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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는 노동자만이 인간성을 지킬 수 있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네비게이터≫
영화 ≪네비게이터≫는 2001년 켄 로치 감독이 만든 작품으로 10월 4일 비정규직 영화제 개막작이었다. 이 영화는 영국 철도 민영화와 함께 일어난 외주 용역화 즉 비정규직화 속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을 다룬다. 켄 로치 감독은 이 영화에서 자본주의의 야만적인 공격 속에서 노동자들의 삶이 어떻게 허물어지는지를, 그리고 단결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덮치는 저주스런 운명을 그리고 있다. 다정다감하고 아주 평범한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의 착취 사슬 앞에서 어떻게 인간성을 잃고 황폐해지는지를 감독은 아주 냉정한 시각으로 분석한다. 역설적으로 이 영화는 노동자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왜 단결하고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강력하게 보여준다. 오직 단결과 저항만이 노동자로 하여금 인간 본연의 정의감과 정직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하며, 만일 이것이 없다면 노동자는 자본이 강요하는 저주스런 운명 앞에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것들마저 깡그리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새삼스럽게 상기시킨다.
영화는 민영화 과정에서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결과, 민영화와 함께 산산이 조각나고 비정규직화 되어가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비춘다. 영화는 한 철도분소를 매개로 전개된다. 처음에 철도분소는 아주 활기 넘치는 직장이었다. 여기서 노동자들은 삶의 보람을 느끼고 동료들과 다정다감하게 서로 배려하며 지내던 정직하고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강제퇴직이 시작되면서 분소는 점차 활기를 잃어가고 공포감이 지배하는 장소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결국 분소는 폐쇄되고 만다. 임금노예로 사장에게 고용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이들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가혹한 신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유쾌하고 동료애가 많았던 이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제도를 통해 강요되는 비인간적 삶에 결국 굴복하면서, 황폐해진다. 정말 너무나 선량했던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해서 동료의 죽음까지도 조작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해간다. 자본의 공격 앞에 무너지면서 양심까지도 저버려야 하는 처지로 굴러 떨어져가는 영국 철도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이 영화는 여과 없이 다룬다.
결국 영화는 묻는다. 여기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단결하여 저항하지 못하는 노동자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마저도 버려야 하는 동물보다 못한 비참한 삶이 아니냐고. 따라서 만약 인간답게 살고자 한다면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해야 하지 않느냐고. 이것 말고 도대체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느냐고. 동시에 영화는 질문한다. 선량한 노동자들을 이토록 저주스런 상황으로 내모는 자본주의는 이제 사라져야 하지 않느냐고. 자본주의는 인간의 자존심과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야만적인 체제가 아니냐고.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자본의 공격
영화는 영국 철도 민영화로 시작된다. 철도노동자들은 민영화 과정에서 여러 업체로 분할된다. 그중 한 업체인 이스트 미드랜드 인프라가 이 영화의 무대다. 이 업체의 사장은 퇴직금을 지급한다는 명분으로 강제퇴직을 추진한다. 그리고 ‘평생직장은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이라고 주문한다. 물론 이것은 노동자들의 저항을 해체하고 원자화된 개인으로 서로 분열시키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동반한다.
우선 현장의 주도권이 확실히 회사 편으로 넘어와야 했다. 우선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과거에는 없었던 출퇴근부 찍기를 매일 강요한다. 이에 노조 대의원이 반발하지만 그는 저항을 체계적으로 조직할 단호함을 갖고 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일요일에는 출근부를 찍지 않는 정도의 제한된 합의만을 이끌어내고 저항을 중단시키고 만다. 그에 비해 자본의 대응은 아주 단호했다. 현장을 완전히 통제하기 위해 자본은 이마저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강하게 밀어붙인다.
자본은 그 정도의 합의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대응한다. 사장은 합의를 한 담당 관리자에게 사표를 쓸 것인지, 아니면 노동자들과의 합의를 철회하고 일요일까지 출근부 도장을 강요할 것인지, 둘 중에서 선택하라고 밀어붙인다. 결국 관리자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악랄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노동자들에게 그는 그 형편없는 합의조차 철회하겠다고 선언한다. 대의원과 노동자들은 이 관리자에게 대항하지만 결국 패배하고 만다. 이것을 계기로 현장에 대한 통제력은 확고히 자본의 수중에 장악된다.
