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 날, 여성 노동자의 투쟁 정신으로 계승하자!
지난 3월 8일은 100주년을 맞이한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만들어낸 것은 바로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미국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투표권 등을 요구하며 무장한 군대와 경찰에 맞서 투쟁했고, 바로 이로부터 세계 여성의 날이 유래했다. 그 후 3·8 여성의 날은 자본주의에 맞서는 세계 여성·남성 노동자들의 투쟁의 날이 되었다. 특히 짜르 전제 정부에 맞선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은 3월 8일 전개된 여성노동자들의 시위가 커다란 공헌을 했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노동운동을 대중화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했던 한국에서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세계 여성의 날을 공식적으로 기념할 수 없게 금지시켜왔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 또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세계 여성의 날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세계 여성의 날의 정신은 세계적으로나 한국에서나 바로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의 정신이다.
투쟁의 정신을 거스른 여성의 날 행사
08년 3월 8일 11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뉴코아노조, 이랜드일반노조, 공공노조 의료연대 간병인분회 등 3·8 여성의 날 100주년 투쟁 기획단이 주최한 ‘3·8여성의 날 100주년, 서울지역 여성노동자 한마당’이 열렸다. 이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의 요구는 이렇다. “100주년 여성의 날을 맞아 3월8일을 축하하는 날로 만들기 위한 행사가 준비되고 있지만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축제가 아니라 투쟁입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러한 요구를 대변하지 않았다. 같은 날 1시 30분 서울시청 앞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100년 기념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 노동계급의 투쟁과 연대는 없었다. 삼성SDI, KTX, 기륭, 이랜드, 뉴코아, 광주시청 여성노동자들은 연단에서 배제되었다. 그녀들은 해를 넘겨가며 싸우고 있는 투쟁의 의미를 다른 노동자 동지들에게 전달하고, 연대투쟁을 요구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단지 민주노총이 준비한 몇 마디의 투쟁선언을 읽는 역할만이 주어졌다.
투쟁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배제된 연단을 장식한 주인공은 4월 총선에 출마할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 후보들이었다. 이 후보들은 여성 노동자들을 대표할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다. 총선에서 정동영을 지지한 사람이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곽정숙), 지방선거에서 강금실을 지지한 사람이 3번(이정희)이다.
이 후보들과 이들이 지지한 자들이 핵심으로 있던 노무현 정권 때 해고된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 어떤 동질감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이들은 여성이라는 것 외에는 여성노동자와 어떤 동질감도 없다. 이들이 말하고 있는 ‘여성정치세력화’는 여성노동자들이 말하고 있는 ‘여성해방’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
오늘날의 여성노동자의 길
100년 전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은 투표권 쟁취를 위해 투쟁했다. 그 후 오랜 계급투쟁의 역사는 겨우 몇 명의 여성 대표를 의회에 보낸다고 여성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지거나 자본주의가 여성 노동자들에게 가하는 착취와 억압을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노동자들과 단결해 자본주의의 착취와 억압, 차별의 벽을 무너뜨려야만 비로소 진정한 해방의 길을 열 수 있다. 이 길은 여성이란 이름으로 여성노동자들에게 남성 노동자들과 분열될 것을 요구하고, 여성이란 이름으로 노동자계급 대 자본가계급 사이의 명확한 바리케이드를 포기하고 여성 자본가들, 여성 중간계급과 섞이고 단결하도록 요구하는 부르주아, 소부르주아 여성운동의 길과 명확하게 단절하도록 요구한다.
여연 등 소위 말하는 주류 여성단체들은 ‘세계 여성의 날 100년 3·8 여성축제조직위원회’라는 이름으로 3·8 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매년 ‘전국여성노동자대회’ 이외의 모든 행사를 이 조직위원회와 함께 진행한다. 그리고 여성노동자들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포기하고 만다. 올해 이것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3·8 여성의 날을 부르주아 쁘띠부르주아 어중이떠중이들과 함께 ‘축하’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많은 여성단체가 참가하는 행진이므로 (민주노총의) 깃발은 들지 않습니다.” 그날 5시 홈에버 상암점에서는 이랜드 투쟁 문화제가 열릴 예정이었다. 민주노총은 그에 대해 어떤 안내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랜드 일반노조의 여성노동자들이 투쟁 속에서 쟁취하려고 하는 “대량해고 반대! 정규직화 쟁취!”는 모든 노동자들, 특히 여성노동자들의 중요한 권리다. 이 요구를 여연 등과 행진하면 얻어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3·8 여성의 날을 오늘날 진정으로 계승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은 홈에버 상암점에서 열린 이랜드 투쟁 문화제에 결합해서 “대량해고 반대! 정규직화 쟁취!”를 내걸고 당당하게 투쟁하는 것이었다. 여연은 도망칠 것이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과 남성노동자들은 끝까지 대열을 사수했을 것이고, 힘차게 여성의 날을 축하했을 것이다.
3·8 여성의 날 100주년에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여성노동자 남성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 정규직노동자 이주노동자, 모든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랜드, 기륭전자 등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하는 것이 100년 전 여성노동자들이 내딛은 발걸음을 이어가는 실천의 출발점이다. 3·8 여성의 날은 자본주의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시작됐고, 노동자 투쟁을 통해서만 계승할 수 있음을 절대 잊지 말자.
조찬주
