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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면투쟁 : 6호_노동자투쟁의 현 단계와 과제
| 2010·08·1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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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쟁과제]  

    노동자투쟁의 현 단계와 과제

    오민규

    1. 현 단계  

    (1) 쌍용차 투쟁 이후 확산되는 구조조정·정리해고 광풍  

    “쌍용차에서 못 막으면 정리해고 광풍 온다!” 지난해 쌍용차 점거파업에 대한 연대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애쓰던 전국의 활동가들의 이 외침이 현실로 다가오고 말았다. 쌍용차에서 정리해고·구조조정을 성공시킨 정권과 자본은 전방위적인 정리해고·구조조정 공격에 나섰다.

    오토바이와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경남 창원의 대림자동차 사측은 지난해 10~12월 전체 사원 665명 중 절반에 가까운 293명을 구조조정하기로 발표한 뒤, 193명 명예퇴직, 10명 무급휴직, 47명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에어컨을 생산하는 광주의 캐리어는 지난해 10월에 전체 생산직 조합원 543명의 무려 51.6%에 달하는 280명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뒤, 240명을 명예퇴직이라는 미명 하에 강제퇴직시켰고 이에 응하지 않은 나머지 40명의 조합원들에 대해 지난해 12월 14일자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차량용 에어컨을 생산하는 천안의 발레오공조코리아는 아예 수익성이 남지 않는다며 작년 11월 30일자로 공장 폐업을 단행했다. 프랑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초국적 자본 발레오의 이같은 결정 때문에 100여명의 조합원은 졸지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작년 연말 워크아웃을 신청한 금호타이어는 2009년 12월, 2010년 1월 월급도 지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산업은행을 비롯한 금호타이어 채권단이 ‘노조가 구조조정 동의서를 제출하고 무쟁의를 선언해야 긴급자금을 투입할 수 있다’고 협박해 끝내 노조가 대대적인 임금삭감과 1천여명에 달하는 정규직 조합원을 하청으로 분사화하는 끔찍한 양보를 함으로써 패배하고 말았다.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본급 10% 삭감 및 워크아웃 기간 5% 반납, 워크아웃 기간 임금 동결, 일부 수당 중단 및 폐지, 광주 12.1%와 곡성 6.5% 생산량 증가, 597개 직무 단계적 도급화, 워크아웃 기간 일부 복리후생 중단 및 폐지.

    전세계적인 물동량 축소와 수주물량 감소로 인한 조선산업 위기의 대가도 자본가들은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한진중공업 자본가들의 정리해고 공격으로 지난해 연말 300여명의 노동자들이 희망퇴직이란 미명 하에 강제퇴직을 당한 것도 모자라, 지난 2월 2일 한진 자본은 노동부에 352명의 정리해고 계획서를 신고했으며, 설계 파트에 대한 분사화 방침도 발표했다. 비록 올해 2월 26일 노동조합의 총파업 돌입 직후 교섭을 통해 ‘정리해고 중단’ 합의를 했으나 설계 파트 분사화를 비롯, 울산공장 폐쇄와 전환배치 등 정리해고가 아닌 다른 구조조정은 중단되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쌍용차 정리해고·구조조정 이후 정리해고 광풍이 불어닥치게 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구미의 KEC에서 구조조정 반대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쌍용차 투쟁 이후 진행되고 있는 정리해고·구조조정 광풍의 양상을 몇 가지로 요약해 살펴보도록 하자.  

    정리해고와 함께 쌍으로 묶어서 들어오는 분사화(비정규직화) 공격  

    공황기에 자본의 공격 순서는 다음과 같았다. 이명박 정권과 자본가들은 모든 부문과 모든 고용형태의 노동자들을 한목에 적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 했다. 즉, 순차적으로 공격의 순서를 정해놓고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공황의 초입부부터 조직노동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노조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가장 밑바닥의 미조직 노동자들부터 공격했다. 그 다음으로 조직노동자들 중에서 비정규직을 우선 해고하는 순서였는데, 여기에 교묘한 방식을 한 가지 덧붙였다.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이대며 정규직들을 비정규직의 일자리에 전환배치하는 방식, 즉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밀어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벌어진 쌍용차 투쟁에서는 드디어 정규직을 직접 정리해고하는 공격이 감행되었는데, 여기에서도 자본은 순차적인 공격방식을 선택했다. 먼저 희망퇴직을 실시함으로써 결의가 약한 부위들을 밀어낸다. 그 다음 투쟁의지를 가진 정규직들을 포위하고, 고립시켜 공격을 감행한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만들어놓은 새로운 공격방식이 있다. ‘분사화’라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앞서 정규직을 전환배치하며 비정규직을 밀어내는 방식과 흡사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앞선 방식에서는 그나마 정규직이라는 신분을 유지한 채로 비정규직을 밀어냈다면, 분사화라는 공격에서는 그 자리에 배치되는 정규직이 비정규직 신분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나마 일자리라도 지킬 수 있다는 게 어디냐” 하는 불안 심리를 조장해 공격을 감행한다.

    처음에는 “향후 3~4년간은 정규직 시절의 임금과 유사한 대우를 해주겠다”는 사탕발림을 섞어넣지만, 이미 분사화된 순간부터 언제든지 자본의 필요에 따라 짤려나가는 비정규직 신세가 된다. 이런 방식으로 분사화는 현장 전반을 비정규직화하는 전진기지로 활용된다.

    쌍용차의 경우 지난해 5월 8일 노동부에 정리해고 신고를 하면서 계획서에 대략 280명 규모의 분사화 계획을 함께 제출했다. 구조조정이 진행된 결과를 보면 자본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분명히 드러난다. 정리해고 신고서 제출 직전에 쌍용차 평택공장에는 대략 300여명의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존재했다. 그런데 구조조정 이후 쌍용차 현장에는 4개의 1차 도급업체와 6개의 분사업체에 각각 150명, 200여명의 비정규직 또는 비정규직화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2차 도급업체 소속까지를 포함하면 대략 500~600명의 비정규직이 있다. 게다가 정리해고·희망퇴직 등으로 2,000여명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장을 떠났기 때문에,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비율은 무려 3배 가량 늘어난 것이다. 이렇듯 자본은 현장의 비정규직화, 비정규직 양산을 향해 ‘분사화’를 활용하려 한 것이다.

    쌍용차를 첫 번째 사례로 해 동일한 공격이 다른 사업장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한진중공업에서 설계 파트 분사화를, 그리고 금호타이어에서 1,006명에 대한 분사화를 정리해고 계획서에 포함시켰다. 정리해고와 쌍으로 묶어서 분사화가 추진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는 것이다. 향후 다른 사업장에서 벌어질 정리해고·구조조정 공격도 유사하게 진행될 것임에 틀림없다.  

