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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자운동 : 최규진_노동절을 통해 본 노동자 투쟁의 역사
 정책위  | 2008·02·10 12:59 | HIT : 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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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절을 통해본 노동자 투쟁의 역사

      
                                                         최 규진 (사회실천 연구소)


    목차

    1. 노동자,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2.  노동절, 물 건너온 다른 나라 역사인가.
    3.  식민지 시대, 노동자 투쟁과 메이데이
    4.  ‘해방’에서 분단으로 가는 길목에 선, 메이데이
    5.  비틀린 노동절
    6.  빼앗긴 노동절, 부끄러운 이름 ‘근로자’
    7.  되찾은 메이데이, 어디로 가야하나.



    1. 노동자,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1. 노동자, 그들은 누구인가

    o  사회 발전의 각 단계마다 노동을 해서 부를 생산하는 피지배계급과 그 부를 소유· 통제하는 지배계급이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면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모두가 변화를 겪었다.

    ① 고대 노예사회: 노예는 지배계급의 사유 재산이었다. 노예 소유주는 마치 그가 닭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닭이 생산해 내는 달걀을 소유하는 것과 똑 같은 식으로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예가 생산해내는 재화를 소유했다.

    ② 중세 봉건사회: 농노는 자기 토지를 보유하고 거기서 생산되는 것을 소유했다. 그러나 토지를 보유하게된 대가로 봉건 영주가 소유한 토지(영지)에서 보통 주마다 사흘을 일해주어야만 했다. 만약 농노가 영주를 위해 일하기를 거부한다면, 영주는 농노를 채찍질 투옥 또는 더 가혹한 방법으로 벌할 수 있었다.  

    ③ 현대 자본주의
    고용주는 노동자 몸을 소유하지도 않으며, 노동자를 육체적으로 처벌할 권리가 없다. 그러나 고용주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다. 노동자는 이중의 의미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다. 첫째는 봉건적 신분제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다. 둘째로는 자본가가 가진 생산 수단을 갖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그가 받는 임금을 뺀 모든 부는 이윤이나 이자나 지대의 형태로 자본가에게 돌아간다.  

    o 옛날과 오늘의 지배와 피지배 : “모든 것이 다른데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2. 노동자, 무엇을 생각하는가.

    ① “내 삶에서 복잡한 이데올로기나 정치의식 따위는 필요 없어 !”
    ② “시간이 곧 돈이다.”
    ③ “갑자기 찾아온 중년, 부킹만이 희망이다”( 부산 어느 나이트클럽 선전)
    ④ ‘웰빙’과 ‘부자 아빠되기’ 열풍  

    3. 노동자들이 왜 노동자 의식을 갖기 힘들까  

    “사람들이 메트릭스에 너무 길들여져, 매트릭스를 지키려해”(영화 󰡔메트릭스󰡕)

    ① “지배 계급 사상이 지배적이다.” 또 과거는 오래 이어진다.
    ② “미래를 지배하려는 사람은 과거도 지배한다.”

    4.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를 위한 국가 기념일이 있는가?  
      
    o “어떤 이데올로기로 어떻게 역사를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것이 국가 기념일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 국가 기념일은 역사 해석, 또는 집단적 기억과 관련된 문제이다

    보기> 해방 뒤 좌익과 우익의 기념일 대결

    ① 좌익의 기념일
    1946년 한 해 동안 좌익이 기념했던 기념일은 사회주의운동 관련이 사건이었다. 좌익은 조선공산당 창립기념일(4월 17일), 메이데이(5월 1일), 소련이 독일에 승리한 5·8전승일(5월 8일), “1930년 간도에서 동포가 공산당의 지도로 무기를 들고 싸웠던” 5·30간도 항쟁 기념일(5월 30일), 6·10만세운동(6월 10일), 학생의 날(11월 3일), 러시아 혁명 기념일(11월 17일) 등을 기념했다. 좌익의 기념일에서 식민지 시대 6·10만세 운동과 ‘광주학생운동’이 포함된 것은 그 운동을 좌익이 앞장서 이끌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② 우익의 기념일
    우익은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뒷받침 하려고 임시정부와 관련된 기념일을 많이 치렀다. 그들은 임시정부수립기념일(4월 13일)과 지난날 임시정부에서 치렀던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 밖에 우익은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이준 등 특정 인물에 관련된 날에 기념식을 했다. 좌익이 사건을 중심으로 기념 했던 것에 견주어 우익은 인물을 중심으로 기념했다.

