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노동자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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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행동강령

들어가며 - 왜 대중행동강령인가?

1. 비정규직 철폐
① 동일노동 동일임금
② 온전한 정규직화
③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

2. 노동시간-고용 연동제, 생활임금 보장 하에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① 1일 6시간, 주 30시간 노동제 도입
② 생활임금 쟁취
③ 무상의료·무상교육·무상주거
④ 공공사업을 통한 실업 해소

3. 완전한 파업권 쟁취! 노동악법 철폐! 국가보안법 철폐! 국정원 등 폭압기구 해체! 

4. 노동조합의 전투적 재편
노동조합을 대중투쟁기관으로 바로 세우자!
전투적 선진노동자운동을 건설하자!

5. 노동자 정당방위대 상시 구성

6. 노동자 생산통제
① 현장권력·생산통제권 쟁취! 
② 영업비밀 철폐·노동자 산업통제!
③ 공장위원회 󰠏󰠏 현장권력·생산통제권 쟁취의 조직적 표현

7. 몰수·국유화
① 재벌 대기업 몰수·국유화
② 은행 및 금융업체의 몰수·국유화/신용체계의 국가관리
③ 국가 기간산업 국유화

8. 제국주의 반대! 전쟁 반대!
① 제국주의 전쟁 책동 분쇄 󰠏󰠏 제국주의 군사점령과 전쟁위협 중단, 미군의 해외주둔 반대, 한국군 파병 반대
② 반동적 수단으로 제국주의에 맞서는 것 반대 󰠏󰠏 핵무기 반대, 테러주의 반대
③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서는 노동자 국제연대 건설
④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 전쟁위협 중단, 평화협정 체결, 비핵화 실현, 주한미군 철수, 군사비 사회보장 전환

9. 노동자정부



들어가며 - 왜 대중행동강령인가?

현 시기 반동적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의 고용과 노동조건, 임금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 속에서 위기의 출구를 찾고 있다. 노동유연화라는 이름으로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확산이 전면화 되고 이제 상시화 되었다.

체제의 고통이 모두 노동대중에게 전가되고 있다. 이른바 사회 양극화로 표현되는 노동대중의 경제적 곤궁은 날로 가중되고 있다. IMF 위기 이후에도 절대빈곤층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날 안정적인 일자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신규 취업의 80% 가까이가 비정규직이고, 그 대부분이 월 100만 원도 안 되는 일자리들이다. 자본가들과 자본가정부는 말한다. ‘고용이 유연해져야 일자리가 창출된다. 해고가 쉬워져야 고용도 쉬워진다.’ 그렇게 해서 기존 취업노동자에 대한 고용불안 공세를 강화하고, 정리해고/계약해지를 들이민다. 여기서 ‘창출’된 일자리는 비정규직과 외주·용역으로 채워진다.

1997년 IMF 위기를 맞아 한국자본주의는 이 역사적 파산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고통분담’을 내걸고 노동자에게 구조조정/정리해고 공세를 대대적으로 자행했다. 그러나 자본의 공격은 IMF 탈출로 멈추어지지 않았고, 2007년 현재까지 고용유연화/비정규직 확산 공세로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자본의 공세가 한 시기 전체를 특징짓는 정세의 상시적 조건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현 시기 한국 자본가계급은 어떻게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있는가?

한국자본주의는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경쟁격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단 하나의 계획을 가지고 있다. 수렁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단 하나 밖에 없다. ‘노동대중을 제물로 삼자.’ ‘노동자들에게 모든 고통을 떠넘기자.’ ‘노동자들이 그 동안 투쟁을 통해서 쟁취한 성과물을 모두 회수하자.’ ‘해고를 자유롭게 하자.’ ‘비정규직을 더욱 늘리자.’ ‘최대한 외주·용역화하자.’ ‘노동강도를 높이자.’ ‘현장통제를 강화하고 전환배치를 전면화하자.’ ‘단협과 임금체계를 개악하자.’ ‘법·제도를 개악하여 노동자들이 저항하고 투쟁할 수단을 빼앗아버리자.’ ‘노동조합과 파업을 무력화시키자.’

생존의 위협에 맞서 노동대중은 정리해고 저지투쟁, 계약해지 반대투쟁, 외주·용역화 반대투쟁을 했다. 또 노동강도 강화와 현장통제에 저항하는 투쟁을 해왔고, 임금·단협의 저하를 막기 위해 투쟁해왔고, 민주노조를 사수하는 투쟁도 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방어적 경제투쟁의 연장선상에서 노동법·비정규직법 개악 저지투쟁도 해왔다. 그렇게 10년 동안 ‘반대’ 투쟁, ‘저지’ 투쟁을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현 시기는 온통 노동대중의 이 같은 반대·저지투쟁들로 뒤덮여 있다. 그래서 상시적인 자본의 공격과 함께 이러한 방어적 대중투쟁이 현 시기 정세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상시적 조건이 되어 있다.

개별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절박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결사적으로 투쟁해왔지만, 전체 계급투쟁으로 봐서는 10년 동안 수세가 계속되고 있다. 개개의 투쟁은 그 투쟁방향과 요구안에서의 수세적 기조와는 달리 많은 경우 전투적 양상을 띠고 있지만, 전체로서의 계급투쟁 형국은 제 자리에서 맴돌듯 ‘반대’와 ‘저지’를 중심으로 하는 방어적 경제투쟁의 반복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도, 이러한 계급투쟁 형국은 이제 넘어설 수 없는, 고착된 것인가? 반대·저지 투쟁을 넘어서 공세적인 투쟁,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하는 투쟁은 당분간 불가능하고 먼 훗날의 가능성으로 돌려야 하나? 계급 역관계를 바꿔내고 정세를 반전시킬 가능성은 이 당면의 반대·저지투쟁들로부터는 나올 수 없는 것인가?

개량주의자들은 말한다. 대책 없는 이러한 반대·저지투쟁 대신에 합리적인 정책대안을 가지고 현재의 고용문제와 비정규직문제를 ‘사회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그래서 반대·저지만 외치는 방어적 투쟁 대신에 ‘공세적으로’ 대안을 제기하며 사회적 교섭과 사회적 합의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용문제는 (구조조정을 수용한 속에서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로, 비정규직문제는 (지배계급의 ‘정규직 이기주의’ 공세에 굴복하는 방식의) ‘사회연대전략’을 통해 해결하자고 제안한다.

나아가 한국자본주의 문제에 대해서도 그간 제기해온 ‘분배를 통한 성장’을 넘어 이제는 ‘공세적으로’ 각종 ‘진보적 성장전략’을 제시하면서 자신들에게 한 번 한국자본주의를 맡겨 봐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만들어서 고용문제와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노조관료들과 민주노동당 등 개량주의 지도부들이 이 쇠퇴기의 병든 자본주의, 노동자의 고용과 생존권마저 공격하지 않고서는 생명을 연장할 수 없는 이 반동적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 구원투수, 외과의사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이 개량주의가 현 시기 수세적 정세를 딛고 반격으로 나아가는 데 최대 장애물로 서고 있다.

우리는 개량주의자들과는 달리, 정세 반전의 가능성은 바로 이 반대·저지투쟁들 자체에 잠재해 있다고 주장한다. 오직 이 투쟁들을 출발점으로 해서만 정세 반전의 가능성은 만들어질 것이다. 이 모든 투쟁들이 방어적인 투쟁이지만, 그럼에도 이 투쟁들은 반격을 위한 힘을 모아낼 수 있고, 계급 역관계를 바꿔낼 수 있고, 수세에서 공세로 정세 반전을 이뤄낼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우리는 확신한다. 오직 문제는 이 잠재적 가능성이 현실화할 수 있도록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전망을 열어주고 전진하는 길을 제시하고 승리하는 방법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이를 하지 못해서다. 혁명적 지도라는 고리가 빠져 있어서다. 노동자계급 지도력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해서다.

그렇다면 지도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디서부터 출발할 것인가? 고용불안과 정리해고, 비정규직 양산 등 현 시기 자본의 공격으로부터 오는 노동자의 생존의 위협은 오직 노동자국가와 사회주의 사회의 확립을 통해서만 완전하게 극복, 해결될 수 있다. 이것은 계급의 전위, 즉 선진노동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노동자국가와 사회주의 사회의 확립이라는 궁극 목표를 단지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궁극 목표를 현 시기 계급투쟁에서 밟아나갈 수 있는 실천적 계획으로 만드느냐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당면의 반대·저지투쟁을 출발점으로 해서 어떻게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하는 투쟁으로, 국가권력 장악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한 이행의 프로그램을 벼려내느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조조정 저지투쟁을 보자. 투쟁하는 노동자들 모두에게 일단 투쟁의 출발점은 ‘구조조정 반대!’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가 이 투쟁에서 제기된다. 구조조정 반대면 대안은 무엇이고, 우리가 그 대안을 쟁취하려면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가?

물론 우리는 ‘구조조정 반대!’, ‘정리해고 저지!’를 중심으로 단결해서 반대·저지투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생산과 산업에 대한 통제권을 노동자가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을 끝장냄이 없이 ‘고용안정 쟁취’란 끊임없는 고용불안을 잠시 피하는 것밖에 되지 못한다. 그마저도 투쟁이 승리할 때 이야기지 대부분 패배로 끝나는 것이 현실이다. 대안이 없거나, 또는 있어도 어정쩡한 것이어서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어떻게 투쟁해야 할지가 명확하지 않다면 반대·저지투쟁이 승리하기 어려우며, 설사 일시적으로 승리한다 하더라도 곧 원점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다.

여기서 구조조정에 대한 대안은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자본가 대신 ‘노동자가 생산과 산업을 통제하는 것’이다. 구조조정 반대를 넘어서 노동자통제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위로부터의 협상을 통해서? 사회적 교섭을 통해서? 선거와 의회를 통해서? 노동자 국회의원을 많이 만들어서? 아니다. 이 같은 개량주의적이고 관료적인 방식이 아니라 이와 충돌하는 방식으로, 직접 행동에 의해, 현장활동가·평조합원 투사들을 단결시켜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의해서다. 그리하여 ‘현장권력·노동자통제권 쟁취!’를 매개로 노동자권력 투쟁으로 넘어갈 것이다.

고용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현재의 방어적 경제투쟁과 노동자권력 투쟁 사이에는 물론 간극이 있다. 정리해고를 저지하기 위한 노동대중의 투쟁이 자본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공장점거투쟁과 같은 매우 전투적인 양상을 취하더라도 투쟁하는 대중의 현재 의식과 노동자권력 요구/사회주의 혁명 강령 사이에는 현재로선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 방어적 대중투쟁이 이 강을 넘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것이 전위의 임무다. 반대·저지투쟁이 권력투쟁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투쟁을 전면화, 일반화시키는 것, 전 계급적 투쟁으로 만드는 것이 곧 가교를 놓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반대·저지를 넘어서는 ‘노동자 생산통제!’ 같은 요구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당면 투쟁에서 대중의 현재 의식과 권력투쟁의 필요 사이에 놓인 간극을 이어줄 이 같은 이행적 요구들이 그러한 가교가 되어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제출하고 있는 대중행동강령은 바로 이 이행적 요구를 중심으로 주요 당면 요구 및 투쟁방법을 결합시켜 하나의 계통적인 프로그램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계급의 전위들은 이 대중행동강령을 가지고서 가교를 놓을 수 있다. 이 혁명적 행동강령은 사회주의자들과 선진노동자들에게 현 시기 노동자계급 지도력의 위기를 극복할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이 혁명적 행동강령으로 노동자계급운동을 무장시키는 것이 현재 그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그 절실함은 현재와 같은 방어적 투쟁 시기에도, 비혁명적 상황에서도 결코 줄어들 수 없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공격하는 것을 통해서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병든 쇠퇴기 자본주의 하에서 대중이 빵의 양이나 질을 개선할 수 없다면 일단 이 빵을 지켜내야 한다. 과거 투쟁들에서 대중이 쟁취한 성과물은 자본이 이를 회수하기 위한 공격으로부터 지켜져야 한다. 오직 대중행동강령만이 이것을 보장할 수 있다. 대중행동강령은 현 시기 노동자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근본모순, 즉 대중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할 태세가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자본에 대한 공세로 나아가는 것도 불사하는 데 반해 노조관료 등 지도부들이 계속해서 매번 이 투쟁들을 방기하고 고립시키고 나아가 내놓고 배신을 해도 이를 어찌하지 못하는 모순적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대중행동강령은 대중의 당면 방어투쟁과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 사이에 다리를 놓아줌으로써 이 주체적 약점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 다리는 상호 연결된 일련의 요구의 형태를 취하는데, 하나의 전체로서 이 요구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공공연하고 직접적인 도전을 이룬다. 그러나 혁명가들은 이행적 요구뿐만 아니라 최소요구들을 위해서도 투쟁하며, 아무리 부분적인 투쟁이라도 가장 앞장서서 싸운다. 따라서 대중의 현재 투쟁과 대중행동강령을 대립시키고, 이 대중행동강령을 최후통첩 식으로 들이미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편 대중행동강령의 개별 요구들을 그 상호 연결된 체계로부터 떼어내서 슬쩍 변형시켜 가지고 각각 별개의 노동조합 요구로 내놓는 것은 대중행동강령을 개량주의적으로 왜곡하는 짓이다. 대중행동강령의 이행적 요구들을 자본주의 구조개혁안으로 내놓으려는 중도주의자들의 시도 또한 마찬가지로 낯 뜨거운 기회주의다. 이행적 요구들의 목적 자체가 대중을 자본주의에 반대하여 행동에 나서게 하는 것인데 자본주의의 구조개혁이라니!

혁명전위는 대중의 당면 투쟁에서 개별 요구들을 각각 자립적인 요구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전체로서의 강령(프로그램)을 위한 투쟁의 일부로 배치한다. 그렇게 하여 대중행동강령은 현재의 당면 투쟁에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혁명적 공격으로 이행하는 수단이 되어주며, 동시에 권력투쟁으로의 이행과정에서 대중을 훈련시키고, 노동자권력 하에서의 과제들을 위해 대중을 준비시키는 수단이 되어줄 것이다.

이하의 슬로건들은 예를 들어 1일 6시간/주 30시간 노동제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나 재벌 대기업 몰수·국유화와 같이 그 대부분이 투쟁의 요구들이지만, 노동조합의 전투적 재편이나 노동자 정당방위대 상시 구성과 같이 투쟁의 방법을 지시하는 슬로건들도 있다. 국가권력 장악투쟁으로의 이행을 목표로 하는 하나의 체계화된 프로그램으로서 대중행동강령에는 요구안들만이 아니라 당연히 운동노선과 조직화노선이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배치된 슬로건들의 순서는 일반적으로 투쟁의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의 발전을 반영한다. 투쟁하는 노동자의 의식 및 단결의 발전수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보다는 자본가의 경영권과 소유권을 침해해 들어가는 ‘노동자 생산통제’가 더 높은 의식 수준과 단결투쟁력을 필요로 한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노동자 생산통제’보다도 ‘재벌 대기업 몰수·국유화’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대중행동강령은 이 각각의 요구에서 먼저 낮은 단계의 요구가 쟁취되고 그 다음에 순차적으로 보다 높은 단계의 요구로 하나씩 나아가는, 그러한 단계론적 프로그램이 아니다. 노동시간 연동제나 노동자통제, 몰수·국유화, 노동자정부 등 이행 요구들은 노동자들에게 사활적 요구들이지만, 어느 하나도 노동자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하지 않는다면 항구적으로 실현될 수 없는 요구들이다. (우리의 대중행동강령에는 정확히 이행적 요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미 보편화된 계급적 요구로서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악법 철폐 같은 당면 투쟁의 요구, 부분적 요구도 포함시켜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요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계급투쟁이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끊임없이 발전하는 과정에서의 단지 과도적 단계들일 뿐으로, 어떤 단계도 그 자체로 투쟁의 종착점일 수 없다. 각 요구를 쟁취하기 위한 모든 연속적인 투쟁은 오직 노동자권력 쟁취투쟁으로 이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따라서 이 목표만이 프로그램의 종착점일 수 있다.     


