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노동자 민주주의 투쟁은 노동자 계급을 무장해제시키는 "민주대연합" 노선과 단절하는 데서 출발한다.
'민주주의 후퇴’에 맞선 투쟁과 이행강령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위기감과 반발이 시국선언의 형태로 지금 각계각층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작년 촛불투쟁 이후 집회와 시위 · 결사 · 표현의 자유 등 민주적 권리들에 대한 공격을 본격화해 왔다. 이와 함께 공안기구를 강화하고 백골단 부활 등 폭력경찰을 증강하여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에 대한 탄압 또한 전면화하고 있다. 용산학살도 이 과정에서 일어났다. 그 때문에 용산학살을 규탄하는 투쟁도 많은 부분 ‘민주주의 후퇴’에 맞선 투쟁의 성격을 띠고서 전개되어 왔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지키는 투쟁?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민주주의 후퇴에 맞서 민주적 권리들을 방어하기 위한 투쟁에서 가장 선두에 설 뿐만 아니라 그 어느 세력보다도 일관되게 투쟁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은 민주주의 후퇴에 맞선 투쟁을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지키고 확대하는 투쟁’으로 왜곡시키려는 일체의 기회주의적 시도들에 대해 견결히 반대한다.
현 시기 민주적 권리들을 방어하는 투쟁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는 이행적 요구들(노동자 생산통제, 경찰 군대 등 폭압기구 해체/노동자 정당방위대 구성, 노동자정부)과 분리된 별개의 과제일 수 없다. 최대강령과의 연결을 끊고 그것과 담을 쌓는 사민주의적 최소강령 투쟁으로 축소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민주주의 후퇴에 맞선 투쟁을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과 뗄 수 없이 연결시켜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또한 민주주의 후퇴에 맞선 투쟁을 부르주아 야당과 동맹하는 ‘반독재 민주대연합’으로 몰아가려는 민노당/ 진보신당의 기회주의적 시도에 반대한다. 이는 ‘이명박 체제’에 맞서 ‘노무현 체제’를 지켜내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논리에 지나지 않으며, 노동자계급운동을 민주당과 같은 자유주의 부르주아의 꼬리로 전락시키려는 시도이다.
한편 이명박 정권 하에서의 민주주의 후퇴를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철저히 부정되고 파시즘 강화의 길로 가는 것”(노사과연)이라고 보는 반파쇼 인민전선 전략은 어떤가? 이것 또한 노동자계급이 파시즘 강화에 맞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사수, 확대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노동자공동투쟁)고 주장하는 점에서 민주대연합과 다를 바가 없다. 현재의 민주주의 후퇴를 곧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부정/ 파시즘 강화로 보는 현실 인식 자체가 오류이다. 이것은 노무현 체제와 이명박 체제 간의 차이를 과장하며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환상을 걸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는 제1보!
‘민주적 권리를 방어하는 투쟁’과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투쟁’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민주주의 후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부정이 아니라 바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오늘날 불가피하게 취하는 모습이다. 쇠퇴기 자본주의 하에서, 특히 현재와 같은 공황기에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파시즘이나 군사독재로 대체되지 않고서도 민주적 권리들을 제약하고 공격한다.
지금 이러한 민주주의 후퇴가 한국에서만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면 이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공황 하에서 이른바 선진국, 즉 서구의 발달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도 자본가계급이 노동자 민중들에게 공황의 고통을 전가하며 공격하는 과정에서 국가 탄압기구들을 강화하고 집회와 시위, 단결권과 파업권 등 민주적 권리들을 심대하게 제약해 들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이러한 민주적 권리들을 방어하기 위한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이 경제위기 전가에 맞선 투쟁과 나란히 전개되고 있다. 민주주의 후퇴는 모든 나라에서 현 시기 위기에 몰린 자본주의 체제의 반동적 공세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상황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사수 확대하는 반파쇼 인민전선의 필요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민주적 권리 방어투쟁과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 사이에 놓여 있던 간극이 급속히 소멸하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양자 간에 만리장성을 설치하는 전략의 기회주의성과 무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적나라하게 폭로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민주주의 후퇴’에 맞선 투쟁은 민노당 등 ‘비판적 지지’ 세력들이 주장하는 “미완의 민주주의 혁명을 완성하는 투쟁”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민주당과 동맹하는 ‘반독재 민주대연합’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 노선은 민주주의 후퇴에 맞선 투쟁과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철저히 대립시키고, 양자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차단벽을 설치한다. 민주주의 후퇴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하나의 단계로서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는 제1보이다.
만리장성을 쌓는 최소저항 노선들
다함께는 민주당과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하며,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은 그 속에서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자제하지 않는 것을 통해 지켜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후퇴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은 그 같은 ‘정치적 비판’을 통해서가 아니라 민주적 권리 방어투쟁과 노동자해방을 위한 투쟁을 단일하게 연결시킬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강령과 전술을 통해서만 오직 확보될 수 있다.
“민주주의 요구와 반자본주의 요구의 결합”을 이야기하지만, 민주당과의 “동맹” -- 일시적이든 상설적이든 -- 요구는 이러한 이야기를 모두 공문구로 만든다. 실제로 다함께는 노동자 생산통제, 정방대 구성, 노동자정부와 같은 어떠한 반자본주의적 이행 요구도 제출하지 않으며, 단지 “노동자계급 고유의 요구”라는 이름으로 투쟁을 생존권적 최소요구로 제한하고 있다.
노정협도 “노동자계급의 독자성과 자주성은 노무현의 죽음이라는 정세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명박정권에 대한 대정권 투쟁을 강화하고 대중들의 소부르주아적 요소를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대한 지지로 바꿔내면서 노동자계급의 주도성을 획득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이 주도성을 획득하기 위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강령과 전술을 제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단지 최소요구 투쟁을 비타협적으로 전개하면 된다면서 최대강령 투쟁,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과의 분리벽을 설치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강령 · 전술
사회주의자들의 이행강령은 민주주의 후퇴에 맞선 투쟁에서 이러한 강령 · 전술 문제를 해결해 준다. 민주주의 후퇴에 맞선 투쟁은 쌍용차 투쟁 등 현 시기 경제위기 전가에 맞서는 투쟁과 분리될 수 없다. 반독재 민주대연합/ 반파쇼 인민전선, 그리고 최소요구로 투쟁을 제하는 최소저항 노선 등은 이러한 두 투쟁을 인위적으로 분리시킴으로써 현 시기 계급투쟁의 발전을 가로막는 내부적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러한 분리를 막고 이 투쟁들을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에 대한 단일한 투쟁으로 전면화시키는 데서 이행강령(노동자 생산통제, 경찰 군대 등 폭압기구 해체/노동자 정당방위대 구성, 노동자정부)은 사회주의자들의 필수 무기이다.
양효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