합이 해외에 투자할 경우, 유럽 전체는 자본을 잃는다. 그것은 해외자본의 유럽 투자를 통해 보충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유럽중앙은행 관련 금리가 연준 관련 금리보다 항상 약간 더 높다. 미국은 세계의 자본을 끌어들이는 데에서 유럽연합보다 더 유리하다. 미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라는 사실이 투자를 유도하기에 충분한 담보물이다. 이것은 투기가 유로존에서 빠져 달러와 미국 국채로 쇄도했을 때 다시 한 번 입증됐다.

    몇몇 유럽 국가들이 유럽통화시스템(EMS)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이런 투기 때문에 일부 국가들이 유로존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인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강력한 금융기관들이 당분간은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같은 나라들을 상대로 도박을 펼치면서, 이 나라들이 외환 거래시장에서 항상 높은 금리로 돈을 빌리게 만들고, 그래서 이 나라들의 공통화폐인 유로화를 약화시킬 것이다. 약 1년 전에 1유로=1.5달러가 넘었던 유로화는 이제 10% 이상 가치를 잃었다. 이런 후퇴는 무역의 80%가 유로존 자체에서 이루어지는 유로존 국가 안에서는 피부로 잘 느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0%만 차이가 나도 (가장 중요한 투기꾼들 중 일부일지라도) 대개 투기꾼으로 언급되지 않는 회사들, 즉 전세계에 걸쳐 자회사나 사업 파트너를 갖고 있는 거대 회사들한테는 엄청난 돈벌이가 될 수 있다. 이런 회사들은 한꺼번에 수십억 달러(또는 엔, 유로, 파운드)를 벌어들이기 위해 항상 환율을 이용한다. 또한 투기가 일상의 밥벌이인 거대 은행, 보험회사들도 있다. 그리고 투기에 전적으로 몰두하는, 10,000개가 넘는 헤지펀드들이 있다.

    언론이나 정치인들은 헤지펀드들이, 특히 유로존 바깥의 헤지펀드들이 유로화를 공격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 헤지펀드들이 어느 나라에 정확히 속하는지는 거의 알 수 없다! 그런 헤지펀드들 대부분이 조세 피난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헤지펀드들은 비록 유럽, 미국 아시아의 거대 금융그룹이 직접 만든 것이 아닌 경우에도, 그런 금융그룹의 돈을 엄청나게 관리한다. 그리고 그런 금융그룹은 항상 빠르고 거대한 수익을 요구한다.

    생산이 시들해지고, 위기가 깊어지는 상황에서 15%의 수익은 오직 투기를 통해서만 거둬들일 수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세계 자본주의의 모든 부문이 얼마 전부터 ‘서브프라임’과 ‘파생상품’ 관련 증권을 사는 데 그토록 열을 올렸던 것이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똑같은 현상이 오늘날 공공부채와 유로화에 대한 투기에서 재생산되고 있다. 그리고 유로화는 막대한 경제와 인간의 총체인데,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이 정치적 난쟁이로 머물러 있기 때문에 유로화는 세계적 중요성을 지닌 다른 화폐들보다 투기에 저항할 힘이 더 약하다.

    만약 그리스 국채를 먹잇감으로 삼았던 투기꾼들이 유럽 대륙 전체를 뒤흔드는 데까지 성공한다면, 유로존은 붕괴의 위기에 맞닥뜨릴 수 있다. 하지만 충격은 유로존의 경계를 훨씬 넘어설 것이다. 그건 반드시 연쇄작용을 일으킬 것이며, 그 과정에서 영국을 포함해 유로존과 긴밀히 연결돼 있는 모든 경제가 뒤흔들리고, 세계 통화체제 전체가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노쇠한 자본주의 체제를 끝장내자  

    1930년대에 그랬듯이, 모든 거대한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노동자계급은 놀라고, 갈피를 못 잡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행동하도록 내몰릴 것이다. 이제 완전히 자본가계급 편에 서 있는 구 ‘개량주의’ 정당들, 그리고 그쪽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개량주의 정당들과 체제에 깊이 편입된 노조 관료들이 존재하지만, 사회적 폭발은 결국 등장할 것이다. 누구도 언제, 어떤 조건에서 이런 폭발이 촉발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위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이 자기 자신의 정책으로 자본가계급의 정책에 맞서는 것이 더욱 더 긴급해진다.

    노동자계급의 사기는 지금 점증하는 대량실업, 일자리 상실에 대한 공포 같은 객관적 상황 자체로부터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결국 벌어질 투쟁의 관점에서 볼 때 노동자들 사이에 계급의식이 부족하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과업이다”는 마르크스의 슬로건은 여전히 깃발과 문구 속에 들어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사회주의 세력’이라고 부르는 조직에서도, 분명히 정당하긴 하지만, 계급의식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다른 광범위한 부문적 요구 속에 노동자들의 계급적 요구와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 사상이 묻혀 버리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그들은 노동자계급과 다른 사회계급을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이 소부르주아의 옆에 서거나 뒤를 따르기도 한다.

    노조 관료들 사이에서는 ‘정당한 산업발전 정책’ 요구가 유행이다. 자본가계급이 산업구조와 일자리를 파괴하고 있다는 올바른 전제로부터, 노조 관료들은 자본가계급 또는 그 정부한테 산업을 발전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정당한 산업발전 정책’을 수행하라고 요구하는 잘못된 결론을 도출한다. 개량주의 조직들은 자본주의 질서를 뒤흔들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하기 때문에, 결국 하나마나한 얘기를 하는 것으로 끝내버린다. 노동자들의 생활조건은 자본가들을 따를 때가 아니라 그에 맞서 싸울 때만 방어할 수 있다.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을 상대로 맹렬히 공격을 퍼붓고 있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사간 상호 이해와 협력을 주장하는 것은 결국 자본가계급의 편에 서는 것을 뜻한다.

