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민주노동당에 노동자의 운명을 맡겨서는 안 된다!
2007년 12월 대선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비판과 실망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기대치에 턱없이 부족한 득표율의 원인을 둘러싼 내부 비판과 논쟁이 활발하다. 그 중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국회의원이 했던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노동자 당원들의 탈당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란 지적이다. 여기에는 민주노동당의 위기의 “심장”이 정확히 담겨 있다.
민주노동당의 형성 과정,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이만큼이라도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노동운동의 대중적 경험과 열망” -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 을 흡수하는 거의 유일한 당이라는 점이 깔려 있었다. 지역마다 편차가 있지만, 민주노동당에 표를 던지는 유권자들의 다수는 가난한 노동자들이었다. 문제는 바로 이와 같은 “성장의 토대”가 붕괴되고 있음을 이번 대선이 명백히 보여준 것이고, 이것을 직시한 것이 노회찬 의원의 발언이었다.
민주노동당을 믿을 수가 없는 노동자들
민주노동당은 노동대중에게 외친다. “비정규직을 없애고 해고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 여기서는 그들의 정책이 “진정 비정규직 철폐인지 아니면 단순한 차별 완화”인지, “모든 유형의 해고 철폐인지 아니면 단지 해고 요건을 조금 까다롭게 만드는 정도인지”는 논의할 필요가 없다. 더 기본적인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노동대중은 민주노동당의 약속에 대해 믿지 못한다. 민주노동당의 “힘”과 “행동”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계급의 거대한 힘, 가령 전체 자본주의 생산을 과감하게 멈추는 노동자 총파업투쟁과 같은 결정적 전망과 대립되는 선거주의적 길을 추구해왔다. 민주노동당은 총파업이 노조 관료층의 배신과 우유부단함, 흉내 내기 등에 의해 파괴되고 유명무실화될 때마다, ‘민주노동당에 표를 던지고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것이 대안이며, 총파업 대신 이것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국민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민주노동당 표를 위해서는) 과격한 투쟁을 자제해야 한다’면서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그 결과 노동운동의 힘을 파업투쟁의 위력을 통해서 우선적으로 느끼고 확인하는 노동대중은 민주노동당이 대표하는 조직된 노동운동의 힘에 대해 불신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느끼는 노동운동의 상태란 제대로 힘을 써보지 못하고 계속 수세로 내몰리는 허약한 것이다. 게다가 이런 허약성은 개선될 가능성은커녕 계속 악화되고 있다고 그들은 본다.
공약(空約)으로 추락하는 공약(公約)들
또한 방대한 노동대중은 조직된 노동운동의 행동을 보면서 민주노동당의 약속이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대답한다. 그런데 현재 조직된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노조운동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대담한 투쟁을 조직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금속노조는 현대차에서 비정규직 도입을 합의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의 고용안전판으로 대놓고 규정한 정갑득과 같은 인물이 위원장을 해먹고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접하는 노동조합 지도자들, 간부들의 대다수는 비정규직 문제에 사실 무관심하다.
실업자 문제에 이르면 상황은 더욱 비극적이다. 노동대중이 보기에 조직된 노동운동은 조합원들에 대한 정리해고마저도 막을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초래한 당사자들, 즉 투쟁회피주의적이고 타협적인 노조 지도자들의 대부분이 바로 민주노동당 핵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민주노동당의 개량적이고 선거주의적인 실천 자체가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영향력이란 매개고리를 통해서 이런 상황을 강력히 조장하고 있다.
결국 노동대중은 민주노동당의 약속마저도 부르주아 정치세력들의 껍데기 공약과 똑같은 것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노동대중의 상당수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기보다는 기권하는 편을 선택한다. 일부는 차라리 그나마 실현가능성을 갖고 있는 부르주아 정치세력들을 선택하고 만다. 결국 다음이 분명해진다. 개량주의자들에게 의존해서는 한국 노동자계급은 아주 작은 정치적 도약마저도 불가능하다.
노동자 당인가, 아니면 단지 써클의 연합체인가?