    핵심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운다  

    지난해 연말, 쌍용자동차는 러시아 솔레스라는 업체에 부품을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솔레스는 쌍용차 부품을 한국에서 전량 가져와 도장이나 용접 등의 절차 없이 세미넉다운(SKD)방식으로1) 완성차를 생산하게 된다. 지난해 12월 29일 가동에 들어가 카이런 5대를 첫 조립 생산하는 것을 시작으로 올해부터 렉스턴, 카이런, 액티언 등 연간 9,500대의 쌍용차를 생산할 예정이다. 완성차 조립에 필요한 부품들을 분해한 형태로 쌍용차에서 포장해 부산항에 선적하면, 블라디보스토크 항에서 이 부품을 받아 최종 조립하는 방식이다. 쌍용차는 이로써 러시아 솔레스에 연간 3억 달러 상당의 부품 수출을 할 수 있게 된다.

    쌍용차 사측은 이러한 수출 실적을 바탕으로 최근 연구개발 인력 50명을 인턴 형식으로 신규채용했다. 지난해 77일간의 점거파업에도 불구하고 2,000여명을 구조조정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한국의 언론들은 솔레스에서 쌍용차 부품을 수입하게 된 일을 두고 일제히 “회생의 날갯짓”이라며 앞다투어 보도했다.

    그러나 실상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쌍용차 사측은 정리해고·희망퇴직이라는 방식과 함께 부품을 포장해 수출하는 KD 부서를 핵심적으로 분사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즉, 러시아에 부품 수출 물량이 늘어난 점은 사실이지만 그 일을 담당하는 부서는 이미 비정규직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핵심 업무들, 알짜배기 이윤을 남기는 사업부들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정권과 자본은 비정규악법을 도입하면서 “핵심 업무는 정규직으로 쓰더라도, 주변적 업무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간다. 핵심 업무, 필수적 업무에 대해서는 비정규직화를 단행하고, 주변적 업무 따라서 조만간 정리해야 할 업무에 대해 정규직 사용을 유지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림자동차에서 과잉생산으로 재고물량이 넘쳐나는 오토바이 생산에는 정규직을 써왔지만, 현대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부서는 100%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다. 대림자동차는 사실상 현대차그룹의 후원 아래, 오토바이 생산보다는 자동차 부품생산을 핵심 부서로 키우고 있는데, 그 부서가 100% 비정규직화되어 있는 것이다. 현대기아차 그룹이 변속기 부품 외주화를 위해 만든 서산의 현대파워텍 역시 비정규직으로 넘쳐나고 있으며, 일부 정규직이 있기는 하지만 무노조 사업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기아차에서 가장 잘 팔리는 경차 ‘모닝’ 역시 서산의 동희오토라는 100% 비정규직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현대기아차가 엔진과 수동변속기 생산을 외주화하기 시작했는데, 그 전진 기지가 바로 현대위아의 포승공장이다. 공작기계를 주로 생산하는 현대위아 창원공장은 금속노조로 조직되어 있지만, 포승공장에는 100여명의 정규직이 금속노조로 조직되어 있을 뿐 나머지 대다수 엔진 생산은 노조를 갖지 못한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모닝 후속차량의 엔진을 포승공장에서 생산하게 되는데, 이 물량은 애초에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생산되고 있었다. 이렇게 정규직 일자리를 바깥의 비정규직 공장으로 외주화하고 있는데, 이 업무들은 자본의 입장에서 매우 핵심적인 것들이다.  

    구조조정은 민주노조의 깃발을 빼앗는 데까지 나아간다  

    쌍용차 정리해고·구조조정에서 이명박 정권과 자본가들은 또 하나의 중요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민주노조를 없애는 것이다. 구조조정에 성공하더라도 민주노조의 씨앗을 남겨놓게 되면, 해고자들을 중심으로 또다시 복직투쟁이 전개되어 분쟁에 휘말리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에게 민주노조 파괴라는 목표가 달성되지 않으면 구조조정을 강행할 이유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쌍용차 법정관리인은 투쟁이 끝난 직후 지식경제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쌍용차지부의 민주노총 탈퇴를 밀어붙이겠다고 공언했고, 실제로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탈퇴 총회가 소집되어 강행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쌍용차 투쟁 이후 벌어진 모든 구조조정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먼저 안산의 인지컨트롤스에 지난해 말 금속노조 깃발이 세워지자 12월 21일 용역깡패 투입에 이어 출근 저지에 나섰고, 이어 1월 12일 안산 1공장에 직장폐쇄 단행, 19일에 2공장 직장폐쇄 단행까지 전광석화처럼 자본의 공격이 이어졌다. 경주의 발레오만도에서는 경비·통근버스 업무 외주화에 맞서 노동자들이 투쟁을 결의하고 나서자, 구정 연휴 직후인 2월 16일 공격적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곧바로 용역깡패를 투입했다. 외주화 저지 쟁점으로부터 출발한 투쟁이지만, 자본가들은 이 기회에 민주노조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의도로 공격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해 이명박 정권은 철도노조·발전노조를 비롯한 공공부문 노조들에 대한 단협 해지 공격을 밀어붙였는데, 단협 해지 공세는 공공부문으로부터 출발해 지난 2월 1일 두산인프라코어에 단협 해지를 하는 등 금속부문·민간부문으로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이른바 ‘특수고용 노동기본권’을 부정하며 화물트럭 기사와 덤프트럭 기사가 노동자가 아니라는 억지주장을 펼치면서 건설노조·운수노조에 대한 설립필증 회수 협박이 진행되고 있고, 공무원노조·전교조에 대해서도 노동조합 자체를 부정하는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한진중공업이다. 정리해고·구조조정 공격이 개시되어 300여명의 희망퇴직, 설계 파트 분사화, 울산공장 전환배치, 비정규직 우선해고 등의 구조조정까지 진행되었으나, 민주노조 무력화라는 목표지점까지는 밀어붙이지 않은 채 일단 정리해고 중단 수준에서 일단락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조합의 총파업 선언과 저항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만일 쌍용차 이후 구조조정의 일반 법칙에 예외가 없다고 한다면 이렇게 추정해볼 수 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는 ‘잠시 중단된 것’일 뿐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말이다. 자본가들은 결코 민주노조 말살이라는 구조조정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세계대공황으로 급격히 감소한 세계물동량 때문에 조선산업 수주물량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기에, 한진중공업 자본은 다시 한 번 구조조정의 기세를 밀어붙이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 우선해고 → 정규직부터 공격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황기에 자본의 공격은 먼저 비정규직을 향했다. 그래서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여러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우선해고’라는 것이 쟁점이 되었다. 그러나 쌍용차의 경우 일정 시점(대략 지난해 3월)까지는 비정규직 우선해고의 공격을 밀어붙이다가, 5월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정규직 구조조정의 시기에는 비정규직은 가만히 두고 정규직에 대한 공격을 단행했다. 분명히 공황의 초입부와는 공격의 양상이 달라진 부분이다.