자본의 통제와 함께 경쟁의 압력이 노동자들을 덮친다. 민영화 과정에서 여러 업체로 분할된 과거의 동료들은 이제 경쟁하는 업체로 나뉘어 서로 경쟁하도록 강요당한다. 경쟁의 수레바퀴 밑으로 노동자들은 강하게 밀어 넣어진다. 사장은 타 업체 노동자들과의 경쟁을 부추긴다. 경쟁사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며 멀쩡한 부품들을 부수라고 명령한다. 기계와 부품을 친구처럼 아끼면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로서는 이런 명령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노동자에게 기계와 부품은 생산을 위한 수단이며, 이것이 폐기될 이유는 어디에서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자본가들에게는 사정이 달랐다. 생산의 관점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필요와 타 자본과의 경쟁에서 자기에게 이익인가 아닌가에 입각해 사고하고 행동하는 자본가들에게 이러한 파괴적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노동자처럼 사회적 생산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타 업체와의 경쟁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해야 한다’는 경쟁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노동자들은 항의하지만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아무 문제없는 부품들이 오직 자본가에게 이득이 없다는 이유로 폐기되도록 강요된다. 결국 생산의 동반자인 기계와 부품들에 대한 노동자들의 애정은 전혀 실현될 수 없게 된다. 이를 통해 캔 로치 감독은 간접적으로 질문한다. 자본의 이해관계는 저토록 반사회적이고 반동적이지 않느냐고. 사회 전체의 이익, 즉 생산의 이익과 자본의 이익은 저토록 충돌하고 있지 않느냐고.
비정규직화가 노동자들을 덮치다!
자본은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해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본은 확실히 노동자들을 통제하기 위해, 여러 자회사로 다시 노동자들을 분할한다. 게다가 정규직 신분을 비정규직 신분으로 점차 전환시켜 나간다. 그나마 이스트 미드랜드 인프라라는 회사 소속으로 한 데 모여 있을 수 있었던 노동자들이 이제 여러 업체로 쪼개지고 일부는 비정규직이 되어 서로 헤어진다. 과거 분소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노동자들이었지만, 이제 그들은 열차 탈선 현장에서나 겨우 만나볼 수 있다. 이것은 10년 이상의 공동 노동과정에서 형성되었던 협동과 동료애를 완전히 해체하는 것이었다. 동료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기쁨조차 사라지자 노동자들은 더 이상 남아 있을 이유를 못 느끼게 된다.
그들은 하나 둘 철도를 떠난다.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나마 애정을 갖게 만들었던 보루인 동료들 사이의 애정어린 분위기마저 사라지자 이제 남는 것은 ‘너무나 싸늘한 지옥과도 같은 현장’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으로서는 이것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오랜 기간 쌓여온 노동 속의 협동이라는 거대한 가치를 희생시키더라도 노동자들을 서로 쪼개서 원자화시킨 뒤 마음대로 짓밟고자 하는 목적이 그들에게는 더욱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본가들의 반동적 모습을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동료들이 서로 찢어져 낙이 없어지고 형편없이 줄어든 월급을 보며 대부분의 동료들은 사표를 낸다. 이제 과거의 분소에는 겨우 3인 밖에 남지 않는다. 그러자 자본은 기다렸다는 듯 분소를 12주 안에 폐쇄하겠다고 한다. 이 폐쇄는 노동자들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다. 노동자는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자본가에게 필요했던 것은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마음대로 해고하고 부려먹을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노동자들은 강제퇴직 아니면 비정규직화 둘 중 하나를 받아들이라고 강요받는다. 불행하게도 강제퇴직에 맞서 단결하지 못하면서, 3인 모두는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환되고 만다.
