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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팔타커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내가 바로 스팔타커스다!
노예반란을 진압한 로마의 장군 크랏수스는 포로로 붙잡힌 노예들을 향해 이렇게 선언했다. “너희들을 살려주겠다, 그리고 다시 노예로 살아갈 권리를 보장해주겠다.” 하지만 크랏수스는 그 대가로 “반란의 수괴, 스팔타커스를 지목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투쟁에서 비참하게 패배해 목숨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반란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태산처럼 일어서며, 성난 바람이 되어 외친다. “내가 스팔타커스다!” “내가 스팔타커스다!” “내가 바로 스팔타커스다! 나를 죽여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외침과 크랏수스의 당황해하는 눈빛이 대비되어 교차하는 이 장면은 우리를 전율케 한다. 그리고 누가 진정한 승리자인가를 묻는다. 답은 분명해 보인다. 스팔타커스! 패배한 “반란의 수괴”, 그의 승리다. 이 거대한 외침의 물결 한가운데서 스팔타커스가 흘리는 눈물은 이 위대한 패배자들의 진정한 승리를 함축하고 있다. 아마 이 장면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스팔타커스의 목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다. 영화는 이 절정의 장면에서 다시 시작된다. 분노한 크랏수스는 로마로 이어지는 수십 킬로의 길에 관용과 자비를 거부하면서 노예반란의 지도자 스팔타커스를 지키려 한 이 반란자들을 매달 것을 명령한다. 이 잔인하고 교활한 명령에 의해 전투에서 살아남은 6,000명의 노예 반란자들 모두가 십자가형에 처해진다. 반란자들의 처절한 비명이 로마의 벌판에 울리고, 그들의 피가 로마의 대지를 붉게 물들인다. 그러나 이 잔인하고 단호한 명령이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위대한 로마의 힘”이 아니었다. 이 명령은 결코 이 패배한 반란자들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스팔타커스가 누구인지를 말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수십 킬로에 걸쳐 로마의 승리를 확인하기 위해 십자가에 내걸린 노예 반란자들의 주검은 오히려 로마 지배자들에게 두려움을 안겨다주며, 살아남은 노예들에게 위대한 복수심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막바지에서도 다시 반복되는 이 십자가형 장면은 부패한 권력과 체제의 종말을 알리는 묵시록이다. 크랏수스는 이들의 육체를 죽일 수는 있었지만 인간이기를 갈망하는 이들의 영혼을 죽일 수는 없었다. 이는 곧 “위대한 로마”의 멸망을 의미했다. 크랏수스가 스팔타커스의 목에 집착한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크랏수스의 광기어린 집착의 실체는 로마의 노예주들인 자신들의 멸망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탈리아의 3분의 2를 쓸어버린 반란, 모든 노예들이 더이상 지배자들에 의해 마음대로 사용되는 “말하는 도구”이기를 멈추고 주인의 심장에 칼을 겨눈 반란, 이른바 “위대한 로마인들”에게 세계의 지배자라는 권위와 절대권력을 가져다주었던 노예제도를 뿌리에서부터 뒤흔들어버린 이 광폭한 반란 앞에 그들은 겁에 질려 있었던 것이다. 로마의 지배자들은 스팔타커스의 목을 베어 이 두려움을 씻어버리고 싶었을 것이며, 이를 통해 노예들을 굴복시키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신보다 위대한 인간들을 굴복시킬 수는 없다.” 한 순간의 쾌락을 위해 노예들을 죽음의 결투로 내몰고,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여 자신의 배를 불리며, 기껏해야 착취의 더 많은 몫을 차지하기 위해 으르렁대는 그런 노예주들이 과연 동료를 지키기 위해서 죽어가고,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죽어갈 수 있는 이 노예투사들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이 점에서, 노예 반란자들의 시각에서 재해석되는 스팔타커스의 목과 반란자들의 십자가는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에 대한 상징일 것이다. 로마의 부패한 지배자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인간다운 삶”이었던 셈이다. 결국 그들의 두려움은 현실화되었다. 거대한 로마의 노예제도는 거듭되는 노예반란의 물결 속에서 산산이 분쇄되어버렸다.
