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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기고]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활동 평가
이자영 /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회원
* 농성을 푼 뒤 지금까지
옥쇄파업을 푼 지 두 달이 된 10월 6일 아침, 조합원 2명과 연대한 2명이 긴급체포 되었고, 이 중 3명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습니다. 그동안 노조원 300여명이 경찰 조사를 받았고, 6월부터 지금까지 연대하러 달려왔던 분들 중 330여명이 검거되었습니다. 이 중 60명이 구속되어 있습니다. 8월초도 아닌, 6월말에 검거된 김정욱 기획부장은 9월, 1심에서 실형 1년 3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10월 7일 굴뚝 농성을 한 김을래 부지부장은 실형 1년 6개월이 나왔습니다. 그 일로 단일사건으론 최대 실형자가 1심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일고 있습니다. 그동안 회사 측에서 동원한 직원들, 진압에 참여한 경찰 그 누구도 사법처리 되지 않고 있습니다. 소방법까지 위반하며 소화전을 차단하고 단수, 단전, 가스 중단 조치로 조합원들을 불구덩이 속으로 몰아넣은 쌍용차 법정관리인들도 처벌 받지 않았습니다. 144명을 징계하겠다고 밝힌 박영태 법정관리인은 국정감사에서도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에게 노사합의를 어긴 행위라며 질타를 받았지만, 징계하겠다고 완강하게 버텼습니다.
5월초, 정리해고가 단행될 것이라는 회사의 발표 이후, 쌍용차 노동자 6명과 부인 1명이 사망했습니다. 파업 해제 뒤에도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 2명이 자살을 시도했고, 진압에 동원된 의경도 자살하는 불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농성에 참여한 비해고자들에겐 무기한 대기발령에 회사 측에서 진행하는 징계대상에 올라가 노사협의도 없이 회사 측이 일방적으로 징계하고 있습니다. 그 이전부터는 사측이 주도한 관제데모며 농성자들을 진압하기 위한 작전에 소극적으로 참여한 조합원들에 대해서도 징계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3개월 교육에 무인도 공수훈련까지. 교육 결과에 따라 발령 여부도 달라진다 합니다. 회사 측이 사주하여 조합원 투표로 금속노조 탈퇴를 성사시켰고, 9월말에 회사 측과 한 몸이 된 노동조합이 선거에서 선출되었습니다. 물론 이 투표를 주관한 선관위에 대해 법원은 효력무효처분을 내렸지만, 이네들은 아랑곳 않고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현장은 더 비참합니다. 담배 한 대 피는 것조차 눈치 보일 정도고, 쉬는 시간에 앉도록 놓아둔 의자마저 치워져 버렸습니다. 대리, 과장급 되는 말단 관리직의 손끝 하나에도 벌벌 기게 되고, 잔업·특근·월차도 못쓰고 노동강도는 배로 늘어나 노동자들을 쓰러뜨리고 있습니다. 노동강도가 너무 세고 숨 막히는 분위기에 그만두겠다고 해도, 위로금 없이 맨손으로 나가라는 관리직의 한마디에 그저 참을 뿐입니다. 파업 이후 공장엔 이처럼 유치하지만 견디기 힘든 군대체제가 안착되어 버렸습니다.
쌍용차 투쟁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쌍용차 투쟁에 대한 평가 역시, 진행 중입니다. 농성을 풀고 나온 이후에도 악랄하게 진행되는 국가기관과 자본권력의 횡포는 세상에도 알려지지 않고 이렇게 조합원들과 가족의 목을 조르고 있습니다.
* 정리해고가 주는 의미
“해고는 살인이다!” 금속노조에서 만들어낸 이 구호는 단지 구호가 아닌 살아있는 말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해고가 곧 가정의 파탄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겠지만, 사회안전망이 형편없는 한국에서, 해고는 살인입니다. 그것도 경영상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한다는 이유도 속이 터져나갈 텐데, 나란 인간이 해고되는 이유조차 설명 없이 관리직이 선정한 명단에 올라가서 우편으로 일방통보 되는 정리해고는 억울함, 분노, 서운함, 서러움 등 복잡하고 힘든 감정에 빠져들게 합니다.