    5. 노동자가 외쳤던 뜨거운 목소리 셋

    ① “우리도 햇빛을 보고 싶고, 꽃 냄새도 맡아보고 싶다”
    ② “인간답게 살고 싶다”
    ③ “보라 우리가 공장을 멈추었다. 우리가 세계를 멈추었다”





    2.  노동절, 물 건너온 다른 나라 역사인가.

    어떤 사람은 노동절을 두고 “물 건너 들어온 외국노동자들의 투쟁의 역사를 책갈피 속에서 배웠을 따름이지 우리들 선배 노동자들의 직접 체험을 통해 얻어나가는 과정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런가?  

    1) ‘물 건너온’ 노동절

    미국노동총연맹은 하루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하고 노동일을 줄이기 위해 1886년 5월 1일에 총파업을 단행하기로 결의했다. 숱한 노동자들이 시가행진과 파업에 참가했다. 노동자들은 횃불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시위를 벌였다.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드디어 잠에서 깨어났노라.  그들의 행군을 보라.
    모든 압제자들이 떨고 있구나. 저들의 권력도 사라졌구나
    그대 노동기사들이여 요새를 향하여. 돌진하여라 승리를 위해
    압제자의 법 따위는 쓸어버리고 만인의 평등한 권리를 위해

    노동운동을 탄압하려고 날뛰던 경찰이 5월 3일 파업 농성하고 있던 ‘멕코믹 농기계 공장’노동자에게 총을 쏘아 여섯 명을 죽였다. 이것을 항의하는 ‘헤이마킷 광장 집회’에 폭탄이 터졌다. 이 사건은 자본가와 경찰이 짝짜꿍이되어 만든 추악한 음모였다. 마침내 모든 것을 노동자에게 뒤집어 씌워 스파이스를 비롯한 노동운동 지도자 몇 명에게 교수형을 내렸다.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그렇다.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앞에서, 뒤에서 곳곳에서 끊일 줄 모르고 불꽃은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들불이다.······모든 준비는 끝났다. 어서 사형집행인을 불러라”(스파이스)  


    이 ‘헤이마킷 사건’이 1889년 제2인터내셔날 창립대회에 보고되었다. 여기서 1890년 5월 1일부터 8시간 노동제를 위해 국제적인 시위를 조직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노동절이 시작되었다.

    참고1)  인터내셔널

    ① 제1인터내셔널(1864~1876)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자신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투쟁은 계급특권과 독점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평등의 권리· 의무와 모든 계급지배의 폐지를 위한 투쟁이다.”(「창립 선언」)

    ② 제2인터내셔널(1889~1914)과 메이데이

    제 2인터내셔날 창립대회는 1889년 7월 14일 프랑스대혁명 100주년 기념일에 파리에서 열렸다. 독일 마르크스주의자가 개최했고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가 조직했다.  이 대회에서 5월 1일을 국제노동운동의 시위의 날로 정했다. 프랑스 대의원 라비뉴가 제출한 이 제안은 1890년 5월 1일에 8시간 노동일을 위한 총파업을 일으키려 했던 미국노동총동맹의 제안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③ 제3인터내셔널(: 코민테른1919~1943)

    “제1인터내셔널이 미래의 발전방향을 예시하고 나아갈 길을 가리켰다면 그리고 제2인터내셔날이 수백만 노동자를 모으고 조직했다면 제3 인터내셔널은 공공연한 대중행동의 인터내셔널, 혁명적 실천의 인터내셔날, 활동하는 인터내셔널이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선언」)



      3) 메이데이, 왜 다시 짚어보는가

    ① 메이데이,  그 해 노동운동을 비추는 거울.
    ② “어제의 기억은 오늘의 나를 일깨운다.”(영화 메멘토)



    3.  식민지 시대, 노동자 투쟁과 메이데이  

    1. 식민지 시대 노동운동 흐름  

    1) 1910년대 초보적 노동운동

    ① 1910년대 초보적 노동운동
    1910년대 노동자들은 아직 적었고, 사회적 힘도 약했지만, 파업 투쟁을 벌이고 초보적인 노동자 단체를 만들어 싸우면서 조금씩 자기 모습을 드러내었다.