비참한 노예로 살 것인가?
아니면 당당하게 싸우다 죽을 것인가?
무엇이 진정 인간다운 삶인가라는 질문은 아마도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하며 일관된 주제의식일 것이다. 노예광산에서 죽어가는 동료를 살리기 위해 뭇매와 죽음의 형벌을 감수하면서도 기어이 노예감시자의 아킬레스건을 물어뜯어버리는 스팔타커스의 모습은 노예로 비굴한 생명을 유지하기보다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죽겠다는 선언이다. 또한 바리니아와의 첫 만남에서 짐승처럼 감시자들이 보는 앞에서 섹스를 강요받았을 때, “나는 짐승이 아니다!” 하고 울부짖었던 것 역시 인간다움에 대한 스팔타커스의 갈망을 보여주는 장면일 것이다. 이러한 인간다움에 대한 갈망은 비단 스팔타커스만의 것은 아니다. 그와 죽음의 사투를 벌이던 흑인 검투사는 동료(스팔타커스)를 죽일 것을 재촉하는 크랏수스와 귀부인들을 향해 창을 던지고 대들다가 죽음을 맞는다. 이 역시 자신이 살기 위해 동료를 희생할 수 없으며 그러느니 차라리 싸우다 죽겠다는 고귀한 인간선언이다. 특히 이 사건은 검투사들(이들이 노예 반란자들의 중핵이다)의 가슴에 지배자들에 대한 깊은 적대감과 저항의 자각을 심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이 인간다움에 대한 갈망의 정점을 이루는 것은 스팔타커스와 안토라이너스의 결투 장면과 스팔타커스의 연인인 바리니아의 선택일 것이다. 안토라이너스는 크랏수스의 몸종으로 그의 사랑을 받고 있었으므로 비록 노예의 신분이었지만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노예 반란이 발발하자, 이 대열에 합류한다. 그는 글을 알고 있었고, 심성이 곧고 착했기 때문에 스팔타커스의 참모 역할을 하게 되는데, 크랏수스는 자신의 ‘자비’와 ‘사랑’을 거부하고 반란군의 대열에 선 안토라이너스에 대한 복수심, 그리고 스팔타커스에 대한 시기심과 두려움에 불타 이 둘을 결투로 내몬다. 크랏수스는 이들에게 “살아남은 자를 십자가형에 처하겠다. 너희들의 동료애가 얼마나 강한지 한 번 보자”고 말한다. 검술에는 능하지 않은 안토라이너스는 스팔타커스에게 맹렬히 달려든다. 두 사람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서 기를 쓰고 싸운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사랑하는 동료가 십자가형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라리 자기의 검으로 영웅적 최후를 맞게 해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이 비극적 결투는 너무나도 아름다우며, 장엄하기까지 하다. 영화는 이 비극적인 결투 장면을 통해 진정한 동지애와 연대감, 위대한 사랑의 의미를 보여준다. 쓰러진 안토라이너스를 안고 이별의 키스를 나누는 스팔타커스에게 크랏수스는 묻는다.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고. 스팔타커스는 답한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당신들은 죽으면 화려함과 안락과 거대한 부를 잃을 것이지만, 우리는 단지 고통만을 잃을 뿐이다. 우리는 죽지만 언젠가 수백, 수천만이 되어 다시 찾아올 것이다.” 이 대사는 “임금노예가 투쟁에서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전세계다!”라고 했던 저 유명한 맑스의 경구를 생각하게 한다. 이 장면을 통해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언제 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에 있으며, 얼마를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바리니아
바리니아는 스팔타커스의 연인이다. 그녀가 처음 스팔타커스와의 잠자리를 위해 그의 처소에 왔을 때, 그녀는 무표정했으며, 기계적으로 옷을 벗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설사 내 몸뚱아리를 가질 수는 있을지라도 내 영혼만큼은 소유할 수 없다는 도도함이 묻어난다. 그랬을 것이다. 분명 진실한 사랑 이외에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없었을 것이다. 이 장면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이 영화에서 그녀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굳건한 절개를 상징한다. 그래서 그녀와의 사랑은 진정한 인간다움의 교감을 의미한다. ‘짐승들의 섹스’를 강요받은 스팔타커스가 나는 짐승이 아니라고 외친 후, 둘 사이에는 진정한 교감과 사랑이 싹트게 된다. 이후 그녀는 스팔타커스의 연인이자 진실한 동료가 된다. 로마의 장군 크랏수스는 바리니아의 도도함에 취해(물론 크랏수스의 감정은 결코 사랑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팔타커스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바리니아의 사랑을 얻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화려한 의상과 안락한 집도, 온갖 아름다운 말과 사치스런 황금목걸이도 그녀의 진정한 사랑을 꺾지 못했다. 그녀는 크랏수스의 집을 뛰쳐나와 고행의 길을 선택한다.
