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행동강령, 그 세 번째 해설
재벌 대기업 몰수 ․ 국유화!
2006년 2월, 삼성재벌 이건희 회장이 막대한 금액의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자녀들에게 불법적으로 넘긴 사건으로 사회적 분노가 들끓자, “개인 재산으로 8천억 규모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에는, 현대·기아차 정몽구 회장이 1천억대의 비자금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사회공헌기금으로 개인 재산 1조원을 내놓겠다”며 실형 선고를 면해달라고 재판부에 노골적인 로비를 벌였다.
재벌의 거대한 부의 원천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들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가, 돈으로 면죄부를 사려는 의도 아니었는가 하는 문제와 함께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보자. “8천억, 1조에 달하는 개인 재산을 선심 쓰듯 내놓겠다는 그들의 재산, 재벌의 거대한 몸집, 엄청난 규모의 비자금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언론에서는 “분식회계로 몇 조원대의 비자금을 만들었다”, “편법증여·상속으로 세습지배를 유지한다”, “계열사 상호출자로 총수 1인이 지배한다” 등 어려운 말들로 설명한다. 그렇지만 상식적으로 한번 생각해보자. 회계조작과 숫자놀음으로 없던 돈이 하늘에서 떨어진단 말인가? 노동자들의 노동이 아니고서 어디서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진단 말인가?
우리는 지난 번 <가자! 노동해방> 준비2호에서 그 답을 얘기한 바 있다. 그것은 회계조작이 아니라 재벌기업에 직접 고용된 1백만 안팎의 노동자들, 아울러 재벌을 중심으로 하청계열화된 중소기업 수백만 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한 결과이다. 재벌들이 돈벼락을 맞는 이면에 하청 중소기업에 대한 피 말리는 원가절감 강요가 존재하고, 하청기업은 그 부담을 다시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며 마른 수건도 쥐어짜도록 몰아붙이며 초과착취를 진행하며, 이렇게 남긴 수익으로 키운 회사를 증시에 상장해 다시 수천억 대의 차익을 남긴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얘기이다.
회계조작과 상호출자·편법증여는, 노동을 착취한 막대한 부를 놓고 일부는 총수 일가의 재산으로, 일부는 관료들을 매수하는 비자금으로, 일부는 거대 기업집단을 소유하기 위한 주식으로 나누는 과정일 뿐이다. 재벌들의 회계장부와 과세내역, 차명계좌의 소수점 하나까지 대중들에게 낱낱이 공개된다면 이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임을, 노동자들은 경험적으로,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가자! 노동해방> 준비2호 4~5면 및 8면 참조)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음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재벌이 가진 거대한 부의 원천이 결국 전체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하여 집중시킨 결과라면, 당연히 우리들의 투쟁을 통해 노동계급의 집단적 소유로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대중행동강령에 담긴 “재벌 대기업 몰수·국유화” 요구는 바로 이런 상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더욱 고도화되는 재벌독점과 집중
1998년 IMF 경제공황을 전후로 30대 재벌 중 16개 재벌이 파산했고, 경제공황의 주범으로 재벌이 지목되며 한때 ‘재벌개혁’이 도마 위에 올랐으나, 정반대로 파산한 재벌기업을 또다른 재벌들이 먹어치우며 몸집은 더욱 불어나 재벌독주가 되레 강화되었다.
이제 한국 재벌들은 독점과 초과착취를 통해 순이익 1조원을 넘나들고 있다.(표 참조) 한국 1,000대 기업의 사내유보, 즉 순이익 중에서 주식배당·신규투자를 하고도 남아서 축적해놓은 돈이 무려 360조원에 달한다. 지난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은 ‘금산분리 완화’, ‘공기업 민영화’, 즉 이제 재벌들도 은행과 공기업을 소유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민간산업·금융·공공부문 모두 재벌의 손아귀에 떨어질 전망이다.
순이익 1조원을 넘나드는 한국의 거대 자본들기업2005년2006년기업2005년2006년삼성전자7조6,402억7조9,260억롯데쇼핑5,462억7,398억현대자동차2조3,146억1조5,260억S-Oil6,549억7,586억한국전력2조4,486억2조0,705억GS칼텍스6,209억7,286억SK1조6,864억1조3,940억현대중공업1,833억7,128억SK텔레콤1조8,713억1조4,466억신세계4,378억4,734억KT9,983억1조2,334억현대건설3,265억3,976억포스코4조0,129억3조2,066억한화4,621억4,931억하이닉스1조8,174억2조0,123억금호아시아나5,079억9,901억현대모비스8,312억6,867억LG전자7,028억2,127억
게다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전면화 시기를 거치며 삼성·현대 등 거대 재벌은 세계를 누비는 초국적 자본으로 성장해, 이제 한국에 웬만한 경제위기가 와도 끄떡없는 수준으로 커버렸다. 반대로, 재벌의 위기는 곧바로 거대한 경제공황으로 이어질 정도로 독점과 집중은 극에 달했다. 물론 그 공황은 IMF 경제공황에서 경험했듯이, 고통은 온전히 노동자·민중이 떠안을 것이고 재벌들은 성공적으로 살아남아 더욱 몸집을 불릴 것이다.
한국 사회를 1년이라도 살아본 사람이라면 재벌에 대한 특단의 조처 없이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한 결과를 소수 재벌이 독점하고, 그들의 탐욕이 낳게 될 경제공황의 뒷돈은 모조리 노동자들이 대야 하는 야만적 체제! 이 야만을 걷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재벌 몰수·국유화를 통해 노동계급의 이해를 실현할 경제체제로 나아가는 것이다.