    ② 1920년대 ‘조직의 시대’
    o 1920년 노동공제회
    o 1924년 노농총동맹 창립

        <노농총동맹 창립 총회 기념 사진>
        <노농총동맹 강령>
    ·우리는 노동계급을 해방하여 완전한 신사회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
    ·우리는 단결의 위력으로 최후의 승리를 얻을 때까지
    철저하게 자본가 계급과 투쟁할 것임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복리증진과 경제적 향상을 꾀함.
              



    o <표 2> 1920년대 전국노동단체수

    ③ 1930년대 혁명적 노동조합운동
    ----“투쟁을 통한 조직 건설, 조직을 통한 투쟁 건설”

    o 온 나라에서 일어났던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은 일제의 대륙병참기지가 되어 가던 흥남` 함흥` 원산 일대에서 가장 활발했다. 1931년에서 1935년에 걸쳐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을 하다가 일제경찰에 체포된 사람의 수는 1759명이나 되었다
    o 혁명적 노동조합이란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노동자로 만든 노동자 조직’을 뜻한다.

    ㅇ<표 4> 사상범 검거상황


    o 혁명적 노동조합운동과 첫 고공농성, 강주룡

      
    <을밀대와 평원고무노동자 강주룡>    <을밀대 전경, 1920년)

    우리는 49명 우리 파업단의 임금인하를 크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결국은 평양의 2,300 명 고무공장 직공의 임금감하의 원인이 될 것이므로 우리는 죽기로서 반대하려는 것입니다. 2,300명 우리 동무의 살이 깎이지 않기 위하여 내 한 몸둥이가 죽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다. 내가 배워서 아는 것 중에 대중을 위해서는 (중략) 명예스러운 일이라는 것이 가장 큰 지식입니다. 이래서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이 지붕 위에 올라왔습니다. 나는 평원고무사장이 이 앞에 와서 임금감하를 취소치 않으면 나는 자본가의(중략)하는 근로대중을 대표하여 죽음을 명예로 알뿐입니다. 그러하고 여러분, 나를 지붕에서 강제로 끌어낼 생각은 마십시오. 누구든지 이 지붕 위에 사다리를 대놓기만 하면 나는 곧 떨어져 죽을 뿐입니다(󰡔동광󰡕 1931년 7월호. 중략은 원 자료에도 빠진 것임)


    ④ 노동운동의 ‘잠복기’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주로 군수산업부문을 중심으로 벌어져 일제에 적잖은 타격을 주었다. 또한 노동자들은  태업과 집단탈주 등의 방법으로 투쟁하기도 했다


    2. 메이데이, 계급해방과 민족해방을 외치다


    1) 번지는 사회주의, 싹 트는 메이데이

    o “노동쟁의 소작 쟁의에 붉은 색이 돈다”(일제 관헌자료)
    o “거의 모든 파업과 소작쟁의 배후에는 사회주의자들이 있다”(일제 경찰의 보고문)
    o “독립운동이 실패를 거듭함으로써 초조해진 민중에게 사회주의운동은 일종의 자극과 광명을 주었다”(일제 관헌 자료)

    ① 우리나라는 1920년부터 노동자들이 이곳 곳에서 동맹 파업과 시위를 해서 노동절 행사를 치렀다.
    1923년에 들어와서 조선노동연맹회가 노동절 기념행사를 비로소 조직하였다. 일제는 이런 노동절 행사들을 대뜸 경찰을 풀어 탄압했다. 1924년 일이지만 노동절 때 서울 얼마나 살벌했는지 다음 기사를 보자.