법정관리인에게, 지식경제부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꼭 사람을 대량으로 해고해야만 경영여건이 호전된다는 근거를 대라고도 물었습니다. 숫자로 비교근거 찾기 좋아하는 대한민국 관료와 자본가 그 누구도 근거를 대지 않았습니다. 그저 앵무새처럼 정부의 뜻이 완강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1명의 해고도 그 가정에게는 쓰나미가 휩쓸고 간만큼의 크나큰 시련입니다. 하물며 2,646명. 이 가운데 생산직 노동자는 2명 당 1명이 잘려나가는 규모였습니다. 해고당하는 개인과 가족이 입을 충격과 여파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노동자를 기계부속품 마냥 생각하는 자본가, 그저 대량 정리해고의 성공 사례로 반드시 남기고야 말겠다는 이명박 정권의 의지가 강하게 담긴 구조조정이었습니다.
희망퇴직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고뇌와 사연들이 있었고, 그렇게 희망퇴직을 신청한 1,750명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었습니다. 그 뒤엔 정리해고자와 비해고자로 나뉘었고, 또 그 뒤엔 파업 참가자와 비참가자로 나뉘었습니다. 파업 참가자와 비참가자간의 갈등은 남북이산의 비극 못지않은 상처로 끔찍했습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농성 중에 이탈한 사람과 이탈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으로 나뉘었습니다. 그 앙금은 크진 않지만 정리해고특별위원회(이하 정특위) 활동을 조직하는 데에 장애를 낳고 있습니다.
정리해고란 것이 각 가정에게는 대책 없는 어려움을 안겼고, 쌍용차 구성원들에겐 국면마다 갈래갈래 찢기는 아픔과 상처를 남겼습니다. 가족대책위에서 활동했던 많은 아내들의 아픔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저 인간들 우리 얼굴 어떻게 보려고 저런 악랄한 짓을 하는 거야!” “나, 평택 뜰 거야. 더는 여기서 못 살아!” “어떻게 경찰이 저래...” 입사 동기 가족모임이 다 깨지고, 아파트 모임이 깨지고, 가족들은 슈퍼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동료와 관리자들과 마주칠까 두려워 고개 숙이게 되었습니다.
* 가족대책위 활동상
4월 말, 평택 내 동별 모임이 한두 차례 열리고, 쌍용차 상황에 대한 설명회를 가진 뒤, 5월 9일 쌍용차 정리해고 분쇄를 위한 가족대책위원회(이하 가대위)가 출범하였습니다. 첫 시작은 약 20여명. 대표와 운영진, 그리고 시민대책위에서 파견된 간사들로 간소한 체계를 구성하고 바로 이틀 뒤 5월 11일 월요일 눈물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왕성한 활동을 시작합니다. 5월 12일 공장 정문 바로 안쪽에 가대위 천막을 치고, 매일 오전 오후 평택 시내를 다니며 가두방송을 하고 홍보물을 나눴습니다. 저녁마다 공장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가대위 출범을 시작으로 빗발치게 된 언론사 인터뷰에도 부지런히 응했습니다. 주말마다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고, 산업은행, 평택역 등 주요 거점에서 1인시위도 했습니다.
어쩌면 평화롭게도 느껴지기까지 했던 첫 한 달이 지나자, 국면이 달라졌습니다. 법정관리인들과 임직원들의 반격이 시작된 것입니다. 송탄 이충공원과 공장 후문, 공설운동장 등에서 비해고자들과 임직원들이 집회를 열고선 농성조합원들에게 파업을 풀고 나가라며, 그래야 회사가 정상화된다고 압박했습니다. 급기야 6월 26일, 법정관리인이 최종안을 던진 2시간 뒤, 구사대와 용역업체 직원들을 앞세워 임직원들이 공장을 침탈해 들어왔습니다. 정문 안에 쳐진 10개 남짓한 천막은 무참히 철거돼 버리고, 공장 곳곳에 흩어져 거점을 지켜야 했던 농성 조합원들은 수적인 열세로 정문과 본관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밤새 간헐적인 위협 행동이 있었고, 처음 있는 무력충돌에 조합원은 물론 가족들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다음날, 공장침탈을 규탄하는 집회가 공장 앞에서 열리고 임직원과 가족들은 1m 앞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하루 종일 으르렁 거렸습니다.