1. 비정규직 철폐

한국에서 비정규직문제는 현 시기 자본주의의 모순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문제 중 하나다. 올해 3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분석해보면, 전체 임금노동자 1,573만1천명 가운데 정규직은 698만7천명(44.4%), 비정규직은 874만4천명(55.6%)으로 나타난다. 2000년 이후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고용된 노동자의 60% 가까이를 차지하며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의 상당수는 반복되는 해고와 최저임금으로 반(半)실업상태에 놓여 있다.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과 언제 어디서나 자본가들에 의해 해고될 수 있는 불안정 고용상태에 놓여 있다.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업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불안정한 일자리는 전체 노동자의 조건을 하락시키는 장치로 자본가들에게 적극 활용되고 있다. ‘비정규직이 이렇게 많은데 정규직이 파업한다’는 자본가들의 악선동이 먹혀드는 비옥한 토양이 되고 있다.

90년대 말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하여 투쟁해왔으며, 이제 비정규직투쟁은 노동자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다. 비정규직 요구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불법파견 정규직화, 원청 사용자성 인정, 노동3권 보장, 비정규악법 저지·철폐 등으로 요약되었다. 이 요구들은 비정규직 철폐로 나아가기 위한 요구들이었다. 그러나 사회양극화, 비정규직문제가 사회 쟁점화 되면서 개량주의자들에 의해서 비정규직 철폐로 나아가기 위한 요구들이 ‘비정규직을 인정하고 처지를 개선하자’는 개량주의적인 요구들로 대체될 위기에 처해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규직 노동자의 양보를 전제로 한 ‘사회연대전략’과 같은 것들이다. 자본가들의 착취, 이윤은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면서 정규직 노동자의 양보로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자는 것이 사회연대전략의 요지다. 이를 위해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사회적 합의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산별노조의 비정규직문제에 대한 해법도 사회적 타협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한국에서 노동자투쟁의 가장 중요한 쟁점을 사회적 합의로 마무리한다면 노동자들은 무장해제를 당하고 만다. 서구의 사회적 합의의 결과가 노동자투쟁의 축소, 파괴, 노조관료의 현장투쟁 통제강화로 귀결되었음을 볼 때 무장해제는 자명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려운 조건에서 싸워왔다. 투쟁의 장기화, 구속, 수배, 해고의 위협 등으로 인하여 민주노조를 유지하기에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투쟁의 어려움은 요구수준의 하락, 비정규직투쟁의 해법이 사회적 타협으로 가야 한다는 유혹에 노출되기도 한다. 비정규직문제의 해법은 투쟁을 통한 비정규직 철폐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투쟁이 계약해지 철회, 해고반대, 임금 및 처우개선과 같은 경제적 요구로 출발한다고 해도 그것이 비정규직 철폐투쟁으로 나아가는 투쟁능력을 키우고 투쟁부대를 육성해낸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자들은 그 투쟁을 지지하고 함께 한다. 그러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그 투쟁들이 비정규직 철폐투쟁으로 나아가야 함을 적극적으로 선전, 선동하고 그 투쟁의 선두에 서야 한다.      

① 동일노동 동일임금

노동자의 고용형태의 차이에 따라 노동의 가치가 변한다는 것은 자본가들의 이데올로기다. 주요 제조업 대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동일한 노동을 하는데도 임금을 비롯한 온갖 처우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긴 시간을 일하고도 더 적은 임금을 받는다. 자본주의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 노동자계급으로 단결할 수 있는 선명한 요구다.

그럼에도 일부 개량주의자들이나 조합주의자들은 자본가들의 선동에 한 배를 타고 있다. 비정규직을 인정하되 그들의 처지를 조금은 개선하자거나 이를 위해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양보하자고 말한다.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에도 이미 ‘비정규직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노동자대중의 정서와 의지와는 무관하게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 비정규직이 ‘자본주의 경기변동에 따른 고용조정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언제부턴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요구로 변질되고 있다. 동일가치노동의 평가는 무엇으로 가능한가? 구체적 노동에 대한 가치평가가 구체적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직무에 대한 평가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노동자 내부를 직종과 직무에 따라 차별을 둠으로써 노동자의 단결을 해치는 해악적인 주장이다.

② 온전한 정규직화

모든 일자리는 정규직 일자리여야 한다. 그 어떤 종류의 비정규직 고용도 금지되어야 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한다고 해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장 열악한 조건, 고용불안을 해소할 수 없다. 이제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구조조정으로 가장 먼저 일자리에서 쫓겨나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해소하는 것은 정규직으로 고용되는 것, 정규직과 동일한 단협과 처우를 보장받는 것이다.

최근 비정규직문제의 ‘해법’으로 교묘하게 포장되고 있는 분리직군제나 무기계약직은 이른바 ‘처우개선’으로 비정규직문제의 심각성을 회피하려는 수단이다. 대한생명의 분리직군 28년차의 연봉이 정규직 신입사원 연봉보다도 낮으며, 우리은행의 경우 25년차 여성 계약직의 연봉이 대졸 신입사원의 90%수준이다. 이것이 분리직군제의 진실이다. 따라서 무기계약직이나 분리직군제는 비정규직 철폐로 나아가기는커녕 그것을 가로막기 위한 자본가들의 책략이다.

③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 하면 ‘낮은 임금과 불안한 고용’을 떠올리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한국의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 자체가 노동유연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한국정부와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싸울 수 있는 권리’ 즉 ‘결사의 자유’를 가질 수 없도록 설계한 고용형태라는 점이다.

우선 ‘특수고용’의 경우 멀쩡한 노동자를 마치 자영업자인 것처럼 위장시킴으로써, 아예 노동자성 자체를 부인함으로써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자체를 봉쇄하고 있다. ‘간접고용(삼각고용)’의 경우에는 실질적으로는 원청자본이 임금과 노동조건 전체를 좌지우지하고 있지만 노동조합을 결성하면 그들은 “우리는 사용자가 아니다”라며 교섭의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 또한 ‘사업장 이동의 자유’조차 박탈하는 한국정부의 이른바 ‘고용허가제’ 하에서 살인적인 단속·추방의 대상이 되어 추적당하고 쫓겨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주노동자들은 노동비자(노동허가제) 도입을 통한 기본권 보장만이 이주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이라 주장하며 싸우고 있다.

이렇듯 한국의 비정규직문제의 핵심은 결사의 자유 박탈 즉 노동기본권 박탈에 있다. 노동자로서 단결하고 싸울 수 있는 기본권이 박탈됨으로써, 자본가들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임금이 하락하고 고용이 불안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단결하고 투쟁할 수 있는 권리 보장을 위해 싸울 것이며 구체적으로 이렇게 요구한다.

기간제사용 금지! 외주화 반대!

우리는 기간제사용을 금지하고 기간제 노동자들은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기간제 비정규직 고용의 심각성이 제기되자 사회적 비난과 규제 요구를 면탈하기 위해 자본가들은 외주화·용역화·아웃소싱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간접고용이라는 이중의 굴레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하는 외주·용역화에 맞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또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는 자본가들의 외주화에 맞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언제나 함께 할 것이다.

정부 기간제법안 폐기! 파견법 완전 철폐!

2006년 말 국회는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 악법에 의해 현재 계약직 노동자들은 2년 주기로 집단해고 되거나 외주화, 아웃소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상시적으로 사용하는 노동자들을 계약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계약직 노동자를 조직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조들은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과 ‘상시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우리는 정부의 기간제법안의 완전폐기를 요구하며 싸울 것이다.

파견법 자체가 비정규직 고통을 양산하는 ‘시대의 악법’이며, 몇 가지를 손질한다고 개선될만한 법안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파견법의 완전철폐만이 비정규직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요구한다. 또한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제조업 사내하청 전원에 대해서 노동부조차 불법파견임을 인정하는 상황에서, 불법파견 노동자 전체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특수고용 노동자성 인정! 노동3권 보장!

화물지입차주, 레미콘기사, 덤프기사, 학습지교사, 골프장경기보조원 등 한국의 이른바 특수고용 노동자의 경우 10~20년 전만 해도 정규직 고용의 형태를 띠고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노동기본권 박탈과 사회보험 적용 면탈을 위해, 또 한편으로는 자본가들이 부담해야 할 경제적 위험을 노동자에게 전가시키기 위해, 자본가들이 고의적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을 ‘위장 자영업자’ 형태로 바꾸는 과정에서 특수고용 비정규직으로 전락해온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특수한 노동자’가 아니라 똑같은 노동자일 뿐이며, 따라서 노동자에게 보장되는 노동3권을 온전히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현재 정부와 국회에서 또다시 멀쩡한 노동자들을 ‘유사근로자’로 이름 붙이며 노동3권을 인정하지 않는 행태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싸울 것이다. 특수고용 노동3권 보장은 단순히 법제도개선 수준의 문제가 아니며,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자계급으로 자신을 자각하고 집단적인 투쟁으로 떨쳐 일어날 수 있도록 현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투쟁을 지지·지원할 것이다.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 하도급 근절!

건설산업에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 공공부문에 널리 퍼져있는 민간위탁, 제조업에 성행하고 있는 불법파견 및 사내하청 등은 모두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다른 이름들일 뿐이며, 모두 원청사용자들이 임금 및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

자신이 사용자임을 은폐하기 위해 대다수가 거대자본인 원청사용자들이 무리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다보니, 이러한 고용형태 거의 모두가 불법 다단계 하도급 내지 불법파견으로 확인되는 등 현행 법체계 하에서 수많은 불법을 동원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중단! 노동허가제 쟁취!

현재 22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오늘도 3D산업의 열악한 일터에서 밤낮으로 땀 흘려 일하고 있다. 장시간노동과 위험한 노동환경, 부당해고, 최저임금, 임금체불, 성폭력 … 이러한 차별과 폭력은 기본이고, 여기에 한국정부는 이주노동자에게 불법체류자라는 딱지를 붙여 범죄자로 몰았다. 폭력적인 단속으로 이주노동자의 인권마저 빼앗고 있다.

정부가 강행한 고용허가제와 단속추방정책은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살인적 폭력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2007년 2월11일 새벽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로 10명의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17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 등 정부의 이주노동자 단속·추방의 실상은 실로 참혹하고 추악하기까지 하다.

2005년 4월 24일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 건설되었으나, 법무부는 이주노조 아노아르 위원장을 불법, 폭력, 표적 연행하여 이주노조 탄압을 시작하였고, 노동부는 이주노조 설립신고를 반려하며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빌미로 이주노조에 대한 탄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지금 이주노동자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고용허가제와 같은 기만적인 정책과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추방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저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며, 그 출발점은 노동허가제(노동비자) 도입을 통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전면 합법화에 있다. 우리는 모든 이주노동자들에게 차별 없는 노동기본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며 싸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은 정주노동자의 노동조건과 똑같아야 하며, 임금과 단협의 동일적용을 요구하고 투쟁할 것이다.


2. 노동시간-고용 연동제


생활임금 보장 하에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자본주의의 무한경쟁은 노동자들에게 끊임없는 희생을 강요한다. 그 희생의 가장 악랄한 형태는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다. 당연히 모든 종류의 해고를 금지하고, 자본의 이윤확보를 위해 도입된 정리해고제는 폐지해야 한다.

대량실업은 오늘날 모든 자본주의 나라의 영구적인 특징이다. 자본주의 구조조정은 수백만 명을 실업으로 내몬다. 이 실업의 재앙에 맞서 우리의 강령은 성별과 연령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일자리를 부여하라고 요구한다. 노동시간 연동제, 1일 6시간/주 30시간 노동으로 단축하여 일자리를 나눈다면 실업문제는 거의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

실업노동자는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의 처지를 항상 불안하게 만들며, 고용조건을 후퇴시키는 역할을 하도록 내몰린다. 정부가 주장하는 실업률은 3.73%(2005년 통계)로 OECD 국가에서 낮은 수준이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다. 고용률은 63.69%로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고용의 질 역시 형편없다.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의 60% 이상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며, 신규 일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반복되는 해고와 최저임금으로 반(半)실업상태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는 노동자들 역시 잘리지 않고 일하는 것을 감사하라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자본가들은 항상 “너희 말고도 일할 사람은 많다”고 말한다. 최근 한국의 임금인상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인상률은 점차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하는 것이다. 02년 7.6%, 03년 7.5%, 04년 5.7%, 05년 5.5%, 06년 5.4%로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율 역시 줄어들고 있다. 그야말로 주눅 들어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노동자들은 가장 긴 시간 일한다. 한국 노동자들은 05년 평균 2,354시간 일을 했다. 공장에서, 직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국제노동기구 발표만 보더라도 주 48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의 비율은 49.5%로 페루(50.9%)에 이어서 세계 2위를 차지했다. 제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잔업과 특근, 시간외 수당에 목을 매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초과노동을 하지 않고서는 먹고살기 힘든 임금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잔업과 특근의 축소 이후에 닥칠 (정리)해고의 위협 때문이다. 잔업과 특근 자체를 아직 더 고용될 수 있다는 안전판으로 여긴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장시간노동과 고용불안문제를 완전히 해소할 뿐만 아니라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와 실업노동자에게 정규직 일자리가 골고루 분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조합과 기타 대중조직들은 정규직, 비정규직, 실업노동자 모두를 상호 연대책임망으로 조직해야 한다. 임금손실 없고, 모든 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노동시간-고용 연동제 요구로 집약된다.

노동시간 연동제만이 각 사업장에, 각 산업에 노동자들을 매어두지 않고 노동자계급을 하나로 모아낼 수 있다. 개량주의자들은 한국에 만연한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사회연대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연대를 파괴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양보하거나, 해고 및 전환배치를 쉽게 하여 비정규직 처우를 일정 정도 개선하자는 주장을 편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자본의 ‘정규직 이기주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대한 굴복이며, 비정규직과의 연대와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아닌 시혜를 베푸는 것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을 왜곡하는 투쟁파괴다. 한국의 민주노조운동 깊숙이 뿌리를 내린 개량주의 세력에 의해서 이 전략은 추진되고 있지만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없으며, 곧장 폭로되어버릴 것이다. 그 자리에 노동시간 연동제 요구가 대신 들어서야 한다.

① 1일 6시간, 주 30시간 노동제 도입

생산·산업에 대한 노동자통제 체제 하에서 노동은 모든 노동자들 사이에 골고루 분배되어야 하며, 노동시간은 이러한 일자리 나누기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단축되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임금은 삭감되어선 안 된다. 노동시간 연동제는 노동자들이 자생적으로 제기한 ‘임금 손실 없는 주 35시간 노동!’ 요구나 ‘40시간 월급에 30시간 노동!’ 요구를 의식적으로 일반화하고 혁명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한국에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 중 고용되어 있는 사람은 정규직, 비정규직을 다 합쳐 63.69%다. 사회보장제도가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서 10명 중 4명은 다른 가족의 노동으로만 입에 풀칠 할 수 있다. 높은 사교육비, 주택비를 고려한다면 죽지 않고 살 뿐이다. IMF 시기 분유 값이 없어서 분유를 훔친 가난한 어머니 이야기가 지금도 나타나고 있다. 아이의 등록금이 없어 자살을 선택한 어머니 이야기는 바로 지금 벌어지는 일이다. 다리가 퉁퉁 붇도록 일해 받는, 타워팰리스 에어컨 사용료일 뿐인 80만 원 짜리 일자리에서 해고되지 않기 위해서 파업을 벌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는 다른 나라 일이 아닌 경제규모 세계 11위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실업과 불안정 일자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을 대폭 줄여야 한다. 양극화의 해법은 경제성장과 정규직의 양보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자본가의 배만 불리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더 많은 노동시간과 비정규직 확대가 불가피하다. 자본가들에게는 주체할 수 없는 부, 다른 한 쪽엔 가난과 빈곤이 드리워진 모순을 심화시킬 뿐이다.

1일 6시간 노동, 주 30시간 노동으로 장시간노동을 없애자! 1/4 이상 줄어든 총 노동시간은 정규직 일자리로 채워져야 한다. 이를 통해 실업의 해소, 고용불안 근절로 나아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대제의 경우도 24시간 가동이 기술적으로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6시간씩 주간연속2교대로 야간노동을 없앨 수 있다. 줄어드는 노동시간만큼의 생산은 설비확충과 인원충원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와 같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는 것과 함께 또한 모든 노동자의 여가시간을 확대한다는 또 하나의 목적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2주 이상 연속휴가제를 도입해야 한다.

② 생활임금 쟁취

시간 당 임금체계 하에서 잔업, 특근, 시간외 수당으로 생계비의 대부분을 확충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생활임금의 보장과 연관되어야 한다. 민주노총 표준생계비(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생활수준을 기준으로 산정한 생계비, 저축을 항목으로 잡지 않은 것임)는 3.6인 기준 388만 3,029원임에 반해서 한국 노동자의 전체 평균임금은 166만원이다. 표준생계비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민주노총이 발표하는 표준생계비는 일상 시기 노동자들의 노동력 재생산비용이다. 폭등하는 아파트 등 주거비, 중병에 대한 의료비를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교육, 의료, 주택문제는 표준생계비에 해당하는 것조차 아니다.