    이러한 측면 역시 쌍용차 이후 다른 사업장의 구조조정에서도 유사하게 목격된다. 금호타이어에서, 대림자동차에서 정리해고·구조조정은 정확히 정규직을 겨냥했으며, 비정규직 부문에 대해서는 공격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비정규직 우선해고’의 국면과 비교해보면 그다지 큰 편이 아니었다. ‘비정규직 없는 사업장’으로 알려져 있는 경주의 발레오만도와 천안의 발레오공조코리아 역시 정규직에 대한 전면 공격이 단행되고 있다.

    물론 ‘비정규직 우선해고’라는 현상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사업장에서 비정규직들이 정규직 구조조정에 앞서 먼저 해고되고 있다. 이를테면 얼마전에 역동적인 원·하청 연대투쟁이 벌어졌던 현대차 전주공장에서도 쟁점은 버스부 18명 비정규직에 대한 우선해고 공격이었다. 현대자동차 울산 2공장에서는 ‘투싼’의 단종으로 66명(의장 50명, 생산관리 16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의 위협에 처해 있으며, 향후 1공장·3공장·4공장에서 마찬가지로 신차 투입 내지 구형 차량 단종 문제로, 그리고 변속기공장 등에서도 정규직 전환배치를 통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리해고가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정 시점까지는 비정규직 우선해고의 공격을 진행하지만 본격적인 구조조정 국면에서의 대응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법정관리·워크아웃 등 위기에 처한 자본이 노동자에게 대가를 치르도록 만드는 공격이 벌어질 때에는,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에 대한 전면 공격이 감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2) 타임오프제 등 노동법 개악에 의한 민주노조 무력화 공세  

    자본가들은 쌍용차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밀어붙인 후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 조직노동자들에게 구조조정·정리해고 공세와 함께 법·제도 개악을 밀어붙이며 민주노조의 깃발을 빼앗으려는 공격태세를 갖추었다. 지난해 연말 국회에서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등 노동악법을 강행 통과시킨 후, 올해 7월 1일부터 시행된 타임오프제를 활용해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타임오프제를 활용한 자본의 공격은 크게 2가지 대상을 향해 벌어졌는데, 하나는 기아차를 비롯한 대기업노조들이고 다른 하나는 경주를 비롯한 민주노조들이 굳건히 서 있는 지역들이었다. 이른바 ‘타임오프제 도입’은 조직된 노동자운동을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진행된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개별 사업장에 일일이 노동부 관리들을 파견해 타임오프제를 상회하는 노사합의를 뒤집어엎고 자본가들에게 민주노조 말살에 나설 것을 독려했다. 사업장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각종 부당노동행위 등 자본가들의 불법행위에 대해 이러한 지도, 점검이 이뤄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에서, ‘노동부’라는 이름을 가진 자본가들의 국가기구가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지 아주 분명히 드러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자본가 권력의 전방위적 지원에 자신감을 찾은 자본가들 역시 맹공격을 퍼부었다. 심지어 경주의 다스(DAS)에서는 자본가들 스스로 의견접근(잠정합의)한 내용을 두고 노동자들의 전면파업을 감수하면서까지 조인식을 거부하였고, 끝내 완성차 교섭 결과에 따라 재교섭을 진행한다는 양보안을 관철시키기도 했다.

    자본가들은 자본주의 체제 성립 이후 단 한 번도 노동자 착취와 억압을 위한 공격을 중단한 적이 없다. 전임자 문제만 해도, 임금지급을 금지해야 한다는 공격이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20여 년간 계속돼왔다.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다가도 노동자의 저항에 밀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시행유예’를 무려 13년간 반복하다, 지난해 집중 공격을 퍼부어 관철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 변화가 있었기에 공격을 밀어붙이기로 한 것일까?

    그것은 지난 십수 년간 진행돼온 민주노조운동 지도부의 관료화 때문에 대중과 노조관료층 간에 괴리가 벌어졌다는 점이다. 단순한 비교를 한번 해보자.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상당수 대기업 노조들에서는, 노조 전임자보다 해고자 수가 더 많은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전임자 임금이야 자본이 부담하는 것이지만, 해고자 생계비는 조합비로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 몇몇 대기업 노조는 1년에 해고자 생계비로 지출되는 조합비가 수십억에 육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 조합원들은 자신이 낸 조합비의 상당 부분이 해고자 생계비로 지출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해고자들은 전체 조합원의 권리 쟁취를 위해 앞장서 싸워온 헌신적 노동자들이었고, 그들을 지키지 않으면 노동조합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노조 전임자들에 대한 조합원들의 시각은 어떤가? 물론 헌신적인 전임자들, 평조합원들로부터 신망을 얻고 있는 간부들도 일부 있다. 하지만 특히 대기업 노조에서 전임자들은 고된 노동을 면제받으면서 조합원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존재처럼 여겨진다. 현장투쟁이 벌어지면 그것을 확산시키기보다 양보를 종용하고, 사측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거대한 관료층이 대중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기에 이른 것이다. 만일 지도부와 평조합원 사이의 괴리가 이 정도로 벌어지지 않았다면, 이명박 정권과 자본가들은 함부로 전임자 문제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과 자본가들은 그 틈을 간파하고 “바로 지금이 기회”임을 포착했다. 전임자 문제를 건드려도 평조합원들의 반발이 강하게 올라오지 않을 것임을 알아챈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공격이 진행되자 여러 사업장에서 관료층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조합원들의 권리를 헌납하는 양보까지 하고 있어서, 관료층과 조합원들 사이의 괴리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전임자 수와 처우에 관한 사항을 (비공개)이면합의로 받는 대신, 교대근무나 전환배치와 관련해 자본가의 권리를 대폭 인정해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본가들의 대표언론인 <조선일보>는 6월 23일, “강성노조 밀집, 사용자 굴복 가능성 높아…”라며 “금속노조 경주지부를 주목하라”는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대다수 언론이 기아차 노사교섭을 주목한 반면, <조선일보>는 경주지역 금속사업장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왜일까?

