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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는 왜 싸우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한통 계약직, 린나이 코리아 비정규직, 캐리어 사내하청, 기아 사내하청, 이랜드, 롯데호텔, 학습지 교사 노조들, 골프장 캐디 노조들…….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입이 달린 사람이라면 모두가 얘기하는 주제이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답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왜 싸울 수밖에 없었는가? 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은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가? 과연 어디에 비정규직 노동자투쟁의 희망이 있는가?
1. 비정규직 노동자는 왜 싸우는가?
먼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계약해지(정리해고)” 때문에 싸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고용이 훨씬 불안정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운데는 하루 계약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에서부터 3개월, 6개월, 1년, 2년 등으로 계약하는 임시직, 계약직 노동자들이 많다. 이들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시 계약을 맺고 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불투명하다. 단적인 예로 일용직 노동자들은 새벽 4시-6시에 인력시장에 나가 일거리를 찾아보지만 일손을 쓸 자본가가 나타나지 않으면 허탕칠 수밖에 없다. 특히, 건설현장 일이 현저히 줄어드는 겨울철은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지옥’과도 같은 계절이다. 몇백만에 이르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겨울철에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가 없어 그 동안 조금 모아둔 것으로 겨울을 나든지, 아니면 빚을 내서 겨우 생계를 꾸려가야 하며, 이도저도 안 되면 여러 끼니를 굶어야 한다.
임시직, 계약직 노동자들의 경우 회사가 잘 나갈 때는 계약이 갱신되지만, 회사가 조금이라도 위기에 처하면 ‘계약 해지’라는 합법적 방식으로 하루아침에 짤려나가야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호황과 불황이 반복된다. 특히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호황은 극히 짧으며, 오랫동안의 만성적 불황과 파국적인 공황이 계속된다. 이런 조건에서 자본가들은 가능한 한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여 호황기에는 마구 부려먹다가 불황기, 공황기에 쉽게 내치려고 한다.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한국 자본가들은 수년 동안 비정규직을 계약해지(해고)했으며, 정규직을 비정규직화하거나 정리해고했고, 짤리지 않은 노동자들에게는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강도를 높여왔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 7000명이 2000년 12월 31일을 계기로 한꺼번에 ‘계약해지’당한 것은 대표적인 경우이다. 98년 현대자동차에서는 1만명 가량의 비정규직을 해고한 뒤, 정규직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2001년 대우자동차에서는 수천명의 비정규직을 내쫓은 뒤 1750명의 정규직을 정리해고했다. 그리고, 지금 기아자동차에서는 12월 말에 하청 노동자 400명을, 그리고 내년 봄에 600명을 ‘계약해지’ 방식으로 길거리로 내쫓겠다고 하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가들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단물을 다 빨아먹고 언제든지 뱉을 수 있는 껌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계약해지”, “정리해고”는 비정규직 노조들이 출범하거나 투쟁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어 왔다. 얼마전 기아자동자 광주공장 사내하청 노조가 출범하여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도 계약해지가 눈앞으로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나 캐리어 사내하청 노조도 대량 계약해지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출범했으며, 그런 상황이었기에 일시적이나마 대중적인 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린나이 코리아 비정규직 노조도 계약해지가 자행된 뒤 투쟁이 본격화됐다. 이런 점들로 볼 때, “계약해지”, “정리해고”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싸우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싸우는 이유는 거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똑같은 일을 하고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1/3이나 1/2(보통의 경우), 많아야 2/3 정도의 임금만을 받는다. 아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더럽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형편없는 임금을 받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의료보험, 국민연금 등 4대 사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월차 휴가, 생리 휴가 등 근로기준법 상의 아주 기초적인 혜택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보다도 훨씬 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거의 매일 잔업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일요일 특근도 거의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법적으로 의무조항이 아닌 일요일 특근을 잘 하지 않았다고 해서 해고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보다 산재 사고를 많이 당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밤늦게까지 일하고,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일하며 힘들고 험한 일을 하기에 체력 소모가 어마어마하다. 음주 운전만큼 위험한 것이 과로 운전이며, 음주 운전이 살인 행위라면 과로 운전도 살인 행위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과로 운전(즉 과로 상태에서 일하는 것)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다. 