연대하러 온 사람들은 집시법 위반으로 몇몇이 연행되어 가기도 하고, 경찰은 헬기를 저공비행하며 아이들과 함께 있는 가족들을 위협했습니다. 뜨거운 낮이 지나고 밤이 되자, 법정관리인은 긴급기자회견을 가지며 공장 철수를 선언합니다. 그 직후 임직원과 비해고자들은 공장을 떠나면서 정문 앞에 앉아있던 가족들을 향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쏟아 부었습니다. 들고 있던 쇠파이프와 물병을 가족들을 향해 던지고, “이제 파산이다! 파산! 너희들 때문이야!”하며 악에 받쳐 했습니다. 그 때부터입니다. ‘파업 때문에 쌍용차가 망하게 생겼다, 청산하게 될 지도 모른다, 모두가 죽게 생겼다, 파업 때문이다, 농성자 너희들 때문에 남은 4천 명이 다 죽을 순 없다’는 이데올로기가 급속히 퍼져나갔습니다. 그 이후로 농성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농성자와 가대위를 향한 증오와 원망을 드러냈습니다. 농성을 푸는 마지막 날까지 손에 막대기를 놓지 않고 가까이에만 있으면 잡아 죽일 듯이 으르렁 거렸습니다. 카메라로는 연신 셔터를 누르며 가대위, 연대단위, 농성자들을 찍으며 경찰에 일러바쳤습니다. 구속자들이 받은 공소장을 보면, 법정관리인과 경찰에 대한 이 사람들의 충성도가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장면 장면마다, 누가 뭐라고 했는지, 어떻게 행동했는지 동영상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내가 죽지 않으려면 동료를 죽일 수밖에 없는 약육강식 자본주의가 빚어낸 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파산, 청산이란 소문에 앞뒤 살필 여유도, 동료애도, 상식적 판단력도 상실한 채 임직원들이 시키는 대로 진압작전의 꼭두각시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던 비해고자들을 보았습니다. 경찰보다 더 잔인하게 가족과 남편들을 막았고, 경찰보다 더 악랄하게 가족과 연대단위들을 처벌하려고 덤벼들었습니다. 노노갈등이라는 단어로는 도무지 담아내지 못할 잔혹함과 슬픔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이때부터 가대위는 공장 밖으로 밀려나, 남편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더 외롭고 버거운 활동을 일궈내야 했습니다. 서울시청 앞 광장을, 비가 쏟아지는 여의도와 평택 시내를 삼보일배를 했습니다.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아스팔트 냄새, 비 냄새, 매연 냄새 다 맡아가며 간절히 빌었습니다. 절을 하면서, 도대체 얼마나 더 우리 요구를 낮춰야 내 남편들이 살아 돌아올 수 있는지, 그 불투명한 미래 앞에 눈물을 떨구었습니다.
60여명에 이르는 국회의원들에게 일일이 서명을 받았습니다. 서울을 수차례 오고가며 국회의원들과 연락하고 사정하고 호소하며 받아낸 서명들입니다. 조계종,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 등 처음 만나는 종교계 최고 인사들 앞에 긴장했지만, 제발 우리 남편들 살려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연행을 각오하고 한나라당을 기습 방문해서, 방관으로 노동자를 말살하는 당정을 비판했습니다. 난생 처음 해보는 단식에 구토가 나고 쓰러질 것 같아도, 이글거리는 햇볕 아래 얼굴이 타들어가고 속이 타들어가도 남편들 고생 앞에 이 정도야 하며 참아냈습니다. 노동조합은 만나주지도 않은 높으신 양반들이 그래도 가족들이 보자고 하면 만나주었습니다. 원유철, 정장선 국회의원, 송명호 평택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인권위 사무처장과 면담했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상황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렵게 만들어낸 교섭자리도 사측이 먼저 불참을 통보하고, 결렬을 선언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밖에 의료진·물 반입 시도, 각종 집회 참가 등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발에 불이 나도록 돌아다니고 눈물로 호소하고 몸으로 밀고 막고 했습니다. 모두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들이었습니다.
이렇게 활동하는 동안 우리 아이들은 친정에 한 달이 넘게 맡겨져야 했습니다. 아빠를 못 만나다가 급기야 엄마와도 헤어져있게 된 겁니다.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불안감을 안고 다녀야했던 아내들의 속은 헤아릴 길 없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렇게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사정은 더 악화되었다는 겁니다. 사태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넘어 모두의 상상을 넘어 가차 없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절망했습니다.
