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이 아니라 노동자의 힘을, 교섭이 아니라 노동자의 투쟁을, 나약하고 약삭빠른 관료가 아니라 헌신하고 투쟁하는 지도부를!(사진=철도노조)]
철도 임단협,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2년여를 끌어온 철도 임단협투쟁이 12일 교섭 타결로 사실상 종결됐다. 교섭 결과는 압도적 찬성으로 확대쟁대위를 통과해(찬성 115, 반대 19, 기권 27), 조합원 총투표만 남아 있다. 임단협 안은 ‘근무체계 개악, 각종 수당 개악, 노조활동 축소, 청원휴가 대폭 축소, 휴일 축소, 비정규직 요구안 묵살, 쟁의행위 시 신규채용과 파견근로 금지조항 삭제’ 등으로 얼룩져 있다. 해고자 복직과 대규모 부당징계 철회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투쟁을 유보한 양보교섭
투쟁 없이 얻어낸 잠정합의안은 결코 우리 예상에서 빗나가지 않았다. 정부와 공사는 연봉제와 임금피크제를 다음으로 미룰 만큼 철도파업을 막는 데 혼신을 다했다. 노조는 ‘공사가 진정성을 가지고 교섭에 임하면 파업은 없다’는 기조로 파업돌입 한 시간여를 앞둔 시간까지 교섭에 매달렸다. 절반의 조합원들에게 부당징계를 때리고 현장에 구조조정 물결이 출렁이던 시간에도 그에 대한 일체의 요구사항 없이 잠정합의안은 노사교섭팀에 의해 좌지우지되면서 작성되고 있었다.
잠정합의안이 도출되기까지의 현장 상황
잠정합의안이 나오자 철도노동자들은 일단 ‘안도’했다.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우선 그것은 평조합원까지 임금과 승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징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필공파업 즉 합법파업에도 조합원 수준까지 징계하는 공사의 강경한 태도 앞에, 다시 파업에 들어간다면 가중징계가 훤히 보이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의 파업 결의는 이전보다 훨씬 더 커야만 했다. 이 결의는 지도부가 징계를 박살내는 단호한 투쟁을 밀어가는 것이 분명해졌을 때만, 그리고 제반 현장투쟁을 통해 이 결의를 조합원 스스로 확인해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생길 수 있었다.
불행하게도 조합원들은 사실 파업 없는 교섭 타결에 목표를 두고 있는 지도부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집행부는 작년 11월 파업 이래 부당징계위원회를 개최하는 데 법적 하자가 없도록 지연하는 식의 수세적 대응으로만 일관했다. 위원장 재판결과에 따라 파업의 합법성 여부가 판단될 것으로 예상하며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합법주의는 다수 노조 간부들의 발목을 잡았다. 올 초 조합원들이 부당징계에 울분을 터트리고 있을 때에도 집행부의 교섭기조는 계속됐다. 그 결과 과거 어떤 파업 돌입 직전 상황보다 이번 파업 돌입 전 현장 상황은 암울 그 자체였다. 이렇게 어머어마한 구조조정 공세가 있었던 적이 없었고, 위기감은 최고조였다. 그러나 파업 준비 상태는 정반대였다.
결국 이 두 요인이 맞물리면서 5월 11일까지 “정말 파업 가는 거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전국의 철도현장은 투쟁을 통해 파업 결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교섭 상황에 해바라기가 돼 있었다. 이 상황이 노조 집행부를 통해 나타난 결과물, 그것이 바로 잠정합의안이다.
이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
하지만 잠정합의안을 면밀히 검토할수록 조합원들은 다가오는 위험을 직감하고 있다. 연봉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각종 복지제도를 축소하고 근무체계를 개악해 “인력충원 없고 임금인상 없는 노동강도 강화”가 현실화됐다는 사실에 시간이 갈수록 분노하고 있다.
더욱 주목할 지점은 ‘투쟁 없는 타결은 잿빛 미래’라는 사실이다. 물론 우리는 투쟁을 해도 요구를 완전히 관철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대로 투쟁하고도 우리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우리 힘이 거기까지라는 것을 인정하고 다음 투쟁에 나서면 된다. 실제로 철도 파업투쟁은 한 번도 완전히 이긴 적이 없고, 대개 쓰라린 현장복귀로 나타났지만, 그런 투쟁 덕분에 정부와 공사는 몸을 사리면서 공격을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 없이 교섭기조로 일관하다 타결하면서 ‘현재 우리 힘이 부족하니 다음에 더 큰 힘으로 싸우자’는 얘기는 현장조합원들을 설득할 수 없으며 정부와 공사도 위협하지 못한다.
진정한 해결책
이 시대의 법이란 단지 활용할 수 있을 뿐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투쟁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기협 투쟁, 2·25, 6·28 파업 등 철도투쟁의 빛나는 역사에서 보듯이, 철도의 선진노동자들이 이러한 원칙으로 투쟁했을 때, 그 피해가 조합원들에게까지 미치더라도 조합원들은 투쟁 지도부를 믿고 의지하며 당당히 투쟁했다. 그리고 해고자, 구속자 동지들을 존경했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현장조합원들은 조합비 인상 등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이번 임단협에도 불구하고 철도노동자의 미래는 완전히 잿빛으로 물든 것은 아니다. 철도의 선진노동자들은 법이 아니라 노동자의 힘을, 교섭이 아니라 노동자의 투쟁을, 나약하고 약삭빠른 관료가 아니라 헌신하고 투쟁하는 지도부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그 투쟁의 지도부가 돼야 한다!
[철도 활동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