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노동자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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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인가?

노동자계급의 소중한 운명을 더는 개량주의자들에게 맡기지 말자! 혁명적 투사들이 이끌자!
새로운 정세에 대담하게 개입할 수 있게 준비하자!
혁명적 운동으로 노동조합운동의 활로를 열자!
하루빨리 혁명적 노동자투사들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한 작전기지를 세우자!
힘을 모아 혁명적 정치세력화를 이끌 주체세력을 만들자!
노동해방주의 정치세력화를 이룩할 수단을 건설하자!
[보론] 질문과 응답


노동자계급의 소중한 운명을 더는 개량주의자들에게 맡기지 말자! 혁명적 투사들이 이끌자!

한국 노동자계급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벌였던 투쟁 경험과 여기서 비롯된 정치적 각성으로 다음과 같은 절실한 요구를 내걸기 시작했다. “한국 노동자계급의 선두부대를 보여주는 민주노조운동이 정치에서도 독자적인 진출을 해야 한다. 자본가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한국노동자운동이 발전하는 모습을 결코 반영하지 못한다. ‘노동자당’을 건설하라! 그러면 노동자들은 이 당을 지지하며 힘을 실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의 독자성과 힘을 보여주리라!”

안타깝게도 혁명적 노동자투사들은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떠안을 주체적 힘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그 빈자리를 개량주의자들이 차지했다. 이것은 최근 한국 노동자계급운동이  겪었던 가장 커다란 패배 가운데 하나였다. 개량주의자들은 ‘정치적 주도권’을 틀어쥐고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왜곡시켰으며, 1980년대 중반부터 10년 남짓 한국사회에서 축적했던 노동자계급의 거대한 에너지를 갉아먹고 약화시켰다. 민주노동당의 개량성에 분노하는 것과 똑같이 우리가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거대한 패배다.

한국 노동자계급의 운명과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길을 더는 민주노동당과 같은 개량주의 세력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개량주의 지도자들의 영향력 밑에서 한국노동자운동은 허약해지고 혁명적 목표를 잃어버린 채 해체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현장노동자들의 투쟁과 주도성을 파괴하면서, 노동자 정치운동을 투표소에 가서 민주노동당에게 표를 찍는 수준으로 형편없이 추락시키고 있다. 총파업을 비롯해, 현장노동자들의 전국적 단결과 칼날 같은 투쟁의식을 밑바탕삼아 노동자계급의 힘을 제대로 동원하는 결정적인 정치적 실천이 파괴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현장에서 노동대중과 함께 하면서 노동자의식을 키우는 선전・선동 활동이나 노동자 단결투쟁에 승부를 걸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의회에서, TV에서 몇몇 이른바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면서 인기를 높이는 ‘의회주의적 활동’에만 힘을 쏟고 있다. 이들은 노동자들을 주인공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나 방관자로 밀쳐내면서 오히려 노동자운동의 정치적 힘을 매장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운동의 혁명적 목표를 개량적 구걸로 바꿔치기하면서, 노동자운동의 이름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 당은 자본가들의 소유권을 조금 제한하기만 할 뿐 철폐하려 하지 않는다. 임금노예제도의 사슬을 산산조각 내려하지 않고 그저 사슬의 강도를 조금 누그러뜨리려는 데만 목적을 두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임금노예제도를 박살내어 노동자권력을 쟁취하려고 투쟁하지 않고 자본가권력 밑에서 얼굴마담 역할, 가령 몇몇 의원직이나 대통령직을 얻어내는 데 집착하고 있다. 한마디로 노동자운동의 정치적 방향을 왜곡시키고, 스스로 노동자를 대변한다고 말하는 몇몇 민주노동당 엘리트들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화려한 지위를 차지하는 도구로 노동자운동을 전락시키고 있다. 2007년 대선이 끝난 뒤, 민주노동당을 비판하면서 등장하고 있는 이른바 신당파 또한 전혀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들은 대부분 사회민주주의자들이며 의회주의자들이다. 이러한 개량주의적 반대파를 통해서는 민주노동당을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을 창출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이들은 민주노동당의 재판이거나 심지어는 개악판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끝장내고 새롭게 반격을 하는 출발점을 꼭 만들어야 한다. 현장에 있는 혁명적 선진노동자 투사들이 하나로 결집해야만 반격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 선진노동자 투사들이 확고한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에 따라 현장에서 노동대중과 함께 일관된 실천을 조직해나가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노동대중은 민주노동당 지도자들이나 ‘신당파’가 아니라 바로 혁명적 동지들을 지지하고 힘을 실어줄 것이다.

국적을 떠나 모든 노동자가 같은 계급에 속하고 있다는 노동자 의식이 있어야만 터무니없는 이 사회체제를 바꿀 수 있다. 지금까지 민주노동당이 조직된 노동자의 지지를 받아왔지만, 이 당의 노선은 사실 중간계급 정당의 노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당은 노동자계급을 배신하면서 자본가정당과 비슷한 활동과 노선에 따라 움직여왔다. 노동자계급에 굳게 뿌리내리고 현장노동자들 속에서 몸 바쳐 실천하는 투사들의 조직이자, 노동자계급의 노선을 일관되게 대변하는 노동자계급 정당을 갖지 못한 노동자계급은 무장해제된 상태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태에서 노동자의 의식은 계속 뒷걸음칠  수밖에 없다. 노동자계급 혁명정당을 건설해야만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혁명정당은 노동자계급의 정책을 보여주는 강령이 있어야만 건설할 수 있다. 그러나 강령만으로 혁명정당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투쟁 속에서만, 오직 실천 속에서만 당을 만들 수 있다. 노동자들의 처지가 계속 악화되고 있고, 자본주의가 쉼 없이 노동자를 공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쟁이 잇달아 일어나고 더욱 번질 수밖에 없다. 그 투쟁 속에서, 그 투쟁을 이끎으로써 우리는 혁명정당으로 힘차게 나가야 한다. 