    경주지역 금속사업장들은 노동자계급 단결과 연대의 모범을 세워왔다. 금속사업장이 아닌 중소영세 사업장 비정규노동자들의 해고에 맞서 지역총파업으로 투쟁사업장을 엄호했고, 쌍용차 점거파업이 벌어질 때에도 가장 헌신적으로 연대투쟁에 나섰으며,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기본급 동결 공세가 몰아칠 때에도 “성과급이 아니라 단 10원을 올려도 기본급을 올려야 한다”며 모든 사업장에서 기본급 인상을 쟁취한 바 있다. 게다가 지역에 신규 사업장이 금속노조로 가입하면 사업장을 넘어 헌신적으로 연대하는 전통, 신규 사업장의 승리를 바탕으로 주변 사업장으로 조직화를 확대하는 역동적인 운동을 건설해왔다.

    자본가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금속노조 경주지부가 자본가들로부터 중요한 표적이 됐던 것은, 타임오프와 전임자 문제를 이슈로 한 투쟁 때문이 아니었다. 대중의 가슴에 가장 절실한 요구로 자리 잡고 있는 생존권 문제를 핵심으로 계급적 단결과 연대를 확장했기 때문에, 경주지역 금속사업장 지도부는 평조합원 대중으로부터 상당한 신뢰를 얻고 지도력을 인정받아왔던 것이다. ‘타임오프제 분쇄’를 내걸고 총파업 선언과 철회를 반복한 민주노총의 투쟁전선에는 노동자들이 무관심했지만, 헌신적인 지도부, 간부들과 자신들이 한 몸임을 자각해온 경주지역 금속노동자들은 “전임자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노조 자체를 말살하겠다는 것”이라는 해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물론 정권과 자본의 집중 표적이 됨으로써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경주지역 금속사업장들의 사례는 타임오프제, 창구단일화 등 저들이 밀어붙이는 노동법 개악공세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3) 쌍용차 투쟁이 민주노조운동에 미친 두 가지 상반된 영향  

    쌍용차 정리해고는 이명박 정권과 자본가들에게 전 산업에 걸친 구조조정의 ‘마루타’ 역할을 함과 동시에, 민주노조운동과 노동자 투쟁의 전개 양상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안타깝게도 다수의 민주노조운동 지도부들에게는 “쌍용차에서 저토록 처절하게 싸웠지만 결국은 패배했다. 그러니 우리의 양보를 통해 자본의 양보를 끌어냄으로써 정규직 조합원 고용만이라도 지켜보자”는 식의 사고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게다가 금속노조를 비롯한 연대투쟁이 너무나도 미약했기 때문에 “싸우다가 아무도 보호해주지 못하고 우리만 고립되는 것 아니냐”는 좁은 전망에 갇히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양보교섭에 매달리는 길이 잠깐 동안은 나아보일 수도 있다. 쌍용차 점거파업 노동자들이 겪어야 했던 해고·구속·손배가압류·벌금 등의 피해에 비하면 잠시 동안 눈 한번 질끈 감고 양보하는 것! 하지만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서 있는가 하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아무리 양보해도 자본가들은 충분하지 않다고 답하고 있으며, 비록 일시적으로나마 양보를 통해 현상유지를 한다 할지라도 불과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해온다. 거듭해 투쟁을 미루다보면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를 상실해가고, 조직력·투쟁력이 약화되면 결국 민주노조 깃발마저 빼앗기고 만다.

    그러나 쌍용차 77일 투쟁 전사들은, 비록 정리해고를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이 투쟁에 아직 희망과 전망이 있다고 믿기에 ‘쌍용차 정리해고특별위원회(정특위)’를 구성하고 새롭게 쌍용차지부의 체계를 정비했다. 함께 투쟁했던 비정규직지회와의 통합을 의미하는 1사1노조 규약변경도 결의했다. “우리는 결코 패배한 것이 아니다. 비록 1라운드에서는 정리해고 강행과 민주노조 깃발을 빼앗기고 말았지만 여전히 2라운드가 남아 있으며, 분명히 기회가 올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다. 그들은 아직 ‘저항’이라는 무기를 부여잡고 있다. 양보교섭의 끝에는 그 ‘저항’이라는 정신과 무기마저 빼앗기는 길이 놓여 있다.

    그런 의미에서 쌍용차 투쟁은 다른 방향의 영향을 미치고 있기도 하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저토록 처절하게 싸웠는데도 정리해고를 막아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더 준비해야 할까?”라는, 진지하고 치열한 반성과 모색을 하는 노동자들도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발레오만도 직장폐쇄에 맞선 금속노조 경주지부의 연대총파업을 조직해온 노동자들, 비정규직 우선해고에 맞서 수백명의 출근투쟁과 잔업거부투쟁을 전개했던 현대차 전주공장 노동자들이 그런 사례에 속한다. 그 노동자들은 쌍용차 투쟁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조합원 여러분! 우리는 작년에 있었던 쌍용차투쟁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 그렇게 처절하게 싸웠지만 결국 고용보장을 지켜내지는 못하고 해고된 동지들이 ‘쌍용차 정리해고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복직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왜 고용보장을 지켜내지 못했습니까?

    처음 비정규직이 해고되어 잘려 나갈 때 정규직은 침묵하고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비정규직을 해고할 때 나는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비정규직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최저임금을 삭감하려 할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최저임금 노동자가 아니었으니까. 결국 그들이 나에게 퇴직희망서를 보내왔을 때 아무도 항의해줄 이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처음 시작했을 때 시작했어야 했습니다. 바로 지금이 싸워야할 때입니다! (현대차지부 전주위원회 대자보, 2010. 3. 13.)  

    (4) 지자체 선거 이후 조금씩 자신감을 찾으며 올라오는 미조직 노동자들  

    대다수 언론들이 6.2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한나라당 참패, 민주당(야권연대) 승리’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진보정당들의 경우 - 일부에서는 선거결과라는 성적표만 보면서 성과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 결코 희망적인 교두보를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 스스로의 정강·정책이나 색깔을 포기한 대가로 민주당과의 연합을 선택한 것에 대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영역은, 노동자들이 이번 지자체 선거를 전후로 어떠한 선택과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 하는 대목이다. 6.2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노동자들의 표정은 이전보다 조금은 밝아졌다. 그만큼 이명박 정권의 독주에 제대로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한 과거에 비해 ‘열린 공간’이 조금 넓어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제 서울광장에서 집회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선거가 끝난 직후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 일부가 곧바로 쏟아낸 여러 반응들 중 하나이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6월부터 서울광장에서 집회가 열리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2년 전 연인원 수백만을 동원했던 촛불들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감개무량한 장면이었음에 틀림없다.  