과로 작업이라는 잔인한 살인 행위를 자본가들은 날마다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본가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산재를 당하면 “노동자의 부주의” 때문이었다며, 모든 책임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돌리기에 바쁘다. 한편, 비정규직 산재 사고가 빈발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자본가들이 작업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년씩 작업을 해온 정규직 숙련 노동자들일지라도 과로 상태에서는 산재를 당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막 입사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작업 교육도 거의 받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될 경우 공장의 모든 곳에서 크고작은 산재사고를 당할 것임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심지어는, 한 번도 그 일을 해보지 못했으며 아무 교육도 받지 않은 일용직 노동자들을 위험한 작업 현장에 투입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들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하나뿐인 목숨을 지켜내기도 쉽지 않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는 임시직, 계약직,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레미콘 노동자 등의 경우는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이들은 현행 법으로는 ‘개인사업자’이다. 그러나 말만 좋아 ‘개인사업자’이지 실제로는 가진 것은 몸뚱아리밖에 없으며,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지휘통제받으면서 노동해야만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노동자이다. 이들이 다른 노동자들과 다른 점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들은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며, 4대 사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고, 노조를 결성해 투쟁할 수 있는 권리조차 박탈당한다. 그래서, 이들은 노조를 결성하더라도 상당기간 ‘노조의 합법성’을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그리고, 파업을 할 경우 불법파업으로 내몰려 강한 탄압을 감수해야 한다. 어떤 비정규직 노동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들의 고통과 비애를 얘기하고 있다.
“생활설계사(보험설계사)로 10, 20년 꼬박 일한 사람도 고정적으로 받는 임금은 정규직의 반도 되지 않았다. 각종 사내 복지혜택도 비정규직에게는 언제나 ‘예외’였다. “정말 비참하더군요. 생각해 보세요. 한 달 내내 열심히 고객과 만나서 보험계약을 하면 뭐 합니까. 회사에서 그만두라고 해도 부당해고로 고소조차 하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우리같은 비정규직은 파리목숨이란 말입니다.”…고씨는 요즘 한달에 1백만원 정도를 번다고 한다. 그 1백만원이 고씨의 네 식구를 책임지기는 불가능하다.…고등학교 3학년인 큰 딸은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2년 전부터 봉제공장에 다니는 아내는 기술이 없어 월 40만원을 받고 일한다”(｢“비정규직, 몰랐는데 참 서럽더군요…”｣, 진보정치 45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욱 서럽게 만드는 것은 멸시와 천대이다. 옛날에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공돌이”, “공순이”라고 부르며 멸시, 천대했다. 그런데, 87년 이후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이런 노골적인 멸시, 천대는 약간 완화됐다. 그러나, 노동자에 대한 멸시, 천대는 다른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다. 전체 노동자들의 2/3가 넘는 800만명 이상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무능력한 인간”, “게을러서 비정규직이 된 사람”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회사에서 정규직을 거의 뽑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취업할 수 있는 자리는 비정규직뿐이었다.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들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없이 해고되어 비정규직 노동자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 되는 것은 사회구조적 모순 때문인데도 그 책임을 모두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를 멸시, 천대하는 것은 자본가만이 아니다. 같은 현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노동자들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종, 하인 부리듯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마치 관리자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다가 일이 끝날 즈음 와서 생색내기로 일하는 시늉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성희롱 대상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 우리를 아주 슬프게 하는 사건이 현자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현장에서 가스 냄새가 많이 났다.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이 일을 계속 하게 했다. 참다못한 정규직 대의원들은 15분 뒤 정규직 노동자들을 데리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현장 곳곳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들도 데리고 간 정규직 대의원은 80명 가운데 오직 한 명뿐이었다. 누가 담뱃불이라도 붙이면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모두 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 목숨만 생각했을 뿐 동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기적으로 변했으며, 대공장은 삭막한 사막으로 바뀌었다. 당연히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는 깊게 패인 골짜기가 가로놓여 있다.