노동시간을 대폭 줄이고 여기에 생활임금 보장이 따라야 한다. 생활임금 보장 하의 노동시간 단축은 1일 6시간 노동제 도입의 전제다. 뿐만 아니라 생활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의 대폭적인 인상을 요구해야 하며, 최저임금을 생활임금의 80~90%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대공장 노동자들은 사내하청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외주화된 하청업체, 부품사 노동자의 생활임금 쟁취투쟁에 연대를 조직해야 한다. 그럴 때만 노동시간의 대폭적인 단축이 가능하다.

하지만 생활임금 쟁취를 단순히 수량적인 임금총액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 간의 경쟁을 도입하자는 개량주의자들의 요구가 있다. 개량주의자들은 산별노조 하에서의 임금체계는 생활급+노동급+성과급+능률급이라고 주장한다. 개량주의자들이 말하는 생활급은 우리가 말하는 생활임금이 아니다. 그들은 생활급을 단순 최저생계비라고 주장한다. 노동급, 성과급, 능률급은 직무가치평가, 개별성과, 기업성과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는 자본가들의 주장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최근 한국의 자본가들은 비정규직 차별해소에 대한 반발로 직무급을 도입하여 직무별 임금차등을 주장하고 있다. 동일임금 동일노동이라는 요구를 가로막고 임금체계를 유연화하여 경쟁을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개량주의자들은 결국 자본의 이중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생활임금은 1일 6시간, 주 30시간 노동만으로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생활을 가능케 하는 것이어야 한다. 

③ 무상의료·무상교육·무상주거

노동력을 사용하는 자본가가 노동력 재생산비용 전부를 지불해야 한다. 교육비, 의료비, 주거비는 모두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노동자 개인들에게 책임을 돌리지 말라. 생활임금 보장을 위해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거를 도입하라. 자본가국가가 책임을 져라.

TV 광고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암보험 상품이다. ‘암에 대비하려면 1억은 있어야 한다’, ‘아이가 아픈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며 사보험 가입이 해결책임을 선전한다. 한 노동자는 암에 걸린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서 1,000만 원을 선불로 내야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돈 없으면 그냥 집에 가서 죽어야 한다. 갈수록 고령화되고 저출산으로 젊은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몫은 늘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주의는 병을 고치는 것마저 돈벌이 수단으로, 이윤욕을 채우는 도구로 만들어 노동자의 호주머니를 턴다.

양질의 의료기관을 늘리고,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는 것은 보험회사가 아니라 국가여야 한다. 무상의료는 혁명적 요구도 아니다. 기초적인 요구일 뿐이다.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의무교육제는 최소한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조치일 뿐이다.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서 자본가들은 손 하나 움직이는 수고를 하지 않고도 노동력 재생산의 모든 수혜를 다 누리고 있다. 그 고통은 온전히 노동자계급의 몫이다. 한국의 사교육비는 세계 1위다. 자본가계급을 위한, 대를 잇는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해서 자신의 월급 모두를 자녀의 사교육에 쏟아 부어야 하는 현실이다. 빈곤에서 1년 만에 탈출하는 비율은 38.1% → 38.4% → 30.1% → 26.5%로 2003년 이후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다. 많은 부분 과중한 교육비 부담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교육은 평등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대학까지 무상교육이 실현되어야 한다.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었다. 지난 15년간 근 600만 호의 주택이 공급되었다. 그런데도 주택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는 주택을 부의 축적수단으로 삼는 투기꾼들이 절반의 주택을 독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집을 갖고 있는 자가 1,083채, 2위가 819채, 3위가 577채이며, 상위 100명이 1인 평균 155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 자본가들의 시장경제에 주택 문제를 맡겨놓을 경우 이것 이외의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오늘날의 주택보급률이 문제해결의 기본조건을 이미 만들어냈다. 이제는 단지 ‘이미 충분히 공급된 주택’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것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1가구 1주택을 초과하는 소유를 금지하고, 초과분을 몰수하여 무상으로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④ 공공사업을 통한 실업해소

실업해소를 위한 국가의 책임은 공공부문과 공공사업을 통한 일자리 확충으로 맞추어져야 한다. 현재 자본가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공공근로사업이 아닌 공공서비스를 강화하는 정규직 일자리의 확충이 이루어져야 한다.

실업자 자신들이 실업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구경꾼으로 남아 있도록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주의자들은 실업노동자와 취업노동자 간의 전투적 단결을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한다. 실업자도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조합에 가입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운동으로부터 실질적인 재정지원 하에 대중적인 실업노동자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이 같은 조직화는 실업노동자가 파시즘 이데올로기(또는 여타 반동적 이데올로기 및 운동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실업노동자들이 범죄에 빠져들거나 룸펜으로 전락하는 것을 차단시켜 주기도 할 것이다. 그러한 실업노동자운동은 취업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실업 형제자매들을 방어하기 위해 적극적인 투쟁에 나서도록 압박하는 긴요한 수단이다.

모든 무직자들을 생산과정 속으로 통합시켜내고 그들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을 할 수 있도록 우리는 노동자통제 하의 공공사업 프로그램 쟁취를 위해 단호히 투쟁한다. 자본가국가가 비용을 치르는 이 공공사업 프로그램은 수백만 명에게 일자리를 공급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주택, 병원, 학교, 공공시설 등의 건설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나아가 공공사업 프로그램은 노동자계급이 스스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경제를 운영할 수 있도록 노동자계급을 훈련시킨다. 공공사업 프로그램은 계획경제의 학습장이 되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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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6시간/주 30시간 노동제, 생활임금 쟁취, 무상의료·무상교육·무상주거 등의 요구에 대해서 자본가들은 사회주의 선동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부분적으로 맞다! 노동자계급의 이 절실한 요구들을 들어줄 수 없다면 이 사회를 우리 노동자들이 운영하겠다는 사회주의 선동이다. 그러나 자본가들이 주장하듯이 이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윤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더 이상 생산력의 발전이 인민의 필요에 사용되지 않는 자본주의 체제가 역사의 발전에 걸림돌일 뿐이라는 진실을 드러내주는 선동이다. 그것은 이미 자본주의 자체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1,000대 기업의 사내유보율은 616%(2006년)다. 그 액수는 상상도 되지 않는 364조 원임을 자본가들 스스로 밝혔다. 자본가들은 고수익을 내는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서 돈을 그대로 금고에서 썩히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주장에 반대하는 세력은 자본가들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주장에 겁을 집어먹는 개량주의자들이나 조합주의자들은 너무 급진적이어서 안 된다고 말할 것이다. 사회연대전략과 같이 정규직의 양보를 주장하고 비정규직을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려 하는 세력들은 노동시간의 대폭적인 감축, 생활임금의 보장과 같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중투쟁 없는 선거를 통한 조용한, 결국 아무 것도 못하고 자본에 굴종하는 집권에만 골몰해 있기 때문이다. 당장 급진적인 주장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나머지 사탕발림만을 일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노동자대중 속에서 투쟁을 조직하고자 하는 투사들은 이미 개량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사회연대전략이 노동자계급에게 세상을 바꾸는 꿈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현재의 요구를 대폭적으로 강화하지 않는다면 정규직·비정규직, 산업간, 기업 간의 경쟁구도에서 노동자계급이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점을 잘 안다.

민주노총의 표준생계비와 실제로 받는 임금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임금을 동결하거나 100만 원 조금 넘게 받는 노동자들에게 세금을 더 내자고 하는 모순, 너무 장시간 일해서 고통스러운데 자본이 요구하는 생산성 향상을, 구조조정을 동의해주는 모순, 타 사업장 비정규직투쟁에는 관심을 가지지만 정작 자신의 사업장 비정규직투쟁에는 지지를 보내지 못하는 모순, 그 모순의 원인인 조합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계급적 요구로 노동자계급을 단결시켜야 한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1630(1일 6시간/주 30시간)과 같은 노동시간 연동제 도입을 위해 노동자통제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동자가 생산과 산업을 통제해야 총 노동시간을 총 노동자 수로 나눠서 모든 노동자가 온전한 정규직 일자리를 분배받을 수 있다.


3. 완전한 파업권 쟁취! 노동악법 철폐!
국가보안법 철폐! 국정원 등 폭압기구 해체!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의 파업권을 제약하는 노동악법과 정치사상 및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해 투쟁한다. 이는 현 시기에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뜻하는 이른바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계급투쟁의 자유로운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① 완전한 파업권 쟁취! 노동악법 철폐!  
 
자본가들과 정부는 노동자의 투쟁과 단결을 없애기 위해 발악하고 있다. 자신들의 법인 헌법에 보장된 파업권을 여러 방법으로 무력화시키고 있다. 그것은 파업에 ‘혁명의 괴물’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파업에 대한 온갖 제약을 만들어 파업을 못하게 하거나 파업의 실효성을 없애 노동자들에게 ‘파업은 효과는 별로 없고 귀찮고 힘든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필수업무유지와 대체인력투입, 공무원, 교사,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파업권 박탈이다.

공공부문에 대한 필수업무유지와 대체인력투입을 허용하는 노사관계로드맵을 통해서 파업의 제약을 관철시킨 정부와 자본은 나아가 대형사업장의 파업을 제약하기 위한 책동을 획책하고 있다. 파업권을 제약하는 노동악법의 철폐와 함께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교사·공무원의 파업권을 비롯한 완전한 파업의 자유 쟁취는 자본의 공격에 맞선 생존권 투쟁뿐만 아니라 노동자해방을 위한 투쟁에 수반되는 필수 투쟁과제다. 

② 국가보안법 철폐! 국정원·기무사·보안수사대 등 폭압기구 해체!

국가보안법 철폐와 국정원 등 폭압기구 해체 요구는 노동자계급과 무관한 요구가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투쟁의 한 부분이다. 한국에서 여전히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미완성’이라서 국가보안법 철폐투쟁, 폭압기구 해체투쟁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현 단계 한국 부르주아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 이 투쟁을 해야 한다고 제기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운동을 소부르주아민주주의 운동으로 몰고 가고자 하는 기회주의 세력들의 기만적 술책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르주아민주주의의 반민중성, 반노동자성에 대한 폭로를 위해 투쟁한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이 투쟁을 결코 기존 민주화투쟁의 연장선상에서 민주화투쟁의 미완의 과제로 제기하지 않으며, 오직 노동자 해방투쟁의 부수적 과제로 배치하고 제기한다.
 

4. 노동조합의 전투적 재편

노동조합을 대중투쟁기관으로 바로 세우자!
전투적 선진노동자운동을 건설하자!

노동자들은 당면의 방어적 경제투쟁을 위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현 시기에 노동조합 없이 구조조정 분쇄, 정리해고 저지, 정규직화 쟁취 같은 부분적 요구투쟁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적 요구만이 아니라 이행적 요구, 예를 들어 노동시간 연동제나 노동자 생산통제와 관련된 요구를 쟁취하는 투쟁에서도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안에 이러한 요구들이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이해만이 아니라 전체 계급의 이해를 위해 투쟁한다. 가장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층, 미조직노동자, 실업노동자,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들은 ‘소수자’가 아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잃을 것이라곤 사슬밖에 없는 프롤레타리아트 다수자를 구성한다. 그들이 보통 투쟁의 고양기에 가서야 투쟁에 이끌리므로 이러한 순간에 노동조합 틀을 넘어서, 투쟁하는 대중 전체를 포괄하는 파업위원회, 공장위원회, 그리고 노동자평의회 등 특별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는 달리, 조직된 대사업장 노동자들은 계급의 소수자이지만, 그 동안 노·자 간의 ‘대리전’을 치르며 투쟁의 선봉을 담당해 왔고 전투적 민주노조운동에 소중한 활동가 층을 공급해왔다. 그러나 이 소수자들이 앞으로 계급의 다수자를 받아들이고 하나로 융합하지 않는다면 조직노동자들은 노조관료의 기반으로 굳어버릴 위험을 안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노동자투쟁의 선두에 선다.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 국가권력 쟁취투쟁, 정치투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가장 사소한 물질적 이익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도 적극 결합하고 선두에 선다.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조합을 대중투쟁기관으로 바로 세우기 위해 분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편협한 관료적 기구로 변질되고 있는 노동조합을 원래의 공동투쟁체로, 즉 공동전선으로 복구시켜야 한다. 이는 노동조합을 투쟁전선으로 바로 세워내기 위해 부단히 공동전선전술을 운용해야 함을 뜻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들을 가지고 싸우는 대중투쟁기관으로 노동조합을 철저히 재편시킬 때에만 노동조합이 이행요구들을 내걸고 투쟁할 수 있다.

현장활동가들·평조합원들은 노조관료제에 맞서 조합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다. 사회주의자들은 현장활동가들·평조합원들의 조합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단지 관료 지도부에 대한 ‘견제’와 ‘통제’에 한정되는 조합주의적 수준을 넘어서게 해야 한다. 조합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곧 노동조합의 전투적 재편을 위한 투쟁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사회주의 현장세포)의 목표는 대중투쟁기관으로 재편된 노동조합에서 사회주의적 지도력(지도부)을 세워내는 것이지, 단순히 지도부를 아래로부터 견제하고 통제하는 데 있지 않다. 조합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자본가 국가권력에 도전하는 정치투쟁의 필요라는 관점에서 볼 때 조합민주주의는 단지 관료층의 배신을 방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료층을 해체하고 이를 사회주의적 지도력으로 대체하기 위해 필요하다. 사회주의적 지도력은 조합민주주의를 지키고 강화시킬 것이다. 오직 이러한 민주주의만이 노동조합을 투쟁의 학교, 사회주의의 학교로 만든다.

노동조합의 전투적 재편은 중도주의자들이 하는 식으로, ‘노조운동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단지 노조 상층부 내 한 파벌을 다른 파벌로 교체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현장활동가들, 평조합원들,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관료 지도부와 맞서 싸울 수 있고, 동시에 재편된 노동조합 속에서 새로운 투쟁 지도부를 세워낼 수 있게 해 줄 요구와 전술, 조직화 방안 등 일련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러한 행동강령을 제출하고 아래로부터 대중의 의식과 투쟁력을 강화하는 것을 통해서만 사회주의자들은 노조를 대중투쟁기관으로 재편할 수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계급투쟁 고조기에 현장단위 평의회운동의 조직적 기초가 될 수 있는 단위사업장 현장의 노조 지부·지회에 주력하며, 이 지부·지회의 전투적 재편을 위해 투쟁한다. 산별 중앙으로 쟁의권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단위사업장 현장 지부·지회가 독자 쟁의권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독자 쟁의권 확보 여부와 상관없이 사회주의자들은 지부·지회가 언제든 비공인파업을 전개할 수 있도록 투쟁의 전망과 지도력을 공급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노조관료제에 맞서 조합민주주의와 쇄신을 위해,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현장권력 쟁취를 위해 투쟁하고자 하는 현장활동가·평조합원들과 공동전선을 기꺼이 형성한다. 이 공동선선은 단사적·지역적일 수도 있고, 전국적일 수도 있다. 서구에서 이러한 공동전선은 보통 평조합원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되었다(여기서 ‘평조합원’은 일반 조합원대중이 아니라, 노조관료 아닌 평조합원 활동가들을 지칭한다). 이 평조합원운동은 노조가 관료화되었다는 이유로 기존 노조로부터 분리하여 별개의 노조를 만드는, 예컨대 적색노조운동 같은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공식 노조 안에서 관료로부터 독립적인 현장활동가·평조합원 중심의 아래로부터의 비공인 운동을 가리킨다.