이제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비정규직제도의 문 앞에 이르게 된다. 영화는 이 3인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하나하나 파헤친다. 과거와 똑같은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들은 ‘근로자파견회사’의 문을 두드려야만 한다. 에이전시라는 용역업체를 찾아간 믹은 휴가비가 있느냐고 질문한다. 그러나 휴가비는 없다. 물론 휴가를 즐기고 싶으면 회사에 나오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휴가제도 자체가 없는 상태에서 그들은 아무런 임금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 철도는 평생 살아온 현장이고, 철도 노동 이외의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철도에서 계속 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육을 받아야 했다. 게다가 이 교육비 역시 본인이 부담해야 했다. 교육 이후에도 추락은 밑도 끝도 없이 계속된다. 실업자들이 넘치는 상황에서 일거리를 맡기는 쉽지 않다. 결국 그들은 법적으로 보장된 초과근로 수당조차도 받지 않겠다고 스스로 면담자들에게 불리한 조건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실업이라는 무시무시한 압력 하에 놓여있지만, 저항할 여지가 봉쇄된 노동자들을 덮치는 가공할만한 열악한 현실이 철저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목숨도 양심도 버리도록 강요하는 자본
믹은 침목교체 작업에 배치된다. 철도 노동의 베테랑이었던 믹은, 침목 이동 작업은 철로 위에서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신호수를 두어야 불안해하지 않고 일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기원은 이런 믹을 못마땅해 한다. 작업의 안정성보다는 보다 싼 비용으로 일을 수행하는 것이 새로운 원칙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전기원은 믹을 파견한 에이전시 회사에 연락해 믹을 내일부터 출근하지 못하게 하라고 통보한다. 목숨을 잃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작업 환경을 조성해달라는 너무나 정당한 요구가 해고통지서를 부르는 그런 상황에 믹은 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고된 믹은 집에서 몇 주 동안 빈둥거릴 수밖에 없다. 평생 노동자로 살아온 그에게 강요된 빈둥거림은 고통일 수밖에 없고, 아내와의 충돌도 불가피하다. 결국 믹은 이대로 사느니 차라리 철도로 복귀하자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단 과거처럼 안전을 지키면서 작업하는 것을 포기하고, 전기원이 하라는 대로 목숨을 저당 잡히고 일할 것을 각오해야만 했다. 전기원의 지시라는 매개체를 통해 강요되는 자본의 요구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그러자 그는 다시 출근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자본은 항상적인 실업의 압력에 노출되어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건을 악용해, 노동자들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길들여가고 있었다. 하지만 집단적으로 단결할 기회가 봉쇄된 개별적인 존재에 불과한 믹으로서는 이런 처지를 벗어날 수 없다. 저항할 수단이 없는 한, 불의에 맞서는 것은 곧 실업을 뜻하고 이것은 그의 모든 삶을 완전히 파괴해버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해 켄 로치 감독은 사실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단결과 투쟁의 쐐기로 자본의 착취 바퀴를 조금이라도 멈추지 않는 한, 노동자의 운명이란 계속 빨라지는 착취의 수레바퀴 밑에 깔려 죽어가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일 수 없다! 자본의 착취는 그 한도를 모르는 무제한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인간성까지 내버리라고 강요당하는 노동자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철로 옆에 신호등을 세우기 위해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붓고 다지는 작업을 비춘다. 십장은 최소 인원으로 일을 해, 인건비를 최소한의 수준으로 줄여야 입찰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이것은 ‘만약 스스로 최대한의 노동강도와 최소한의 임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협박이었다. 철도 자본은 이렇게 수많은 소규모 업체로 현장을 조각낸 뒤, 이 업체들 사이의 무한대의 경쟁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철저하게 쥐어짜고 있었던 것이다. 십장은 이 착취 사다리의 가장 말단에 위치한 도구에 불과했다.
4인의 노동자는 십장의 협박에 굴복해 안전을 보장할 아무런 인원 없이 쉬지 않고 죽어라 일해야만 하는 조건을 승낙한다. 그러자 십장은 이 인원으로 작업을 무사히 끝내면 앞으로 계속 일거리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작업이 시작된다.
철로 작업은 항상 기차와 부딪힐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신호수를 두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신호수를 두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결국 신호수도 없이 시작한 작업은 야간작업으로까지 이어진다. 이것은 말 그대로 “죽음을 부르는 노동”이었다. 결국 짐은 지나가던 열차에 부딪히는 중대 사고를 당한다. 영화의 메시지는 바로 여기서 결정적 지점에 도달한다. 동료 짐이 사고를 당해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나머지 3인의 노동자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일자리를 잃게 될 두려움이다. 실업에 대한 공포가 그들에게서 인간성마저 앗아가버린 것이다. 이는 오랜 기간 실업자로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결국 룸펜화되어 부랑아로 떠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현상이었다.
