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진짜 노동자 정치세력화인가를 분명히 하자!
07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참패, 뒤 이은 분당 사태 앞에서 어떤 이들은 말한다. “민주노동당의 약화로 노동운동이 커다란 위기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새살이 돋아나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에 다름 아니다. 이제껏 많은 건강한 노동자들이 “참다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은 채, “민주노동당 =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라는 공식에 사로잡혀 ‘개량주의와 의회주의의 덫’에 갇혀 버렸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의 정치적 열망을 대변할 수 없다면, 과연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바로 이 점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한국 노동운동 발전의 소중한 계기다.
정치세력화의 역사를 둘러싼 두 가지 평가
2002년부터 2007년 시기에 노동자들이 느꼈던 상황은 “노동운동의 힘이 약화되고 노동자 정치의 위력이 사회적으로 급락하는 과정”이었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90년을 전후로 획득했던 성과들, 권리들은 그 시기 동안 심각하게 파괴되었고, 현장 노동자들의 자신감, 그리고 노동자 연대는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노동해방’으로 상징되었던,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을 향한 정치적 열정도 급격하게 약화되었다.
그러나 똑같은 시기에 민주노동당의 의회주의자들은 ‘국회의원 배출’을 환호하고, TV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하는 스타 국회의원들을 통해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발전하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똑같은 상황 앞에서, 민주노동당의 지도자들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진을 환호하고, 현장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힘이 약화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있음을 느끼는 이 대립적인 현실은 왜 발생하는가? 과연 무엇이 진실인가?
민주노동당의 성장 과정 -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약화 과정
노동자가 정치적으로 세력화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민주노동당 지도자들은 이제껏 이렇게 말해왔다.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들이 많아지는 것, 나아가서 민주노동당 대통령을 배출해내는 것이 노동자의 정치적 힘의 확대를 뜻한다. 고로 민주노동당에 표를 던져라.” 많은 노동자들이 그것을 믿었다. 노동조합의 대다수 지도자들은 그런 노선을 신봉하면서, 그 믿음을 현장에서 확대해왔다.
그러나 그런 노선의 결과는 무엇이었던가? 민주노동당은 여러 명의 국회의원들을 이미 배출했다.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득표율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진군을 뜻하지 않았다. 득표율과 국회의원수, 대통령, 수상 당선 여부라는 의회주의의 잣대가 아니라 현장의 노동자 투쟁과 노동자 연대의 발전, 그리고 이것에 의해 사수되고 강화되는 노동자의 권리, 힘, 자신감, 의식이라는 노동자계급의 잣대로 노동자 정치세력화 정도를 측정한다면 말이다.
‘사회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기간 동안 현재 노동운동을 대중적으로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세력인 민주노총의 조직된 노동조합들은 “고립”되었다. 심지어는 비정규직 학살법을 만들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폭 확대했으며,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에 잔인한 탄압을 일삼아온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대기업 정규직 이기주의 집단으로 ‘비판’받아도 제대로 맞받아치지 못할 만큼 고립되었다. 중소기업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등 미조직 노동대중의 다수가 조직된 노동자들 - 다름 아닌 노동자계급의 선두 부대 - 과 뜨거운 연대감을 갖기는커녕 소가 닭 보듯이 하고 있다.
반대로 노동자들이 권리를 쟁취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의 성장을 온 몸으로 느끼며, 수많은 새로운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에 자신감과 열정을 가지고 합류해 들어오며, 수많은 고등학생들, 대학생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자발적으로 노동운동에 합류할 만큼 사회적으로 노동운동의 위력이 높았던 시기는 어떤 시기였던가? 바로 87년 7, 8, 9월 노동자 대투쟁을 전후로 하는 약 10여년의 기간이었다. 이 기간 동안 한국 노동자계급은 민주노동당과 같은 의회주의 정당 없이도, 훌륭하게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발전시켜왔다. 노동대중의 삶과 의식, 단결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말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민주노동당의 성장이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엇박자가 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주도자로 군림했던 과정은 곧 의회주의와 개량주의가 노동자의 힘을 파괴해나갔던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의 의회주의 지도자들은 노동자 투쟁이 위기에 봉착하면 이 투쟁을 사수하고 발전시키는 전망을 제기하고 온 힘을 다해 투쟁을 이끄는 대신 ‘민주노동당이 국회의원을 배출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엉뚱한 해결책을 들이밀었다. 만일 국회의원 다수를 장악하고 대통령직을 손에 넣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 여러 번 소위 집권한 바 있는 유럽의 사회민주당이나 개량주의적 노동당이 늘 말하는 식으로 “우리 당에게 표를 찍어주어야 그나마 덜 밀릴 수 있다”고 오리발을 내밀 것이다.
