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운명, 우리 스스로가 개척하자!
사람들은 말한다. “87년 6월이 다시 돌아왔다!” 많은 점에서 정말 그렇다. 군사정부의 적자인 ‘한나라당 정부’에 맞서는 투쟁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 수호’라는 깃발 아래 통합민주당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세력들이 반정부적 입장을 취한다는 점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수십만 대중들이 가두에서 직접적인 행동에 돌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공통점은 또 있다. 분명 ‘정부’는 흔들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은 급감하고 있고, 불과 1달 전만해도 서슬퍼랬던 부르주아 국가기구들은 수세적 방어에만 급급하고 있다. 지배 계급 내에서 분열이 발생하면서, 서로 위기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데 정신없다. 이것은 평범한 대중들에게도 부르주아 정치세력들이 형편없음을 느끼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본가 정치세력들 사이에서는 명확한 공감대가 있다. “정상적인 부르주아 질서를 시급히 복원해야 한다. 가두 정치는 의회 정치로 대체되어야 하고, 경찰과 정부 부처의 힘과 권위는 회복되어야 한다. 대중들은 수동적인 상태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미 자본가 정치세력들의 행보는 가시화되고 있다. 자유선진당이나 친박연대 등 극우 집단들은 국회로 복귀했으며, 그들은 ‘보수 단체들’을 총동원해서 대중의 가두 투쟁을 위협하면서 맞불을 지피고 있다. 통합민주당은 ‘여기서 스톱시키자’는 판단 하에서 ‘국회 복귀’의 명분과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 국회 복귀와 함께 그들은 ‘질서를 받아들이고 국회에 모든 것을 맡기자!’고 선동할 것이다. 이것은 노태우의 “직선제 선언” 직후, 6월의 시위대에서 철수하면서 ‘질서!’를 외쳤던 그들의 행보를 반복하는 것이다.
진정 중요한 것 - 6월을 넘어서서 7, 8, 9월로!!
87년이 노동자계급에게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졌던 것은 6월이 아니라 바로 7, 8, 9월 때문이다. 만약 ‘직선제 쟁취, 민주주의 획득’에 갇혀서, 6월의 전장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채 멈춰버렸다면, 7, 8, 9월 노동자 대투쟁의 위대한 나날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의 민주노조운동도,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출도, 한마디로 노동자운동은 없었을지 모른다. 지금 한국 노동자계급이 이룩하고 획득한 모든 성과들은 87년 7, 8, 9월과 뗄 수 없이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 87년 6월은 철옹성 같았던 자본가 정부의 요새에 충격을 가했고, 이것은 노동자 투쟁이 터져나올 수 있었던 공간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만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이 ‘가치’는 노동자들이 거기서 멈추지 않고, 노동자의 고유한 요구를 내걸고 노동자의 힘을 남김없이 보여줄 수 있는 위력적인 투쟁 방식으로 치고 나갈 때만 비로소 활용될 수 있었다.
노동자대중들과 선진활동가들은 그 점을 직감했고, 때늦지 않게 바로 행동에 옮겼다. 보수 야당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심지어는 ‘파업 자제’를 호소하는 반동 진영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그리고 보수 야당과 노동대중 사이에서 소부르주아 중간계급 정치세력들이 동요하는 상황에서, 노동대중은 6월의 ‘통일된 대오’의 분열을 느꼈다. 그러나 거기서 노동자들은 결코 위축되지 않았다. “갈 사람들은 가라! 노동자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가 개척한다!”
‘추상적인 민주주의 요구’ 뒤에 숨어 있던 노동자계급의 요구들이 전면에 솟구쳤다. “민주노조 보장하라! 민주노조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 임금 대폭 인상하라! 자본가의 현장통제에 맞서 노동자가 현장을 통제하자! 가라! 자본가 세상, 쟁취하자! 노동해방.” 노동자계급의 고유한 투쟁 방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장을 멈춰 노동자들은 ‘생산의 주인, 세계를 만드는 주인이 노동자임을 선포’했다. 현장을 점거한 파업으로 노동자들은 ‘공장과 작업장의 주인은 바로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온몸으로 선언했다.
이런 노동자계급의 요구와 투쟁으로 노동자계급은 6월을 넘어섰고, 비로소 노동자계급의 각인을 이 땅에 찍어냈다. 이 각인은 지금까지도 자본가계급이 지워버리지 못한 노동자계급의 성과이며, 이 성과의 그늘 밑에서 한국 노동자운동은 숨쉬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87년 6월이 다시 돌아왔다!”는 지금 현 상황에서 한국 노동자계급이 전력을 다해 쟁취해야 할 방향이다.
제2의 7, 8, 9월을 향하여 앞으로!
이미 화물연대와 건설 노동자들이 그 방향을 집행하기 시작했다. 그들과 함께 우리 모두가 외쳐야 할 구호는 다음과 같다. “6월을 넘어 노동자의 7, 8, 9월로!” 이것을 현실화시킨다면, 당장은 고통과 분노를 표출할 길이 없어 ‘쇠고기 재협상 요구’ 정도에만 머물고 있는 수많은 미조직 노동자들, 민중들이 노동운동에 합류해오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은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노동자 투쟁들을 보면서 노동자 의식을 배우고, 자기 현장에서 노동조합과 같은 노동자의 조직과 투쟁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것들은 다시 조직된 노동자들을 자극하고, 이것들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노동운동의 황금기를 열어낼 것이다. 그 속에서 진정한 혁명적 노동자 정당을 만들어낼 가장 비옥한 토양이 만들어질 것이다.