    '민주당 2중대'로 전락한 지도부의 낯 뜨거운 변절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라는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개량주의 정당이 노동자정치를 독점하도록 만드는 잘못된 방침이긴 하지만, 역사 속에서 긍정적 의미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같은 자본가정당과는 단절하겠다는 선언의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자본가정당의 후보로 나가는 것은 징계감이었고, 선거운동에 나서는 것도 조합원 대중의 지탄 대상이 됐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의 태도는 어떠했던가? 강기갑 대표가 민주당 한명숙 후보와 함께 ‘기호 2번’을 연호했고, 전국 곳곳에서 민주당과 한 몸이 돼 선거운동을 펼치는 등 낯 뜨거운 짓을 공공연하게 벌였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지도자가 스스로 앞장서서 “자본가정당을 지지해선 안 된다”는 정치방침을 어기고 나선 것이다.

    개량주의 노동자당과 민주노총의 관료적 지도부가 사실상 민주당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것은, 쇠퇴기 자본주의가 최악의 위기를 맞은 공황기에 필연적 모습이기도 하다. 야만적 공황을 불러온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해야만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을 사수할 수 있는데, 개량주의, 관료주의 지도부는 그럴 용기도, 의지도 없기에 민주당의 날개 밑으로 숨으려 한다. 따라서 이들이 ‘민주당 2중대’로 전락하는 경향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며, 2012년 총선과 대선까지 “MB 심판”의 명분을 내세우며 민주당과의 합작을 지속할 것이다.  

    정치적 선택의 불균등성 : 조직노동자 vs 미조직노동자  

    노동자들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떤 정당을 주로 선택했는가,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들이 균일하지 않다. 특히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기준으로 나눠보면 그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먼저 노동자들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추론해보자. 단순히 당선자 수를 비교해서는 제대로 보기 어렵기에, 정당명부 비례대표 투표결과를 놓고 따져봐야 한다. 정당명부 비례대표 결과만을 놓고 보면, 민주노동당·진보신당·사회당이 지난 2008년 총선에서 151만여 표를 얻은 반면 이번 지자체 선거에서는 무려 224만여 표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선자 수만 놓고 보면 진보정당들은 서울·경기권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고, 인천과 경남권에서 약진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정당명부 비례대표 득표수를 놓고 지난 2008년 총선과 이번 지자체 선거를 비교해 보면, 대전을 제외한 전국 15개 광역시도 득표율이 거의 비슷하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특정 지역에서 약진한 것이 아니라 전국에서 골고루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진보정당을 지지해왔던 조직노동자들이 거의 이탈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야권 단일화로 여러 지역에서 민노당을 비롯한 진보정당 후보들이 중도 사퇴함으로써 인물을 뽑는 선거에서는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정당명부 비례대표 투표에서만큼은 조직노동자들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을 지지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조직노동자들은 노동자계급 중에서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은 부위로서, 그들은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등 이른바 ‘민주당 정권’들을 상대해봤고 충분히 경험해본 이들이다. 그들은 다음의 사실들을 잘 알고 있다. 타임오프제 국회 강행 통과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이가 누구던가? 한때 ‘추다르크’로 불리며 민주당의 대권주자로 거론되던 추미애가 아니었던가? ‘노동귀족’이라는 말을 즐겨 쓰며 정규직·비정규직의 분할에 앞장섰던 세력은 다름 아닌 민주당 노무현 정권이었다. 민주당의 실체와 본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조직노동자들은, 비록 지도부가 ‘민주당과의 야권 연대’를 추진했는데도,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보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이번 선거에서 야권 단일화에 기대를 품고 민주당에 대거 표를 몰아준 쪽은 청년층을 비롯한 미조직 노동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민주당의 실체를 제대로 겪어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의 독주를 막을 대안세력으로 민주당을 선택한 것이다. 조직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저항에 나설 때 민주당 권력도 한나라당 권력과 똑같은 탄압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면서 직접 겪어봤지만, 미조직노동자 층은 그런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치정세 변화에 대한 반응도 불균등하게 나타난다  

    언뜻 보면 진보정당을 지지한 쪽이 좀더 활발한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 예상할지 모르겠으나, 현실은 항상 수학적 공식처럼 들어맞지는 않는 법이다. 왜냐하면 조직노동자들의 경우 이명박 정부의 노동배제전략과 노조탄압 때문에 상당한 패배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패배의식은 단시일 안에, 또는 선거결과라는 계기점 하나만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민주당 정권을 충분히 경험해본 조직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선거로 민주당이 약진했다 하더라도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점, 즉 저항에 나설 경우 탄압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역설적으로 민주당을 선택한 청년층과 미조직노동자들의 경우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이제 우리가 진출할 때”라는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다. 좀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이들 중 일부는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우리가 이겼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비록 그것이 ‘민주당에 대한 환상’ 때문이라 할지라도, 미조직노동자들은 이명박 정권이 독주하던 시절보다 뭔가 자신들이 진출할 공간이 넓어졌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이러한 사례를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들의 노조설립운동과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IMF 시절을 전후해서인데, 특히 2003년부터 시작된 비정규직노조운동은 그 수준과 폭이라는 면에서 과거보다 상당히 진일보한 면들을 보여주었다. 화물연대가 2003년 5월에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슬로건으로 1만여 명의 미조직 화물트럭 기사를 조직하고 총파업을 벌여 노무현 정부와 ‘노정 합의서’를 체결한 것, 현대차 아산공장 식칼테러 사건으로부터 출발해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조직화와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시작된 것이 모두 2003~2004년 경이었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2002년 말에 세간의 예상을 뒤엎고 당시 민주당의 노무현 대선 후보가 드라마틱한 대역전극을 펼치며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2004년에는 민주노동당이 무려 10석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며 원내에 첫 입성한 바 있다. 당시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들이 대대적인 조직화와 저항으로 떨쳐일어선 배경에는, 이러한 정치적 변화도 분명히 한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약간의 비약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1987년 6월 항쟁 역시 7~9월에 벌어진 노동자 대투쟁에 적지않은 영감을 준 것이 사실이다. 난공불락이라 생각했던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이 6.29 선언으로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는 것을 보면서, 노동자들은 “저 철옹성 같던 전두환 정권도 결국은 무너지는구나”라는 마음을 품기 시작했다. 87년 6월 항쟁이 정치적으로 ‘열린 공간’을 만들어냈다면, 노동자들은 그 공간으로 대대적인 조직화와 투쟁을 밀어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87년 7·8·9 대투쟁으로 일어선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당시 ‘미조직 노동자’의 범주에 속한 이들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치적으로 ‘열린 공간’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탄압의 정도가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차별시정위원회’ ‘동일노동 동일임금’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노무현 정부는, 김영삼 정부(632명)나 김대중 정부(892명) 때보다 훨씬 많은 수인 1,037명의 노동자를 구속했으며 이중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수가 절반이 넘는다.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들이 ‘열린 공간’의 틈을 비집고 조직화와 투쟁으로 떨쳐일어섰으나, 노무현 정부는 이들의 진출에 탄압의 칼을 들이밀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열린 공간'에서는?  

