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세대가 거침없는 투쟁을 시작했다. 이는 전 세계 노동자투쟁 부활의 진원지가 될 것이다.(사진=로이터)]
중국의 파업 확산 사태가 말해주는 것
“ 머지않은 중국의 노동자대투쟁, 세계 자본주의와 계급투쟁에 심대한 영향 미칠 것 ! ”
5월 말부터 중국 곳곳에서 노동자파업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초국적 자본의 생산기지를 중심으로 젊은 2세대 농민공들이 주도하는 파업
이번 파업들이 주목을 끄는 것은 중국에 진출한 초국적 자본의 생산기지들을 진원지로 하고 있고, 20대의 젊은 2세대 농민공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그 확산 속도와 규모 그리고 조직적 양상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발전된 수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근 파업들은 임금인상요구를 기본으로,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요구도 조금씩 덧붙여지고 있다. 도화선이 된 혼다 파업에서는 중국판 어용노조인 ‘공회’를 대신해 아래로부터 직접 선출된 교섭대표들이 공회 간부들의 ‘중재’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노조의 자주적 재편을 요구했다.
중국의 노동자대투쟁을 현실로 만들 2세대 농민공들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에서 공산당 지배관료들과 해외·중국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착취해 엄청난 돈을 벌었다. 노동자들에게는 극도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이 강요됐다. 1989년 천안문 항쟁을 유혈진압했던 철권통치 아래서 노동자들은 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의 자본주의 발전은 마침내 단결하고 투쟁할 자신감과 역량을 가진 새로운 노동자 세대들 앞에 맞닥뜨렸다.
2억에서 3억으로 추산되는 중국의 노동자계급은 단연 세계 최대 규모다. 그 가운데 지금 파업 확산을 주도하는 것은 줄잡아 5천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 20대의 젊은 2세대 농민공들이다. 2세대 농민공들은 도시에서 돈을 벌어 농촌으로 돌아가려 했던 1세대 농민공과 달리, 어려서부터 자란 도시에 정착하기를 원하며 그만큼 노동자로서 더 분명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이들은 도시에서 살지만 농촌 호구를 갖고 있기에 상대적 차별과 박탈까지 당한다. 그렇지만 이전 세대의 노동자들과 달리 휴대폰과 인터넷을 자유롭게 다루며 빠른 소통 능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 최대의 제조업 생산기지에 엄청난 규모로 밀집해 일하면서 자본주의 공장이 부여하는 질서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힘을 획득해왔다.
정교한 관리와 평화적 수렴을 희망하는 중국 정부
이미 2000년대 중반에 중국의 공산당 지배관료들은 노동자와 농민의 불만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이것이 사회적 정치적 폭발로 이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해왔다. 이번 파업 확산 사태 앞에서도 중국 정부는 상황을 정교하게 관리하려 한다.
중국 정부는 언론을 통해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국내소비를 확장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노동자임금이 올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어용노조 공회로 하여금 파업에 발 빠르게 개입해 요구수준의 절반 정도로 사측이 양보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요구에 어느 정도 우호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노동자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하거나 그 분노가 정부로 겨냥되는 것을 피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근본 목표는 파업이 자주적인 노동조합 건설, 개별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선 연대투쟁, 가두시위, 농민투쟁과의 결합, 심지어 중국 정부와 공산당 지배관료들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는 데 있다. 그래서 파업이 이런 방향으로 발전할 조짐을 보이면 곧바로 무장경찰을 투입한다. 공회가 발 빠르게 파업에 개입하는 것 또한 무엇보다 자주적인 노조의 등장을 차단하기 위해서이며, 그래서 한편으로 약간의 임금인상을 사측에 압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측과 함께 파업 주동자에 대한 해고나 폭력행사에 나서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금의 파업 흐름을 잘 관리해 자주적인 노조 건설과 연대투쟁, 정치투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차단한 채 산발적인 기업별 경제투쟁만을 허용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기업별 임금교섭을 제도화하는 평화적인 수렴을 희망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되더라도 세계 자본주의는 상당한 교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중국 정부의 희망대로 사태가 평화적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임금인상이 불러올 중국산 수출품의 가격인상이 낳을 효과
중국 정부의 희망대로 사태가 전개되더라도 그것이 세계 자본주의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서 일정한 임금인상이 이루어지는 것만으로도 이미 심각한 경제위기로 허덕이는 세계 자본주의는 다시 한 번 강력한 타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0여 년 간 값싼 중국산 수출품은 세계적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또한 비정규직과 실업으로 내몰리는 하층 노동자들이 일정한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회적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도 했다.
그런데 중국에서 임금이 오르면 중국에 진출한 초국적 자본가들은 줄어드는 이윤을 만회하려고 제품가격을 올릴 것이다. 전 세계의 저가품 소비재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중국산 수출품의 가격인상은 하층 노동자들의 구매력 하락과 그에 따른 생활수준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안 그래도 산더미 같은 재정적자를 줄이려고 각국 정부들이 각종 연금, 수당 등을 삭감하는 상황에서, 하층 노동자들의 생활수준 하락은 더욱 급격해질 것이다. 이것이 세계 각국의 정치적 사회적 긴장의 격화로 이어질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거꾸로 가는 공장이동이 세계적인 계급투쟁에 미칠 효과
한편 값싸고 고분고분한 노동력을 찾아 중국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건설한 초국적 자본들은 계속되는 임금인상과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노동자대투쟁의 가능성 앞에서 계산기를 다시 두드리게 될 것이다. 실제로 잇따른 자살사태를 수습하려고 하반기까지 120% 임금인상을 약속했던 팍스콘은 중국의 임금이 오른다면 굳이 중국에서 생산할 이유가 없다며 일부 생산라인을 대만으로 다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중국에서 공장이 다시 이동한다면 대부분은 선진국이나 선발 개발도상국으로 생산기지가 되돌아가는 ‘역(逆) 공장이동’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역(逆) 공장이동’은 중국과 세계의 계급투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공장이 빠지며 야기될 대량해고와 실업은 중국의 노동자투쟁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만일 중국 노동자투쟁이 격렬하게 터져 나온다면 초국적 자본 마음대로 공장을 철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또한 ‘역(逆) 공장이동’이 실제로 이루어질 경우 이는 선진국이나 선발 개발도상국 노동자투쟁에 강력한 자신감을 부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공장이동이 이들 나라의 노동자들에게 공포를 심어줌으로써 노동자들 스스로 권리 축소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했던 메커니즘이 이제 거꾸로 돌아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 자본의 천국 ’ 에서 ‘ 세계적인 노동자투쟁 부활의 진원지 ’ 로
중국 노동자투쟁의 폭발은 중국 정부가 원하는 수준으로 사태가 전개될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세계 자본주의를 더욱 극심한 위기로 몰아넣고, 나아가 세계적인 수준에서 노동자투쟁의 거대한 전진을 불러올 것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중국은 세계의 자본가들이 값싸고 고분고분한 노동자들을 무한대로 공급받으며 마음껏 착취할 수 있었던 ‘꿈의 땅’이자, 이를 바탕으로 세계의 나머지 노동자들에게 굴욕과 후퇴를 강요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으로 작동했다. 그런데 이제 사태가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중국은 세계를 주름잡는 초국적 자본가들이 가장 젊고 강력한 노동자계급이 내뿜는 거대한 열기 앞에서 두려움에 덜덜 떠는 ‘악몽의 땅’으로 변할 것이며, 세계의 나머지 노동자들에게도 강력한 자신감을 새롭게 불어넣는 ‘희망의 원천’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양준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