    “시가에는 기마 순사의 발자취 소리가 요란하고 사상단체의 사무소 앞에는 사복형사가 지켜 서서 무엇인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면, 무산자는 소리없이 압박에 묻혀 있고 그 대신에 경관대가 메이 데이를 축하하는 듯하더라.”( 󰡔조선일보󰡕 1924년 5월 2일자)

      이렇게 탄압하는데도 해마다 5월 1일이 되면 기념식, 기념강연회, 기념야유회, 표어 붙이기, 전단뿌리기, 파업, 시위 등 여러 방법을 써서 노동절 투쟁을 했다.

    2) 활짝 핀 메이데이

    o 1920년대 후반기가 되면 노동운동이 더욱 고양되고 그와 함께 메이데이 기념투쟁도 더욱 활발해졌다.

    <표 3> 1920년대 노동쟁의 상황


    해마다 5월이 되면,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공장지대는 메이데이 기념행사를 봉쇄하려는 일제의 감시와 탄압으로 살벌했다.

    메이데이 만세!
    5월 1일은 우리 동지의 단결의 힘을 보이는 날이다.
    우리는 이날을 뜻있게 기념하자!
    만국 무산 대중아 단결하라!


    3) 혁명적 노동조합운동과 메이데이

    (1) 공장에 흩뿌려진 메이데이 격문

    o 가라 공장으로 광산으로 농촌으로 ----혁명적 노동조합활동가

    o 흥남 공장 지대에 뿌려진 메이데이 격문

    5·1 메이데이에 즈음하여 모든 무산 대중에게 알림
    친애하는 노동자 여러분, 자본가 착취에 대항하여 싸우는 계급투쟁에서 단결의 깃발인 5·1 메이데이가 왔다. 메이데이 행사에 참가하자! 정치적 총파업으로 5·1 메이데이를 맞이하자! 노동자 농민정부를 수립하자! 소비에트를 끝까지 사수하자!

    o '5`1 공동투쟁위원회‘


    (2) “메이데이 소리가 똥구멍으로 나오게 하리라”

    감옥에서도 노동절 투쟁을 했다. 강병철이라는 사람이 일제시대 감옥에서 벌인 노동절 투쟁을 뒤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1932년 즉 지금부터 16년전 메-데-를 나는 수백의 동지들과 함께 서대문 형무소에서 마지하게 되었다. 이날을 마지하기 한달 전부터 우리는 이날을 기념하기 위한 준비공작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 뒤 약속한 5월 1일에 “메이데이 만세 ! 조선 민족해방 만세 ! 무산계급 해방 만세 !”하는 소리를 ‘인왕산 꼭대기가 울리도록’ 힘있게 되풀이 했다. 화들짝 놀란 일제 간수놈들이 갇힌 사람들을 마구 때려 투쟁을 짓뭉개고 벌로 밥까지 주지 않았다. 나아가 “이놈들. 메이데이란 소리가 다시는 입으로 나오지 않고 똥구멍으로 나가게 하리라”는 말을 해대며 혹독하게 고문도 했다.(󰡔해방일보󰡕 1946년 5월 7일자 ).

    1920년대 후반~ 1930년대 초 메이데이 시위나 사회단체 모임에 「적기가」, 「메이데이가」, 「혁명가」를 부르며 시위를 하여 관계자들이 일제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 심심찮게 실렸다.

    혁명가

    1. 아- 혁명은 가까웠다. 오늘 내일 시기가 급박하다.
      일어나라 만국의 노동자 깨어나라 소작인이여 단결하라
    2. 놈들이 사는 기와집도 놈들이 입고 먹는 금의옥식도
      비행기 연극 자동차 상품도 모두 우리의 피땀으로 만들었다.
    3. 소작인은 일년 내내 잠못자고 못먹고 못입고 병들어
      사력을 다하여 생산한 곡식도 모두 놈들이 빼앗아간다.
    4. 나라와 나라의 전쟁도 자본가 놈들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 농민 무산대중의 꽃다운 생명을 빼앗아간다
    5. 이러한 착취와 강제 억압을 어찌 허락할가 어찌 하락할가
      우리는 피끓고 치떨린다 자유를 찾으러 나아가자
    6. 우리는 자유를 빼앗기고 우리는 살길 끊어져
      보아라 동지는 러시아에서 일찍이 혁명을 전취하였다.
    7. 먼저 감옥을 깨뜨리고 전선 전화를 절단하자
      철도 요소를 깨뜨리고 요새와 도시를 습격하자( 1930년대 초 정평농민조합에서 불렀던 노래)  