한국에서는 통칭 선진노동자운동으로 불렸는데, 1987년~1990년 민주노조운동 최고조기의 노민추 운동이 이러한 선진노동자운동의 초기적인 모습이었다면, 90년대 중후반 이후 노동조합이 관료화됨에 따라 노동조합과 독립적이며 관료화에 대응하는 양상을 띠었던 초창기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 운동은 대표적인 비공인 선진노동자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비공인’ 운동이란 조합으로부터 공식 인가를 얻지 않은 운동이라는 의미이다. 현장노동자들이 노조 지도부로부터의 인가 없이 라인을 끊는 등, 자발적으로 벌이는 파업을 비공인파업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현장활동가들, 선진노동자들이 조합으로부터 공식 인가를 받은 수준의 활동으로만 스스로를 제한하고 공인 받지 못한 운동은 기피한다면 활동가운동, 선진노동자운동 또한 조합주의에 갇혀버리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대사업장의 민주파 현장조직들이 결국 선거조직으로 전락해버린 과정도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야성, 이 비공인성을 잃어버린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 전국회의 운동은 결국 사회주의 지도력의 부재 내지는 무능력으로 인해 공식 좌파관료 운동과 무당파 운동으로 분화되는 경향을 띠면서 해체되어버렸지만, 적어도 초기의 전국회의 운동은 명백히 전국 평조합원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평조합원운동은 개량주의 관료층에 도전하고 관료층을 타격할 수 있을 때에만 전진할 수 있다. 그러나 전국회의 운동에서 보듯, 평조합원운동 인자들은 끊임없이 동요하며, 노동조합의 공식성 앞에서 과감하게 치고 나가지 못하고 주저하며 두려워한다. 따라서 평조합원운동에서 사회주의자들의 임무는 (단사 차원에서든 전국적으로든) 이러한 평조합원운동 활동가들이 동요와 두려움을 극복케 하며 비공인을 불사하고 치고 나가도록 선도하는 것이다. 즉 노동조합을 재편하고 관료의 장악력을 무너뜨릴 투쟁방향과 목표, 정세전망과 전략·전술, 혁명적 행동강령을 공급하여 이끌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의 목적은 평조합원운동이 노조관료들의 전횡과 배신을 단지 방지하거나 우회하게 하는 데에 있지 않다. 관료 지도부들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기 위한 가능한 모든 투쟁의 고리들을 걸어놓아야 한다. 단지 입으로만 과격하게 비난, 성토하고, 막상 그들을 고리에서 벗겨주는 것은 사실상 관료와의 공존일 따름이다. 때문에 우리에게 노동조합에 대한 개입은 전투적 개입일 뿐 아니라 나아가 사회주의적 개입이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평조합원운동 속에서 자신의 혁명적 정치를 숨기지 않으며, 민주적 수단에 의해 진정한 평조합원운동 지도력을 전취하고자 노력한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정치를 선전주의적으로, 또는 최후통첩식으로 제기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는 아무리 사소한 요구나 사안이라도 개량주의 영향 하에 있는 평조합원 활동가들과 나란히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동시에 우리 자신의 정치를 위해, 혁명적 행동강령을 위해 투쟁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개량주의와 단절하여 우리와 함께 혁명적 투쟁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혁명적 행동강령의 반대편에 있는 선전주의적 정치, 최후통첩주의적 정치는 사실상의 기권주의이다. 현 시기 한국에서 노동조합이 반동화되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 탈퇴를 주장하는 공식적인 기권주의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사회주의 세력들은, 노동조합과는 독립적이지만 결코 노동조합 밖이 아닌 안에서 현장세포 조직 구축과 현장투쟁 강화를 위해 분투해 왔다. 그리고 이것은 노동조합의 관료화와 개량화에 맞서는 현장활동가·평조합원의 힘을 강화시키는 데 기여해 왔다. 앞으로도 현장투쟁 강화와 현장세포 구축은 사회주의자들의 항상적인 임무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노동조합이나 현장조직으로 해소될 수 없는 사회주의 현장세포의 독자성은 무조건 지켜나가야 한다.

노조 탈퇴나 노조 포기를 주창하는 공식적인 기권주의는 존재하지 않지만, 선전주의와 대기주의로 인한 사실상의 기권주의가 있다. ‘현장투쟁에 주력한다’는 명분 아래, 또는 ‘사회주의 현장세포의 독자성’이라는 이름 아래 자족적인 활동에 안주하여 전 공장적인 현안 및 전 계급적인 정치에 기권하고 노조의 전투적 재편과 평조합원운동을 방기, 회피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기권주의는 개량주의 관료들의 영향력을 강화시켜주는 데만 오직 기여할 뿐으로, 사회주의자들은 이를 단호히 배격한다. 현 시기 현장투쟁에 주력하는 것은 공인·비공인 관계없이 현장의 파업을 적극 조직하는 것으로 표출되어야 하며, 사회주의 현장세포의 독자성은 강령에 의한 개입·지도력으로 나타나야 한다.

기권주의의 반사적 대립물인 추수주의 또한 문제다. 사회주의자들의 개입, 지도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자생적으로 내건 요구들을 단순히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전면화·일반화시키는 데 있다. 단순히 현안 사업장들을 모아서, 단사와 부문의 투쟁들을 모아서 각자 자신의 요구를 가지고 시기 집중해서 파업하는 것으로 전 계급적인 투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 동시적인 파업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관료적으로 통제되는 형식적인 파업으로 그칠 뿐, 아래로부터 솟구치는 역동적인 파업 물결을 타고 전체 계급의 투쟁으로 일반화되지 못한다는 것은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서 줄곧 보아온 바이다. 사회주의자들은 현존 투쟁을 추수하는 것이 아니라 이 투쟁이 제한된 목표를 넘어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투쟁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오직 그것을 통해서만 투쟁의 전면화·일반화가 가능해진다.

추수주의는 또한 평조합원의 ‘자기해방’과 ‘자주적 활동’, ‘자주적 조직화’ 운운하며 여기에 대고 아부함으로써 정치투쟁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를 인정하지 않는 경제주의다. 민중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노동자의 경제투쟁을 중시하는 것이 경제주의인 것은 아니다. 경제투쟁, 부분적 요구투쟁은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하는 투쟁의 출발점으로서 중요하다. 사회주의자들은 이 중요성을 절대적으로 인정한다. 추수주의가 경제주의인 것은 경제투쟁에 몰두해서가 아니다. 이행적 요구들을 통해 경제투쟁을 의식적인 정치투쟁으로 전화시킬 필요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주의인 것이다. 

대중행동강령의 이행적 요구들은 계급투쟁을 일반화하는 데 필요하다. 단사와 부문의 전투들을 단순히 시기 집중하는 것으로 일반화되지 않는다. 부문적 전투들이 동시에 전 계급적 이해를 위한 투쟁을 받아 안음으로써 자신의 부문적 한계를 넘어서도록 해야 한다. 이행적 요구들은 이러한 정치적 의미에서 투쟁을 일반화해 준다. 왜냐하면 이행적 요구들은 노동자계급의 당면 필요(예를 들어 정규직화 쟁취)를 가지고 출발하지만, 그러나 그 필요의 충족을 자본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투쟁목표(예를 들어 노동자통제)와 연결시켜주기 때문이다. 가령 작업중지권 같은 기초적 형태의 노동자 생산통제를 제기함으로써 자본의 경영권/소유권에 도전하는 방향으로 투쟁을 밀어갈 수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대중행동강령을 통해 현재 투쟁하는 대중의 의식과 권력투쟁의 필요성 사이에 놓인 간극을 잇는 다리를 놓을 수 있다. 이것이 정치적 가교라면 노동조합의 전투적 재편과 평조합원운동은 조직적 가교라고 할 수 있다. 반동적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의 공세 앞에서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이해를 실질적으로 방어할 수 있으려면 노동조합은 관료기구/교섭기구에서 대중투쟁기관으로 완전히 재편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단사 현장과 전국 차원 모두에서 공동전선으로서 평조합원운동/선진노동자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사회주의 현장세포가 선진노동자들, 전투파 활동가들을 결집시키는 초점으로 기능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이 전투파 결집과 평조합원운동 건설로까지 활동을 확장시키지 않고 협소한 세포조직으로 활동을 제한할 경우 혁명적 행동강령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한편 평조합원운동 속에서 사회주의 현장세포가 혁명적 행동강령을 기각하고 추수주의로 빠져들면 사회주의적 개입력과 독자성을 잃고 평조합원운동으로 해소되어버릴 것이다. 이 경우 평조합원운동 또한 좌파관료 운동으로 전락할 것이다.
  

5. 노동자 정당방위대 상시 구성
  
생산현장, 직장을 점거한 파업은 단번에 공장과 직장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보여준다. 87년 이후 한국의 파업에서 점거와 농성은 당연한 것이었다. 나의 공장, 나의 사업장에서 농성을 한 채 투쟁하는 것은 자연스런 것이었다.

현대중공업 128일 파업, 골리앗 점거,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공장점거파업, 99년 한라중공업 공장점거파업,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에서 나타나는 (전체 혹은 일부) 점거파업은 대중의 역동적인 힘에 의해서든, 그냥 정리해고를 당하고 일터에서 나갈 수 없다는 이유에서든, 생산을 마비시키기 위해서든 뭐든 간에 파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지난해의 뉴코아-이랜드 점거파업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일손을 놓고 그냥 간단히 형식적인 집회를 하고 퇴근하는 퇴근파업은 파업노동자의 집단성, 연대성, 동지애를 느끼게 해주지 못한다. 이 집단성이야말로 노동자계급이 주인임을 선포하는 밑바탕이다.

점거파업은 파업사수대, 노동자 정당방위대의 건설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점거농성장을 사수하기 위한 자위적인 조치들을 취하게 되고, 노동자 정당방위대를 통해서 빠르게 투사들이 배출된다. 이 노동자 정당방위대를 파업시에 한정하지 말고 일상적인 시기로까지 확대하는 것이 지금 필요하다.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을 가로막는 일상적인 자본의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점거)파업 시에만 운영되는 노동자 정당방위대로는 부족하다. 구사대, 용역깡패의 폭력 등 자본이 동원하는 일상적인 무력, 물리력에 노동자의 일상적인 무력으로 대항하지 않고서는 자본의 폭력탄압을 막을 길이 없다.

한화 김승연 회장 사건은 자본가들이 일상적으로 조직폭력배들과 연계되어 있음을, 언제든 노동자의 투쟁을 박살내기 위해 폭력테러를 동원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노동자의 단결을 깨기 위해 파업이 아닌 상황에도 언제든 동원된다.

자본의 사병화한 사업장 경비대의 폭력 또한 자본의 준비된 테러체제를 보여주고 있다. 현장을 상시적으로 사찰, 감시하며 초동단계부터 노동자들의 투쟁을 무력진압하기 위해 폭력경비대를 합법적인 사병으로 기르고 있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를 보라.

자본가들이 이 같은 테러체제를 구축하여 무소불위의 폭력을 일삼고도 버젓이 활개치고 다니는 것은 이 나라의 이른바 공권력과 법이라는 것이 이런 자본의 폭력을 오히려 비호하고 은폐시켜주는 도구로 역할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때려잡고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자본이 구축한 이 테러체제는 노무현정부 하에서 날로 강화되어온 경찰폭력과 함께 아예 노동자투쟁의 씨를 말릴 기세다. 노조관료들과 노동운동 상층부에 의해 ‘비폭력 평화노선’이 애호되고 대중에게 이러한 노예의 논리가 주입되는 동안 폭력경비대와 용역깡패로 무장한 자본의 테러체제가 도처에서 그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자본의 경찰에게 자본의 깡패들을 무장해제시키라고 우리는 요구하지 않는다. 자본가정부가 자본의 깡패들을 무장해제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범죄적 환상이다. 우리는 이 환상을 배격한다.

이러한 자본가폭력의 일상화에 맞서 이를 무력화시키고 투쟁으로 돌파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정당방위대를 상시 구성해야 한다. 자본의 상시적인 테러체제에 맞서 노동자의 정당방위를 위한 상시적인 무력을 조직하자. 파업 시기만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움직이는 상설 노동자 정당방위대를 건설하자. 사업장별, 지역별 노동자정방대를 건설하고 나아가 전국 차원의 노동자정방대를 건설하자.

한국에서 노동자운동은 사업장 선봉대, 지역 선봉대와 같은 일상적인 정방대 조직의 맹아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켜내야 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경찰, 군대와 같은 자본주의의 존속을 최종적으로 보증하는 자본가국가의 무력을 해체하고 이를 노동자민병대로 대체해야 한다. 상설 정방대는 이러한 노동자민병대 창설로 나아가는 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6. 노동자 생산통제

① 현장권력·생산통제권 쟁취!

87년 노동자대투쟁은 무한착취의 기틀이 되었던 병영적 노사관계를 박살냈다. 순식간에 현장주도권은 노동조합으로 이전되는 듯 했다. 대의원의 동의 없이 라인가동이 어려운 것은 자동차산업에 한정된 사안이 아니라 공장점거 파업투쟁에 참여한 모든 사업장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아래로부터 일어난 현장노동자들의 들불 같은 투쟁은 관행적으로 현장활동가(대의원 및 소위원)에게 현장통제의 권한을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이를 일반적으로 현장권력이라 불렀다. 자본 측과 현장활동가 사이에 현장통제를 놓고 오랜 투쟁이 지속되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만들어진 관행을 깨기 위한 자본 측의 공세는 신랄했다. 대투쟁에 놀란 자본은 공권력을 동원한 무자비한 탄압으로 일관했지만 과거와 같은 현장통제력을 회복하진 못했다. 대외적으로 국가에 의존한 탄압만으로 현장의 질서를 바꿔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에 개별 자본은 이윤확대를 목표로 현장통제력을 회복하기 위한 총공세를 감행했다. 

노동조합운동이 안착되면서 노동조합을 통한 현장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임단협에서 특히 단협투쟁은 노동조합의 권리, 현장대의원의 권리를 강화해왔다. 초기 노동조합은 임금, 노동조건, 후생복지를 강화했다. 98년 대대적인 정리해고 이후엔 고용보장에 대한 요구가 가장 중요하게 대두되었다.

초기엔 사측의 인사권에 도전하는 징계위 노사동수, 죽지 않고 일할 권리인 작업중지권이 주를 이뤘다. 98년 정리해고투쟁 이후 노동조합의 요구는 대대적으로 확대되었다. 고용에 영향을 미칠 모든 사안에 대해 ‘협의’ 조항을 ‘합의’ 조항으로 대체해나갔다. 합의 조항은 투쟁하고자 하는 활동가들에겐 현장투쟁을 강화할 훌륭한 무기가 되었다. 물론 투쟁을 회피하고 자본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자에겐 노사협조의 전횡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만약 합의 조항이 없었다면 자본의 일방적인 전횡으로 끝났을 것이기에 합의 조항의 확대는 운동의 전진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합의 조항은 UPH, M/H 등 작업량, 노동강도, 적정인원에서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항으로 확대되고 있다. 현대자동차노조의 요구를 둘러싼 노사의 입장 차이를 한 예로 살펴보면 확연히 합의 조항의 확대가 갖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노조는 2007년 단협 요구안으로 “새로운 차종이나 엔진·변속기를 개발할 경우 모델이 결정되는 즉시 노조에 통보하고 생산할 공장과 연간 생산물량을 노사 간 합의할 것”을 제출했다. 자본 측은 “시장상황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적합한 시기에 가장 수익을 낼 수 있는 공장에서 수요량에 맞춰 생산하는 것은 경영전략의 핵심인데 사실상 노조의 허락을 받으라는 것은 맞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자본 측은 합의 조항의 확대를 경영권에 대한 도전으로 보아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는 “조합원의 근무여건이 바뀌는 사항을 회사가 일방적으로 진행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조합원들 역시 자신의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들에 대해 노동조합이 개입하는 것을 옹호하고 있다.

노조의 합의 조항의 확대는 경영권·인사권에 대한 전면 도전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본의 일상적인 전횡에 맞서기 위해 현장의 권리·권한은 강화되어야 한다. 현장대의원, 현장조직위원회 등 노동조합 골간체계의 진정한 강화는 현장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투쟁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이 현장주도권을 현장활동가에게로 이양했듯이 말이다. 따라서 평조합원들의 현장투쟁을 원활히 전개할 수 있는 조직력과 권한을 강화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직접민주주의를 절대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자본이 지닌 권력의 기초는 금융시장이 아니라 가치창출의 기반인 생산통제에 있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로부터 발생하는 생산통제에 대한 독점권을 영유하는 것이 자본이 지닌 권력의 기초인 것이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무엇을, 얼마나, 어디서,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에 대한 권한을 무한대로 가지려 하는 게 자본가계급의 본성이다. 자본가들은 이를 경영권이라 부르며 신성시 한다. 생산통제에 대한 독점적 권리가 노동조합의 합의 조항, 현장권력 쟁취투쟁에 밀려 깨져나가고 있다. 자본가계급이 생산통제가 완전히 부정되는 공장검거파업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공장점거파업은 자본의 신성한 권리인 경영권·인사권을 무용지물로 만들며, 반대로 노동자계급에겐 공장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연히 인식시켜주기 때문이다. 공장점거파업은 생산 자체가 중단되는 것이지만 노동자통제 하의 생산을 조직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98년 이후 민주노조는 자본의 경영권·인사권을 침해하기 위한 투쟁을, 자본은 이미 빼앗긴 경영권·인사권을 되찾기 위한 첨예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고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사안에 대해 노사동수로 구성한 위원회에서 ‘합의’할 것을 단협으로 쟁취하는 투쟁을 진행되고 있다. 반면 자본(특히 대기업)은 IMF 이후 효율성과 경영권을 내세워 징계위 노사동수, 작업중지권 등을 탈환했으며, 이제 배치전환에 관한 합의 조항을 ‘협의’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총공세를 펴고 있다.