    역사 속에서 드러난 정치정세의 변화에 대한 조직노동자, 미조직노동자들의 상이한 반응을 통해 하나의 가설을 세워보자. 사실 지난 1~2년 동안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신규 조직화에 씨가 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새로운 조직화나 노동자들의 진출은 구경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비록 ‘민주당에 대한 환상’에서 출발한 것이라 할지라도, 앞으로 새로운 미조직노동자의 조직화와 진출의 가능성은 더 넓게 열리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미조직노동자들이라고 편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치정세의 변화는 미조직노동자들 속에서도 균등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와 경험으로부터 본다면, 미조직노동자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이 ‘열린 공간’을 통해 진출할 가능성이 높은 부위는 “조직노동자의 근처에 있는 미조직노동자들”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경우 조직노동자들의 투쟁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자신의 희망과 전망을 키워온 노동자층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2003년부터 대대적인 조직화가 다시 시작된 대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경우, 대부분 강력한 민주노조가 들어서 있는 대공장들에서 조직화와 투쟁이 진행되었다. 비록 관료적 타락과 관성에 젖어들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바로 곁에서 활발한 투쟁을 통해 현장에서의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노조를 지켜보며 “우리도 노조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품어왔던 것이다. 조직노동자들의 바로 옆에서.

    최근 대학의 청소용역 노동자들, 그리고 건설부문의 굴삭기 노동자들이 자신감을 갖고 진출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분석이 그저 예측에 머무르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지자체 선거가 끝난 지 3일 뒤인 6월 5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청소노동자 행진’에는 서울지역 대학에서 일하는 청소용역 노동자들 4~5백명이 모여든 바 있다.

    몇 년 전부터 여러 대학과 병원 등에서 노조로 조직돼 투쟁을 펼치고, 작으나마 승리를 맛본 청소노동자들은, 이날 집회에서 매우 생기발랄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이런저런 명망가들이나 노조 대표자들 발언 몇 개 듣고 끝내는 맥 빠진 집회와는 달리, 현장 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울려퍼졌고 노동자들 스스로 준비한 풍물 공연, 에어로빅 공연 등으로 생동감이 넘쳤다.

    트로트 가사를 바꾼 ‘최저임금 인상, 청소노동자도 인간이다’ 노래에 맞춰 너도나도 어깨춤을 추며 즐거워한다. 뙤약볕도 아랑곳 않고 즐겁게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흡사 마을잔치를 방불케 했다. 이곳에서 집회를 한다는 포스터만 보고 마로니에 공원을 찾은 어느 미조직 청소노동자도 용기 있게 나서서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최근 2~3년간 활발한 조직화가 벌어졌던 청소노동자들의 근처에 있는 미조직 청소노동자들의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덤프트럭 기사들의 조직화와 투쟁이 2004년부터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는데, 올해 4월에는 건설현장에서 덤프트럭 기사들과 함께 일하는 미조직 굴삭기 기사들이 ‘8시간 노동제’를 내걸고 저항에 나서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 역시 덤프트럭 기사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는 것을 근처에서 지켜보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키워온 이들이다. 지역별로 편차가 있긴 하지만, 건설노조의 조직력이 강한 지역에서는 미조직 굴삭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그렇다면 또 한 가지 예측이 가능하다. 지자체 선거에 비해 ‘무상급식, 자립형 사립고’ 등 상대적으로 계급적인 쟁점을 놓고 격돌했던 교육감 선거에서, 이른바 ‘진보’ 후보들이 약진한 점을 감안한다면, 그동안 조직화가 부진했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진출의 가능성이 넓게 열리게 될 것이다. 물론 이른바 ‘진보’ 교육감 당선자들은 벌써부터 자신이 내세운 공약으로부터 후퇴하고 있어서, 전교조를 비롯한 조직노동자들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미조직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이른바 ‘진보’ 교육감에 대한 기대를 상당히 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서울지역의 초·중등학교에서 일하는 급식 조리원 노동자들 수백명이 서울지역일반노조로 가입한 것이 그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가입을 결정한 총회 자리에서, 급식 조리원 노동자들은 곽노현 서울교육감에 대한 상당한 기대를 표명했다. 동일한 이유에서 지자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들 모두 공무원노조나 전교조 등 조직노동자들의 근처에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 과제  

    지금까지 노동자투쟁의 현단계를 살펴보고 나름의 진단을 해보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노동자투쟁이 나아가야 할 방향, 그리고 노동자투쟁을 선도하는 선진노동자들이 부여잡아야 할 전망은 무엇일까? 이미 그 한계를 명백히 드러낸 개량주의 진보정치와 전투적 조합주의를 넘어, 사회주의를 내걸고 싸우는 투사들은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행동해야 할까?

    짧게나마 몇 가지 전망을 얘기하며 함께 토론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이것을 ‘정답’이라고 내어놓는 것이 아니다. 정답은 실제 투쟁에 임하는 노동계급 대중이 입증해보일 것이다. 대중들 스스로 정답을 찾아가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수많은 오답을 놓고 토론하고 실천해봐야 한다.  

    새롭게 계급형성을 일궈내는 주체들을 상승시키기 : 자본의 노동자 분할에 맞선 노동계급 단결의 방향으로  

    먼저 노동계급의 힘과 선진노동자들의 역량이 최고로 집중되어 있는 이른바 전략사업장의 경우, 짧게는 수년 길게는 십수 년간의 관료주의 득세 때문에, 그리고 이명박 정권을 상대로 맞짱을 뜰 용기의 부족 때문에, 아직까지 대다수 사업장에서 자신감이 회복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반대로 미조직 노동자들의 경우, 조직노동자들의 근처에 있는 미조직 노동자들이 조직화와 투쟁으로 일어서기 시작했다. 일어서는 형태 역시 조직노동자들에 비해 훨씬 밝고 발랄한 형식을 띠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은 아직 패배의 경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노동자들의 경우 수많은 패배의 경험을 안고 있기에 어떤 투쟁에 나설 경우 자신들이 치려야 할 대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미조직 노동자들의 경우 아직 패배의 경험에 사로잡힌 대중들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발랄하게 진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각급 노조운동 지도부 대다수는, 이번 선거의 결과를 민주노동당과 유사하게 ‘反 MB 투쟁의 승리’로 해석한다. 그러나 아마도 그들 스스로도 이번 선거 결과가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이것이 ‘환상’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관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대중들에게 ‘환상’을 심으려 한다.