그러나, 이 책임을 모두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가장 큰 책임은 바로 자본가들에게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정규직 노동자들을 이기주의와 실리주의의 노예로 만들고 있는 것은 바로 자본가들이다.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대립시킬 때만 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고, 쥐어짤 수 있다. 자본가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통제하고 쥐어짠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서는 조금 나은 처지에 있지만, 어쨌든 몸뚱이밖에 없는 노동자로서 먹고살기 위해서는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착취당해야 한다. 대기업들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정규직 노동자들조차 계속 산재 사고를 당하고, 과로사로 죽어나가며,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신음하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평상시에도 심각하게 고용불안을 느끼며, 회사와 국가의 경제적 위기 시에는 정리해고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 98년 현자에서, 2001년 대우자동차에서, 그리고 2001년 한국통신에서 정리해고, 강제퇴직의 칼은 비정규직의 목을 먼저 친 다음 정규직의 목을 쳤다. 수많은 사업장에서 임금삭감, 노동시간 연장, 노동강도 강화의 족쇄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발을 먼저 채운 다음 정규직의 발을 채웠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본이 강요하는 대로 분열되어 갈등하면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
2. 왜 비정규직 노동자투쟁은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건설했다고 해도, 파업을 한다고 해도 요구를 쟁취하기가 쉽지 않다. 87년 대투쟁을 경험한 자본가들은 아주 교활하게 노조운동에 대처하고 있다. 그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한곳에 집중 투입하기보다 곳곳에 분산시켜 투입하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조를 건설하기가 쉽지 않다. 어렵게 비정규직 노조를 건설한다고 해도 다수를 조직하기 힘들다. 지금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사내하청 노조에 대한 태도에서 드러나듯, 자본가들은 “노조에 가입하면 블랙리스트를 돌려 지역에서 취업하지 못하게 하겠다”, “노조는 회사를 망하게 하려는 불순한 목적을 갖고 있다”와 같이 협박하고 악선동한다. 아직 채 각성하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협박과 악선동에 주눅이 들게 되며, 노조 가입을 꺼리게 된다. 아무리 자본가가 협박하고, 공격한다 해도 노동자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 싸우면 이길 수 있다. 이 점을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힘이 있고 경험이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조를 지원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자본가들 또한 이 점을 잘 알기에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개량화시키고 관료화시켜 자신들의 꼭두각시로 전락시켜 왔다. 자본가들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자신들만의 실리를 위해 비정규직 노조를 외면하도록 만든다. 자본가들은 캐리어에서처럼 “만약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조를 지원한다면 공장 문을 닫겠다”고 협박한다. 한마디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지원하면 정규직 노동자들도 정리해고시키겠다고 협박하는 것이다. 노동자운동은 항상 이런 공격을 뚫고 전진해왔다.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분열시켜 공격하려 할 때, 단결해서 투쟁함으로써 그 공격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는 기업과 산업, 지역의 장벽을 넘어 ‘하나’라는 계급적 대의가 약해지면서, 노동자들이 주인되는 세상을 건설한다는 희망이 무너지면서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가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그리고, 단결, 연대가 파괴된 상태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대로, 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대로 자본에 의해 각개격파되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노동자는 하나라는 정신으로 헌신적으로 지원한다면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은 쉽게 승리할 수 있다. 하지만,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외면하고 냉대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은 아주 길어지고 고통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한편,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이 어려운 것은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조가 신생 노조로서 경험도 취약하고, 의식적 각성도 부족하며, 선진노동자들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 중소기업 정규직 노조에는 87년부터, 또는 그 이전부터 활동해온 선진노동자들이 많이 있으며, 오랜 투쟁전통도 있었다. 그러나, 이 많은 선진노동자들이 미래의 희망을 잃어버리면서 명망과 출세를 바라는 관료들로 전락하거나 수동적으로 상황에 끌려 다니는 평범한 노동자로 떨어졌다. 그 많은 투쟁전통은 “투쟁을 통해 이만큼 쟁취할 수 있었다. 지금은 우리가 힘이 부족해 패배를 겪고 있지만, 미래에 크게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역사적 자산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싸우면 깨진다. 적당히 타협하는 게 최선이다”는 패배주의를 합리화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희망과 목표를 갖고 있지 못한 노동자들, 더구나 과거 투쟁에 대해 패배감을 갖고 있는 노동자들이 모든 힘을 다해 현실의 투쟁을 밀어갈 리는 없다. 정규직의 선진노동자들이 후퇴하면서 정규직 노조운동 또한 후퇴했다. 그리고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비정규직 노조 운동에 대해 희망과 목표, 힘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비정규직 노조운동에는 격렬함, 폭발성, 분노, 노동자다운 감수성과 의지는 있지만, 노동자의 목표와 전망, 노선, 정치, 지도력은 너무 부족하다. 희망과 꿈, 용기를 잃지 않으며, 풍부한 투쟁전통이라는 훌륭한 자산을 갖고 있는 선진노동자들이 정규직 운동에서는 많이 무너졌으며, 비정규직 노조 운동에서는 아직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이 비정규직 노조 투쟁을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의 원인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정규직 노동자 운동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운동의 약점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가르쳐주고 있다.