자본(기업)은 합의를 협의 조항으로 낮춰 무력화시키는 방법과, 노동조합을 노사협조주의로 물들여 친자본적 합의를 내오는 방법을 함께 사용한다. 현장에선 ‘합의’로 이뤄진 것이 조합원들의 고용불안과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자노조의 16.9%의 비정규직 인정이나 기아차의 고용안정위원회가 고용안정을 팔아 처먹고 있다는 현장의 비판은 이 사업장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민주노조의 전반적인 모습이다.

노사협조주의자들에 의해 악용되는 합의 조항의 대표적인 사항이 비정규직문제다. 지금껏 민주노조운동은 자본의 분할통제의 핵심인 비정규직 확대에 맞서 제대로 된 투쟁을 조직하지 못했다. 정규직의 고용보장과 노동조건을 보호하기 위한 합의 조항은 투쟁의 중요한 수단이지만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외주화 ‘합의’ 조항은 투쟁을 회피하는 조항으로 사용된다. 노동조합과 현장 대의원들에 의해 마구잡이로 비정규직 고용과 해고가 ‘합의’되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자본의 일방적인 정리해고든, 대공장의 노동조합 혹은 현장대의원의 합의에 의해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고용불안은 비정규직투쟁의 모태이다. 현 시기 비정규직투쟁은 합의 조항을 노사협조주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노동조합과의 내부투쟁 과정이기도 하다. 사회주의자는 조건 없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그렇지만 일상적으로 자본의 경영권·인사권에 도전하고 영업비밀 철폐를 위해 투쟁하기 위해선 비정규직 고용 자체에 대한 거부 공세로 나가야 한다.

이미 전국운동으로 등장한 10년 간의 비정규직운동이 현장 깊숙이 뿌리내리지는 못했지만,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이 폭발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 놓았다. 따라서 진정 계급해방을 위해 투쟁한다고 자처하는 정규직노조, 정규직 현장대의원, 현장활동가는 비정규직 고용에 대한 전면 반대를 자본에 제기해야만 한다. 비정규직 정규직화투쟁으로 떨쳐 일어난 비정규직투쟁에 직접 화답해야 한다. 합의 조항과 정규직 조합원 정서를 핑계로 비정규직 정규직화투쟁, 비정규직의 고용안정투쟁을 계속 회피하는 것은 계급해방운동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을 강화하지 못하고선 계급해방으로의 전진을 꾀할 수 없으며 노동자통제 운동 또한 더욱더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산별노조에 의해 조직형식적으로 전개되는 1사 1조직 통합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단협의 비정규직 노동자 동일적용(매우 중요한 투쟁임에는 분명하다)도 비정규직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미 정규직 단협에 비정규직 고용과 해고를 당연시 하는 조항이 삭제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자의 운동은 지금껏 쟁취해온 민주노조운동의 성과를 이어받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이 투쟁이 아무리 어렵고 험난해도 노동자통제, 영업비밀 철폐투쟁과 함께 전진하도록 조직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관료화를 극복하고 평조합원들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강화하려면 노동조합, 현장대의원들이 일상적으로 맺는 ‘친자본적인 합의’에 대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대공장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친자본적인 합의’에 반대하는 현장투쟁을 조직하고 확대하는 운동을 조직해야만 한다. 자본은 노동조합 통제전략으로 노동조합의 체제내화를 추진하면서 노동조합 내 노사협조주의를 강화해왔다. 게다가 자본의 노사협조주의화에 호응하는 단위노조의 관료화는 노조집행부의 결정 대 현장조합원(전투파 대의원, 현장조직위원회, 일부 현장조직)의 의사가 상충하는 것, 대의원회 결정 대 현장조합원(전투파 대의원, 현장조직위원회, 일부 현장조직)의 의사 대립을 가져왔다. 주야 2교대를 둘러싼 현대차 전주공장의 집행부와 대책위(조합원들의 임금, 노동조건 악화라는 압도적인 반대의사를 대변하기 위해 전투파 대의원, 현장조직위원회, 일부 현장조직으로 구성)의 대립과 변속기 사업부의 대의원회 대 현장조직위원회의 대립이 대표적 사례이다.

임·단협을 제외한 모든 사항이 집행부, 대의원회의 일방적인 합의로 결정된다. 따라서 자본은 집행부와 대의원을 회유하고 노사협조주의로 물들이는 것을 통해 합의 조항을 친자본적 결정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IMF 이후 합의 조항을 둘러싼 투쟁은 합의 ‘내용’을 둘러싼 노사협조주의 세력과의 일상적인 투쟁으로 전화되었다. 전투적·혁명적 현장활동가들(대부분 대의원, 현장조직위원을 맡고 있다)이 자본과 싸우기보다 다수의 노사협조주의 대의원들과 싸우기가 더 어렵다는 하소연은 합의를 현장권력 쟁취투쟁으로 이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노동조합, 대의원회에 맞서 아래로부터 투쟁을 조직한 운동이 패배를 거듭했다. ‘합의’를 현장권력 쟁취투쟁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현장권력 쟁취의 내용 부족이었다. 대중행동강령으로 ‘현장권력 쟁취!’를 노동자통제, 영업비밀 철폐, 산업통제 운동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때 계급해방을 향한 거보를 딛을 수 있다. 

따라서 자본과 노사협조주의 세력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선 합의 ‘내용’에 대한 전투적·혁명적 현장활동가들의 반대투쟁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합의 이전에 해당 노동자 전체의 찬반투표를 거치도록 하는 등 노동자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 오직 그럴 때만 현장의 정규직·비정규직 전체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강화하고 노동자통제 운동으로 전진할 수 있다.  

소위 기업별 노조운동으로 천대받으며 극복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민주노조운동은 단체협약 및 파업의 주체로서 서구 산별노조 하의 사업장평의회와 다른 역할을 하며 발전했다. 산별노조는 개별 기업의 경영권·인사권을 침해해야 할 이유가 구조적으로 없다. 산업 차원의 임금, 후생복지, 고용, 산업정책 중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산업 내에서 개별 기업의 흥망성쇠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가장 첨예하게 자본과 대립하는 1차 접전지인 현장(공장, 사업장, 직장)의 공동화를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된다. 한국의 기업별노조는 임금, 후생복지, 고용보장을 위해서라도 경영권·인사권에 도전해야만 했다. 협의권·합의권이 현재 개량주의자들이 한국 노조운동에 도입하고자 하는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보다 높은 수준에 있는 것도 이의 반영이다. 그럼에도 아직 경영권·인사권에 전면적으로 도전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 또한 지적해야만 한다.

사회주의자는 현 시기 (금속) 산별노조 건설 과정에서 현장권력 쟁취와 관료적 산별노조 건설이 양립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관료적 산별노조가 현장공동화를 불러오고 기업별노조의 성취를 무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 현장권력 쟁취투쟁(현장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투쟁, ‘합의’를 중심으로 한 낮은 수준의 노동자통제, 전면적인 경영권·인사권에 대한 투쟁)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확산할 수 있다면 평의회운동으로 전진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총자본이 두려움을 표하는 건 관료적 산별노조가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이 성취해 온 현장권력투쟁의 내용과 기풍이다. 끊임없이 현장주도권 장악을 시도하는 현장활동가, 합의 조항을 근거로 자본과의 투쟁을 벌여내는 활동가들, 이중 삼중의 단체교섭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현장파업권을 당연시 하는 분위기는 서구 산별노조와 사업장평의회(자본과 산별노조의 관료화에 맞선 비공인파업을 하지 않으면 파업에 나설 권리, 권한이 없다)에선 볼 수 없는 이 나라 운동의 장점이다. 산별노조 하에서도 민주노조운동이 쟁취한 권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현장권력쟁취·계급적 연대투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진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서 공장위원회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

민주노조운동 하에서 일시적으로나마 도달했던 현장권력의 내용과 현장민주주의의 실천을 정리해 보면,

(가) 자본·경영진의 생산목표/투자계획, 자동화·신기술 도입·공장 증설 및 통합 등 경영권 행사(‘경영전권’)에 맞서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언제 생산할 것인지에 대한 모든 조항을 ‘합의’로 한다.
- 매월 1회 4시간 유급 공장총회 쟁취

(나) 인사·징계·안전대책 등에 대한 통제권투쟁. 이는 작업장 차원의 전제적 지배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 징계위 노사동수
- 노동안전 감독권, 죽지 않고 일할 권리인 작업중지권  
- 노동자건강권 쟁취를 위해 노동강도 완화를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

(다) 노동자민주주의 쟁취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민주주의를 강화하지 않고선 자본에 맞선 현장권력투쟁, 경영권·인사권에 전면 도전하는 투쟁이나 노조관료화에 맞선 투쟁을 할 수 없다. 현장노동자들의 정치적 의사 결집, 투쟁의지를 극대화할 노동자민주주의를 실현하자. 이는 현장에서 사회주의자들, 현장활동가들의 모범적인 실천을 통해 이끌어낼 수밖에 없으며 노동조합의 공식 활동으로 체계화해야 한다.
- 현장의견 수렴의 체계화
- 대의원의 정례 보고대회 : 공장 대내외적인 상황 총괄보고
- 공장별 보고대회
- 조별 분임토론 활성화
- 대의원, 대의원회의 직권조인 관행 분쇄 및 조합원의 직접민주주의 실현

한편 이런 권한과 권리가 현장권력을 이루는 것은 분명하지만, 공장위원회 운동으로 나아가는 ‘현장권력/생산통제권 쟁취!’는 이러한 작업장 주도권 수준을 넘어서는 것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작업장 생산질서에 대한 주도권은 여전히 기업의 경영권과 소유권이 자본에게 있는 한 언제든 되빼앗길 수 있기 때문에 불안정하며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현장의 권한·권리를 사측과의 협약으로 보장받고자 체결하는 단협이 언제든지 사측에 의해 휴지조각으로 전락되는 현실이 이 점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그래서 작업장 주도권을 넘어 경영권과 소유권에 대한 도전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항구적으로 이어질 수 없으며 곧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아니라면, 사측의 경영권·소유권을 신성불가침으로 인정하고 대신 ‘기업 내 분배투쟁’에 한정하는 한편 기업 울타리를 넘어서는 계급적 연대에 대해서는 철저히 방기하는 일종의 ‘담합적인 작업장 노사관계’를 형성하는 경우인데, 현재 현대차를 비롯한 완성차 대공장의 현장이 이러한 경향으로 빠져드는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조차도 기업 내 분배투쟁에 묶여 있는 한 결국 해당 업종·산업이 호황을 계속 유지하지 못한다면 무한정 지속될 수가 없다. 회사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는 어용·노사협조주의로 전락하든지 아니면 경영권·소유권의 문제를 제기하는 현장권력 쟁취운동으로 가든지 다른 길은 없는 것이다.

과거 대공장의 전투적 현장조직들이 제기한 현장권력 쟁취 슬로건이 모호하다고 비판받는 이유는 이런 문제에 대해 명확하지 못해서다. 작업장 주도권 수준을 넘어 경영권·소유권에 대한 침해로 나아가는 현장권력 쟁취운동은 세계 노동운동사에서 노동자 생산통제 운동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현장권력·생산통제권 쟁취운동은 단사에서 작업장 주도권의 확대 강화를 당연히 전제로 하지만, 그러나 그것의 점진적인 양적 성장의 과정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연쇄적인 공장점거파업 물결 같은 질적 비약을 수반하는 대중투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완전한 의미의 현장권력은 단위사업장 차원의 이중권력 상황을 뜻한다. 아직 경영권·소유권이 사측에 있지만 생산과 관한 문제에서 사측이 노동자의 동의 없이는 단 한 발짝도 마음대로 나아갈 수 없는 지점에 이를 수 있는데, 이런 상황이 이중권력이다. 그러나 이중권력 상황은 그 자리에 멈춰서 있을 수가 없는 것으로서, 노동자에 의한 기업몰수와 노동자 경영체제로 전진하든지, 아니면 현장권력 와해와 자본의 지배권 회복으로 역전하든지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현장권력·생산통제권 쟁취운동은 단위사업장의 노자 간 세력관계를 넘어 전반적인 계급투쟁의 세력관계를 반영한다. 전체 계급투쟁과 분리되어 고립된 한 단사에서 자본의 경영권·소유권에 도전하는 운동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생산통제권 쟁취운동은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 즉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소유권 문제가 전면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현장권력·생산통제권 쟁취운동은 전반적인 계급투쟁 고양기에 일반화되고 기업몰수·국유화 요구로 발전하여 급속히 노동자권력 쟁취투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한 계기를 점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세계 노동운동사를 보면, 현장권력·생산통제권 쟁취운동은 보통 전국적인 공장평의회운동 형태를 취했다. 관료화된 상층 중심의 산별노조로는 그 같은 현장 평조합원 대중운동을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노동조합과는 독립적인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노동조합(산별노조)은 현장권력의 조직적 표현으로 기능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현장/작업장을 직접 대표하는 독자적인 조직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20세기 초 러시아 노동자혁명의 여파로 전개된 독일(공장대표자회의[오블로이테] 또는 평의회[레테]), 이탈리아(공장평의회), 영국(단위사업장위원회)에서의 운동을 비롯하여 68년 혁명 당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70년대에는 칠레(코르돈[산업통제위원회])와 이란혁명(평의회[쇼라])에서, 그리고 현재의 베네주엘라(차베스의 볼리바르 운동과는 별개로 아래로부터 전개되고 있는 노동자 생산통제를 통한 기업몰수·국유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② 영업비밀 철폐·노동자 산업통제!

노동조합 경영참가의 전제조건으로 회사의 기밀을 절대 유출하지 말 것을 명시하고 있는 자본이 회사 전체의 기밀인 영업비밀의 철폐에 결사반대할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영업비밀은 경영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능한 한국자본주의는 대중적 반발에 직면해 있다. 사회주의자의 영업비밀 철폐/노동자 산업통제와 동일한 요구는 아니지만 잠재되었던 대중적인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분양가 원가 공개, 정유사의 이윤구조 공개 요구가 그것이다.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아파트와 기름 값에 대한 분노가 분양가 원가 공개와 정유사의 이윤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로 확장된 것이다. 하지만 건설사, 정유사에 대한 분노는 독과점에 의한 탈법적 담합구조, 이를 통한 부당이익의 창출에 대한 문제제기에 한정되어 있다. 착취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모순을 깨는 방향이 아니라 적법한 방법으로 적당한 이윤창출을 하라는 요구로 축소된 것이다.

이렇게 축소된 요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한 몇몇 산업과 회사에 수백억의 부담금을 추징함으로써 자본주의를 합리화, 강화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부담금을 추징하지 않는 산업이 있는가. 아이 분유 값부터 부동산 분양가까지 노동자, 민중의 삶에 직결되어 있는 독과점 대기업 중 부담금 추징을 당하지 않은 대기업이 있는가.

현 시기 대중의 불만은 분유 값, 기름 값, 분양가 담합에 따른 폭리추구에 있다. 따라서 자본에 요구하는 것도 적정이윤을 추구하라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시민단체를 포함한 모든 개량주의자들의 요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폭리추구를 적정이윤으로 변경하라는 것으로는 자본주의 사회를 바꿀 수 없다. 적정이윤이 얼마야 되는지 판단하고 결정할 단위는 더더욱 없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는 교환, 유통에서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영역에서 창출한다는 점이다. 독과점 대기업들의 폭리추구에 대한 불만이 생산영역에서의 착취에 대한 반대투쟁으로 발전하지 않고선 자본주의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꾀할 수 없다.

세계자본주의의 발전은 한 나라 안에서 안주하던 독과점 대기업들에게 무한경쟁이라는 철퇴를 가했다. 대기업들은 이윤을 확대하기 위해 폭리추구보다 생산영역에서의 착취를 강화하는 방법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비정규직의 급속한 확대가 하나의 예이다. 이는 어느 한 산업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체 자본가가 추구하고 있는 방법이다. 대기업이 일괄적으로 추구하는 또 다른 방법은 납품단가를 인하하여 중소기업의 이윤을 수탈하는 것이다. 납품단가 인하는 자동차, 전자, 철강, 조선, 화섬 등 제조업 전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한국 제조산업이 대기업 및 대기업에 하청 계열화되어 있는 중소기업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IMF 이후 대기업들은 막무가내로 납품단가를 인하했다. 납품단가 인하 반대투쟁이 벌어지고 반대여론이 일자 대기업들은 교묘한 방법을 찾아냈다.