    조직노동자들도 선거 결과에 대해 ‘환상’을 갖는 이들이 거의 없을 것이며, 지도부의 ‘승리’ 메시지를 “이제 떨쳐일어설 때”라는 신호로 착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연하게 주어진 한나라당의 패배라는 결과를 두고 지도부가 행하는 ‘립 써비스’임을 모르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타임오프제에 맞서 힘차게 투쟁하면 그래도 과거에 비해 탄압이 줄어들 것이라는 착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조직노동자들은 ‘권력 이동’의 실체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조직노동자들의 일부 진출이 벌어질 경우, 기존 노조운동의 관료적 지도부들은 이들을 향해 “지방자치 권력과 교육감 권력이 바뀌었으므로 그들과 함께 일을 풀어보자”며 더욱 민주당 세력에 기대는 방향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미조직노동자들은 실제로 환상을 갖고 진출하게 될 것이고, 지도부 입장에서는 ‘가공의 환상’을 주조해야 하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 미조직노동자들의 일부 진출과 지도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게 된다.

    실제로 몇 가지 요구에 대해서는, 민주당 권력에 빌붙어 미조직노동자들의 이해를 충족시켜주는 사례도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완전히 똑같은 세력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조직노동자들은 관료적 지도부에 처음부터 맞서 싸우기보다, 그들이 제시하는 ‘민주당 구청장·시장과 교육감을 면담해보자’는 식의 길에 찬성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자본가 정당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는 민주당 권력이 실체를 드러내는 것은 시간 문제다. 다가올 공황의 여파 때문에 민주당 권력이 구사할 수 있는 정책수단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자신의 공약을 축소하고 자본가들의 이윤을 침해하지 않겠다는 민주당 당선자들의 선언이 시작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착목해야 할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조직노동자의 근처에 있는 미조직노동자들 일부는 선거 결과에 따른 환상으로부터 진출의 길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조직노동자들 속에서는 당장 자신감과 투쟁이 상승하지 않을 것이다. 관료적 지도부는 민주당 2중대의 성격을 더욱 분명히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진출하게 될 미조직노동자 층에 주목하면서, 그들의 진출이 벌어졌을 때 조직노동자들의 역량을 계급적 연대로 모아내는 것, 그들의 투쟁 소식을 조직노동자들이 있는 현장으로 퍼나르는 것, 그러한 방식으로 미조직노동자 진출의 기운을 조직노동자 층으로 옮겨오는 것. 그 과정에서 지금 기운을 잃은 조직노동자 층에게 새로운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것.  

    평의회 정신에 입각한 평조합원 운동의 전망으로  

    평의회 운동, 평조합원 운동이야말로 전투적 조합주의 및 개량주의 진보정치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전망이다. 관료주의·조합주의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간부 중심 사고, 지도부 중심 사고 내지 대리주의·교섭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일부 보수화된 대중들에게도 내재화되어가고 있는 대리주의·교섭주의를 걷어내고 다시 한 번 아래로부터 역동적인 운동, 평범한 노동자 대중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운동을 건설하려는 지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평의회 운동, 평조합원 운동에 대한 이론적 설명만 늘어놓아도 수십 쪽에 달하는 글이 나오겠지만, 여기서는 간단히 몇 가지 사례만 짚어보도록 하겠다. 수십 쪽에 달하는 문건을 읽고 학습하는 것 못지않게, 실제로 현장에서 평조합원 운동을 실현해 보려는 시도와 기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최근 타임오프제와 관련해 일종의 대리전처럼 보도되고 있는 기아차 현장 사례를 하나 들어보도록 하자. 민주노조운동 역량이 상당히 살아있다고 여겨지는 이른바 ‘전략사업장’ 중 하나인 기아차이지만, 알려져 있는 것에 비해 현장에서 타임오프를 빌미로 한 자본가들의 공격에 맞선 저항은 제대로 벌어지고 있지 못하다. 일부 공장에서는 조합원들의 조퇴·외출·지각에 대해 사측의 경고장이 날아들자 조퇴·외출을 스스로 자제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현장조직 현수막이 휴일을 틈타 떼어지는 일도 생기고 있지만 항의행동도 잘 조직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소하리 공장 도장 2부에서 조합원 1명이 외출을 하려는 것에 대해 반장이 불허하고 ‘작업지시 불이행’이라며 작업대기를 명하자, 해당 조합원이 항의하고, 반장이 그 조합원을 폭행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자 도장2부 실라 A반 평조합원 10여명이 출근선전전과 홍보물 배포를 하며 투쟁하기 시작했다. 바로 여기에 평의회 운동, 평조합원 운동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요체들이 모두 들어 있다. 그 일부 내용을 여기 소개한다.  

    끝까지 현장에서 투쟁해 나가겠습니다!  

    조합원 여러분! 7개월간 도장2부 실라A반원은 부당근태, 부당징계로 싸우고 있지만 외롭거나 지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위에 내 동료가 있고 조합원이 있기에 저희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싸울 것입니다. 저희가 이번에 배운 것은 그 누구도 대신해서 싸워주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먼저 시작할 때만 함께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단체협약을 무시하고 부당한 징계 및 근태가 철회될 때까지 저희 도장2부 실라A반원은 현장에서 열심히 싸워 나갈 것입니다.

    조합원이라는 대명제를 앞에 놓고 이제는 “같은 조합원” 이라고 하는 수식어를 쓸려면 그에 걸맞는 행동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도와주시고 의견을 개진해 주신 조합원 동지들에게 감사드리며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싸워 나가겠습니다.

    <7월 21일, 기아차 소하공장 도장2부 실라A반 조합원 홍보물 중에서>  

    관료화된 현장조직이나 지도부의 경우, 현장에 사안이 발생하면 곧바로 자본을 상대로 의중을 파악하거나 사측을 만나 항의하는 수준에서 일을 벌이는 반면, 평조합원 운동에 기반할 경우 조합원들 스스로 공개적인 항의행동, 직접행동을 하도록 조직하는 일부터 착수한다.