더는 개량주의자들의 손아귀에서 노동자계급의 힘과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를 향한 부푼 꿈이 꺾이게 하지 말자. 혁명적 선진노동자들이여 일어나자! 하나의 방향으로, 하나의 조직으로 함께 모이자! 그래서 자본주의 착취와 자본가정부의 억압에 신음하는 전체 노동자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자! ‘정세가 노동해방운동에 요구하는 절실한 과제’와, 그 과제에 응답할 수 없는 ‘노동해방운동의 주체적 무능력’ 사이의 커다란 틈을 메워야 할 절실한 과제가 눈앞에 있다. 그 과제를 부여잡고 혁명적 노동자투사들이 지금 곧바로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한 데 모아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야만 한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그 과제에 대한 우리들의 응답이자 계획이며 결단을 표현한다. 

새로운 정세에 대담하게 개입할 수 있게 준비하자!

민주노동당을 넘어서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출이 앞으로 시작될 가능성이 최근 열리고 있다. 이러한 정세에 혁명적 투사들은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지금은 숨죽이고 있지만 언젠가 뛰어오를 수 있는 틈을 찾아 움직이는 노동자계급의 힘을 더욱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러나 상황이 어떻게 바뀌든 큰 흐름은 어느 정도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명백히 드러나는 한계 앞에서 민주노동당의 분열, 민주노동당에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대중적 자각의 시작 등은 그 흐름의 방향을 보여준다. 민주노동당 잔류파나 신당파나 공히 중간계급적 노선을 더욱 노골화할 것이다. 반대로 노동자계급 대중의 정치적 열망은 민주노동당이 아닌 다른 대안 쪽으로 조금씩 옮겨갈 것이다. 이 움직임은 계급투쟁의 물결에 따라 그 속도가 달라지고 갖가지 모습을 취할 것이지만, 머잖아 이동이 본격화될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새로운 흐름의 등장은 민주노동당이 그 동안 보여준 실천에 비춰 볼 때 당연한 결과다. 민주노동당은 빠르게 늙고 있으며, 노동자계급 전체의 지지를 끌어내기에 앞서 이미 다른 계급을 향해 전향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수많은 선진노동자가 민주노동당에 들어가기를 꺼려했으며, 민주노동당의 건강한 노동자투사들이 탈당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 흐름은 더욱 빨라질 것이 틀림없다. 이런 객관적 상황 앞에서 “혁명적 사회주의가 노동자계급 속에서 얼마나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 적어도 선진적이고 정치화한 전투적 노동자들이 개량주의 당이 아닌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건설을 향해 다가오도록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새로운 역사의 갈림길에서 혁명적 노동자투사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 민주노동당에서 노동자계급이 떨어져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이 노동자계급의 에너지를 될 수 있으면 많이 우리 쪽으로 끌어당기려는 전술적 개입을 본격화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사회주의 운동의 내용을 틀어쥐고 영향력을 넓힐 수 있는 준비를 본격화하는 일에 곧바로 나서야 한다. 

둘째, 그러한 준비태세를 본격화할 때 혁명적 그룹들이 써클로 분립하는 상태나 혁명적 노동자투사들이 흩어져 사업하는 일은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은 정세에 능동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을 사실상 앗아가거나 크게 줄여놓을 수밖에 없다. 작은 역량들이 저마다 흩어지지 말아야 한다. 조그만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 동안 이룩해놓은 통일성을 바탕으로 단단하게 모여야 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정세에 함께 대응하고 최대한 능동적으로 개입하면서 노동자계급의 에너지와 어우러져 화학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할 수 있는 힘을 ‘정치적’, ‘조직적’으로 결집해야만 한다. 

혁명적 운동으로 노동조합운동의 활로를 열자!

노조운동 수준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전투파’ 활동으로 노동해방운동을 더 이상 가두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제까지도 결코 옳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더욱더 범죄에 가까운 오류가 될 것이다.