* 정권과 회사의 악랄한 탄압
앞서 지적하였듯이 대량의 인력을 구조조정하는 ‘정리해고’ 카드는 법정관리인의 뜻을 넘어 이명박 정권의 정책이자 의지였음이 국면마다 확인되었습니다. 국회 지식경제위원장 정장선 의원을 만나도,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만나도, 법정관리인을 만나도 똑같은 답만 들었고, 상식 수준의 해명과 근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뒷소문도 있었습니다. 6월 26, 27일, 사측 임직원들이 공장을 침탈해 들어와 쌍용차 사태가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게 되자, 한승수 국무총리와 지부와의 접촉이 시도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을 방문 중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이 귀국하자마자, 이런 접촉은 단칼에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경기도지사는 농성자들을 향해 ‘자살특공대’라고 비난했습니다.
7월 중순부터는 경찰병력이 정문을 비롯한 각 문을 봉쇄해 버렸고, 경찰병력의 도움으로 회사 임직원과 비해고자들이 회사 안으로 들어가 본관 등에서 업무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대놓고 사측과 경찰이 서로 협조하고, 경찰병력이 본격적으로 각 건물을 점거하기 위해 작전을 벌일 때에도 사측과 경찰의 공동작전 장면은 수시로 목격되었습니다. 오로지 저 농성조합원들을 공동의 적으로 삼아 새총을 쏘고, 최루액을 떨어뜨리고, 헬기 저공비행으로 위협하고, 밤낮으로 선무방송을 틀어 농성자들을 어지럽게 하고, 밤이면 전경들이 방패로 땅을 치며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농성자들은 하루 2~3시간을 넘게 자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시시각각 조여드는 포위망, 언제 공격해 들어올지 모를 진압, 밤낮으로 울려 퍼지는 선무방송으로 정신병에 걸릴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물도, 가스도 차단되어 주먹밥이나 라면으로 끼니를 채운 게 한 달입니다. 의료진 출입도 사측에 의해 철저히 가로막혀, 전투에서 생긴 상처와 속병들은 그냥 방치되기 일쑤였습니다. 심지어 경찰이 쏜 테이저 건에 볼이며 허벅지를 맞고 최루액을 맞아 피부발진이 일어나 응급치료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사측은 의료진의 출입을 막았습니다. 가족들과 연대단위들이 이 악랄함에 울분을 터뜨리고 치를 떨었습니다. 물과 의료진만이라도 들여보내라는 국가인권위의 권고와 긴급구제신청을 회사 측은 매몰차게 거절하였고, 소방법 위반에 대해서도 그저 ‘법적으로 처리하라’는 짐승만도 못한 답변을 들어야 했습니다.
노사협상 결렬 뒤 8월 3, 4, 5일 내내 경찰은 도장공장을 탈취하기 위한 최후의 작전을 감행합니다. 용산참사 현장에서 쓰인 것과 똑같은 컨테이너가 도장공장 옥상에 내려지고, 헬기에서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었습니다. 다목적 총과 곤봉을 쥔 특공대들은 옥상을 뛰어다니며 작업복 한 장 달랑 걸친 조합원들을 후려치고 군홧발로 밟았습니다. 다목적 총에 맞아 가슴팍에 상처를 입고 쓰러진 조합원, 이미 혼절하여 쓰러져 있는데도 집단 구타를 당한 조합원, 아파트 10층 높이 옥상에서 떨어져 허리뼈가 부러진 조합원......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녹슨 사다리에 조합원 10여명이 매달려 피신하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그 장면들을 보고 어느 누군들 간담이 서늘해지지 않을 수 있었으며, 누군들 공포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하물며 남편을 공장에 둔 가족들은 울부짖었습니다. 경찰병력이 투입된 뒤부터 내 남편, 내 아이의 아빠를 잃을까봐 가슴 졸이며 하루하루를 견뎌나갔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저, 몸 성히 두 발로 공장 밖으로 걸어 나왔으면 좋겠다고 빌 정도로 우리의 바람은 소박해져 갔습니다.