치켜들어야 할 노동자의 당면 투쟁 요구
노동자의 7, 8, 9월을 열어내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현장에 기반한 정치총파업을 조직해나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명확한 투쟁요구를 내거는 것이다. 당면의 쟁점과 관련해, 시급히 고민해야 할 투쟁요구는 다음과 같다.
1) “쇠고기 검역, 수입, 유통, 판매”를 노동자와 시민이 구성하는 “쇠고기 통제위원회”가 담당케 하자!
자동차와 반도체를 더 많이 팔아먹어 재벌의 이익을 늘려주는 것 말고는 정부 관리들은 무관심하다. 수입 유통 판매업자들은 소비자들이 죽든, 병들든 아무 관심없다. 많이 팔아먹는 것이 장땡이다. 이들에게 맡겨서는 결과는 뻔하다. 자본가들이 아니라 노동자들과 주부, 시민들이 만드는 각종 위원회가 양심적 과학자들, 전문가들의 조언을 얻어 ‘쇠고기 검역, 수입, 유통, 판매’를 집단적으로 통제하는 것으로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2) “정유사의 장부를 공개하라! 정유사를 국유화하자!” “노동자 민중이 물가를 통제하자!”
물가폭등의 가장 중요한 배경에는 높은 기름값이 있다. 가장 큰 정유사인 SK에너지는 올해 1분기에 기름값 폭등으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4% 폭등했다. 에스 오일은 79% 폭등했다.
우리의 요구는 간단하다. “정유사의 장부를 공개하라!” 그러면 물가폭등의 배후에는 한줌 대자본가들의 거대한 이윤이 도사리고 있음이 만천하에 공개될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 민중들에게 다음을 가르쳐줄 것이다. “대자본가의 이윤을 침범해야만 물가폭등을 막을 수 있다.” 대자본가들이 그것을 거부한다면, “정유사 국유화!”로 진격해야 한다. 그것의 과도적 고리로 “정유사 노동자들이 정유 산업을 통제하자! 정유산업 노동자들의 기름값 통제위원회와 시민들의 물가통제위원회가 함께 기름값을 결정하게 하자!” 이것은 모든 분야로 확대할 수 있다. 이미 수백조원의 사내보유금을 쌓아두고 있는 자본가들이 아닌가?
수도값, 전기값, 가스값, 버스료 등의 공공 요금도 인상을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노동자의 해결책은 간단하다. “요금을 낮추고, 부족 인력을 충원해라! 공공 부문 노동자의 산업 통제로 공공성을 더욱 강화하자!” 남는 건 그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다. 방안은 간단하다. “부동산 투기자들, 놀고 먹는 부자들에 대해 대폭 세금을 때리자! 법인세 인하가 아니라 법인세 인상으로 자본가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게 하자!”
3) “생활임금 쟁취하자!”, “다단계 하청 제도 철폐하라!”, “안정된 일자리를 지키고 확대하자!”
실업률의 증가, 비정규직 확대, 물가폭등으로 노동자 민중의 생활 수준은 끝도 모르게 추락하고 있다. 배부른 착취자들이 도둑질해간 것들을 되찾아 오면 굶주릴 이유가 전혀 없다.
“민주노총 표준생계비의 80% 이상으로 법적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시키자!” 5인 이하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가장 가난하다. 이들을 배제한 최저임금제란 아무 의미가 없다. “최저임금제를 비롯한 근로기준법, 주 40시간 노동제를 전체 노동자들에게 확대하라!” 은폐된 노동자들인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게도 이것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가령 화물노동자들과 건설노동자들에게 민주노총 표준생계비의 80% 이상에 해당하는 “표준요율제”를 보장해야 한다.
가난을 강요하는 주범 중 하나는 ‘다단계 하청 제도’다. 다단계 하청 제도는 ‘일의 효율성’에 비춰볼 때 아무 쓸모가 없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노동자가 손에 쥐어야 할 임금이 고스란히 하청 자본가들에게 넘어간다. 가령 화물 운송 분야에서 이른바 ‘주선업체’ 사장들이 가져가는 금액이 운송 대금의 무려 30%를 넘어선다. 공장에서는 ‘파견 용역업체’ 사장들이 마찬가지로 중간에서 갈취하고 있다. ‘다단계 하청 제도 철폐!’, 원청과 노동자 사이의 직접 계약’, ‘비정규직 철폐, 특수고용직 형태의 착취 제도 철폐’가 이뤄진다면 최소한 30% 이상의 임금 인상을 쟁취할 수 있다!
당장 일자리가 없거나 언제든지 짤릴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 “생활임금”이란 빛좋은 개살구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시켜라!” “야간 노동 철폐하고, 노동시간 단축하자!” 이렇게 단축된 노동시간을 “실업자, 비정규직의 정규직 일자리 창출”로 연결시키자! 이 비상한 시국에 노동자의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모든 형태의 해고 금지법을 쟁취하자!”
최영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