현재 노동조합운동을 비롯한 노동자운동이 전반적으로 가라앉은 밑바탕에는 ‘반동화한 자본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 청년기를 지나 나날이 반동화하는 자본주의는 심각한 자체 모순의 늪에서 결코 헤어날 수가 없다.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만들어낸 생산물은 하늘 높은지 모를 만큼 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성장은 그에 훨씬 못 미친다. 작은 수입에 허덕이는 노동자들은 상품을 살 능력이 그다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쟁을 격화시키고, 낭비를 부채질한다. 아직도 해마다 몇 천만이 굶주리고 있지만, 팔리지 않아서 썩히는 생산물이 시장에서 넘쳐나고 있다. 자본가조차도 자신들이 기대하는 이윤율을 실현하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 앞에서 자본가들의 계획은 간단하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려면 노동자를 더욱 강하게 쥐어짜고 노동자운동을 더욱 철저하게 짓밟아야 한다!” 만약 회사의 생존, 회사 경쟁력 강화를 통해서 고용과 임금을 지키겠다는 조합주의 노선을 버리지 않는다면, 노동조합은 현장노동자를 대변하는 조직에서 자본가들에 협조하면서 현장노동자를 배신하는 조직으로 변질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의 방패막이로 삼고, 힘든 일을 떠넘기는 몹쓸 일까지 생기고 있다. 전투적 깃발을 지키려는 노동조합일지라도, 회사의 위기와 계속 강화되는 자본과 정부의 공세 앞에서 더 강력한 힘을 동원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이 모든 것들이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노동조합은 한국 노동자계급이 자신을 단결시키고 저항을 조직하며, 혁명의 필요성을 깨우쳐가는 소중한 수단이다. 이 소중한 조직을 계속 비틀거리게 놔둘 수는 없다.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위기 앞에 노사협조주의로 굴러 떨어지고, 현장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를 배신하면서 관료적으로 투쟁을 짓밟고 통제하는 데 몰두하는 조합주의 지도자들의 손아귀에서 지도력을 빼앗아야 한다. 그래서 노동조합을 현장노동대중의 자주적인 투쟁조직으로 재편해서, 현장노동자들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자본의 지불능력에 제한되지 않고, 자본주의 경쟁논리에 포섭되지 않은 채, 오직 노동자의 생존과 권리를 위해 진격하며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혁명으로 전진하는 단호한 지도자들을 통해서만 노동조합이 재조직될 수 있다. 한마디로 혁명적인 힘을 모아야만 오늘날 노동조합의 위기를 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건강한 활동가나 투쟁하는 노동자대중은 ‘관료주의’에 분노하고 ‘노동자계급의 단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관료주의의 영향력이 커져만 가고, 현장 노동자대중의 패배의식과 침체는 멈추지 않고 있다. 이는 분노와 당위만으로는 오늘날 우리 운동이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원인은 명확하다. 1980년대 중후반에 본격적으로 벌어진 노동자투쟁은 여러 현장에서 계급투쟁을 일정에 올렸다. 그러나 이 계급투쟁은 아직 제 모습을 다 갖추지 못했다. 당시의 투쟁은 혁명적인 정치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 전체의 투쟁으로 발돋움하면서 ‘노동자계급 대 자본가계급’이라는 명확한 전선을 그어내지 못했다. 계급투쟁은 시작되었지만, 그 투쟁은 거의 모두 개별 현장에 갇혀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가들은 정치적 힘을 동원했다. 언론을 총동원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공격, 경찰, 검찰 등을 통한 폭력적 공격, 나아가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와 조직을 갖지 못한 활동가 층을 개량주의 관료로 포섭하는 따위로 입체적인 공세를 퍼부었다. 이에 맞서 노동자계급은 계급투쟁의 폭과 외연을 넓히고 계급투쟁을 질적으로 발전시키며, 혁명적 방향에서 선진노동자를 하나로 묶어내는 힘찬 반격을 했어야 했다. 혁명적 정치운동과 그 깃발을 움켜쥔 실천만이 계급투쟁이 뒷걸음치는 것을 막아낼 수 있었고, 적어도 1980년대 말에 운동이 배출한 빼어난 활동가를 보존하면서 뒷날을 준비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혁명적 노동자투사들은 이 사활적인 과제에 ‘혁명적 정치세력화’로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서로 흩어져 있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아직 연륜이 짧았고 역량이 너무나 작았다. 이처럼 ‘혁명적 정치운동’이 움츠러든 상황에서 계급투쟁은 제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전망이 흐릿한 상황에서 거듭되는 패배로 노동대중의 계급투쟁 능력은 형편없이 약해졌다. 여기저기서 퍼부어대는 자본주의의 공세 앞에 때때로 대중은 기가 질리고 공포에 사로잡히기까지 했다. 이와 함께 1980년대 계급투쟁이 배출해낸 자신감 있고 혁명적 열망을 지니고 있었던 많은 선진 노동자투사가 혁명적 운동을 청산하거나, 개량주의적이고 중도주의적인 방향으로 뒷걸음질쳐버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노동조합 관료들은 배신적 타협을 하고도 늘 이렇게 지껄였다. “자본주의에서는 어쩔 수 없다. 다른 대안이 있느냐?”

상황이 이렇다면 이제 혁명적 노동자투사들이 노동조합투쟁 전선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투쟁 전선은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지도할 때 꼭 있어야 하며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계급투쟁을 되살리며 힘차게 앞으로 밀어가는 혁명적 대안과 결합할 때만 비로소 자기 역할을 다할 수 있다. 선진노동자들은 ‘사회주의 현장정치운동을 가동시키는 능동적 주인공 역할을 적극 떠안아야 한다. 현장에서 노동자혁명의 시기를 앞당기고 이 혁명을 이룩할 수 있는 주체로 현장노동자들을 단련시키고 준비하면서 기회주의 관료층과 맞서는 혁명적 정치운동을 하루빨리 일정에 올려야만 한다.

단위사업장 현장 안에서 대중의 실천을 굳세게 조직하면서도 그 테두리에 갇히지 않고, 단위사업장 노동자들을 전국 노동자투쟁으로 모아내면서 ‘명실상부한 총파업투쟁’을 벌일 수 있어야한다. 그러려면 전국의 혁명적 노동자들의 단결된 실천을 조직할 작전기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것을 통해 노동조합운동을 비롯한 노동자운동이 쇠퇴기 자본주의의 망령을 과감히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노동자들의 계급투쟁 능력을 키우면서, 이것이 혁명적 노동자계급 정당을 세우는 기름진 땅을 일구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루빨리 혁명적 노동자투사들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한 작전기지를 세우자!