중소기업과의 상생경영의 성공으로 추겨 세웠던 포스코는 납품단가를 인하하기 위해 납품업체들에게 영업비밀의 모든 것을 넘길 것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대기업은 중소자본의 영업비밀을 입수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중소사업장을 구조조정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강변한다. 물론 납품업체에 적정이윤을 보장한다고 포장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세계자본주의 무한경쟁은 대기업들로 하여금 중소자본의 영업비밀까지 공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요구가 아니라 대기업의 생존을 위해 중소자본을 강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자본은 경영권·소유권이라는 명분으로 무소불위 권한을 사용하고 있다.

무소불위의 대기업 횡포에 맞서 투쟁하고자 하는 민주노동당은 왜곡된 대안을 제출한다. 대선에 나섰던 민주노동당 권영길은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임원들과 간담회를 갖은 자리에서 한 임원이 “이제 중소기업인들도 여의도에 가서 데모라도 해야 될 상황”이라고 하소연하자 “데모라면 민주노동당과 함께 하자”며 “민주노동당과 중소기업이 동지적 관계를 맺자”고 말했다.

이어 권영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실질적인 공정거래 확립을 위해 수급사업자의 영업비밀에 속하는 기술 및 원가산정자료의 제출요구 금지 신설 등을 제시했다. 이는 수급사업자인 중소자본의 영업비밀을 지켜주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사회주의자는 개량주의자와 다르게 대자본에 의해 강제되고 있는 중소자본의 영업비밀 철폐에 대한 공세를 대자본의 경영권·소유권에 대한 침해로 확대해야 한다. 오히려 중소자본의 영업비밀을 보장함으로써 대자본의 경영권·소유권을 지켜주기보다는 중소자본의 영업비밀 철폐를 요구하는 것만큼 대자본의 영업비밀 철폐를 전면적으로 제기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기업이 이윤극대화를 위해 납품단가 인하를 강요하고 중소자본을 구조조정한다면 대기업 자신은 일상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분기별 1조 원 이상 이윤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한 삼성전자, 최대이윤을 6년간 갱신하면서도 임금인상률을 낮추고 비정규직을 확대해온 현대·기아차,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면서도 협력업체의 납품단가 인하를 강제하는 포스코 등 이윤에 혈안이 되어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을 마구잡이로 강탈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은 아무것도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뿐이다. 대자본은 자신의 구미에 맞는 통계와 재무제표로 노동자계급을 현혹시키고 희롱한다. 3분기 연속적자라며 기아차노조의 임투를 회사를 망하게 하는 투쟁이라며 융단폭격을 가했던 현대·기아차자본이 한 달도 안 돼 ‘흑자전환’ 사실을 스스로 밝히지 않을 수 없었던 경우가 그렇다. 이런 방법은 자본가계급이 취하는 한 사례일 뿐이다. 만약 연속적자에 따른 임금동결이 아니라 정리해고를 단행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데올로기에 압도되어 자본에 동의하거나, 소극적으로 투쟁에 임하든지 하게 될 것이다. 조합원 다수는 조건 없이 회사 살리기 운동의 포로가 될 것이다. 대자본은 회사 살리기에 포섭된 노동자계급을 희생시킴으로써 위기탈출에 성공할 수 있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제출한 ‘노동자 살리기’ 운동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까? 경영권·소유권 전반에 대한 노동자의 개입 없이 노동자 살리기 운동을 확대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경영권·인사권·소유권 전반에 대한 노동자의 개입은 영업비밀 철폐로 실현할 수 있다. 노동자 살리기 운동에 동참한 노동자계급은 노동자계급의 희생 없이 기업, 산업, 국가경제를 활성화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노동자 살리기 운동은 접대비, 기밀비, 은폐된 비자금 등 자본주의 병폐에 칼을 댈 것이며 더 나아가 그룹 총수, 대주주의 주식매각을 통한 운영자금 확보 등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생산직 노동자 평균임금보다 높게 받는 임원, 중간관리자의 월급을 대폭 삭감하는 것을 통해서도 운영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우리는 과거 노동자 살리기 운동을 전개하자고 했으나 노동자 살리기 운동의 방향을 적확하게 잡지 못했다. 노동자 살리기 운동은 자본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 시작한 노동자통제에서 영업비밀 철폐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영업비밀 철폐투쟁은 모든 형태의 구조조정에 맞서 투쟁할 기반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경영의 기초를 놓을 수 있다.

영업비밀 철폐에 기초하지 않고서는 수백, 수천의 사업체가 하청 계열화되어 있는 산업에 대해 노동자통제를 실행할 수 없다. 착취는 제조업 완성사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중간부품사, 유통업체를 통해서도 이뤄지기 때문이다. 다단계 유통과정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착취의 연쇄사슬로 구성되어 있다. 영업비밀 철폐에 기초한 노동자 산업통제는 단위기업, 산업에서 착취에 대한 근본적인 투쟁을 감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다.

게다가 자본가계급과 영업비밀 철폐를 놓고 투쟁하는 과정 자체, 노동자 산업통제를 둘러싼 투쟁은 자본가국가의 본질을 밝혀준다. IMF 당시 대기업의 붕괴를 커버한 것은 공적자금이라는 미명 하의 국가자본이었다. 공적자금 투입으로 본다면 재벌의 국유화가 이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공적자금이 투여된 대기업은 소위 채권단과 경영진에 의해 무리 없이 운영되었고 공적자금을 댄 노동자, 민중은 그 결과 정리해고의 희생양이 되었을 뿐이다. 자본의 힘을 강화하고 노동자투쟁을 짓밟는 것이 국가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업비밀 철폐와 노동자 산업통제를 내걸고 투쟁해온 과정이었다면 공적자금을 투입하려는 국가의 의도와 부딪칠 수밖에 없다. 공적자금 투입으로 ‘자본의 질서’를 회복하려는 국가와 자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노동자계급 사이의 투쟁은 격렬해질 수밖에 없다. 자본의 질서를 회복하려는 국가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국가권력 장악으로 나아가도록 노동자계급 대중을 자극할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는 이상, 전면적인 위기상황의 노동자투쟁조차 찻잔속의 태풍 밖에 되지 않으며 노동자계급의 국가권력 장악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③ 공장위원회 - 현장권력·생산통제권 쟁취의 조직적 표현

노동조합이 생존권 방어투쟁에 있어서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공세적 운동에서는 반대의 태도를 취한다. 기업과 자본을 전제로 하는 노동조합은 자본의 하위파트너로 전락한다. 200여 년에 가까운 서구 노동조합운동사나 20년간의 민주노조운동이 이를 경험적으로 입증한다.

민주노조운동의 초창기 민주성·자주성·계급성·전투성을 회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멈춰서는 안 된다. 이미 산별노조로 전환했으며 민주노동당과 양날개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이상 과거 운동의 회복만으로는 어렵다. 민주노총, 산별노조가 사회민주주의 전략·전술에 입각해 개량주의를 확대하고 있고 이에 따라 노조 내 노사협조주의 강화, 노조의 체제내화가 심화되고 있는 이상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노동조합이 사회연대전략, 노동자 경영참가를 주된 전략으로 삼고 대중운동을 조직하고 있다. 이는 대중행동강령과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대중행동강령을 가지고 노동조합 내부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을 통해 온전하게 대중행동강령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노사협조주의로 경도된 노동조합이 전략적으로 노동자 경영참가가 아닌 노동자통제, 영업비밀 철폐, 노동자 산업통제를 걸고 자본에 맞서 투쟁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노조운동은 조직적으로 새로운 문제에 봉착해 있다. 비정규직 문제다. 지금껏 민주노조운동은 비정규직문제 해결에 실패했다. 겨우 찾아낸 것이 산별노조와 사회연대전략 정도이다. 하지만 산별노조는 비정규직 조직화에 실패하고 있으며 사회연대전략은 비정규직문제 해결을 비껴가게 만들고 있다.

850만의 비정규직 조직화는 비정규직투쟁의 우회가 아니라 정면 돌파할 새로운 조직을 필요로 한다. 비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 철폐, 정규직화 요구를 걸고 투쟁하는 점에서 계급적이며, 노조로서 인정받기 어렵다는 이유로 전투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악조건으로 인해 노동조합으로 굳건하게 서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비정규직노조는 계급투쟁의 중요한 무기다. 그러나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공동투쟁 없이는 자본에 맞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정규직 노동자, 정규직노조의 의식전환 없이는 정규직노조도 약화될 것이며 비정규직노조는 더 많은 패배를 할 것이다. 패배의 결과는 노동자계급의 파괴로 이어질 것이다.

산별노조는 동일 사업장 내의 비정규직을 단일지부·지회 조합원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문제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조직형식적인 단일화가 비정규직문제의 해법이 아님은 기아차 정규직노조의 반노동자적 태도로 드러났다. 개량주의의 득세로 비정규직문제 해결은 장기전으로 진행될 것이다. 정규직노조의 이해와 비정규직노조의 이해가 상충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일노조라고 해서 정규직·비정규직의 단일한 공동행동을 내올 수 없을 것이다. 정규직노조는 기존의 정규직 조합원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을 탈피하지 못할 것이다. 노조 차원의 선동과 투쟁이 배치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비정규직투쟁의 중요성을 인식한 활동가에 의한 선동과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 선동과 투쟁 요구가 노조와 상충하는 상황은 어려움을 배가시킬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투쟁을 회피하거나 우회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모든 계기를 활용해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을 강화할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인위적으로 공장위원회를 창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사회주의자들의 일상 활동은 공장위원회를 예비하며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는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연대를 강화하는 사업, 궁극적으로 대중행동강령을 현장에서 실현하기 위한 사업을 통해 공장위원회를 예비한다. 노동조합의 생존권 사수를 위한 방어적 투쟁으로 시작하는 파업위원회일지라도 여기에 개입해 파업위원회의 내용과 성격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에서 요구 상으로 생존권 사수를 위한 방어적 투쟁이 형식상으론 전투적 공장점거파업으로 전개되는 것을 10년 넘게 목격했다. 여기서 방어적 투쟁이 공세적 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공장위원회가 나타날 수 있다.

민주노조운동은 아직도 쟁대위를 구성한다. 대의원대회에서 선출되는 쟁대위는 노동조합 골간체계가 형식적으로 전환한 형태를 취한다. 따라서 교섭체계가 고스란히 쟁대위체계로 바뀌게 된다. 쟁대위를 진정한 파업위원회로 강화하는 것은 현장투쟁대표자들을 쟁대위로 포함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또한 조합원 여부와 상관없이 비정규직투쟁 대표자들 또한 포함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체인력으로 내몰리지 않고 파업투쟁의 주체로 끌어올려지도록 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는 의식적으로 쟁대위를 진정한 파업위원회로 강화하는 사업을 해야 한다. 전국적 파업위원회 운동은 쉽게 파괴되지 않을 것이며 공장위원회로의 발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적 파업위원회 운동으로 등장한 공장위원회는 대중행동강령의 담지체가 되어야 한다. 공장위원회가 실행해야 할 비정규직 철폐, 노동시간 연동제, 노동자통제, 영업비밀 철폐, 재벌 대기업 몰수, 은행 몰수, 국가기간산업 운영·통제투쟁 등 이러한 투쟁들만이 노동자계급을 노동자 생산통제에서 나아가 국가권력 장악투쟁으로 이끌 수 있다. 공장위원회 운동은 단위사업장 차원에선 자본과의 이중권력 상태를 만들지만 전국적 차원에선 자본가계급과 이중권력 상태에 놓이게 한다. 이중권력 상황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선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이 공장위원회 운동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 쟁대위를 진정한 파업위원회로 강화하기
- 비정규직을 비롯한 현장의 전체 노동자를 포괄하는 파업위원회 구성
- 강력한 파업을 위해 노동자민주주의 강화하기
- 파업위원회의 지역적, 산업적, 전국적 연결망 조직하기
- 지역적, 산업적, 전국적 파업위원회를 공장위원회로 발전시키기

7. 몰수·국유화

① 재벌 대기업 몰수·국유화

노동자통제 운동이 경영권과 소유권에 대한 공세로 나아가려면 재벌 몰수·국유화 투쟁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는 제조산업 전체가 재벌 독과점의 하도급체계로 이뤄진 한국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해 꼭 선점해야 할 관제고지다.

한국 자본가계급은 98년 IMF를 빌미로 금융·기업·공공·노동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신자유주의를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강제한 것이다. 이전까지 대마불사로 불린 재벌들은 금융·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속수무책으로 파산했다. 재벌에 대한 부르주아적 개혁이 단행된 것이다.

한보, 기아그룹의 부도사태에서 출발한 대공황은 재벌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16개의 재벌과 5만 개 이상의 중소기업, 10만 명 이상 몰락한 자영업자, 수백만 명의 실업자를 양산한 IMF 사태의 중심에는 정경유착으로 성장한 재벌문제가 놓여 있었다.

한국 경제위기가 재벌체제(정경유착으로 성장한 재벌, 순환출자를 통해 적은 지분으로 그룹을 경영하는 1인 총수체제, 상호채무보증, 문어발식 경영 등)에 있음을 주장한 부르주아 개혁 세력은 재벌개혁에 전면적으로 나섰다. 재벌위기의 진단만큼이나 재벌에 대한 대책도 일관됐다. 재벌개혁의 주요과제로 경영투명성 제고, 상호채무보증 해소, 업종전문화를 위한 빅딜, 주주권 강화, 책임경영체제가 제출되었다. 

IMF 시기 동안 30대 재벌 중 16개의 재벌이 파산했다. 빅딜에 의한 업종전문화가 시도되었고, 현대그룹은 ‘왕위승계’ 과정에서 자동차, 건설, 금융, 유통 등으로 쪼개졌다. 이로 인해 업종전문화 된 재벌이 등장했다. 기업의 경영투명성 제고를 위한 사외이사제도가 도입되었고, 상호채무보증 해소도 이뤄졌고, 소액주주의 권한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재벌문제는 하나도 해소되지 않았다. 여전히 재벌은 한국의 경제·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괴물이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부르주아 개혁세력의 재벌문제 해법은 오히려 주주자본주의(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시 하는 것이 경제를 원활하게 발전시킨다는 자본주의 이론·정책)를 강화해 재벌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경제공황을 극복하고 더 잘 살기 위한 경제체제를 만든다는 재벌개혁이 김대중, 노무현정권 10년 동안 진행되었음에도 현실은 2 대 8 사회에서 1 대 9 사회로 더 가혹해졌을 뿐이다. 이제 빈익빈 부익부는 사회주의자의 주장이 아니라 부르주아 사회학자들의 단골메뉴가 되었다. 신문, 방송 등 자본가언론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실태를 고발하고 있을 정도다. 오히려 이는 재벌개혁 이후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르주아 개혁세력의 재벌개혁이 노동자, 민중의 삶을 한 치라도 더 좋아지게 하기는커녕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의 삶의 질을 진일보시키겠다며 단행한 금융·기업·공공·노조의 구조조정이 가진 자들을 위한 개혁이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사회를 1년이라도 살아본 사람이라면 한국경제가 재벌을 중심으로 한 하도급체계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재벌에 대한 조처 없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기정사실이다.

재벌 중심의 하도급체계 경제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 격차가 심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미 2000년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은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대기업들이 이윤을 확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납품단가를 인하하여 중소기업을 수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납품단가 인하는 곧바로 중소자본의 이윤하락으로 나타나며 중소업체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강화로 이어진다. 착취강화는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을 불안하게 만든다. 중소자본가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확대, 이주노동자 확대로 자신의 이윤을 확보하려 하기 때문이다.