재벌 몰수·국유화 - 노동해방으로 나아가기 위한 관제고지
민주노동당은 강령에서 “재벌을 해체하고 민주적 참여기업을 확산한다”는 목표 아래 “총수 일족의 지분을 공적 기금을 활용해 강제로 유상 환수하여 재벌을 해체하고, 해당 기업의 노동자를 비롯해 다수 국민들이 소유에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 참여기업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동계급을 착취한 결과물을 또다시 노동계급의 세금인 공적 기금으로 유상 환수한다니? 이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을 뿐더러, 재벌의 엄청난 저항을 단숨에 제압할 수단을 만들어내지 않는 한, 민주노동당이 집권하여 이를 실행한다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대중투쟁을 통한 재벌 몰수·국유화는 무상 몰수임에도 불구하고 유상 환수보다 더욱 실현 가능성이 높다. 어제는 현대의 정몽구가 폭로되었고 오늘은 삼성의 이건희가 폭로되는 등 재벌에 대한 국민의 반감은 상당한 수준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재벌의 엄청난 부의 원천이 바로 수백만 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한 결과라는 인식이 늘어날수록, 일상적인 대중투쟁을 재벌 몰수 투쟁으로 상승시키는 작업은 힘을 얻게 될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재벌을 정점으로 수직계열화된 하청구조의 밑바닥, 즉 하청노동자들과 일용직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스스로를 조직하여 먹이사슬의 꼭대기인 재벌에게 투쟁의 칼끝을 맞추고 있기에, 대중투쟁을 통한 재벌 몰수·국유화 투쟁은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또한 360조에 달하는 1,000대 기업 사내유보금과 수십조에 달하는 총수 일가 재산은, 몰수·국유화를 통해 새로운 경제건설의 유용한 자금으로 쓰일 것이다.
역사 속에서도 해방 이후 친일파 척결을 요구하는 민중의 투쟁이 ‘친일파 재산몰수’로 나타났고, 프랑스 르노 자본가들이 독일 점령기간 나치에 적극 협력했던 것에 대한 노동계급의 분노와 투쟁이 2차대전 직후 ‘르노자동차 무상몰수·국유화’로 이어진 바 있다.
재벌들은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초과착취를 통해 매일매일 자신의 힘을 키우고 있기 때문에, 몰수·국유화를 통해 그 힘의 원천을 끊어내는 것은 노동해방과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관제고지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재벌은 몰수·국유화 요구에 필사적으로 맞서게 될 것인데, 그들의 저항을 제압하는 것 역시 대중의 분노와 투쟁이라는 수단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은행·국가기간산업 국유화, 그리고 국가권력
IMF를 거치면서 은행 역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중소·지방은행이 대은행으로 합병되면서 소수 은행자본의 손에 집중되었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은행들은 29개에서 11개로 통폐합되었고 대형화했다. 이 소수의 은행 자본가들이 산업 자본가들, 특히 재벌과 유착해 한국 노동자들의 피땀을 쥐어짜는 데 앞장서고 있고, 첨예한 경쟁과 과잉생산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제 이명박 정권의 등장으로 ‘금산분리 완화’가 실행되면 아예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재벌과 은행이 한 몸이 되어 노동자들을 쥐어짜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김대중과 노무현이 유지했던 ‘금산분리’가 대안인가? 그렇지 않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하에서도 재벌과 은행은 깊이 결탁했으며, 이명박은 단지 이를 제도화하자는 것뿐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요구는 ‘금산분리’도 ‘금산분리 완화’도 아닌 재벌과 은행의 몰수·국유화를 통해 노동계급과 민중의 이해를 실현하는 경제체제를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은행의 몰수가 은행 저축의 몰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노동계급의 통제라는 수단이 가미된다면 국영은행은 수많은 민간은행들보다 소액 예금자들에게 훨씬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그러한 국영은행만이 농민, 소매상인, 소규모 도매상인들에게 유리한, 즉 값싼 대부를 해줄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전체 경제, 특히 대규모 산업과 수송을 단 하나의 금융기관이 지원할 경우 노동자를 비롯한 근로인민의 중요한 이해들이 더욱 증진될 것이라는 점이다.
철도·전기·통신·가스·수도 등 국가기간산업 역시 국가가 소유해서 운영해야 한다. 철도·발전·가스·수도의 민영화를 저지하고, 통신이나 제철처럼 이미 사유화된 공기업들은 다시 국유화해야 한다.
물론 몇몇 기간산업은 여전히 국가 소유로 남아있으며,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착취와 억압이 악랄하게 자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국영기업에서조차 ‘노동계급과 민중의 필요를 위한 생산’이 아니라 ‘이윤을 위한 생산’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국영기업을 소유·운영하는 국가권력의 성격이 달라진다면, 국가기간산업 국유화는 은행, 재벌 등의 국유화와 마찬가지로 대다수 노동계급과 전체 민중의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한 전제라는 점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몰수·국유화 요구는 필연적으로 어느 계급의 국가권력이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자본가 권력이냐, 노동자 권력이냐!
아울러 우리는 몰수·국유화라는 조치가, 권력의 주체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대중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할 만큼 순진하지 않다. 몰수·국유화가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한 경제운영의 토대가 될 수 있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이 자본가의 수중에서 노동자의 수중으로 넘어와야 한다는 것, 이 점을 또한 놓쳐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