혁명적 지도력이 없는 가운데 노동조합운동이 쇠퇴하는 상황, 그리고 개량주의적이고 의회주의적인 민주노동당에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맡긴 나머지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 커다란 위기에 봉착한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개량주의, 중도주의자들과 구별되는 ‘혁명적 사회주의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해 모든 힘을 모으고 아주 빠르게 그 힘을 넓혀 가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계급의 에너지가 어디로 향할 것인가를 가늠하는 새로운 정세가 열리기 시작하는 현 상황 앞에서 혁명적 노동자계급운동이라는 정치적 전망을 노동자계급에게 당당히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노동현장에서 노동해방 투사들이 함께하는 정치적 실천이 힘차게 일어나고, 이것을 뿌리삼아 정치적 개입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다면, 그래서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이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면, 그때 혁명적 선진노동자들은 혁명적 노동자계급 당을 건설할 잠재력을 갖춘 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활동을 앞장서 이끌고 하나로 모아내면서 성과를 차곡차곡 쌓아나갈 수 있는 ‘작전기지’를 지금 곧바로 만들어야만 한다.   

힘을 모아 혁명적 정치세력화를 이끌 주체세력을 만들자!

‘혁명적 노동자투사들의 정치세력화’라는 엄중한 과제를 해결하려면 두 가지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하나는 그 과제를 실천에 옮길 ‘주체세력’의 문제다. 다른 하나는 그것을 물질화시킬 ‘당면의 수단’ 문제다. 1987년을 앞뒤로 계급투쟁의 물결이 수많은 투사를 배출했던 때처럼 혁명적 정치운동에 적극 나설 수 있을 만큼 자신감 넘치는 투사들의 드넓은 저수지가 지금은 없다. 있다 하더라도 개인으로 흩어져 있다. 2000년대 들어 띄엄띄엄 솟아나는 투쟁 속에서 태어난 젊은 노동자투사들은 몇몇을 빼고는 아직 혁명적 정치로 대담하게 발길을 내딛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1980년대 말 힘차게 상승하던 전국적 계급투쟁과, 2000년대의 간헐적이고 수세적인 단위사업장 수준의 계급투쟁 사이의 차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오늘날의 이런 객관 상황에서는  주로 사회주의 투사들의 끈질기고 헌신적인 실천을 통해서만 혁명적 사회주의의 정치세력화의 길을 열 수 있다.

아래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노동대중의 혁명적인 활력 없이는 대규모적이고 본격적인 사회주의 정치세력화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혁명적 사회주의의 정치세력화 진지’를 건설하는 것은 지금도 가능하며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을 원칙에서 동의하지 못하는 세력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비록 단련된 지도자들이 모자라고 연대망이 충분히 작동하지 못함으로써 대담하게 뻗어나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현장 곳곳에서 반격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여러 상황이 아주 불리한 가운데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선봉부대들이 힘차게 투쟁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노동자계급 해방을 이룩할 무기를 달라! 그러면 세상을 바꿔버릴 것이다!”라는 열망을 발전시키는 소중한 투사들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혁명적 노동자조직은 꼭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이 과제를 제대로 풀어내는 세력은 아직 없다. 왜 그런가? 여러 요인을 들 수 있지만, 각 써클의 분산과 각개약진에서 비롯한 역량의 왜소화가 핵심이다. 

한 써클이나 심지어 개인 차원에서도 개별 현장에서 노동조합투쟁에 전투적으로 개입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이 ‘혁명적이며 사회주의적인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힘들다. 정치활동에는 충분한 수의 지도자들이 있어야 한다. 정치적 실천을 주요한 현장과 지역으로 퍼뜨리는 데서 필요한 중간 활동가 층의 숫자는 한두 사업장의 노동조합투쟁에 개입하는 것에 견줄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렇게 노동자계급 앞에서 공공연한 정치활동을 전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혁명적 써클과 노동자투사 개인은 정치적 시야, 정치적 결의, 정치적 실천을 제대로 확대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그들은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지도자가 되기보다는 조합주의 지도자, 노조활동 지원자가 되는 일이 자주 생겼다. 

어찌 해야 하는가? 노동자계급 해방을 위해 헌신할 결의가 되어 있는 투사들이 ‘혁명적 정치활동’으로 단결하여 이러한 비참한 상황에 힘차게 반격을 해야 한다. 혁명적 써클이 배출해낸 투사들이 단결하여 흩어져 있는 현장의 힘을 모두 모아 정치활동을 펼칠 수 있는 힘을 벼려내야 한다. 그저 한 명의 혁명적 노동자일지라도 그냥 놓아두지 않고, 그 어느 혁명적 노동자그룹이라도 단위사업장에 고립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들이 혁명적 조직과 함께 훈련받고 자기 능력을 충분하게 떨치며 전체 노동자투사들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나라 안팎에서 벌어지는 모든 노동자투쟁, 그리고 지난날 노동자 혁명운동의 경험에서 배우고 서로 소통하면서 가장 단련되고 으뜸가는 혁명적 노동자로 성장해야 한다. 이런 힘을 바탕으로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찬 계급으로 노동대중을 단련시켜나가야 한다.

이것은 있는 차이를 없는 것처럼 꾸미자는 것이 아니며, 지금 완벽하게 통일할 수 없음에도 무턱대고 단결하자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세력화라는 절실한 대의 앞에서 함께 실천하고 책임지는 가운데 서로의 차이를 극복해나가는 길을 찾아내자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두 수준의 차이’를 구별해야 한다. 하나는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실천에서 드러나는 차이다. 다른 하나는 미래에 불거질 수 있는 사안들을 둘러싼 정치적 차이다.