    4) 노동운동의 ‘잠복’과 메이데이

    o 제대로 숨도 쉴 수 없는 상태에서 드러내놓고 메이데이 기념투쟁을 하기 어려웠다.  
    o 1938년에 들어서면서 일제는 조선에서 메이데이가 사라지고 그날이 ‘근로일’로 바뀌었다고 선전했다.

    비상시국을 맞이하여 당국에서는 철저히 불온분자 소탕에 나서고 있는데········ 경무국 보고에 따르면 메이데이는커녕 총력 애국투쟁의 ‘근로일’이 되었다. 작년까지도 5월 1일이면 불온 삐라가 뿌려지는 일이 있었는데, 금년에는 이런 사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메이데이는 올해를 기하여 영구히 소멸되고 조선 전도는 총력애국의 열의에 불타고 있다.  










    4. ‘해방’에서 분단으로 가는 길목에 선, 메이데이


    1. 미군정기 변혁운동 진영의 움직임




    “우리 600명의 공원(工員) 뒤에는 3000여 명의 가족들의 목숨이 매어 달려있다. ```` 직장을 별안간 쫓겨나게 된 우리는 완전한 실업자이고``` 사활의 기로에 서있다.```` 해방은 누구를 위한 해방이고 독립은 누구를 위한 독립이냐? 노동자에게 직장을 빼앗고 빵을 주지 못하는 독립이라면 무슨 기쁨이 있고 무슨 의의가 있으랴”(1946년 2월 24일 군산종연조선회사 공원 일동)  



    2. ‘전평’(조선노동자전국평의회) 결성

    1945 11 5일 결성된 전국적 노동자 대중조직이다. 이 땅의 노동운동사에서  맨 처음 대중적 산업별 조직으로 역사 무대에 나타났다. 노동운동이 새로운 단계로 들어갔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전평 결성식, 1945년 11월>





    <표>  전평의 조직체계




    3.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대한노총)의 결성
    1946년 3월 10일 서울 시내 시천교당에 15개 직장에서 온 45명이 참석하여 결성했다. 그들은 노동조합 대표는 아니었으며 ‘청년운동’하던 사람이 많았다.

    4. 미군정의 노동정책과 전평

    ① 미군정은 사실상 단체행동(파업)을 불법화(군정법령 제 19호)
    ② 미군정청이 일본인 재산을 접수하고 관리인제도를 도입하여 실시함으로써 노동자대중의 자주관리운동을 부정했다
    ③ 미군정은 전평을 타도할 목적으로 우익진영을 조정하여 자주적 노동조합이 아닌 '반공어용조직'인 ‘대한독립촉성노동총동맹’(대한노총)을 결성(1946년 3월 10일)하도록 했다.
    ④ ‘민주주의적 노동조합’을 장려한다면서 전평의 노선과 방침을 부정했다
    ⑤ “정치 색을 띤 노동조합은 정당한 단체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담화문을 발표하여 전평을 완전히 불법화했다. (1947년 6월)




    2. ‘우리의 축제, 너희들의 기만’ ----1946, 1947년 노동절

      
    “우리 노동자는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고 몸서리가 치는 일제의 압박과 착취 속에서 죽음 같은 노동을 해왔다. 그러므로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여 미칠 듯한 희열의 춤을 너울너울 추었다. 이제부터는 사람다운 대우를 받을 것이고 생활도 안정되고 곧 향상되리라. ````` 그러나 다섯 달이 지난 오늘에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직장은 문을 닫고 쌀과 나무는 금보다도 더 귀해지고 오직 굶주림에 울며 추위에 떨고 있다.” (󰡔해방일보󰡕, 1946년 2월 19일자. 노동자 기고  「직업과 쌀, 나무를 다오」)