엔딩의 상징성
이제 영화의 엔딩 부분을 살펴볼 차례다. 지배자들 사이의 분란으로 자유인의 자격을 획득하게 된 바리니아는 로마 탈출을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바리니아는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스팔타커스를 보게 된다. 그녀는 스팔타커스의 발에 입 맞춘다. 그녀는 자신들이 낳은 아들을 들어보이며 말한다. “왜 눈을 감지 못하지요. 이제 눈을 감으세요. 스팔타커스, 당신의 아들은 자유인이에요. 내가 다 말해 줄 겁니다. 우리들의 이야기, 당신의 진실을. 스팔타커스 이제 눈을 감아요.” 반란노예들의 주검이 매달린 십자가 길 사이로 그녀를 태운 마차가 달려간다. 그러나 이 십자가 길은 더이상 비극적이지 않다. 아니, 마지막 장면에서 이 십자가 길은 오히려 경쾌하기까지 하다. 십자가들의 호위를 받으며, 마차는 곧게 뻗은 길을 질주한다.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노예 반란자들은 마치 이들 모자의 앞날을 축복하는 듯한 모습이다. 스팔타커스는 멀리 떠나가는 마차를 바라보며, 기쁘고 고요하게 숨을 거둔다.
이 장엄한 엔딩에서 바리니아와 그 아들을 살려둔 것은 이 영화의 미덕 중의 하나일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아들은 희망의 미래를 상징하며, 이 위대한 반란의 연속성을 의미한다. 영화는 이 아들의 존재를 통해 절개를 가지고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할 것이며, 투쟁은 계속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이제 바리니아는 모든 노예 반란자들의 창조자로, 위대한 역사의 기록자로 살아갈 것이다. 바리니아의 그 한결같은 마음은 노예들이 패배 속에서 다시 한번 인간다움에 대한 갈망을 키워가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스팔타커스의 승리를 꿈꾸며
영화 속 스팔타커스의 예언처럼 불의와 부정이 있는 곳에서 이에 맞서는 제 2, 제3의 “반란”은 끊임없이 타올랐다. 이들 중 로자 룩셈부르크를 비롯한 독일의 노동해방 운동가들은 부패하고 무능한 자본가들 및 이들과 결탁하여 부패한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개량적인 노동운동 지도자들에 맞서 새로운 대안과 투쟁의지를 천명하기 위해 스팔타커스동맹이라는 이름의 노동자 조직을 건설하기도 했다. 이들이 스스로에게 스팔타커스의 이름을 붙인 것은 그 옛날, 비인간적 차별과 불의에 맞서 당당한 투쟁의 길을 걸었던 노예 반란자들의 정신과 부패한 자본주의 착취자들에 맞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정신을 동일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는 수천 년 전 스팔타커스와 그 동료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들에게도 당장의 승리를 허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로마시대의 스팔타커스 반란자들과 마찬가지로, 독일 스팔타커스동맹의 지도자들 또한 정신적 도덕적 우위 속에서 죽어갔다. 자본가군대는 이들을 육체적으로 죽일 수는 있었지만, 자신보다 위대했던 이들을 굴복시킬 수는 없었다. 일시적인 패배에도 불구하고 제2, 제3의 스팔타커스들은 오늘도 다시 태어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스팔타커스의 “승리”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꿈꾸어야 할 핵심이기도 하다. 상징을 현실로 바꾸어내기 위한 진지한 실천과 결의. 이것이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또 다른 핵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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