대자본에 종속된 중소자본은 대기업이 저지르는 만행에 분노하지만 이에 맞서 투쟁하기보다 노동자착취를 강화하는 것으로 살 길을 모색한다. 중소자본의 더 심해진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억압의 책임을 대기업노동자의 이기주의로 몰아가면서 대기업과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고 노동자계급 사이를 이간질시킨다. 투쟁의 포문이 재벌로 향할 수 없게 말이다. 재벌은 세계자본주의의 무한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마른 수건도 다시 짜는 감량경영이 필수적이라고 변명한다. 이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감량경영 이데올로기의 수혜자는 세계 각국의 초국적자본, 금융자본이며 피해자는 정규직,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할 것 없이 세계의 모든 노동자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무한착취, 정경유착, 특혜금융, 부동산투기로 성장한 재벌이 중소기업에 대한 납품단가 인하를 강제해 제 배만 채우는 모습이 부각됨에 따라 재벌에 대한 반감은 커져간다. 최근 삼성, 현대·기아차그룹의 편법 상속 기도, 한화그룹 회장의 살인적 폭행, 대우그룹, 두산그룹의 분식회계 등 온갖 범죄로 무장한 비윤리, 반도덕적 경영도 반재벌 정서에 한 몫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반기업 정서의 실체 파악을 위한 조사연구>에서 반기업 정서는 재벌과 총수에 대한 반감이 가장 크게 나타났으며 이들의 불법·탈법 행위와 부도덕한 경영, 정경유착 등이 원인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반기업 정서의 대상은 재벌이 91.5%, 오너경영인(총수)이 76%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이어 부자 61.5%, 공기업 55.0% 순으로 나타났다. 기업에 대한 호감도 조사에서는 노조간부 19.0%, 일반국민 37.8%로 경제전문가 78.4%, 국회의원 68.6%보다 현저하게 낮게 나타났다. 이는 재벌을 중심으로 한 한국경제체제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2006년 12월, 부자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인 방법으로 부 축적’이 67.1%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해서 부 축적’(32.9%)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비록 2003년 12월, ‘부정적인 방법으로 부 축적’ 76.8%, ‘정당한 방법으로 부 축적’ 19.1%보다 부 축적에 관한 인식이 좋아졌다 해도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다는, 부에 대한 일반화된 반감은 여전히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재벌 스스로 여전히 높은 반기업 정서를 극복하고자 생색내기 사회공헌, 광고를 통한 이미지 제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기업 알리기 등 온갖 노력을 한다. 보수언론조차 반기업 정서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의 투명성 확보와 엄정한 법 집행을 조언할 정도다. ≪매일경제≫, ≪중앙일보≫ 등의 부르주아 경제 해설하기, 재테크에 관련한 다양한 방송 등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의 우월성과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희생할 것을 주입시킨다. 부동산, 주식, 펀드, 미술품 등 투기를 통해 자산가치를 높이는 데 모든 관심을 쏟도록 유도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모든 이들을 투기자로 만들고 투기를 통한 부의 축적을 정당한 부의 축적으로 만들어간다. 모든 투기가 정당하고 일상화되는 세상은 대다수의 노동자, 민중을 더 큰 파멸로 몰아갈 뿐이다.   

10년에 걸친 부르주아 개혁세력들의 재벌개혁이 재벌을 강화하고, 사회를 더욱더 양육강식의 정글자본주의로 바꿔놓았다. 경제발전이 자동으로 노동자, 민중의 삶을 풍요와 행복으로 이어지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드러났다. 경제발전이 노동자, 민중의 풍요와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는 것은 재벌에 대한 근본적인 조처 없인 불가능하다는 점도 모든 피착취계급에게 분명해졌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한 민주노동당은 강령에서 민주적 경제체제의 실현을 위해 “첫째, 재벌을 해체하고 민주적 참여기업을 확산한다”고 밝히면서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출하고 있다. “국민경제를 장악하고 경제모순을 심화시키고 있는 재벌체제를 해결하는 관건은 총수 일족이 경영을 독점하는 기반인 소유문제를 바꾸는 것이다. 단순히 소유와 경영의 분리나 소유분산이 아니라 사회적·공공적 소유의 지배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총수 일족의 지분을 공적기금을 활용해 강제로 유상환수하여 재벌을 해체하고, 또 해당 기업의 노동자를 비롯해 다수 국민들이 소유에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 참여기업으로 전환한다.”

재벌몰수·국유화, 은행 국유화, 국가기간산업 국유화는 새로운 사회주의 경제체제로 나아갈 수 있는 관제고지다. 따라서 민주노동당도 경제체제의 변화를 꾀하려는 이상 재벌에 대한 장악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재벌몰수가 강령에 있느냐가 아니라 재벌몰수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냐에 있다.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는 곧바로 유상환수냐 무상몰수냐의 해법으로 이끈다.

표면적으로는 민주노동당의 강령대로 200조 원이 넘는 국민연금, 수십조의 공무원연금 등 공적기금을 가지고 총수일가의 지분을 살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총수 일족이 자신들의 사회에 대한 지배력이자 자손만대의 부 축적의 기반인 재벌을 몇 십조 원에 팔아넘길까? 총수 일족이 미치지 않은 이상 절대로 팔아넘기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도 ‘강제로’ 유상환수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가 사회주의로 평화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실험한 최고의 방안은 스웨덴에서 벌인 기금사회주의다. 임금노동자기금 정책으로 불리는 것으로, 연대임금정책의 수혜자인 대기업에게 초과이윤만큼 주식을 노조에 적립시켜 30년 후에는 노조가 대기업의 최대주주가 되도록 하는 정책이다. 이를 통해 평화적으로 사적 소유에서 사회적 소유로 이행하도록 만든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 하에서 수십 년 동안 협조해 온 스웨덴 대기업 자본은 임금노동자 기금정책에 사활을 걸고 반대투쟁을 조직했고, 40여 년의 사회민주주의 집권세력을 무너뜨렸다. 사회민주주의가 수십 년 동안 대세였던 스웨덴에서조차 ‘총수 소유의 통제’에서 ‘사회적 소유의 통제’로 이행시키는 데 대자본의 극렬한 저항에 직면했는데 재벌의 나라인 한국에서 어떻게 강제할 것인가?

한국에서 강제할 유일한 방안은 국가권력의 강제력을 동원하는 것 외에 없다. 여기서 문제는 민주적 선거로 집권했다 해도 사적 소유를 사회적 소유로 전환시킬 때 대자본과 이에 종속되어 있는 중소자본 및 중간계급의 저항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재벌에 대한 조치가 한국경제체제의 관제고지를 장악하는 것이라는 걸 훨씬 명확하게 알고 있는 자본가계급과 중간계급에게 무저항으로 정책을 따르라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얘기일 뿐이다. 게다가 선거에서의 승리가 곧바로 자본가 국가기구의 해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공상에서나 가능한 조치이다.

사적 소유를 사회적 소유로 전환하는 것은 의회를 통한 평화적 정책으론 불가능하다. 이는 모든 나라의 혁명의 역사가 증명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이 선거를 통해 집권하고 집권한 후 ‘강제로’ 유상환수한다는 것은, 유상환수임에도 불구하고 혁명을 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자본가계급이 정책의 옳고 그름으로 자신들의 사적 소유를 놓았다 말았다 했다면 수천만 명을 학살한 이 불합리한 자본주의 체제는 이미 예전에 끝장났을 것이다.

선거를 통한 집권, 집권을 통한 사적 소유의 사회적 소유로의 이행을 꿈꾼다면 그것은 언제나 꿈으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대중투쟁을 통한 재벌몰수는 무상몰수임에도 유상환수보다 실현 가능성이 있다.

세계자본주의의 무한경쟁체제는 재벌 대기업들로 하여금 무한착취를 강제하고 있다. 글로벌 TOP-5만이 생존 가능한 약육강식의 게임이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도요타를 따라잡기 위한 현대·기아차는 7년간의 최대이윤 갱신에도 불구하고 낮은 임금인상으로 대응하고 있다. 임금만이 아니다. 최적의 생산, 높은 생산성 향상, 최대이윤을 외치며 기존 단협마저 마구 위반하며, 현장대의원과의 합의서 위반도 물마시듯 한다. 최대이윤 달성의 이면에는 현장노동자들이 과로사로 죽어나가고,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세계 7위에서 5위로 된다고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무한경쟁체제에서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으로 오지 않는다. 도요타처럼 1위의 대자본조차 1위 고수를 위해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주는 노동자들이 부리고 돈은 자본가 놈들이 싹쓸이해가는 것이다.

GM, 포드의 구조조정이 세계경쟁에서 비교우위로 등장하면 다른 대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진다. 끊임없는 일상적인 구조조정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잡코리아≫에 따르면 기업 1,053개를 상대로 인력 구조조정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가운데 24.9%는 현재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형태별로는 대기업이 30.6%로 가장 높았다. 불황도 아닌데 일상적인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다. 더 이상 기업의 번영이 ‘노동자의 신분보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2002년 10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주요 연맹산하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실시한 재벌개혁 방향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재벌 해체 51.8%, 책임전문경영체제 도입 25.9%, 재벌 가족지분 몰수와 사회화 22.3%로 나타났다. 재벌해체가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은 설문에서 재벌개혁의 구체적 내용인 책임전문경영체제 도입과 재벌 가족지분 몰수 및 사회화가 비슷한 수준으로 나왔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재벌에 대한 일반화된 반감을 일상적인 대중투쟁에 결합시키고, 일상적인 대중투쟁을 재벌몰수투쟁으로 상승시키는 작업을 한다면 재벌몰수투쟁은 터무니없는 투쟁으로 치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에서 새로운 사회주의 경제체제로의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선 먼저 재벌몰수를 통해 관제고지를 장악해야 한다.

재벌몰수투쟁에 나선 노동자계급은 단위사업장에서 시작하는 파업위원회, 공장위원회로 조직될 것이다. 재벌의 사적 소유에 대한 단위사업장 차원의 민주적 통제는 파업투쟁으로 등장한 파업위원회, 공장위원회를 통해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재벌몰수 후 전국 차원의 경제건설은 전국 공장위원회 회의 산하기구에서 담당할 것이다. 수십조가 되는 재벌총수의 재산과 1,000대 기업이 가지고 있는 360조원의 사내유보금은 새로운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유용한 자금으로 사용될 것이다.

② 은행 및 금융업체의 몰수·국유화, 신용체계의 국가관리

트로츠키는 ≪이행강령≫에서 “제국주의는 금융자본의 지배를 의미한다. 은행은 경제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력을 장악하고 있다. 조직구조에서 은행은 현대 자본 전체의 구조를 응축된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즉, 독점 경향을 무정부성 경향과 결합시키고 있다. 은행은 기술수준의 기적, 막강한 트러스트 등을 창조해낸다. 그리고 높은 물가, 경제위기, 실업 등도 은행의 소행에 따른 결과이다. 은행통제권을 약탈적 자본가들이 가지고 있는 이상 독점자본의 횡포와 자본주의의 무정부성에 대항하는 투쟁은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는 자본가계급으로부터 민간은행을 무상몰수·국유화하지 않고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현 시기 골드만삭스, JP모건, 씨티은행만 떠올려 봐도 이는 진실임이 분명하다. 트로츠키 생존 시절에는 없었던 투기자본인 헤지펀드의 약탈을 고려한다면 금융자본의 지배는 더욱 강화되었다. 금융자본의 지배가 세계를 투기자본의 사냥터로 만들어 놓았다. 매분, 매초 노동자와 민중은 부지불식간에 사냥당하고 있는 것이다.

투기자본의 폐해가 누적되면서 노동자, 민중의 반발이 커지자 지배계급 일부와 개량주의자들은 투기자본(금융자본)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토빈세 도입을 제창하고 있다. 토빈세란 미국의 부르주아 경제학자인 제임스 토빈이 제안한 것으로, 국제금융거래에 0.5% 정도의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이었다. 토빈세 도입은 헤지펀드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조지 소로스도 찬성하고 있다. 문제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캘리니코스 같은 급진좌파도 이 토빈세를 제기하며, 심지어는 이행강령에 포함시키기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토빈세가 국제금융거래를 효과적으로 제재하여 경제위기를 막고, 부자들로부터 부를 거둬들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부의 적절한 재분배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철저한 환상이다.

첫째, 투기자본을 포함한 금융의 자유이동은 경제위기의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더 중요한 원인은 여러 산업, 상업자본가들이 돈벌이에 눈이 멀어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극도로 억누르면서 생산능력을 최대한 확장하는 것에 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세계적인 과잉생산위기를 낳는다. 세계 자동차생산만 해도 약 2,500만 대가 과잉이다. 이 때문에 각국 자동차산업 및 연관 산업 전반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심각한 불안정의 안개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따라서 토빈세 신봉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투기적’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현대·기아차, 도요타, GM, 삼성전자, 소니, 몬산토, IBM, 셸과 같은 ‘생산적’ 기업들이 경제위기의 배후 원흉임이 분명하다.

둘째, 토빈세는 금융투기꾼들의 활동을 저지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장치가 못 된다. 설사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해도, 0.5%의 세금이 막대한 이익을 노리는 금융투기꾼들의 발목을 잡기는 어렵다. 조지 소로스가 토빈세 도입에 동의하는 것도 투기꾼으로 몰리기보다 적당한 세금을 내는 것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를 뒷받침하는 투자자로 인정받고 싶어서일 뿐이다. 그런데 만약 몇몇 정부가 이 수준을 넘는 세금을 부과하려 하면, 세계적인 금융투기자들은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런 정부들을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공격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 맞서 격렬하게 투쟁하지 않고서는 그들이 0.5%라도 토해내도록 강제할 수 없다. 그런데 현재의 정부들은 자본가들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하는 ‘자본가들의 중앙집행위원회’이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온통 혈안이 돼있다. 이 점을 고려하면 자본가정부가 토빈세로 국제금융거래를 강력히 규제하길 바라는 것은 나무에 가서 고기를 찾는 것처럼 어리석을 뿐이다.

결국 은행자본의 사적 소유를 인정한 상태에서 고양이 눈물 정도로 규제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 없으므로 은행자본의 몰수, 국유화로 과감하게 나아가야 한다.

은행의 몰수가 은행저축의 몰수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단 하나의 국영은행은 수많은 민간은행들보다 소액예금자들에게 훨씬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 같은 방식으로 국영은행만이 농민, 소매상인, 소규모 도매상인들에게 유리한, 즉 값싼 대부를 해줄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전체 경제, 특히 대규모산업과 수송을 단 하나의 금융기관이 지원할 경우 노동자를 비롯한 근로인민의 중요한 이해가 더욱 증진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편 대중의 불만은 현재 광고를 장악하고 있는 금융업체인 고리대금 대부업체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대부업체의 광고에 출연한 연예인까지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은행에서 배제당한 민중이 피눈물을 흘리면서 악덕 고리업체인 대부업체의 먹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고리대금업을 하는 대부업체를 몰수하기는커녕 대부업체가 늘어나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 게다가 고리대금업을 터부시 해 왔던 국민은행조차 높은 이자율에 침 흘리며 가담하고 있는 지경이다.

제1금융권인 은행이나 카드업체는 대부업체와 다르게 깨끗한 척 하고 있으나 5년 전만 해도 카드대란의 주범이었다. 은행과 카드업체는 수백만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했다. 신용을 이용해 미래의 부를 미리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사용했지만 이는 더 큰 위기를 양산했을 뿐이다. 카드대란의 여파로 아직 3백만이 넘는 신용불량자들(대부분이 비정규직, 실업자다. 비정규직은 실업의 빈곤이 아닌 ‘일 하는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빚 청산은 생계 이후의 문제다)이 채무변제 압박과 신용불량의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카드대란 전의 IMF 경제위기도 금융과 직결되어 있다. 자본주의의 핏줄인 금융산업은 최대이윤을 목적으로 모든 산업에 걸쳐 과잉투자가 이뤄졌고, 이는 이윤율 저하와 더불어 과잉생산공황으로 이어졌다. 자본주의의 무정부정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경제위기의 결과 부는 더 소수의 산업자본가와 은행자본가에게 집중되었으나 수백만의 노동자계급은 실업과 임금삭감, 비정규직으로의 전락, 자살, 가정파괴로 고통당해야 했다. 대중의 불행 위에 자본주의 경제위기는 무사히 안정을 되찾았다. 수백 년의 자본주의 경제위기는 언제나 대중을 희생시킴으로써 자본의 질서를 확립해 온 역사였다. 그 역사가 한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IMF 이후 한국의 은행은 세 가지 변화를 겪는다.

첫째, 외국계 지분의 확대다. 예를 들어 외국은행에 매각된 시중은행을 제외하고 국민, 신한, 하나은행의 외국계 지분율은 2006년 1월 기준으로 각각 85%, 60%, 75%에 달한다.