이런 참상이 벌어진 것을 보며 어느 한 신문사 기자가 노동조합이 비폭력 저항을 할 수는 없었느냐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공장 앞에서 미사를 집전해 온 강정근 신부님의 답변을 옮깁니다. 용산 참사 현장에서도 미사를 집전해 온 분입니다. “비폭력 저항은 많은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지요. 용산 참사 문제로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이 있어요. 참 기특한 일이지만, 용산 문제가 그들의 생명을 직접 압박하지는 않지요. 시간을 두고 인내를 가지고 주장할 수 있어요. 비폭력 저항을 펼칠 자유가 있는 셈이에요. 하지만 쌍용차 노조원들을 보세요. 해고되면 그냥 죽는 겁니다. 가족의 목숨이 걸린 문제 앞에서 비폭력 저항으로 인내할 ‘자유’가 그들에게 있었을까요? 노조원들은 도장공장을 농성장으로 택했어요. 그곳에서 일이 생기면 죽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경찰일까요? 아니요, 바로 노조원들이에요. 목숨을 지키려고 목숨을 내건 거죠. 그걸 폭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함께 살자’로 시작한 파업투쟁이 ‘함께 죽자’로 바뀌었습니다. “대화하지 않을 거면 차라리 다 죽여라”는 글귀가 도장공장 벽에 새겨졌습니다. 도장공장 옥상에는 “살고 싶다, 가족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적혀있었습니다. 정권과 자본 권력은 망설임 없이 노동자들을 말려 죽이고, 굶겨 죽이고, 떨어뜨려 죽이고, 쏘아 죽이려 했습니다. 지금은 쌍용차 노동조합의 씨를 말려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 연대
금속노조, 민주노총을 비롯하여 이름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수많은 곳에서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었습니다. 집회를 여는 족족 연행이 되고 부상을 입는 엄혹한 상황에도 많은 사람들이 공장 앞을 다녀갔습니다. 공장 문이 막히고 쌍용차 지부가 외곽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되자, 우리 가대위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를 어찌 다 보답할까하는 고민을 할 정도였습니다. 장맛비를 다 맞도록 싸움이 끝나지 않았고, 뙤약볕 가릴 길 없이 맨바닥에 앉아있는 수백 명의 동지들을 보며 고마웠고, 나라면 이렇게 달려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자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갖는 가족들이 있었다면, 연대단위에게 인색하게 구는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가대위 물품을 쓰는 것을 통제하려 했고, 연대단위를 ‘남’으로 규정해서 가대위와 섞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연대의식’이라는 것이 있건 없건 간에, 자신의 일도 아닌데도 한달음에 달려와 준 사람들에게,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감정만으로도 이런 야박한 생각은 안 들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그 아내가 자식들에게도 저런 사고방식을 심어 주었겠다는 생각이 들자,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이 어떠냐에 따라 그 공동체의 수준도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대위를 조직하는 데 있어서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가대위 대표와 운영진들의 눈물겹고 헌신적인 활동, 그리고 여기에 함께했던 여러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에 조합원들은 감동하였고 가대위에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농성 조합원이 700여명인데 가대위 활동 인원은 최대 80명이었습니다. 한두 번 다녀간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250여명이 되지만 그 사람들이 모두 활동인원이라고 볼 순 없습니다. 한두 번 다녀간 아내들이 계속 할 수 없는 이유로 자주 등장한 것은 바로 남편의 반대였습니다. 농성하는 남편들이 아내의 활동을 막고 있었습니다. 다른 이의 아내들의 모습을 응원하면서도 내 아내, 내 가족은 위험해서 안 된다니요. 가부장적이며 이기적인 판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매일같이 가대위에 참여했던 가족들은 일상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고, 집안일은 손 놓은 지 오래입니다. 애타는 마음, 남편을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맨몸으로 싸워야했던 아내들 뒤로, 방치된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의 정상적인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얼마나 상처 입었을까요.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미안할 뿐입니다. 두고두고 치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부분입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투쟁을 시작하며 기대하고 희망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소극적이고 형식적이었던 쌍용차 노조운동이, 당면한 자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꼭 얻었으면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연대의식’이었습니다. 