이런 식으로 민주노동당에게서는 개량주의적 노동자당이라 불릴 만큼의 “노동대중과의 연결성”조차 갈수록 희석화되고 있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대중정당의 외피를 쓰고 있는 “노조 관료집단과 개량주의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중간계급 지식인들, 민족주의자들의 연합써클”로 급속히 전락하고 있다. 다만 조직된 노동대중의 일부가 반신반의하는 상태에서도 다른 대안이 없기에 “표찍기” 정도의 아주 제한적인 지지를 보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에 한국 노동자 운동의 전진을 대표하는 정치적 지위를 부여하고, 여기에 노동자 운동의 미래를 거는 것에 선진노동자들은 명백히 “회의”하고 있다.
그렇지만 민주노동당에 속한, 진지한 선진노동자 동지들은 이렇게 질문한다. ‘민주노동당으로는 장기적으로 노동운동의 미래를 열 수 없다는 점은 나도 안다. 그러나 다른 대중적 대안이 없지 않느냐? 더군다나 노동대중을 자본가 정당들의 포로로 방치할 수는 없지 않느냐?’ 이것이 노동대중에 대한 책임감을 반영하는 진지한 고민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다음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첫째, 과연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민주노동당에 남아 있는 것이 노동대중의 발전과 노동자 계급의식 확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일까? 노동자의 자신감과 잠재력을 얼마나 발전시키는 것일까? 울산의 경우, 표를 던지는 노동자들조차도 “들러리, 관객”이라는 체념에 빠져 있고, 민주노동당에 대한 한 표 행사가 더 이상 “희망의 한 표”가 아님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에 반해 노동자의식과 단결, 전투성의 고양에 실제로 이바지하는 것은 “현장에서 전개되는 노동자 투쟁”일 뿐이다.
둘째, 약간의 긍정적 효과는 있더라도 그것은 “자본가 정당들에 대한 분노를 발산할 통로가 꽉 막히는 것”에 비교할 때, 발생하는 반사적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약간의 단기적 성과”마저도 “장기적 관점”에서 발생하는 “손실”과 비교할 때만 정확한 계산서가 나올 수 있다. 다음의 질문이 필요하다. “노동운동을 전혀 책임질 수 없는 세력을 지지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진정한 노동계급정당을 향한 노동자들의 발걸음을 늦추고 혼란스럽게 만들지는 않을까? 차라리 민주노동당은 전혀 대안이 될 수 없고, 새로운 대안을 건설하기 위한 발걸음에 당장 착수해야 한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그것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에 착수해야 장기적으로 노동대중을 진정 책임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희망없는 지그재그보다 똑바른 한 걸음!
진정 중요한 것은 대중을 책임질 수 있고, 선진활동가의 운명을 걸 수 있는 노동계급정당을 향해 뚜벅뚜벅 똑바로 가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노동계급적인 혁명적 투사조직 건설을 향해 진지하게 나서는 것을 통해서만 실제로 실현될 수 있다.
현장에 기초한 투사들의 망을 짜는 것, 이 투사들의 망을 전국적 연결망으로 결합시켜 당의 그물망을 하나씩 창조해나가는 것, 그리고 바로 이들에 의해 노동자 투쟁을 실질적으로 조직해나가는 것은 “신뢰할 수 없고 심지어는 노동자들을 기만하는 개량주의 정당에 대한 어떤 비판도 없이 그 당에게 표를 던지라고 대중에게 선동하는 것”보다 몇 십 배 더 노동대중을 진실로 책임지는 길이다. 이것은 먼 미래의 효과만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효과를 가지고 얘기해도 진실이다. 최근 수년간 한국 노동대중이 전진하고 힘을 발전시키며 노동자다운 의식의 성장을 이룩한 것이 있다면, 그 모든 것들은 민주노동당을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노동자 투사들의 “현장 활동”을 통해서만 비로소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이 “사활적인 지점”을 분명히 하고, 민주노동당에 대담하게 대당하고 “바로 이 세력에 의해서만 미래를 열 수 있다”고 호소하는 혁명적이고 노동계급적인 세력을 현장에서 건설하기 위해 박차를 가해야 한다. 모든 혁명적 노동자들은 혁명적 노동자계급 정책과 노선을 현장의 계급투쟁에 기반해 집행해 나가야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와 맞장을 뜰 수 있는 위력적인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의 소중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최영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