    1) ‘해방’ 뒤 첫 메이데이, 1946년 5월 1일

    ① 전평, 전국 메이데이 투쟁을 이끌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민족은 일제의 사슬에서 ‘해방’ 되었다. 하지만 일제가 이 땅에서 물러났다는 사실 말고는 민중들의 처지가 바뀐 것은 거의 없었다. 더구나 38선을 사이에 두고 미 소 두나라가 우리나라를 나누어 점령한 뒤부터 민족이 분단될 위험이 매우 커졌다. 또 미군이 점령한 38선 이남에서는 친일파가 다시 설치고 다니는 판이었다. 이러한 사태에 맞서 노동자들은 또다시 싸우는 길로 나섰다. 이때 노동절은 여러 요구조건을 내걸고 노동자들이 힘차게 단결 투쟁하는 중요한 날이었다.
      1946년 5월 1일, 노동자의 전국적 대중조직인 ‘조선노동자전국평의회’(전평)가 치밀하게 준비해서 노동절 기념식을 곳곳에서 치렀다. 서울에서는 서울운동장 야구장에 20만 노동자가 참가하여 기념식을 성대하게 열었다. 이때 전평이 내건 슬로건은 “산업은 건국의 기초, 노동자는 국가의 기초 !” “ 8시간 노동제 즉시 실시하라 !”, “최저 임금제 즉시 실시하라 !”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말라 !” 등이었다.(󰡔해방일보󰡕 1946년 5월 1일)

    󰡔메이데이 노래󰡕

    1. 들어라 만국의 노동자들아/ 우렁차게 들려오는 메이데이의/ 시위대가 행진하는 발자국 소리/ 미래를 고하는 고함소리를
    2. 오랜 압박과 착취 밑에서/ 신음하던 조선의 노동자들아/ 오늘은 만국의 노동자의 날/ 세계의 동무들과 발을 맞추자
    3. 압제 없는 세상을 건설키 위해/ 착취 없는 세상을 건설키 위해/ 강철같이 단결한 우리 노동자/ 붉은 깃발 진두에 나부낀다
    4. 완전 해방과 자주독립도/ 인민의 새나라 세우는 데도/ 정의로 싸우라 우리 노동자/ 정의로 싸우리라 삼천리 강산
    5. 인민의 적 물리치고 나아가는 곳/ 자유의 새세상 동터온다/ 지키자 메이데이 노동자들아/ 지키자 메이데이 노동자들아.

    ② 대한노총의 억지춘향      

    서울운동장 육상경기장에서는 “노자간의 친선을 기한다.”는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이 주최한 기념식이 있었다. 그들은 노동자 200여명과 우익 청년 800여명을 끌어모아 초라하게 기념식을 치렀다. 여기서 “ 세계 노동절은 8시간 슬로건에서 시작하였으나 대한의 노동자는 건국을 위해 8시간은 그만두고 10시간 20시간이라도 노동하겠다는 축사와 결의를 만장일치로 맹세하였다.”(한성일보,1946,5,3일자)