비단 투쟁이 있는 곳에 함께 하는 연대를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의식 자체가 달라지는 차원의 연대 말입니다. 나와 남, 나와 자연, 나와 우주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가치로 삼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나와 남을 비교해서 무리한 사교육, 신분상승, 집 마련 등으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기를, 자연의 소중함을 알기를, 그래서 모든 이와 자연이 공존하며 평화롭게 살아갈 방도를 모색하며 살기를 바랐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총파업에 관해서는 평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파업이 공장을 거점으로 고립되어 버리고, 정권과 자본가 권력의 파상공세가 연일 계속되는 가운데, 이 국면을 돌파할 카드가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가대위 나름으로 해보지 않은 활동이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를 다니며 호소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대정부교섭도 창구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정권의 완강한 의지로 분명 ‘정치적 파업’이 되어버린 이 상황을 대통령, 지식경제부, 경기도지사는 ‘당사자들이 알아서 하라’는 역설만 강변했습니다. 이 때 총파업 지침이 나왔습니다. ‘공권력이 투입되는 즉시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지침이었습니다. 다른 카드가 전혀 먹히지 않고 있을 그 당시, 총파업이 위력적으로만 진행된다면 정부가 움찔하며 태도를 바꾸지 않을까하는 마지막 희망을 가졌습니다. 공장 안 노동자들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지부들이 정권과 자본권력에 위협이 될 만큼의 파업을 벌여준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그러나 총파업은 실망스럽다 못해 비참할 정도로 시시했습니다. 쌍용차 사태를 바꿀 위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6월 사측이 공장을 침탈한 다음 날인 6월 27일에도 공장 앞엔 20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을 뿐이고, 때론 공장 앞에 2~3천명이 모였지만 무력하게 경찰에게 해산되고 연행될 뿐이었습니다. 수천이 모여 공장 문을 열어젖힐 생각이 없다면, 공장 앞에 모일 이유도 없었습니다. 쌍용차 문제가 일개 사업장의 사안이 아니라, 전체 사업장을 자본이 잠식해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한 파업임을 알고 있을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지도부는, 총파업을 일으키기 위해, 회의에서 단위 대표들에게 총파업 지침을 내릴 것으로 끝날 게 아니었습니다. 각 사업장을 직접 돌며 총파업을 일구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총파업’입니다. 결국 안팎의 모든 노력도 파업 노동자들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경찰특공대의 투입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절박한 순간까지 이르자, 울며 겨자 먹기로 노사협의를 노조 측에서 먼저 요청하게 되었고, 노조가 내내 반대했던 바로 그 인력 구조조정안을 노동자 측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 나오며
내 남편이 구속되어 2개월이 지났고, 그 사이에 동생 결혼식, 시아버지 제사, 시댁 장례식, 추석이 있었습니다. 조만간 친정아버지 생신과 시어머니 생신을 앞두고 있습니다. 4살 된 아이를 데리고 단 둘이 집안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1기 가대위를 마무리하고 2기 가대위를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일상이 회복이 안 됩니다. 잠을 청해도 1시간에서 3시간은 뒤척여야 겨우 잠이 듭니다. 아이는 경찰 진압 장면에 놀란 뒤로 수시로 배앓이를 합니다. 아이의 장래희망이 군인과 경찰이 되었습니다. 현실에서 자신과 아빠를 가로막은 경찰을 지독히도 무서워하면서도, 그 공포와 무력감을 보상하기 위해서인지 집에서는 경찰 놀이만 합니다.
글을 쓰는 내내 저는 잠을 못 자고 짜증이 나고 아팠습니다. 폭력에 노출된 당시에는 그 상황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젠 아픕니다. 너무도 무섭고 슬픕니다. 우리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당했는지 이제야 조금씩 인식하게 됩니다.
조합원들은 크게 위축되어 있고, 가족들은 일상을 회복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다 꿈틀대보지도 못하고 밟혀 죽을 순 없습니다. 놀란 가슴, 상처 입은 가슴 추스르며 다시 일어서렵니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길의 어제가 빛났듯이 오늘도 내일도 빛을 내기 위해 날갯짓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지금이 끝이 아니고, 지금 상황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기에 오늘도 충실히 살아가며 희망을 품습니다.
그동안 보내주신 응원과 격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가족을 잊지 말아주시길 바라며, 우리 아이들이 보다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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