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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잘레의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자본주의가 노동자들을 어떻게 쥐어짜내는지 파악하기 위한 간결한 입문서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는 합리성과 번영의 탈을 쓴 이 사회가 노동자들을 어떻게 착취하고 억압하는지 간결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프랑스 경제학자 피에르 잘레는 미국의 진보적 잡지인 ≪월간평론≫의 필자로 활동했다. 저자의 서문을 읽어보면 그가 어떤 이유에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알 수 있다. 그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를 단순명쾌하게 분석한 책을 소개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를 한눈에 알 수 있고 포괄적인 관점을 간결하게 제시하고 있는 책은 없나요?”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는 이 질문에 응답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이 책을 주위 동지들에게 권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의 시도들
사실 그동안 이러한 종류의 책자들은 부지기수로 출판되어 왔다. 대개 ‘정치경제학원론’ 등의 제목을 달고 있는 수많은 기존의 책들은, 그럼에도 선진노동자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투사들의 필요를 적절히 충족시켜 주지는 못했다. 누구나 이런 책들을 집어들 때에는 분명 이런 의도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도대체 어떤 식으로 노동자들을 쥐어짜는지 알고 싶다. 그리고 자본가들의 착취와 경쟁의 논리가 어떻게 노동자들에 대한 정치적 억압으로까지 이어지는지도 알고 싶다. 그럼으로써 실천을 하는 데에서 무엇을 목표로, 어떤 방식으로 투쟁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데 도움을 받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노동자들은 정치경제학원론 등등의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 책 속에서 무언가 이해하기 힘들고, 자신의 삶이나 실천과는 거리가 먼 듯한 느낌을 받기 시작한다. 난해한 도표와 공식과 숫자들이 머릿속에서 뱅뱅 돌때쯤 되면 결국 책을 덮고 더 이상의 연구를 포기하게 된다. 심지어는 학습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기도 한다. 즉 학습이란 비실천적인 것이며,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고, 시간 여유가 있을 때나 할만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빠져든 노동자는 자본주의의 비밀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의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다. 얼마나 많은 동지들이 부적절한 책들 때문에 이런 길로 접어들곤 했던가! 그러나 피에르 잘레의 책을 읽는 한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는 자본주의의 현실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자 하며, 그것을 실천과 연결시켜 이해하고자 하는 동지들에게 적절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의 장점
이 책이 갖고 있는 장점의 하나는 내용이 간결하고 명쾌하다는 것이다.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분량에 핵심적인 내용들이 압축적으로 서술되고 있으며, 만약 이 책으로 토론을 하게 된다면 제법 짧은 기간 내에 중요한 내용들을 전체적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작동법칙을 분석하는 기존의 책들은 대개 지나치게 어렵고 복잡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단순해서 많은 중요한 측면들을 놓쳐버리곤 하는 약점을 갖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이 책은 독자들이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배려하면서도, 자본주의 분석의 주요 측면들을 골고루 다룸으로써 얇은 두께 이상의 무게감을 주고 있다. 이 점은 초보적으로 학습을 시작한 동지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 책은 자본주의의 경제적 운동법칙에 대한 분석과 정치적 지배방식에 대한 필수적인 분석을 적절히 결합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해부하는 많은 책들이 실제로는 자본주의의 전체 모습을 종합적으로 규명하기보다는 주로 경제적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의 구조와 정치적 억압의 구조가 어떻게 결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반면 이 책은 자본주의의 경제적 운동법칙에 대한 분석에 이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와 정부, 민주주의, 군대와 경찰, 언론과 경찰 등의 정치적 요소들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그것들이 노동자들의 생활과 투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간결하게 다루고 있다. 동일한 성격의 사례들을 우리 현실에서 끌어내 함께 연관지어 토론할 수 있다면 풍부하고 교훈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장점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의해서 검토할 측면이 있다.
보완해야 할 약점
≪자본주의란 무엇인가≫가 갖고 있는 ‘간결함’이라는 장점은 불가피하게 몇몇 측면들을 누락시킨다는 약점을 낳는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 분석에서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공황의 원인과 전개과정, 결과 및 공황이 보여주는 정치적 문제 등이 잘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 문제에 관한 한 저자는 다소간 수세적이거나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약점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가 대략 20여년 이상 장기호황을 누리며 일명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거쳐 왔던 1970년대 초에 그가 이 책을 썼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당시 자본주의는 ‘성장’이나 ‘번영’이라는 단어와 제법 잘 어울렸고,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서 그가 과감하게 공황과 파국의 가능성을 건드리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묘사하는 데 가장 적절한 단어들은 성장이나 번영이 아니라 성장률 둔화, 불황, 위기, 절망, 갈등, 대립, 과잉생산, 금융자본의 투기자본화, 한치 앞도 예견할 수 없는 극심한 불안정성 등이다. 이른바 IMF 사태는 자본주의가 공황의 악몽으로부터 결코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없다는 진실을 이곳 한국에서 번갯불처럼 보여준 사건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거리에는 노숙자들과 걸인들이 전혀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신문에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목숨을 끊은 사람들에 관한 기사가 거듭 등장한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현실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독자들은 공황과 자본주의 위기의 문제를 검토할 수 있는 별도의 자료를 구해 함께 토론할 때에만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본연의 의의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공황을 쉽게 설명한 자료는 드문 편이다. 벤 파인의 ≪요점자본론≫은 공황문제에 한 장을 할애하여 간략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입장이 불명료하다.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김수행의 ≪정치경제학원론≫에 실린 ‘공황과 체제적 위기’는 참조할 만하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의 마지막 장에서는 이 책의 논의 전반을 관통하는 기초로서 유물론적 관점, 변증법적 분석방법 등 역사파악의 기본 내용들이 대단히 압축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 부분 역시 별도의 추가자료들과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피에르 잘레의 이 책은 혼자 읽기보다는 이 분야에 충분한 식견을 갖고 있는 ‘경험자’와 함께 토론함으로써 보다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안내자가 없다 하더라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를 갖는다. 우리가 매일 부딪히고 있는 현실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심사숙고하면서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독자라면, 이 책으로부터 많은 교훈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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