    2) 메이데이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1947년 5월 1일

      1946년 중반부터 미군정이 드러내놓고 노동자들을 탄압했다. 여기에 맞서 노동자들은 1946년 9월과 1947년 3월에 총파업을 벌였다. 이 파업 뒤 ‘전평’도 큰 타격을 받았다. 1947년 5월 1일 무렵에는 자유와 평화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찼던 1946년 노동절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노동절 준비위원회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반동들을 넘어뜨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발굽아래 짓밟혀 노예가 될 것이며 이기지 않으면 멸망을 당하는 결전의 때다”라는 비장한 각오로 노동절 기념식을 준비했다. 마침내 1947년 5월 1일 남산에 30만 군중이 모여 노동절 행사를 힘차게 열었다. “노동자의 투쟁의 날, 메이 데이 기념 만세 !” “메이데이 기념을 해고 테러 폭압 반대투쟁으로 !” “검거된 운동자를 즉시 석방하라 !” 등의 슬로건이 울려퍼졌다. ‘전평’은 이 노동절을 기회로 삼아 해고와 테러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자들의 사기와 투쟁의지를 복돋우고 미조직 노동자와 실업자까지 노동절 투쟁에 참여시켜 조직을 강화하려고 힘썼다. 이날 지방 곳곳에서는 기습시위가 벌어지기도 하고 경찰과 충돌해서 몇십명 사상자가 생기기도 했다. 한편 ‘대한노총’은 기념식을 서울 운동장에서 열었다. 여기서 ‘대한노총’은 자신의 지도자인 이승만과 그를 감싸고도는 미군정을 선전할 뿐이었다.


    5. 비틀린 노동절

      1948년 노동절은 남한에서 단독 선거를 실시하는 5월 10일을 열흘 앞둔 때였다. 미군정은 ‘전평’이 주최하는 노동절 행사를 허용하지 않았을 뿐더러 얼마 뒤 ‘전평’마저 불법단체로 낙인 찍었다. ‘대한노총’이 단독 선거를 지지하는 노동절 기념식을 치르는 것은 얼씨구 좋아라 하면서 말이다.
      1948년 남한 단독정부가 세워진 뒤부터 1957년까지 ‘대한 노총’이 노동절을 주관했다. 1949년과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952년을 빼고는 그럭저럭 노동절 행사를 치렀다. 노동절이라고 해봤자 대한노총이 파벌 싸움을 잠깐 멈추고 모두 단결해서 이승만에게 충성할 것을 다짐하거나 ‘북진통일’을 외치는 일이었다.


    6. 빼앗긴 노동절, 부끄러운 이름 ‘근로자’

    1) 바뀐 날짜

    허울 뿐인 노동절마저 1957년에 부서졌다. 이승만이 “메이데이는 공산 괴뢰 도당들이 선전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으니만치 반공하는 우리 대한의 노동자들이 경축할 수 있는 참된 명절이 제정되도록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다음해 ‘대한노총’은 자신들의 전신인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이 세워진 3월 10일을 노동절로 결정했다.

    참고) 대한 노총이 만든 「노동절의 노래」
    (1) 오늘은 노동절 우리들의 명절날/ 한마음 한뜻으로 동지들이 모였다
        내일은 새생활 행복을 위하여/ 뭉치어 나가자 힘찬 대열로
    (후렴) 자유대한 빛내는 우리는 노동자/ 노래하자 즐기자 우리의 노동절
    (2) 오늘은 노동절 우리들의 명절날/ 반공으로 단련된 동지들은 뭉쳤다.
        자유와 권리로 우리살림 꽃피워 더높은 승리의 탑을 세우자.

    2) 이름마저 빼앗기고


      
    1963년에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노동절이라는 이름마저 걷어치우면서 ‘근로자의 날’이 되었다.(1963년 4월 17일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노동절 이름을 ‘근로자의 날’로 바꾸었다). 노동자라는 말이 노동자 계급의 정치의식을 일깨울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노동절 이름과 날짜 그리고 참 뜻도 지워지면서 노동자에게는 더욱 무거운 사슬이 채워졌다.
    “혼탁한 먼지 속에 윙윙대는 기계소리를 들으며 어언 8년동안 공장생활하는 나 자신을 볼 때 남는 것은 병밖에 없다” (김경숙 일기)

    3) ‘근로자’ 그들은 누구였나

    일제 강점기에는 노동자, 노무자,  종업자,  근로자 등 여러 말을 섞어 쓰고 있다. 그러나 중일 전쟁 뒤에, 특히 1940년대에 들어서는 근로자라는 말을 주로 썼다. ‘근로’란 봉사하며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뜻했다. ‘근로자’란 ‘국가와 국민’을 강조하던 ‘일제 전시 파시즘 체제’의 말이었다.