3. 비정규직 노동자투쟁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왜” 싸울 수밖에 없는가? 이 물음에는 다음 물음들이 이어져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무엇을 목표로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은 언제 어떤 조건에서 끝날 수 있는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논평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있다. 그런데,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면 답은 반 이상 찾을 수 있다. 문제의 답은 문제 자체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밝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왜 싸우는가’를 통해서 비정규직 노동자투쟁의 방향을 대략 도출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짤막하게 몇 가지로 투쟁방향을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첫째,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사활적 과제로 인식하고, 추진해가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분열되어 있을 때는 모두 반쪽짜리 불구라는 점을 모든 사안을 통해 알려내야 한다. 2001년 여름 효성이 13년 무쟁의를 깨고 영웅적 파업을 전개했지만, 공장의 절반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지 못함으로써 공장을 멈추지 못했다. 이렇게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투쟁은 반쪽짜리 불구이므로 아무리 정규직 노동자들이 강력하게 투쟁할지라도 자본으로부터 양보를 끌어낼 수 없다. 반대로, 한통계약직 노조처럼 상경투쟁, 전화국 점거, 한강철교 시위, 국회 점거 등 강력한 투쟁을 전개해도 한통 정규직 노조가 꿈쩍않고 있는 상황에서는 정규직화를 쟁취하기가 쉽지 않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분열하여 무너졌던 모든 사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단결하여 성과를 쟁취할 수 있었던 모든 사례들을 이용하여 단결의 정신을 깊이 각인시켜야 한다.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튼튼히 잇는 것은 지금 둘 사이의 골이 아주 깊고, 자본의 방해책동이 아주 크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 끈질기게 추구해야 하는 작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몇번의 실패에 좌절하여 비정규직 노조가 정규직 노동자들을 추동하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규직 선진노동자는 정규직 대중의 상태가 아무리 뒤떨어져 있다 해도, 비정규직과 정규직 단결의 사활적 중요성을 끈기있게 설득해야 한다.
둘째, 의식적으로 각성되고 투쟁 속에서 단련된 선진노동자를 많이 형성해야 한다.
비정규직 투쟁은 아주 어렵기 때문에 단련되지 못한 노동자들은 쉽게 지칠 수 있다. 그래서 비정규직 투쟁은 초기에 대중적 세력을 형성할지라도 몇 개월 동안 투쟁이 계속되다 보면 많은 수가 떨어져나가고 소수만 남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남아 있는 노동자들도 미래에 대한 희망, 승리의 전망을 갖지 못한 채 겨우겨우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자본가들은 이런 점을 알기 때문에 “조금만 더 버티면 비정규직 투쟁대오가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완강하게 버틴다. 그래서 비정규직 투쟁은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조가 투쟁을 통해 작은 성과를 얻어냈다 해도 이후에 자본이 때론 교묘하게 때론 파상적으로 공격해오면 이를 견디지 못하고 노조를 해체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비정규직 노조운동이 어려운 조건에서도 미래의 희망을 갖고 투쟁을 끈기있게 전개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선진노동자들을 많이 형성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자 운동의 역사를 풍부하게 이해하면서 침체의 시기를 견딜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 운동의 모든 부분을 시야에 두면서 그때마다 떠오르는 투쟁과 자기 투쟁을 연결시킬 줄 알아야 하며, 전체 노동자의 선봉에 서서 투쟁을 이끌어갈 줄 알아야 하고, 전체 노동자의 힘을 활용하여 자기 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법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본이 퍼부어대는 온갖 참주선동을 분쇄할 수 있는 노동자의 입장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속에서 선진노동자들이 많이 형성될 때, 비정규직 노동자 운동은 전체 노동자 운동의 구심으로 더 뚜렷하게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이 구심의 지도 아래 전체 노동자운동이 일어설 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요구를 쟁취하며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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