당장의 실천적 차이는 꼭 해결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면 다수결로라도 정리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정치적 차이는 남겨둘 수 있고, 또 남겨두어야 한다. 물론 ‘정치적 차이’에서도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것은 있다. 이것은 최대강령과 궁극적 목표로 구체화할 것이다. 다행히도 오히려 이 문제에서 혁명적 투사들 사이에서 본질적 차이는 거의 없다. 물론 하나의 조직으로 완전히 통합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강령적 합의’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치활동이라는 절실한 당면과제에 공동으로 나서는 것 말고는 실제로 강령적 합의에 다다를 수 있는 길은 없다.

이 과정에서 치러야 할 갖가지 진통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정치활동에 착수하는 것은 단일한 혁명적 강령과 실천의 토대를 놓는 데서나, 시급한 대중적 정치활동을 도모하는 데서나 훨씬 더 많은 성과를 약속할 것이다. 차이를 숨기지 않고 진지하고도 동지적인 방식의 토론을 전개하면서도, 모든 혁명적 투사들은 그 차이가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경계선’ 내의 차이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더 나아가 계급투쟁의 절실한 과제 앞에서 조그만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혁명적 정치활동을 조직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아야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공세 앞에 더는 노동자들이 길을 잃고 헤매지 않도록, 혁명적 지도력을 그들의 손에 반드시 쥐어주어야 한다.

각자의 써클을 해산하고 민주집중제가 완전히 작동하는 ‘단일조직’으로 출범한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1년여의 출범과정은 이상의 원칙에 충실한 결과다. 우리는 하나의 ‘가능성’으로서가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검증한 객관적 결과로 이것을 자신 있게 제출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제안을 모든 혁명적 동지들이 심사숙고할 것을 요청한다. 

노동해방주의 정치세력화를 이룩할 수단을 건설하자!

이번에는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물질화시킬 수단을 검토해야 한다. 힘이 닿고 조건이 맞는 주요 현장에서 대중적으로 공동 발행하는 노동해방 현장신문, 전국 차원에서 발행하는 정치신문, 3개월에 한 번 발행하는 이론지는 정치활동을 위한 기본적인 선전・선동 수단이다.

전국정치신문은 2주 또는 매주 전국적인 공동의 정치적 선전・선동을 규칙적으로 펼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이것은 모든 노동자투사들이 전국적인 주요 정치사안에 대해 하나의 목소리로 현장에서 선동하면서 노동자들 앞에 통일적인 정치세력으로 자신을 드러내게 만들 것이다. 실천적 정치선동은 지식인들의 끝 간 데 없는 소모적인 정치적 논의와는 달리, 노동대중 사이에 올바른 정치논의를 불러일으키며 참된 통일성을 꾀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다. 현장신문은 사회주의 투사들의 힘을 현장 차원에서 집중함으로써 주요 현장에서 정기적이고 대중적인 정치활동의 길을 열어줄 것이며, 그 과정에서 통일적인 감각과 실천적 연대성이 자라날 것이다. 주요 현장에서 많은 현장노동자들에게 규칙적으로 전달되는 현장신문, 전국의 선진노동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배포되어 혁명적 토론을 조직하는 정치신문을 상상해보라. 이것이야말로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세력화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첫걸음이다. 그 때부터 노동자계급 해방을 고민하는 선진 활동가뿐만 아니라 가장 평범한 노동자도 묻기 시작할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이란 무엇인가? 왜 북한과 중국은 가짜 사회주의인가? 선진노동자들은 왜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되어야 하는가? 자본가들,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고, 진실은 무엇인가?”

다음으로 대중행동강령을 검토해야 한다. 대중행동강령은 보통 노동조합 투쟁강령과 어느 정도 중복되면서도 노동자운동의 정치화와 혁명화로 나아가는 다리를 놓는다는 점에서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대중행동강령은 정치활동 가운에 중요한 한 축으로서 ‘노동자투쟁의 전투교본’이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노동자투사들은 대중행동강령이라는 나침반 없이 계급투쟁에 참여해왔다. 현장투쟁에 적극 참여할 뿐만 아니라 대중의 지도자인 노동자투사일지라도, 그저 노동조합투쟁의 지도자로만 머물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런 약점과 연결되어 있다. 만약 모든 노동자투사가 현장투쟁에서 대중행동강령이라는 정치적 나침반에 따라 공동의 선전 선동을 하고 투쟁의 방향을 대중에게 보여준다면, 노동자투쟁이 정치화하고 혁명화하는데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대중행동강령에 따른 실천이 뿌리내려야만 현장의 혁명적 노동자투사들이 사회주의 정치운동가로 자라날 수 있고, 매일의 투쟁 속에서 자신을 대중적인 정치 지도자로 단련할 수 있다.

혁명적 투사들이 함께 토론하고 합의하여 대중행동강령을 만들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현장의 계급투쟁에 정치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중행동강령을 더욱 대중 속으로 파고들 수 있게 다시 다듬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공동의 실천경험을 바탕으로 한 대중투쟁강령에 대한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은 지금 이론적 영역에서는 어느 정도 확립된 최대강령에 대한 합의를 넘어서서 실천적인 분야에서도 강령적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초석이 되어줄 것이다. 이 시기에 이르면, 그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차이들은 하나의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 내의 ‘당적 규율을 준수하는 책임성 있는 분파의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수렴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막 출범한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이상의 수단들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준비위 시절부터 이미 2주 1회의 전국정치신문을 발행해오고 있고, 일부 대규모 현장에서 현장신문 발행을 개시하고 있다. 우리는 그 동안의 실천 경험을 함께 모아서 대중행동강령을 제출하고 있으며, 이것을 바탕으로 노동자투쟁에 정치적으로 개입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힘만으로는 이런 수단들을 더 안정적이고 대규모적이며 더 넓은 범위에서 작동시키기에는 한계가 많다. 우리는 혁명적 써클들, 혁명적 노동자투사들 모두의 참여와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으로 결집하여, 혁명적 투사들의 단결된 힘을 건설하자!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을 통해 노동해방 정당을 향한 작전기지를 건설하자! 