    o 일요인데도 출근을 하였다. 내일이 신정이라 오늘 대치근무를 하는 것이다.`````우리 공장 건물 옆에 비닐로 지붕을 만들고 식탁은 75cm정도의 높이의 나무에 장판을 깔고 의자도 없이 양쪽으로 나란히 서서 밥을 먹어야 했다. 쌀보다 밀이 더 많이 섞인 밥과 지저분한 무 김치 이른바 백김치, 무청으로 끓인 국과 샘표 간장인지 하는 진간장 이것이 전부였다. 고춧가루는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고춧가루 값이 비싼 것이 또 한번 실감이 났다. 그런 밥을 먹자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우리 동료들을 볼 때 너무나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1978년 12월 31일 18살 여 미싱사 일기)    

    o 크게는 사장님과 공원으로 분리되지만 작게는 반장, 조장, 미싱사, 시다로 구분된다. 반장의 말에 시다가 무조건 복종하여야 하는 관습이라고나 할까? 뭐 하여튼 이러한 것들이 있다. 어디를 가든지 말이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으면 회사 내의 질서가 문란하다는 것이다. 질서가 문란해진단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비인간적인 것들이 질서를 바로 잡는단다 (18살미싱사의 1978년 일기. 󰡔비바람속에 피어난 꽃󰡕)




    참고) 노사협의회와 공장새마을 운동

    ① 노사협의회: 1960년대 후반에 제도화되어 이미 60% 넘게 설치했었다. 그러나 1973년 노동법 개정 뒤에 비로소 중요한 법적 지위를 획득하였다. 임금인상 작업환경개선, 그 밖의 ‘고충처리’와 같은 노동자들의 모든 요구는 노사협의회를 거쳐아만  하게 되었다. 처음에 법규에 따르기를 머뭇거렸던 것은 고용주와 자본가 단체는 차츰 그것의 효율성을 확신하게 됨에 따라 적극 추진해 나갔다.

    ② 공장 새마을운동: “종업원을 가족처럼, 공장일을 내 일처럼”
    유신체제는 공장새마을운동을 추진하는 것을 계기로 노동현장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유신체제는 이 과정에서 농촌의 근면성과 도시의 사치, 소비를 대비시키는 전략을 구상하였는데, 이것의 핵심 목표는 노동자 통제였다.
    1973년 석유파동 뒤에 농촌중심의 새마을운동을 산업부문으로 확대했다. 더욱 높은 생산성과 더 낮은 임금을 유지시키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회사는 가족과 같은 공동운명체이며 이때 고용주와 피고용자는 부자관계였다. 공장새마을 운동은 이데올로기 교화운동이었으며, 노조를 기업구조의 일부로 만들어 산업노동자를 통합시키려는 것이었다.


    7.  되찾은 메이데이, 어디로 가야하나


    1. 되찾은 메이데이

    구로동맹파업 때인 1985년부터 노동절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노동운동이 전체 운동을 이끌 정도로 커가면서 노동절 이름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더욱 드세었다. 드디어 1989년 4월 30일에는 ‘메이데이 100회 기념 한국노동자대회’를 치르면서 정부와 정면 충돌하기도 했다.

    2. 어디로 가야하나

    1. ‘국제주의’, 그 고리는 어디인가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는 날만도 아니고 특별한 나라에서나 기념해야 할 날은 더욱 아니다. 노동절은 모든 노동자가 힘을 합쳐 여러 요구들을 내걸고 싸우는 가운데 국제주의를 확인하는 날이다. 그래서 “전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는 말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날이다.


    2.  노동절,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움켜쥐어 현실을 돌파하라”  


    822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강령연구] 코민테른 1차 대회 주요 문서 08·01·28
    821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강령연구] 코민테른 2차 대회 주요 문서 08·01·28
    820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강령연구] 코민테른 3차 대회 주요 문서 08·01·28
    819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강령연구] 코민테른 4차 대회 주요 문서 08·01·28
    818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_≪노동조합 파괴자의 양심선언≫ 마틴 J. 레빗, 08·02·02
    817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노해연_≪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박노자 08·02·02
    816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_우리 사이의 연애의 법칙 0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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