    올해 현대차 울산 5공장에서 관리자들이 갑자기 ‘기초질서 지키기’라는 명분으로 쥐어짜기식 현장통제와 감시에 돌입하자, 5공장 도장부 노동자들은 곧바로 이 사안에 대한 보고대회를 열고 잔업거부투쟁을 결의했다. 결국 사측은 평범한 노동자들의 저항행동에 놀라 물러서고 말았다.

    이렇게 평범한 노동자들이 만들어내는 질서는 이미 지난해 쌍용차 77일 점거파업 현장에서 그 위력이 입증된 바 있다. 물론 최초의 파업 시동은 집행부가 걸었지만, 장장 77일간에 걸친 파업을 지탱하고 끌어간 것은 파업 직후에 평범한 조합원들이 발휘한 자발성과 역동성이었다.

    자본가들 입장에서도 이러저러한 활동가들 개인 몇몇을 상대하는 것은, 지난 십수 년간 수많은 사안들 속에서 부딪혀보고 다뤄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평조합원 대중들이 나서는 것은, 이것이 어떤 방향으로 확산될 것인지 자체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대응 자체가 어려워지는 법이다.

    무엇보다 전략사업장의 경우 관료층이 평조합원 대중들의 분출을 가로막아주는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몇 년간 응축된 평범한 노동자들의 울분이 터져나오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계산하기란 매우 어려운 법이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최대한 관료층을 육성하는 방식으로 평조합원 대중의 분출을 가로막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바로 이러한 전략에 파열구를 내는 것이 평의회 운동, 평조합원 운동으로 현장운동의 대안을 정립해가는 것이다. 미조직사업장의 경우 새로운 계급주체 형성과 상승이 필요하다면, 전략사업장의 경우 평조합원 운동의 실현이 주요 수단이 되어야 한다.  

    적들은 전지전능한 세력이 아니다  

    대중운동이 너무나 밀려있는 상태이다 보니 곳곳에서 여전히 ‘엄두가 안 난다’, ‘쌍용차처럼 싸워도 안 되더라’ 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적들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그들도 실수하는 세력이며, 항상 계급적 원칙에 충실한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7월 22일, 대법원에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에 대해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사건은, 자본가들 내부에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대 사건이라 하겠다. 이러한 계기점을 어떻게 대중투쟁으로 올려낼 것인지를 우리 스스로도 고민하지 못한 상태에서 터져나온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계기점들조차도 준비된 이들만이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리 “안 될 거야”라며 먼저 포기한 이들에게는 기회가 오질 않는다. 따라서 현장 사회주의 정치활동과 현장투쟁 조직화를 꾸준히 전개해 나가면 반드시 자본가들의 실수가 나올 것이며, 준비한 이들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는 무한한 낙관으로 스스로를 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나 공황기에 여러 가지 예측불가능한 계기점과 변수들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공황의 새로운 단계와 밑바닥에서의 '변화의 물결'  

    앞에서 지자체 선거 이후 정치정세의 변화가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 그리고 그 영향은 균등하지 않다는 점을 살펴본 바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행동에 정치정세의 변화가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일종의 패턴이 있다는 점만 짐작할 수 있을 뿐, 나머지는 현실의 역동적 변화가 만들어내는 영역이기 때문에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예언자나 점성술사들의 영역일 테니.)

    그런데 정치정세의 변화 못지않게 중요한 경제적 상황의 변화도 존재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어 2009년 말부터 시작된 유럽발 재정위기가 세계대공황의 새로운 단계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경우 주식 거품, 부동산 거품이 푹 꺼지면서 발생한 것이라면, 유럽발 재정위기는 달러 거품, 재정적자 거품이 푹 꺼지면서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약간의 시차를 두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을 덮치기 마련인데, 한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경우에도 엄청난 재정적자 거품이 시한폭탄처럼 터지기를 째깍째깍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학교나 지자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할 만한 재정적 능력이 세계대공황 때문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기 시작한다. 정치정세의 변화로 ‘열린 공간’이 생기긴 했지만, 결국 그것이 환상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다.

    앞에서는 정치 정세의 변화가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주제로 시작했지만, 사실은 앞뒤가 뒤바뀐 문제이기도 하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변화를 설명할 때 눈치챈 분들도 계시겠지만, 청소노동자들이나 굴삭기노동자들의 활발한 진출은 이미 지자체 선거 결과가 나오기 이전부터 시작된 것들이다. 오히려 우리가 감지하기 훨씬 오래 전부터 밑바닥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변화의 물결’이 시작되었고, 그 물결이 6월 2일에 나온 지자체 선거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지자체 선거에서 이 ‘변화의 물결’에 따른 최대의 수혜자는 민주당이었다.

    어쩌면 이런 상황을 직시하는 이들이라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결국에는 환상임이 드러날 ‘열린 공간’, 그러나 그 공간으로 진출하려는 미조직 노동자들, 점점 더 위기로 치닫는 세계경제체제, 이러한 조건들 속에서 필요한 일들이 무엇인가를 가늠해 보는 일이 지금 무엇보다 필요하다.

    미조직 노동자들이 ‘열린 공간’을 통해 진출하려 하지만 그 공간은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의 부족함 때문에 불완전하거나 불충분하다. 만일 이들의 진출을 정치적으로 제대로 대표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 ‘열린 공간’의 크기와 폭은 더 넓어지게 될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해보자는 것이다. 만일 1987년 7·8·9 대투쟁 당시 노동계급의 독립적인 정당이 있었다면? 2003년 비정규노동자들의 진출을 독려하고 함께 헤쳐나갈 정치적 세력이 존재했다면?

    바로 그러한 정치세력은 앞에서 노동자투쟁이 지향해야 한다고 명시한 것들을 대표해야 한다. 먼저 전략사업장에서 십수년간 관료주의에 찌들어온 현장조직이나 활동가들이 아니라 평조합원운동을 대표하는 세력, 그리고 미조직사업장에서 상대적으로 패배주의에 찌들지 않은 대중들의 진출을 대표하는 세력이 되어야 한다.

    현대자동차 울산 2공장 비정규직 66명의 해고 소식을 비롯해 곳곳에서 자본가들의 공격 소식이 들린다. 공황의 시계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째깍째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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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품을 수출해서 현지에서 조립, 판매하는 방식으로는 CKD와 SKD가 있다. 주로 자동차를 수출할 때, 완성차를 수출하는 것보다 관세가 싸고 현지의 싼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용하기 위한 방편이다. CKD(Completely Knock Down)는 해체할 수 있는 데까지 해체해 수송하는 방법이다. 자동차에 많이 이용되기 때문에 Car Knock Down이라고도 한다. SKD(Semi Knock Down)는 ‘반제품’을 말하며, CKD보다는 좀 더 조립이 된 형태로 수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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