노동자계급에 뿌리내린 노동해방 정당을 창건하려면, 그리고 개량주의자들과 관료집단의 배신으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노동자운동에 혁명적인 탈출구를 보여주려면 노동해방 투사들이 정치활동을 본격화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민주노동당으로 상징되는 개량주의와 의회주의 정치에 대한 선진노동자들의 비판과 문제의식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요즈음,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에너지가 사라지거나 중도주의자들의 품안으로 빨려들지 않도록 하려는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세력화’는 하루라도 더 늦출 수 없을 만큼 중요해지고 있다.

이 정치세력화를 위해 모든 혁명적 투사들은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올바른 길을 찾아내야만 하며, 모든 힘을 한 데 모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그것을 위해 노동해방연대, 노동자해방당건설투쟁단, 사회주의정치연합, 울산노동자신문 활동가들, 그리고 우리와 뜻을 함께하는 혁명적 노동자투사들이 한국의 전체 혁명적 투사들 앞에 제출하는 당면 계획이다.

우리는 헌신적인 실천과 단호한 노동자계급 정치를 통해 사회주노동자연합이 소중하고도 거대한 임무를 위한 작전기지임을  보여줄 것이다. 이것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야만, 흩어져 있는 모든 혁명적 동지가,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투쟁할 결의가 되어 있는 모든 선진노동자 투사가 우리와 함께 힘을 합칠 것이다. 그렇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우리는 출발점에서부터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믿을 수 있는  조직임을 감히 선언하고자 한다.  

첫째,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혁명적 사회주의’라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에 확고하게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는 공장과 작업장을 비롯한 모든 생산수단을 전체 사회의 공동소유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현장 단위의 노동자 대중조직에 뿌리를 두고, 이들이 뽑은 대표자들이 자주적으로 운영하는 노동자권력을 단호하게 찬성한다. 우리는 북한, 중국, 스탈린 정부 따위의 가짜 사회주의를 반대하며, 이 정부들을 노동자계급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정부로 규정한다. 왜냐하면 노동해방 사회란 노동대중이 사회의 참된 주인이 되어 스스로 사회를 운영하고 자기해방을 실현하는 사회임을 우리는 굳게 승인하기 때문이다.

둘째,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대다수 동지들이 현장에서 실천하며 노동자 투쟁을 조직하는 동지들로 구성되어 있는, ‘노동현장에 기반을 둔 전투조직’이다. 현장에 직접 몸담고 있지 않더라도, 거의 모든 동지들이 현장과 연결되어 지원하고 투쟁에 결합하는 노동자조직이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구성원들이 누군가를 본다면, 동지들은 그 점을 분명히 인정할 것이다.

셋째,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노사협조주의를 배격하고 온 몸을 바쳐 자본과 정부에 맞서 싸우는 동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동지가 10년, 20년 30년씩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투쟁해왔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어떤 배신자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만약 한 명이라도 존재하고 있다면 과감히 제명할 것이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파괴하는 모든 분열적 시도에 맞서 투쟁해온 동지들만을 승인하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정규직주의, 단사주의, 민족주의에 단호하게 맞서면서 ‘노동자계급 전체의 단결과 공동의 이해’를 충실하게 실천해온 동지들만을 받아들일 것이다.

넷째,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민주적 조직이다. 모든 동지가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고, 주요한 모든 정책과 사안을 민주적 원리에 따라 결정하고 집행하는 조직이다. 우리는 모든 사안 앞에서 완벽하게 통일되어 있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천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검증과 이론적 토의’를 통해 끊임없이 완전한 통일을 향해 전진하고, 차이가 있을지라도 동지적 협력을 거부하지 않는 진실로 집단주의적인 조직이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여기에 참가하는 어떤 동지도 소외시키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동지를 훌륭하게 교육시킬 것이며, 그가 가진 단점을 전체 조직의 지원과 비판을 통해 교정할 것이다. 반대로 모든 동지들의 장점이 잘 발휘되어 노동자계급 해방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조직할 것이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진지한 토론과 실천 경험을 조직 전체에 소통함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단 하나의 투쟁을 통해서라도 모든 동지가 교훈을 배울 수 있는 그런 조직을 건설하려고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과제들을 겁내지 않는다. 설령 곧바로 거대한 힘을 모아낼 수 없다손 치더라도, 그런 힘을 만들어내기 위해 튼실한 토대를 놓을 만큼은 한국의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이 성숙했음을 이제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우리는 첫걸음을 내딛는다. 우리를 자신감 있게 이끌어주는 좌표는 오직 하나다. “미래는 노동해방 노동자투사들의 것이다!” 