노동자들 간에 갈등이 빚어진다. 폴은 안전사고이기 때문에 안전원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믹은 그렇게 되면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 모두가 일자리를 잃게 된다고 울먹인다. 믹은 6주 동안 한 푼도 벌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6주간의 실업자 생활은 그에게 ‘죽음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현실’을 각인시켰던 것이다. 결국 노동자들은 열차 사고가 아니라 자동차 사고라고 거짓말을 하자고 결정하게 된다.
사경을 헤매던 동료 짐은 죽음을 맞이하고 죽음의 사유는 열차 사고가 아니라 뺑소니 자동차 사고로 처리된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동료가 죽는 것을 방관해야 했고, 동료의 죽음에 대해서도 거짓 진술로 일관해야만 했다. 영화의 카메라는 바로 여기서 멈춘다. 여기서 진지한 관객은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저 선량하고 평범했던 믹을 일자리를 얻기 위해 죽어가는 동료를 못 본척하는 일종의 살인자로 전락시키고 인간적 면모를 앗아간 것은 과연 누구인가?
관객들은 모두 알고 있다. 믹이 원래 저랬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믹을 저렇게 만들었는가? 그것은 믹이라는 인물을 휘감고 있는 자본주의의 사슬이다. 단결과 투쟁, 조직화의 힘으로 이 사슬이 함부로 출렁거리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었을 때 노동자들은 그나마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결 투쟁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마음대로 짓밟힐 때, 자본주의 사슬은 노동자에게 인간성을 완전히 내다버리도록 밀어붙인다. 인간성을 버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 수 없도록 밀어붙인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의 믹의 모습은 사실 야만적이고 비열한 자본주의 체제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저항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이처럼 자본주의라는 착취의 괴물이 마음대로 노동자를 유린하면서 인간성을 황폐화시키는 것을 용납해야만 한다. 실업과 가난, 가족의 생존이라는 공포가 노동자들의 정의감과 인간성을 모조리 집어삼켜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다. 이 공포감은 단결하여 투쟁하지 못하는 노동자들만을 덮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결국 영화는 강력하게 요구한다. 만약 자본주의라는 괴물에 잡아먹히지 않으려 한다면 노동자에게는 단결과 저항 말고는 다른 길이 없지 않느냐고!
노동자들은 무엇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가?
이 영화는 영국 국영철도가 민영화되는 시점을 전후로 하여 노동자들이 처절히 무너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영화 반대라는 단순한 관점에서 영화를 해석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민영화 문제가 아니다. 이 영화가 진정 다루고자 했던 것은 노동자를 공격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맞서 노동자들이 제대로 싸우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잃게 된다는 사실이다. 당시 영국의 구체적 상황을 잘 알 수 없어 역사적으로 상세하게 분석해서 쓸 수는 없지만, 결국 문제는 민영화 자체가 아니라 국영기업이든 민간기업이든 노동자를 공격하는 자들에 맞서 노동자들이 저항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국에서도 국영철도일 때, 노동자들에 대한 철도청의 공격이 없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영화 중간 중간에 나오는 ‘과거에도 두 번이나 해고되었다’는 노동자의 말을 통해서도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철도 역시 아직 공사화도 되기 전이지만 엄청난 수의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과로나 사고로 죽어나가며 비정규직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는 국영이든 민영이든 이 체제는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공격한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영화는 노동자들 사이의 단결이 사라지면서 노동자가 피폐한 인간으로 추락해나가는 냉엄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은 영국 철도노동자들이 자본의 공격에 맞서 강력한 단결로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유쾌하고 동료애가 넘치는 현장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소박한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양심과 정의가 억압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고 생존을 위해서 인간성까지 버려야만 하는 비참한 상황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단결하여 투쟁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투쟁은 착취를 끝장내고, 노동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도약하는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는 방향으로 곧게 뻗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영국 철도노동자뿐만 아니라 한국 철도노동자들과 전 세계 모든 노동자의 공통의 과제이며, 함께 단결해야만 비로소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교훈은 결국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우리가 여전히 인간으로 살고자 한다면, 매일매일 인간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자 한다면, 우리는 외쳐야 한다. ‘단결과 투쟁은 생명이고, 분열은 죽음이다!’ 단결하고 투쟁할 때만 비로소 우리는 인간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노동자운동은 노동자의 자랑스러운 인간선언이다. 인간임을 우리 스스로 확신한다면 우리는 노동자운동의 단호한 일부가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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