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적 위기에 대처하는 노동자의 요구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까지 번지기 시작하면서 자본주의체제는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기의 진앙지인 미국에서는 9월에 15만9천개의 일자리가 감소하는 등 실업률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소비위축도 그만큼 빨라질 것이다. 이미 9월 미국 내 자동차 판매량은 8월에 비해 24% 감소한 96만대로 떨어졌다고 한다. 경기위축을 의미하는 제조업 지수도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자본주의는 실물경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할 적절한 조치들을 마련할 수 있을까?
자본가들의 사회주의?
바닥으로 떨어진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를 만회하기 위해서 “사회주의 정책 아니냐?”는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취해진 조치들은 많이 알려져 있다. 미 의회가 통과시킨 구제금융 7,000억 달러, 유로존 15개국의 국제공조와 구제금융 2조3,000억 달러, 은행 간 자금조달에 대한 정부의 보증, 은행들에 대한 부분적 국유화 조치, 지급보증, 유동성 확대를 위한 추가조치 등. 그러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이 조치들이 금융위기를 ‘완화’시킬 수는 있어도 실물경제의 재생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며, 현재의 위기규모가 예상보다 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와 같은 공적자금 투입과정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 나라에서 시작된 부동산 가격 폭락이 세계경제의 근간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는데도, 몰락하는 자본주의는 그것을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 작은 사건조차도 그 충격의 규모는 전 세계 자본가들의 공동의 대응을 불러일으킬 만큼 빠르게 확대되었다는 사실, 공동의 대응에도 불구하고 이미 노쇠한 자본주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는 없다는 사실, 현존하는 사회적 생산수단과 재화들이 한 줌 자본가들의 소유가 아니라 노동자계급 공동의 사회적 재산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대안 없는 자본주의
자본가들의 해결책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은 노동자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을 대대적으로 도입하고, 정리해고를 통해 실업자를 양산하면서 내수 경기가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것이 ‘이성을 잃은’ 자본주의체제의 현실이다. 물가폭등을 잡지 못하고 노동자들에게 임금인상 자제를 촉구하면서 실물경제가 회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자본주의의 현실이다.
이와 같은 자본주의 체제의 걷잡을 수 없는 몰락은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이나 투기 전문가인 조지 소로스가 주장한 ‘자본주의의 한 정책의 실패’ 때문이 결코 아니다.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다. 자본가들은 이 진실을 어떻게든 감추려고 한다. 그들은 단지 때로는 ‘시장의 실패’를 말하고, 때로는 ‘정부의 실패’를 말하면서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할 뿐이다.
이렇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체제의 모순은 점차 확대되고,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는 하락해 갈 것이다. 위기가 본격화되면 될수록, 자신의 손실을 노동자대중에게 철저히 전가하는 방식으로만 생존대책을 찾는 자본가체제의 본성 또한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고통은 너희 자본가들이 감내하라!
자본가들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앞으로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고통의 감내 후에도 위기가 극복되지 않는다면, 아니 지금의 자본주의 위기와 모순은 사회주의 말고 다른 방법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라면, 사회주의로 나아가지 말아야할 이유가 있는가!
경제위기의 책임은 자본주의 자체에 있다. 경제위기로 인한 노동자민중의 파탄난 삶을 자본가체제가 책임져야 한다. 다음과 같은 노동자계급의 최소한의 요구조차 수용할 수 없는 자본주의라면 노동자계급은 이 사회의 운영권을 더 이상 자본가계급에게 맡겨 놓을 수 없다.
- 고용안정을 보장하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이 대선 때마다 단골로 나오는 것은 표를 행사하는 국민이 매일매일 피부로 느끼고 있는 전 사회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자본가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알고는 있지만 해결할 의지는 없다. “주 30시간 노동,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자”는 노동자의 요구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실업자들과 함께 어깨 걸고 자본가정부에 맞서 투쟁하는 제1의 요구일 것이다.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문제를 국가는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정리해고에 맞서 고용 불안을 해소하고 노동자 단결을 강화하기 위해 ‘해고금지법 도입’을 걸고 투쟁하기도 했다.
- 비정규직의 완전한 철폐!
취업노동자의 60%를 넘어서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고용안정 보장 요구는 곧 ‘완전한 정규직화 쟁취’와 ‘노동기본권 보장’이다. 비정규직의 고통을 양산하는 파견법은 몇 가지 손질한다고 개선될만한 법이 아니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모든 악법의 폐지”를 주장하자. 비정규직 도입을 ‘경제위기 해결책’으로 생각하고 있는 자본가정부에게 당당하게 선언해야 한다. “경제위기의 책임을 당신들이 져라.”
- 생활안정 보장하라!
대출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내집 마련, 노동자의 월급으로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와 교육비에 대한 해결책은 단 하나다. 무상주거, 무상의료, 무상교육. 한국의 주택보급역량은 이미 100%를 넘었다. 1가구 1주택을 초과하는 물량과 미분양 아파트들을 무상으로 임대해야한다. 제약회사와 병원자본과 보험사들이 갈취한 막대한 이익을 재원으로 국가가 책임지는 무상의료와 함께, 무상교육은 가장 기초적인 요구다. 한편 생활임금 쟁취요구와 함께 물가폭등 시 물가임금연동제 또한 노동자의 삶을 보호하는 당연한 요구다.
- 투기자금 몰수! 노동자통제 하에 은행 및 국가기간산업 국유화!
이번 경제위기 사태에서 드러나듯 이윤율의 전반적인 하락 속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기자본은 유가폭등, 물가폭등, 환율폭등을 유발시켰고, 노동자의 삶을 위협했다. 영업비밀을 폐지하고 투기자본을 몰수해 전체 민중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또한 공적자금의 대대적인 투입에서 볼 수 있듯이 은행 및 국가기간산업을 포함한 주요 생산수단들을 국유화시켜 사회적 통제 하에 두어야만 무정부적 경제혼란과 파탄의 위협을 제거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국유화 조치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반드시 ‘노동자들의 통제권’을 쟁취해야 한다. ‘자본주의국가’를 통해 자본가들이 통제권을 발휘하는 한, 백만 번 국유화를 시키더라도 결국은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은행 및 국가기간산업이 활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상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