[보론] 질문과 응답


[질문1] 사회주의 조직들 사이의 통일성이 충분하지 않은 현 상태에서는 <색조 분화 투쟁>이라는 상호투쟁의 단계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이런 상호투쟁을 통해 견고한 통일성이 자라난 뒤에서야 <결집>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오랫동안 써클적 분산 상태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색조분화투쟁’이라 명명된  분산 상태는 아직 미숙한 정치경향들이 독자 실천을 통해 성숙한 경향으로 자라나도록 만들고, 그 과정에서 각각의 경향이 진정한 본질을 드러내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또한 그러한 분산 상태가 필연적으로 만들어내는 상당히 격렬한 상호투쟁의 과정은 한국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이 정치적으로 날카로워지고 성숙하는 데 쓸모 있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그런 시기가 아직도 필요한가, 아니면 그 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이제는 ‘동일한 색조들 사이의 단결’을 추구해야 하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동일한 색조 사이의 단결’을 이룩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다. 우리는 그 출발점으로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을 건설했다. 

써클의 시대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발족 취지를 진지하게 고찰하려면 ‘써클적 분립’의 역사를 곱씹어보아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이 써클적 분립을 바랐던 적은 없었다. 또한 사회주의 운동의 대의의 관점에서도 그것은 옳지 않았다. 혁명적 투사들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조직에서 활동해야 하며, 이 조직은 항상 노동자계급 혁명정당의 잠재적 요소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정당 건설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가들은 차이를 감추지 않음에도, 이 차이가 ‘하나의 조직에서 함께 활동하는 데 장애가 되는 차이인가 아닌가’를 정확히 판별해야 한다. 여기서 실패하면 개인주의나 써클주의에 감염되어, 당주의로 표현되는 노동자계급의 집단주의를 침해하게 된다. 물론 그저 당위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지금 시기에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단결’을 일정에 올릴 수 있을 만한 객관적 조건이 존재하고 있는가? 이것이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이다.

써클의 시대를 당적 시대로 전진시키기 위한 조건은 형성되고 있다!

10여 년의 과정 동안 각각의 써클은 주로 이론적 경향에서 실천적 경향으로, 그것도 한줌 선전써클의 수준에서 노동자계급운동에 결합한 실천적 경향으로 탈바꿈되어갔다. 그런데 실천적 경향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써클적 차이는 좁혀지는 것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외관상에서만 그렇다. 동일한 객관적 조건이 써클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가능성 또한 확대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3가지 측면을 들 수 있다.

첫째, 약간의 시간차는 있지만, 여러 써클이 이론적 경향에서 실천적 경향으로 상승함으로써 인텔리적 순수이론의 눈을 통해서가 아니라 혁명적 실천가의 눈으로 차이점을 가늠해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과연 견딜 수 있는 차이인지 아니면 견딜 수 없는 차이인지’를 실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의 눈이 생겼다는 것이다.

둘째, 이론과 실천의 상호작용은 이론에도 영향을 미쳤다. 10여 년의 세월은 실천 경험을 통해서 각 써클의 이론 중에서 상당 부분을 문질러 없애버렸고, 특정 부분에서는 정반대의 다른 입장으로 전화시켜버렸다. 일반적인 기질과 정치적 특성만이 남아 있을 뿐 세부적 항목으로 들어가면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일부 논쟁은 이제 입장이 바뀌었기에 그대로는 도저히 진행할 수 없게 되었거나 실천적 경험의 세례를 통해서 논쟁의 지점이 완전히 탈바꿈되었다. 

셋째, 혁명적 패기로 충만했던 작은 써클들, 개인들은 실천의 경험 속에서 호된 쓴맛을 보았으며, 그 결과 일정한 차이, 심지어는 여전히 중요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사회주의 경향의 협동 없이는 개량주의자들에 맞선 전투에서 효과적으로 전진할 수 없다는 뼈저린 자각을 하고 있다. 더욱 중요하게는 노동자계급운동이 요구하는 객관적 과제에 응답해야만 한다는 당위가 모든 혁명적 투사들 앞에 던져졌다. 이것은 아직 자그마한 힘에 불과하지만, 혁명적 경향의 단결을 통해 노동자계급운동이 요청하는 객관적 과제에 최대한 성실하게 응답해야 할 필요성을 모든 동지들에게 묻고 있다.

확대되는 써클적 분산 상태의 문제점들

앞에서 열거한 가능성들은 이제 “써클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혁명적 투사들의 단결의 시대를 열자!”라는 슬로건을 일정에 올릴 수 있도록 만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에는 반대의 요소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논쟁은 공개적이고 진지한 방식으로 책임성 있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혼자 떠들기가 횡행하고, 다른 경향의 진정한 주장을 왜곡시켜 공격하는 일도 흔하다. 게다가 실천적 차이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어느 정도의 진지한 논쟁도 전개되지 않는다. 논쟁은 더 이상 혁명적 노동해방주의자들의 정치적, 실천적 역량을 함양시킨다는 최소한의 역할도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논쟁 수준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써클적인 편협한 감각이 당주의적인 대의를 압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장 수준에서, 그것도 정치활동 수준도 아닌 노동조합 활동 수준에서 필요한 공동활동까지도 와해되거나, 써클적 경쟁이 너무나 커져서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면서 노동자투쟁에 대한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부정적 상황까지도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의 확대는 ‘지금 시기에 주어진 역사적 임무’에 응답하지 못하는 사회주의 투사들의 무능력과 자연발생성, 그리고 10여 년 동안 확대된 써클주의적 편향의 결과물이다. “써클의 시대, 개인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당주의의 시대를 열자!”는 슬로건, 그리고 이 슬로건에 입각한 새로운 실천만이 분열과 각개 전진의 시대가 남겨준 이런 부정적인 측면을 걷어버리고, 그 긍정적인 측면만을 선별적으로 추출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
 
[질문2] 혁명적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을 앞당긴다고 하는데, 당 운동이라면 결국 민주노동당과 다를 바 없는 것 아닌가?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 앞당기려고 하는 혁명적 노동자계급 정당은 민주노동당이 걷고 있는 의회주의 노선에 반대하며, 아래로부터 대중투쟁을 조직하고 주도하는 당이다.