둘째, 중소·지방은행이 대은행 중심으로 합병되었다. 세계은행에 경쟁하기 위해 덩치 키우기를 했다. IMF 이후 8년 만에 한국의 은행들은 29개에서 11개로 줄고, 대형화했다. 가령 다음과 같다. 우리금융지주회사 = 상업은행+한일은행+평화은행+광주은행+경남은행, 신한금융지주회사 = 조흥은행+충북은행+강원은행+신한은행+동화은행+제주은행, 하나은행(하나금융지주회사) = 하나은행+충청은행+보람은행+서울은행, 국민은행 = 국민은행+대동은행+장신은행+주택은행+동남은행, 한국씨티은행 = 한미은행+경기은행+씨티뱅크서울지점.

셋째, 선진금융 도입으로 은행이 투기에 능수능란해졌다.

이로부터 은행이 점점 더 소수 은행자본의 손에 집중되고 있으며, 국내은행이 거대 외국은행과 결합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소수의 은행자본가들이 바로 산업자본가들과 유착해 한국 노동자의 피땀을 쥐어짜는 데 앞장서고 있고, 첨예한 경쟁과 과잉생산 등을 부채질하며 자본주의의 위기를 날로 가속화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은행들을 몰수, 국유화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 통제할 필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의 재벌몰수와 은행몰수·국유화는 세계정치·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IMF 이후 코스피에서 외국인 지분은 꾸준히 확대되어 43%의 지분율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 지분이 안정성과 높은 배당이 보장되는 핵심 대기업에 집중되어 있어 대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은 대부분 50%를 넘어선지 오래다. 따라서 재벌몰수와 은행몰수·국유화는 세계경제를 파탄의 도가니로 처넣을 수 있으며 국제 자본가계급의 총공세에 몰리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전국 공장위원회 회의를 통해 재벌·은행몰수를 단행하고 계획경제를 실현하는 것은 곧 국제주의 혁명으로 전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경제위기는 단순히 금융기관의 위기에서 오지 않는다. 금융기관의 위기는 생산자본의 위기를 배경으로 응축적으로 표출된다. 따라서 재벌 대기업 몰수, 은행몰수·국유화투쟁은 긴밀히 연동될 수밖에 없다. 비록 산업자본, 상업자본의 파산이 시차를 두고 이뤄질 수 있다 해도 전반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선 순차적 파산보단 대대적인 파산이 이루어지므로 재벌몰수와 은행몰수·국유화를 연동시켜 제기해야 한다.

재벌몰수와 은행 및 금융업체 몰수·국유화는 자본가계급의 완전한 경제적 청산과 실제적인 계획화로 이어지는 가교가 되어줄 것이다. 몰수·국유화가 사회주의적 계획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이 자본가의 수중에서 노동자의 수중으로 완전히 넘어가야 한다. 재벌몰수와 은행몰수·국유화투쟁은 국가권력의 계급적 성격 문제를 제기할 것이며, 노동자계급으로 하여금 노동자권력 쟁취투쟁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할 것이다.

③ 국가기간산업의 국유화

철도, 전기, 통신, 가스, 수도 등 국가기간산업은 확실하게 국가가 소유해서 운영해야 한다. 철도, 발전, 가스, 수도의 민영화 및 이를 위한 사전조치들을 저지해야 하며, 통신이나 제철처럼 이미 사유화된 과거 공기업들은 다시 국유화해야 한다.

물론 자본가국가의 소유냐 민간소유냐는 근본 문제가 아니다. 철도 KTX, 새마을호 여승무원들의 외주화 반대투쟁, 발전노동자들의 파업대체인력 저지투쟁,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의 현장통제 분쇄투쟁 등은 공기업 또한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착취와 억압이 악랄하게 자행되는 곳임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공기업 상태를 유지하고, 사유화된 기업을 공기업으로 돌리는 것 자체가 노동자들에게 사활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철도, 전기, 통신, 가스, 수도 등 국가기간산업의 국유화는 은행, 대공업 등의 국유화와 마찬가지로 대다수 노동대중과 전체 인민의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이 국유화 조치는 오랫동안 노동자들을 착취해 배를 불리고 이들에게 고통과 경제적 혼란만 가져다준 대자본가들에 대한 보상을 확실히 배제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국유화된 국가기간산업을 노동자들이 통제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국가기간산업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운영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다. 기차를 달리게 하고, 전기를 만들어 보내고, 통신망을 설치해 관리하며, 가스와 수도를 공급하는 일을 노동자들이 모두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국가기간산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고도의 전문적 능력을 가진 노동자들도 아주 많다. 노동자들을 일상적으로 감시, 감독하며, 노조를 탄압하는 것이 주 업무인 관리자들이 없어도 노동자들은 국가기간산업을 훌륭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

이 국유화 조치도 노동자와 민중이 권력의 주인이 될 경우에만 진정한 결실을 볼 수 있다. 공공부문 민영화, 외주화 조치에 반대하면서 노조관료들과 개량주의자들은 ‘사회공공성 강화’를 그에 대한 대안으로 내걸고 있다. 개량주의자들 중에는 좀 더 급진적으로 들리는 ‘사회화’와 ‘국유화’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공공성 강화, 사회화 구호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생존권투쟁, 가령 외주화 반대투쟁, 임금인상투쟁, 노동강도 강화 저지투쟁을 부차로 돌리고, 그 투쟁을 회피하며, ‘여론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모호하고 몰계급적인 사회개혁투쟁으로 빠져드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면피용 구호로 쓰이는 경향이 짙다. 그 결과 그 슬로건을 선호하는 자들은 절박한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노동자 자신의 투쟁을 의식적으로 조직하기보다 다양한 ‘여론’을 모으기 위한 대국민 캠페인에 몰두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본가들의 사적 소유를 침해하고, 자본가권력을 타격한다는 분명한 노동자계급의 정신에는 감히 다가가지 못한다.

정리하면 우리의 주장과 이들의 주장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거대한 차이가 있다. (1) 우리는 민영기업을 국유화할 때 배상하는 것을 거부한다. (2) 노동자들이 자신의 단결투쟁에만 의존할 것을 촉구한다. (3) ‘사회공공성 강화’, ‘사회화’, ‘국유화’에 대한 사탕발림의 말을 늘어놓으면서 실제로는 자본 및 정권과 정면대결하기를 두려워하거나 자본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노조관료 및 개량주의 정치세력의 본질을 대중에게 폭로한다. (4) 국유화문제를 노동자의 권력 장악 문제와 연결시킨다.

8. 제국주의 반대! 전쟁 반대!

① 제국주의의 전쟁책동 분쇄 󰠏󰠏 제국주의 군사점령과 전쟁위협 중단, 미군의 해외주둔 반대, 한국군파병 반대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권력들이 정치군사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덜 발달한 나라들을 제국주의 국가권력이 정치군사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세계적인 거대 독점자본들이 이들 나라의 노동자 민중을 체계적으로 착취하고 수탈하기 위해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수많은 식민지 나라들이 민족국가를 수립하면서 과거의 직접적인 식민지 지배체제는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독립한 민족국가의 지배세력을 체계적으로 장악하는 방식으로 제국주의는 여전히 세계 대다수 지역에서 상당한 정치군사적 지배력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군사침략, 쿠데타지원, 미군주둔, CIA 공작, 친미정치인 육성 등 갖은 수단을 동원하며 자신의 정치군사적 지배력을 유지·확장하고 있다.

제국주의가 정치군사적 지배력을 유지·확장하기 위해 동원하는 수단 가운데서도 가장 악랄하고 야만적인 것은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는 전쟁과 전쟁위기다. 최근 몇 년 사이에도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권력은 아프가니스탄·이라크·팔레스타인을 점령하였고, 이란·북한에 수시로 전쟁위협을 가해 왔다. 또한 미국은 천문학적인 재정적자 속에서도 수만 개의 핵무기를 비축하고 미사일방어망시스템을 구축하느라 가공할 군비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노동자들은 제국주의의 정치군사적 지배가 강제하는 자본주의 때문에 착취당한다. 그런데 제국주의가 만들어내는 전쟁과 전쟁위기로 인해 생존마저 위협받으며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것 또한 바로 노동자들이다. 노동자들은 전장에 나가 총알받이가 되어야 한다. 일터와 삶터로 쏟아지는 폭격과 포화에 쓰러져야 한다. 전쟁이 몰고 오는 병영식 통제체제에 신음해야 한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전쟁과 전쟁위기로 인해 야만적 고통을 겪고 있다. 한국의 노동자들 또한 북한에 대한 전쟁위협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어느 날 갑자기 절대절명의 참화 속으로 빠져들지 모르는 운명 앞에 서 있다.

노동자들은 참혹한 야만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제국주의 국가권력의 전쟁책동을 분쇄하는 투쟁에 단호히 나서야 한다. 제국주의 국가권력의 미치광이 전쟁책동이 중단되지 않는 한 어느 나라의 노동자도 전쟁의 참화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 세계 어느 나라를 향한 것이든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권력의 전쟁책동을 분쇄하는 투쟁에 전 세계 노동자는 하나의 목소리로 나서야 한다.
- 타국을 점령한 모든 군대는 즉각 철수하라!
- 타국에 대한 모든 전쟁위협을 즉각 중단하라!
- 타국에 주둔한 모든 군대는 즉각 철수하라!
- 이라크 점령을 즉각 중단하라!
- 미군의 해외주둔을 반대한다!
-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권력의 모든 핵무기를 해체하라!
- 한국군의 해외파병을 반대한다!

② 반동적 수단으로 제국주의에 맞서는 것 반대 󰠏󰠏 핵무기 반대, 테러주의 반대

제국주의에 맞선다는 것과 노동자 민중의 해방을 추구한다는 것이 곧바로 같은 것은 아니다. 일부 민족국가의 지배세력은 노동자 민중의 해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권력과 반동체제를 지키기 위해 제국주의에 맞선다. 북한을 비롯하여 스탈린주의의 다양한 변종으로 나타난 민족해방 세력들,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이 전형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이들은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와 대중투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로 핵무기와 테러라는 반동적 수단을 갖고 제국주의에 맞선다. 이들의 反제국주의는 국적을 초월해 ‘자본가계급 대 노동자계급’이란 계급전선을 치는 대신 ‘이란·북한 대 미국’ 식의 ‘민족 대 민족’ 전선을 만들어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을 파괴하는 길로 나아간다.

이들이 핵무기와 테러라는 반동적 수단에 의지하는 것은 제국주의 국가권력이 전쟁책동을 고조시키고 결과적으로 정치군사적 지배를 강화하는 데 더욱 효과적인 발판을 제공할 뿐이다. 설령 이들의 반동적 수단이 제국주의 국가권력의 공세를 일시적으로 약화시키더라도 그것은 또 다른 반동체제를 강화하는 것일 뿐 노동자 민중의 해방을 향한 전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제국주의 국가권력의 핵무기와 테러, 온갖 전쟁책동을 분쇄하기 위해 단호하게 투쟁할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핵무기와 테러라는 반동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단호히 반대한다. 노동자들이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것은 제국주의가 강제하는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이지 제국주의를 대신하는 또 다른 착취와 억압의 반동체제를 받아들이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 노동자는 모든 핵무기를 반대한다!
- 노동자는 테러주의를 반대한다!

③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서는 노동자 국제연대 건설

자본주의는 여전히 본질적으로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체제다. 특히 제국주의 국가권력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은 1차·2차 세계대전에서 보여준 것처럼 전 인류를 가공할 참화 속으로 휘몰고 들어간다.

1차·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는 동안 제국주의 국가권력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대립과 경쟁은 미국이 압도적인 정치군사적 패권국가가 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미국의 압도적인 우위가 수립되면서 제국주의 국가권력 사이에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한동안 물밑으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중국자본주의의 급성장은 미국의 유일패권체제를 다시금 밑바닥부터 뒤흔들고 있다. 미국자본주의의 쇠퇴와 중국자본주의의 성장은 자본의 세계화가 만들어낸 결과물로서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뚜렷이 특징짓는다. 미국과 중국은 장차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제국주의 패권을 놓고 치열한 정치군사적 대립을 벌이게 될 것인데, 이는 또 다른 제국주의 세계전쟁이라는 치명적 위기를 전 인류 앞에 내던질 것이다.

오늘날 제국주의가 작은 나라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전쟁과 전쟁위기에 덧붙여 장차 제국주의 사이의 전쟁이 또다시 거대한 현실의 문제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제국주의가 끊임없이 전쟁과 전쟁위기를 만들어내고 장차 또 다른 세계전쟁을 향해 치달아가는 동안, 노동자계급은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설 수 있는 진정한 수단을 찾아내고 발전시켜야만 한다.

그것은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서는 노동자 국제연대를 전 세계에 걸쳐 강고하게 건설하는 것이다. 2003년 미군의 이라크 침략을 반대하는 국제시위에 최대 1천만 명까지 참여했던 세계 노동자들의 투쟁 경험은 비록 많은 한계가 있긴 하나 오늘날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서는 노동자 국제연대를 강고하게 건설한다는 것이 결코 막연한 꿈이 아님을 보여준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해외에 주둔중인 군대를 철수시키도록 요구하는 투쟁, 전쟁물자의 생산과 운송을 거부하는 투쟁, 침략군대 입영을 거부하는 투쟁, 용병자원을 공급하는 청년실업의 해소를 요구하는 투쟁, 군사비를 대폭 축소하여 사회보장으로 돌리게 하는 투쟁, 제국주의에 침략당한 나라의 노동자 민중을 지원하는 투쟁 등을 세계 곳곳의 노동자계급은 광범한 대중적 투쟁으로 만들고 발전시켜가야 한다.

거리시위와 선전·선동을 넘어 장차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서는 강고한 총파업을 세계 곳곳의 노동자들이 광범하게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할 수 있을 때, 노동자계급은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서는 진정한 수단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그러한 수단을 획득할 수 있다면, 장차 다가올 또 다른 세계전쟁의 위기는 끔찍하고 참혹한 반동이 아니라 세계적인 격변과 노동자혁명의 물결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역사적 분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노동자의 국제연대와 대중투쟁으로 제국주의 전쟁책동 분쇄하자!

④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 전쟁위협 중단, 평화협정 체결, 비핵화 실현, 주한미군 철수, 군사비 사회보장 전환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도 50년 이상 이어져 온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상태는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왔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을 지고 사는 것처럼 늘 전쟁의 먹구름 아래 놓여 있는 현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은 한반도에 사는 모든 노동자들의 절실한 바람이다.

분단에 기초한 국가보안법 체제는 남한 노동자들이 노동자계급 해방의 사상을 생각하고 말하지 못하며 혁명적 조직을 꿈꾸지 못하도록 자본가들이 서슴없이 탄압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 왔다. 고립된 반동체제 속에 갇힌 북한 노동자들은 미국의 전쟁위협에 맞선다는 명분을 내건 국가권력의 체계적인 억압에 짓눌려 최소한의 자주적인 운동도 만들지 못해 왔다.

우리는 군사적 대치를 끝장내고 평화체제를 수립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남한과 북한, 미국과 중국 지배층에 맞서 진정한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먹구름을 걷어내기 위해 모든 핵무기를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 군사비를 사회보장으로 돌려야 한다.

남한 노동자들은 북한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투쟁해야 한다. 노동자의 연대와 투쟁이 가져올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개방은 남북한 노동자투사들이 자유롭게 만나고 연대하며 함께 투쟁을 만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조건을 제공할 것이다.
- 북한에 대한 전쟁위협 중단하라!
-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하라!
- 한반도에 있는 모든 핵무기를 해체하고 비핵지대를 실현하라!
- 주한미군 철수하라!
- 군사비를 사회보장으로 전환하라!
- 북한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
- 남북한의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하라!


9. 노동자정부

위에서 제기한 요구들, 즉 노동시간 연동제 도입, 노동자통제권 도입, 영업비밀 철폐, 재벌 대기업 몰수·국유화,  은행·금융기관 국유화, 기간산업 국유화, 상설적인 노동자 정방대 구성 등의 프로그램을 온전하게 실행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정부를 수립해야 한다.

노동자정부는 이러한 요구들을 위한 대중의 투쟁 속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된다. 노동자정부는 공장위원회, 평의회, 정방대, 선봉대, 투쟁하는 노동조합 등 노동자계급 투쟁조직들에 바탕을 두며 이 투쟁조직들에 책임을 지는 정부로서, 반드시 이런 경로와 방식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노동자정부가 이러한 조처들, 이러한 대중행동강령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노동자민병대 구성 등, 곧바로 노동자계급을 무장시켜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조처들에 격렬히 반발, 저항하며 노동자정부를 전복하려 하는 부르주아지를 즉각 무장해제시켜야 한다. 경찰, 군대 등 자본가계급의 소유권과 지배질서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억압적 국가기구를 해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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