    자본가계급의 이해와 노동자계급 이해 사이의 적대를 완화하려고 하고, 둘을 화해시키려고 하면 결국 노동자계급을 착취자들의 손아귀에 쥐어주게 된다.

    반대로, 진정한 계급 정책은 존재하는 계급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걸 무대의 전면에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가계급에 맞서 총력 투쟁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노동자계급이 쟁취할 수 없는 요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위기가 계급투쟁을 격화시킬 때, 의회주의자들은 계급투쟁을 선거투쟁으로 대체한다. 즉 사회적 실제를 그림자로 대체한다. 노동자들의 관심을 지배계급 야당이나 선거 수준으로만 가두는 것은 노동자들을 무장해제시키는 것이다.

    위기 덕분에 트로츠키의 이행기 강령은 새로운 타당성을 얻고 있다. 그 강령의 목적은 자본주의 체제의 또 다른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에게 정치적 나침반을 주는 것이었다.

    실업과 대량해고가 확산되자, 혁명세력만이 아니라 개량주의 좌파세력들까지도 “모든 해고를 금지하라”는 슬로건을 널리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슬로건은 자본가계급의 경제 지배에 맞서기 위한 일련의 요구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다른 요구와 분리해 이 요구만 앙상하게 제기할 경우, 이 요구의 진짜 의미가 흐려질 수 있다.

    “모든 해고를 금지하라”는 요구는 “모든 노동자들 사이에서 일자리를 나누어야 한다. 단, 임금삭감은 없어야 한다”는 요구와 결합시켜야 한다. 또한 이 요구는 “기업 비밀을 철폐하라”는 요구와도 결합시켜야 한다. 기업비밀은 오늘날 자본 소유자들에게 사회의 생산력을 낭비하면서 투기할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이 광범위하게 떨쳐나설 수 있는 역관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이행기강령은 서로서로 분리된 개별적 요구의 단순 나열이 아니다. 이행기강령의 요구들은 자본가들의 기업 독재, 경제 독재를 끝장내기 위한 투쟁을 중심에 두고 있다. 그런 요구들의 목적은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생산과 경제를 통제하는 것이다.

    이 강령의 본질적 측면 중 하나는 은행에 관한 것이다. 금융의 노골적인 기생성 때문에 금융시스템을 통제하고 규제할 필요성이 전면에 대두된다.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말로만 떠들어댔던 것이 투쟁에 나선 노동자계급에겐 목표가 될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여러 은행을 하나로 합쳐서 공동소유하고, 통제하지 않고서는, 경제가 다수 대중의 이해에 따라 작동하도록 만들 수 없다.

    구체적 상황의 필요에 기초한, 이런 이행적 요구들은 자본가권력의 타도를 목표로 한다. 이런 이행요구들은 노동자계급이 투쟁에 나서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 때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어떤 조직도 그런 투쟁을 시작할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그런 투쟁이 시작될 때, 노동자계급이 경제를 통제하고, 더 나아가 경제를 떠맡게 할 투쟁강령과 정책을 방어하고, 대중화할 투사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현재의 위기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자본주의의 재앙적 실패와 사회를 조화롭게 발전시킬 수 없는 무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자본가계급이 경제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한, 그들이 오늘날 노동자계급을 상대로 펼치는 계급 전쟁에서 휴전이란 있을 수 없고, 공황과 대량실업도 끝장날 수 없다. 노동자대중이 사회의 통제권을 완전히 틀어쥘 때만 진정한 변화를 쟁취할 수 있다!

    자본가계급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는 것은 계획경제를 통해 경제를 합리적으로 재편하고, 더 나아가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공동체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취해야 하는 첫번째 조치다.

    그리스 아테네, 스페인 마드리드, 프랑스 파리, 중국 광저우, 방글라데시 다카 등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자본가계급의 공격에 맞서 파업과 시위로 자신의 반대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고, 사회 전체에 걸쳐 재앙만을 만들어낼 뿐인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한국 노동자계급도 최대한 빠르게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분투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두 어깨 위에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인류의 운명이 걸려 있다.

    혁명적 사회주의에 입각해 사회를 재편하려 하고, 노동자계급 현장에 깊이 뿌리박은 조직, 즉 혁명적 사회주의 노동자당이 사회주의를 향한 노동자계급의 전진을 일관되게 이끌어갈 수 있다. 이런 혁명정당을 시급히 건설해야 한다. 1930년대 공황기에 트로츠키가 말했듯이 지금 “인류의 위기는 지도력의 위기로 환원된다.”

      

    주요 참고 자료

    - <자본주의 경제의 지구적 위기>, 미국 스파크 그룹의 기관지 [계급투쟁] 2010년 2~3월호
    - <그리스, 아일랜드, 스페인 그리고 아마도 영국까지: 파산한 체제에서 실패한 국가들>, 영국 ‘노동자투쟁’ 그룹의 2010년 3월 포럼 자료
    - <통화와 공공부채를 겨냥한 새로운 투기>, 미국 스파크 그룹의 기관지 [계급투쟁] 2010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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