이것이 의회주의 정당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성장은 항상 의회주의 전망에 노동자들이 몰두해서 노동자 투쟁이라는 가장 중요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무기를 놓아버리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의회주의 지도자들의 영향력은 노동조합의 개량주의 지도자들의 영향력과 결합되어야만 비로소 온전하게 발휘될 수 있다.
노동조합의 개량주의 관료층은 의회주의 정당의 중요한 한 부분을 형성했고, 의회주의 정당을 국회의원, 장관 등의 탐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출세의 통로로 이용했다. 현장에서는 노동자 투쟁을 배신하고 망치고, 민주노동당에서는 국회의원이나 지역구 위원장, 상층 지도자 역할을 하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떠버리는 작자들이 이미 민주노동당에서 적은 수가 아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거나 가입을 꺼리는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현장에서 투쟁과 노동조합을 말아먹는 작자들이 민주노동당에서 간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 당을 나의 당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라고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주도권’의 영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노동계급의 다수를 이루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합류하지 않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이들의 선두 부대가 필사적으로 전개하는 비정규직 투쟁을 말아먹고 연대를 방기하며, 비정규직의 확대를 현장에서 받아들이는 주인공이 바로 민주노동당의 주요 간부들이다. 가령 정갑득은 현대자동차에서 “정규직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안전판이 필요하다. 고로 비정규직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비정규직 대량 확대를 자본과 합의한 작자다. 당연하게도 이런 작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민주노동당이 아무리 ‘비정규직 축소, 비정규직 대변’을 외치더라도, 노동대중의 지지를 끌어낼 수 없게 된다.
진정한 정치세력화를 위하여
민주노동당의 모습으로부터 ‘당은 모두 타락하기 마련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당을 거부함으로써 더 잘 달성될 수 있다’는 결론을 끌어내서는 안 된다.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이룩할 수 있는 정확한 방향과 수단을 혁명적 사회주의 강령으로 분명히 제시하고, 노동자 투쟁에 헌신하는 가장 훌륭한 노동자들을 결집해 노동자 투쟁과 연대를 앞에서 밀어나가는 선진적 노동자 투사들의 조직인 당 없이 노동자계급을 위력적인 세력으로 조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어떤 당인가”이다.
의회가 아니라 의회 바깥의 노동자 투쟁에 진실로 헌신하고 이 노동자 투쟁의 발전을 통해서만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분명한 자각이 필요하다. ‘선거는 포기하자는 말인가?’ 아니다. ‘선거’까지도, ‘국회(의회)’까지도 노동자 투쟁의 발전과 노동자의 강령을 널리 보급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당이야 말로 참으로 노동계급적인 당일 것이다. 그러나 이 당은 의회주의 정당과는 명백히 달라야 한다. 이 당은 90%의 역량을 의회 바깥의 노동자 투쟁에 쏟는 당이어야 한다. 또한 10%의 선거 활용, 의회 활용조차도 의회 바깥의 노동자 투쟁의 발전을 위해 활용하는 당이어야 한다. 노동자 투쟁을 배신하는 작자들, 출세분자들이 단 한 명도 파고들지 못하도록 만드는 당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 당에 속하고 있다는 것은 노동자 투사로서 명예가 되는 당, 수많은 젊은 전투적 노동자들로부터 이 당에 참가하고자 하는 결의를 끌어내는 그런 당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선거에서 기권할 것이냐? 기권할 수 없다면 민주노동당이든 진보 신당이든 의회주의 개량정당을 지지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지속할 수 있다’는 의회주의자들에게 정면으로 대답해주자. “우리는 노동자 투쟁을 조직하고 이 투쟁 속에서 검증된 혁명적 노동자 투사들이 결집해나감으로써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미래를 준비해나갈 것이다. 이 투사들이 충분한 수로 형성되고 하나의 조직으로 결집했을 때, 바로 이들은 노동자 투쟁에 헌신하면서 의회와 선거까지도 노동자 투쟁의 발전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진정한 노동계급당이 어떤 것인지를 온 세상에 보여줄 것이다. 그리하여 민주노동당에 의해 끊어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물줄기를 노동해방의 거대한 바다를 향해 반드시 되살려낼 것이다!”
최영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