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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는 마약이다
만약 숫자를 잘 골라 100억원을 순식간에 벌 수 있다면?
아마 모든 사람들이 이런 꿈을 꾸며 로또복권을 살 것이다. 하지만 1등에 당첨될 확률은 빙하기부터 지금까지 매주 복권을 사면 한번 걸릴 정도이며, “벼락 맞기보다 더 어려운” 814만분의 1밖에 안된다.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부자들은 물론이고 가정주부, 대학생, 노동자 가릴 것 없이 그야말로 거의 모든 국민이 “인생역전”, “대박의 꿈”에 사로잡혀 로또열풍의 포로가 되어있다. 무엇이 이토록 노동자들을 로또의 광기에 빠져들게 하고 있는가? 노동자들은 진정 어디에서 꿈과 희망을 찾아야 하는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경제적 빈곤과 정치적 억압 속에 신음하는 노동대중에게 종교는 “신을 믿으면 고통을 잊을 수 있고, 영원히 행복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속삭인다. 현실의 고통을 잊고 달콤한 환상에 빠져들게 만든다는 점에서 종교는 정말 아편과도 같다. 현실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바로 그 현실 속에서 대안을 찾지 못한 노동자들은 종교라는 늪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된다. 아편 복용자는 아편을 통해서는 사태를 절대 개선할 수 없으며,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는 점을 정확히 이해할 때만 아편을 끊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고통과 공포, 그러나 대안이 없다!
로또복권이 도입된 2002년 말과 그 이후 지금까지 겉으로는 IMF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여 고통이 완화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비정규직이 700만을 넘고, 살인적 노동강도와 숨막히는 노동통제, 항상적인 고용불안, 대구지하철 참사, 이라크전쟁, 한반도 긴장고조 등으로 노동현장과 사회 전반에 고통과 공포가 만연해왔다.
또한 이 고통과 공포를 종식시킬 수 있는 대안도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한때 월드컵 광기, 노무현 신드롬이 불어닥쳤지만 그에 맞설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국제주의적 대안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작년의 공무원 연가파업, 올해의 화물연대 파업, 조흥은행노조 파업 등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져 오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전체 노동자들과 가난한 민중들이 꿈과 희망을 갖고 거세게 일어설 수 있게 만드는 정도는 아니다.
마약 권하는 사회
고통이 크고 대안이 희미할수록 노동자(사무직인가 생산직인가,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를 가릴 것 없이)와 그 가족, 그리고 억압받는 민중은 각박한 현실, 지옥 같은 삶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종교, TV, 영화, 술, 스포츠, 도박, 이 모든 것들이 고통에 지친 노동자들을 사로잡아온 마약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더욱 자극적인 마약이 필요했고, 로또복권이라는 센세이셔널한 새 마약이 그 필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스스로 숫자 여섯 개를 써넣게 하여 형식적으로는 주체적인 선택이 가능하다는 점, 1등이 받는 액수가 전체 당첨금의 60%나 된다는 점, 당첨자가 없을 경우 이월되어 당첨금이 어마어마하게 부풀어오른다는 점 등이 로또열풍을 불게 만들었다. “번호를 잘만 쓰면 지옥에서 천국으로 로켓타고 한방에 갈 수 있다”는 일확천금 심리를 부추기는 것이다. “나한테 한번만 행운이 떨어지면 중노동에 시달릴 필요도 없고, 고용불안에 떨 필요도 없고, 파업 때 생긴 빚을 갚느라 허우적댈 일도 없어질 것”이라는 그럴듯한 유혹이 생활고에 지친 노동자의 손목을 끌어당기고 있다.
쓰디쓴 현실
그러나 환상은 달콤하지만 현실은 쓰디쓰다. 벼락 맞아 죽는 것보다 더 가능성이 없기에 번번이 “꽝”을 맞고, 그렇지 않아도 홀쭉했던 주머니만 텅 비어간다. 틈날 때마다 로또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동안 노동자를 쥐어짜는데 여념이 없는 자본가들에 대한 비판의식은 점차 희미해진다. 단결력과 투쟁력에 구멍이 숭숭 나며, 투쟁하는 동료노동자들에 대한 연대는커녕 관심의 눈길조차 사라져간다.
자본은 이 틈을 예리하게 파고 들어와 노동자들을 더욱 분열시키고 경쟁시키며,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면서 노동자들을 철저히 기업의 울타리, 아니 부서의 장벽, 개인의 장막 안에 가두어버린다. 이것은 다시 전망을 못찾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로또복권과 같은 마약에 더 깊이 손대게 만든다. 그리고 악순환은 계속되며 상태는 나날이 나빠진다.
이득을 보는 마약업자들
누가 이렇게 노동자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계속 몰아넣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자본과 정부다. 로또복권은 지금 국민은행과 건교부, 행자부 등 정부 7개 부처가 발행하고 있는데, 10회차 로또는 약 2,000억원어치가 팔릴 것이라고 하며, 7년 뒤엔 매출누계가 5조 4천억원대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노동자,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떼돈을 긁어모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과 정부의 이익은 단순히 거대한 수익금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런 경제적 이익보다 더 큰 것이 바로 정치적 이익이다. 그것은 노동대중의 의식을 몽롱하게 만들어 자본가들의 지배질서에 도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배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얼마나 멋진 사업인가? 가만히 앉아서 돈도 퍼담고, 노동대중을 환상의 늪에 빠뜨려 마음 편하게 “이대로!”를 외칠 수 있게 만들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 자본과 정부든 로또복권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로또를 옹호하는 자본과 정부의 한 대변자는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연간 복권구매액은 약 1만원으로 세계 1인당 복권구매 순위에서 128위 정도의 낮은 수준”이며, “로또는 현재 세계복권시장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복권형태”라면서 로또를 “저렴한 비용으로 즐기는 건전한 오락”이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이 대변자의 주장은 자본가사회가 얼마나 부패, 타락했는지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1인당 연간 복권구매액이 1만원이면, 4천만 인구로 계산할 때 4천억이나 된다. 경제력이 없는 어린이, 노인, 약자들, 복권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많은 성인들이 복권에 심각하게 빠져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이 128위라면 세계(특히 선진국)는 이미 엄청난 도박, 현대판 마약, 국민적 대사기극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극한 상태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라는 점을 훤히 알 수 있다.
대안은 어디에?
어떤 사람들은 인간은 이기적 욕구를 지닌 이기적 존재이기 때문에 로또와 같은 도박이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며, 과도하지 않게 조절하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확천금을 노리며, 일하지 않고도 소득을 내려는 인간의 이기적 욕망은 있지도 않은 “인간의 본성” 따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노동으로 먹고사는 집단이 있는 사회에서,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만들어지고 강화되는 것이다.
빈부격차가 없고, 억압과 차별이 없으며, 노동이 삶의 기쁨이 되는 평등세상이라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일확천금을 누리려 하거나, 일하지 않고도 떵떵거리며 살려고 하는 것은 가장 추악한 모습으로 지탄받을 것이다. 낡은 사회의 찌꺼기를 씻어내지 못한 사람이나 도덕적 미숙아가 아닌 한, 누구도 도박으로 인생의 행복을 사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자가 로또 1등에 당첨되어 자본가로 상승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1,300만 노동자들과 2500만 노동자가족이 한데 뭉쳐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고 해방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며, 그것만이 가장 곧고 빠른 현실적 대안이다.
“인생역전”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로또복권을 구매함으로써? 아니다! 우리 “노동자계급의 인생역전”은 오직 단결, 투쟁, 해방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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