96~97년 노개투 총파업 당시 권영길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지도부들은 노동자 국회의원이 없어서 총파업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며 민주노동당을 만들자고 했었다. 지난 총선으로 국회의원이 10명이 되고나자 이제는 국회의원 10명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더 많은 국회의원을 만들어달라고 노동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대중투쟁에 기반하고 대중투쟁을 대표하는 당이 아니라 의정활동에 중심이 가 있는 당이다. 민주노동당이 대중투쟁에 결합할 때조차도 그 대중투쟁을 확대 발전시키기 위해 결합,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의회활동의 보조수단으로 삼기 위해서다. 국회 내에서 민노당 의원들의 발언력을 강화하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국회, 지방의회 선거와 각급 의원들의 활동이 당 운동의 중심이자 모든 것이다. 현장활동가들이 할 일이라곤 선거에 나온 후보들을 지지, 지원하는 것 말고는 없다.

정당이라고 다 이 같은 의회주의나 선거주의 정당인 것은 아니다. 혁명적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을 앞당기고자 하는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조직의 기초를 의회 선거구/지구당이 아니라 사업장 현장에 두고서 아래로부터 투쟁을 조직한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현장분회는 단 10명만으로도 해당 현장의 수백 명 민노당원들보다 훨씬 더 응집력 있는 활동으로 현장투쟁을 주도하며 이 투쟁을 전 사업장 투쟁으로 확대시킨다. 또한 일상적으로도 전국정치신문과 현장신문의 배포를 통해 현장노동자들의 의식을 끌어올리고 현장활동가들에게 활동과 투쟁의 지침을 제시하기 위해 분투한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현장분회는 민노당원들처럼 ‘당 활동’이라는 이름 아래 자족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현안과 전국적 투쟁사안을 가지고 부단히 공동투쟁을 조직하고 나아가 전투적 활동가 층을 주위로 결집시켜 현장에서 투쟁의 선도부대를 만든다. 그래서 필요할 경우 전투적 활동가들과 함께 현장조직, 활동가조직을 결성하여 투쟁의 선두에 서며 노동조합을 투쟁하는 조직으로 바로 세워낸다.

민노당은 조직규모가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백배도 넘지만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이런 활동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체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치투쟁은 당이, 경제투쟁은 노조가’라는 식으로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을 분리시켜 정치투쟁은 의회활동으로, 경제투쟁은 조합주의적 활동으로 각각 끌어내려서 자본가계급과 자본가국가가 쉽게 요리할 수 있도록 노동자운동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놓는 서구식 사민주의 정당이 바로 민노당이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이 민노당을 얼마나 우습게 아는가.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민노당에 비해 1/10밖에 안 되는 규모로도 자본가들을 벌벌 떨게 만들 것이다. 노동자계급을 혁명으로 이끌 잠재적 힘을 가지고 있음을 자본가들이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질문 3] 현장활동가 중심의 정치세력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것 같은데, 그렇다면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을 하기에 앞서 과거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 운동이나 최근 비정규직 투사들이 결집의 주체가 되는 운동과 같은 전국적 선진노동자운동이 먼저 건설되고 그 속에서 정치세력화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미 그런 방식의 정치세력화가 일차 패배했다. 민노당-관료적 산별노조라는 사민주의 양날개 운동이 구축되는 과정에서 이에 맞선 혁명적 정치세력화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 운동은 진보정당-관료적 산별전환에 대응하는 독자적 발전전망을 내오는 데 끝내 실패하고서 결국 해체의 길로 갔다. 이는 선진노동자운동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에 따라 운동노선과 전망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달리 말해서 노선 및 전망 문제에 대처하지 않고서 선진노동자운동이 굴러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환상이라는 것이다.

사민주의 양날개 운동이 완성된 현 시점에서는 더 더욱 그러하다. 현재의 민노당-관료적 산별노조 체제 하에서 독자적인 선진노동자운동이 전개될 수 있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혁명적 정치조직운동이 그 운동을 주도하고 이끌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혁명가들의 주도 없이는 단사와 지역을 넘어 더 이상 전국적 운동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명확한 노선과 대담한 전망 없이는 어떠한 전국적 운동도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개량주의자들의 양날개 운동이 선진노동자들의 역량을 압도하는 상황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선진노동자들이 먼저 혁명적 정치조직운동으로 결집하고 이로부터 선진노동자운동을 건설, 주도해 나가야 함을 뜻한다. 현장활동가들과 비정규직 투사들이 현장조직운동이나 노조 건설투쟁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사회주의노동자연합과 같은 혁명적 정치조직운동으로 결집하여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주위에 더 큰 범위의 선진노동자운동을 조직, 건설할 때만 현 단계 운동에서 현장활동가 중심의 정치세력화가 가능해진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과 같은 혁명적 정치조직운동이 없이는, 즉 선진노동자가 직접 사민주의 반대/혁명정당 건설을 위한 정치조직 운동에 나서지 않고서는 전국적 선진노동자운동도, 현장활동가 중심의 정치세력화도 다 공염불인 것이 현재의 운동 상황이다. 민노당-관료적 산별 시대에 ‘현장활동가 중심의 정치세력화’란 현장활동가・비정규직 투사들이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로 결집하여 사민주의, 개량주의, 의회주의, 관료주의에 명확히 혁명적 정치대안으로 대당하며, 과감히 조직적 대안 건설에 착수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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